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두 마리 

사람들이 북적이는 어느 지하철역 길거리가 훤히 보이는 커피집에 앉았다. 

사람들이 오가고 차가 지나가는 좁은 골목의 입구 비둘기 몇 마리가 좀처럼 움직이지도 않고 계속해서 뭔가를 먹고 있다. 

일행은 계속 비둘기를 바라보며 초조해했다. 좀처럼 비키지 않는 비둘기는 혐오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지나는 차마다 비둘기때문에 속도를 늦추고 조심조심 움직였다. 
종이를 놓고 펜을 하나씩 들고 중요한 계획을 서로 조정하는 중이었다. 비둘기를 눈여겨보던 일행이 탄식을 뱉었다. 

“엇. 아… 저거 뭐야.”
좁은 골목에 깃털이 마구 날렸고 결국 비둘기 두 마리가 납작해졌다. 
오전엔 4년 반을 감옥에서 보낸 사람의 수기를 읽었다. 독방에 살던 징역수는 비둘기 둥지를 만들고 비둘기 알을 기다리고 알에서 깬 비둘기가 다시 돌아오길 애타게 기다렸다. 
길바닥에 납작하게 깔릴 비둘기 두 마리는 아직 있는가, 이미 없는가. 

세상은 복잡하게 움직이고 우리의 수명은 조금씩 줄어드는데 비둘기라도 애타게 기다리던 간절함은 여기에 있을까, 거기에 있을까. 
올겨울은 유난히 쓸쓸하게 온다. 

누군가의 옛이야기를 들으며 술에 취해 졸고 싶은 밤이다. 
11월의 마지막 토요일 

인덕원역에서.

안녕 새.혼.

설날 연휴.
아이와 함께 서울나들이에 나섰다.
남산골 한옥마을에 가서 한옥의 풍경이라도 보여주고 싶었다.
느즈막히 출발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행사는 끝물이거나, 이미 끝났을 것이 분명했다.

지인의 집 근처에 차를 대고 걸어가기로 했다. 아이는 차 안에서 깊게 잠이 들었다. 차를 세우고 아이를 깨웠다. 다 왔다. 다 왔다. 자 이제 일어나야지. 엄마 졸려. 엄마 졸려를 반복하던 아이는 그래도 새로운 나들이에 기대가 되었는지 금새 잠을 떨치고 일어나려 노력했다. 아이를 차에서 끌어내 길을 걷다가 장갑은? 이라고 물으니 차에 두고 왔다고 한다. 다시 차에 돌아가 아이의 장갑을 꺼내는 순간, 뒷 문이 열리는 자리에 오래된 새의 사체를 발견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죽음을 외면했다.

세상에 죽어나가는 것이 어디 한 둘 뿐이랴. 하늘을 나는 새가 땅에 떨어져 죽는 일은 언제나 기괴하게 느껴지지만, 그들도 결국은 죽고 나면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 순리인 모양이다.

한옥마을에서 연을 만들기도 하고 이리 저리 한옥을 구경하며 차례상 지내기의 이야기도 듣던 아이는 신이 났다. 오징어도 뜯어먹고 솜사탕까지 손에 쥐었다. 친구를 만나러 다시 차에 올라탈 때 아이에게 말했다.

“너 차에 탈 때 뭐 발견한 거 없어?”

“뭐?”

“거기 죽은 새 한 마리 있는데.”

“어디?”

아이에게 차 문을 열고 뒤를 돌아보면 보일 것이라 말해주었다.

아이는 차 문을 다시 열더니

“어 진짜네. 새가 죽어 있네” 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이는 종알댔다. 죽음에 대해서 큰 경외감이나 큰 슬픔이나, 두려움이나 거부감따위 없이.

“엄마 엄마, 이제 저 새의 영혼은 다시 하늘로 간거야? 그럼 저 새의 이름은 무엇이라 지어주지? 새의 영혼. 이니까 새.혼. 이라고 지어줄까? ”

시동을 걸고 차가 움직이자 아이가 창문을 내리고 손을 흔든다.

“안녕 새혼아. 잘 있어. 다음에 또 만나. 하늘나라에 잘 가.”

 

할머니의 죽음을 가장 먼저 알고 장례식장에 도착해 눈물을 그렁거리던 일곱살의 손주는 해를 넘겨 여덟살이 되었고, 이제 사람도, 새도 그 영혼이 살아 하늘로 도달하리라 믿는지도 모른다.

안녕. 새혼아. 하늘나라에 잘 가. 훨훨 날아가렴.

이치를 깨닫지 않아도, 무엇인가 배우지 않아도 깨닫는 아이.

아이의 영혼은 무엇이라 이름지을까.

 

2013. 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