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기적

1.
밤 10시.
모 공기관의 공무원.
너무 늦은 시간이라 전화는 못 하겠고 죄송하지만 내일 오전에 전화를 해도 되겠느냐는 문자.
어차피 늦게 문자를 보냈으면 그냥 얘기를 하는 게 낫지. 나는 좀 그렇게 응대하는 편이다.
회의 중이니 끝나고 전화하겠다고 답신을 보내고 통화를 했다.
행사를 준비했는데 자리를 채우는 게 영 어려웠던지. 이야기를 하는데 망설임과 막연함 때문인지 중언부언이 더러 묻어난다. 무슨 말인지 알겠고, 왜 전화했는지도 잘 알겠고, 뭘 원하는지도 잘 안다. 필요한 것은 동원인데 동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적어도 두 달전에 알려줘야 스케줄 조정이 가능하다고 일러주며 잘난 척을 좀 하면서, 아직 퇴근 못한 거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아직 사무실이라고 답했다. 오죽하면 이 시간에 전화를 하셨겠느냐, ‘당신 마음을 이해한다’는 분위기를 풍기고는 당신이 원하는 자리에 늦더라도 참석하겠다고 대답했다.

정부에서 말하는 협치, 거버넌스. 지금으로는 되지도 않는 소리다.
기관의 공무원들이 말하는 거버넌스는 선택지를 두어 개쯤 내놓거나, 아예 단 하나의 명제를 설정한 다음 “자 어때요? 한 번 보세요. 괜찮죠? 이제 동의해주시면 됩니다.” 라는 게 전부이다. 처음부터 가닥을 잡아나가면서 조직적으로 실천해 시스템으로 만드는 것은 중간에 한 개의 톱니바퀴라도 헛다리를 짚으면 배가 산으로 가서 집을 짓고 장사를 한다.

민관이 협치해서 배가 바다로 가려면, 지독한 사람들이 세 명 이상 모여야 하는데 그나마 그 세 사람 구하기는, (이상한 드립을 넣고 싶지만 참겠다) 매우 어렵다. 모르기 때문이다. 실패의 흔적도 정리해 둔 적이 없다.

2.
이 전화통화를 하기 직전에 나는 민에서 쌓아올린 성과를 관이 묵사발로 만들 뻔 했던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했으며 어느 톱니가 빠졌기에 진창에 빠져 헤맸는지, 그리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려고 갖은 애를 써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하다 나온 거였다. 누가 잘하고 잘못했고가 아니고, 그저 다들 잘 몰라서 그렇다.

여름 내내 매달린 한 바닷마을의 재난에 대해서도, 최초부터 그 자리를 지킨 한 사람의 말로 응축되었다. “우리가 너무 무지해서.”

놀라울 만큼의 낮은 문맹률과, 놀라울 만큼 높은 대학진학율과, 모두가 100만원짜리 휴대폰을 들고 다니는 이 나라에서 무지한 사람들은 왜 이리 많은가. 나도 그들 중 하나다.

3.
매일 매일 많은 일들이 있다. 왜 나는 이렇게 사나.
오늘은 버스를 탈 일이 있었는데 버스 창문밖을 바라보며 나에게 물었다.
주어지는 인건비 대비 소요시간이 너무 길어서.
매일 매일이 전투고 전쟁터다. 나를 찾고 기다리고 나타나지 않으면 서운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올해 들어 두 곳의 시범적으로 일감을 받은 두 곳의 거래가 딱 한 달만에 끊어졌다. 내 실수도 있었는데 내가 실수를 하게 되는 이유를 찾아냈다. 그 내용은 정리해 회사 페이지에 올려야겠다. 그리고 앞으로의 일감도 잘 선별해서 받아야겠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다. 원하는 목표와 프로세스가 다 정리되어 그대로 수행할 대상을 찾는 의뢰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런 일에는 실수가 이어진다. 한 번도 저지르지 않은 실수나, 오류들이 계속 발생하고 나는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나는 시키는 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다시 깨달았다. 세상에 없던 것을 해보고 싶은 사람들과 내가 더 잘 어울린다.

4.
적어도 일주일에 하룻밤은 이번 달에 수금될 돈을 헤아리고 이번 달을 넘길 방법을 계산하며 몇 시간을 보낸다. 대부분의 일이 후불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나는 항상 잔고가 있어야 하는데 중간에 한 곳이라도 구멍이 나면 속수무책이다. 역시 그간 내가 대책을 세우지 못했던 탓이긴 하지만. 오늘 누군가 나에게 그렇게 살면 엄청나게 힘들다고 말했다. 네 맞습니다. 많이 힘들고, 건강이 많이 상했습니다. 라고 대답했지만 딱히 뾰족한 수는 없다. 시간과 돈은 언제나 모자라다. 까페를 열고나서 강의를 줄이느라, 오늘은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싶은 문서를 써서 모 학교에 제출했다. 지난 두 주간은 정말 길에서 쓰러지는 줄 알았는데 물리적으로 힘든 것보다 정신적 타격이 꽤 컸다.
그래서 사실 매일이 기적이다.
나와 같이 사는 사람도 짐승도 하나도 아프지 않고 모두들 건강하게 잘 자라나고 곱게 늙어간다. 잘 생각해보면 나도 참 건강하다.

