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의 과정

오전,
휴대폰을 급하게 열어 메모장을 폈다.

“이해하고자 하지 않으면 세계는 고립된다.”

이 말을 적은 이유는, 오늘 아침 갔던 11시 콘서트에서 옆자리에 앉은 아주머니들이 쉬는 시간에 서울대 김은혜 교수 얘기를 하면서 어디 선생을 고발하느냐.. 는 투의 이야기를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들은 김교수의 인권유린적인 행위에 대해서도 대충 알고 있는 듯 했지만 그녀들의 논점은 김교수의 행위보다 선생을 고발하고 신고할 수 있는 사회분위기에 대해서 적잖이 충격을 받고 있는 듯 했다. 아마 그녀들은 우리 때는 더 했는데 아무 말도 못하고 살았지 뭐.. 우리는 순진했던 거야. 여기서 사고가 끝날 것 같았다.
사유가 거기서 끝나버리면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왜 그런 일이 생겼는가. 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해야 철학이 시작되고 사유가 시작되고 세계를 이해하고 세상을 보는 관점이 만들어 지기 시작한다.

박경철의 “자기 혁명”에 낯선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사유라는 말이 나온다.
뭔가 생경한 것, 낯선 것, 익숙치 않은 것에서 사고가 시작된다.
사유를 끊어버리는 것은 바로 사유하는 자의 뇌다.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은 원죄론적 인간형이다.
세상은 다 그런 것이고 나는 언제나 당하고 살았으며 적당히 체념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에 익숙해진 인생이다.

살다 보면, 많이들 그렇게 된다.
먹고 살기 지쳐서, 세상 풍파에 내 식구를 감싸기 바빠서.
그러나 아주 쉽게 말하면, 부지런하지 않아서이다.
머리를 열심히 쓸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해하지 않으면 세상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늘어간다.
다른 세대를, 다른 인생을 이해하지 못하면 나는 나의 세계 안에서 은둔하게 된다.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야 이해하고자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은 善에서 시작된다.
누군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의 행위가 나의 가치관을 무너뜨릴 위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를 이해해 버리면 나의 가치관과 신념이 무너지고 그로 인해 자존감이 손상될 것 같을 때,
나의 선택에 의심을 하게 되고 그리하여 나의 자부심이 무너질 것 같을 때, 우리는 이해하려는 노력을 거두게 된다.

아주 쉽게 말해 이런 것이다.
“나”는 아이폰이 좋다. 그리하여 아이폰을 구입한 나의 선택에 자긍심을 가지고 싶다. 내 판단이 옳았다고 해야,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지불한 것에 대해서 나 자신을 쉽게 설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가격이 비싸다고 한 그 누군가가 있다면 그에게 충분히 설명할 구실이 필요하다. 아이폰의 우수성과 애플의 철학과 애플이 세상을 바꿀 것이며, 이제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가 시대의 영웅이 되어 주면 설득력은 더욱 큰 힘을 가진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누군가 나의 아이폰에 대해서 반격을 가했을 때, 그리고 그가 만일 삼성이나 LG의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너는 나보다 못한 결정을 했기 때문에 너는 바보이고, 너는 멍청하고 내가 너보다 우수하다. 라는 논리를 갖추고 싶은 욕망이 일어난다.
모든 인간은 힘을 추구한다. 타인과 비교하여 우월한 지위, 그것은 사회적이든 감정적이든 상관없다. 모든 인간은 그저 힘을 향해 내달린다. 그건 동물적 본능이다. 힘에 대한 욕구를 폄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건 정당한 것이다. 그러나 그 표현 방식은 각자 인격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오늘 있었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어버이연합의 모욕적인 관 퍼포먼스도 그런 맥락이다.

http://www.vop.co.kr/A00000447906.html

이 자들은 자기들의 가치관을 관철하기 위하여 상대방을 깔아뭉개는 방식을 택했다.
구석에 몰린 쥐는 물게 되어 있다. 이들은 구석에 몰렸다고 “느끼는” 것이다.
아무도 납득해주지 않으나 그들은 그들만의 가치관이 있고 그들만의 세계가 있고 세상이 그것을 알아주길 바란다. 그리하여 힘을 과시하고 싶다. 그들을 조정하는 자가 그 누구이건 간에, 이미 힘이 빠져버린 “노인”으로 폄하되는 그들은 여기에 동참했고 행동했다.

일단 그들은 자신들의 광기를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에게 이 퍼포먼스를 제안한 자는 선동하는 데 성공했다. 적어도 그 집단 내에서는 그렇다.

만일 내가 이들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물론 그들의 행위는 역사적으로 논리적으로 규명이 가능한 과정을 거쳐 발전하였으나, 사고의 발전과정에서 일반화라는 가장 흔한 오류와 사물을 정확히 관찰하고 物과 思의 관념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오류를 범하였다.
이들의 오류는 인간의 능력을 폄하하는 것이며 인간의 사고력을 비하하는 것이므로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이들은 빨간 모자를 쓰고 군복을 입고 갈쿠리 손을 휘두르던 상이군인회, 재향군인회를 연상케 한다. 이들 중엔 간혹 그런 복장을 고수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집단엔 그 옛날 전쟁에 나가 희생을 하고도 국가에게 정당한 댓가를 받지 못한 것이 억울한 인원들도 중복되어 있을 것이다.

