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수리장애인종합복지관 발달장애청년 생애사쓰기 네 번째 시간.

문장을 완성하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간극을 줄이고 더 가깝고 촘촘하게 이야기를 붙여내는 것도 쉽지 않다.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다.

떠오르는 낱말과 낱말 사이을 이어붙이는 일, 그렇게 해서 만든 하나의 문장과 그 다음의 문장을 연결짓는 일.

이미 세 번의 글쓰기 시간을 마쳤다. 학생들은 단어와 단어를 나열하고 그 사이에 조사를 넣거나 서술어로 끝맺으며 짧은 이야기들을 만들었다. 나는 그 사이에 부사를 넣었다. 질문을 다시 던지면 한 줄을 더 쓸 수 있었다.

오늘은 “내가 가장 행복했을 때”와, “내가 가장 슬펐을 때”에 대해서 적어보기로 했다. 수행능력이 높아서 한 시간동안 두 개의 주제로 서너줄짜리의 글을 쓸 수 있다.

행복했을 때를 쓸 때 누구와 함께 있었는지, 눈앞에 뭐가 보였는지, 날씨는 어땠는지, 내 얼굴에 쏟아지는 빛은 어느 정도였는지, 어떤 소리가 들렸는지를 적어보게 했다. 모두들 질문에 답하는 형태로 하나씩 하나씩 글자를 눌러적었다.

행복한 기억을 발표한 뒤 슬펐을 때를 적어보자고 하자 수빈이(가명) 중학교때 자기를 놀렸던 남학생의 이름을 적고 나에게 물었다. 수빈은 지적장애가 있는데 잘 설명하면 하나씩 하나씩 잘 따라오는 학생이다. 운동도 열심히 한다.

“선생님, 저 이런 얘기 써도 되요? 저 슬프게 한 아이요.”

“네. 써도 되죠.”

수빈은 중학교때, 고등학교때 자기를 괴롭힌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적었다. 중학교 3학년때 누구, 고등학교 1학년때 누구, 고등학교 2학년때 누구. 아이들의 이름 옆에 괄호를 치고 고1, 고2, 중2라고 적었다.

“얘는요! 입 튀어나왔다고 못생겼다고 했어요.” 그 얘기를 듣자 웃음이 터졌다. 나는 수빈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한국사람은 다 입이 튀어나와있어요. 수빈씨.”

“정말요?”

“그럼. 선생님도 입이 좀 나와있어요.”

“그리고 얘하고 얘는요. 나보고 춤춰보라고 하면서 막 웃었어요.”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지자 뒤통수가 싸늘해졌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너희 나한테 그러는 거 아니야! 라고 했어요.”

“잘했네요.”

“그리고 얘는요, 저한테요. ‘이 장애인새끼가!’ 라고 했어요.”

“헐. 그래서 수빈 씨는 뭐라고 그랬어요?”

“그냥 무시했어요.”

“잘 했어요.”

“얘는 장애인 아니거든요. 얘는 일반인이거든요.”

“수빈 씨. 일반인 아니고, 비장애인. 비장애인이라고 해요.”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비장애인.”

“수빈 씨는 본인이 장애인이라고 생각해요?”

“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장애가 심하지 않거든요.”

“네 그래요. 장애인을 놀려서도 안되고 비장애인을 놀려서도 안되죠. 나쁜 아이들이네요.”

수빈 씨가 초중고등학교때 앨범찍어놓은 사진을 휴대폰에서 찾아 보여주면서 이 앨범들을 모두 다 버렸다고 했다. 그 말을 하면서 숨이 빨라지길래 같이 쉼호흡을 했다.

“예전에 제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해서요. 아빠가 한의원에 데리고 갔는데요. 한의사 선생님이 숨을 쉬라고 했어요. 쉼호흡하라고.”

“네 좋은 방법이예요.”

수빈은 학창시절 자기를 괴롭힌 아이들 이름을 모두 적었다. 그리고 그들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하나씩 다 적었다. 나는 수빈씨에게 앞으로도 화가 나면 글로 적어보라고 권했다.

이어서 각자 화가 났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은지 발표했다. 학생들은 노래를 듣는다, 노래를 한다, 게임을 한다, 밥을 먹는다, 잠을 잔다, 메니큐어를 바른다, 치킨을 먹는다, 꽃에 물을 준다, 쉼호흡을 한다라고 적었다. 물건을 던지거나 술을 마시거나 소리를 지른다고 적은 사람은 없었다. 장애인으로 분류되어 살아가는 청년들은 어려서부터 여러 가지 행동교정 훈련을 받았을 것이다. 술을 마시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욕을 하는 건 아무도 가르치지 않으니까.

