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다는 말

예민한 아이는 새벽녘 제 부모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으면 곧잘 잠에서 깬다.
새벽 2시 50분. 자리에서 일어나 멍하니 앉아 있던 아이가 에미를 부른다.
엄마 저기 뭐가 있어.
엄마 저기 뭐가 이상해.
빛에 비친 그림자였거나, 안방에 숨어 들어온 늙어가는 개였을게다.
괜찮아 괜찮아. 아이를 다독여 다시 재우고 나도 모르게 아이가 가르킨 방향을 외면한다.

무섭다는 말.
언제 해봤을까.
기억이 없다.

아이 무서워.
아이 두려워.

이 아이는 나를 대신해, 무섭고, 두렵다는 것을 이야기 해 주는데,
내 기억속의 나는 당췌, 무섭다는 말을 입밖으로 내뱉어 본 적이 없다.

아이가 묻는다.
엄마는 세상에서 뭐가 제일 무서워?
글쎄…
한 참을 생각해도 싫은 건 있어도 무서운 게 뭔지 알 수가 없다.

그렇게 견고하게 만들어 온 밖에 내세우기 위한 자아는 이제 세월의 더께를 입어 더욱 더 곤고해진다.
딱딱하게, 움직이지도 않고, 석고상에 이끼가 끼듯.
무섭다는 말, 해 본 적도 없이, 이제는 무섭다고 말하기도 쑥스러운 나이를 먹었다.

그 모든 것들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스스로 무장하여 갑옷을 입혀 대문앞에 세워놓은 저 것이.
이제는 나인 척 하고 수십년을 살아서, 자기가 나 인 줄, 내가 자기인 줄, 나도, 그것도 착각하고 있다.

경리장부 20년 주물러, 자기가 대표이사 인 줄 아는 경리직원처럼.
그렇게 되어버렸다. 주객의 전도.

무섭다는 말.
누구에게 할까.

어느 봄밤, 아이를 재우고 나와 벚꽃 사진을 찍는 나를 마주쳐, 술에 취한 채 흐느적대면서, 옆에 한 참을 아무 말 없이 서 있던 그 날의 당신을
이 밤, 생각한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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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31.

2004년 12월 1일 -자전거 고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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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1일

이 날.
이 날 아마 날씨가 약간 춥긴 했고,
며칠 째 우울감에 휩싸여 있었을거다.
과외를 가는 길이었고,
길을 잘 못 들었는데 자전거마저 고장이 났었지.
그래서 길에서 만난 자전거 수리공에게 자전거를 고쳤는데, 아마 그 수리공이 터무니없는 값을 불렀을거야.

근데 그 터무니없는 값이라는 게 12위안이거나 20위안이었을게야. 그 때 아마 스타벅스 커피가 30위안이 좀 안됬나 그럴껄.

이 날도 분명히 시엔시아루 스타벅스에서 6시간 정도를 뭉개면서 외국인 유학생이라는 특권 아래서 무료 시음료도 몇 잔 받아먹고 그랬을지도 몰라.
이 날이 아니었다 해도, 그 전 날 그랬거나, 그 다음날 그랬거나. 아무튼 스타벅스를 도서관 삼아 다니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리고 자전거 수리공과 흥정을 하는 거지. 한 잔의 커피값도 안되는, 그 저녁의 노동에 대해서.
손톱밑의 때는 평생을 닦아도 지워지지 않을 것만 같은, 호적은 분명히 없을 게 뻔한, 자기 이름이나 겨우 쓰면 다행인. 그 남자와 길바닥에서 말야.

그리고 슈주허를 넘으며 생각했겠지.
나는 대체 뭔가.
나의 돈은 무엇이고, 저이의 돈은 무엇인가.

가난이 내 영혼을 잠식하면,
나는 사기꾼이 될까 거지가 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전거를 밀었을거야….

도시, 한 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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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재우다 잠들었고
새벽 2시 반이 넘어 깼다.
내가 자고 일어나면 무조건 밖에 나가는 줄 아는 개를 데리고 아무도 없는 길의 짧은 산책

아무도 없는 새벽,
신선한 공기를 마시러 나간 게 이런 풍경.
모두가 벽으로 둘러쳐진 아파트, 똑같은 풍경이라니

참으로 재미없고 정떨어진다.

아파트 생활 6년.
다시 또 생각한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2013.1.30.

어느 추운 밤 이야기

1.

딴따라나 재주꾼이나
그가 사는 곳, 그가 머무는 자리가 바로 작업실이고 무대다.
어디에 가면 화양연화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바닥을 치는 자존감의 발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산이 좋지 않으면 저 산도 좋지 않다.

2.
할머니는 언제나 오만가지 재주 있는 년이 밥굶는다 했다. 오만가지 재주 중에 하나씩 버리는 연습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졌다.

3.
한 밤의 도로엔 바스러진 유리조각과 신속히 달리는 렉카차가 있다. 멍하니 위험을 인지하지 못하고 서 있는 사람과 이 나라의 척박함에 진절머리 내는 청춘이 있다. 그래도 내일은 낫지 않을까 하고 믿어보고 싶지만 대부분의 내일은 어제와 비슷했다. 그저 그 중에 맘에 들었던 어제를 꼼꼼히 복기하고 재현하는 일로 내일과 모레를 채워보는 것이다.

