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의 세상

1.
몇 년전 주민참여예산의 지역위원으로 있을 때 (자원해서 하는 거니 별 거 아닌 그냥 오지랖) 동네 유지쯤 되는 분이 오래된 놀이터를 리모델링해서 크리켓장을 만들자 했다.
나는 원래 놀이터를 리모델링할거면 놀이시설을 보강하고 그 앞의 아파트 아이들도 쓰게 하면 어떻냐고 의견을 냈는데

그이 왈.
그 동네는 애들도 없고 놀이터 나와 놀 애들도 없고
요즘 애들은 다 자기네 (아파트) 놀이터에서 노니까
놀이터는 더 필요없다며 노인복지에 치중하는 게 옳다고 밀어부쳤다.
나는 그 사람과 입씨름 하고 싶지도 않고 너무 얼척이 없어서 입을 닫았는데
대부분 그 사람 말이 옳다 하더라.

그 대부분이라 함은,
지역에 땅이나 집이나 상가를 가지고 있는
그러니까 부동산 소유자들이었고
동네에서 오래 산 권력층이었다.그 주장을 펼친 사람은 다음해에 기초의원 선거에 출마해 그 동네 시의원이 되었다.그 사람이 말한,
그 동네엔 아이들이 있었고, 그 아파트는 아주 오래된 곳이라 놀이터가 엉망이었다. 아이들은 다른 친구네 아파트에 가서 놀았는데 2천세대쯤 되는 대단지의 놀이터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무렇게나 들어갈 수 있지만 3-4백 세대만 사는 작은 놀이터엔 들어가기 어려웠다. 들어가는 문마다 비밀번호를 눌러야 하는 비싼 아파트는 아파트입구부터 어딘지 모를 부담감이 있었다.

2.
그때쯤 옆 동네에 새로 초대형 단지의 아파트가 들어섰다.
아파트 건너편에 원래 초등학교가 있었는데 더 많은 아이들이 몰려들 것 같아 지자체에서 아파트 단지 안에 초등학교를 새로 지었다.
새로 지은 초등학교의 학부모들이 연립주택 아이들과 분리배정 해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작년엔가 과천의 어느 동네에서는 지역아동센터의 이전을 놓고 동네 주민들이 반대하는 일이 있었다. 가난한 집, 빈곤계층 아이들이 드나드는 것이 싫다는 이야기로 비춰졌다.
어떤 보도에서는 개인주택에서 운영되는 지역아동센터가 마을에 들어오면 “아이들 때문에 시끄럽다”는 이유가 주된 것이었다. 내부의 사정은 알 수 없었다.

3.
집 앞 상가건물에 여호와의 증인 선교회관 간판이 있는 걸 보았다.
고등학교때, 우리 반에 여호와의 증인인 친구가 있었다. 우리학교는 기독교계 학교라 종교시간도 있고 예배시간과 각 학급에 신앙부장이 있었다. 내가 그 신앙부장이었고 조회 종례때 간단한 묵상을 진행했다. 그 친구는 기도하지 않았는데 그때의 나는 상당한 골수신자였음에도 그의 종교를 이해하고 싶었다.
전체 주간조회 시간에 전교생이 애국자를 파트로 나누어 불러야 해서 음악시간에 연습을 했다. 그 친구는 애국가를 부를 수 없었기에 입을 닫고 있었고, 음악선생이 그 친구의 따귀를 때렸다. 친구가 울었고 나는 친구를 꼭 안아줬던 기억이 있다.

4.
얼마 전 만난 중학교 아이들은 친한 친구, 가족일수록 자기 외모에 대한 품평을 많이 한다는 불만을 말했다.
“대체 인권의식이라는 건 있지도 않은 것 같아요. 나는 불편하지 않은데 왜들 그러는 건지 너무 화가 나요.”
“스무 살까지는 화장하지 말라고 하면서 스무 살이 넘으면 민낯으로 다니는 게 예의가 아니라는 건 너무 웃기지 않나요? 구시대적이예요.”

