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집

나에겐 아들이 하나 있다.
이 아이는 2006년도에 한국에서 태어났고, 2006년 12월에 처음 아파트에 입성했다.
난곡의 판자촌을 깎아 만든 재개발 단지였다. 유모차를 밀고 높은 언덕을 올라다녀야 하는 길이었다.
시흥의 뒷길을 돌아 멀리서 그 아파트를 바라보면 마치 거대한 성채가 모여 있는 듯 했다. 그만큼 생경스럽고 낯선 곳이었다. 내가 사는 곳이었지만, 언제나 기괴하고 이상야릇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산안개가 아파트 단지를 뒤덮었고,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신림역과 기온차이도 3도 정도 났다. 미림여고를 지나 버스가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올 때는 귀가 멍멍해지기까지 했다.

그리고 2009년 7월에 지금 살고 있는 평촌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이 곳은 모두가 아파트로 이루어진 신도시이다. 20년이 되어가는 대한민국 신도시 1기 도시 중의 하나로, 대부분의 아파트들이 조금씩 낡아가고 있지만, 적절한 20-30대 평수가 골고루 있고, 사교육시설등이 잘 되어 있고 구획정리가 깔끔한데다가 인구밀집도가 높아 생활편의시설이 많다. 이런 편리성 때문에 20-30대 젊은 부부들이 아이를 키우기 좋은 도시로 평가해 이주를 해오는 경우가 많다. 기존의 안양이나 평촌 들녘에 살던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신도시라는 것이 원래 외부인을 유입하기 위한 곳이므로.

아이는 그렇게 기억이 생성될 무렵부터 아파트촌에 살았다.

이 아이가 자라나면서 문화의 격차가 생겨나고 있다.
일단 아이는 흙길을 잘 걷지 못한다. 산에 데려가면 자꾸 미끄러지곤 한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대로, 물이 마르면 물이 마르는대로 그 느낌이 달라지는 산길과 흙길을 잘 걷지 못하는 것이다.
“벽장속의 요정”이라는 김성녀 주연의 모노드라마 연극에는 40여년을 벽장에 숨어 살던 정치범 아버지가 세상에 처음 나와 포장된 도로 위를 걸으며 튕겨져 나갈 거 같고, 미끄러질 거 같다고 하던 것과 상반되는, 그러나 역시 낯설다는 것에 대해선 동일한. 그런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아파트단지를 나와 안양천변을 걸어 단독주택과 연립주택이 많은 관양동 인근의 밤산책을 나갔다가 반지하방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고 아이가 물었다.
_ 엄마 저기는 뭐야?
_ 집이지.
라는 내 말에, 저기가 사람이 사는 곳이냐고 물었다. 집이 땅 속에 있어? 라고.
아이는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반지하방. 엄마도,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모두 다 한 번씩 거쳐갔던 주거시설. 반지하방. 거기도 사람이 살고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하는 곳이라는 것에 대해서 아이는 낯설어 했다.

또 몇 달 전에는 내가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가면..” 이라고 말했을 때,
아이가 “마당이 뭐야?” 라고 물었다.

그러니까 원래 집은 대문이 있고, 마당이 있고, 그 안에 건물이 있고, 건물에 들어가는 현관문이 따로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아이는 이해하지 못했다.
마당이 없는 집에서 유년기를 모조리 보냈고, 앞으로도 몇 년은 더 아파트에서 살아야 할 아이에게 마당이란 매우 먼 곳의, 동화나 영화에나 나오는 비현실적인 공간이다.

지금보다 더 어릴 때 처음 크레파스를 쥐고 집을 그릴 때도 아이는 아파트를 그렸다.
그러면서도 엄마 아파트는 왜 모두 네모모양이야? 라고 묻긴 했다.
세모난 아파트, 동그란 아파트가 있으면 재미날 거 같아. 라고 말하긴 했다.

이웃들과 인사를 나누긴 하지만, 함부로 놀러가지 못하는 곳.
마당과 골목이 없는 곳.
경비아저씨와 관리사무실이 있는 곳.
누군가 우리집을 지켜주는 대리인과 노동의 대리자가 존재하는 곳.
그 대신에 마당도, 대문도 없는 네모난 공간.
우리집과 저 친구의 집이 똑같고, 우리집은 몇 평이고, 친구의 집은 몇 평인 것으로 한 번에 수치상의 가늠이 되는 공간.

그러나, 그 집엔 다락방이 있고, 좁은지 넓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집엔 뭔가가 있는, 그 집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는 그런 공간이 아닌.

그런 자리에서 아이가 자랐다.

이 아이가 좀 더 자라, 반지하방에 살고 있는 친구와, 마당이 있는 집에 사는 친구를 만나게 되면 세상이 조금 더 넓어질 수도 있겠고,
우리가 다른 형태의 주거형식을 택하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지금의 형태가 지속적으로 이어졌을 때, 아이가 갖게 되는 마음의 폭은 어느 정도일까 궁금하다.

