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기로에서 서서 야근없는 세상을 꿈꾸자

1.

30대 초반
누가 나에게 직업을 택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느냐 물었다. 나는 “적성”이라고 대답했는데 나보다 20년은 더 산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이 직업선택의 가장 중요한 건
“가장 잘 하는 일”이라고 하셨다.

2.

생각해보면
적성이라는 건 근무조건에 따라 변화무쌍하다.
만약에, 좋은 학교 비국영수과목 교사인데, 급여는 연봉 6천 정도 되고, 30평대 주택을 제공하고, 방학은 유급으로 칼 같이 쉬고, 애들도 사고치는 놈 하나도 없이 건전하고, 교사잡무 하나도 없고, 교장마저 민주적이라면.

과연 몇 명이나, 그 직장을 마다하고 “적성에 안 맞아서 못 다니겠다” 하겠는가.

굳이
교사를 예를 든 건 교과외 잡무 고려하지 않고 학교선생이 만고땡이라는 편견들 때문이다.

연봉 1억짜리 의사인데(종합병원에서 이 정도 주지도 않지만) 종합병원이라 하루에 2시간 자고 과장이 완전 개새끼라 허구헌 날 불려가 조인트 까이고 지방대 출신이라고 동료들에게 왕따 당해서 맨날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데도 이 사람이 과연 연봉 하나 바라보고 버티겠는가.

3.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서 좋은 일은 계속해서 칭찬을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을 따라갈 수 없다고들 하지만 티비보고 놀고 먹는 거 싫어하는 사람 별로 없다. 그런 게 직업이 되지는 않는다.

좋아하긴 하는데 타고난 재주가 젬병이거나 죽어라 노력해도 안되는 경우도 있다.

강풀이라는 만화가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사람은 만화를 좋아해서 만화가가 되었지만 몇 년을 해도 그림이 별로 늘지 않는다. 본인도 고백한 것이 가장 큰 컴플렉스가 그림 못 그리는 것이라고 했다. 전공하지 않은 게 후회된다고도 했는데 강풀은 그림보다 스토리다.

그렇다고 강풀의 스토리가 박제동이나 허영만 스타일도 아니다. 강풀은 딱 웹툰에 어울리는 그만의 스토리에 그만의 그림이 맞는 거다. 자기 분야를 개척한 셈이고 좋아하는 일에 도전해 피나는 노력을 해서 큰 성과를 이룬 셈인데.

이 사람은 좋아하는 일이기도 했지만 대중적 스토리를 잘 짜내는 재능이 있다. 그건 이야기꾼의 소질이 아닐 수도 있다. 시대를 잘 읽거나 다른 사람과 공감을 잘 하는 성품과 때로는 유치하고 깊이 없이 잘 흥분하고 선동하는 재주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 본다.

되고 싶은 게 미스코리아인데 팔다리 짧고 얼굴이 타고나게 크다면 그건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거 아닌가. 그래도 여전히 미스코리아가 좋다면 그와 관련된 분야중에 다른 일을 하면 될 것이다.

4.
예전에 통기타들고 한밤중 시내를 쏘다니며 밥벌이를 하던 시절에 내가 따라다니던 9살 많은 언니가 있었다.

노래판이 개판이니 어쩌니 하던 나에게 그 언니가 물었다.
“그래서 니가 하고 싶은 게 뭔데?”
“글쓰는 거”
“그럼 뭐 글판은 깨끗할 거 같냐? 다 똑같애. 어디가나 개새끼는 존재한다. 니가 그 시궁창에서 버틸만큼 좋아하는 거만 할 수 있는 거야.”

돌아보니 그랬다.
노래와 무대가 아니면 살 수 없다는 사람들은 모두 그 판에 남았고 나는 도망쳐 나왔다.
아이돌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5.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딴지라디오의 “그것은 알기 싫다”에서 춘심애비가 한 말은 그거다. 직업은 “덕질”의 승화.

덕질이라는 말은 오타쿠 – 오덕- 의 통신의 변형체로 좋아하는 일에 매니아급으로 매진한다는 말이다. 약간의 편집증을 동반하기도 하는 취미를 말하는데, 결국 이런 덕질의 결과는 전문가 수준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수많은 덕후들이.. 판타지소설과 무협지, 게임이나 드라마로 먹고 살 수 없을까 궁리한다.

