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을 까며 

마늘을 까며 송곳을 본다. 이렇게 많은 마늘을 까본 적 없다.

이렇게 많이 깔 필요가 없었는데 그냥 그렇게 세 시간 정도를 보냈다.
안하던 짓을 하려니 왼손 검지손가락이 붉어지며 지릿지릿 통증이 왔다.

마늘을 많이 까면. 맨 손으로.

이렇게 되는구나.
매번 사먹던 깐마늘을 생각했다.

장갑 끼고 까야되는구나.

장갑없이 일하던 중국의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맨손으로, 인이 배겨 아무렇지도 않게 살고 있었던 게 생각났다.
지난 주에 놓친 송곳을 다시 본다.

고문 후유증으로 죽어가는 고구신때문에 운다. 마늘 때문은 아니다.

마트 언니들 때문에 운다.

오늘 이마트를 갔다와서는 아니다.
고양이가 와서 나를 본다.

손을 내밀자 머리를 쓰다듬어 달라고 고개를 치켜든다.
고구신도

이수인도

정부장도
모두 열심히 살았다.
우리 모두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왜 언제부터 우리모두 패배했는가.
2015. 12. 5.

눈이 많이 오던 날 

눈 내리는 해장국집에 여자 둘이 들어섰다. 신발 벗기 귀찮다며 의자에 앉자더니 이내 방으로 올라왔다. 그 집의 의자가 있는 테이블은 알량하기 짝이 없어서 앉으라고 채워둔 거 같지 않다. 안경 쓴 총각이 들여오는 식재료나 다듬던 콩나물이나 무우를 쌓아두거나 때로 주인장이 읽던 신문지를 놓아두는 곳에 더 걸맞다.
해장국 두 그릇을 시킨 여자가 창문을 보며 비명에 가까운 탄식을 뱉었다. 어머 어머 눈 오는 거 봐.

눈은 진즉부터 오고 있었는데 오늘 처음 눈을 본다는 듯 중년 여자가 흥분했다.

이런 날은 저수지에 가서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앉아 있어야 하는데.

여자가 말해놓고 까르르 웃었다. 앞에 앉은 여자가 아직 낭만이 죽지 않았다고 말을 받았다.

언니 나는 저번에도 비오는 날 저수지 가서 혼자 커피 시켜놓고 두 시간 앉아있다 왔잖아?

여자가 다시 까르르르 웃었다.
해장국을 가져다 주는 앞치마 입은 여자에게 저수지에서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여자가 말을 건넸다. 언니도 땡땡이 치고 저수지 가서 커피나 마시자.

해장국집 의자에 앉은 남자는 계속 혼잣말로 씨팔, 이라 말했다. 막걸리를 한 병 시켜놓고 해장국을 간간이 떠먹으며 또 말했다. 씨팔.
눈발이 흩날리는 사거리를 지나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렸다.

사이가 좋아보이는 중년 남녀가 우산 하나를 쓰고 마주보며 웃고 있었다. 택시 한 대가 두 사람 앞에 와서 서자 여자가 혼자 택시에 올라탔고 창문을 내려 남자에게 살뜰하게 손을 흔들며 떠났다.
신호등이 바뀌지 않은 사이 나는 떠나간 여자의 날씬한 다리를 기억했다.

문득 어제 만난 서른 일곱의 대리기사가 떠올랐다. 프랜차이즈 관리직을 하다 프랜차이즈를 내려고 수제 햄버거집을 열었는데 적자를 면치 못해서 대리운전을 시작했다는, 아리송한 얼굴의 사내는 오늘도 부지런히 고기를 굽고 있겠다.

2015. 1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