국가가 장애를 분류하고 구분짓고 선을 그어두었다면 그에 대한 차별도 장애등급 심사만큼이나 엄격하게 금지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2018년, 2019년에 걸쳐 진행한 발달장애청년생애사쓰기 수업을 코로나2년 휴식 이후에 재개했습니다. 좋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초대해 준 수리복지관관계자들께 감사드립니다.

스물 한 살과의 대화 1.

큰 아이와 몇 시간에 걸쳐 띄엄띄엄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의 고민은 과를 바꾸는 것인데 그 바닥에는 취업과 진로에 대한 고민이 있다. 나는 대학 4년간 해야 할 일은 가장 넓게 보고 넓게 경험하는 일이라 생각해왔고 아이에게도 그러길 바란다고 권해왔다.

직장들어가 승진하는 게
인생의 목표가 아니라면 어쨌거나 즐겁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게 우선이고 전공과 먹고 사는 문제는 연관이 없지도 있지도 않은 개인의 그 때 그 때의 사정에 달려 있으니 취업을 우선시 해서 결정하지 않길 바란다 했다.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으나 지금 20대들의 상황은 생각보다 매우 나쁘다. 스펙 좋은 아이들은 특정 계층에 몰려 있고 어차피 내 새끼들은 그 계층과 승부를 볼 수 없으며 그런 일로 스트레스 받길 원하지도 않는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예측불허인 일들은 산처럼 몰려올테니 그저 한 순간 한 순간 즐거울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겠느냐 했다.
덧붙여, 이 글로벌한 세상에 이 나라가 어떻게 될 지도 모르고 인공재해로 인해 한 나라가 작살나는 경우도 많은 위험시대에서는 어느 나라에 가서도 먹고 살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 정말 좋겠다고 했다.
예를 들어, 네가 낯선 도시에 여행을 갔다가 돈이 떨어져 한 끼 식사를 벌어먹을 수 있는 거리에서 펼칠 수 있는 재주 같은 건 꼭 키웠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다.

아이가 물었다.

“엄마때는 우리보다 상황이 좋지 않았어요? 취업도 잘 되고?”

“좋았다고 할 수 없지만 너희보다야 나았지. 우리는 먹고 사는 문제를 그렇게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어. 그냥 잘 될 거라고 생각했지. 그러다 다들..
대학 졸업하고 취업이 되었다가 모두 취소통보를 받았지. 네 아빠도 ㅎ대기업에 취업이 됐다가 취소당했다 하지 않더냐.
그 전조증상 같은 것도 있었어. 고 3때 한 달에 한 분씩, 친구들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거야. 자살은 없었어. 심근경색, 뇌졸중, 간경화 뭐 그런 스트레스성으로 줄초상이 이어지는데… 굿 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했었어.

뭐 취업할라니까 IMF터져서.. 다들 공짜로 일하고 전문 자격증 따고 그랬어. 엄마는 닥치는 대로 아무거나 하고 살아서, 잘 몰라. 너 같은 고민을 해 본적이 없다.”

취업고민 해 본 적 없다. 그래서 늘 비정규직이라는 단어가 있지도 않은 시절에 비정규직으로 떠돌았고 퇴직금으로 스타킹 한 박스 받아본 적 없다. 그래도 먹고 살 수 있었다. 내가 뛰는 만큼 스물 한 두살에도 잠을 줄이면 몇 백씩 벌기도 했으니까.

지금은 아니다.
지금 아이들은 벽이 점점 좁아지는 큐브속에서 두려움에 떨고만 있다.

어차피 옛사람들이 말하는 입신양명 못할 거,
그저 즐겁고 행복하길 바랄 뿐.

2015. 1. 12.

새마을운동을 부르는 시대

1.
아이가 보는 마인크래프트 게임중계 유투브 영상이다. 양띵의 마인크래프트에 나오는 장면.

마인크래프트는 정육면체 블록을 이용해서 기본적으로 집을 짓고 양식을 구하는 등 생존을 시작하고 발전하면 마을과 도시를 만들거나 여러가지 모드를 사용해서 다양한 세계를 구축하는 게임.

최근 초딩들에게 각광받는 게임이며 일부 학교에서는 방과후 컴퓨터수업에도 활용한다. 정육면체를 이용해 공간활용에 대한 학습이 가능하다.

