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책임지는 사회

하천의 쓰레기가 줄어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 쓰레기를 주워요.

니들이 버린 게 아닌데?

– 누군가는 치워야 하잖아요.

오. 착하네. 근데 그건 하천 관리에 들어가는 거 아냐?

– …

하천 관리 책임은 누구한테 있어?

– 사람들하고.. 시청요.

그럼 착한 사람들이 쓰레기 치울 때 시청은 뭐해?

– …

세상에 착한 사람이 더 많을까 나쁜 사람이 더 많을까?

– (다양한 대답)

쓰레기 버리는 사람은 언제나 있어.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은 없어. 그럼 어떻데 해야할까?

– 쓰레기 버리는 사람을 잡아요.

어떻게?

– CCTV요.

CCTV가 있으면 쓰레기가 줄어드나?

*이쯤되면 애들이 피곤해하기 시작한다.

CCTV는 검거가 목적이지 예방이 목적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예방도 가능하지. 개천에 쓰레기를 버리는 경우는 지나가면서 휙 버리는 것도 있지만 작정하고 자기 집 쓰레기를 가져다 버리는 사람도 있어. 그런 사람이 많은 동네라면 자기 집 앞에 쓰레기를 버리는 게 힘들다는 뜻도 되겠지. 그러면 집 앞에 쓰레기를 잘 버릴 수 있는 조건이 안 갖춰졌다는 뜻일 수도 있거든. 그걸 살펴봐야해.

내가 왜 이렇게 복잡하게 말하느냐 하면,

아까 기름 유출된 거 얘기할 때도, 주민들이 나서서 거둬야 한다고 해서 그래.

예전에 태안에 삼성 배가 허베이스피리트호라는 현대오일뱅크 유조선이랑 부딪쳐서 기름이 바다에 쏟아진 적이 있어. 그때 사람들이 다 달려가서 그 기름을 걷어냈어. 자원봉사로. 근데 그 책임은 누구한테 있지? 기업이 책임을 회피하는 사이에 너희같은 착한 사람들이 가서 기름을 다 닦아버렸단 말야. 범죄현장을 다 치워줬다고.

게다가 그 사건의 이름을 태안반도 기름 유출사건이라고 붙였어. 전 세계 어디에도 선박사고에 지역 이름을 붙이는 경우는 없대. 나도 찾아봐서 알게 된 거야. 사고 지역의 이름을 붙이면, 마치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처럼 여겨지거든.

왜 항상 피해자들이 책임을 질까?

나는 그런 걸 물어보고 싶어.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은 따로 있고, 늘 착한 사람들이 뒷수습을 해. 그건 왜 그래?

그걸 생각해보자는 말이야. 착한 사람들도 언젠간 억울해지지 않겠어?

#피해자들이_책임지는_사회

이 나라는 이게 전통이다.

항상 피해자가 증명하고 피해자가 소명하고 피해자가 처리한다. 환경오염 뿐 아니라 성폭행도 그렇고 배달하다 알바가 죽었는데 청소년에게 노동교육을 시킨다. 을들에게 너희가 잘 해야 된다, 권리를 주장하라고 말한다.

갑들은 교육을 받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을들에게 교육하려는 사회가 비겁해서 그렇다. 이 사회는 비겁의 향연이다. 사업자등록증을 받으려면 노동법 교육을 받아야 하는 조항은 없다. 노동현장에 들어갈 사람만 노동교육을 받는다. 대기업하고 싸우지도 못하는 인간들이 무슨 을들을 교육시키자고 하나. 안전교육은 건설현장 노동자들이 받는다. 건설사 갑들은 거기서 빠진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을 잘 봐야 한다. 사회가 부패할수록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 부패를 가리는데 사용한다. 새로운 시스템은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부패로 부를 축적한 이들이 벼랑에 몰릴 때 쓰는 방법이다.

교육계에 새로운 것들이 자꾸 등장한다.

본질을 해결할 의지가 없는 것이다. 덮고 가자는 것이다. 오염된 땅을 낙엽으로 덮고, 짚가래로 덮고, 눈으로 덮고, 시멘트로 덮고, 아스팔트로 덮고, 폐타이어로 트랙을 만들어 덮고, 바닷가의 돌을 가져다 지압장을 만들어 덮는다.