국가는 그들의 원한과 희생에 대한 댓가를 돌려주지 못했고 이들은 끊임없이 분노했다. 이들이 두려운 것은 “내가 팔다리를 희생하며 빨갱이와 싸워 지켜온 이 나라”를 다시 빨갱이에게 갖다 바치려는 세력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믿음”이다. 그 믿음은 이들의 공포에서 시작한다. 내 삶을 다시 전복시키는 공포, 내 팔과 다리를 다시 내바쳐야 할 지도 모르는 공포, 혹은 내 자식을 전쟁터에 내보내 자식잃은 어버이가 될 지도 모르는 그 공포.
철저한 반공교육으로 평생을 지배당한 이들에게 국가는 아무 것도 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누군가 그들을 규합하고 달래고 높이 치하하고 그들에게 일거리를 주었다.
분노하고 궐기하고 반대하고 버스를 타고 부산 영도에 가서 경찰과 비슷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이들은 분기탱천하여 일어날 수 있는 요소가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다.

논리적 이해와 감성적 이해는 다르다.
논리적 이해는 이성적 분석이 동반되지만 감성적 이해는 행위의 용납과 허용까지 포함한다.

내가 만일 이 행위를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더 나아가 감성적 이해까지 하게 된다면.

내가 믿고 있던 유교적 윤리관 – 망자에 대한 예의부터 시작해,
노무현이 가져다 주었던 희망과 열망, 청문회에서 명패를 집어던졌을 때의 카타르시스, 저 사람이라면 세상을 바꿔줄 수 있을 것이다 하던 기대감, 그리고 그를 선택하고 지지함으로써 내가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이루어내는 데 작으나마 힘이 되었다는 자부심, 군부와 독재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고 마음껏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지켜야 한다는 가치관과 상충한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와 꿈꾸고 있는 국가에 대한 기대 사이에서 심각할 정도로 깊은 괴리감을 느껴 가치관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그 절정기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속한 관념의 집단은 그들을 배척하고 저주하여 나의 신념과 가치관을 지키고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지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들을 이해하는 것은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왜 그들이 저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었는가와 그렇다면 저들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서 멈추면 된다. 그들은 인간이 갖춘 이성적인 모든 명예와 숭고함을 쥐똥처럼 던져버렸다.

그리고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그들에 대한 인간적 연민의 여지는 남겨두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을 설득하고 변화시킬 수 있고 그들을 바라보는 다른 이들에게 무엇이 정도인가 알릴 수 있다.

너도 옳고 나도 옳다는 너의 처지에선 그럴만 하다, 나의 처지에선 이럴만 하다. 라는 뜻이지, 너의 주장도 옳고 그에 상치되는 나의 주장도 옳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은 다른 주장을 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그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타인의 신체를 훼손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욕을 하며 싸울 수 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만방에 떨치듯이, 이미 고인이 되어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을 다시 이 똥밭같은 세상에 끌어내려와 짖이기고 못박을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2011. 11. 10.

2013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일
김진숙 지도위원 한진중공업 고공크레인 309일째 농성이 끝난 날

윤금이를 기억하십니까

92년 10월 28일.
동두천의 한 한국여인이 미군에 의해 살해되었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케네스 이병의 윤금이씨 살해사건
  • 사건 일시:1992년 10월 28일 새벽
  • 사건 발생장소:경기도 동두천시 보산동 431-50 1/7 16호 김성출씨 댁 안쪽 첫 번째 방
  • 피해자:윤금이(여, 당시26세, 미군전용클럽 종업원)
  • 가해자:케네스 리 마클 3세(당시 20세, 미제2사단 25보병연대 5대대 이등병)
사건개요
1992년 10월 28일 경기도 동두천시 보산동에 있는 미군전용클럽 종업원이던 윤금이씨가 피살되었다. 28일 오후 4시 30분경 집주인 김성출씨가 피살체를 발견했을 때 피살자는 나체 상태였다. 자궁에는 맥주병 2개가 꽂혀 있었고 국부 밖으로는 콜라병이 박혀 있었다. 또한 항문에서 직장까지 27cm 가량 우산대가 꽂혀 있었다. 미2사단에 근무하는 미군병사 케네스 리 마클 이병은 윤금이씨의 머리를 콜라병으로 난타하고, 피흘리며 죽어가는 여성의 자궁에 콜라병을 박고 항문에 우산대를 꽂은 것이다. 온몸은 피멍과 타박상을 심하게 입어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참혹한 모습이었다. 증거를 없애기 위해 전신에 하얀 합성세제 가루를 뿌리고 윤씨의 입에 성냥개비를 부러뜨려 물려 넣었다.
사건 발생 시간은 10월 28일 새벽 1시경으로 추정되었으며, 사망 원인은 콜라병으로 맞은 앞 얼굴의 함몰 및 과다출혈로 나타났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故윤금이씨의 사체 사진까지도 볼 수 있다. 거기까지 내가 노출시키고 싶진 않다. 
이 여인은 너무도 비참하게 죽어간 사람이고, 너무도 슬프게 혼령조차 달래지지 못했다. 


이 사건을 나는 기억한다. 
그리고 이후 이 살인범은 2007년 가석방되어 미국으로 출국했다. 