그앓실에서 주장하는 바는 덕질이라 함은 좋아하는 일이고 대단히 몰입하게 되는 일인지라, 중간이상 가지 않기 어렵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세상에 어이가 없어보여도, 대부분의 작가들은 덕질의 결과물로 밥을 벌어 먹고 살아간다. 그림을 그리던 뭘 만들던 글을 쓰던, 그건 에지간히 미치지 않고서는 지속적으로 해내기가 상당히 어려운 지리멸렬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교수나 박사들도 마찬가지다. 공부도 덕질인거다. 별자리만 보고 있는 인간이라면, 그것도 덕질이고, 운 좋으면 그 덕질의 결과물로 천문학자가 되는 게 정석처럼 보이기도 한다.

6.

문제는 먹고사니즘이다.
먹고 살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하나.
정말 꼭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나.
세상에 모든 사람들 중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 몇 프로나 되나. 전혀 없지 않나. 한 5% 되나? 라는 의구심을 갖는다면 다시 세상을 고요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팔짱을 끼고, 등을 의자에 붙인 채 사람들을 바라봐야 한다.

좋아하는 일이 아닌 거 같다면, 그 반대급부를 생각해 보면 된다.
죽어도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와 저건.. 나는 때려죽여도 저건 못 해. 하는 종목들 말이다.

채식주의자가 정육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알콜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주류감별사를 할 수는 없다.
야채를 파는 일이나, 그저 회사에서 종이만 들여다 보고 있는 일도 어느 정도는 다 견딜 만 하기 때문에 하고 있는 일인 것이다. 이상적인 직업은 대부분, 반절은 놀고 반절은 취미생활을 하면서 누가 돈도 주면 좋을, 그런 것들을 말한다.

40-1. 지금 이 시점에 생각하건대, 이상적인 직업은 없다.
이상적인 밥벌이를 하는 사람은 지독한 덕후이거나, 물려받은 유산이 많은데 누가 건드리는 경쟁자도 없어서 돈 걱정을 안하고 살도록 태어난 천하의 행운아이거나, (예를 들면 100년짜리 저작권을 보유해서 매 년 억대 이상의 돈을 손에 쥘 수 있다면?) 아니면 뼈를 깍는 노력으로 오로지 드라마 주인공만이 가질 수 있는 지독한 집중력과 몰입력을 발휘해 그 자리까지 올라간, 매우 기괴한, 그러나 인간 세상에서 절대 만나고 싶지 않은 그런 이상한 인간일 수도 있다.

결론은 그거다.
이상적인 직업은 없다.
할 만 하니까 밥 먹고 사는 거다.
이 짓 하다가 뒈질 거 같애. 그러면 그만 두는 게 맞다.

그러나,
약간의 불만, 약간의 불화, 조직간의 약간의 갈등, 거래처의 개새끼, 김부장 썅노무새끼. 이런 이유일 경우, 그런 이유로 인한 전업은 조금 생각해 봐야 한다. 개새끼를 처단하고 내가 살아남을 것인가, 아니면 드럽고 치사하니 내가 여기를 떠나야 하는가. 혹은, 내가 견딜 수 있는 지경인가 아닌가.

7.

그러나 2013년 오늘,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직장의 문제와 이직, 인생뒤집기에 대한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개인이 직업관을 가지지 못하고 40대와 50대를 송두리채 날리고 환갑이 되어 퇴직을 한 다음에 아. 이제 너무 기운이 빠져버렸는데, 자기 직업에 어울리는 일을 찾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직업관에 대한 정확한 교육의 부재, 더 나아가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파악이 불가능하도록 바쁘게 휘몰아치는 사춘기, 또한, 직업에 귀천이 있으며, 직업엔 연봉차이가 있으며, 그리하여 그게 우리의 신분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그래서 우리의 행복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으리라고 강요당한, 말도 안되는 교육을, 게다가 12년이나! 존내리 길게 받았던 것이다.

2002년 이후라고 본다.
신자유주의의 물결, 그리고 이전에 있던 IMF로 인한 정리해고, 이제는 염치도 송구스러움도 없는, 당연한 정리해고 인원감축으로 한 사람이 서너명의 일을 하게 되었고, 그런 일들이 당연해졌고 그 시스템에서 세상을 시작한 사람들이 있으니. 그게 지금의 30대 이상의 직장인들이다.

