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지우기

130706_Nikon 844
어쩌면 수많은 도시민들은 도시의 시스템에 기생하여 살아가지 않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그러고 있는 것처럼 밀려오는 시스템에 거부감만 느끼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엉겨붙어 기생하고 있지 않나.
기생하여 사는 것은 그만큼의 불편함과 수치심을 동반하지 않았나. 그러면서 늘 불평하지 않았던가. 도시가 나에게 준 것이 무엇이냐고.
내가 사는 곳에 대해 주인이라 느낀 적 없다.
나는 언제나 도시의 세입자였으며, 내 땅 한 칸 주장한 적 없다. 꾸역꾸역 밀려오는 정책은 파도처럼 늘 도시를 에워싸고 돌았으며 나는 그 안에서 늘 밀려났다.
내 집이 무너진 적 없다. 내 집을 가져본 적 없으므로.
언제나 나는 어디에서부턴가 떠나온 사람이며, 떠나갈 사람이었다.
사람이 한 곳에 정착해야 할 이유를 느낀 적 없으며, 고향은 언제나 이동 가능했다.
내 의지가 아닌 이유로 이동해야 한다면 나는 이동하는 호모노마드가 되려 했다.
말하자면 나는 그 어느 곳도 깊이 사랑한 적 없다.
끊임없이 나의 오늘을 부정하고 나의 정체성을 지우기 바빴다. 나에게 의미있는 장소는 타인에게도 같았다. 구태여 내 것만 아름다운 적 없다.
이제 기억속에 남은 그 거리들이, 나에게 과연 콩알만큼의 안정이라도 가져다주었는가 알 수 없다.
지킨다는 것이 무엇인가.
살아가던 공간을 변화시키는 것은 새로운 적응과 질서를 요구한다. 뜯어내고 고쳐내고 바꿔가는 것은 인간에게 적잖은 스트레스가 된다 한다.
늘 그렇게 부대끼며 살아온 자에게 버리고 새로운 것을 찾는 일은 익숙하다. 집의 유통기한은 2년이며, 언제든지 보따리를 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외롭다고 말할 시간조차 없었던 것처럼, 낯설어서 어렵다고 말할 시간도 허락하지 않았다. 누가? 내가 나 자신에게.
삶의 일부분을 지우는 것, 끊임없이 나는 뒤돌아서서 내 그림자를 흙으로 덮었다. 삶의 공간을 잊고 끊임없이 떠도는 것, 천막 치고 사는 유목민의 고향은 땅이요 자연이지만, 1.5톤 트럭에 의지하는 도시민의 고향은 자고 일어나면 달라질 눈부시게 발전하는 조국의 빌딩숲이다. 모험과 도전은 돌아갈 곳이 있을 때만 즐겁다. 부유하는 불안정함은 계속해서 자기 자신을 지운다.
새롭게 쓰기를 반복한다는 건 끊임없이 지워야 한다는 거다.
어느 날 문득 내 목덜미가 스산해 지는 것은 “나 자신”이 낯설어서이다. 나를 모두 잊기 위해 살아왔기 때문이다.
2013. 7. 7.

어떤가요 여기는

그래도 일기를 한 줄이라도 쓰고 나면 낫다.
상황을 적고 그럼 이제 내가 가져가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적는다.
매일 매일 나는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고 싶은 모양이다.
오늘은 어제 움켜쥔 것을 버릴 때가 되었다고 적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사람에게 공들이며, 보상이 올 것이라고 믿어마지 않았던 어리석은 마음을 버린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남는 것은 칭찬도 보상도 아닌 추억뿐이다.
때로 그 추억은, 매우 왜곡되기도 하고 재해석되기도 한다. 다시 끼어들어갈 틈도 없고 다시 돌이킬 수도 없다.
과거를 다시 만나는 것은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다는 말이며 자꾸 미래만 만나는 것은 정체성을 부정하려는 안타까운 노력이다.