최근 미군에 의한 성폭행 사건 두 건이 연달아 일어났다. 아니, 보도되었다. 
미군에 의한 사건이 한 두 건이 아닐진데, 나는 이 것을 일어났다고 보지 않고, 보도되었다고 하겠다. 


두 건 모두 고시텔에 살고 있는 어린 소녀들이었다. 
미성년자였다. 
두 번째 사건은 피해자가 가해자와 함께 술을 마셨고 피해자는 술에 취해 있었다는 얘기를 보도에서 흘렸다. 
첫 번째 사건은 가해자가 만취로 심신미약상태임을 주장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SOFA 개정, 주한미군범죄인도조약 따위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하고 싶지 않다. 
자국민에게 중대범죄를 저지른 외국인에 대해서 이다지도 관대한 나라가 또 어디에 있을까 그 사실이 궁금하다. 
특히 강대국에게 유별나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닌지, 국내에서 강력범죄를 저지른 외국인들이 이 나라에 수감되거나 이 나라의 법에 의해 처벌받는 통계가 궁금하다.


하긴, 성범죄 같은 거야, 이 나라에서 처벌 받아봤자 집행유예로 나올거니까, 차라리 자국으로 돌아가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백퍼 비아냥이다)


이번 두 사건에는 
1. 미군범죄 문제 
2. SOFA 개정문제
가 부각될 수 있지만, 나는 다른 사안을 생각해봤다. 


미성년자의 기준은 어디이고, 
성인의 기준은 무엇이며, 
이 아이들이 고시텔에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캡쳐 떠 온 내용이다. 
이렇게도 복잡한 것이 미성년자의 기준이다. 
민법상 미성년자는 20세 미만이지만 일반적으로 청소년보호법이나 성보호법에 의해서는 만 19세 미만으로 그 폭이 달라진다. 


긴 말을 하기에.. 
오늘 기력이 떨어지는 관계로
질문 몇 개만 던지고 말란다. 










1. 


고시텔은 방음이 잘 되지 않는다. 
전혀 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95년 내가 살던 서울역 동자동 뒤편의 고시원은 월 12만원 – 17만원짜리로 베니어합판으로 칸을 막아 
옆방에서 책을 넘기는 소리까지 들렸다. 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잠자는 것 밖에 없었다. 
그런 고시원이 진화해서 만들어진 게 고시텔인데


사건이 일어난 고시텔에선 정말 아무도, 그 사건이 일어나는 소리를 듣지 못했을까. 


첫번째 사건에 대한 동아일보 기사 
http://media.daum.net/society/view.html?cateid=1010&newsid=20111007032936325&p=donga


아파트 단지에서 부부싸움이 소란스럽게 일어나도 주민신고가 칼같이 들어간다. 
방음이 잘되는 수준이 녹음실 수준이었는가?


두번째 사건에 대한 한겨레 기사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99753.html

2.

누군가 물었다.
왜 미성년자인 아이들이 고시텔에 있는건가에 대해서
첫번째 피해자는 검정고시 준비생이었고
두번째 피해자는 대학입시 준비생이었다고 전한다.

둘 다 공부를 하기 위해서 라기 보다 시험을 치루기 위해서 고시텔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이 아이들은 왜 성인도 되기 전에
혼자 집을 나와 독립적으로
고시텔에서 살면서 시험준비를 해야 했을까

3.

고시텔은 타인의 출입에 대해서 이렇게 무방비 상태로 있어도 상관없는 주거공간인가
아무런 법적 제재도 없을 것이고 소방법 외엔 관련 법규가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고시텔이나 고시원의 법은 총무다.
그나마도 알바생이 많고 자리가 비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설마 누가 들어와서 뭐 훔쳐갈 게 있겠냐고?

몇년전에 고시원에서 방화를 저질러 수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이 있었다.
고시원과 같은 집단거주공간에 뭘 단순절도의 범죄가 일어날 거 같은가?
그렇다면 이 문제를 입법자들은,
생각을 해 볼까?
주한미군 SOFA 개정 어쩌고 저쩌고에 집중하느라고,
고시원이나 쪽방에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삶과 목숨은,
미처 신경쓰시기 어려울만큼 바쁘시겠지.

하나의 범죄사건엔 여러가지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드러난다.
단 하나의 원인이 단 하나의 결과물로 나타나는 경우는 범죄가 아닌 우리 삶의 여러 사건들에도 드러난다.

윤금이 사건이 드러난 이후 클럽의 여종업원이었다는 얘기로 사람들이 매우 불편해했다.
그녀가 클럽 여종업원이었다는 게 불편했던가
아니면 클럽 여종업원이었다는 전직을 밝히는 게 불편했던가
클럽 여종업원이었다는 것이 알려졌을 때 사람들이 기지촌 양색시라고 불러 버릴까봐 그게 두려웠던가

클럽 여종업원과 기지촌 여성과 양색시와 양공주와 웨이트리스의 차이점은 어디에 있는가.

그래서,
클럽 여종업원과 고시생과 입시생의 차이점은 또 어디에 있는가.

모두가 사회적 약자, 매우 약하고 어두운 골목길에서
지구 최대 강대국의 무지한 병사들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다.

흡사, 갓 태어난 영양새끼를 둘러싸고 잡아먹는 포악한 육식동물의 사냥장면과 같다.