내 마음대로 내 집을 개선하지 못하고, 정해진 양식과 주어진 형식에 따라 객관식의 답을 맞추듯 다지선다로 골라야 하는 삶이 지겨워지려고 하는데,
어쩌면 그런 선택지를 고르는 인생은, 2006년생 내 아이에겐 배고프면 밥을 먹는 것보다 훨씬 더 자연스러운, 당연한 인생의 법칙이 될 지도 모르겠다.

2013. 1. 3.

한국사회, 가족의 파시즘 – 강준만 글 발췌

냉정한 사회과학적 분석의 메스를 들이대자면, 한국의 어머니 역사는 어머니가 ‘자궁 가족’의 수장으로서 그런 전쟁 (입시전쟁) 체제에 순응해 온 슬픈 역사다. 그 역사는 ‘보수적 과잉반응’, ‘보상적 인정 투쟁’ 이라고 하는 세 가지 관점에서 정리할 수 있겠다.
첫째, 보수적 과잉 순응이다. 이는 어떤 체제의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는 사람이 오히려 그 체제에 과잉 순응함으로써 자신의 안전과 번영을 추구하는 전략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
어머니의 카드는 아들이다.

둘째, 보험적 투자협정이다. (중략)
“한국의 특수한 모성 이데올로기 속에서 한국 중산층 어머니는 서구의 어머니처럼 아이의 감정적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공감하는 어머니가 아니다. 한국의 어머니들은 아이를 하나의 투자의 대상으로 파악하면서, 아이의 성적과 대학 진학, 이에 직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성공에 책임을 지는 것을 어머니 역할로서 받아들이고 있다….이러한 한국사회의 모성 이데올로기는 아이를 하나의 상품으로 그럴 듯 하게 만들어 내기 위해, 어머니로 하여금 아이들과 전적으로 함께 지내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 윤택림
“근 1-2 세기 동안 지속된 식민지적 격동기와 혼란기를 살아가면서 여자들은 가정을 지키기 위해 전력투구했으며 특히 부계 혈통주의의 전통에 따라 아들에게 투자를 했습니다. 그래야만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이 커지니까요. ‘여자의 적은 여자’ 라는 말이 종종 나옵니다만, 아들을 둔 어머니들을 남녀 고용 할당제를 반대하며, 불합리한 결혼제도를 앞장서서 존속시킵니다. 여자는 혼란기를 거치면서 개별 가족내의 어머니로서 강해졌지만 여전히 여자로서는 매우 취약한 존재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 조한혜정

셋째, 보상적 인정 투쟁이다. 아들에게 뭘 바랄 게 전혀 없을 만큼 유능하고 당당한 어머니들이 많다. 그래도 남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인정 투쟁’을 피해갈 순 없다. “니네 아들 무슨 대학 다니니?” 여기서 기죽는 어머니들이 많다. 아들에게 뭘 바라서가 아니다. 아들은 어머니의 인정 투쟁의 도구다. 어머니의 유능함을 입증해주고 자존심을 충족시켜줘야 한다.

(중략)
교류공동체를 대상으로 한 어머니의 인정 투쟁은 변형된 권력투쟁인 셈이다. 투쟁이 습속이 돼 관성에 의해 굴러가는 면도 있다. 공적 영역에 대한 불신과 혐오는 완화 되기는 커녕 계속 악화되고 있기 때문에 대중에겐 다른 선택이 없는 점도 있다. 그래서 어머니가 이끄는 新자궁 가족모델과 이에 따른 ‘도구적 모성’은 한국사회의 전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전 세계적으로 살펴볼 때 가족주의가 강한 나라일 수록 부정부패가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략)

한국에서 개인은 혼자 뛰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대표선수다. 한국인은 국가의 이익과 가족의 이익이 충돌할 경우 가족의 이익을 앞세우는 경향이 강하며, 이는 부정부패가 성행하는 주요 이유가 되고 있다.
(중략)
집단적 위선의 향연을 꼬집고 ‘가족 파시즘’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이득재는 한국의 가족주의를 ‘가국체제’, 즉 가족과 국가의 논리가 끈끈하게 결합된 체제로 보면서, 가족을 파시즘의 씨앗이자 파수꾼으로 규정했다. 이런 시각에 근거하여 이명원은 한국의 가족주의는 국가주의로 표상되는 집단주의의 하위구조이기 때문에 지난 역사를 통하여 작동되었던 가부장적 ‘국가 파시즘’ 체제는, 가족단위 내에서 가부장적 ‘가족 파시즘’ 체제로 재생산된다고 보았다.

“오, 가족은 무엇이란 말인가. 어느 순간에도 잊을 수 없는 그리운 살점이면서, 나를 낳고 키워준 사랑과 감사의 궁극적 상징이자, 때로는 내 삶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끔찍하게도 들러붙는 수초 같은 것’ – 김용희

어머니 수난사 – 강준만 발췌

오늘 낮에 친구와 나눈 대화. 경상도 남자들의 해외망명(?) 욕구에 대한 원인은 가족파시즘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다 페북의 어느 글을 읽고 다시 강준만의 책을 꺼내 일부 발췌해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