사람은 지혜가 있대

엄마 나는 태권도 쭉 해서 상장도 받고 트로피도 받을거야.
응. 아주 좋은 생각이야. (상상이 안 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난 나름대로 친절한 대답 잘 해줌)
엄마도 좋다고 생각해?
그럼. 근데 예환아, 예환이는 공부를 잘 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은 생각도 있어?
있어!
그래?
근데 공부는 언제까지 해야 해?
음.. 누나처럼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도 가고 싶으면 가는 건데, 근데 사람이랑 동물이랑 차이점이 뭔지 알아?
알아!
뭔데?
지혜! 사람은 지혜가 있어!
그래, 동물은 본능만 있지? 사람은 지혜가 있어. 왜냐하면 문자가 있어서 그걸 기록하고 나눠갖고 책을 읽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응!
그러니까 사람은 동물과 다르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늘 공부를 해야 하는 게 맞아. 그렇겠지?
응. 책도 읽고!
그래. 늘 생각하고. 그러니까 공부가 언제끝날까 이런 생각은 하지 마. 공부는 죽을 때까지 하는 거야. 그래서 사람인거야.

2013. 12. 21.

침묵과 말

꽤 긴 글

1.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암묵적 동의, 내지는 규율이 존재한다. 성문법은 아니지만 보편적 상식이라고 하는 것들이다. 그 주된 것은 “침묵하라” 는 것이다.

특히 이 나라에서는 “침묵하라” 가 매우 쓸모있는 삶의 지침이 되었다. “국으로 가만히 있어.”, “입 닫고 있으면 중간이나 가지.”, “나대지 마”.

중학교 2학년 초에 환경미화를 하다가 학교 학급신문을 대자보 형식으로 만들어 교실뒤에 붙였다. 그 내용이 “왜 학생회 간부는 교사들의 회식을 책임져야 하는가” 였다. 물론. 내가 썼다. 그리고 이미 반장이었던 나는 간선제 투표를 통해 학생회 부회장이 되었지만 1년간 일부 교사들에게 시달렸고 별 거 아닌 일로 체벌도 심하게 받았다. 이 사건은 나에게 낙인이 되어 어떤 교사는 나에게 “너는 교칙을 위반하지 않고 나쁘거나 틀려먹은 짓을 하지 않지만 교묘하게 교사를 골탕먹이는 골치아픈 아이” 라는 이야기도 직접 들었다. 89년의 일이고 당시 전교조가 생겨 몇 몇 교사는 해직 당했고 학교에 남은 교사들은, 그러니까 투쟁하지 말아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나에게 “내가 너한테 밥 빌어먹는 거지새끼냐” 라고 했던 가정교사는 3학년 때 학생회장이 되어 교무실에 인사를 갔을 때 일부러 그랬는지 “이하나 우리 회식 언제해?” 라고 물었다.
나는 당연히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회식 없습니다. “라고 대꾸했다.

2.
그런 말을 하면 안되지. 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많았다. 적당히 하고 넘어가.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주변에 있었다. 그러나 여태 내가 성인이 된 이후 살아온 세상은 사실 어떤 발언을 할 기회도 별로 없었고 그래봤자 대충 기업의 부당한 소비자에 대한 태도를 끈질기게 물고 넘어져 이겨내는 정도의 소비자 행동 정도였다. 예를 들면, 부당하게 청구된 전화,인터넷 요금에 대해 6개월을 싸워 결국 승복을 받아낸다던지, 차일피일 미루는 보상문제를 한 방에 해결한다던지. 그러나 이런 것들은 매우 개인적이고 나의 주머니 사정을 우선한 소비자의 행동에 불과했다.

3.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언제나 각인되어 있는 기억이 있다.

실은 엊그제 작은 아이 학교에서 토론회를 빙자한 1년간의 성과발표회가 있었고 학부모 단체장 대표의 자격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 학부모들 부터 발표 를 시켰는데 어쩌다 보니 자리 순서대로 내가 제일 마지막이 되었다. 앞에 여덟명정도의 학부형들이 차례대로 소감을 얘기했는데 90%의 칭찬과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10%의 아쉬운 점이 있었다. 물론 모 단체의 대표는 내년도에는 자기가 속한 단체가 취지에 맞는 일을 더 많이 했으면 좋겠다는 돌직구도 날렸다.

마이크를 제일 늦게 잡은 게 사달이었다. 쓸데없이 발동하는 이 사명감.
그런 건 개나 주면 좋지 아니한가.

