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눈이 녹고 난 뒤 새순이 돋기까지

1. 어제 남태령에서도 경북 산불에 대한 염려가 많았다. 경북 산불로 인한 희생자 추모 묵념도 있었다. 경북에서 온 청년도 있었고.

그 중의 한 참가자의 발언이 기억난다.

기우제는 늘 성공한다, 왜냐하면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다. 기우제에는 제물이 필요하다. 하루빨리 저 자의 목을 쳐서 제물로 삼아 기우제를 지내자. 라는 거였다.

심각하게 들으면 섬뜩하고 한국식 해학으로 들으면 웃을 일인데 경북 산불이 너무 심각하여, 그저 웃기도 어려웠다. 산불이 없었다면 저잣거리 마당극으로 웃을 일이었다.

2. 음모론이 힘을 받는 이유는 불합리하고 불확실한 세상에서 원인을 찾기 어려울 때다. 민중들은 선명하고 명료한 것을 선호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는 건 다수가 알고 있다. 이럴 때 만만하고 가시적인 대상을 끌어올려 “이들이 당신의 삶을 망치고 있다”고 제물을 삼으면 복잡한 세계를 이해하기 지친 사람들은 쉽게 음모론에 휩쓸린다. 따라서 권력을 쥔 자들은 음모론을 사용해 책임을 전가해 이 사태의 잘못이 내가 아니고 네가 아니고 저 악당에게 있다고 덮어씌우면서 권력을 계속 끌고 갈 수 있다. 여기까지가 권력층이 사용하는 방식이다. 배울만큼 배운 연구자들의 이론을 듣고 있으면, 민중이 우매하여 음모론에 쉽게 휩쓸리고 사고를 단절시키는 쪽을 택한다고 볼 수 있다.

3. 과연 민중은 늘 우매하고 잘 휩쓸리고 복잡한 일을 이해하기 귀찮아서 간단하고 명료한 것을 선택할까. 그래서 전광훈에게 휩쓸려갈까. 나는 그 이면에 애도하지 못하는 삶은 얼마나 헤아려봤는지 묻고 싶다. 당황스러운 일이 생겼을 때,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때, 평생을 일군 것들을 송두리채 빼앗겼을 때. 슬퍼하고 슬퍼하며 깊이 울음으로 털어낼 수 있는 시간, 타인에게 고통을 토하고 충분히 위로받을 수 있는 시간이 없을 때. 무력한 인간은 자괴감에 휩싸여 이것을 있는 그대로의 비참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 어떤 거대한 힘이 내 인생을 쥐고 흔든다고 믿고 싶어진다. 그럴 때 떠오르는 것이 음모론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자들이 제시하는 제물이다.

4.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단 하나의 원인이 단 하나의 결과를 내놓지 못하지만, 가장 영향력이 커보이는 것들을 하나씩 억지로 끼워맞춰 가다보면 음모론은 나름대로 논리를 갖추게 된다.

그래서 저들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힐 수 있는 제물을 꺼내놓았다. 중국인 때문에, 북한 때문에, 누구 때문에. 도무지 말이 안되는 것들이니 타겟이 된 자들은 응대하지 않고 해명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사이, 음모는 계속 굴러다니며 더러운 말을 눈처럼 휘감아 거대한 눈덩이가 된다. 오염된 눈덩이.

5. 역대급 산불이라고 한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에 대해 차분하게 살펴볼 시간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집회를 하지 말고 당장 트랙터를 몰고 가서 불을 끄라고 한다. 왜 농민들이 불을 끄러 가야 하나? 타 지역에 사는 농민들이 지리산을 넘어 불을 끄러 가야 한다면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하나? 그럼 집회를 나가는 사람과 불을 끄는 사람은 계급에 의해 정당성을 부여받아야 하나? 집회를 나갈 수 있는 사람은 당신의 허락을 받아야 하나?