유린당한 피해여성들의 메타포는 무엇인가.
이 나라, 이 반도 자체 아닌가.
바로 나의 고향. 이 나라 말이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나라.

2011. 10. 8.

故윤금이씨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빕니다.
피해당한 어린 여성들이 꼭 치유받길 기원합니다.

또한, 알려지지 않은 모든 범죄 희생자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영화 도가니 _ 이후

트윗과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인데, 
리트윗이 상당히 많이 된 부분이 있어서 
한데 묶어 정리합니다. 








영화 도가니. 그 이후. 




1. 아동성폭행 공소시효가 폐지되어야 하는 이유는 아이들은 당하고도 그게 뭔지 잘 모른다는 거다. 성폭행인지 성추행인지 분별하지 못한 채 성인이 된 후에 아. 그게 성폭행이었구나. 라는 걸 깨닫는 순간 세상은 지옥이 된다.


2. 어른들은 쉽게 안좋은 얘기를 누가 물으면 “그만 얘기하자” 라고 덮고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두 번 세 번 사람들앞에서 증언을 하는 이유는 심장을 꺼내 내보이고 싶을만큼 피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력히 원하기 때문이다. 더 잃을게 없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도, 피해아이는 공책에 증언을 미리 메모할 만큼 열성을 보인다. 그건 그만큼 강력한 처벌을 간절히 원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아이들은 법에 의지하려는 마음을 가진다. 법이 그 마음을 외면할 때 아이들은 복수심에 불타기 시작한다.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파괴의 힘에 지배당하는 것이다. 


3. 미성년자 성폭행 합의의 경우 부모가 모든 역을 대리할 것이 아니라 피해당사자 50 / 두 명이상의 법정대리인 50 으로 나눠 100이 되었을 때 합의가 가능하도록 하는게 옳지 않겠는가. 부모가 합의금 꿀꺽하고 애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4. 자식이 그 꼴을 당했는데 합의를 해주냐는 비난도 가능한데 합의를 해주는 경우에 꼭 돈 때문이 아니라 나도 자식 여럿 키우는 입장에서 남의 자식 굳이 징역 살려야 하는가..하며 비밀리에 용서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는 것.


‎5. 도가니에서 나타난 것처럼 후환이 두렵지 않은(강력한 보호자가 부재할 경우) 아이들은 또래집단에서도 피해자가 되기 쉽다. 왕따를 지독하게 겪는 아이들이나 범죄에 빠지는 아이들중 쟤는 비호할 사람이 없다는 걸 가해아동이 알 경우 더 쉽게 타겟이 된다.


‎6. 아동성범죄의 합의불가 무조건 처벌규정이 만 13세인데.. 난 이 연령도 조금 높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만 13세면 중학교 2학년이다. 아직도 한참 성장해야 하는 아이들이다.


‎7. 요즘 학교폭력을 처벌하는 학교의 규정에는 폭력현장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가담자로 인정돼 가해자와 유사한 처벌을 받게 된다. 물론 경중의 차이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건 불의를 묵인방관하는 것은 공범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욕하라 분노하라

사람들은 이런 사진을 좋아한다. 
맑고 밝고 투명한 느낌. 
세상따위 저 멀리 던져버린 그런 청량감을 주는 것. 
오늘 해질녁 
애를 데리러 가는 그 길에 
횡단보도에 서 있던 별로 예쁘지 않은 여자가 
아 하늘 정말 예쁘다. 하며 지나갔다. 
분주하게 길을 걷던 내가 그녀의 말을 듣고 바라본 하늘은, 
정말 아름다웠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했는데 
요즘의 이승은 온 나라 전체가 그저 개똥밭이다. 
끊임없는 아우성이 일어나는데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다.
어제 있었던 서울시장후보의 불미스러운 일과
오늘 조조로 본 도가니 때문에 
트윗에 글을 많이 올렸는데 
예상치 못하게 리트윗이 많이 되었고
방금전에 지금 청계광장에서 반값등록금 시위에 대해서 올린 트윗도
자꾸 RT가 되고 있다. 
집중적으로 돌려진 트윗의 1개를 제외하고 
강도높은 욕설이 첨가된 것인데, 
사람들이 타인의 욕설을 들으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시원하게 말씀 잘하십니다. 라고 하는 걸 보고 있자니
내가 이 사람들과 많이 동떨어지게 거친 것인가
아니면..
이제 속시원하게 욕도 지껄이지 못할 만큼 심하게 문명화되어 자기 페르소나의 껍데기를 둘러싸고 답답해도 욕하지 않고 그저 화를 내고 그래도 내일을 위해 일찍 자고 화를 참고 술로 잊고 다른 것을 찾고 쌓인 스트레스를 모두 나 내 성격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자기계발서나 허접한 심리학 서적을 뒤적이며 나는 오늘 서점에 가서 책을 읽었으니 열심히 살고 있어 토닥토닥 하는 건 아닌가. 
싶어. 가슴이 짠하다. 
현장에서 싸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격한 감정조차도 자기검열을 통해 순화시키려는 눈물겨운 나라의 국민들이 
스트레스로 이틀에 한 명씩 한강물에 몸을 던지는
통채로 개똥통인 나라. 
2011년. 
대한민국.
2011. 9. 29. 