5.
나는 왜 이런 글을 이토록 길게 쓰고, 이걸 또 공개하는 걸까.
누군가에게 들어달라고 하는 말이다. 집에는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도 짐승도 있는데, 또 말하고 또 말한다. 말하지 못하고 살았던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내 삶의 일부이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여기에 전하며 사회적 성취감을 얻는다. 어쩌면 다들 잘 살아보자고 얘기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향하는 바는 생의 연대다. 나도 당신도 다들 매일 기적을 살고 있으니, 오늘 내가 이만큼 느꼈고 겪은 만큼, 서로 주절거려보자고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참 아는 게 없구나. 죄다 모를 일이다.

*애정하는 번역가가 모든 처음이 힘들다고 적은 걸 방금 보니 생각났다. 나는 모든 처음을 사랑하는구나. 새싹같은 것들. 불완전하고, 여린 것들. 생각해보니 2014년에 만든 이룸의 로고도, 새싹이었다. 여린 이파리.

 

2019년 9월 24일.

2019년 8월 – 조국과 서울대

1987년 민중운동을 읽어내려가다가 이석규라는 이름을 발견한 것이 불과 몇 년전이다.
87년,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고, “저 놀부 두손에 떡 들고” 라는 노래를 가르치는 교사에게 대통령 선거를 우리가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얘기를 듣는 수준이었다.

1987년은 6월 항쟁뿐 아니라 노동자대투쟁도 있었다. 8월 22일 대우조선에서 투쟁하던 노동자 이석규는 최루탄을 가슴에 맞고 숨졌다.

나는 서울대생 박종철과 연세대생 이한열을 기억지만, 이석규라는 이름은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나 알게 되었다. 아무도, 이석규와 노동자대투쟁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그 때, 나는 그 대우조선소에 작업복을 버리고 올라온 남자와 막 연애를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주역들은 모두 서울대였다. 서울대학생들이 서울역에서 회군을 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며 서울역 회군의 주동자 심재철은 그때부터 민주세력의 역적이다.

94년도에 학교를 들어간 친구들의 등을 바라보며 호프집에서 맥주를 날랐던 나에게 찾아와 “내가 생각한 한총련은 이런 게 아니었다”고 말하던 내 친구로부터, 이화여대 앞의 옷가게에서 티셔츠를 개고 있던 나와 마주친 학교 배낭을 멘 동창으로부터, 나는 수 십번 수백번의 박탈감을 느끼고 대학도 가본 놈이 데모도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는데.

노동법이 뭐고, 산업재해가 뭔지 모르고 불 난 창고에서 물건을 꺼내다 쓰러지는 언니들이 내가 읽는 잡지를 보고 “넌 좀 이상한 애 같아.” 라든가, “너 간첩이지?” 라는 우스꽝스러운 의심을 받았던 세월을 지나고 나니 나도 변하고 말았나.

마치 나도 서울대생이었던 것처럼,
서울역회군에 분노했던 선배가 있는 것처럼, 96년 연세대에서 질질 끌려나온 흰 바지 입은 여학생이 나인 것처럼.

조선소가 망해나가는 건, 정규직들이 노조일 하느라 바빠 현장을 돌보지 않아서라는 일용직 노동자들의 성토를 들으며, 원청 새끼 개새끼들, 세상에서 제일 나쁜 새끼들이라는 3차 하청 현장팀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내가 뭐라고 생각한 건가.

소나타쯤 타고 다닌다고 내가 강남좌파쯤 된다고 착각한건가.

박탈감을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은 착각해버리는 것이다.

나도 맘만 먹으면 3억짜리 벤츠 GT 정도는 살 수 있지. 중고차를 70개월할부로, 걔는 모아둔 용돈으로 새 차를. 이 차이를 모른 채, 내 자식이 누리는 풍요가 마치 80년대 내가 누리는 풍요인 양 착각하고 마는, 이 편리한 정신세계는 귀찮아서 나약해지는 것인가, 편리한 걸 찾는 것인가.

아무리 죽여도 사라지지 않는 모기떼가 들러붙는 것같던 지겨운 여름이 지나간다. 이 여름, 90% 이상의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고 그 중 대다수가 월 소득 700만원 이상의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만들어온 세상을 본다.
서울대생들이 만들어온 온 세상에서 부르짖은 민주와 정의가 흔들리는 것을 본다.

서울대의 서울대에 의한 서울대를 위한 2019년 8월의 사건을 기억하자. 32년전 최루탄에 맞아 죽은 노동자의 이름은 지운 채, 그해에 죽은 대학생 둘을 더 또렷이 기억하는 세상에 매듭을 한 번 묶어본다.

2019년  9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