과다업무.
그러니 열정을 가지라고 강요하는 거다. 열정이 없으면 버틸 수가 없는 과중한 업무가 몰아치는 거다.
좋아하지 않고, 미치지 않고, 제정신으로 즐겁게 출근하고 퇴근할 수 없는 업무량.
야근과 특근, 주말에도 자진하여 회사를 나가야 하는 미친 업무량에서 버틸 수 있는 건,
아 나는 이 일을 미치도록 사랑합니다.
라고 살짝 뇌를 틀어버려야 가능한 일이다.

8.

그리하여 세상은 이제 우리에게 “열정이 없는자는 뒈져도 모름” 이라고 안면을 까고 있다.
그건 모두 누군가가, 집약된 노동력을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아니 왜.
왜 늘 뜨겁게 살아야 하지?
그렇게 부글부글 끓으면서 굵고 짧게 살다가 일찍 죽으면 누가 좋은거지?
병원과 장례식장과 각종 상조회와 일회용품을 만드는 중국의 공장들?

좀 천천히 살면 안되나?
좀 놀면서 살면 안되나?
누구나 한 번 태어나 한 번 죽는 건데, 그렇게 다들 미쳐 날뛴다고 그렇게 살아야 하느냐 말이다.

9.

최근에 제주에 아무 생각없이 내려가는 청년들이 많다고 들었다.
감귤농장에서 귤을 따면 하루이틀도 버틸 수 있다고 한다.
작년부터 내 주변의 30대 초반들이 하나 둘씩 사표를 던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모아둔 돈푼이나 있으면 자기계발을 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이래저래 복장 터지는 마음으로 몇 건의 아르바이트로 연명을 하고 있다.
부모님의 집에서 다음 행보를 구상하는 친구들도 있다. 내 주변만 그런 줄 알았더니 내 주변의 주변도 그러하다.
결혼하고 가장이 된 40대들도 갑자기 사직서를 내고 외국으로 나가버리는 경우가 늘어난다.
기술이민을 고민하는 친구들도 늘어나고 이미 나가 있는 사람들도 많으며 이 나라에서 영구히 뭘 하겠다고 강한 의지를 보이는 자는 매우 적다.

그러니까, 이 나라의 20대 이상 젊은 청춘들은 대부분 이 나라를 떠날 수 있으면 떠나야지 라고 마음의 보따리를 꽁기꽁기 싸고 있는 거다. 국가의 큰 인력이 되는 2-40대들이 이 나라를 슬금슬금 떠나고 국민연금에 탈퇴하고 나면, 이 나라는 노인들의 나라가 되겠지.
386은 늙어가고 일할 사람은 없어질 게다. 젊은이들은 어디선가 내가 왜 열정적으로 살아야 하느냐고 물으면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길 원할 지도 모르고, 그 중에 여전히 미쳐 있는 뜨거운 인간들은 세상을 주도하며 살아 나갈 것이다. 그리고, 자본가들에게 필요한, 야근에 미친 한국의 젊은이들은 모두 사라져 있을거다.

10.

취업과 이직에 대해서 고민하는 나의 수많은 동지들에게 이 글을 바치며
내가 제안하는 방법은 이런 것이다.

티비를 줄이되, 특히 예능프로그램을 삼가하라.
연예인 기사를 읽지 마라.
여성독자를 타겟으로 한 월간잡지를 읽지 마라.

예능프로그램과 연예인기사는 매일 매일 “니 인생은 찌질해” 라고 강조해 줄 것이며
월간지는 “너는 정말 간지가 안나” 라고 강조해 줄 것이다.

이런 악의 축 세 가지만 끊어도, 세상은 조금 편안해진다.
개의치 말고 거침없게,
열정? 난 피곤하니 천천히 가겠다. 라고 말하며.
야근없는 사회를 위해 오늘도 누워보자. 뒹굴뒹굴.

2013. 2. 20.

안녕 새.혼.

