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를 기다리는 일

내 사무실은 수도권외곽순환고속도로의 진출입로에 가깝다. 건물 뒷편에는 외곽순환고속도로의 고가가 보인다. 들고 나기 편해서 소규모 유통업체가 많다. 경수대로와 외곽순환도로를 맞대고 있는대신 지하철역이 멀고 안양천도 멀고 대중교통은 버스노선 한대뿐이라 임대비가 비교적 저렴하다. 건물1층에는 무인카페가 있고 바로 그 옆에는 무인카페의 1/4 정도 크기 사무실에 각종 자동차사고를 처리하는 업체가 들어와 있다. 우리 사무실의 절반만한 크기에 책상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불은 늘 절반쯤 꺼져 있다. 가끔 주차 문제로 사무실 문을 열면 한 두명은 꼭 엉성한 포즈로 자고 있다.

근무하는 사람은 몇 명인지 헤아리기 어렵다. 내가 기억하는 얼굴만해도 여덟 명쯤 된다. 이들 모두가 그 작은 사무실에 있는 건 아니다. 사무실에는 주로 한 두명이 있고, 두어명은 카페나 편의점, 차 안에 앉아있다. 더러 차 안에서 자기도 한다. 그 외의 사람들은 외근중이다. 업무특성상 이 사무실에서 쓰는 차가 여러 대다. 사무실 건물의 주차장은 총 8대를 대고 그 앞에 평행일렬주차까지 하면 11대 정도를 댈 수 있는데 이 건물의 사업장은 이미 12개가 넘으니 당연히 주차장은 늘 모자란다. 각 사무실별로 1대씩만 주차하는 게 규칙이지만 네 다섯대의 차를 가진 사무실에서 이걸 다 지키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교통사고처리업체의 직원들은 한 두명을 빼고 모두 젊다. 대부분 갓 제대한 듯한 나이로 보이는데 대체로 키가 작다. 여름에는 편의점 의자에 앉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놓고 담배를 피우며 의미없는 수다를 떨다가 전화를 받으면 목소리 톤이 달라진다.

네 고객님, 네 지금 위치가 어디쯤 되실까요. 네 지금 출발하겠습니다.

라는 친절한 말을 내뱉는 이 청년들은 가래침을 바닥에 뱉었고 마시던 아이스아메리카노 플라스틱컵을 그대로 놓고 슬리퍼를 찍찍 끌면서 담배를 끄고 사무실에 들어가 서류철을 들고 주차해둔 차로 간다. 이들이 쓰는 승용차 뒤에는 ”교통사고 처리 업무 차량“이라는 푯말이 붙어있다.

이 사무실과 연계된 카센터는 길 건너에 있지만 가끔 렉카차가 들어오기도 한다. 이 사무실에서 콜을 띄워주는 렉카가 몇 대인지 모르겠으나 우리 사무실 부근에는 늘 서너 대의 렉카차가 서 있고 외곽순환도로 고가 아래에도 두어대씩 주차를 하고 있다. 현란한 치장을 한 렉카차가 사무실 건물을 포위하고 있는 건 별로 유쾌하지 않다. 어떤 렉카차는 신고번호가 444-4444다.

가끔 사무실이 꽉 차서 그런지, 한 두명은 차에서 의자를 제끼고 자기도 한다. 앞뒤로 서로 막아놓고 출차할 때는 차를 빼달라고 전화하며 사는 지라 가끔 차를 빼달라고 전화를 하면 자다가 전화를 받은 목소리일때가 많다. 주차매너도 좋지 않다. 저들이 늘 시급하게 도로로 튀어나가야 하는 사정이라는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협소한 주차장에서 적어도 두 세대쯤 대는 걸 모든 입주자가 이해하고 있다면 룰을 좀 지켜야 하는데, 자기 차 앞에 평행주차를 하지 못하게끔 일부러 차를 앞으로 길게 빼놓는 자도 있다. 수차례 얘기해도 잘 바뀌지 않는다. 종합하면, 이 사무실 하나로 인해 골목 전체가 교통사고 상시대기 상태에 돌입한 모양새가 된다. 주택가였다면 갈등이 더 심했을텐데 대부분 상가건물이고 2층부터 주거용 임대가 많아서 그럭저럭 조용히 넘어가는 편이다.

