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포 주인

집을 나서면 삼거리가 있다. 늘 내가 보는 방향에는 오래된 동네서점을 사이에 둔 편의점 사잇길이다. 동네서점은 길거리 모퉁이에 있다. 서점 옆에는 20년은 되었음직한 자전거포가 있다.
 
이곳으로 이사왔을 때 아이는 다섯 살이었다. 아이는 보조바퀴가 달린 토마스 자전거를 탔다. 1년이 지난 뒤 아이는 보조바퀴를 뗄 수 있게 되었고 우리는 작아진 자전거를 질질 끌고 자전거포에 갔다. 아저씨에게 보조바퀴를 떼 달라고 부탁했고 나는 분홍색 알루미늄 자전거를 그 집에서 샀다. 아저씨는 그 자전거가 얼마나 좋은 건지 유난스럽게 강조했다. 길 건너 자전거전문점에서 샀던 28만원짜리 자전거를 도둑맞고 난 뒤였다. 일곱 살이 된 아이는 더 이상 토마스자전거를 탈 수 없었다. 아이의 키에 맞는 하얀 자전거를 사려고 했더니 아저씨가 토마스자전거를 가져오면 버려주겠다고 했다. 군데 군데 낡은 토마스자전거를 다시 질질 끌고 아저씨에게 갔다. 아저씨는 우리에게 새 자전거를 팔았다. 며칠 뒤 그 자전거포에는 아이가 타던 토마스자전거가 말끔하게 고쳐져 걸려 있었다. 친하게 지내는 동네 언니는 아이의 자전거를 그 집에서 샀는데 녹이 슬어 있었다. 아이 아빠가 자전거포에 가서 아저씨에게 화를 내고 새 자전거로 바꿔왔다. 내 아이의 토마스자전거는 오래도록 팔리지 않았다.
 
겨울이 지날 때면 자전거는 뻑뻑해졌다. 가슴이 뻑뻑해진 걸 풀려면 자전거도 풀어야 했다. 봄이 되면 아저씨에게 가서 손을 봐달라고 하고 바람을 새로 넣었다. 가끔 미안한 마음에 자물쇠를 하나 더 사기도 했다. 올 봄은 어쩌다보니 온데간데 사라져 자전거를 베란다에 넣어놓고 꺼내지도 않았다. 지난 달 어느 휴일에 아이는 자전거 바람을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전거포 아저씨에게 다녀오라고 했다. 금새 다녀온 아이는 자전거가게가 문을 닫았다고 했다. 아저씨가 문닫는 날이 많아졌다고 생각했다. 한 번 손 봐달라고 해야겠야지, 결심은 굳건하지 않아 미적거리다 5월 말이 되었다.
 
도서관에 책을 돌려주러 가는 길에 자전거가게 셔터가 닫힌 것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최근 1년 사이에 그 전과 다르게 더러 문이 닫혔던 거 같다. 자전거포는 밖에 자전거를 열 대 정도 세워놓고 몇 대는 걸어놓기 때문에 문을 닫는 일이 여간 성가시지 않을 것이다. 자전거포에 가까이 가자 상중이라는 글자가 쓰인 흰 종이가 붙어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아저씨네 누가 돌아가셨나보다. 나는 한 두 걸음 옮기다가 다시 와서 그 글씨가 쓰인 색바랜 셔터가 맘에 들어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저녁으로 냉면을 먹었는데 냉면집에서 녹슨자전거를 사서 남편이 한 판 붙었던, 그 언니를 만났다. 저녁나절 개를 데리고 아파트단지를 휘휘 돌며 전화통화를 했다. 냉면집에서 만난 언니도 어린 개를 데리고 나와 벤치에 같이 앉았다. 한참 다른 얘기를 하다 그 언니가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자전거집 아저씨 죽었대.”
 
지난 주말 자전거포 주인은 응급실에 실려 갔다. 간경화로 고생을 하고 있었고 응급실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우리는 고인이 되어버린 그 아저씨가 낮에도 항상 술에 취해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얼굴이 검게 변한 것도 떠올렸다. 언니는 그냥 햇볕에 그을린 것 같았다고 했고 나는 햇볕에 그을린 피부색과 간이 안 좋은 사람의 낯빛은 다르다고 말했다. 우리는 대낮에 그 자전거포에서 아저씨와 함께 술을 마시던 택시기사가 운전을 해서 가는 걸 보고 어머어머 미쳤나봐 하며 호들갑을 떨었던 걸 기억했다. 자전거를 고치러 갈 때마다 어두컴컴한 실내에서 소주를 마시며 티비를 보던 아저씨의 굽은 등을 생각했다.
자전거포 셔터에 붙은 상중이라는 글씨는 본인상을 말하는 것이었다. 상중, 이라는 글자 아래는 자전거 수리 맡기신 분은 연락하라는 전화번호가 따로 적혀 있었다. 사람은 죽었는데 일상은 밀려있다.
 