4.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저 듣는 자들이 있다. 세상에 수없이 넘쳐나는 문자들이 나무를 베어낸 종이로 책이 되어 팔린다. 얼마나 말하고 싶었는가. 초대형 서점에 서서 수없이 많은 무명씨들의 감정의 배설물을 들여다 본다. 그리고 나 역시 어딘가에 끊임없이 싸지르고 있다.

5.
도시는 끊임없는 배설의 공간.
사람들은 악귀같이 꾸역꾸역 욕망을 먹고 짐승보다 격하게 싸지르며 밤을 탕진한다. 멍하니 있는 시간은 비생산적이고 스스로를 컨베이어벨트에 올린 채 끼륵끼륵 기어간다. 욕하고 째려보고 분노를 배설하여 허기지면 위산과다를 못 참고 또 꾸역꾸역 음식을 마신다. 모두 나와 같이.

6.
태생이 그런 것을 어쩔 수 없다는 섭리가 있다. 그리스 신화의 수많은 신들은 광폭한 절대 권력을 가졌다. 호메로스가 음모론의 기초라는 얘기를 들었다. 오이디푸스의 재앙은 오이디푸스 그 자신이었다는 말이 있다. 열심히 앞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절대 선이 아닌 이유가 그것이다. 오이디푸스는 잘나고 용맹했다. 그게 그를 망쳤다. 공자의 知天命과 오이디푸스의 저주는 닮아있다. 그리스의 난잡한 신들은 지금의 재벌과 권력자의 모티브다. 인간이 사는 방법은 과연 무엇이 가장 현명한가. 그 답에 적어도 한 발은 가까워진 거 같기도 하다.

7.
움베르트 에코는 파리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은행원이 되어서라도 파리에 살고 싶다” 고 말했다 한다.
그 말을 열 번쯤 곱씹어 본다.
은행원이 그닥 나쁜 직업 같지도 않다. 수많은 군상을 관찰하고 퇴근은 제 시간에 할 테니까.

8.
더럽게 피곤한 밤이 깊어간다.
적어도 내게 삶은 언제나 치열해야만 했고 그래서 그게 정당했다.
그렇지 않게 살던 시절이 가장 괴로운 나날이었다는 걸 인정해야겠다.
늘 조금은 부족하고 외로워야 행복했다.
문 닫기 직전의 마지막 손님으로 앉은 라면집에서 추위에 김이 서려 허얘진 안경을 내려 놓고 있자 그니가 말했다.
“너 중국에 있을 때, 안경 바꿔야 되는데 돈이 없다고 했었잖아. 진짜 불쌍했는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돗수가 안 맞아 눈이 피곤해도 아마 나는 행복했던 기억만 남긴 게 분명하다. 그 때는 가난했고 조금 외로웠다.
오이디푸스의 저주와 공자의 知天命 과 그리스 신들의 교만한 장난질이 안경에 서린 김 같았다.

– 어느 졸라리 추운 날 밤.

말하라 기억이여 치유하라 상처여

내앞에 깜빡이를 켜고 지나가는 405번 버스, 그리고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강남세브란스병원

이길을 지날때마다 얼마나 많은 일들을 안고 달렸는가 생각한다
서초 사거리에서 유턴을 하던 일, 급하게 여기 저기 전화를 하며 다시 예술의 전당 아래 우면산 터널을 지난 일 그런 것들 말이다.

여기를 지나면 오른쪽으로 국립중앙도서관이 보이고 그 아래 검찰청과 경찰청이 이어져 있나. 한때 나꼼수라는 팟캐스트에서 열심히 활동했던 정봉주 전위원이 여기서 크리스마스의 구속이 결정된 날 사람들이 모여 역사상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구속 환송회를 했다

프로파일러의 강의를 듣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다. 이 사회에서 경찰과 검찰이 존재하고, 누군가를 단속하고 누군가가 누군가를 강제하고 재판하고 판단하고 단죄하고 구형하는 시스템, 그런 권리가 과연 인간에게 있는가 아니면 인간이 만든 시스템 위에 군림하는가 생각한다. 법안에 있는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해 밖에있는 누군가를 내쳐야 하는 것이 법의 기본이라던 아무리 읽어도 삐딱함이 느껴지는 조르주 아감벤을 떠올린다.

인간 세상에 대해서 유지되는 그 시스템의 효율성에 대해서 사람들은 한 번이라고 고민하고 살까. 특정한 계급이 세상을 엄호한다는 핑계아래, 한없이 자행되는 폭력의 연속성을 생각한다.

인간이 얼마나 처참하게 걍팍하고 잔인할 수 있는지 알고 싶을 때가 있다. 사람의 인격의 밑바닥을 보고 싶을 때마다, 나는 살인범이 사람을 죽이고 토막내고 그러면서 일상을 살아가는 영화를 즐긴다. 어쩌면 그건, 그래, 내가 겪은 폭력의 역사는 매우 고상한 수준이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강요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모두 침묵하고 살고있다
말해야 한다.

나보코프의 말이 떠오른다.
말하라. 기억이여.

나는 얼마나 말 할 수 있 는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