총파업을 준비하는 사람은 누구의 허락을 받고 자격을 얻어야 하나?

6. 오늘 페친과 친구에게 오묘한 진리를 얻었다.

눈이 녹고 난 다음 새싹이 나기 전에 산불이 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 사이는 아주 찰라처럼 짧은데 강원도의 경우 그 시간동안 치밀하게 산불감시를 한다는 것이다. 산에 눈이 남아있으면 산불이 나지 않고 새싹이 나도 불이 쉽게 번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가 너무 신비롭게 느껴졌다. 과거에는 낙엽을 긁어다 땔감으로 썼으니 겨울이 지나고 나면 산에 낙엽이 많지 않았으나 요즘은 낙엽을 긁어다 쓰지 않으니 산에는 불쏘시개가 될 낙엽이 가득 쌓여있다고 한다. 강원도는 아직 눈이 남아있겠으나 삼척 남쪽으로는 고온현상이 지속되었으니 눈이 빨리 녹았을 거라고. 그래서 새싹이 나기 전, 산불이 쉽게 날 시간이 길어졌을 거라는 포스팅을 읽었다. (전체공개로 쓰는 분이 아니라 이렇게만 적는다) 그러니 발화의 원인 중 일부는 고온현상이고 그 근본은 기후위기다.

앞으로의 세계는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산은 민간과 가까이 닿아있어 분명히 통제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따뜻해진 기후에 경북의 산불은 왜 미리 대비하지 못했는가. 실화를 저지른 사람을 찾아내고 방화범이 있다고 믿으면 불이 꺼지는가?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방법을 찾아야 하고 앞으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머리를 모아야 할 때 아닌가.

한 놈 잡아다 저잣거리에 매달면 불이 꺼지는가.

희생된 사람들을 애도할 시간을 갖고, 애도에 집중해야 할 사람들은 그 일에 집중하고, 방법을 찾아야 할 사람들은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궁리해야 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7. 눈이 녹고 – 새싹이 나기 전.

지금 우리가 견디고 있는 이 시간.

이 시간을 고스란히 시각적으로 보여주듯이 산이 활활 타고 있다. 가슴을 짓누르는 비통이 머리끝까지 차오른다. 비극을 부르는 재난은 그 사회가 가진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부정적으로 작동할 때 발생한다. 그 비극은 단 한 생명의 죽음일 수도 있다. 그 한 생명의 죽음이, 모든 불행의 시작이기도 하다.

오늘 GPT에 인공강우와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 질문했고, 한국의 산림이 산불에 취약한 이유에 대해 알아봤고, 향후 산의 조림대안에 대해 살펴봤다. 여태 아무 것도 안 한 것이다. 아무 대책도 없으면 비극은 삽시간에 몰려온다. 저 미친 바람처럼.

2025. 3. 26.

안동단상

안동신중앙시장은 오늘 장날이었다고 한다. 아침 10시에 그렇게 인파가 몰렸으니 아마 장날인가보다 생각만 했었다.
시장을 둘러보면 식당도 있겄거니 싶었다. 좁은 골목에 보리밥, 칼국수 간판이 보이길래 서둘러 들어갔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식당이 대여섯개 줄지어 있었다. 그 중에 보리밥이라고 생긴 곳으로 쑥 들어갔다. 나는 괜찮지만 남편은 쌀을 좀 먹어줘야 하는 사람이라 밥을 먹자고 했다.
들어가니 장날이 뭘 팔러온 거 같기도 하고 사러 온 거 같기도 한 할매 몇 명이 밥을 먹고 있었다. 오봉이라 불러야 그 맛이 나는 커다란 꽃무늬 쟁반위에 놓인 그릇은 간단한 보리비빔밥이었다.
혹시 다른 메뉴가 있냐고 물으니 보리밥만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벽면에는 오랫동안 3천원을 받았는데 올해부터 4천원으로 올린다는 글씨가 두 군데나 붙어 있었다.
금세 밥상이 나왔다. 얼갈이배추와 부추, 콩나물, 치커리, 미역줄기를 담은 보리밥에 고추장, 아주 진한 된장, 멸치, 삭힌 고추조림, 보리밥 숭늉이었다.
어떻게 먹냐고 물으니 옆에 앉은 할매가 멸치 넣고 고추넣고 된장은 많이 넣지 말라고 일러줬다.
우리는 쓱쓱 비벼 우걱우걱 밥을 먹기 시작했다. 김치 한 조각 없는 밥상에 양파가 달았다.