내가 주절주절했던 말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1. 모든 선의의 시스템은 수많은 행정절차를 거치며 왜곡되고 변질된다. 시스템, 즉 제도의 한계를 보완하는 것도 제도여야 한다.

2. 사명감과 봉사정신, 애정으로 교직을 유지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폭력적이다. 수많은 혁신을 외치는 학교에서 교사들이 지치지 않도록 예산을 투입해 정확한 행정보조 인력을 지원하는 것을 제도화 하는 일이 필요하다.
– 이건 과잉의욕에 넘쳐있는 교장을 겨냥한 셈이 되었고, 일부 평교사들은 눈을 마주치며 소리없는 박수를 치기도 했다.

3. 우리 학교 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나라 대부분의 교육정책의 문제이기도 한, 리더십 강화, 글로벌 교육 이런 거 보다 낮은 자리에서 봉사와 협동, 자치적 능력을 키우는 아이들이었으면 좋겠다. 왜 아이들이 스스로 교실청소를 잘 하지 못하는 지 이해할 수 없다. 난 우리 학교가 청소 잘 하는 아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오늘에서야 생각났는데, 학년초 전체 학부모 대회의 때 교감이 절대 학부모 동원 교실청소를 엄단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 4학년까지는 매주 혹은 격주 엄마들이 당번을 맡아 교실청소를 해 주고 있다)

4. 진로적성 교육에 대해서는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상당히 돋보였다. 그러나 국가 전체적으로 진로 교육정책이 너는 어떤 인간이 되고 싶으냐고 묻는 게 아니라 너는 뭐 해 먹고 살거냐고 묻는 건 아닌지 늘 우려된다.

5. 앞서 말했듯이 제도의 문제는 언제나 예상치 못한 것에서 발생한다. 문제가 발생해도 최소화 할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은 확고한 의지가 있는 굳건한 신념과 철학이다. 조금 더 고집있게 한가지의 통일된 방향성을 가지고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말을 마치고 자리에 앉았을 때, 내 옆에 있던 교감샘이 “너무 많이 생각하셨어” 라고 말을 건넸다.
사실 순간, 아차 했다.

4.
그리고 오늘 내가 페이스북에 우습게 포스팅을 했지만 오후에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잠바가 안 벗겨진다며 울먹이며 전화를 했다. 나는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귀여운 마음에 웃음이 터져 속상해 하지 않고 집에 갔다. 학교 끝나고 점퍼를 입다가 그랬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아침에 등교해서 옷을 벗으려 할 때부터 안 벗겨지더라는 것이다. 그거야 뭐 지퍼에 안감이 물려서 자주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긴 하다.

학교에서 점퍼가 벗겨지지 않아 담임선생님에게도 세 번이나 얘기했는데 선생님이 잘 못 들으셨다며 하루 종일 혼자 두꺼운 오리털파카를 입고 교실에 앉아 있었던 일이 과연 우연일까 의심이 드는 것이다.

이 사안을 담임에게 질문할 일도 아니고 아무리 1학년이라고 해도 나는 절대 담당자에게 왜 내 아이를 조금 더 배려해주지 않았느냐고 물을 수 없다. 그저 다른 아이들은 모두 겉옷을 벗고 있는데 혼자 겉옷을 입고 앉아 있는 아이를 의심스럽게 챙겨보지 못했겠구나. 라는 결과만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미루어 짐작하여 소설을 쓴다면 이야기가 너무 방대해 지지 않겠는가. 남의 속도 모르고. 내가 그 속을 어찌 알겠는가. 연말이라 업무가 많을 수도 있고 아이들에게 친절한 선생님이라 늘 아이들이 선생님 주변에 달라붙어 있으니 내 새끼가 하는 말이 모기 소리처럼 들렸을 수도 있는 거다.

