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펭귄] 11. 우리는 일터의 꽃이 아니다!

2018.11.14

https://together.kakao.com/magazines/987

예쁜 알바 뽑습니다 

‘예쁜 알바 뽑습니다’

‘외모에 자신 있는 분 우대’

‘결혼 예정 시기 표기 필수’

‘신장 165cm 이상’

보는 순간 매우 기분이 상하지만, 한편으로는 낯설지 않은 문구들입니다. 고용에 있어서 남녀의 평등한 기회와 대우를 보장하기 위해 제정한 법률인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된 지 30년이 넘었지만 이런 차별적 채용 공고 문구는 여전히 우리 사회 고용 과정에 성차별이 존재한다는 단편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영화관 아르바이트 직원들의 시위 (출처 : 알바노조)

직장 내 성희롱, 임금 차별뿐 아니라 임신을 하면 다른 직원들에게 피해가 간다며 순서대로 임신하라는 지령까지. 일하는 현장에서의 여성에 대한 차별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Metoo 물결이 파도치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1948년 헌법이 제정되었을 때, 이미 남녀평등과 남녀의 동등한 근로권을 보장하였고 1953년 근로기준법에 여성근로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했습니다. 그러나 산업은 남성 중심으로 움직였고 여성은 남성의 보조역할에 그쳤습니다. 고용평등의 조치는 40여 년간 별 효과 없는 ‘말로만 법률’이었던 것이죠. 

일하는 여성들의 목소리 

일하는 여성들의 문제는 여성들 스스로가 해결하기 위해 애써왔습니다. 차별을 일삼으며 불평등한 회사 운영을 하는 회사측에 항의하고 여성은 산업의 보조인력이라는 사회 분위기에 맞서 싸워왔습니다. 이 문제를 스스로 소리 높여 외치고 사회에 알렸던 퍼스트 펭귄들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 성평등에 대한 인식과 제도가 발전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긴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직장 내 성평등을 위한 긴 싸움]

나의 이름을 불러주세요

70년대 이 나라의 여성들은 산업현장의 최전선에 있었습니다. 1970년 근로기준법을 외쳤던 전태일 열사도 여공들의 처참한 삶에 주목했습니다. 1980년대에 들어서 노동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여성들의 노동운동도 힘차게 일어섰습니다. 『열세 살 여공의 삶』이라는 책에는 공안당국자가 “한글도 모르는 여공 따위”라는 모멸을 서슴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전에 여성노동자들은 ‘몇 번 시다, 몇 번 미싱사’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이들은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하며 이름을 되찾았다고 기억합니다.

1970년대 여공들의 근무모습 (출처 : 구로구청)

1980년대 들어서 여성주의 의식이 확산되고 여성근로자들의 노조운동도 더욱 활발해지면서 고용의 평등한 기회와 대우, 모성보호를 명시한 고용평등법의 제정이 대두되었습니다. 여성만의 문제가 아닌 노동자 전체의 권익보호를 위해 여성연합을 비롯한 여성단체는 끊임없이 남녀고용의 평등을 주장해왔습니다. 그 결과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되어 모집, 채용, 교육, 배치, 승진, 정년, 퇴직 및 해고에서 성차별을 금지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남녀고용평등법의 등장 

‘대한민국 헌법’의 평등 이념에 따라

고용에서 남녀의 평등한 기회와 대우를 보장하고 

모성 보호와 여성 고용을 촉진하여

남녀고용평등을 실현함과 아울러

근로자의 일과 가정의 양립을 지원함으로써

모든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제1조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되었어도 성차별에 대한 정의가 모호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규정이 애매하고 법 실행의 강제규정도 없었습니다. 남녀고용평등법을 추진해 온 퍼스트 펭귄들은 법 제정에 안도하지 않고 계속해서 미흡한 법의 개정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1988년 남녀고용평등법 개정 캠페인에 대한 한겨레 기사
(출처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평등한 노동, 건강한 모성”, “평생 평등 노동권 확보”라는 슬로건으로 여성단체들은 1990년대 새로운 운동을 펼쳐나갔습니다. 결혼과 임신으로 인한 고용 중단, 아이를 돌봐야 해서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사회적 조건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산전 후 휴가제도 도입과 남편도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법제화할 수 있도록 애썼습니다.

남녀고용평등을 외친 퍼스트 펭귄들은 여성이 육아를 전담하는 사회적인 분위기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가정마다 육아분담을 해야한다고 개인에게 강조하기 보다 육아분담을 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를 살펴보았습니다. 남녀 모두가 가정생활을 잘 꾸려나갈 수 있는 노동환경이 갖춰질 수 있도록 제도와 정책을 잘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일, 가정이 모두 지켜질 수 있도록

‘남녀고용평등법’은 ‘남녀고용평등과 일 · 가정의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로 그 이름을 바꿨습니다. 이름은 법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데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도 지킬 수 있는 노동조건이 필요하다는 시대적인 요구가 반영되었습니다. 일하고자 하는 자는 누구나 평등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것이죠.

여성이 사회에 처음 진출하는 시점엔 차별이 적더라도, 결혼 후 가사노동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되는 사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많습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남녀가 모두 함께 일하고 가정을 책임질 수 있도록 정책적인 제안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미처 대책을 세우지 못하는 노동현장의 현실을 반영해 취업부모들의 일과 가정생활이 양립할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구체화 할 수 있는 방안들을 제시해왔습니다.