아저씨는 외로웠나보다. 좋아하는 술을 마시며 스스로를 서서히 죽인 사람. 가끔 바가지도 씌우던 사람, 거짓말도 하던 사람, 어깃장도 놓고, 허풍도 떨던 사람. 키가 작고 단단했던 사람. 이 동네 사람들은 다 아는 사람. 그냥 그런 사람.
 
자전거포 아저씨가 죽었다.
나는 삼일째,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의 죽음이야기를 쓰고 있다.
나에겐 아직 그 아저씨에게 산 자전거가 남아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22원 그리고 10원

 
지난 금요일 롱바이라는 동네에 갈 일이 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출발을 했었다.
날씨는 갑자기 추워졌고, 시간은 촉박해, 털모자와 목도리를 하고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보니 땀이 나서 옷은 젖어가는데 바람이 칼같아서 속도는 나지 않았다.
이제는 아무렇게나 아플 수도 없는 생활임을 알고 있었다.
자주 가던 시엔시아루 스타벅스앞에 다다라 자전거를 묶어놨었다.
그리고 오늘 저녁 자전거를 다시 찾으러 갔다.
 
원두커피가 떨어져 가서 4봉지를 사면 한봉지를 꽁짜로 주는 스타벅스 수첩에 도장을 한 개 받으면서 골드 코스트를 가장 굵게 갈아달라고 했다. 그리고 22원을 내고 작은 컵에 담긴 카페 모카를 주문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겨울. 스타벅스에서는 붉은 색 크리스마스 종이컵을 쌓아놓고 있었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마시고 갈 것이라 머그컵에 커피를 담아주었다. 아마 전세계 어디를 가도 같은 노래가 나오겠지, 스타벅스에서는 조용한 캐롤이 나오고 있었다. 언제나 그 곳의 음악은 들릴 듯 말 듯 하다. 언제나처럼, 하얀 건물로 된 시엔시아루 스타벅스밖의 야외테이블에는 독한 연기를 내뿜는 홍쑤앙시라는 담배를 피우는 상해의 중년남자들이 하나 둘 앉아있고 안에는 노트북을 펼쳐놓은 남자와 여자들, 광동어를 하는 사람들, 일본어를 하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아있다.
우리가 늘 앉던 2층 창가엔 자리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커피를 들고 1층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커피를 다 마시는 그 시간을 기다렸다.
 
묶어놓았던 자전거의 자물쇠가 열리지 않았다. 자물쇠가 잠겨버린 자전거는 매우 무거웠다. 튼튼한 자물쇠가 굴러가지 않는 자전거 바퀴에 끼어 타이어의 한 쪽 바닥만 긁히고 있었을 것이다. 장기판을 벌리고 있는 자전거 수리공을 찾아 자물쇠를 펜치로 끊어 버리고 새 자물쇠를 샀다. 그는 나에게 자물쇠값 20원을 달라고 했고 수공비는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 수리공의 옆에 써 있던 回收 香煙이라는 글자를 보면서 담배를 돌려받아 무엇을 한다는 말인가를 고민했으나, 나는 그에게 묻지 않았다.
 
10미터도 가지 못해서 자전거 뒷바퀴가 펑크 났다는 것을 알았다. 다시 자전거를 끌고 가 그에게 바퀴에 바람을 넣어달라고 했으나, 타이어는 바깥쪽도 안쪽도 모두 펑크나 있었다. 언제나처럼, 자전거 수리공들이 모두 그러는 것처럼, 안쪽 타이어를 끄집어 내어 바람을 넣었다가 더러워진 물이 담겨있는 세수대야에 타이어를 부분씩 담궈서 물이 새는 부분을 확인한다. 그리고 은박지로 된 강력한 테잎을 붙이는 것이 이들의 수리법이다. 바깥 타이어는 어떤 물리적인 힘에 의해 찢어져 있었다. 오는 길에 찢어졌는지, 누군가가 내 자전거를 가져가려다가 자물쇠 열기에 실패하고 화가 나서 타이어를 찢어버렸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타이어안에 못쓰게 된 폐타이어의 조각을 이어붙여 자전거는 다시 달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2원을 다시 주었다.
키가 작은 그 남자는 아까 자물쇠를 살 때 얘기했으면 다시 2원을 주지 않아도 됬을 거라며 웃었다. 22원. 커피값, 그리고 자전거를 고친 수리비.
 
슈주허를 넘어오는 길에 달이 커다랗게 떠 있는 걸 보고, 아이를 안고 포르노 CD를 파는 여자들을 뒤로 한 채 사진을 찍었다. 문혁때나 썼을 법한 군청색 모자를 쓴 노인이 길을 잃어서 그러니 10원만 보태달라고 했다. 검은 핸드백을 메고 동그란 항아리 몸을 가진 노부인이 그 뒤에 따라 서 있었다. 팅부동이라고 거절을 했으나, 이미 나는 그들의 말을 모두 알아듣고 있었다. 지갑을 열어 10원을 건네는 나에게 그들은 핸드폰 번호를 달라고 했다. 내일 갚겠다고.
나는, 괜찮다고, 조심해서 가시라고 인사를 했다. 설령 그들이 거짓말을 했더라도, 내 양심은 뿌듯한 것이었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도둑이 되거나 거지가 된다. 그들은 어느 편이었을까. 정말로 길을 잃은 노부부였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비슷한 방법으로 구걸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거지에 비슷한가, 도둑에 비슷한가. 모든 것은 명확하지 않다. 어디쯤엔가 비스무리하게 서 있는 것이었다.
 