그 일선엔 아프리카티비에서 게임중계를 한 양띵이라는 게임중계자가 있다.
양띵은 미소와 옴므 등과 함께 양띵크루를 만들어 합동으로 진행을 하고 있는데 지난 해 양띵은 유투브 한국인 크레에이터중 최고 조회수를 기록했으며 지금은 CJ E&J와 계약을 체결해 앱을 출시했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양띵의 이런 행보를 눈여겨 보고 있었는데 이 처자는 1990년생으로 2007년부터 아프리카티비 BJ로 활동을 했다고 한다.

뒤져보니 얼마 전 “민주화” 발언을 해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하는데 그에 대해서도 적극 사과를 했단다.

아이가 유투브로 양띵 방송을 볼 때 나도 옆에서 가끔 지켜보는 편이다. 욕설도 나오고 편안하니 초딩부터 청년층까지 재미있게 볼 만한 컨텐츠를 생산하는 건 분명하다.

욕설에 대해서는 나는 매우 관대한 편이며, 영어 섞어쓰는 보그병신체보다는 욕설이 낫다고 생각하는 편. 또한, 방송에서도 불현듯 욕이 튀어나왔다가 자제합시다~ 같은 말도 이어지기 때문에 금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어제 본 방송에 새마을농사 미션이 있었는데 플레이어 (마인크래프트는 게임하는 사람의 시각에서 화면이 움직인다)가 새마을 모자를 쓰고 있었다.

우연히 지나치다 이 장면을 봤고 아이에게 이게 뭐냐고 물으니 새마을농사를 짓는거라고 대답했다.

2.
새마을운동은 박정희시대에서 큰 비중을 가져온 일이며 그 평가는 여러 갈래다.

나는 (김영미 저 / 푸른역사 펴냄)을 매우 인상적으로 읽었고 그 책에 이어 새마을노래를 벨소리로 하고 다니는 골수 새마을키드 한 분을 인터뷰 한 적이 있다. 박근혜정부가 새마을운동을 부활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에 대해 알레르기가 일어나지만 새마을운동을 단순히 박정희 독재의 상징으로 바라봐도 되는지 궁금하다. 참여한 국민들이 있었고 저항보다 동원에 적극적이었어야 했던 가난이 있었다.

박정희가 그렇게 오랫동안 독재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시대상이라고 본다.
4.19를 주도했던 세력들은 대체 어디서 뭘 했고 당시 국민들은 뭘 했길래 소장이 쿠테타를 일으키고 18년동안 독재를 하게 내버려뒀는가. 이미 이건 역사가 되어버렸다.

내가 느끼는 문제는, 복고와 보수주의가 같이 오면서 우경화가 그 바닥에 깔어 있다는 것이다.
공안정국, 조작질은 이 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듯하고 우경화도 전세계적으로 전방위에서 진행되고 있다.

내가 보는 것은 현상이다.

인기절정의 개그콘서트에서 일베의 용어를 거침없이 사용하고, 여성비하, 외모비하가 공중파를 타며 일반화 되는 오늘, 일베의 용어를 쓰면 개망나니가 되고 호로자식이 되며 일베는 일베가 아닌 사람들을 비하하고 공격하길 즐긴다. 오유나 다음까페의 커뮤니티에서는 페이스북 유저들을 꺼려하고 페이스북 골수유저들은 오유와 다음까페를 무시하는 이 요상한 현상.

서로간의 교차하는 컨텐츠를 가지고 싸우거나 타 집단의 용어를 사용한 것에 대해 거침없이 비난을 해도 되는 이 분위기.

70년대를 불러내고 정신승리를 부르짖는 이 분위기. 모 논객이 토 나온다고 했던 바로 그 분위기. 그 현상을 보는 거다.

나는 이 나라의 젊은이가 누군가의 지시를 받거나 정신적 세뇌를 받아 움직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대인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돈이 전부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 외롭고 우울하고 처참한 세상에서 현대인을 움직이는 건 “멋져 보이는, 좋아 보이는,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겐 새마을운동이 아름답고 숭고한 일로 보일 수 있다. 그 말은 새마을운동을 대체할 다른 역사적 컨텐츠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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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없는 세상 – 그들의 눈동자

내가 상하이에서 학부를 다닌 화동사범대학은 말 그대로 사범대학인지라 국가에서 적극(?) 지원하고 졸업한 아이들의 취업이 모두 보장되어 있으며 등록금도 타 학교에 비해서 저렴한 학교였다. 상하이에는 명문이라 불리는 복단(FUDAN)대학교와 각 단과대학이 잘 되는 몇 개 대학이 있었는데, 이과쪽은 교통대(JIATONG), 건축은 동제대(TONGJI) 외에도 상해외대나 상해대학교등이 있었다. (대학이름은 한국식 한자 독음으로 표기함)

