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일요일과 월요일, 1박 2일로 봄이 오기 전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남편과 강원도를 자주 가는 편이다. 분기에 한 번은 가게 된다. 동해바다의 역동적인 파도를 좋아한다. 주로 동해안 해안도로를 따라 속초-강릉-동해시를 넘나들다가 온다. 이번에는 오래 안 찾은 고성으로 방향을 잡았다. 속초와 가깝고 바다가 보이는 숙소를 잡았다. 숙소의 바다경치는 끝내줬지만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설마 4층짜리 숙박시설에 엘리베이터가 없겠어?’ 생각한 게 패착이었다. 나는 관절염을 앓은지 15년이 넘었다.
지방 여행을 다니다보면 아주 흥하는 몇 개 도시 외에는 저녁 8시 이후에 밥 사먹기도 힘든 곳이 많다. 고성도 비수기라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도 인근에 대학도 있고 편의점도 둘이나 있었다. 해산물 파는 집은 활어회센터에 집중된 것으로 보였다. 거리에는 온통 육고기를 재료로 하는 식당들 뿐이었다. 남편과 걸어서 활어회센터에 갔다. 관절염환자여도 여행을 하면 보통때보다 더 걸으려고 애를 쓴다. 회센터에는 몇몇의 손님들이 횟감을 고르고 있었다. 여기도 1층에서 활어를 골라 회를 떠주면 2층에 올라가 먹는 식이다.
1층에서 어느 집에 뭐가 있나 보고 있는데 상인이 뭘 찾느냐고 묻는다. 뭐가 좋냐고 반문했다. 그날 들어오는 배가 뭘 갖고 왔느냐에 따라 추천할 횟감이 있을 수 있으니 보통 오늘 뭐가 좋냐고 묻는다. 상인은 가격을 먼저 말하지 않고 어종을 먼저 이야기했다. 남편과 나는 2017년부터 집중적으로 바닷가를 다니며 매번 회센터에서 회를 사 먹었는데 가격 먼저 말하지 않고 어종 먼저 말하는 경우엔 부르는 게 값이다. 사람 보고 값을 부르는 느낌이라는 뜻이다.
상인의 답을 기다렸더니 광어와 밀치 정도를 얘기하며 15만 원을 달라고 한다. 스끼다시도 많이 주고 여기는 ‘초장집이 아니라 횟집이다’라고 한다. 초장집은 스끼다시라고 부르는 전채음식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상추, 간장, 초고추장까지 모두 1-2천 원을 주고 사는 식이다. 우리가 보통 회센터에서 먹던 값이 있어서 너무 비싸다 하고 옆의 옆집으로 갔다. 그랬더니 비슷한 어종을 말하고 이번엔 12만 원을 부른다. 나는 숨도 쉬지 않고 남편을 잡아끌고 나와서 카카오택시를 불러 가까운 속초의 A항으로 갔다.
A항은 워낙 자주 가서 노련해졌달까. 넷이 가면 8만원~12만원, 둘이 5만원~8만원 선에 서너마리를 받게 된다. 우리가 지난 번에 갔던 집이 좋았던 거 같다며 남편이 해당 호수 앞에 섰다. 회센터 1층은 이름도 붙어있지만 호수도 붙어 있다. 남편이 그 호수의 주인을 찾으니 자리를 비웠다면서 옆 상인이 조금 기다리라고 한다. 우리에게 대꾸를 해준 상인에게 괜히 미안해져서 “꼭 여기서 안 사도 돼요.”라고 했지만 “기다리면 더 많이 준다”며 기다리라고 한다. 옆집 상인이 안쪽으로 들어가 주인을 찾았지만 답이 없다. 옆 호 상인은 “주인도 없으니까 내가 그냥 막 퍼줘야겠다.”라며 몇 가지 어종을 추천하고 너댓마리를 후루룩 담고는 멍게와 새우도 두어개 줬다. 회뜨는 곳으로 움직이며 한 마리를 더 부어줬다.
옆 호 상인은 우리에게 “내가 팔아도 되지만 그러면 마음이 불편하니 찾아온 데서 사 드시라.”한다. 나는 “담엔 사장님한테 올께요.”했는데 “마음만 받아도 고맙다.”고 한다.