22원짜리 커피를 사 먹고 자전거를 타고 슈주허 다리를 건너던 나처럼.
 
2004. 11. 28.

자전거 타는 아이

며칠 전에 본 풍경이다.
집 앞에 나서면 좁은 4차선 도로가 있고 500미터쯤 나가야 16차선쯤 되는 대로가 나온다.
내가 어딜 가든 항상 대로앞에서 우회전이나 좌회전을 하게 마련이고 대로 바로 앞에 횡단보도가 있다. 신호등이 잘 안 보일 때가 있고 여기까지는 동네골목이나 마찬가지라 늘 천천히 움직인다.
가끔 버스가 뒤에서 엄청 빵빵거리지만.

저녁이었다. 7시쯤 되었다. 사방이 완전히 어두웠고 저녁의 동네마트는 북적거렸다. 나는 그 날 우회전을 하려고 뼈다귀해장국집 앞 횡단보도 앞에서 일단 멈췄다. 보행신호가 시작되었고 마트에서 장을 본 사람들이 길을 건넜다.

그 중에 자전거를 탄 꼬마아이가 있었는데 엄마 아빠와 함께 마트에 다녀오는 듯 했다. 아빠의 손엔 마트 비닐봉투가 들려져 있었다. 횡단보도에 못 미쳐 아이가 자전거 안장에서 미끄러졌다. 요즘 나오는 어린이 자전거엔 짐칸이 없다. 아이의 궁둥이가 주루룩 빠지면서 바퀴 바로 위의 플라스틱 받침대에 엉거주춤하게 걸쳐졌고 아이는 중심을 잃었는데 신호등이 짧다보니 애 아빠가 애 손과 자전거를 같이 잡고 질질 끌기 시작했다. 애 엄마로 보이는 사람은 일찌감치 건너 호주머니에 손 넣고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둘을 보고 있었다.
애아빠는 왼손엔 마트봉투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중심 잃은 자전거와 아이를 한꺼번에 질질질 끌고 있자니 아이가 드디어 꼬라지가 났다.

으앙! 하고 한 쪽 다리가 하늘로 한 번 올라갔다가 바닥에 완전히 자빠지려던 아이는 벌떡 일어나서 거세게 울며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횡단보도 바로 앞이었고 신호는 이미 끝났다.

애 엄마는 호주머니에서 손을 빼지 않고 뭐라 뭐라 말을 했고 아빠는 한 숨을 쉬는 사이 아이가 도로로 돌진했다. 나는 우회전을 할 수 있도록 신호가 바뀌었지만 불안해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애 아빠가 아이를 거세게 잡아당겼다. 나는 아이를 덥썩 들어올려주길 바랐으나 아무도 그러지 않았고 아이는 두 번째 내 차 앞으로 뛰어들었다.

창문을 내리고 “애를 좀 안아요!” 라고 하고 싶어서 창문을 살짝 내렸는데 애 아빠가 아이를 인도 안 쪽으로 깊숙히 밀어넣고 한 손으로 마트봉투와 자전거를 붙잡고 있었다.
아이는 분이 풀리지 않아 계속해서 울었고 애엄마는 아이 등짝을 두 번 후려갈기고는 다시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아이아빠는 보따리와 자전거를 끌고, 아이는 엉엉 울며 제 부모를 따라갔다.

저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횡단보도를 멋지게 건너는 미션을 수행하지 못해 엄청나게 화가 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할 수 없는 게 너무 많아 매일 매일이 도전이고 그래서 힘겨워한다. 아이에 따라 다르지만, 도전을 즐기는 정도도, 실패했을 때 악다구니를 쓰는 정도도 모두 다르다.

그 부모가 아이의 마음을 한 번이라도 헤아려 주면 좋았으리라 생각했다.

그러자마자 나는 얼마나 그러고 있는지 점검해보았으나 역시 잘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오늘도 나는 아이의 투정과 계속대는 깐족댐에 화를 냈다. 왜 그러는 지는 화를 내고 난 다음에 알게 된다. 사과를 하지 못하고 아이를 재웠다. 자기 전에 가슴이 답답하다고 했다.

아홉살을 복잡한 감정을 느낄 수 있으나 처리할 수 없는 나이이다. 그건 어른이고 애고 미성숙한 인간에겐 언제나 난제다.

오늘은 많이 미안했다.
어떤 한 가지 사건이, 아이에게 전달하는 메세지가 수십가지여서 그게 어렵고 버겨울 때 아이들은 짜증을 내고 깐족대고 장난을 치고 약을 올리고 말을 안 듣고 주제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꺼낸다.

아이가 곤히 자고 나니, 자전거를 못 타서 분통이 터지던 그 아이가 생각난다.

2014. 1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