새로운 시스템을 의심하면

본질은 이미 회복할 수 없을 만큼 망가졌다는 결론이 나온다.

2018. 11. 22

[기고]깃발을 흔드는 바람이 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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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육개발원에서 펴내는 교육정책포럼 통권 304호, 2018년 10월 발행 간행물에 기고한 내용입니다.

이하나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 사무국장)

안양지역의 교육네트워크가 출범한 것은 2014년 3월이다. 각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네트워크 형식의 협의체를 구성하려고 준비한 지는 그보다 오래되었다. 교육네트워크를 표방한 협의체들은 이미 여러 개가 있었다.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이하 이룸)이 출발하는 데는 아픈 이유가 있었다. 가까운 의왕에서 할머니와 단둘이 살던 7살 소년이 혼자 있다가 키우던 개에 물려 죽었고, 안양에서는 여자어린이 둘이 납치 성폭행을 당해 사망했다. 우리 아이들을 지역에서 지키자는 이유로 시민사회단체들이 움직였고, 그 결실을 맺은 게 2014년이 되어서였다. 이 네트워크를 출범시키기 위해 일선교사와 시민단체 대표들이 1~2년 이상 준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역과 학교가 함께 공교육을 책임져야 한다는 이야기는 오래되었다. 학교가 방과 후까지 모두 책임질 수 없고 공동체는 와해되었으니 사회공동의 책임을 나누자는 의도였다. 공교육의 회복을 돕기 위해 지역사회가 단단한 토양을 만들고 학교의 닫힌 교문을 열자는 의도도 있었다. 학교와 지역사회가 결합해야 하는 필요성은 왜 느끼게 된 것일까?

시민들은 학교 내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대부분 동의했을 것이다. 지역과 학교가 다시 만나게 되면 학교가 적어도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학교는 세상과 발맞추어 걷고 있었는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흔히 학교의 구성원은 교직원, 학생, 학부모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전의 학교는 교직원과 공교육기관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형태였다. 사회는 급속도로 변하고 있는데 학교의 시설과 교육방식은 모두 전근대적인 모습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혁신학교와 진보적 교육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학교변화의 욕구는 학교 안에서는 응축되어 밖으로 터지는 형태로, 학교 밖에서도 교문을 밀어제치는 형국이 되었다. 이런 기폭제가 된 것이 2014년 세월호 참사였을 것이다.
아이들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수치심으로 촉발된 이룸이 출범하자마자 전 국가를 비통에 빠트린 사건이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2015년 교육지원청이 먼저 제안하여 교육지원청과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하게 되었다. 이미 각 기관에 숙련된 강사들이 있었고 경기도교육청에서 발행한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교과서는 학교 현장에 활용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이룸에 합류해 있는 회원기관마다 학교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할 수 있는 강사들을 최소 2명 이상 추천받아 교과연구과정에 들어갔다. 2015년에는 10여 개 학급에 불과했지만, 회차를 거듭할수록 학교 측의 요청이 늘어났고 교육지원청도 이에 적극 협조하여 2017년에는 72개 학급에 “찾아가는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했으며, 2018년에는 120개 학급에 “찾아가는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했다. 이에 대한 예산은 모두 교육지원청에서 부담한다.

안양지역의 “찾아가는 민주시민교육”은 교육청이 재원을 대고 이룸 사무국에서 강사보수교육과 시민대상교육을 맡는다. 강사 보수교육은 매년 2회 이상 실시하며 시민교육과 병행하면서 강사가 되거나 활동가가 될 만한 시민들을 찾아내고 있다. 강사보수교육에 대한 비용은 교육지원청에서 2018년부터 약간의 강사비를 보태고 있으며 그 외 시민대상교육과 내부 강사역량강화 교육은 각종 공모사업을 통해 충당한다. 각 기관은 민주시민교육 전문강사들이 민주시민교육에 관한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교육토대를 마련하고 민주시민으로서의 실천을 강화할 다양한 활동과 캠페인 등에 동참하도록 독려한다. 2018년 안양의 민주시민교육 강사진은 2015년도의 1기 강사부터 2017년도 3기에 신규 합류한 강사들까지 30여
명에 이른다. 강사진은 매년 조금씩 들고 나는데 겨울방학마다 새로운 교안을 만들어 변화한 학습환경에 노력하도록 내부협의를 거쳐 새로운 교안을 만든다.