5.
눈으로 확인하지 않은 것을 미루어 짐작하면 치졸해지기 쉽다.
그러나, 대신 설정을 하여, 만약, 내가 학교에서 엊그제와 같은 돌직구를 지속적으로 날려 어린 나의 아이가 상처를 받는 일이 생긴다해도 나는 이런 말하기를 지속할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엄마의 돌출행동으로 초중등 시절 불이익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큰 아이의 경우 나의 돌출행동으로 외려 이득을 본 경우가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여름이 지나 아이의 머리가 자외선에 자연탈색 되었는지 약간 갈색으로 변했는데 학교에서 무조건 검은 색으로 염색을 하고 오라 해서 전화를 한 적이 있다. 교칙이 어떻게 되느냐고. 일괄적으로 순도 100%의 흑발이 규칙이냐고. 당연히 그렇지 않다는 답변을 들었고 아이는 염색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또 한 번은 융통성 없는 정책, 날이 갑자기 추워졌는데 동복착용 금지를 시켜 학교에 전화를 했었다. 오늘 지금 전화 받으시는 선생님은 뭘 입고 나오셨냐고 물었다. 그날 종례시간에 아이들에게 추우면 겉옷 입고 오랬다는 답을 들었다.

학부모라는 집단과 학교라는 집단은 기이하기 그지 없다. 아이들은 아무리 학습을 많이 시켜도 수준이 월등히 우수하지 않다. 내가 다년간 지켜본 바로 적어도 이 지역의 아이들은 내가 자랄 때 아이들보다 대단하게 우수하지 않다. 외려 타고난 재능발휘, 특기, 발표 부분는 그 때 의정부나 도봉구 땟골 아이들보다도 후지다. 아이들도 그대로, 학부모도 그대로, 학교도 그대로. 그리고 나도 그대로다.

또한, 어떤 집단이거나 나 같은 인간이 한 둘은 있을텐데 나처럼 늘 세상에 탈이 많은 거 같아 말이 많은 인간이 한 둘 이상이 조직은 과연 똑바로 굴러갈까 하는 의심과, 그렇다면 나는 과연 매사를 너무 예민하게 탈많은 세상으로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과, 이런 나의 비판적 태도가 진실한 비판인지 혹은 그저 불만의 습관인지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는 거다. 왜냐면, 남들은 괜찮아 보이니까. 내가 한 말을 하지 않고 살아도 별 문제가 없어 보이니 말이다.

과연 세상은 달팽이 오줌만큼이라도 움직인걸까. 그리고 나는 과연 얼만큼 자라온 걸까.

2013. 12. 20.

홍콩의 어느 밥집

결혼하고 작은 아이를 낳은 게 2006년이다. 아이는 2006년 봄에 태어났다. 2005년 여름에 대만출장을 남편과 같이 다녀왔고 그 이후로 한 번도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 여권이 만료된 것도 모르고 있었고 올 해 초에 해외를 나가야 할 일이 있어 여권을 새로 발급 받았는데 그 일도 무산되었다. 가까운 중국은 어떻게든 맘을 먹으면 다녀올 수 있는데 그 마음 먹는 일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외에 있는 아는 동생이 홍콩행 동반을 강권했다. 꼭 같이 다녀오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고 약간은 망설이다가 과감하게 추진해 버리는 그 친구를 보고 이렇게 떠밀리듯 가지 않으면 또 내년이 되겠다 싶어서 비싼 비행기표를 급하게 끊어 주말을 이용해 홍콩을 다녀왔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 내가 바란 것은 그냥 거리를 걷는 것이었다. 간판이 즐비할 그 거리를 그냥 하염없이 걷는 것. 내가 언제나 그리워 하는 상하이와 별반 다를 것이 없을테니, 나는 그냥 걷다가 오면 될 일이었다. 꼭 가보고 싶은 곳도 꼭 먹고 싶은 것도 없었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은 길에서 마주칠 수 있는 흔한 국수나 볶음밥 정도였고 어떤 사람들은 무척이나 싫어할, 중국 특유의 냄새였으니까.

홍콩은 스모그가 가득했다. 올 해 들어 중국대륙에 인접한 그 어느 곳도 무사하지 못한 모양이다. 첫 날부터 뿌연 하늘에서 빗방울이 한 두방울 떨어졌다. 둘째 날, 저녁이 되자 제대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오후들어 정해진 일정이 있어 숙소와 멀리 떨어진 곳을 방문하고 호텔로 돌아가 잠깐 짐을 추린 다음 저녁으로 무얼 먹을 것인가 둘이 궁리했다. 나는 그제서야 hotpot 이라고 하는 중국식 샤브샤브 훠궈를 생각했고 검색을 했다. 마음은 들뜨고 둘 다 머리는 비어 있는 상태라 검색도 잘 하지 못했다. 택시를 타고 음식점으로 이동했는데 훠궈 전문점이 아니었다. 우리는 다른 훠궈집을 찾아 다시 택시를 탔다. 소호근처였는데 홍콩은 운전석이 반대방향이라 내가 계속 방향을 놓쳤다. 주소를 찾았는데 가게가 없었다. 맞은 편에 PUB이 있었고 문앞에 서 있는 종업원에게 중국어로 물어보니 말을 못 알아듣는다. 그제서야 어둑한 조명에서 그녀가 영어를 사용하는 다른 나라에서 왔을 거란 짐작을 했다. 이 근처에 훠궈집이 없었나요? 바로 이 앞 집인데 문 닫고 다른 주인이 들어왔어요. 그럼 이 근처에 추천할 만한 다른 훠궈집을 아는데가 있나요? 그녀는 모른다고 했다. 내리막길을 가르키며 저리로 내려가면 중국음식집이 있을 지도 모른다 했다.

