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궐선거에 부쳐

몇 년전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주관하는 촛불정신과 나아갈 방향, 관련된 토론회에 참석한 적 있다. 이 토론에서 몇 가지 인상적인 게 있는데 그 중 두 가지 정도만.

한 가지는 한국의 민주주의운동은 3.1운동, 또는 더 나아가 동학농민혁명부터라고도 볼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이보다 더 깊이 나에게 와서 박힌 것은 한국의 시민성이었다.

한국은 위로부터의 민주주의,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과두제, 대통령 중심등 다양한 형태로 소용돌이치며 민주주의를 실천해왔다.

한국의 시민들은 각 양상에 따라 필요한 무기를 그때그때 적재적소에 꺼내들고 활용하며 본인들이 원하는 것을 쟁취해왔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마치 정치인을 숭앙하고 존중하고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선거에 있어서는 기가 막힌 판결을 내려, 정치세력(정치인)의 유효성을 결정한다. 요컨대, 한국에서의 정치인은 시민들이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버리는 존재라, 시민들은 정치세력을 그때의 상황에 따라 사용했다가 가차없이 버리는 방식을 택하며 생존해왔다는 것이었다.

몇 명의 발제자와 토론자가 있었는데, 정치인 사용론에 관해 다수 동의했으며 나 역시 강한 인상을 받았다.

수차례의 선거결과와 촛불집회와 시민들의 지속적인 각종 정치참여, 시위가 이를 반증한다. 제도적 기반이 지배 권력의 것만큼 공고하지 못하고 사회경제적 제도화가 취약하다는 것이 약점이지만 한국 민주화운동은 지속될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

선거가 끝나면 현상을 읽어야할 것이다.

시민들이 버리기로 한 카드가 무엇인지, 무엇을 내세워 무엇을 얻고자 하고 무엇을 폐기처분하기로 결심했는지, 결과가 알려줄 것이다.

나는 언제나 시민들을 믿는다.

당시 토론자료집의 <한국 민주주의 100년의 역사, 4번의 민주혁명>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된 서강대 김동택 교수의 글을 붙인다.

“헨더슨이 한국정치의 특징을 설명하면서 사용했던‘소용돌이의 정치’는 중앙집중화된 권력구조를 지적한다기보다는 과두제를 공격하기 위한 투쟁도구로 중앙정부의 권력을 활용하려는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제에 대한 선호는 달리 선택할 수 있는 투쟁의 도구가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론 사회의 다양한 부분에서 민주화 혹은 민주주의의 제도화를 지향하는 운동이 제기되고 있지만, 문제는 이들의 제도적 기반이 지배 권력의 그것만큼 그렇게 공고하지 못하다. 또 풀뿌리 민주주의가 그 제도적 대안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되지만 그것의 사회경제적 제도화 또한 취약하다. 이처럼 제기된 문제와 문제해결을 위한 제도화 사이의 간극이 좁혀지지 못할 경우, 촛불항쟁을 통해 제기된 다양한 사회경제적 요구들이 해결되지 못할 경우, 한국 민주화 운동의 지속성 경향이 분출할 가능성은 상존한다고 할 수 있다.”

전체자료집은 https://www.kdemo.or.kr/book/data/manual/page/3/post/8477 여기서 볼 수 있다.

그 바닥에 대해서

1.
곽노현 교육감에 대한 이야기를 보수언론에서 미친듯이 쏟아내고 있다.
9시 메인뉴스에도 곽노현 교육감의 부도덕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역겹다.

부산저축은행 관련자에 대한 이야기보다 곽노현 교육감의 부도덕성이 더 중요한 정권이다.

부산저축은행엔 수많은 피해자가 있다.
물론 그들은 못된 교육감으로 인해 수많은 아이들이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건 니 들 생각이다.

곽노현 교육감이 대가성으로 금품을 건넨 게 사실이라면 응분의 처벌이 있을 것이고
그것은 모두 수사가 끝난 뒤 밝혀질 내용이다.
본인은 사퇴하지 않겠다고 했으며 부끄러움이 없다 했으니 기다리겠다.

법적인 함정에 빠져서 설령 구속이 되고 처벌을 받고 사퇴를 하게 되더라도
떳떳하게 당일날 2억원을 선의로 주었다고 밝힌 그 자세를 믿겠다.

오세훈으로 인한 후폭풍을 곽노현으로 덮겠다는 꼼수가 참으로 노골적이다.
박명기 후보자가 7억원을 받기로 했다고 말했다는 것과 그의 법무법인이 바른이라는 것도 너무 빤해보인다.

처음 사건이 발표되었을 때,
애초에 정치를 비롯한 모든 선거와 투표에 관련된 그 바닥에서 얼마나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는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기대는 하지 않았던 바라서 곽노현을 비난하고 싶진 않았다.
그게 관행일 수도 있고 그게 시대의 반영일 수도 있으므로.

대신 명확하게 밝혀진 게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곽노현의 편을 드는 것은 옳지 않다고 느껴졌다. 그러나 이제 하나씩 밝혀지고 있으니 나는 곽노현을 비난하지 않는 것으로 자세를 잡기로 한다.

2.

그리하여 한나라당은 성희롱 발언을 한 강용석 의원 제명에 반대했다.
그를 구제하기로 한 것이다.
대통령의 사돈이자, 순복음교회 집사인 강용석에게 그들은 돌을 던질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쭉 초지일관 한나라당의 색깔을 명확히 표시해 주시길 간절히 바란다.

3.

박지원 대표를 비롯한 야권에서 곽노현 사퇴를 부르짖거나 진보언론이라고 말하는 프레시안에서 조차 사퇴하라고 압박하고 있고, 진중권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누군가는 교육감 직선제까지 손 보려 할 것이니 꼬투리가 잡힌 이상 어서 사퇴시키고 명확한 진보성향의 대타를 내세워 10월 26일 서울시장 재보선과 함께 같이 승리하자. 라는 의도일 수도 있다.

물론 김어준의 지적대로 먼저 쫄아서, 혹은 합리적으로 보이려고 그러는 걸 수도 있다.
둘다 이해하겠다.

하지만 사퇴는 본인이 직접 하거나 수사결과 자격이 박탈당했을 때에 이루어질 것이다.
종용하고 싶지 않다. 법이 밝혀주거나 본인이 밝힐 것이다.

4.

일단 오늘은 한나라당의 선전에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강용석 의원을 아이콘으로 삼아 고군분투 해주시기 바란다.
두달이 미처 못 남았다.

야권에서는 빨리 제대로 된 후보를 내서 선거전에 돌입했으면 좋겠다.
지금 곽노현을 물고 있을 때가 아니다.

5.

내가 왜 이런 글을 쓰고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모르겠다.
이명박 정권은 내가 여태 살아오면서 가장 깊게 정치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한 정권이다.
그래서 많이 배웠고 많이 읽었다.

가카의 꼼꼼한 배려와 국민교육에 대한 애정에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

2011. 8.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