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무해한 사람- 우영우

막상 회전문 앞을 가로막고 서서, 그 문이 휙휙 돌아가는 리듬에 맞추려고, 하나 둘 셋 넷 다섯을 세고 있는 우영우를 보면, 길을 막고 섰다고 화를 내며 슬쩍 밀치고 지나갈 사람도 있겠지만.

여기 이 땅은, 어설프고, 느리고, 둔한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 장애인 등급에 따라서가 아니고, 부족한 것, 느린 것, 어설픈 것을 쉽게 혐오한다.

이 사회에서는 어설프고, 느리고, 둔하면 쉽게 낙오한다. 이 나라에서는 대열에서 낙오하는 자를 미워하지 않으면서도 혐오할 수 있다.

낙오자가 굴러떨어지는 것을 보면, 간신히 버티고 있는 나도 언젠가 저렇게 데굴데굴, 굴러떨어질테니까, 그걸 잊고 살려고 간신히 온힘을 다해 버티고 있는데, 너 혼자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게 아니고, 그렇게 굴러떨어지는 너를 보면, 이 세계가 얼마나 무서운지 다시 기억해내야 하니까, 그래서 더 힘을 내야 하니까.

일한만큼 대우받지 못하고, 노력한 만큼 인정받지 못하는 거, 어차피 다 빤히 아는데. 내가 갖고 태어난 게 이것뿐이라,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이룰 수 있는 건 80정도인데, 어떤 놈은 노력하는 힘 자체가 다르게 태어나서 조금만 페달을 밟으면 1200까지도 간다고. 그걸 다 알고 있는데. 너무 무서워서 잊고 있는데.

내 앞에서 느리고, 어설프고, 둔한 짓을 하면, 당신이 낭떠러지에서 곧 굴러떨어질 것이고,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당신에게 손을 내밀지 못할 것이고, 이 무서운 세상에서. 이 정글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런 거 싹 다 잊고 버텨야 하는데.

왜 자꾸 내 앞에서 문 하나 똑바로 못열고, 왜 내 앞에서 계산대 위에 펼쳐진 물건을 빨리 빨리 주워담지 못하고, 왜 내 앞에서 길을 막고 서서, 그러다가 굴러떨어져서 죽게 된다고,

왜 자꾸 나에게 무서운 사실을 각성시키냐고.

그러니까, 느리고 어설프고 둔한 당신을 미워하지 않지만, 혐오한다고. 대열에서 이탈하지 말라고. 그만큼 약하고 힘들고 애타는 사람들의 혐오가 넘쳐나는 이 사회에서.

회전문을 자동문으로 교체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사람을, 사랑하지 않아도, 존경하지 않아도, 그냥 따라가는 것이다. 살아야 하니까.

무해하지 않아도, 살아남으려면.

그러니까, 당신의 그 둔한, 어설픈, 느린 행동으로 이 세상의 잔혹함을 내가 다시 각성하게 만들지 말라는 마음을 담아. 힘껏 혐오하는 땅, 여기에, 갖은 모양의 구름이 보기 좋게 떠 있던 하루였다.

사람들은 구름을 보며 고래 모양을 찾는다. 고래를 찾으며 우영우를 떠올리겠지. 완전히 무해한 장애인 우영우.

판타지와 현실 사이 – 수리장애인종합복지관 수업일지

우영우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복지관 수업을 가는 날, 오전에 회의가 있어 부랴부랴 점심을 먹고 서둘러 교실로 향했다.

학생들은 항상 먼저 와서 나를 기다린다. 셔틀버스를 타고 오기 때문이다. 이 교실에 모이는 발달장애청년들은 다수가 직업을 가지고 있다. 요양병원이나 학교에서 오전에 근무를 하고 복지관에서 와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오전 내내 커피 내리는 연습을 하다가 온 이도 있다. 장애여부를 떠나 지금의 청년 누구나 취업이 어렵다. 취업을 하더라도 커리어나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곳에 들어가는 일도 쉽지 않다. 이 교실에 있는 청년들도 비슷하다.

