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 단상

1.

오랜만에 목욕탕에 갔다.
체질상 당분간 온몸을 담그는 탕목욕이나 사우나를 피하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래도 나는 물에 몸을 푹 담그거나 뜨거운 찜질방에서 땀을 쭉쭉 빼는 걸 좋아한다.
하루키의 잡문집을 들고 제일 조용한 찜질방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
어디가 막혔는지 땀이 잘 나지 않았다.
몇 몇 사람들이 들어왔다가 다시 나갔다.

60℃의 방에서 중년남녀가 다리를 베고 누워 다정한 말을 속삭인다.
어디를 놀러갈까 이야기를 한다.
정상적 부부관계로 도저히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약간 씁쓸하다.
부부가 된 지 10년이 된 사람들이 저리 다정한 경우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부가 일종의 “경제공동체”의 속성을 더 많이 띄고 있다는 얘기다.

2.

찜질방에서 여탕에서 이어지는 통로에 여성 전용 수면방이 있다.
네일아트를 하는 자리가 있고 불가마가 있다.
여기까지는 너무 뜨거워서 들어가지 못하는데 많은 중년여성들이 불가마를 좋아하는 듯 하다.
불가마에서 막바로 나왔는가 웃통을 벗고 앉아 있는 여자들이 많다.
여자 목욕탕에서는 속옷을 파는 곳도 더러 있는데 이 공간에도 그런 곳이 있다.
속옷판매대의 윗쪽에 전기공사가 필요한 모양인지
아저씨 하나가 입구에서 뻘쭘거리다 전기공사를 하러 들어간다.
여자들은 등을 돌렸으나 옷을 입진 않았다.
그 모습이 낯설었다.
여성성 따위, 이제 모두 개나 줘버린 모습인가.
추하거나 아름답거나 하는 판단을 하진 못했다.
그저 자연스럽게, 그런 것들이,
성욕을 일으키는 가슴이 아니라 생명을 낳아 기른 어미의 젖이 된 늙어가는 여자들이
쳐진 젖가슴을 내놓고 땀을 식히고 있다.
이 곳은 마치 연옥의 어느 한 복도처럼.

3.

목욕탕으로 내려가 작은 노천탕에 앉아 쉼호흡을 한다.
보호자 명목으로 최근 병원을 하도 다녀서인가..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치고 피곤하다.
심장이 계속 벌렁거려 전신을 담그지 않는다.
복식호흡만 잘해도 몸이 많이 좋아진대..하던 말을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3.

벗은 몸의 사람들을 가만히 본다.
사람의 몸을 봐도 저 사람은 어딘가가 아프구나, 혹은 아팠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매우 건강하고
어떤 사람은 운동을 참 열심히 하는구나 싶다.
잘 발달된 정강이를 가진 여자,
눈썹과 아이라인에 문신을 한 여자,
가슴이 납작한 여자
출산후 군살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여자
보기에도 싱그러운 어린 여자
그리고

모두가 벌거벗어 똑같이 평등한 가운데서도
멋스럽게 커다란 집게핀으로 머리를 올리고
금색의 천을 허리에 두르고 걷고 있는 날렵한 40대 후반의 여자가 있다.
다 벗었어도 멋을 부리는 사람이 있구나.
저런 능력은,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 설령 본인의 컴플렉스의 발현이거나
삶의 즐거움이거나 그 어떤 것이라 하더라도, 그 어떤 가치라 하더라도.
그저 그럴 뿐이다.

4.

세신관리사, 혹은 목욕관리사라고 이제는 이름이 붙은 사람들이 있다.
한 때 우리는 그녀들을 때밀이아줌마라고 불렀다.
때밀이아줌마들은 검은 레이스로 된 속옷을 입는다.
구분을 하기 위해서다.
하루종일 젖은 몸, 축축한 곳에서, 아무리 레이스로 되었다 하더라도, 속옷을 입고 있는다는 건 에지간히 익숙해지기 전엔 곤욕스러운 일일 것이다.

점심시간이 다가온다.