설날 연휴.
아이와 함께 서울나들이에 나섰다.
남산골 한옥마을에 가서 한옥의 풍경이라도 보여주고 싶었다.
느즈막히 출발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행사는 끝물이거나, 이미 끝났을 것이 분명했다.

지인의 집 근처에 차를 대고 걸어가기로 했다. 아이는 차 안에서 깊게 잠이 들었다. 차를 세우고 아이를 깨웠다. 다 왔다. 다 왔다. 자 이제 일어나야지. 엄마 졸려. 엄마 졸려를 반복하던 아이는 그래도 새로운 나들이에 기대가 되었는지 금새 잠을 떨치고 일어나려 노력했다. 아이를 차에서 끌어내 길을 걷다가 장갑은? 이라고 물으니 차에 두고 왔다고 한다. 다시 차에 돌아가 아이의 장갑을 꺼내는 순간, 뒷 문이 열리는 자리에 오래된 새의 사체를 발견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죽음을 외면했다.

세상에 죽어나가는 것이 어디 한 둘 뿐이랴. 하늘을 나는 새가 땅에 떨어져 죽는 일은 언제나 기괴하게 느껴지지만, 그들도 결국은 죽고 나면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 순리인 모양이다.

한옥마을에서 연을 만들기도 하고 이리 저리 한옥을 구경하며 차례상 지내기의 이야기도 듣던 아이는 신이 났다. 오징어도 뜯어먹고 솜사탕까지 손에 쥐었다. 친구를 만나러 다시 차에 올라탈 때 아이에게 말했다.

“너 차에 탈 때 뭐 발견한 거 없어?”

“뭐?”

“거기 죽은 새 한 마리 있는데.”

“어디?”

아이에게 차 문을 열고 뒤를 돌아보면 보일 것이라 말해주었다.

아이는 차 문을 다시 열더니

“어 진짜네. 새가 죽어 있네” 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이는 종알댔다. 죽음에 대해서 큰 경외감이나 큰 슬픔이나, 두려움이나 거부감따위 없이.

“엄마 엄마, 이제 저 새의 영혼은 다시 하늘로 간거야? 그럼 저 새의 이름은 무엇이라 지어주지? 새의 영혼. 이니까 새.혼. 이라고 지어줄까? ”

시동을 걸고 차가 움직이자 아이가 창문을 내리고 손을 흔든다.

“안녕 새혼아. 잘 있어. 다음에 또 만나. 하늘나라에 잘 가.”

 

할머니의 죽음을 가장 먼저 알고 장례식장에 도착해 눈물을 그렁거리던 일곱살의 손주는 해를 넘겨 여덟살이 되었고, 이제 사람도, 새도 그 영혼이 살아 하늘로 도달하리라 믿는지도 모른다.

안녕. 새혼아. 하늘나라에 잘 가. 훨훨 날아가렴.

이치를 깨닫지 않아도, 무엇인가 배우지 않아도 깨닫는 아이.

아이의 영혼은 무엇이라 이름지을까.

 

2013. 2. 14.

무가치의 의미

고통과 폭력의 치하에서 매일 매일을 살다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얼마나 억압된 상태에 놓여 있는지 인지하지 못하게 된다.
심리학 용어로 “학습된 무기력”이라고 하는 상태에 빠져들고, 생명체는 생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특성을 지녔기 때문에 되도록 고통받지 않기 위해 나름의 방어기제를 발동시키기 마련이다.

어느 순간, 우연치 않은 계기로 그 세상에서 벗어나게 되면 그 때 자각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자신이 얼마나 폭력앞에서 무기력하게 무너져 왔는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하나 하나 주워올리는 고통의 조각들은 생명이나 재산을 담보로 스스로 얼마나 무력하게 살아왔는가를 비수처럼 정확하게 아픈 곳을 다시 찔러준다.

그 고통의 과정에서 스스로 어떤 경험치를 가지고 연마를 해왔느냐에 따라, 사람은 그 아픔을 일일이 드러내어 치료하고 일어나기도 하고, 자책감과 자괴감에 빠져 완전히 넋을 놓기도 한다.

때로는 없는 자아를 창조해내어 정신질환자가 되기도 하고, 무기력에 빠져 다른 중독에 빠져 고통을 회피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정서와 정신 장애에는 분명한 폭력의 이유가 있다.