현재, 안양지역의 민주시민교육은 전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일컬어진다. 아마 공기관에서 성과를 측정하는 형태인 교육 참여인원이 그 기준으로 될 것이다. 2015년에 12개 학급, 2016년에 13개 학급에 수업지원을 한 것까지 더하면, 1개 학급을 30명으로 산출하였을때 안양지역은 이룸과 교육지원청이 협력사업으로 진행한 “찾아가는 민주시민교육”의 수혜를 받은 학생 수가 2015년에 360명, 2016년에 390명, 2017년에 2,160명, 2018년에 3,600명이된다. “찾아가는 민주시민교육”의 수업지원 누적계는 6,510명이다1).

안양의 학교민주시민교육은 이룸에서 매년 겨울, 신규 교안을 마련하면 교육지원청에서 통합시스템으로 각 학교에 교안을 제시하고, 그 중 선착순으로 학급별 수업지원 신청을 받아 각 기관에서 강사를 배정해 특강 수업을 나가는 형식으로 추진된다. 수업지원 신청은 교사들이 한다. 2~3년 연속으로 신청하는 교사들도 있는데 수업지원을 나가는 강사입장에서도 작년에 만난 아이들을 또 만나는 경우가 간혹 있다. 교사의 신청 여부에 따라 민주시민교육 특강을 체험하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로 나뉜다. 또한 학교별로 민주시민교육지원 신청이 현저히 다른데 학교 내부 분위기와 연구모임, 학교 내 민주적 지수와 무관하지 않다. 2년 연속 한 학급도 신청하지 않는 학교도 있고 동 학년 전체학급 수업을 신청하는 학교
는 통계를 내지 않아도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이룸의 민주시민교육 수업지원 사업은 그야말로 잔잔한 호수에 작은 돌을 하나 던지는 것에 불과하다. 한 해에 수백 시간의 교과수업이 있다. 그중에 지역에서 만들어 제공하는 민주시민교육 수업지원은 한 학급에 단 2시간이다. 더러 학교에 프로젝트 수업을 마련해 지역의 강사들을 초빙해 4차시 이상의 연속수업을 기획하는 교사들도 있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적지 않은 성과지만 학생 개개인이나 학급에 미치는 효과가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다.

매년 사업 후 결과를 현장에서 듣거나 설문조사를 실행하면 교사들은 더 많은 민주시민교육 특강이 진행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교육지원청에서 현재의 예산을 더 늘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룸의 민주시민교육지원 사업에 대한 강사비용만 1년에 1천만 원이다. 교육지원청과 학교 현장은 우선순위에 따라 교육의 종류를 결정하게 된다. 고쳐야 할 시설물과 학교 내부 사정이 우선이다. 민주시민교육은 그 모든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연내에 성과가 나지도 않고 2차시짜리 수업으로 민주시민의 역량이 성장하는 것도 아니다.

모범적이라고 칭찬받는 입장에서 돌이켜 보면 얼마나 비민주적이고 수동적인 형태로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지 부끄러울 따름이다. 교사들은 교육안을 보고 자기 학급에 적합한 것을 신청한다. 일종의 교육쇼핑이다. 교육과정에 대해 강사와 협의하는 과정은 각 강사가 출강 전에 교사와 전화통화로 하는 게 전부다. 민주시민교육 교안 구성에 대한 일선교사들의 사전 의견을 들어본 적 없으며, 교사들과 학교가 진짜로 민주시민교육을 원하는지도 분명치 않다. 더러 어떤 교사들은 외부 강사진의 진입을 꺼리며, 수업을 참관한 관리자들은 강의형이 아닌 참여형 수업의 자유로움을 보고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기도 한다.