나경원, 소수자, 인권, 도가니 그리고 나.

관련기사 1. 뷰스앤뉴스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79174

관련기사 2.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9281009321&code=910100

관련기사 3. 모닝뉴스

http://www.morningnews.co.kr/read.php3?no=40672&read_temp=20110928&section=2

관련기사 4.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84848

관련기사 5. 노컷뉴스

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1927921

관련기사 6. 에이블뉴스

http://www.ablenews.co.kr/News/Include/NewsContentInc.aspx?CategoryCode=0013&NewsCode=001320110928173422991500






위에 링크한 기사 6개는 모두 이번 나경원 의원의 장애아동 알몸목욕에 대한 기사와 그에 부연되는 설명들이다. 
상위에 링크한 기사는 비교적 객관적이라 링크했고 4번에 건 오마이뉴스 기사는 지난 번 대선 때 정동영후보가 동일한 실수를 저지른 것에 대한 지난 기사다. 


사람들은 빨리 잊는다. 
지난 대선 때 반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하고 싶었으나 정동영후보측의 여러가지 행보가 맘에 들지 않아 마음을 접은 적이 있다. 그 사유중에 하나가 아마 나도 잊었던 위의 사유도 작용했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든다. 


당시 한나라당에선 맹비난을 퍼부었고 현재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변명 외에 다른 입장표명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내가 이 포스팅을 작성하기로 결심한 사유는 바로 아래 사진 때문이다. 
촬영현장은 바로 이와 같았고 미리 세트가 되어 있었다고 한다. 
위 기사의 내용대로 나경원측은 가브리엘의 집 측에서 미리 준비를 했다고 한다. 
이에 관해 가브리엘의 집 측에서는 별다른 이야기가 없었던 것 같다. 






사람이 어떤 동일한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익숙해진다. 
마치 쓰레기냄새를 계속 맡고 있으면 후각이 마비되어 금방 불쾌감을 잊듯이, 사람에겐 망각이라는 특별한 도구가 있어, 세상을 살아가는데 보탬이 되기도 한다. 


늘 두들겨 맞는 사람은 그 환경이 학습된다. 전문용어로 학습된 무기력이라 칭한다. 
늘 무시당하고 사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늘 손가락질 받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내 인생은 원래부터 이래왔으니까. 


그리고 그 모습을 늘 보고 사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학습된 무기력은 전염된다. 
저 인생은 원래 저런 인생이니까. 그래도 전화위복이라, 새옹지마라 믿고 뭐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매우 낙관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한다. 


아마, 장애아동의 엄마이기도 한 나경원의원도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사학재벌의 딸로, 엘리트 코스를 거쳐, 판사를 한 아리따운 미모의 여성이, 장애아동을 낳았을 때, 그래 이것도 전화위복, 하늘이 주신 삶의 체험이라고 값지게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적어도 엘리트 코스를 밟아 긍정적 마인드를 가진 건강한 사람이라면,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짐을 잘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일반적”일 수도” 있다. 


긍정의 함정은 여기에 있다. 
자 나에게 닥친 이 난관을 “기회로 만.들.자” 라고 하는 사고방식. 
기회로 밟고 올라가는 순간 위험해진다. 
전화위복을 활용하려는 물적대상으로 봤을 때 함정에 빠진다. 


한국장애인부모회후원회의 공동대표이기까지 한 나경원후보는,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겸허히 받아들이려고 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판에 뛰어드니 그 무게를 활용하라는 사람들의 전도에 고무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건 너에게 힘든 일이지만, 이게 너의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누군가 그녀를 꼬드겼을 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파우스트는 나약한 인간이라 죄가 있고 메피스토텔레스가 사악한 사탄이라 더욱 나쁘다고 평가할 것이다. 
그러나 그 사악한 유혹에 휘리릭 넘어간 파우스트는 비록 많은 것을 가졌으며 엄청난 지식을 지녔더라도, 신념이 없었다. 
늘 갈등하고 우유부단하고 욕망에 시달렸던 파우스트는 덥석. 메피스토텔레스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와 쌍둥이 같은 인간이 되어버린다. 그 둘의 조화는 그저 가면을 쓰고 안 쓰고의 문제이다. 
대놓고 나쁜 짓을 하느냐, 가면을 쓰고 나쁜 짓을 뒤에서 몰래 하느냐의 문제. 
저질러 놓고 그래놓고 몰랐어요. 내가 죽일 놈이야 나는 왜 이럴까. 해봤자 이미 결과는 벌어진 것인데 자신의 양심과 신념이 철저하지 못해 그 유혹에 넘어간 것은 말하지 않고 누군가 나를 꼬드겨서, 긍정이 나를 꼬드겨서, 내가 잘못 생각을 해서, 순간 실수를 해서. 라고. 나는 인간이니까요. 라고 역설하는 셈이다. 