화동사대는 캠퍼스가 예쁘기로 유명했다. 애초에는 복단대에서 학부를 하려고 갔으나 복단대에 한국학생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모양새를 보고 학부를 옮기기로 했다. 내가 처음 갔던 2001년도 2월에 복단대의 한국유학생은 200명이었는데 그 가을학기에 400명이 되더니 2002년도 2월에는 한국학생만 2000명이 등록을 했다. 언어연수생에 국한한 숫자였다. 김정일이 2000년에 상하이를 다녀간 뒤 천지가 개벽했다고 선언한 후 한국에서 상하이 바람이 미친 듯이 불어 급격하게 한인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학부지만 나는 나름대로 한국에서 공부를 좀 하다 온 애들이 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24세 미만이었다. 나는 당시 스물 일곱이었으니, 내 위로는 주재원으로 왔다가 한 학기 정도 어학연수를 하려고 쉬는 아저씨들 외엔 몇 명 없었다. 학부를 하겠다고 온 내 또래도 당연히 없었다.

복단대는 중국 본토의 양자강 이남의 수재들이 모이는 곳이다. 학구열도 괜찮았으나 유학생이 과하게 몰리다 분리정책을 썼다. 대신 화동사범대학은 그렇게 많은 유학생이 몰리지 않아 분리하고 말 것도 없었다. 중문학부 한어언문학과 (중국어는 소수민족의 언어까지 통틀어 말하기 때문에 한어언문학부는 漢字로 된 문학만을 말한다)에 전무후무한 한국유학생이 있었으니 그게, 나와 나보다 다섯 살 어리던 박모씨. 우리 둘 뿐이었다.

화동사범대는 국가정책대학이라 전국에서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타 학교보다 싼 학비와 기숙사 지원금등이 관건이 되었다. 다들 시골마을에서 플랜카드 하나씩 걸고 온 애들이라고 보면 된다. 양자강 이남 사람들은 체격이 작은 편인데 아이들이 어찌나 고만고만한지, 나이도 어렸지만 중학생처럼 보이기도 했다. 가장 어린애는 열 일곱짜리도 있었다. 월반에 월반을 거듭한, 말하자면 그 고장에서는 대단한 수재였던 아이라는 거다. 중국내에서도 가난하기로 소문한 안휘성 아이들이 많았고 소수민족 아이들도 몇 있었으며 1학년 교실엔 그야말로 땟구정물이 줄줄 흐르는 코흘리개 같은 분위기였다. 상하이 현지에서 우리 과에 들어온 아이는 극소수였다. 혼자 뽀얀 얼굴에 배낭이 아닌 가죽가방을 메고 다니는 나에게 어디서 샀냐고 물어보곤 하는 아이가 상하이 아이였다. 유학생을 제외하고는 일괄적으로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는데 기숙사는 8인실이었다. 2층짜리 침대를 벽에 붙여 두 개씩 놓으면 꽉 차는 방. 겨울엔 난방이 되지 않았고 온수공급도 되지 않았다. 아이들은 붉은 보온물통에 뜨거운 물을 받아다가 차가운 욕실에서 머리를 감았다. 11시인가 12시쯤 되면 기숙사에 전기는 차단되어 시험기간을 앞두고 한 달 정도는 강의실을 밤새 열어주었다. 아이들은 기숙사에서 나와 밤새 차가운 강의실에서 공부를 했다.

그 학교에서 아이들과 지내며, 나는 언제나 동동 떠 있는 섬같았다. 내가 당시 썼던 생활비는 한 달에 한국돈으로 35만원 정도였는데 그 정도면 충분히 먹고 술도 마실 수 있는 돈이었다. 가끔 스타벅스에 가서 하루종일 진치고 공부를 하다 올 수도 있었다. 외국인 유학생이라고 알바생이 시음음료도 잘 갖다줬다. 대신 내 동무들은 내복을 사느냐 휴대폰을 장만하느냐를 가지고 고민해야 했고 내가 쓰는 돈의 3분의 1정도로 한 달을 생활했다. 가끔 한인들이 중국어 과외선생을 구한다고 알아봐 달라 하여 잘 가르칠만한 친구를 보내놓으면 너무 어리다는 둥, 예쁘지 않다는 둥, 별 씹스러운 소리를 지껄였고 이 개자식들은 시간당 25위안 (당시 한화 4천원 가량)이 비싸다며 그것도 깎으려고 들었다. 나도 노하우가 생겨 2학년 끝날 무렵부터 한국인 중 누가 원어민 과외를 찾으면 이쁜 여자 찾으시려면 KTV(룸싸롱) 가시고 진짜 공부하실 거면 나한테 얘기하라고 대답하곤 했다.