교실에 문이 열린 것을 흘낏 보는데 저 안쪽에서 채은 씨가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 나는 안녕하세요! 손을 흔들고 화장실에 먼저 갔다.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슬미 씨를 복도에서 마주쳤다. 슬미 씨는 나를 보고 옷이 예쁘고 가방도 예쁘다고 해줬다. 오늘은 정말 대충 입고 갔는데도 칭찬이 후하다.

교실에 들어서자 다은 씨가 나를 재촉한다. 선생님 커피를 사놨다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왔다고 말이다. 복지관 1층에는 이용자들이 직업훈련도 하고 취업도 하는 카페가 있다. 자폐인들 중 직업훈련이 가능한 사람들만 바리스타가 되거나 제과제빵 기술을 배운다. 우리는 이들을 엘리트라고 부른다. 자폐스펙트럼이라는 말처럼, 다들 다른 성향이 있는데 지적장애를 동반하지 않았거나, 경미한 경우 직업을 가질 수 있다. 글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이들은 선별된 이들이다.

신발을 벗고 교실에 들어가니 홍찬 씨는 엎드려 있다. 홍찬 씨와 정훈 씨는 자폐이고 다른 이들은 지적장애가 있다. 굳이 분류하자면 그렇다. 지적장애의 정도는 모두 다르다. 수업 시작 전까지 잠시 준비하며 인사를 나누는데 엎드려 있던 홍찬 씨가 벌떡 일어나서 차렷 열중쉬어 차렷 선생님께 경례. 하면서 이하나. 선생님. 이라고 내 이름을 기억해줬다. 그리고 나와 눈도 맞췄다. 지난 4회동안 한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는데 오늘은 홍찬 씨가 정말로 내 눈을 보면서 말했다. 자폐인인 학생이 눈을 마주치고 내 이름을 기억해준다는 건 엄청난 일이라 정말 기분이 좋았다.

교실에는 두 명의 복지사 선생님이 항상 같이 들어온다. 보영 씨와 다은 씨는 글씨를 잘 쓰지 못해서 선생님이 도와줘야 하고, 홍찬과 정훈은 스무고개처럼 질문 하나 하나씩 넘어가야 한다. 오늘은 교실안에 있는 친구를 인터뷰하고 소개하는 글을 써보기로 했다. 소통이 잘 되는 짝꿍을 지어주고 서로 질문을 해보라고 했다. 다들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질문했고 좋아하는 만화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포켓몬스터가 압도적이었다. 홍찬 씨가 벼랑위의 포뇨를 좋아한다고 해서 아이패드를 열어 포뇨 노래를 틀며 화면을 보여주었다. 홍찬 씨가 눈을 한 번도 안 떼고 포뇨 영상을 열심히 보며 양 손을 위로 올려 반짝반짝 흔들었다. 정말 기분이 좋아보였다.

정훈 씨는 아무래도 소리에 예민한 것 같아서 수업 중에 음악을 틀 때 조심한다. 아직까지 거슬린다는 표시를 한 적은 없다. 여름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 2악장을 틀어주었는데 정훈 씨는 귀에 손을 댔다가 내려놓기도 해서 그 수위를 가늠할 수 있었다.

보영 씨는 게임에 몰입해 있다. 집에서도 게임을 하기 때문에 심심할 틈이 없다고 했다. 보영 씨가 포켓몬게임을 한다고 해서 혹시 포켓몬고를 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내가 2017년부터 수집한 내 포켓몬고의 포켓몬들을 보여주었다. 보영 씨와 포켓몬고 친구를 맺었다. 나는 친구 맺는 법을 가르쳐 주고 다음 시간에 포켓몬도 교환하자고 했다. 보영 씨가 좋은지 계속해서 소리 내어 웃었다. 복지사 선생님들도 정말 좋아하는 거 같다고 했다.