4년 차에 접어든 강사들은 매년 16시간 이상의 보수교육을 받고 그보다 더 많은 시간동안 강사모임을 통해 그룹 스터디를 병행한다. 2018년에 수업을 진행한 강사들은 22명이다. 120개 학급에 나누어 수업을 진행하면 1인당 5.4개 학급, 10차시 정도에 불과하다. 공부한 시간보다 활용한 시간이 훨씬 더 적다. “민주시민교육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고찰부터 시작한 강사진은 올해 들어 민주적 의사결정방식과 퍼실리테이션 교육이 필요하다고 요청해왔다.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강사진이 더 많이 공부한 해가 될 것이다.

지역네트워크가 좀 더 큰 힘을 발휘해주길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시민단체연대회의나 지역의 각 네트워크 협의체는 별도의 법인을 갖지 않고 흩어졌다가 모이는 형태로 진행된다. 각 단체는 각자의 영역에서 끊임없이 지역과 주제에 연관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민주시민교육의 분야를 나누어 전담하고 있으나, 학교 내 민주시민교육이 지금처럼 협약의 형태로 진행하는 것은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

각 교육지원청은 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를 조성하도록 권고를 받고 있지만 제대로 진행되는 곳은 별로 없다. 안양지역도 연구교사와 관리자, 이룸이 참여한 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가 있지만, 연내 몇 회 모임으로 서로 간의 고민을 나누는 것으로 끝난다. 협의를 이루어낼 시
간이 없는 것이다.

3년 차에 접어들었을 때 학교 교사들의 민주시민교육 역량강화와 지역에 관한 이해가 급선무라고 판단되어 교육지원청과 교사연수를 진행하기도 했으나, 담당교사들의 업무는 민주시민교육분야에 한정되지 않는다. 학교마다 전담교사가 있어도 학교는 수없이 많은 일로 끊임없이 전진할 뿐이다.

안양처럼 교육지원청의 주도로 진행하는 방법은 학교에 빠르게 진입할 수 있다. 각 시민사회단체는 이미 자기 분야의 민주시민교육을 수년에 걸쳐 진행해왔기 때문이다. 교육지원청과 지역협의체가 같이 협력할 경우 지역 내 역량 있는 강사들의 교과연구를 도울 수 있고, 학교는 교육지원청을 믿고 민주시민교육 강사들을 신임할 수 있다. 학교에서 실시한 민주시민교육 내용은 아이들이 가정에 전달하고, 각 가정의 보호자들은 결국 모두 지역의 시민이기 때문에 파급효과가 있다.

이후에 이를 제도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는 강력한 재정지원과 행정지원이 필요하다. 학교는 민주시민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교사들만의 민주시민교육이 아닌 지역과 함께 하는 민주시민교육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깨닫고 행동해야 한다. 정부기관은 교사들의 전문성을 길러낼 수 있도록 업무를 경감하고 민주시민교육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지원해 나가야 한다. 또한 기초단체는 각 지역에서 민주시민교육이 일상생활에 스며들 수 있도록 민주시민교육조례 등을 통해 지원해 나가야 한다. 교육공무원이 지역사회와 어우러져 내부를 이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근무조건이 옥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바깥의 사정을 알 수 없다. 이들이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또한 각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는 매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유연성을 기르고, 올해와 내년이 다른 아이들에게 걸맞은 교육안을 개발할 수 있도록 강력한 추진체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아이들은 기성세대보다 훨씬 더 민주적 감수성이 뛰어나다. 권력의 영속성을 믿지 않으며 정의에 예민하고 매사의 공정을 추구하며 포용력이 뛰어나다.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시작한 이룸은 결과적으로 다시 안전이 최종목표가 되었다. 노동시장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으며, 억울한 일로 옥살이를 하거나, 부당한 권력에 희생되거나, 차별과 혐오에 목숨을 잃는 아이들이 줄어들기 위해서 바로 지금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미 늦었지만 더 늦출 수는 없다.

 

이하나 사무국장은 중국 화동사범대학교 중문계에서 한어언문학을 공부했다. 2012년부터 마을활동가, 사회적기업 등에서 일하다 2014년부터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의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집필노동자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로 엮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NGO, NPO의 가치 확산을 추구하는 “문화공동체 히응”의 대표다. 대표저서로 「포기하지 않아, 지구」(2018, 빨간소금)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