가끔, 아니 가끔보다 조금 더 자주,
나는 전문가에게 내 몸을 맡긴다.
내 엄마도 이렇게 나를 샅샅이 씻겨주진 않았지.
그렇다고 무슨 모성따위를 기대하는 건 아니다.
그저 그녀들의 노동이, 매우 숭고하다는 생각을 한다.
돈과 노동을 교환하는 것이지만, 이다지도 쑥쓰럽고 부끄러운 일을 거침없이 해내는 노동이 세상에 또 어디에 있는가 늘 생각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내 삶이 너무 느슨해져 있기 때문인가.
아니, 늘 분주하나, 내 스스로의 성취감을 이룰 일들을 하지 않고 있어서인가.
그건 내가 누군가를 돌보는 보호자로서의 삶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밖에 없는, 환경때문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하려고 전투적으로 뛰어드는 내 열정이 부족해서인가.

문제는 내가 체력을 되찾지 못해서인가
혹은 내가 정신적으로 해이해져서인가.

얼마나 많이 버려야 하는가,
벗겨져 나가는 묵은 시커먼 때들처럼.
얼마나 많이 새로워져야 하는가
얼마나 다시 치열해져야 하는가.

과연 나는 오늘 이따위로 살아도 되는건가.

삶은, 치열해야 한다고 늘 생각해왔는데
왜 지금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팔다리가 잘려 항아리에 담기는 형벌을 받은 것처럼
나는 이렇게 무기력하게 시간에 쫒기고 길에 쫒기고 정신없이 휘몰아치는가.

생로병사의 한 가운데서
그 모든 것들을 목도해 내는 일은 쉽지 않다.

인정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다시 걸어야 할 길이 어디인지도
아직은 어렴풋할 뿐이다.

5.

갓 돌지난 어린아기가 탕속을 아장아장 걸으며 좋아한다.
한 손엔 뽀로로를 한 손엔 크롱인형을 들고 제 엄마에게 걸어갔다가
반대편으로 걸어갔다가 그저 그 걸음마 하나 하나가 즐겁다고 까르르 웃는다.

의도치 않게 눈물이 흘러 고개를 돌리고 안경을 벗는다.

나의 생명력이 어디선가 줄줄 새고 있는 것 같아
그래서 처연하다.

나는 아직 서른일곱밖에 안되었는데
너무 많이 걸어왔고
너무 많은 걸 알아버렸다.

그러면서도 내가 누군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래서 슬프고 고달프다.

2011. 11. 28.

황천의 개 – 후지와라 신야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492529

신야의 책은 처음이다.
제목이 맘에 들어 골랐다.
황천의 개라니 이렇게 냉소적일 수 있는가.

후지와라 신야가 <청년플레이보이>지에 실었던 에세이를 묶었다.
그는 아사하라쇼코라는 옴진리교 교주에 대한 탐색으로 시작하는데
그가 미나마타병의 희생자였다는 친형의 증언을 진즉에 얻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친형이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약자가 되었다는 입장을 고려해, 만코(쇼코의 형)가 죽은 다음에 글을 완성해 책을 묶어냈다.

뭔가 연결이 되지 않는 듯한 몇 편의 글이지만 그 중심은 같다.
후기산업사회에 아주 일찍 돌입한 일본의 오늘을 지배하는 철학(?)과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찾아야 할 것인지 그의 존재 자체가 말해준다.

젊을 때 떠났던 인도의 여행에서 얻어온 것들과 삶과 죽음, 진실과 허상에 대해 말하는 것은 마치 비슷한 시절 인도를 다녀온 후지와라 신야의 삶과 아사하라 쇼코의 삶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읽고 나서 퉁 – 하는 책이 있다.
이 책이 그런 책이다.

2011. 11. 27.

동주 – 구효서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7075895

구효서 장편소설
동주 
구효서 (지은이) | 자음과모음(이룸) | 2011-10-17

오랜만에 읽는 구효서의 책.
윤동주를 중심으로 하는 스펙타클 역사소설을 상상하면 곤란하다.

잃어버린 언어와 잊혀져 가는 언어 사이의 간극,
시인으로 말을 지킬 것인가 백성으로 땅을 지킬 것인가의 문제
그리고 그를 지켜보았던 한 사람의 매우 무미건조한 상황.

문체에 대한 새로운 시도를 했다고 여겨지는
참 오랜만에 만나는 구효서의 소설.

