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말할 때

가끔 내가 분노를 느끼는 건 “노력하지 않아서 가난하게 산다.”, “미리 준비하지 않아서 폐지나 줍고 산다.”는 말을 하는 사람을 볼 때다.

지지리도 가난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없다. 자발적 가난은 정신적 풍요를 기본으로 한다. 있다고 치자. 가난은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좋은 조건이다. 사회에서 경제활동을 하려는 사람은 가난하고자 경제활동을 하는 게 아니다.
각자 먹고 살 양식쯤은 갖고 살고자 한다.정말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굳이 설명하자면 이런 거다.
경제적으로 곤궁함이 없는 중년을 맞이했다면 그건 백프로 운빨이다. 사회복지로 혜택을 받기 시작한 건 불과 10여년이다. 건강보험이 적용된 건 2000년부터다. 보험공단이 그때 생겼다.

가족중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돈을 모을 수 없다. 버는 대로 약값과 병원비로 들어간다. 한 사람이 일을 못하면 0원이 아니라 마이너스다. 마이너스 100만원에서 마이너스 200만원도 가능하다. 이런 사람이 가족중에 한 명이라도 있으면 구성원들이 그걸 나눠서 부담해야 한다. 그러니 늘 돈이 없다. 건강이라는 건 마음의 건강도 말한다. 경제적 책임을 질 수 없는 상태에 머무는 가족이 있다면, 그 역시 가족구성원이 부담해야 한다.

건강한데 열심히 일하는데 가난하다면
그건 학력과 사회적 기반의 문제다.
학력과 사회적 기반은 그 윗대가 결정한다.
학교를 다니지 못한 부모는 학교를 보낼 수 없던 부모 밑에서 자랐다. 가난은 대물림된다. 학교를 왜 보낼 수 없었나, 가난했기 때문에 혹은 그 부모도 교육의 필요성을 느낄 여유가 없어서.

전쟁이 있었던 나라다.
전쟁통에도 공부를 하러 다닌 사람은 소수다. 적어도 하루 동냥질을 해서 동생들 입에 풀칠을 하지 않아도 괜찮았거나, 팔 잃은 아버지가 돼지죽이라도 얻어오는 게 가능했을 것이다.

우리 집은 전쟁통에도 괜찮게 살았대.
자랑 아니다.
남들의 고통을 발판삼아 돈을 벌었으면 자랑은 하지 말아야지.

우리 집은 예전부터 부자였대.
그럼 일제강점기에도 부자였다는 말인가?
친일을 했다는 얘기밖에 더 되나

지지리도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아버지가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그렇다면 그 아버지는 부양의 의무가 적었거나, 아주 뛰어난 소수의 엘리트였거나, 어떤 권력에 부역했거나다.

불과 수년전까지는
그래도 정당하게 부자가 된 사람들이 있다고 믿었다.
지금도 그렇게 믿긴 한다.
그러나 자신이 가진 것을 기본 default로 놓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경제적 여유가 어디에서 왔는지 고찰하지 않는 자가 있다. “노력하지 않아 가난하다”는 말은 개인과 역사에 대한 성찰이 없는 자라고 정의내린다. 함께 일을 도모할 수 없는 사람이다.

 

작년 글 스크랩

2018년 5월 14일

고등학교의 봄

모 고등학교 미디어언론관련 동아리 수업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10차시 강의라 계약이 필요하다고 해서 학교를 방문했다. 곱게 화장을 한 다른 강사 세 명이 담당교사와 얘기중이었다.
순간, 아 나는 대체 뭔 배짱으로 이렇게 이불에서 나온 모습 그대로 사회를 헤매고 다니는가, 너무 염치가 없는 것인가 뜨끔했다.

진로코칭과 코딩, 역사관련 전문강사샘들인 거 같았다. 학교 방과후 강의나 진로교육 강의를 많이 다니는 경력자들 같았다. 코딩샘은 학교 컴퓨터 사양이나 와이파이 상태를 걱정했고 역사샘은 진로코칭 강의도 다니는 모양이었다.
관점이 약간 다르다고 느낀게, 고1때 이 부분을 점검해줘야 2학년때 어렵다고 느끼지 않는다. 는 문장을 들어서였다. 이 분은 교과진도와 아이들의 입시에 나보다 해박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진로코칭 강사는 당연히 진로보다 진학에 더 밝은 경우가 많은데 애초 자기가 아이들에게 꿈과희망을 얘기하면서 시작하더라도 정작 학교나 학부모가 원하는 진로교육은 진학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럼 이름을 바꾸는 게 맞을텐데, 진학 역시 진로의 한 부분이라 그렇게 쉽게들 바꾸지 않는가보다.