우리는 일단 비가 더 오기 전에 빨리 자리를 이동해야 했고 어디든 가서 중국음식을 먹겠다는 일념에 가득차 있었다. 낮에 유명하다는 국수집에서 국수를 먹고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라는 세계최장 에스컬레이터로 가는 길에 지나갔던 시장이 다시 나왔다. 시장길을 통해 소호가 됐든 란콰이퐁을 가든 아무튼 열심히 걷고 있었다. 숙소 근처 K-POP이 나오는 잡화점에서 비싸다고 둘이 투덜대며 46원(한화 6200원 가량) 이나 주고 산 우산은 이미 반쪽이 짜부라져 있었다.

그나마 백반집 같은 간단한 음식들을 파는 식당도 문을 닫아버렸다. 시간은 9시가 넘었다. 지나가며 봤던 한 식당에 주방장 옷을 입은 아저씨가 문 밖에 서 있었다. 나는 우산 속에서 손을 들어 입으로 가져가며 먹는 시늉을 하고 아저씨를 쳐다봤다. 아저씨는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우리는 급한 김에 그냥 마구잡이로 들어갔다. 아무도 주저하지 않았다.

메뉴를 보니 싸게 점심 저녁 메뉴를 파는 집이고 음식맛이 훌륭할 것 같지 않았다. 세트메뉴를 주로 파는 집이었고 면 전문도 밥 전문도 요리 전문도 아니었다. 볶음밥을 먹어보겠냐고 동행에게 물었다. 나의 동행은, 이런 식당에 들어올 일도, 들어와 본 적도 없는 사람이다. 그는 대부분의 주문을 나에게 일임했으나 나는 항상 괜찮겠냐 되물어봤다. 빈 자리에 앉으려고 가방을 내려놓자 아저씨가 두루마리 휴지를 가져다 주며 등이 다 젖었다고 조금이라도 닦으라고 했다. 친절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두운 밤에 영업시간이 끝났는데 들어오라고 한 것도 뭔가 그냥 밥을 사먹는 기분이 아니었다. 나는 볶음밥을 하나 시키고 요리를 하나 주문하고 싶다 하니 아저씨가 돼지족발을 추천했다. 그렇게 달라고 하고 국물이 필요한데 탕은 마땅한 게 보이지 않아서 국수를 한 그릇 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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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는 푸짐한 볶음밥을 한 그릇 내주었다. 우리는 정신없이 볶음밥을 먹었다. 나의 동행도 맛있다며 잘 먹었다. 곧 홍콩 특유의 돼지족발이 나왔다. 중국의 돼지족발은 상당히 맛있는 편인데 역시나 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가득해서 한국 사람 중엔 잘 못먹는 사람도 많다. 동행은 자기에게 약간 하드코어한 음식이라고 웃으며 조금씩 살점을 베어 먹었다. 홍콩 사람들이 잘 먹는 양배추 볶음에 굴소스를 얹은 야채 요리도 한 접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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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는 중에 식당 청소를 하는 것으로 보이는 왜소한 남자가 들어와서 고무장갑을 끼고 가게를 정리하고 있었다. 우리가 앉은 곳을 빼고 다른 테이블엔 이미 의자가 올려져 있었다. 한 사람이 또 들어와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다 갔다. 우리가 밥을 다 먹어가자 아저씨는 광동어가 가득 배인 부통화 (대륙의 표준어 / 普通話)로 나에게 대만사람이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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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이라고 대답했더니 놀라워했다.