한 자아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타인의 행위는 폭력의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나며 이 중에 신체적 폭력 외에 언어폭력, 방임, 통제 등도 포함되어 있다.

때로 한 공동체에서 정신적 나약함을 보이거나 특별한 정신장애를 보이는 경우는 가장 정상적이고 윤리적이며 비폭력적인 자아를 가졌을 개체일 가능성이 크다. 폭력의 치하에서 인정받는 방법은 같이 폭력을 배워 가해자의 아바타가 되는 것인데, 이런 개체는 그 사회에서 주목받는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 즉 영웅으로 비견되기도 한다.

사람이 갖게 되는 여러가지 고통은 대부분 하나의 큰 이유로 통합될 수 있는데,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존재자체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이다.

한 인간의 노동에 대한 가치, 한 인간의 존재와 존엄성 자체에 대한 가치를 잔인하게 묵살당하고 호도당했을 때, 사람은 죽음만큼의 고통을 느끼거나 혹은 그 죽음을 실천하여 스스로의 가치를 확인하고 자아의지와 실천이성이 살아 있음을 증명해보이고자 애를 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회피하지 않고 맞서 버텼던 자들은 대부분 극단적 종말을 서슴치 않는다. 그러나 애초에 폭력의 가해자가 생존하는 한, 이러한 죽음 역시 다시 한 번 몰가치 해지는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

승리는 살아남아 버티는 자의 것이고, 한 번 자각된 폭력의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으려 하는 것은 당연한 인간의 순리다. 인간은, 아니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고 살아있는 그 자체로 존엄하여 존중받아야 할 가치가 있다.

도시의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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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게 내 신변을 환기할 필요가 있었다.

스트레스 저항력이 약해지는지, 이제는 몸의 증상으로 치환되는 일이 너무 잦아지는 중이다.
사소한 일을 마치고 나서 갑자기 진땀이 나고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까지 아파져 급하게 휴대폰 어플을 켜고 제일 빨리 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의 극장에 영화예매를 했다.
바지만 다른 것으로 갈아입고 외투를 챙겨입고 부랴부랴 어두워 지는 밤길을 달려 극장까지 오는 길에 운전을 조심해야겠다 는 생각을 계속 했다. 귀향이 시작되었는지 도로엔 차가 그득했다.
하늘은 푸르스름하고 땅은 네온사인과 차량불빛으로 온통 붉었다. 주차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데 서너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제 엄마에게 쉬- 쉬- 하며 까치발을 들었다. 귀엽게 생긴 그 아이를 보고 “아이고 어떻게 하지?” 하며 말을 건넸다. 아이는 수줍은 듯 제 엄마 뒤로 숨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려 극장 매표소가 보이는 장소에서 애기엄마가 두리번 거리기에 화장실 방향을 알려주고 예매해 둔 표를 기계에서 뽑아냈다.
영화는 두 시간일 것이고 저녁은 아직 먹지 않았으니 간단하게 팝콘판매대에서 핫도그와 사이다를 시켰다. 음식을 파는 애들은 하나같이 날렵하고 얼굴이 작고 어린 남자아이들이었다. 군대도 안 갔다온 거 같은 소년도 청년도 아닌 사내들이 빠르게 움직이며 팝콘이며 탄산음료를 뽑아냈다.
핫도그는 내가 예매한 영화 홍보용 포스터로 둘러 싸진 멋드러진 지함에 들어 있다. 그 박스를 한참 들여다 보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끊임없이 영악하고 영민해야 함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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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앉은 의자 앞에 두 어린아이가 앉아있다. 초등학교 2-3학년이 되었을까. 두 아이는 남매 같기도 하고 쌍둥이 같기도 하다. 아이들은 아이패드 미니 정도 되는 작은 타블렛을 들고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고 앉아 있다가 일어서서 영화 광고판 앞으로 가서 섰다. 여자 아이는 검은색원피스 스타일의 패딩코트를 입었고 남자 아이도 검은색 패딩 다운 자켓을 입었다. 이 시간에 영화관에 아이 둘만 있는게 이상하게 느껴져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잠시 핫도그 지함을 바라보다가, 또 영화 안내 시간을 알리는 전광판을 바라보았는데 저만치 서 있던 아이들의 움직임이 묘하다. 남자 아이가 울고 있다. 소매로 눈물을 닦아내며 찍어누르고 있다.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를 달래는 듯 하다. 확실한 건, 보호자가 필요한 나이의 아이 둘이라는 것이다. 방치, 방임, 이런 단어들이 생각났다. 주변의 사람들은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두 아이를 바라보지 않았다. 조금 더 기다리다가 아이들에게 다가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의 부모들은 어디에 간 것일까. 아이들은 이 시간에 저 비싼 기기를 들고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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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관에서 영화가 끝난 모양이다. 부모로 보이는 남녀가 나오며 아이들을 끌어 안았다. 여자 아이가 제 아빠로 보이는 파란 점퍼를 입은 덩치 큰 남자에게 팔을 휘둘렀다. 왜 이렇게 늦게 나왔냐고 항의하는 목소리가 바로 내 귓가에 들리는 듯 했다. 들렸는지 들리지 않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남자 아이는 연신 눈물을 닦아 냈다. 퍼머를 한 단발머리, 고운 얼굴의 엄마가 사내 아이를 끌어안고 달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내가 울고 있었다.
남들이 볼까 얼른 눈물을 훔쳤다.
왜 내가 울고 있는가.
2013. 2. 8.