담당선생님이 계약서와 개인정보이용동의서를 챙겨오고 참가하는 아이들의 출석부를 넘겨주느라 몇 분을 앉아 있었고 마침 부장교사가 합석을 해서 강사들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모 고등학교는 진학지도가 어느 정도로 되고 있다는 내용을 서로 공유하면서, 지금 내가 앉은 이 학교는, 자사고를 떨어진 아이들이 오게 되는 1순위 학교이기 때문에, 3월 한 달동안 1학년 애들의 절반이 울고 다닌다는 거였다. 위치가 좀 외져서 같은 안양권에서도 대중교통으로 다니려면 차를 두 번은 갈아타야 하니 다니기도 힘든데, 자기가 원하는 고등학교를 못 갔다는 서러움이 더해져, 3월 내내 침울한 분위기로 학교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엄마가 매일 데려다주면 괜찮은데.” 라고 말했고 그 문장이 머릿속에 남았다.

ㅅ 고등학교는 자사고니까 내신이 너무 높아서 에지간히 해서는 내신도 안 나오니 수시로 가기도 어렵고, 그렇다면 애들이 정시지원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정시는 N수생들과 도저히 경쟁을 할 수 없지 않느냐, 밥 먹고 앉아서 문제만 푸는 애들과 고3이 어떻게 경쟁을 하느냐, 그렇다면 ㅅ 고등학교의 전략이 잘못된 거 아니냐, 입학사정관제로 돌려서 아이들이 어떻게든 학교를 가게끔 전략을 짜야 하는데 그 학교는 교사들이 전혀 그런 생각이 없는 것 같더라.

나는,
낄 수 없는 자리에 좌불안석으로 앉아 있었고 계약서에 도장을 다 찍은 다음 다 끝났으면 먼저 일어나겠다며 인사를 하고 교무실을 나왔다. 학교 앞에는 아름다운 개천이 있고 교정도 널직하고 건물도 좋았다. 1층 현관에는 무대도 있고 급식을 먹을 식당도 따로 있었다.

낙오한 아이들이 모였다는 생각을 하면서 봄을 맞이한다니, 1학년 입학 때 수학 두 바퀴 반 돌고 가야 한다는 말이 이거였나. 대체 나는 왜 여기서 이런 짓거리를 하고 있지. 내가 말하는 민주시민교육이 대체 무슨 소용인가, 모두들 끊임없이 좌절하며 늙어가는데 저항할 수 없는 체제에 아이들을 몰아넣고 완전히 방치해버린 기성세대가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나. 너희들 그렇게 살면 안된다고, 저항해야 한다고, 권리를 주장하고 타인을 배려하라고?

무력하다.
학교는 복도 곳곳이 좌절이다.

강사료 얘기는. 하나마나다. 맨날 반복되는 얘기 해봤자 뭐하나.

 

2019년 5월 13일

썩은 애플망고

 

동네에 마트가 하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마트는, 슈퍼마켓인데 규모가 약간 큰, 중소유통업체에서 운영하거나 개인이 하는 그런 동네마트다.
1기 신도시 평촌의 구멍가게들은 모두 편의점으로 전환했고 나들가게가 소수 남아있다. 새로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중소업체의 마트가 하나 들어올까 기대해봤으나 없었다. 근처에 시장도 있고 이 아파트 하나 생각하고 들어오기에 요즘 장사가 예전 같지 않아서일까?
내가 물건을 살 수 있는 곳은 단지 안의 편의점, 400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이 마트, 그 마트 옆의 옆 건물의 마트만큼 커다란 편의점. 시장은 1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늦게 열고 일찍 닫는다. 
재개발과 철거가 순차적으로 이어지고 있어서 항상 동네가 한산하다. 1층은 상가 2층이상은 가정집으로 된 건물이 늘어서 있는 동네인데 문닫는 상가, 여전히 비어 있는 공실도 더러 눈에 띈다.

오늘은 학원가에서 해장국을 한그릇 먹고 올리브영에서 화장솜을 사가지고 오는 길에 마트에 들렀다. 내일 아침에 아이 먹일 브로콜리와 새송이를 샀다. 건빵이가 애플망고를 쳐다보고 있길래 먹어보자고 두 개를 샀다. 두 개 포장에 9,500원이나 했지만 저런 거 사주면 되게 신 나하기 때문에, “아이 신 나라!” 하는 표정을 보고 싶어서 샀다.