한국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부통화를 잘 하느냐고 되물었다. 대륙에서 학교를 다녔다고 얘기했다. 아저씨의 식당엔, 아마 한국인이 들어오거나 외국인이 들어오는 일이 별로 없을 것이다. 어쩌면 아저씨는 중국 표준어를 하는 한국사람을 처음 본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아저씨는 의자를 옆에 놓고 앉아 나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광동어가 가득한 억양과 분명히 않은 발음을 알아듣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나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아들을 만은 했다. 홍콩 어때요? 홍콩 좋네요. 여기 사람들은 뭔가 좀 자유로와 보이고, 개방적인 거 같아요. 대륙에 비해서. 그렇지. 홍콩은 좀 그런 게 있죠. 하지만 여기 생활은 아주 고됩니다. 홍콩은 경찰이 아주 좋아요. 친절하구요. 우리는 경찰을 신뢰하죠. 아. 저는 어릴 때부터 홍콩영화를 많이 봤어요. 영화에 홍콩 경찰은 꼭 나오잖아요. 그렇군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줄도 몰랐어요. 직업상으로도 좋나요? 좋은 직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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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가 내내 담배를 피우며 왔다 갔다 했기에 나도 담배를 꺼내어 테이블에 올려놓은 터였다. 아저씨가 내 담배를 만지며 이건 한국담배냐고 물었다. 아니 이 담배는 영국담배인데 한국에서 가져온 거예요. 라고 얘기하자 앞에 앉은 나의 동행이 아저씨 담배 하나 드리라며 웃었다. 나는 두 가치를 꺼내 드렸다. 아저씨는 좋다며 고맙다 하고 품에 넣었다. 잠시 후에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아주 맑아서 좋다며 홍콩은 담배가 너무 비싼데 한국은 얼마나 하냐고 물었다. 홍콩은 수입담배가 한 갑에 50원(한화 6700원꼴) 정도였다. 아저씨는 나에게 담배를 두 가치 줬으니 밥값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그런 게 어딨냐고 웃었다.

같이 온 이 친구도 한국 사람인가요? 한국에서 왔나요? 키가 무척 크네요. 라고 하시길래 이 친구는 한국사람인데 영국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친구의 핸드백을 보고 와 이거 비싼 가방인데, 직업이 좋은 모양이라고 하시길래 영국에서 변호사로 일하던 친구라고 대답해드렸다. 아저씨는 대단하다며 소탈하게 웃었다. 여기서 밥을 먹고 어디로 갈건가요? 란콰이퐁에 가 볼 생각이예요. 아 거기 아주 번화하죠. 놀기 좋아요. 사람들이 많죠. 외국인도 많죠? 아저씨도 끄덕끄덕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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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는 자기가 만든 돼지족발에 기름기는 모두 빼고 영양가만 남은 것이라고 열심히 설명했다. 그러고는 주방에서 작은 양푼에 우리가 먹은 볶음밥을 해서 나오더니 우리 그릇에 몇 수저를 덜어주고 청소하는 아저씨에게 가져다 주었다. 우리는 볶음밥을 싹싹 먹고 돈을 내려고 하자 이 아저씨가 정말 돈을 받지 않을 기세였다. 그러지 마시라고 재촉하자 120원이라고 밥값을 알려주었다. 적은 돈도 아닌데 받지 않으려 하다니 그 마음이 고마워서 내 동행은 명함에 한자이름까지 적어서 아저씨에게 드렸다. 내가 기억하고 싶어서 사진을 찍으려 하는데 괜찮냐 묻자 웃으며 V자를 그려주셨다. 우리는 돈을 내고 명함을 드리고 가게를 나오는데 앞쪽에 물걸레질을 해서 길이 미끄럽다며 우리가 나가는 길까지 따라나와 조심할 지점을 가르쳐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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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조금씩 내리고 있었고 우리는 짜부러진 우산을 둘이 쓰고 팔짱을 끼고 어두운 시장통을 빠져 나왔다. 내 옆에 선 동행은 “좋다.” 라고 말했다.

“좋지?”

“응. 좋네. 좋은 사람이네.”

우리는 아주 맛있는 음식은 아니었지만 참 좋은 음식을 먹었고 란콰이퐁의 소란스러움은 우리를 감흥시키지 못했다. 란콰이퐁을 한 바퀴 돌아 그냥 숙소로 돌아왔다. 한 사람의 친절이 오랫동안 홍콩이라는 이름으로 남을 것을 알았기에, 비오는 어두운 길거리도 무척 정겹기만 했다.

 2013년 12월 14일의 일을 17일에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