과거의 모든 행위를 아까워하지 않고 이제는 씁쓸한 맛이 나는 기억만 가지고 갈 수 있다면, 이제 그 과거를 위해 더 이상 억지를 부리지 않을 수 있다면, 그걸로 극복이라 믿고 싶다.

문득, 늙어가는 여배우 정윤희의 목소리로 들었던 그 시의 첫문장이 생각난다. 어떤가요 그곳은. 이라던 문장.
나는 묻고 싶다. 어떤가요. 내가 살아온 것은.
정말 그렇게 힘에 부쳤던 건가요. 아니면, 내가 그렇게까지 깜냥이 안되는 인간이었던 것을 여태 내내 속이며 살아왔던 건가요. 라고.

2013. 7. 1.

송충이의 솔잎

망해가는 마봉춘이 창사특집다큐를 찍으셨던데

아프리카의 한 부족이 관광객의 사진촬영 대상이 되어 돈을 받고 자기들의 삶을 보여주는 생존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 있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한다는 옛말이 있는데.
나의 내면에 내재된 조상들의 솔잎은 과연 무엇이었던가 의문이 생겼다.

• 적어도 우리 기억속, 우리의 역사속엔 다양한 직업군이 있었고 모든 사람이 문명사회에 진입하기 전에는 성씨가 분류되기 전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아프리카에는 근대국가로의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인지, 내가 모르고 있는 것 뿐인지
서구사회와 가까웠고, 그 문명의 유적으로 알려진 북아프리카의 이집트와 모로코는 분명히 전근대 고대국강 형태를 갖추고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존재하였는데,

인류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화를 거듭했다면 정말 중앙아프리카 이남엔 고대국가의 이름이 단 하나도 없었을까?
마야와 잉카와 그리 멀지도 않은 곳에, 정말 그 곳엔 지배와 통치가 허용되는 문명이 없이 공동의 평등한 삶만 존재했는가?
단순히 내가 모르는 것인가 혹시 누군가 필요에 의해 삭제했거나 왜곡한 것은 아닌가.

• 송충이의 솔잎은 유전자에 새겨진 정체성의 이야기다. 수십년 수백년 수천년을 그렇게 살아오면서 계발되고 특화된 각자의 성질에 대하여 되도록 정체성에 가까운 환경에서 살아갈 때 사람은 안정감을 느낀다.
오래전부터 농경사회였고, 유목이나 사냥보다 농경에 어울리는 땅에 살던 이 나라의 사람들은 도시에서 태어나 농촌으로 이주해도 歸農이라 말한다.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게 고향이고 정체성이고 유전자에 새겨진 역사이므로.

서구사회나 다른 민족들 중, 아직도 몽골은 유목생활을 반절정도 유지하고 있고 자연환경이 척박한 곳에서는 타고난 솔잎에 어울리게 사냥을 주로 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글쟁이 집안, 농사꾼집안, 장사꾼 집안이 대대로 내려오면서 축적되는 노하우가 있고 그 직군으로 살아가는 비법들이 삶에서 삶으로 구전되어 내려오며 삶은 비교적 익숙한 환경내에거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동물적 개체가 보수성을 유지하는 것은 당연한 생존의 문제이므로.

21세기.
우리는 모두 자신의 솔잎을
10년 이내 단기간에 쌓아온 스스로 만의, 한 개인의 노하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인류는 대와 세를 거쳐 이어져 내려왔고 삶속에 숨어 있는 역사성은 단지 10여년 만에 규정되거나 안정화되지 않는다.

우리가 헤매이는 이유는

너무 멀리 고향을 떠나왔기 때문이 아닐까.

– 아스팔트도 독하기 독한데, 지속되는 폭설때문에 제설방제에 사용된 염화칼슘이 그 독한 아스팔트를 뻥뻥 뚫어놓은 도로에서 당황하던 하루 종일을 결정짓는 생각을 해봤다.