수영선수인 지영 씨는 포켓몬고를 깔 줄 모른다고 했다. 다음 주에 같이 해보자고 얘기했다.

종열 씨는 갈수록 글쓰기 실력이 늘어간다. 혼자서 척척 써내려가는데 다음 문장에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고 있을 때 힌트를 주면 완성된 문장을 하나씩 만들어낸다. 종열 씨는 요양병원에서 청소일을 한다.

교실 안에 있는 친구 소개를 마치고 지금은 만나지 않는 옛날 친구에 대해서 적어보자고 했더니 종열 씨가 한 친구에 대해서 적었는데 2018년 생애사쓰기에 참가했던 수영 씨 같았다. 나는 종열 씨에게 혹시 시 잘 쓰는 수영 씨를 말하는 건지 물었다. 안경 쓰고. 종열 씨가 맞다고 했다. 수영 씨는 감정이 풍부하고 슬픔이 가득차 있었다. 자주 울었는데 감정기복이 심해 약을 먹었고, 지적장애가 있었지만 모든 글을 운문으로 쓰는 재주가 있었다. 나는 그때 수영씨에게 우리 복지관 최고 시인이라고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럴 때마다 수영 씨는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입을 막고 웃었다.

목소리가 카랑카랑한 채은 씨도 내가 아는 이름을 적었다. 은혜언니가 보고 싶어요. 글씨도 동글동글 예쁘게 잘 쓰는 채은 씨는 정말 귀엽다. 오늘 나는 채은 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채은 씨는 알고 있어요? 본인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채은 씨가 부끄러워하며 크게 웃었다. 나는 채은 씨에게 이 글을 선생님이 다른 곳에 가서 소개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채은 씨 이름은 밝히지 않겠다고 했다. 채은 씨는 좋다고 해줬다.

슬미 씨는 오늘도 학교 다닐 때 자기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했던 친구에 대해서 적었다. 내가 채은 씨에게 글에 대한 동의를 구하는 걸 듣자 슬미 씨가 자기 노트를 가지고 와서 자기 것도 찍어서 소개해달라고 했다. 대신 실명은 빼달라고 했다. 슬미 씨는 맨 아래 “나는 이제 스물 아홉 살이다. 하지만 나이 먹는 것이 싫다!”라고 적었다. 나는 슬미 씨에게 “선생님은 내후년에 오십살 되는데 어떻게 하라고요.” 라고 농담을 걸었다. 슬미 씨가 “그래도 선생님은 정말 동안이십니다.”라고 대답해줬다. 껄껄껄.

정훈 씨는 내가 한 마디 물어볼 때마다 한 마디씩 대답했다. 종열 씨와 직업훈련을 같이 했는데 자기에겐 어려운 축구게임을 종열 씨가 잘 하더라는 기억을 말해줬다.

보영 씨는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해서 “오늘 새 게임친구가 생겼습니다. 친구의 이름은 이하나 선생님입니다.”라고 적어주었다.

쓴 글을 발표하는데 다들 사랑이 듬뿍 담겨있다. 좋아하는 사람, 그리운 사람, 친구에게 사랑한다고들 적었다. 수업이 끝나고 나는 홍찬 씨에게 다시 한 번 인사를 해보자고 부탁했다. 홍찬 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와 눈을 마주치며 차렷, 열중 쉬어, 경례를 했다. 홍찬 씨는 “이하나 선생님”이라고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다음 주에 야외 활동을 나간다는 공지사항을 들으며 나는 교실을 나왔다. 홍찬 씨가 내 이름을 기억해주고, 이름을 불러준 것이 감격스러워서, 오늘의 수업일지를 적는다.

오늘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하는 날이다.

*사진은 채은(가명) 씨에게 허락 받은 채은 씨의 글.

*참가자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안양시의 수리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는 2018년, 2019년에 이어 다시 발달장애청년 생애사쓰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