인간은 동물적 본능과 감성을 지녔으나, 가장 숭고할 수도 있는 개체이다. 
그러나 그렇게 살기가 어렵기 때문에, 인간적으로 살지 뭐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 라고. 말하며 웃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은 무뎌진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은 고금의 진리다. 
양심의 가책을 외면하기 시작하면 사람은 아주 돌덩이 같아진다. 
그리고 그 면이 점점 반질반질해지기 시작한다. 양심따위는 미끄러져 사라진다. 
모두들 아큐가 되어 정신승리법을 스스로 터득한다. 
노신을 몰라도 상관없고 아큐정전을 읽고 아큐의 정신승리법에 대한 비평을 전혀 읽지 않아도 상관없다. 
이건 자생적으로 아무리 학식이 짧고 지적능력이 떨어져도 거둘 수 있는 매우 쉬운 논리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망가져간다. 


공지영의 도가니가 영화화되고, 공유와 정유미의 주연으로 영화가 만들어졌다. 
문제는 이 소설이 사실을 원작으로 하고 있고, 실제 주인공들이 살아있으며 처벌 또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말도 못한 아이들을 유린한 극악무도한 교직원은 6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징역형을 산 건 2명뿐입니다.
나머지 2명은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나머지 2명은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와 피해자 부모와 합의했다는 이유로 법정에 서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일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여전히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_KBS 뉴스보도 멘트일부 

자 이런 식이다. 


아동성범죄에 대한 처벌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는 점점 커지지만 아직 우리는 체감하지 못했다. 
공소시효를 폐지해야 한다는 서명운동이 시작되었으나 언제 입법화 될 지 모른다. 
아동성범죄의 공소시효는 분명히 폐지되어야 하는데, 저항력이 없는 아이들이 유아기나 청소년기에 당한 일을 그 때 당시엔 사실 그게 무슨 일인지도 몰랐다가 나중에 성인이 되어 그게 성폭행이었고 그게 성추행이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성인이 되어, 심지어 부모가 되어, 나 이제, 그 때 그게 성폭행/성추행이었다는 걸 알았어. 라고 고백하는 얘기들을 간간히 듣는다. 


그런데, 아동성범죄를 역겹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목소리를 높이는 이 나라에선 버젓이 미성년자들이 나를 유혹해봐, 혹은 너를 유혹해줄께 라는 뜻의 노래를 부르며 엉덩이를 흔든다. 동안이세요. 라는 말에 담긴 젊음에 대한 갈망은 단순히 젊고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순수한 의미로 들리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변형된 롤리타 신드롬이 조금씩 반영되는 것은 아닌가. 왜 원조교제가 판을 치는 나라가 되었는가, 언제부터 사람을 영계라는 호칭으로 싸잡아 부르게 되었는가, 왜 이나라 사람들은 젊은 것에 대해 갈망하는가. 아니 그게 비단 이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 인류의 문제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특별히 이 나라는 매우 인간관계가 권력중심적으로 돌아가는 경향이 있다. 
나이를 중시하고 혈연,지연,학연이 중심이 되며 어디를 가든 리더, 즉 대가리와 어른이 존재해야 한다. 
예의를 지키고 장유유서라는 유교적 율법을 기초로 삼는 국민정서상, 너 몇살이야? 라는 얘기가 싸움판에 빠지지 않는 나라. 
그리하여, 오빠. 라는 단어에 열광하는 남자들과 오빠. 라고 불러주면 좋아한다는 걸 다 알고 있는 여자들. 
환갑이 되도 듣고 싶은 단어는 “오빠” 라는 것은 남성연장자와 여성연하자의 연애구조가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사회통념이 되어 있는 나라, 그래서 선풍적 인기를 끈 아이유의 노래 가사 중 “나는요, 오빠가 좋은 걸”에 수많은 남자들이 맥없이 부질없이 쓰러지고 마는 나라. 


그래 나이 어린 여자는, 귀엽고 예쁘고 젊고 상큼하기도 하지만 일단 나이로 밀어부쳐 고분고분하게 다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떤 환타지가 작용하는지도 모른다. 실상은 그렇지 않고 오히려 역으로 나아가는 경향이 적지 않게 시작되고 있으나, 사실 까놓고 
“어허..어린게 오빠한테 까불어?” 이런 문장 하나로 상대방을 무력화 시킬 수 있는 정서가 이 나라엔 숨어 있지 않나?
물론 요즘에야 “오빠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미친새끼” 라는 반발과 함께 정강이를 까일 수도 있는 현실이 있지만, 보편적으로, 판타지적으로 그런 정서가 바탕에 깔려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나이가 권력이 되는 나라에서 연하의 여성은 매우 이상적인 연애의 대상이며 이에 발전해 성욕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이 나라에선 비일비재하게 정서적 결함과 뇌질환을 가진 사람들로 인해 무수한 아이들이 고통을 받고 평생을 지옥에서 살아가야 한다. 나무에 못질을 하고 못을 빼낸다고 그 구멍이 메꿔지는 건 아니라는 말이 있다. 


어린 아이들이 짧은 치마를 입고 빤스 밑으로 10cm 정도밖에 안되는 치마를 끌어내리며 가는 걸 보면 심란하다. 
본인도 신경이 쓰이는 길이, 무엇이 저 아이에게 저 치마를 입게 만들었나. 
무엇이 저 아이에게 치마를 줄이게 했나. 
치마가 길면 바보취급 받는 이 나라를 누가 이렇게 만들었나. 
어른들이 소위 예능이라고 말하는 오락프로에 나와 궁둥이를 흔들며 현란한 춤을 추는 어린 여자들을 보며 박수치고 잘한다고 칭찬해줄 때, 그 문화가 전체적으로 이 세상을 지배할 때, 아이들은 치마가 짧아야 살아남는 이상한 세상에 놓이게 된 것이다. 