내가 영어를 알려주고 중국친구가 중국어를 가르쳐주는 식의 언어교환을 하던 복단대 친구는 나보다 2학년 위였는데, 안휘성에서 온 아이였다.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그녀가 얻은 직장에서의 봉급은 택시기사의 반절도 안 되는 금액, 그러니까 내 한 달 생활비가 못 되었고 그 친구가 기숙사에서 나와 사는 주택은 우리식으로 말하는 닭장집 같은 곳이었는데 천장에 백열전구 하나 덜렁 달려 있는 방 하나에 공동주방을 쓰는 곳이었다. 그래도 그 친구는 맘에 든다고 좋다 했다.

부자동네로 소문난 절강성의 항주나, 복건성의 온주가 아닌, 다른 곳에서 온 아이들의 겁에 질린 눈동자가 자꾸 떠오른다. 커피숍에서 아이패드를 놓고, 노트북을 놓고 영어책에 미친 듯이 줄을 치며 이어폰을 끼고 있는 이 나라의 20대들을 볼 때마다 2002년도쯤 내가 함께 밥을 먹던 땟구정물 흐르던 그 아이들이 생각난다. 눈빛이 닮아서다.

10년도 훨씬 전에 하나언니 하나언니하며 노트를 빌려주는 아이들은 갑작스럽게 거대한 도시에 와서 돈의 위력에 주눅들어 하루 하루 조심스럽고 위태롭게 살아갔다. 중국어 과외를 하러 갔는데 이상한 몸짓을 보내는 한국남자도 만났고 눈 뜨면 코 베어간다는 한국속담같이 상하이라는 도시는 학교만 벗어나면 줄줄이 돈 달라는 곳만 있었는데 아이들의 미래는 보장되지 않았다. 아이들의 꿈은 월급 꼬박꼬박 받는 학교 선생이 되는 것이었다. 책 한 권을 통째로 외우거나, 고전문학의 당나라 詞도 잘 짓던 아이들의 재능에 비해, 아이들의 눈빛은 늘 흔들리고 불안했다. 물론 그 눈빛엔 맑고 순수함이 깃들어 있었고 3학년이 되어가면서 아이들은 살아남는다는 것이 뭔지, 도시가 뭔지, 돈이 뭔지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 아이들에게 결여되어 있던 것은 정확한 방향과 철학, 꿈이었다. 막스 레닌 시간에 모두 엎어져 자던 아이들에게 철학은 돈 버는 일이었던 것처럼, 지금 내가 이 도시에서 옆 도시에서 만나는 청년들에게 자꾸 그 모습이 중첩되어 나타난다. 대신 이 나라 오늘의 눈빛은 원한과 불만이 조금 더 강하게 엿보인다는 것이다.

꿈을 위해 달린다고 얘기하는 청년들이 있다. 옆에서 지켜보면 도대체 쟤가 말하는 꿈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꿈을 위해 살아왔다고 말하는 어른들이 있다. 그 역시도 그 사람이 말하는 꿈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온갖 부조리에 침묵하고 타협하며 결국 이 시대가 말하는 꿈은 돈을 많이 번 다음에 생각해야 하는 것인 모양이다.

저 사람이 무엇을 꿈꾸는지 명확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아주 소수지만. 그들을 응원하며 나도 그렇게 늙어가고 싶어졌다. 그간 타인의 눈에 비친 내 눈동자엔, 맑고 순수함 따위는 없었겠지만, 원망이나 불만이 조금이라도 가셔지는 날을 죽기 전엔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꿈 없는 세상, 꿈꾸기 힘든 세상에서, 제대로 된 꿈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이 도시에 둥둥 떠다니는 불안한 눈동자가 거대한 황포강의 야경을 바라보던 아이들의 순수한 눈동자를 자꾸 그립게 한다.

2014. 9. 24.

한비야가 불편한 이유

며칠 전 불거졌던 한비야 인터뷰에 대한 갑론을박.
그에 대한 불쾌감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문제가 되었던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다.

젊은이의 꿈이 7급 공무원이라고 해서 정신차리라고 한 대 때렸어요. 라는 이 부분.
물론 뭐 한비야씨가 뺨을 때렸겠는가 물리적으로 치명적 폭행을 했겠는가.
그저 그는 정신차려. 하면서 친한 이모의 얼굴로 팔뚝이나 한 대 찰싹 때렸을 것이다..라고 추정된다.