내 기억속의 구효서는 참 재미난 이야기꾼이었는데
오랜만에 만난 구효서는 그간 많은 변화를 겪은 듯 하다.



사모하지 않고는 같아질 수 없어요. 같아진다는 건 사모한다는 뜻  190


동주를 동주라 부르는 너는, 누구더냐 – 293


들판의 모든 꽃이 사쿠라가 돼버리면 세상에서는 꽃이란 것 자체가 없어지는 거란다 _ 298


사람을 죽여 땅을 차지한 지배는 인류 역사에 없어. 그것은 지배가 아니니까. 지배란 복종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아. 복종하지 않는다면 총을 들지 않고도 시와 조국을 지킬 수 있어_ 340


다만 너와 나는 시를 지켜야 한다는 거지. 너는 시인이니까. 그것이 우리의 약속이었어_ 340 


시가 꽃이라면 각각의 언어가 그대로 꽃이요, 시인은 꽃잎을 받치고 선 꽃대일진대 언어를 앗아 시를 유린함에 어찌 꽃대인들 저 홀로 생명이라며 하늘을 우러를 수 있을까. 꽃나무는 그렇게 하늘 아래 홀연히 꽃 피우고 서 있는 것으로 존재의 사명을 다하는 것일 터, 그걸 일컬어 감히 누가 미미하고 유약하다 할 것인가. 말을 앗기고 잃는 순간 저절로 생명이 소멸해버리는 시인의 운명이 어찌 가엽고 안타깝기만 할까.. _ 397

_ 그간 책에 대한 독후감을 잘 쓰지 않았는데
딱 이정도로 간단하게 매일 매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록을 남기지 않으니 머릿속에서도 쉽게 사라진다.

2011. 11. 26.

시골 큰집 – 신경림

이제 나는 시골 큰집이 싫어졌다.
장에 간 큰아버지는 좀체로 돌아오지 않고
감도 다 떨어진 감나무에는
어둡도록 가마귀가 날아와 운다.
대학을 나온 사촌형은 이 세상이 모두
싫어졌다 한다. 친구들에게서 온
편지를 뒤적이다 훌쩍 뛰쳐나가면
나는 안다 형은 또 마작으로
밤을 새우려는 게다. 닭장에는
지난봄에 팔아 없앤 닭 그 털만이 널려
을씨년스러운데 큰엄마는
또 큰형이 그리워지는 걸까. 그의
공부방이던 건넌방을 치우다가
벽에 박힌 그의 좌우명을 보고 운다.
우리는 가난하나 외롭지 않고, 우리는
무력하나 약하지 않다는 그
좌우명의 뜻을 나는 모른다. 지금 혹
그는 어느 딴 나라에서 살고 있을까.
조합빚이 되어 없어진 돼지 울 앞에는
국화꽃이 피어 싱그럽다 그것은
큰형이 심은 꽃. 새아줌마는
그것을 뽑아내고 그 자리에 화사한
코스모스라도 심고 싶다지만
남의 땅이 돼버린 논둑을 바라보며
짓무른 눈으로 한숨을 내쉬는 그
인자하던 할머니도 싫고
이제 나는 시골 큰집이 싫어졌다.

– 신경림 農舞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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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반대 시위가 한창인데 시나 지껄이고 있다고 시비걸꺼면 제발 언팔해주시기 바랍니다.

겨울밤- 신경림

우리는 협동조합 방앗간 뒷방에 모여
묵내기 화투를 치고
내일은 장날, 장꾼들은 왁자지껄
주막집 뜰에서 눈을 턴다.
들과 산은 온통 새하얗구나.눈은
펑펑 쏟아지는데
쌀값 비료값 얘기가 나오고
선생이 된 면장 딸 얘기가 나오고,
서울로 식모살이 간 분이는
아기를 뱄다더라. 어떡헐거나.
술에라도 취해볼거나. 술집 색시
싸구려 분 냄새라도 맡아볼거나.
우리의 슬픔을 아는 것은 우리뿐.
올해에는 닭이라도 쳐볼거나.
겨울밤은 길어 묵을 먹고.
술을 마시고 물세 시비를 하고
색시 젓갈 장단에 유행가를 부르고
이발소집 신랑을 다루러
보리밭을 질러가면 세상은 온통
하얗구나.눈이여 쌓여
지붕을 덮어다오 우리를 파묻어다오.
오종대 뒤에 치마를 둘러쓰고
숨은 저 계집애들한테
연애편지라도 띄워볼거나. 우리의
괴로움을 아는 것은 우리뿐.
올해에는 돼지라도 먹여볼거나.