5.
수많은 차별이 존재한다.
빈부, 나이, 성별, 외모, 종교에 의해 우리는 사다리 아래에서 악다구니를 쓰고 서로를 가른다. 장애는 그 중에 하나다. 타인을 재단하고 차별할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가.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내재된 폭력은 무심하게 온다. 내 하루의 24시간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구별짓고 사는가.
정신을 차리고 산다는 게 과연 가능이나 할까.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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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와 왜 다르냐

오래전에 봤던 영화, 엘리펀트맨. 한국에서는 “코끼리 사나이”로 알려져 있다.
중증다발신경섬유종. 이라는 병을 앓는 환자인데, 영화의 배경에서는 그저, 기형, 괴물로 치부되던 시절이다.
영화의 후반부에 공개되는 주인공 코끼리 사나이의 얼굴은 거대한 신경섬유종으로 마치 코끼리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영화속에서 코끼리 사나이는 인간서커스에 들어가 사람들에게 공식적인 구경거리가 된다. 경악과 충격, 공포를 자아내는 좋은 구경거리가 된다. 
이 서커스단에는 샴쌍둥이와 난장이등이 속해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장애인 인권유린의 행태가 자행되던 시절. 
사실, 이런 인권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한 게 사실 몇 십년 되지도 않았다. 
우리의 동춘서커스를 비롯한, 수많은 서커스에 외소증이라고 이름이 바뀐 난장이들이 나와서 곡예를 했고 사람들은 그걸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어쩌면 그 때 그들은 정말 행복했을까. 
한수산의 “부초”는 서커스를 소재로 한 소설이다. 
고등학교 때 이 소설을 읽고, 나는 이후로 그 어떤 서커스도 기분 좋게 볼 수 없었고, 중국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시절 학교에서 단체로 관람을 했는데 공연내내 질질 짜다 참담한 심정으로 돌아온 기억이 난다. 
얼마전에 노트르담 드 파리 (Notre Dame De Paris)의 뮤지컬을 보았다. 
그 전에, “파리의 노트르담”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민음사판의 원작소설을 읽었다. 
노틀담의 꼽추. 라는 축약된 이름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15세기 파리를 배경으로 하는 빅토르 위고의 장편소설이다. 
위고는 건축의 시대가 끝나고 문자의 시대가 왔음을 말하며, 그로 인해 대변혁이 일어남을 알린다. 그리고 이 소설은 철저한 신분으로 인한 소외계층을 집중 조명한다. 
쉽게 말해 빈민굴에 해당되는 기적궁에 살고 있는 라 에스메랄다와 성당에서 종지기로 사는 콰지모도, 그리고 에스메랄다 주변의 인물군상을 표현한다. 
물론 그 위엔 비겁하고 이기적인 기득권 세력도 나타난다. 
뮤지컬은 많은 부분을 축약했지만 넣어야 하는 요소들을 빼지는 않았다. 
에스메랄다는 모든 스토리의 요부의 요소를 갖추었다. 
오페라의 여주인공들, 인류 역사의 모든 이야기들속의 전통적 전형적 여주인공은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공통점이 있다. 여기 위고는 몇가지 요소를 더 삽입했다. 
이국적인 외모, 이방인, 집시, 다른 머리색깔, 다른 피부색깔, 춤추고 노래하는 여자. 
즉, 
1. 집시- 춤추고 노래하는 – 예술적인 색채 – 예민한 – 그러나 순결한 – 고대 제전의식의 무녀의 형태 – 마녀로 등극 가능 – 희생양 
2. 이방인 – 외국의 유입자 – 다른 인종 – 빈민 –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 법 밖의 존재 – 무법 – 떠돌이 난민 (refugee) – 하층계급 
이 두 가지 공식을 끼워맞춰 소외계층의 한 맥락으로 놓고 