9세기 ~ 18세기

식민 지배 이전의 아프리카에는 10,000개 이상의 국가와 집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34] 이들은 제각각의 정치 조직과 지배 체제를 이루었다. 이 가운데는 아프리카 남부의 산족처럼 사냥과 채집 생활을 하는 작은 가족 집단도 있고, 아프리카 남부와 중부의 반투어권 씨족 집단처럼 좀 더 크고 조직을 갖춘 집단도 있으며, 더 나아가 아프리카의 뿔의 씨족 집단, 사헬 지역의 왕국들, 서아프리카의 요루바와 이그보(Igbo) 혹은 동아프리카의 스와힐리 해안의 무역 도시와 같은 자치 도시국가나 왕국처럼 더욱 체계를 갖춘 나라도 있었다.

기원후 9세기경 초기 하우사 등 일련의 왕조 국가들이 사하라 이남 사바나에서 서부 지역부터 중부 수단을 지배하였다. 이 가운데 가장 강력한 나라는 가나, 가오, 카넴-보르누 제국이었다. 가나는 11세기에 쇠퇴하였으나, 말리 제국이 뒤를 이어 13세기에 서부 수단 대부분을 통합하였다. 카넴은 11세기에 이슬람을 받아들였다.

서아프리카 해안의 삼림 지역에는 북쪽 무슬림의 영향을 받지 않은 독립 왕국들이 성장하였다. 이그보의 은리 왕국(Nri)은 9세기에 세워진 초기 왕국이었다. 또 오늘날 나이지리아 땅에서 매우 오래된 왕국으로, 에제 은리(Eze Nri)가 다스렸다. 은리 왕국은 이그보 우크부(Igbo Ukwu)에서 발견된 정교한 청동 유물으로 유명하다. 이 청동 유물은 9세기경으로 보인다.[35]

요루바의 도시국가와 왕국 가운데 역사상 최초의 나라 이페(Ife)는 이페의 우니(Ooni)라는 성직자 오바(oba, 요루바어로 “왕” 혹은 “지배자”를 뜻한다)가 다스렸다. 이페는 아프리카에서 종교와 문화면에서 중요한 지역으로 여겨졌으며, 청동 조각의 독특한 자연주의 전통으로 유명하였다. 이페의 정부 형태는 오요 제국(Oyo)에서 수용하여, 이곳의 오바(임금)은 오요의 알라핀(alaafin)이라고 하였으며, 한때 수많은 다른 요루바 혹은 비(非)요루바 도시국가와 왕국을 다스렸다. 다호메이의 폰 왕국(Fon)은 오요의 지배를 받는 비 요루바 나라 중 한 곳이었다.

알무라비툰은 사하라 사막의 베르베르 왕조로, 11세기에 광활한 북서 아프리카 지역과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하였다.[36]바누 힐랄과 바누 마킬은 아라비아 반도에서 온 아랍 베두인 부족의 연합체로 11세기에서 13세기 사이에 이집트를 거쳐 서쪽으로 이주하였다. 이들이 이주하면서 아랍인과 베르베르인이 융합하여, 지역 주민이 아랍화되고, 아랍 문화는 이슬람을 기초로 지역 문화의 여러 요소를 흡수하였다.[37]

아래 내용은 위키디피아

http://ko.m.wikipedia.org/wiki/아프리카#section_3

무덤의 정체성

옛부터 큰 일을 준비하거나 마음의 큰 결심을 할 때 조상의 묘를 찾아가 예를 갖추는,
그런 게 있었는가는 모르겠지만 왠지 그래야만 할 거 같았다.
(있었것지..어디서 주워드었것지)

그래 어제, 큰 결심을 하고 어머님과, 할머니의 묘를 찾아 인사를 했다.
조상을 찾고 어쩌고 하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이라는 것이다.

뿌리를 찾고 조상을 따지고 묘를 쓰고 하는 것은 정체성을 명확히 찾으라는 것이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인간은 없다.
내 안에 흐르는 피와 유전자, 그 정서의 모든 것들이 바로 다 위에서 내려온 것이다. 그들이 없었으면 나도 없었다 뭐 이런 충효주의 사상 말고.

사람이 성장기에 부모와 선대로부터 들어온 집안의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엔 자기 인생의 단서와, 성격과 기질의 단초가 될 열쇠들이 들어 있다.