– 신경림 시전집 1권 농무 / 16쪽 – 17쪽.

그 어느 꿈속에서

낯선나라에서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다 고현정을 만났다.
얼큰하게 취한 그녀와 낯선 이국의 거리를 헤매다 그녀가 나에게 전화번호가 적힌 인쇄된 명함을 주었다.
아마 중국이나 대만 어디쯤..
음주후였으나 운전을 해서 어딘가로 가야만 했다.
한 잔 더 할까 생각이 든 나는 고현정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ARS팬서비스였다.
그럼 그렇지… 나는 마음을 접었다.
붉은 색 나의 차에 홍콩이나 상해에 있는 연립주택 지하, 남의 집 철문옆에 묶여있는 나의 자전거를 풀어 차에 실었다. 그 건물의 1층에 묶여있던 나의 개를 풀었다. 운전을 하려는데 네이버에 다니는 후배가 남편과 나타나 술을 먹었으니 운전을 대신해주겠다 했다. 후배는 어린아이를 안고 있었고 갑자기 나에게도 강보에 싸인 어린아이가 생겼다. 아이를 뒷좌석에 앉히고 후배와 내가 뒷좌석에 비좁게 앉았다. 주인을 잃은 듯 귀를 붙이고 떨던 개를 불러 트렁크에 넣었다.
후배의 신랑이 운전을 시작했다.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그 집이, 지금 나의 집인지, 엄마의 집인지, 우리의 나라인지 알 수 없었다.

FTA, 조약 날치기, 포털의 조작, 삼성.
오직 나만의 것들을 지키려던 혈혈단신.
그런 것들이 반영되었다.
깨고 나니 밤 12시 28분이었다.

무엇을 하였는가

세종 이도가 소이에게 말했다
그러는 너는 네 인생에 대해서 무엇을 하였느냐
네가 이따우로 살고 있는 게 모두 내 탓이냐

나도 누군가에게 그랬다.
너 때문이라고
당신 때문이라고

그러면서 묻는다
나는 내 인생에 얼마나 많은 것을 해주었는가.

생각해보면,
참 많은 것을 하였다.
참으로 많은 것을 시도하였고 좌절하였고 노력하였다.
진실로 그러하다.

그런데 나는 지금
또 다시 원점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원망하는
그 원점이다.

겨울이다

내가 한 번 일어섰던 그 겨울
다시 붙잡고 일어서야 할 겨울이 온다.

2011. 11. 17.

블랙박스

대형전시회 그 중 현대작을 소개하는 곳에 가면
어둡게 칸막이가 막혀있고
비디오 작품을 상영하는 곳이 있다.
완벽한 어둠을 만들어 내지는 못하지만
어둠에 가까우려고 노력한 그 곳에서

멍하니 몇 분간의 비디오물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예전에 삼성 리움미술관에서 24시간동안 상영을 하는 24시간짜리 Time 이라는 작품을 다 보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남는다.

어둠과 가까운 이 곳은 집중이 잘 되어,
마음속의 모든 상념을 떨치고
작가가 하는 말만을 들을 수 있다.

오늘 갔던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한.호주 현대작가 전시회 TELL ME TELL ME
에서 이름을 적어오지 않은,
호주 작가의 존재..운운 했던 비디오물이 인상깊었는데
사실 그 미디어의 예술성 보다는
그 아래 흘러가는 자막 때문이었을 것이다.

문자에 익숙한 나는 문자와 그림이 동시에 진행되는 경우
그림에 전혀 몰입하지 못하고
모든 신경을 문자에 쏟곤 하는데
아무튼,
벗어나라 어쩌고..하다가 From YOU 라는 글자가 크게 나와서.

그래서.
그래서 그랬던 모양이다.

tell me tell me 전시회는 별로였다.
도록은 4만원이 넘고.
뭔가 .. 일관성이 있을라다가 말아서.
차라리 아예 아무 공통점이 없었다면 모를까.