그 부분을 조금 더 확대해서 맥락을 살펴보도록 한다.

자, 한비야씨의 의도는 이런 얘기였다.
왜 젊은이들이 꿈을 갖지 못하는가.에 대한 이야기.
그의 인터뷰 전문은 아래 링크이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14511.html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젊은 세대를 거쳐온 나로서, 혹은 아직 그 젊음을 놓지 않은 30대 후반의 아줌마로서, 나는 이 사람의 이런 화법이 매우 불편하다.

한비야라는 사람은 젊은 시절, 좋은 직장을 다니다 때려치우고 전세계를 누비며 한국에 배낭여행 붐을 일으켰다. 그리고 어느 날 난민구호활동가로 변신해 여전히 전세계를 누비며 맹활약중이다. 흡사 영웅의 탄생을 보는 느낌이다.

어릴 때 아버지가 지도를 붙여주셨다는 그녀의 일화나, 과감하게 높은 연봉의 직장을 때려치운 자신의 선택에 박수를 보내는 자화자찬의 힘은 나를 늘 불편하게 했다.

그건 내가 직장을 때려치우면 닥치게 될 여러가지 경제적 문제, 쉽게 말해 먹고 죽을 돈도 없어질 게 뻔한 상황을 내가 겪고 있던 시절에 그녀가 왕성한 활동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쉽게 요즘말로 해서 “열폭(열등감 폭발)”이 쩌는거라고 봐도 할 수 없다.

자, 그리하여 그녀는 이 사회의 지도층 인사가 되었고 젊은이들에게 환영받는 정신적 멘토로 군림하게 되었다. 가슴이 뛰는 일을 하라고 그녀는 쉽게 말한다. 그러나, 문제는, 너무 쉽게 말한다는 것이다.

가슴이 뛰는 일을 하고 싶은 젊은이들은 쌔고 빠졌다.
서른이 되어서 직장을 바꾸고 싶은 젊은이들도 널렸다.
학자금 융자를 겨우 갚았는데 주변에선 결혼 안하냐고 눈치를 준다. 요즘, 대놓고 시집가라 장가가라 하진 않더라도 뭔가 도태된 느낌에 사로 잡힌다. 야근에 특근에 출장을 다니느라 연애할 시간도 없는 후배들이 있다. 이직을 준비했다가 부모님의 건강악화로 일단 닥치고 여기 붙어 있어야겠다고 마음 접은 후배들도 있다. 뭔가 다시 인생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가족중의 누가 아프다. 뭔가 다 때려치우고 떠나려고 했는데 가족 중의 누군가 파산직전이다. 이혼한 형제의 아이를 떠맡는다거나, 사고를 당한다거나, 부모님이 부동산 붐의 마지막 버스를 탄 게 화근이 되어 온 가족이 대출이자를 갚아나간다거나, 애시당초 취직이 안되서 비정규직으로 도느라 학자금 융자를 해결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빚만 남겨놓은 부모님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거나, 가족들의 부채가 개인의 부채가 되고 물려지고 남겨지고 내 몸뚱이 하나 누일 집 한 칸 자유롭지 못하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대부분 가슴이 뛰는 게 오히려 원망스럽다.
차라리 아무 꿈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게 차라리 없었으면 얼마나 속이 편했을까. 예술따위 몰랐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여행 같은 거 진저리 나게 싫어했으면 얼마나 편했을까. 남들처럼 직장 다니면서 네네 하고 집에 가서 티비 보고 자고 그리고 다음날 똑같은 생활을 해도, 아 나는 참 행복해. 라고 느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여행이나 꿈이나 가슴 뛰는 일은 커녕, 넓지는 않아도 자유로운 원룸 하나 구했으면 좋겠는 거다. 고시원도 지겹고 옥탑방도 싫고, 뭔가 좀 깔끔하고 잡지에 나오는 집에서 맘에 드는 작은 소파 하나 놓고 음악 듣고 책 읽고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이 세대의 꿈은 진즉에 위축되고 축소되었다.

어른들은 말한다. 쉽게. 너무 쉽게.
너희들이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너희들이 다 잘 못 자란 탓이라고.
너희들이 나약해서 군대에서 적응을 못하고 자살하는 거라고.
너희들이 나약해서 비정규직을 못 버티는거라고.
가카도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는가.
나도 다 해봤다. 나도 뻥튀기 장사 노점상 다 해봤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씨발.