나경원 의원의 이번 행보가 흥행중인 영화 도가니에 맞물려, 사학재벌의 딸, 그녀가 앞장서서 반대해서 사학법 개정이 통과되지 못했다, 라는 의견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매우 곤란한 시기에 본색이 드러난 것일까. 


누군간 이렇게 쉽게 말할 것이다. “때가 좋지 않다’ 라고. 


카드놀이를 하자고 졸라대는 나의 어린 아이를 보며, 
나는 얼마나 이 아이의 인권을 지켜주었는가 생각한다. 
나는 늘 아이의 인권을 위해 노력하는가, 나는 얼마나 아이의 인권을 지켜주는 엄마였던가. 
아이를 욕되게 하지 않았던가, 사람들 앞에서 발가벗기는 것처럼 모욕을 주지 않았던가. 
분명히, 나 역시, 그랬던 순간이 내가 스스로 부끄러워 지워버린 기억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나는 쉽게 흥분하고 아이를 잘 야단치는 그런 사람이니까. 
분명히 그렇게 아이를 절벽위에서 떠미는 것처럼 아주 초라하게 만든 적이 있었을 것이다. 


남의 아이에겐 그렇게 하지 못하면서, 내 아이에겐 당연한 듯이 말이다. 
그래서 가장 위험한 말은 바로 이런 상황에 쓰는 말 “내 자식 같아서요” 라는 말이다. 
남의 자식 앞에서 깍듯하고 내 자식앞에서 안하무인인 부모의 말을 듣는 것 같아서 
나는 언젠가부터 “내 자식 같아서요” 나 “가족같이 일합시다” 라는 말을 들으면 막 대하겠다 라는  뜻으로 들린다. 




분명 이번 나경원후보의 행동은 잘못된 행동이 맞다. 
비난 받아 마땅한 일이고 후보와 관련기관은 사과하고 깊이 반성해야 한다. 
장애아동의 어머니라는 것을 공포하고 더 잘 안다고 떠벌였으면 소수인권을 지켜줘야 마땅하지 않은가. 
촬영팀이 막무가내로 달려들었더라도 자신이 문을 닫았어야 하지 않는가. 
장애아동은 사춘기가 없는가? 장애아동은 예민한 시기가 없는가?
12살에 발가벗겨져 문짝도 없는 오픈된 공간에서 목욕을 해야만 했던 아이의 마음을 당신은 아는가?


가끔 자원봉사자를 구하는 문구중엔 “목욕하고 싶어요” 라는 사연이 있다. 
자기 몸을 스스로 가누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처연한 이야기다. 
수단화 하지 말라. 
분노가 치밀어 쌍욕이 나올 뿐이다. 


나후보가 장애아동이고 그 곱디 고운 얼굴 때문에 발탁이 되어
12살 나이에 서울시장 후보인 이성의 남성후보에게 발가벗겨진 채 카메라 앞에서 목욕을 해야 했다면
당신은, 그 후보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을 것인가 복수의 눈물을 흘렸을 것인가. 
아주 간단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 아닌가?


문제는 후보측만이 아니고 소수자를 위해 일하기 때문에 혹은 소수자를 자주 대하기 때문에 무뎌진 양심들도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게다가 그를 비난함과 동시에, 나는 얼마나 누군가의 인권을, 옷입고 가꿔진 모습을 지켜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던가. 
돌아볼 일이다. 


한 장의 보도사진으로 긴 시간을 보냈다. 
이제 이 글을 마쳐야 잠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제발 뉴스를 보며 피가 거꾸로 솟구쳐 애먼 내 시간을 분노를 삭이는 데 쓰지 않는 세상은 과연 오지 않는 걸까. 
절망스럽다. 


2011. 9. 28. 






귀족주의와 트라우마

임재범이 나가수에서 재기에 성공하고 그만이 가진 카리스마로 호랑이처럼 무대에 올라서는 순간을 볼 때, 
임재범이라는 사람은 한국사회에서 인기를 얻고 원한다면 영웅도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는 걸 발견했다. 
한국사회에서 대중적 인기를 얻고 인정을 받기 위한 조건을 나는 세 가지로 보는데 

1. 재능이 출중하되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변명이 가능한 치명적인 인격적 결함이 있을 것
2. 출생의 비밀을 비롯한 각종 파란만장의 인생 굴곡사가 있을 것
3. 태생이 천박하지 않을 것이다. 
임재범은 위 세 가지 조건을 모두 갖췄다. 
한 때 파란을 일으켜 요즘은 조연급으로 하락한 감이 없지 않아 있는, 그러나 여전히 존재감이 대단하고 골수팬(나는 그를 믿어)이 있는 최민수의 경우도 비슷하다. 

이 문제의 가장 핵심은 3번. 태생이 천박하지 않을 것이다. 
뭔가 있는 집 자식이라는 이미지, 부모가 뭐뭐 출신이다더라. 하는 이미지는 이 사회의 뿌리깊은 귀족주의를 반영한다. 