물려받은 유전자는 존재하고, 그 중에 유달히 강한 부분이 있고 약한 부분이 있다. (강/약의 얘기는, 좋다 나쁘다의 평가가 아니다) 그런 물려받은 부분은 서른쯤에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그 때부터 자기가 만들어나가는 일이 생긴다.

물론 예전엔 훨씬 더 일찍 스스로 껍질을 깨고 나오기들 시작했지만, 지금은 학교를 지나치게 오래 다니는 까닭에 모든 것이 늦어졌다. 물론 인간 수명의 연장과도 관련이 있다. 인간 수명이 40-50세 사이였을 때, 공자가 말한 이립(而立)이 스물이었다면, 지금은 그 수명이 연장된 만큼, 인간수명의 반절쯤에서 두번째 인생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서른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각종 심리학 서적들이 난립한다.
그 심리학 서적들은 세상을 원망하지 말고 너 자신을 돌아보라고 말한다. 네 마음의 문제가 있다, 네 마음을 다스려라.라고 말한다.
그러나 30년간 해보지 않은 일을 15,000원짜리 책 몇 권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차라리 이미 어색해진 부모와의 관계를 회복하거나, 모든 것을 참아드릴테니 어디 한 번 우리집안의 흑역사를 말해달라고 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부부간의 불화로 동거중이거나 아니거나, 양육자가 자녀에게 자녀의 뿌리를 조곤조곤 이야기 해주지 않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너에겐 이만한 역사가 있다. 너에겐 이만큼 많은 너의 혈육들이 있다. 그런 것들이 모여 너를 만들었고, 너는 그래서 소중하다 라는 메세지가 은연중에 전달된다.

지금 서점에서 “서른살 징징징”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바로 이 세대들은 급격한 산업화와 물질의 갑작스러운 홍수로 그런 이야기를 들을 기회를 많이 잃었다. 그래서 그들은 헤매인다. 나는 누구인가. 사춘기때 하지 못한 숙제를 이제서 하고 있다. 마음은 아직도 열두살, 애니어그램, MBTI, 진로상담. 그런 것들로 자기들의 규격을 알고자 한다. 사람에게 규격은 없다. 모두 역사와 역사속에 살아 있을 뿐.

한 인간의 정체성이 생로병사와 가족의 의례로 명확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도 사실 얼마 전이다.
그렇게 두 달 전에 가신 어머님께 다녀왔다.
그리고 30여년전 돌아가신 할머니에게도 다녀왔다.

그리고 그 앞에서 울었고, 웃었고, 다짐을 되새겼다.

만일 나에게 새털만큼의 권력이라도 주어진다면, 그 권력을 가볍게 놓아버릴 수 있는 용기를 갖겠다고.
그리고 사람이 되겠다고. 참사람이 되겠다고. 감정으로 타인을 대하지 않고, 늘 깨어 있겠다고.
그리고 자유롭겠다고. 자유롭기 위해 힘을 갖고, 자유롭기 위해 돈을 갖고, 자유롭기 위해 지혜를 갖겠다고.
욕심내지 않고 내가 배운 모든 것을 나누며 가겠다고.
세상 사는 동안, 세상은 나에게 쌀 한 톨 보태주지 않았다고 했던 그 말 거짓말이었다고.
이제 깨달았다고. 세상은 언제나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고. 그걸 돌려주겠다고. 모두 다.
나보다 못배운 자, 나보다 가난한 자, 나보다 슬픈 자, 그들에게 나누겠다고.
다시는, 당신들을 먼저 만나러 가지 않겠다고. 잘 살아서 웃으며 그 강을 건너겠다고.

파란 하늘의 어머님 산소에서부터 노을지는 할머니 무덤곁에서.
나는 아주 인간답고 인간다운 결심을 그 분들 비석 앞에서 보이지 않게 깊게 새겨넣고 왔다.

孺子金海金氏五任之墓
孺子金海金氏五任之墓
全州李公基東, 漢陽趙氏香之墓
全州李公基東, 漢陽趙氏香之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