앞서 갔던 고성의 B항은 속초의 A항에 비해 손님이 적었다. 우리도 A항이 훨씬 더 익숙했다. 상인들이 사람 보고 가격을 부른다고 치자. 그 판단은 불과 5초 이내에 하게 될거다. 몇 초 안에 사람을 파악하고 가격을 부르는 게 사실일까. 상인들에게 직접 묻지 않았으니 알 수 없다. 허나, 분명히 같은 어종에 항구마다 다른 가격인 건 맞다. 나의 말투에 따라 가격이 달라질 때도 있다. 꼭 사람에 따라서는 아니라고 본다. 사람이 많고 장사가 잘 되는 곳, 예를 들어 통영의 활어시장 같은 곳은 기본가격대가 저가에 형성되어 있다. 지도앱의 후기도 천차만별이다. 별점 1점부터 5점까지. 리뷰를 쓴 사람들이 사진을 올리기도 하는데 3만원에 둘이 배터지게 먹었다는 얘기부터 15만원 냈는데 먹을 게 없다는 등, 극과 극이다. 리뷰는 얼마나 주관적인가. 아무 것도 믿을 수가 없다. 쓰는 이의 행간에서 어떤 ‘감’을 잡아내야 한다.
회는 풍성했고 맛도 좋았다. 흥성흥성한 회센터 2층의 분위기도 좋았다. 속초는 언제부턴가 늘 밤늦게까지 손님이 많다. 나는 회를 씹으며 불편해졌다.
남편이 B항에서 바가지 쓸 뻔 했다는 이야기를 하길래 나는 “손님이 없어서 그랬을지도 몰라.”라고 얘기하며 종이컵에 맥주를 따랐다.
우리처럼 회센터에 자주 가는 사람들, 바닷가 출신이고 한때 바다낚시를 즐기던 남편과 횟감을 고를 때 편안하다. 나는 물고기를 잘 모르고 최근 들어 처음 먹어본 것도 많다. 주변 지인들도 회센터에 갈 때는 ‘물고기를 잘 아는 사람’과 같이 가는 걸 선호한다. 내륙도시에서만 산 사람들은 고기 종류도 구분을 잘 못하므로 파는 사람이 그렇다 하면 그런 셈이다.
왜 가격이 다른지는 알지 못하겠다. 시장이라고 모두 가격이 동일할 필요도 없지 않나. 나는 여기서 ‘물고기를 구분할 줄 알고 흥정을 잘 하는 사람’에게 유리한 구조가 마뜩치 않았다. 왜 여기서도 능력이 필요한가.
청담동의 회는 비싸도 되고 강원도의 회는 싼 게 마땅한가? 그것도 이상하다. 평생 살며 바다 한 번 못 보고 생을 마칠 수도 있다. 과거에는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러다 인생에 어떤 일이 생겨 처음으로 바닷가 회센터에서 회를 골라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남들과 같은 횟감을 고르고 더 비싼 값을 치른 사람은 ‘어리숙해서 당했다’는 핀잔을 듣는다. 왜 어리숙하면 억울한 일을 당해야 할까. 내 기억에 한국사람들은 ‘어리숙해서 당한 것’에 대해서 그 어리숙한 사람을 비웃거나 핀잔을 주는 게 우선이고, 그를 속여먹었거나 바가지를 씌운 사람에게 분노하는 건 나중의 일이었다. 물고기를 구분하지 못하는 게 잘못인가? 흥정을 잘 하지 못하는 게 잘못일까? 물건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사는 사람이 물건에 관해서 파악하고 있어야 할까? 회센터는 아는 사람들만 즐길 수 있는 시장일지도 모르겠다.
오래 전 가격 정찰제가 자리잡으면서 편리하게 느껴진 건 바로 이런 이유였다. 물건에 대해서 잘 몰라도 되고, 흥정하려고 기싸움을 하지 않아도 되고. 구매자가 판매자를 이겨먹을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고 본다. 승부는 정해져 있는 싸움이다. 인간은 간혹 이런 경쟁과 싸움, 소소한 분쟁으로 성장한다. 일종의 게임처럼, 규칙을 정하거나 그 규칙을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서로 각축을 벌이는 건 건강한 자극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리숙한 사람이 억울해지는 게임은 별로 달갑지 않다. 회를 먹으며 지도 앱에 달려있는 억울해진 사람들의 리뷰를 본다. 가족들과의 모처럼 나들이를 망쳤다는 분노를 읽으며 이 나라는 살기가 빡세다는 생각만 했다.
사진은 : 속초에서 그날 먹은 횟감. 5만원.
#로컬_어디까지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