그래도,
그 비디오가 상영되는 그 공간.
거기가 있어서 좋은 것.

이해의 과정

오전,
휴대폰을 급하게 열어 메모장을 폈다.

“이해하고자 하지 않으면 세계는 고립된다.”

이 말을 적은 이유는, 오늘 아침 갔던 11시 콘서트에서 옆자리에 앉은 아주머니들이 쉬는 시간에 서울대 김은혜 교수 얘기를 하면서 어디 선생을 고발하느냐.. 는 투의 이야기를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들은 김교수의 인권유린적인 행위에 대해서도 대충 알고 있는 듯 했지만 그녀들의 논점은 김교수의 행위보다 선생을 고발하고 신고할 수 있는 사회분위기에 대해서 적잖이 충격을 받고 있는 듯 했다. 아마 그녀들은 우리 때는 더 했는데 아무 말도 못하고 살았지 뭐.. 우리는 순진했던 거야. 여기서 사고가 끝날 것 같았다.
사유가 거기서 끝나버리면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왜 그런 일이 생겼는가. 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해야 철학이 시작되고 사유가 시작되고 세계를 이해하고 세상을 보는 관점이 만들어 지기 시작한다.

박경철의 “자기 혁명”에 낯선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사유라는 말이 나온다.
뭔가 생경한 것, 낯선 것, 익숙치 않은 것에서 사고가 시작된다.
사유를 끊어버리는 것은 바로 사유하는 자의 뇌다.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은 원죄론적 인간형이다.
세상은 다 그런 것이고 나는 언제나 당하고 살았으며 적당히 체념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에 익숙해진 인생이다.

살다 보면, 많이들 그렇게 된다.
먹고 살기 지쳐서, 세상 풍파에 내 식구를 감싸기 바빠서.
그러나 아주 쉽게 말하면, 부지런하지 않아서이다.
머리를 열심히 쓸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해하지 않으면 세상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늘어간다.
다른 세대를, 다른 인생을 이해하지 못하면 나는 나의 세계 안에서 은둔하게 된다.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야 이해하고자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은 善에서 시작된다.
누군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의 행위가 나의 가치관을 무너뜨릴 위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를 이해해 버리면 나의 가치관과 신념이 무너지고 그로 인해 자존감이 손상될 것 같을 때,
나의 선택에 의심을 하게 되고 그리하여 나의 자부심이 무너질 것 같을 때, 우리는 이해하려는 노력을 거두게 된다.

아주 쉽게 말해 이런 것이다.
“나”는 아이폰이 좋다. 그리하여 아이폰을 구입한 나의 선택에 자긍심을 가지고 싶다. 내 판단이 옳았다고 해야,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지불한 것에 대해서 나 자신을 쉽게 설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가격이 비싸다고 한 그 누군가가 있다면 그에게 충분히 설명할 구실이 필요하다. 아이폰의 우수성과 애플의 철학과 애플이 세상을 바꿀 것이며, 이제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가 시대의 영웅이 되어 주면 설득력은 더욱 큰 힘을 가진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누군가 나의 아이폰에 대해서 반격을 가했을 때, 그리고 그가 만일 삼성이나 LG의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너는 나보다 못한 결정을 했기 때문에 너는 바보이고, 너는 멍청하고 내가 너보다 우수하다. 라는 논리를 갖추고 싶은 욕망이 일어난다.
모든 인간은 힘을 추구한다. 타인과 비교하여 우월한 지위, 그것은 사회적이든 감정적이든 상관없다. 모든 인간은 그저 힘을 향해 내달린다. 그건 동물적 본능이다. 힘에 대한 욕구를 폄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건 정당한 것이다. 그러나 그 표현 방식은 각자 인격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오늘 있었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어버이연합의 모욕적인 관 퍼포먼스도 그런 맥락이다.

http://www.vop.co.kr/A00000447906.html

이 자들은 자기들의 가치관을 관철하기 위하여 상대방을 깔아뭉개는 방식을 택했다.
구석에 몰린 쥐는 물게 되어 있다. 이들은 구석에 몰렸다고 “느끼는” 것이다.
아무도 납득해주지 않으나 그들은 그들만의 가치관이 있고 그들만의 세계가 있고 세상이 그것을 알아주길 바란다. 그리하여 힘을 과시하고 싶다. 그들을 조정하는 자가 그 누구이건 간에, 이미 힘이 빠져버린 “노인”으로 폄하되는 그들은 여기에 동참했고 행동했다.