“딸같은 며느리, 다 말도 안되는 소리예요.”
할매들의 며느리들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 옆에 앉았던 한 할매는 ”우리 애는 정말 안 그래. 세상 그런 애가 없어.”라며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제사도 지가 다 바리바리 싸가지고 옵니다. 지도 바쁘고 힘들어예. 우리 아들하고 사업을 세 개를 하거든. 그래도 한 번도 싫다 소리가 없어. 나한테 엄마라고 부릅니다. 아주 잘해예. “
그러자 다른 할매가 “어무니 아들이 잘하는갑지예.”라고 한다.
“그렇지. 우리 아들도 그댁에 잘 하죠. 우리 아들이랑 사업도 하고 좋은 차도 타게 해주고, 뭐 돈 모자란 거 없게 해주니께네. 아주 군소리가 없어. 한 마디도 안해.”
“거 다 아들이 잘 해야 되는 겁니더. 요새는 무조건 아들덜이 잘 해야됩니더.”
“매느리가 그만치 하면 어무니 아들도 처가에 그만치 한다는 얘깁니더.”

우리는 마주보며 웃거나 인상을 쓰면서 할매들의 이야기를 감상했다. 밥을 다 먹고 밥값이 너무 저렴해 거스름돈을 안 받고 싶다고 했더니 절대 그러면 안된다며 한사코 거절하셨다.

경북출신의 나이든 사람들과 대화를 하거나, 경상도지방을 다닐 때마다 느끼는 철저한 가부장제, 남녀차별에 관한 인식을 자주 접한다. 처음에는 분노했고 한심하게 여기기도 했으나 지금은 그렇지는 않다. 그저 관찰할 뿐이다. 나는 거기 살지 않으니까.
나는 수도권에서 태어났고, 한국에서는 수도권을 벗어나 살아본 적 없다. 중국에서 잠깐 산 기간에도 국가 최대의 대도시에 살았으니 나는 대도시가 아닌 곳의 정서를 전혀 알 도리 없다.
남성중심으로 모든 것이 돌아가고, 약자를 존중한 적 없는 문화가 계속해서 자리 잡고 있는 것에도 깊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이유가 뭔지 모른다. 멀리 에스키모에게는 이런 문화가 있다더라, 얘기하면서 이제 우리는 ‘그들이 미개해서’라고 말하지 않는다. 물론 인류의 공생을 위해서는 모두가 평등하게 인권을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하겠지만, 아직 인권의식에 대한 각성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한 지역의 오래된 문화를 폄훼할 수는 없다.

경상권에 갈 때는 이천 – 여주를 지나 충북을 거쳐 가게 된다. 첩첩이 산중이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산과 들, 사방이 막힌 것 같이 답답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 안에 골짜기마다 숨어있는 사연들에 대해서 나는 모르기 때문에 입을 닫기로 한다.
안동시는 1,522km2의 면적으로, 안양 면적 58.46km2의 26배이다. 서울은 605km2이라 하니 서울과 비교해도 두 배다. 안양의 인구는 저 면적에 55만 정도 되는데 안동인구는 16만에 조금 못 미친다. 현황의 숫자만으로도 얼마나 삶이 다를지 사실 감도 잡기 어렵다.

그저, 시장통에 앉아 내내 고구마줄기를 까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노인들의 고단한 삶에 대해서만 생각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