최근 복지 문제가 대두되면서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싸잡아 비난하는 보수들의 행태를 보면 
이들이 복지를 화두로 내세운 진보세력에 대한 극심한 공포를 느끼는 듯 하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적지 않은 민란을 거쳤고 가까운 과거에 동학혁명이나, 이차대전 이후 공산주의가 유입되면서 625 전쟁을 거쳐 빨간 완장을 찬 청년들이 지주새끼들을 모조리 몰살하자. 했다는 얘기들을 종합해볼 때, 우리의 보수세력들은 가난한 자들이 일어났을 시에 자신의 생명과 가족 (삼족을 멸하리라에 상등한), 재산 모두를 위협받거나 박탈당할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은 아닐까. 

개뿔도 없는 고졸출신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에 대한 일부 국민들의 극심한 알레르기는 
내 윗사람은 당연히 나보다 “우수하고”가 아니라 나보다 “잘 사는 집안 출신이며”, 나보다 “많이 배웠으며” 내가 감히 도전할 수 없는 범접할 수 없는 “신분의 우월”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나라 사람들은 어찌보면 심하게 긍정적이고 자기 극복적이라서 (파란많은 역사의 항쟁과 외세의 침략과 전쟁을 거친 세대들이 갖는 “근거없는 자신감”의 일부겠지만)너의 능력따위는 내가 감히 도전할 수 있지만 너의 집안이나 너의 혈통이나 너의 20대 초반에 완성된 학벌따위, (물론 우월한 유전자로 인한 미려한 외모도 가끔 포함된다)는 내가 도전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 나라에서 지배세력이 되려면 일반인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특권을 갖고 있어야 한다. 
나는 너랑 똑같은 태생인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네. 라는 결과에 대해 
니가 뭔데 나랑 똑같은 주제에 내 위에 앉아있는거야!!? 라는 반응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사실 나는 타블로가 타진요에 의해서 겁나게 까일 적에 
타블로가 조금만 더 수려한 외모의 소유자였다면 저렇게 까이진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죽었다 깨어나도 못 따라갈 기럭지와 전신성형을 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우월한 유전자 조합에 대해서 
납작 엎드리는 것이 우리가 연예인을 대하는 자세인 듯. 
(김현희도 그래서 용서한거냐? )

노무현의 최대 치적은 그가 대통령에 당선됬다는 것이라는 의견에 동의한다. 
그는 능력있었고 감성적으로 대중의 인기에 부합했으나 대한민국에서 성공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춘자가 아니다. 

그는 죽고 사라졌지만 그는 우리에게 트라우마를 남겼다. 
저 사람 저렇게 우리가 변호해주지 않으면 
우리가 보호해 주지 않으면 
저 사람도 노무현처럼 삶을 마감하고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죄책감에 시달릴 것인가 하는 걱정. 
그래서 그 때 우리가 지켜주지 못한 봉화마을의 그를 떠올리며 지금 많은 사람들이 곽노현을 감싸려고 하고 있다. 

죽은 자식 불알 만지며 통곡을 한 들 무엇하겠는가. 

진보세력들의 큰 문제는 “유도리”라고 하는 지나친 관용인데, 이해하고 넘어간다는 것이 수꼴들은 그렇다 쳐도 (걔들은 재산을 위해 뭐든지 한다 : 보수와 수꼴은 다릅니다) 진보까지 그래버리면 안그래도 레드컴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잔존하는 이 나라에서 힘을 얻기 힘들다. 

선거나 투표때마다 노란풍선 좀 그만 들고 나오고 (상징적으로) 노무현 밟고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 마라. 
진보가 보수층을 끌어안을 방법은 지못미 노무현을 외치며 눈물로 호소하는 게 아니라 이성적으로 너희들에게 이만큼 몫이 떨어지도록 하겠다는 그들을 파악한 전략과, 이성적인 정책, 그리고 교활하고 영악한 작전이 필요하다. 

보수들은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투표소를 아파트단지 안으로 끌어들인다. 
진보들은 뭐하고 있나?

(진보가 진보인 거 같지도 않고 그저 야권이라고 하고 싶기도 하다만 일단 불편하니 진보라 쓰고)
진보니, 온건이니, 그저 야당이니, 노동이니 등등의 규합되지 않은 세력다툼과 맨날 단일화 후보 결정하다가 결국 피박 뒤집어쓰고 줄줄이 달려 들어가는 게 무슨 레파토리인가?

승리할 수 있는 전략을 짜라. 

잘난아비 둔 덕에 좋은 혜택받고 자라 좋은 교육을 받은 자식은 결코 아버지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디딤돌이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국민앞에서 분노하고 읍소하는 거 걷어치우고 승리할 수 있는 전략을 짜란 말이다. 
노무현을 넘지 못하면 진보의 미래도 암담하다. 

지못미라는 이유로, 김대중보다 노무현을 더 살뜰히 챙기는(?) 행태도 사실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고인의 명복을 빌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인간적으로 그가 저승에서나마 좀 쉬었으면 좋겠다. 
그만 징징대고 그만 매달리란 말이다.
2011. 8. 30. 

+곽노현 교육감 건에 대해선 상당히 유감이고 검찰수사발표의 시기적절성에 대해선 항간에 떠도는 얘기에 모두 동의. 
그러나 그 어떤 판단도 섣불리 하고 싶진 않음. 
단지 이성을 잃고 비합리적인 판단은 하고 싶지 않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