동물원 옆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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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과천 현대미술관

20,000원 내고 멤버십 갱신

국립미술관 기획전 무료입장.

임충섭 개인전

그리고 2011 소장품 대전. 

 

현대미술관은 가는 길은, 그 길이 수려하고, 그 길이 멀고, 그 길이 고요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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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영감을 받고 온다. 

오늘도 두 세시간, 

푹 쉬고, 많은 것을 머릿속에 넣고 가슴을 비우고 돌아왔다. 

가까이에, 그리고 이 사회에, 이런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으로 감사해야 한다는 현실이 조금 초라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미술관 옆 동물원의 주체는 미술관이다. 

동물원 옆 미술관의 주체는. 동물원이다. 

 

2013. 2. 7.

 

 

송충이의 솔잎

망해가는 마봉춘이 창사특집다큐를 찍으셨던데

아프리카의 한 부족이 관광객의 사진촬영 대상이 되어 돈을 받고 자기들의 삶을 보여주는 생존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 있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한다는 옛말이 있는데.
나의 내면에 내재된 조상들의 솔잎은 과연 무엇이었던가 의문이 생겼다.

• 적어도 우리 기억속, 우리의 역사속엔 다양한 직업군이 있었고 모든 사람이 문명사회에 진입하기 전에는 성씨가 분류되기 전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아프리카에는 근대국가로의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인지, 내가 모르고 있는 것 뿐인지
서구사회와 가까웠고, 그 문명의 유적으로 알려진 북아프리카의 이집트와 모로코는 분명히 전근대 고대국강 형태를 갖추고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존재하였는데,

인류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화를 거듭했다면 정말 중앙아프리카 이남엔 고대국가의 이름이 단 하나도 없었을까?
마야와 잉카와 그리 멀지도 않은 곳에, 정말 그 곳엔 지배와 통치가 허용되는 문명이 없이 공동의 평등한 삶만 존재했는가?
단순히 내가 모르는 것인가 혹시 누군가 필요에 의해 삭제했거나 왜곡한 것은 아닌가.

• 송충이의 솔잎은 유전자에 새겨진 정체성의 이야기다. 수십년 수백년 수천년을 그렇게 살아오면서 계발되고 특화된 각자의 성질에 대하여 되도록 정체성에 가까운 환경에서 살아갈 때 사람은 안정감을 느낀다.
오래전부터 농경사회였고, 유목이나 사냥보다 농경에 어울리는 땅에 살던 이 나라의 사람들은 도시에서 태어나 농촌으로 이주해도 歸農이라 말한다.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게 고향이고 정체성이고 유전자에 새겨진 역사이므로.

서구사회나 다른 민족들 중, 아직도 몽골은 유목생활을 반절정도 유지하고 있고 자연환경이 척박한 곳에서는 타고난 솔잎에 어울리게 사냥을 주로 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글쟁이 집안, 농사꾼집안, 장사꾼 집안이 대대로 내려오면서 축적되는 노하우가 있고 그 직군으로 살아가는 비법들이 삶에서 삶으로 구전되어 내려오며 삶은 비교적 익숙한 환경내에거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동물적 개체가 보수성을 유지하는 것은 당연한 생존의 문제이므로.