콰지모도는 고아 – 기형아 – 다른 외모 – 일반적이지 않음 – 남들과 차별화되고 다른 것은 나쁜 것으로 치부됨 – 악의 상징 – 인간의 요소를 갖추지 못함 – 반인반마와 다름없음 – 짐승보다 약간만 높은 상태로 하여 또 다른 소외계층의 한 맥락으로 놓는다. 
코끼리 사나이와 노트르담 드 파리의 주인공들은 소외된 자들이다. 
이 소외된 자들은 통계적으로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른 외모를 지닌 것으로 시작한다. 
예술속에서 외모 – 라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단순한 얼굴이나 생김새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종을 상징할 수 있다. 검은 머리를 가진 이국의 집시는 매우 불결하고 저급하다라고 쉽게 말할 수 있던 시절의 이야기다. 
우리와 다르다는 것. 
이게 이 나라에서도 통용되어 단일민족이라는 말도 안되는 역사적 사실들을 나열한다. 
대한민국이 단일민족이라는 말은 단일민족만으로 구성된 나라라는 뜻이기 보다 
다른 민족이 절대 침투할 수 없을 정도로 기득권이 철저하게 공고한, 절대 유입과 개방의 여지가 없었던 왕조가 국명을 바꾸고 체제를 바꾸더라도 5천년동안이나 유지된 매우 배타적이고 수구적인 체제였다는 것의 반증이다. 
우리와 다르다는 것으로 새로운 유입세력의 신선함을 악으로 호도하는 것은 기득권의 지배논리에서 아주 쉽게 유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문명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을 분류하고, 장애시설을 혐오시설이라 분류하고, 하층계급이나 성노동자, 노숙자등을 우리와 다른 사람들로 분류해 별도 관리하려는 노력을 꾀한다. 
신체의 장애가 있는 자를 장애인이라 칭하고 장애인 등록증을 발급하고 별로의 관리를 한다는 것은, 신체의 장애가 있으나 눈에 보이지 않는 질환자들은 장애인이라 칭하지 않고 별도 관리를 하지 않으나, 일단 외형적으로 보이는 쉽게 판독이 가능한 “우리와 다른 부류”는 쉽게 특별한 법의 보호 아래 놓는 대신 일반적 법의 테두리 밖으로 내놓겠다는 의지이다. 
이것은 외국인이나 이주민에 대한 이 나라의 정책과 일맥상통한다. 
주민등록번호가 없으면 사이트 가입을 할 수가 없고 인터넷 쇼핑도 사용할 수 없게 만들어진 나라. 이 것은 당신들의 특권이고 이건 우리 기득권, 즉 지배세력이 곤고하게 지켜줄 것이니 당신들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새로이 유입되는 세력을 철저히 배척하고 분리하는데 협조하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들의 주민등록번호도 보장받지 못할 수 있다는 공포를 유입시켜주는 것이다. 
학교에서 자연갈색의 머리색을 가진 아이들은 너는 왜 머리가 노랗느냐고 선생에게 타박을 받고 검은색으로 염색하고 오기를 강요받아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외국인이 유입된다는 것을 절대 전제하지 않고, 이 학교에 다니는 모든 아이들은 모두 같은 머리색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다. 그만큼 개방의 정도가 취약했으므로 모두 거기에 익숙하게 길들여져 있다. 
새로운 유입세력에 난감해 하는 것은 바로 오늘 뉴스에서, 어제 뉴스에서, 그리고 내일 뉴스에서도 볼 수 있는 수많은 사례에 있다. 비대위에 불편해 하는 한나라당이 바로 쉽게 보이는 경우이고, 
아래 링크를 걸게 될. 충격적인 기사 하나도 그러하다. 
우리는 그만큼, 배타적이고, 수구적이다. 
충격적인 기사 하나를 보고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왜 너는 나와 다르냐. 는 이유로 조롱하던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반성한다. 법륜스님 말씀대로 후회하지 말고, 참회해야 할 것이다. 
+ 지난 일요일 정봉주 콘서트에 갔었다. 
김c가 출연해서 그런 소리를 했다. 
“모든 나라는 그 나라 국민의 수준에 맞는 체제와 정부를 갖게 된다. 
여러분 싫죠? 근데 나는 아닌데 다른 사람만 그런 걸까요?
우리가 그런 거..겠죠? 싫어요 저도. 싫지만 어떡해요. 그런걸.”
장애 소녀, 8년동안 철창에 가둬 – 경향신문 링크

2012. 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