집에 오자마자 건빵이가 망고를 썰기 시작했는데 맛이 떫다고 했다. 애플망고는 절반이 썩어 있었다. 건빵이는 이런 일에 꽤 까다롭게 굴기 때문에 환불하러 가서 좋은 소리 안 하고 올 거 같아 내가 가겠다고 나섰다. 건빵이가 따라나섰다.

환불해주셔야겠어요. 나는 망고를 보여주며 간단히 말했다. 사장이 나와 아이고 죄송합니다. 라며 캐셔에게 환불처리를 요청했다. 나는 결제했던 카드와 영수증을 보여주고 카드승인취소와 재승인을 확인하고 환불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나왔다.

건빵이는 이런 물건을 팔면 어쩌냐고 화를 냈지만 나는 이제 이런 일에 화가 나지 않는다.
애플망고는 육안으로 안이 썩었는지 확인하기 어려운 과일이다. 그런 과일들이 있다. 동네 수퍼는 순환이 잘 안되는 몇 몇 품종이 있을 것이고 저 망고는 수퍼에서 꽤 오랜시간 짓물렀을 것이다. 두 개의 9,500원 하는 과일을 선뜻 사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었겠나.

야채를 파는 수퍼마켓에 손님이 줄어들기 시작하면 야채와 과일은 바로 타격을 입는다. 시들시들한 야채와 과일을 판다고 손님들이 인식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손님은 더 빨리 줄어든다.
악순환의 시작이다. 단기 손실을 감안하더라도 시들어버린 야채와 과일을 빨리 폐기처분해야 한다. 끝까지 붙들고 있을 때 이런 사태가 생긴다.

재개발과 철거로 주민이주가 몇 년째 이어지고 있는 동네다.
이제 슈퍼마켓의 경쟁자는 이마트나 홈플러스가 아니라 쿠팡과 마켓컬리다. 위메프는 쿠팡보다 싸게를 외치기 시작했다.

아이의 같은 반 학부모 중 한 명은 이런 마트를 운영하는 사장이다. 동네에서 오래 장사를 하다가 손실을 보고 서울로 업장을 옮겼고 지금도 수퍼를 하는데 지난 번에 만났을 때 문정권 들어 경기가 너무 안 좋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곱씹었다.
어디가 문제인지 모를 수 있다. 자기 경쟁자가 누군지 모를 수 있다. 정권의 탓만 하다가 자멸하겠구나. 사람들이 수퍼에 굳이 찾아가 물건을 사는 이유가 무엇인지 고려하지 못하는구나.

애플망고 때문에 신 났던 건빵이가 울적해졌다. 보상이 필요했다. 돌아오는 길에 단지 안 작은 편의점에서 개별 포장된 참외 세 개를 샀다. 편의점은 대량으로 수매하고 대량으로 만들어 전국에 똑같은 걸 뿌릴 수 있다. 유통기한이 지난 신선식품을 폐기할 수 있는 것도 자본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점점 바빠지고 한낮에 한가롭게 장을 보는 일이 드물다. 재래시장은 늦게 열고 일찍 닫으면서, 손님이 없어 힘들다는 얘기를 하는 게 이해가 잘 안간다. 근무시간을 늘리자는 얘기가 아니다. 특화가 필요하다. 어느 구역은 새벽을 맡고 어느 구역은 야간을 맡으면 안될까. 세상이 시장의 리듬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데, 시장은 고유의 리듬을 깨지 않는다.

오죽하면 새벽배송이 필요하겠나. 그저 사람들이 속도를 즐겨서 새벽배송이라는 게 생겼을까. 일터에서 돌아와 옷도 못 갈아입고 저녁 차려 아이들 밥 먹이고 씻기고 재우기 바쁜 사람들이 도시의 대다수를 이룬다.

학교 앞 문방구도 거의 사라졌다. 아이들도 필요한 게 있으면 온라인으로 산다. 당장 내일의 준비물을 준비할 곳이 없으면 엄마들은 대형마트로 뛰어간다. 그걸 해결해준 게 새벽배송일거다. 종합장과 연필도 새벽배송 물품에 끼어있다.

오죽하면 이렇게까지 되었겠나.
이 나라의 산업구조는 “오죽하면” 으로 진화하고 있다. 오죽하면 이런 게 다 생겼겠나. 오죽하면.

 

2019년 5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