21세기.
우리는 모두 자신의 솔잎을
10년 이내 단기간에 쌓아온 스스로 만의, 한 개인의 노하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인류는 대와 세를 거쳐 이어져 내려왔고 삶속에 숨어 있는 역사성은 단지 10여년 만에 규정되거나 안정화되지 않는다.

우리가 헤매이는 이유는

너무 멀리 고향을 떠나왔기 때문이 아닐까.

– 아스팔트도 독하기 독한데, 지속되는 폭설때문에 제설방제에 사용된 염화칼슘이 그 독한 아스팔트를 뻥뻥 뚫어놓은 도로에서 당황하던 하루 종일을 결정짓는 생각을 해봤다.

9세기 ~ 18세기

식민 지배 이전의 아프리카에는 10,000개 이상의 국가와 집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34] 이들은 제각각의 정치 조직과 지배 체제를 이루었다. 이 가운데는 아프리카 남부의 산족처럼 사냥과 채집 생활을 하는 작은 가족 집단도 있고, 아프리카 남부와 중부의 반투어권 씨족 집단처럼 좀 더 크고 조직을 갖춘 집단도 있으며, 더 나아가 아프리카의 뿔의 씨족 집단, 사헬 지역의 왕국들, 서아프리카의 요루바와 이그보(Igbo) 혹은 동아프리카의 스와힐리 해안의 무역 도시와 같은 자치 도시국가나 왕국처럼 더욱 체계를 갖춘 나라도 있었다.

기원후 9세기경 초기 하우사 등 일련의 왕조 국가들이 사하라 이남 사바나에서 서부 지역부터 중부 수단을 지배하였다. 이 가운데 가장 강력한 나라는 가나, 가오, 카넴-보르누 제국이었다. 가나는 11세기에 쇠퇴하였으나, 말리 제국이 뒤를 이어 13세기에 서부 수단 대부분을 통합하였다. 카넴은 11세기에 이슬람을 받아들였다.

서아프리카 해안의 삼림 지역에는 북쪽 무슬림의 영향을 받지 않은 독립 왕국들이 성장하였다. 이그보의 은리 왕국(Nri)은 9세기에 세워진 초기 왕국이었다. 또 오늘날 나이지리아 땅에서 매우 오래된 왕국으로, 에제 은리(Eze Nri)가 다스렸다. 은리 왕국은 이그보 우크부(Igbo Ukwu)에서 발견된 정교한 청동 유물으로 유명하다. 이 청동 유물은 9세기경으로 보인다.[35]

요루바의 도시국가와 왕국 가운데 역사상 최초의 나라 이페(Ife)는 이페의 우니(Ooni)라는 성직자 오바(oba, 요루바어로 “왕” 혹은 “지배자”를 뜻한다)가 다스렸다. 이페는 아프리카에서 종교와 문화면에서 중요한 지역으로 여겨졌으며, 청동 조각의 독특한 자연주의 전통으로 유명하였다. 이페의 정부 형태는 오요 제국(Oyo)에서 수용하여, 이곳의 오바(임금)은 오요의 알라핀(alaafin)이라고 하였으며, 한때 수많은 다른 요루바 혹은 비(非)요루바 도시국가와 왕국을 다스렸다. 다호메이의 폰 왕국(Fon)은 오요의 지배를 받는 비 요루바 나라 중 한 곳이었다.

알무라비툰은 사하라 사막의 베르베르 왕조로, 11세기에 광활한 북서 아프리카 지역과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하였다.[36]바누 힐랄과 바누 마킬은 아라비아 반도에서 온 아랍 베두인 부족의 연합체로 11세기에서 13세기 사이에 이집트를 거쳐 서쪽으로 이주하였다. 이들이 이주하면서 아랍인과 베르베르인이 융합하여, 지역 주민이 아랍화되고, 아랍 문화는 이슬람을 기초로 지역 문화의 여러 요소를 흡수하였다.[37]

아래 내용은 위키디피아

http://ko.m.wikipedia.org/wiki/아프리카#section_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