기성세대는 왜 젊은이들에게, 아우들에게 부채의식을 가지지 않는가.

당신들이 만들어놓고 발 빼버린 이 세상에서 우골탑이 모골탑이 되는 기가 막힌 등록금을 빚까지 내가며 학교를 졸업했다. 그런데 당신들이 일자리를 주지 않는다. 그러면서 우리가 나약하다고 말한다. 우리가 뭐가 나약한가. 우리는 당신들보다 영어도 잘하고 제2외국어도 하나쯤 한다. 단군이래 최대의 스펙이다. 기가막힌 프레젠테이션을 보여줄 수 있다. 비정규직도 잘 할 수 있다. 우리는 유머도 넘친다. 당신들이 적응하지 못하는 모든 새로운 기기와 네트워크에 우리는 찰싹 달라붙어 안착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가 모자라고 부족한가.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젊은이들을 비난한다.
학교폭력도 애들 탓이고, 노스페이스을 입은 아이들도 다 아이들 탓이다.
요즘 애들이 이상해서 그렇다.
요즘 애들이 다 철이 없어서 그렇다.

어떻게 그게 다 아이들 탓인가.
아이들은 고스란히, 우리를 보고 자랐다.

7급 공무원의 꿈이 왜 나쁜가.
그게 가슴뛰는 일이 되면 왜 안되는가.
스펙 쌓고 대치동 아파트에 살면서 포스코 옆에서 점심을 먹는 게 꿈이예요. 라는 게 왜 나쁜가. 그런 꿈을 꾸게 해 준건 바로 우리들 아닌가. (나는 솔직히 빠지고 싶다만)

나도, 그런 이야기 듣고 살았다.
지금 자면 꿈을 꾸지만, 안자면 꿈을 이룰 수 있다.
4당 5락,
니들이 조금만 참으면 남편 연봉이 바뀐다.
억울하면 공부해.
억울하면 의사해.
억울하면 판사돼.
억울하면 니가 선생해.

아무도 공부는 네가 하고 싶을 때, 나중에 해도 괜찮아. 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지금 공부하지 않으면 네 인생은 끝장이다 라고 말했다.
대학에 떨어지면 대학을 못가면 평생 후회할 것이다 라고 말했다.
공부하면 돈 벌 수 있다고 했다.
공부만 하면 돈 벌어 좋은 아파트, 좋은 직장, 좋은 차를 타고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의 목적은 공부를 통해, 그걸 수단삼아, 결국 돈을 얻는 것이었다.
넓은 아파트와 수입외제차와 명품가방을 들고 빙글빙글 도는 회전문을 밀고 대기업의 조직원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 인생은 탄탄대로가 된다고 말해줬지 않나.

그렇게 주입 받고 자라 대학을 가보니 등록금때문에 결국 빚을 져야 하고
인생 최단기간내에 가장 먼저 해야 할 To do list 1순위는 학자금 대출 해결. 이 되었다.
학자금 대출 해결을 하고 나니 부모님이 여기 저기 아프기 시작한다.
독립해야 하는데 엄마 아빠 병원비 약값 하시라고 용돈을 내놓는다.
그러다 보니 나이를 먹었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고 결혼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다.
여태 돈 못 모으고 뭐했냐 소리도 듣는다.
가끔 모아놓은 돈이 있는 젊은이도 있다.
결혼 비용으로 모두 날린다.
그리고 대출을 받아 집을 산다.
대출을 받아 혼수를 장만한다. 신혼 첫날밤 서로의 마이너스 통장을 깐다.
덜커덕 아이가 태어난다.
대출이자 갚기도 전에 애 교육비로 가계부가 뻥뻥 빈다.
노후대책 개뿔 같은 소리, 아이들은 다시 입시전쟁터로 내밀린다.
여기서 갈등한다.
다 엎어야 하나.
이대로 가야 하나.

이제 가슴이 뛰는 건 심계항진이다.
대출이자날짜가 돌아오면 가슴이 뛰고, 카드값 고지서가 날라오면 가슴이 뛴다.
연봉협상 날짜가 다가오면 가슴이 뛴다.

가슴은 열심히 뛴다.

이런 상황에 한비야가 말하는 가슴이 뛰는 상황은,
7급 공무원이 되어, 대출이자 뻥뻥 갚아나가고 원금도 갚고, 이 집도 은행것이 아닌 내 것이 되는 거다. 얼마나 가슴뛰는 일이냐. 눈물이 줄줄 나는 일이지.

