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이 없는 세상

사무실에서 300미터 정도 가면 한신냉면이 있다.

이 집은 냉면이 다른데보다 1천원정도 싸고 콩국수도 먹을 만 해서 점심시간에 자리가 없다. 가게 주인이 방역수칙도 철저히 지켜서 음식 나오기 전에 마스크도 못 벗게 한다.

오늘은 콩국수를 한 그릇 시키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손님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예닐곱살 쯤 된 여자아이가 들어와 주인여자에게 뭐라 뭐라 하는데 둘 다 마스크를 끼었고 손님들이 왁자하니 주인여자가 크게 망해서 내 귀에도 말이 다 들렸다.

“콩국수 포장? 응. 엄마가 사오래? 엄마 전화번호 알아? 여기 전화번호 적어야 해. 아줌마가 적어줄테니까 불러봐. 응. 공일공. 땡땡땡땡. 호계동 사는 거 맞지? 응. 금방 줄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인여자가 나에게 와서 앞좌석에 아이가 잠깐 앉아 있어도 되겠냐고 묻는다.

나는 그저 흐뭇한 기분이 들어 괜찮다고 했다.

아이가 기다리는 동안 먹으라고 주인여자가 요구르트를 하나 꺼내 빨대를 꽂아 주었다.

아이는 마스크를 살짝 내리고 빨대로 요구르트를 마셨다.

콩국수를 입에 쑤셔넣던 나하고 눈이 마주쳐서 내가 슬쩍 웃었다.

“학교 다녀요?”

“네.”

“몇 학년이예요?”

“1학년이요.”

아이는 말을 할 때는 마스크를 올렸고, 요구르트를 먹을 때는 마스크를 내렸다.

“엄마가 국수 사오라 했어요?”

“네”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도 국수 먹을 줄 알아요?”

“네.”아이가 또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이 뭐야?”

“윤아요.”

“응. 윤아. 착하네. 심부름도 잘 하고.” 나는 꼰대같은 말을 해버렸다.

써보니 귀찮게 많이도 물어봤네.

아이는 요구르트를 다 먹고 주인여자에게 다가가서 “아줌마. 요구르트 다 마셨어요.”라며 빈 병을 내밀었다. 주인여자는 빈병을 받아들고 금방 나올테니 자리에 앉아 있으라고 했다. 아이의 포장 국수가 나오기 전에 내가 국수를 다 먹어버리면, 아이의 국수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이의 포장국수가 먼저 나왔다. 주인여자는 비닐봉투에 국수를 담아 아이에게 들려주고는 “조심해서 잘 들고 가라.”고 일렀다. 혼자 가는 길이 멀진 않겠지.

마스크 위로 반짝이던 아이의 까만 눈동자가 예뻤다. 말을 할 때는 마스크를 올리고, 요구르트를 먹을 때는 마스크를 내리던 아이의 얼굴이 오래 기억날 것 같다. 입이 없어진 세상에서 아이들의 언어는 얼마나 달라질까.

코로나의 거리

확진자가 무더기로 나온 구로 콜센터는 신도림동이라는데, 예식장과 스타벅스도 있는 건물인 모양이다. 지도를 열어보면, 신도림동 뿐 아니라 이 나라의 수도권은 모두 인구밀집지역이다. 신도시는 구역이 나눠진 네모반듯한 모양으로, 구도심은 들쭉날쭉 물길처럼 이리 저리 휘어져 있는 채로. 한때 지하철에는 푸시맨이라는 특정직군이 있었다. 미어터지는 출근길에 한 사람이라도 더 태우기 위해 플랫폼에서 사람을 객차 안으로 밀어 넣는 ‘업무’를 맡은 사람들이 있었단 말이다.

88년 올림픽 이후, 한국사회는 스스로 서구권에 비해 미개한 문화를 가졌다고 자폭하는 일에 열중했다. 그 중 하나가 한국사회는 개인과 개인간의 물리적 거리가 지나치게 가깝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팔꿈치가 닿고 몸이 밀착되는 상황은 수십 년간 이어졌고 내 얼굴 앞에서 말을 하는 사람의 침이 튀는 상황에 익숙했다.
개인에게 허락된 공간을 계속해서 좁히며 도시를 확장시키면서 인구가 너무 많다는 핑계를 댔다. 도시에는 빈 틈이 없고 그저 존재만 하는 땅이 없다. 나이든 사람들은 공터를 보면 안달을 한다. “땅이 아깝다.”

버스에서 타인의 엉덩이와 성기가 밀착되지 않고 지하철에 사람을 구겨넣지 않을 수 있을까? 다닥다닥 붙어 앉아 남의 손을 팝콘인 줄 알고 잡게 되는 영화관이나 건물 용적을 높이려고 딱 네 명만 탈 수 있게 만든 좁은 엘리베이터도 바뀔 수 있을까?

우리에 비해 사람 사이의 거리가 멀고 개인공간을 보장받는다던 말했던 서유럽과 미국도 이제 창궐하기 시작했다. WHO는 판데믹을 선언했다. 신종인플루엔자도 판데믹이었다고 한다. 이제 코로나19의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는 이 상황이 이어질지도 모르겠다. 3월 23일 개학도 연기해야 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같이 쓰는 공간조건이 열악하다는 걸 인정하기 때문이겠다.

오늘까지 남한에서 실시한 검사는 22만 건을 넘겼다. 확진자 통계를 보면 여성이 조금 더 많다. 사람을 만나서 말을 하거나 신체접촉을 해야 하는 직군에 여성들이 대부분 밀집해있기 때문이겠지. 콜센터 몇 개를 더 털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우리의 거리는 얼마쯤이 적당할까. 당신의 침이 내 얼굴에 튀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재택근무가 가능한 직군과 남이 버린 마스크를 맨손으로 집어야 하는 직군으로 나눌 수 있을까.

지난 주말 갔던 대형마트에서는 여전히 무빙워크에서 카트를 잡아당기는 일을 하는 직원이 있었다. 코로나생각하면 중단하는 게 맞지 않나. 게다가 그 직원은 장갑을 안 낀 맨손으로 마스크만 끼고 있었다. 하루에도 수백 명을 만나는 사람에게 왜 장갑을 안 주나. 장갑줘라.

#오늘의결론 #서비스직에는_마스크만주지말고_장갑도줘라

 

2020. 3.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