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집

빈 집

 

 

아이들이 물 마시러 들락거리는

이 집은 어쩌면 우물

 

두레박 깊이 내려 시원한 물 한 모금

아니면 이 집은 펌프가 달린 수돗가

마중물 부어대면 쏴아하고 내려오는

녹맛이 나던 지하수

 

벌컥 벌컥 마셔도

아무 일 없이 하루가 잘만 가던

시원한 여름날

 

꼴락꼴락 늙은 개가 물 마시는 소리

와르르르 내 입에 쏟아지는 물 소리

손끝까지 가득한 출렁이는 물소리

물소리 그리고 눈물소리

 

자판을 두들기는 손끝마다 물방울

바닷가 바위위에 맞잡은 손이 떠올라

깍지낀 두 손바닥 손금마다 땀방울

 

턱 아래로 흐르는 진떡한 물줄기

바닷가 바위위의 깻잎쌈이 떠올라

오늘은 어디서 파도의 물방울을 맞고 앉았나

 

쏴아 쏟아질 거대한 파도소리

모든 게 휩쓸려 세상조차 사라지길

뇌수에 가득한 파도소리

한 번도 본 적 없는 파도소리

쏴아하고 부서질 하얀 포말에

세상 모두 휩쓸려 태초로 가길

 

2014. 8. 24.

바다바람

입추가 지나면 바닷물이 찹다는데
주문진 아들바위 다리뻗은 두 연인
회 한접시에 소주 한 병
깻잎에 싸먹는 달큰한 생물의 삶
살아 펄떡이던 삶을 작살내고
오독오독 씹으며 오가는 웃음
맞잡은 두 손가득 이유있는 진땀들

바다멀리 옹졸한 하늘 아래
배롱나무 꽃 진다고
애업고 우는 미친 여편네
차디찬 바닷물이 나는 싫어라
아무 것도 보기 싫다며 얼굴을 파묻는데

어디서 날아오는 비릿한 바닷냄새
생살을 토막내는 거대한 해무
눈 뜬 날 것이 칼날을 세우고 달겨들면
배롱나무 아래 무수히 피어난
하루짜리 버섯보고
멍청하게 웃는 미친여편네

거품물고 하악대기 전에
약 두 알 털어놓고
차디찬 바닷물이 나는 싫어라
찝찔한 바닷바람 나는 싫어라
배롱나무 꽃 진다고
애업고 우는 미친 여편네

2014.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