여성 노동에 대한 단체들의 목소리 (출처 : 한국여성단체연합회)

일하는 여성들의 고충으로는 성차별뿐 아니라 직장 내 성희롱 등의 문제도 만만치 않았는데요. 1993년 서울대 신교수가 조교에게 지속적으로 성희롱을 일삼은 일이 사회적 이슈가 되어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습니다. 여성단체들은 현장 활동을 토대로 수많은 사례를 듣고 수집하였습니다. 법 개정과 제정을 위해 연구 활동을 계속하여 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안했고요. 여성단체들은 정부가 여성노동의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고 요구해왔습니다. 2018년 들어 여성 응시자를 의도적으로 탈락시킨 경영자는 징역형을 받기도 하고, 개정된 성범죄 특례법에서는 직장 내 성희롱을 엄단하는 조항이 신설되었습니다.

남녀모두 평등한 노동권을 보장받는 것은 헌법에 적혀 있는 평등권을 지키는 일이며 인권보장의 기본입니다. 노동은 단순한 경제활동을 넘어서 자기 성취와 사회적 효능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유용한 수단입니다. 함께 일하고 함께 돌보는 사회가 이루어져야 성별과 능력으로 차별받는 사람들이 줄어듭니다. 이름 없는 사람들이 시작한 노동운동, 누구에게나 평등한 기회를 보장받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퍼스트펭귄들은 성별로 편을 갈라 싸워온 것이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평등한 노동의 권리와 기회를 빼앗아가려는 눈에 보이는 않는 불평등과 싸워온 것입니다. 퍼스트펭귄들이 꿈꿔온 오랜 바람이 이제야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 기획 : 서울시NPO지원센터, 현장연구자모임 들파

| 스토리 : 유일영 (더 이음 사무국장)

| 글 : 이하나 (hana@allmytown.org)

| 삽화 : 이한비 / 인포그래픽 : 문화공동체 히응


👉🏻 국립여성사박물관 : http://eherstory.mogef.go.kr/

👉🏻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 http://www.yeono.org/ 

👉🏻 한국여성노동자회 : http://kwwnet.org/

엄마의 일요일

일요일,

지난 달에 국립극단 안티고네를 예약했고,

나는 마감을 해야 할 일이 있고,

날씨는 더없이 좋고,

벚꽃잎이 흩날리는 찬란한 일요일이였다.

 

예정대로였다면,

오전에 일찍 일어나 일을 하다가 여유있게 공연장에 가서 연극을 보고 집에 돌아오면 될 일이었다. 어린 아이는 아빠와 함께 있을 것이므로.

 

그러나, 남편은 급작스럽게 출장을 갔고, 그 출장은 늘 급작스러우며, 일정은 전적으로 본인의 사정과 거래처의 문제에 준하기 때문에 변경되는 일은 비행기표를 구하지 못하는 경우 외에는 없으며, 그런 급박한 출장이 잡히는 경우는 주로 내가 모든 스케줄을 변경해야 하는 결과가 있다.

금요일에 남편이 출장을 갔고,

나는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아이와 놀고 시간을 보내고 밥을 해먹이고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려고 매우 매우 애를 썼으며, 토요일엔 맛있는 콩나물과 쭈꾸미를 넣고 맛있는 탕도 끓여 먹었으며, 오늘도 일찍 일어나서 일을 하고 여유있게 연극을 보러 가고 아이는 제 이모에게 맡겨야지 라고 생각했지만, 일은 순조롭지 않아 나는 늦게 일어났고, 아이는 뭉기적 거렸고, 애 이모도 마감해야 할 일이 있어 피곤한 상태라 일찍부터 애를 보내기가, 애한테도 내 동생한테도 미안해서 뭉기적거렸고, 1시간 10분 전에 차를 몰고 공연장으로 출발을 했는데 날씨가 너무 좋은 탓에 길이 엄청나게 막혀서 자동차 전용도로에 진입도 못하고 차를 돌려서 돌아왔으며, 마음을 비우고 아이와 함께 꽃구경이나 하자 하고 호숫가에 갔으나 아이는 가는 길에 차 안에서 곯아 떨어져 버렸으며, 밥을 먹고 몇 가지 구경을 하다가 집에 돌아와서 9시에 아이를 재우고 나의 남은 일정을 소화하고자 했지만 아이는 낮에 푹 낮잠을 잔 탓에 11시가 넘도록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고, 나는 11시 20분에서야 컴퓨터에 앉아서 미진한 일을 하나 마무리 했다.

이건 모두 내가 엄마이기 때문이다.

그건 가정의 경제를 백프로 책임지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며, 육아를 주로 담당해야 하는 환경의 문제이며, 그 와중에도 내가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고 내 일을 하겠다고 붙잡고 있기 때문이며, 결정적으로 고등학력을 보유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예전에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기지배 공부 해봤자 팔자 사나와진다” 라는 말이 바로 이 말이었다 싶다. 차라리 배운 것도 없고 꿈도 없고 돈 벌어다 주는 사내 밑에서 고분고분하게 애나 키우고 엄마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자기 존재가치 따위 단 한 번도 고민하지 않은 채 그것이 당연하다고 믿고 산다면 인생은 오히려 더 풍요로울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는 억울하다거나, 화가 나는 단계도 지났다. 그저 이제는 아, 아직 이 나라에서 배운 여자가 사는 것은 매우, 쉽지 않고, 팔자 사나운 일이구나. 라는 생각을 할 뿐이다.

2013 4.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