늘 피곤해보이는 이들이 기본적인 매너도 엉망이라 나는 이들의 삶이 궁금하기도 했다. 유튜브에서 전직 렉카차 기사가 직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상을 찾아보기도 했다.

잠자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교통사고처리업체는 민간업체다. 렉카차의 경우 요즘은 도청 같은 걸 할 필요도 없다. 차 안에 모니터를 여러 개 설치해두는데 고속도로 CCTV몇 개만 돌려보면 다 알 수 있다고 한다.

요 며칠전처럼 눈이 오는 날, 비가 오는 날, 그 이후에 강풍이 불거나 도로가 얼어붙은 날은 교통사고처리업체 직원들은 분주하다. 주차장에 업체 차량이 한대도 없으면 오늘 사고가 많은 날이라고 짐작한다.

우리도 거래처가 서울에서 안양으로 들어오는 길에 차가 퍼져버렸다고 연락을 받아 다급하게 이들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멀리 여러 명이 여행을 가려고 렌트를 문의했는데 가격보다 훨씬 더 좋은 차를 가져다주어서 고맙게 쓴 적 있다. 그래놓고 주차문제로 얼굴을 붉히기도 한다.

이들은 가끔 미워도 언젠가 마주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고, 내가 위급할 때 달려와줄 유일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나는 이 점이 이상하다.

왜 교통사고처리를 민간인들이 하는건가. 물론 교통사고보험을 사기업에서 책임지고 있으니 보험회사에서는 처리와 보상철차의 일부분을 계속 외부로 떠넘겨 외주의 외주를 확장하기 때문이라는 건 안다.

그러나, 왜 이들의 직업은 그 중요함에 비해 불법적, 탈법적인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방치하면서 기본적인 휴식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험난한 노동으로 채워져야 하는가.

누군가를 구할 수 있는 일이면 당연히 존중과 존경을 받아 마땅한데, 이들은 경쟁해서 구조하고, 구난해야 먹고 살 수 있으니, 신호를 무시하며 달리는 도로위의 무법자가 된다. 교통사고를 처리하기 위해 교통사고를 유발한다.

한 밤중에 별 일이 없는데도 요란한 경광등을 켜놓고 삼삼오오 모여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렉카차 기사들을 보며 생각한다.

저들은 정말 사고를 기다릴까. 사고를 기다리는 마음은 어떤 걸까. 가끔 처참한 현장을 보기도 할텐데, 그때는 어떻게 할까. 어쨌든 저들이 하는 일은 공익을 위한 일인데 왜 경쟁하며 먹이를 낚아채는 하이에나처럼 살아야 할까.

국가는 왜 교통사고에 개입하지 않았나. 민간에게 저런 일을 맡기는 게 경제성장과 연관이 있는가. 만일 저런 일을 경찰이나 소방이 했다면, 저들이 경쟁하지 않고 신호를 무시하며 칼치기하며 달려가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다면, 저들의 삶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24시간 내내 대기하며 쪽잠을 자면서 누군가의 사고를 목격하고 카센터로 연결하고 정당한 노임을 받는 일을 존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구조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2년 반동안 주차문제로 내내 모든 업체와 시비가 붙었던 이 처리반사무실은 내년에 계약만기라고 한다. 관리소에서도 주차때문에 골치아픈 눈치다.

전직 렉카차 기사는 유튜브 방송에서 직업에 관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고 했다.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건 시급이 조금 더 높다는 이유로 누군가 재수없게 걸려드는 노동이 되는건가. 정말 이상한 일이다. 이상한 일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