일단 그들은 자신들의 광기를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에게 이 퍼포먼스를 제안한 자는 선동하는 데 성공했다. 적어도 그 집단 내에서는 그렇다.

만일 내가 이들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물론 그들의 행위는 역사적으로 논리적으로 규명이 가능한 과정을 거쳐 발전하였으나, 사고의 발전과정에서 일반화라는 가장 흔한 오류와 사물을 정확히 관찰하고 物과 思의 관념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오류를 범하였다.
이들의 오류는 인간의 능력을 폄하하는 것이며 인간의 사고력을 비하하는 것이므로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이들은 빨간 모자를 쓰고 군복을 입고 갈쿠리 손을 휘두르던 상이군인회, 재향군인회를 연상케 한다. 이들 중엔 간혹 그런 복장을 고수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집단엔 그 옛날 전쟁에 나가 희생을 하고도 국가에게 정당한 댓가를 받지 못한 것이 억울한 인원들도 중복되어 있을 것이다.

국가는 그들의 원한과 희생에 대한 댓가를 돌려주지 못했고 이들은 끊임없이 분노했다. 이들이 두려운 것은 “내가 팔다리를 희생하며 빨갱이와 싸워 지켜온 이 나라”를 다시 빨갱이에게 갖다 바치려는 세력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믿음”이다. 그 믿음은 이들의 공포에서 시작한다. 내 삶을 다시 전복시키는 공포, 내 팔과 다리를 다시 내바쳐야 할 지도 모르는 공포, 혹은 내 자식을 전쟁터에 내보내 자식잃은 어버이가 될 지도 모르는 그 공포.
철저한 반공교육으로 평생을 지배당한 이들에게 국가는 아무 것도 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누군가 그들을 규합하고 달래고 높이 치하하고 그들에게 일거리를 주었다.
분노하고 궐기하고 반대하고 버스를 타고 부산 영도에 가서 경찰과 비슷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이들은 분기탱천하여 일어날 수 있는 요소가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다.

논리적 이해와 감성적 이해는 다르다.
논리적 이해는 이성적 분석이 동반되지만 감성적 이해는 행위의 용납과 허용까지 포함한다.

내가 만일 이 행위를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더 나아가 감성적 이해까지 하게 된다면.

내가 믿고 있던 유교적 윤리관 – 망자에 대한 예의부터 시작해,
노무현이 가져다 주었던 희망과 열망, 청문회에서 명패를 집어던졌을 때의 카타르시스, 저 사람이라면 세상을 바꿔줄 수 있을 것이다 하던 기대감, 그리고 그를 선택하고 지지함으로써 내가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이루어내는 데 작으나마 힘이 되었다는 자부심, 군부와 독재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고 마음껏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지켜야 한다는 가치관과 상충한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와 꿈꾸고 있는 국가에 대한 기대 사이에서 심각할 정도로 깊은 괴리감을 느껴 가치관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그 절정기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속한 관념의 집단은 그들을 배척하고 저주하여 나의 신념과 가치관을 지키고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지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들을 이해하는 것은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왜 그들이 저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었는가와 그렇다면 저들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서 멈추면 된다. 그들은 인간이 갖춘 이성적인 모든 명예와 숭고함을 쥐똥처럼 던져버렸다.

그리고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그들에 대한 인간적 연민의 여지는 남겨두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을 설득하고 변화시킬 수 있고 그들을 바라보는 다른 이들에게 무엇이 정도인가 알릴 수 있다.

너도 옳고 나도 옳다는 너의 처지에선 그럴만 하다, 나의 처지에선 이럴만 하다. 라는 뜻이지, 너의 주장도 옳고 그에 상치되는 나의 주장도 옳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은 다른 주장을 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그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타인의 신체를 훼손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욕을 하며 싸울 수 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만방에 떨치듯이, 이미 고인이 되어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을 다시 이 똥밭같은 세상에 끌어내려와 짖이기고 못박을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2011. 11. 10.

2013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일
김진숙 지도위원 한진중공업 고공크레인 309일째 농성이 끝난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