사회의 기득권이 되고, 지도자급이 되었으면,
왜 이 청년들이 가슴뛰는 일을 찾지 못하는가 시스템의 오류를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모든 것이 개인의 잘못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나라의 민주화가 늦게 온 게, 이 나라에 IMF가 온게 개인의 탓인가?
이 나라에 식민지가 온 게 개인의 탓인가?
당시의 청년들이 열나 빌어먹어서 식민지 됬다고는 말하지 않으면서 왜 지금 개인이 게을러서 꿈을 꾸지 못한다고 쉽게 말하는가.

시대를 관통하는 구조의 오류는 늘 존재한다.
그건 1%가 자신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권력욕을 만끽하기 위해 상식밖의 일을 수없이 자행할 때 벌어진다. 99%를 돕기 위해 나선 사람이라면 1%가 만들어 낸 비상식적인 사회를 인정하고 99%를 도와야 한다.
한비야 그녀도 1%가 아니다.

웃기는 건 이 나라의 대부분 25%쯤 되는 사람들이나 10%쯤 되는 사람들이 자기가 무슨 1%나 된 듯 착각한다는 것이다. 사회의 1%는 대부분 눈에 띄지도 않는 곳에 숨어있다. 보이지 않는 불안한 악이 되어, 블레어 위치의 정체모를 영혼처럼 여기 저기서 툭툭 튀어나와 공포를 조장하는 것이다.

한비야의 다른 행보에 대해선 비난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7급 공무원의 꿈에 대해 비난한 그녀의 가벼움은 철저히 비난하고 싶다.

왜 모두가 성공해야 하고
왜 모두가 리더십을 가져야 하는가.
바닥에 좀 납작 엎드려서 편하게 사는 게 과연 죄가 되는가.
세상은 오히려 그런 사람들로 인해 순조롭게 돌아간다.

한반에 25명을 몰아넣는 유아학교에서 “리더십교육” 운운하는 것도 지랄하고 자빠진 일이다. 모두가 리더십 교육을 받아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면 그게 무간지옥이지 학교인가 사회인가.

얼마전 딸아이의 친구를 만났다.
성적은 바닥이지만 태권도를 오래 했다.
전공은 정보컨텐츠학과인 실업계를 다니는 친구다.
전공에 관심이 있느냐 물으니 관심이 좀 있다고 했다.
하드웨어 쪽이냐 소프트웨어 쪽이냐 물으니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뭔지 잘 모른다고 답했다. 이 아이에게 내가 너도 안철수같은 위대한 사람이 되라고 말하는 게 합당한가?

원대한 꿈은 인생의 좌절을 더 크게 맛보게 할 수 있다.
위인전을 많이 읽은 아이가 평생 과대망상증에 시달릴 수 있다.
내가 해 준 말은 앞으로는 네트워크 보안쪽이 인력이 많이 필요할 거라는 이야기와 태권도를 오래 했으니 알바도 쉽게 할 수 있겠다 라고 독려한 정도이다.

왜, 그게 나쁜가?
먹고 사는 데 지장 없으면서 자기 하고 싶은 운동도 지속할 수 있으면 그게 최고 행복 아닌가?

힘이 빠져 지쳐 자빠져 있는 사람에게 왜 못 일어나냐고 욕을 하면 어쩌자는 건가.
숨 쉬고 조금만 일어나보라고 손만 잡아보라고 거기까지만 하라고, 그 다음은 스스로 점진적으로 나아지겠거니 희망을 좀 가져주면 안되나.
당장 일어나서 정신차리고 마라톤 나가라고 하는 게 옳은가.

모두 다 일어나 걸어야 한다고 말하지 마라.
욕심없이 살고 싶은 사람도 많다.
경쟁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많다.
대학가기 싫고 공부하기 싫은 아이들도 있다.
원대한 야망 따위 없이 그냥 하루종일 방바닥을 굴러다니면서 사는 게 꿈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그렇게 무가치한가.

한비야씨는
“죽지 못해 살아남기 위해 스펙 쌓으며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아름답고 멋지잖아요?” 라고 말했지만,
죽지 못해 살아남아야만 해서 스펙이라도 쌓으면서 사는 거 조차 너무 힘든 인생도 많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아무리 다시 읽고 생각해도, 나는 그녀의 이야기가, 
“요즘 청년들이 나약해서 군대가서 자살한다” 라고 한 얘기와 자꾸 겹쳐 떠오른다. 

아마도 그녀의 잘못된 기독교 윤리, 인간의 나약함과 긍정의 배신을 절대 인정하지 못하는 편협함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2012. 1.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