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 신경림

우리는 협동조합 방앗간 뒷방에 모여
묵내기 화투를 치고
내일은 장날, 장꾼들은 왁자지껄
주막집 뜰에서 눈을 턴다.
들과 산은 온통 새하얗구나.눈은
펑펑 쏟아지는데
쌀값 비료값 얘기가 나오고
선생이 된 면장 딸 얘기가 나오고,
서울로 식모살이 간 분이는
아기를 뱄다더라. 어떡헐거나.
술에라도 취해볼거나. 술집 색시
싸구려 분 냄새라도 맡아볼거나.
우리의 슬픔을 아는 것은 우리뿐.
올해에는 닭이라도 쳐볼거나.
겨울밤은 길어 묵을 먹고.
술을 마시고 물세 시비를 하고
색시 젓갈 장단에 유행가를 부르고
이발소집 신랑을 다루러
보리밭을 질러가면 세상은 온통
하얗구나.눈이여 쌓여
지붕을 덮어다오 우리를 파묻어다오.
오종대 뒤에 치마를 둘러쓰고
숨은 저 계집애들한테
연애편지라도 띄워볼거나. 우리의
괴로움을 아는 것은 우리뿐.
올해에는 돼지라도 먹여볼거나.

– 신경림 시전집 1권 농무 / 16쪽 – 17쪽.

그 어느 꿈속에서

낯선나라에서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다 고현정을 만났다.
얼큰하게 취한 그녀와 낯선 이국의 거리를 헤매다 그녀가 나에게 전화번호가 적힌 인쇄된 명함을 주었다.
아마 중국이나 대만 어디쯤..
음주후였으나 운전을 해서 어딘가로 가야만 했다.
한 잔 더 할까 생각이 든 나는 고현정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ARS팬서비스였다.
그럼 그렇지… 나는 마음을 접었다.
붉은 색 나의 차에 홍콩이나 상해에 있는 연립주택 지하, 남의 집 철문옆에 묶여있는 나의 자전거를 풀어 차에 실었다. 그 건물의 1층에 묶여있던 나의 개를 풀었다. 운전을 하려는데 네이버에 다니는 후배가 남편과 나타나 술을 먹었으니 운전을 대신해주겠다 했다. 후배는 어린아이를 안고 있었고 갑자기 나에게도 강보에 싸인 어린아이가 생겼다. 아이를 뒷좌석에 앉히고 후배와 내가 뒷좌석에 비좁게 앉았다. 주인을 잃은 듯 귀를 붙이고 떨던 개를 불러 트렁크에 넣었다.
후배의 신랑이 운전을 시작했다.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그 집이, 지금 나의 집인지, 엄마의 집인지, 우리의 나라인지 알 수 없었다.

FTA, 조약 날치기, 포털의 조작, 삼성.
오직 나만의 것들을 지키려던 혈혈단신.
그런 것들이 반영되었다.
깨고 나니 밤 12시 28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