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10월 21일

집안 사정으로 고등학교를 1년 더 다닌 탓에 한 살 어린 친구들과 동급생이었다. 학교를 4년 다니다 보니 유명해져서, 나름대로 편하게 살았다. 술담배를 하거나 일탈행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교사를 어려워하지 않았고, 한 살 많은 나에게 선생님들도 나름대로의 대접을 해 준 셈이다. 고 3 때, 아침 7시 50분까지 등교를 해야 했는데, 학교는 월계동이고 우리집은 경기도 양주라서 새벽차를 타고 나가야 했다. 가을이 되어 급기야 담임에게 도저히 시간을 못 맞추겠으니 아침 자율학습을 빼달라고 통보했다. 나는 그런 애였다. 사정하는 게 아니고, 못 나오겠으니 처리는 당신이 맘대로 하시라고 선언하고 뒤돌아 나가버리는 애였다.

2학기에 들어서는 졸려서 살 수가 없었다. 야간 자율학습은 밤 11시에 끝나는데 새아버지가 매번 나를 데리러 운동장에 차를 대놓고 기다렸다. 11시에 월계동에서 출발하여 잽싸게 밟으면 집에 12시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씻고 야식먹고 공부를 조금 더 하다 보면 2시가 넘어 잠들었고 아침에는 5시에 일어나야 학교를 갈 수 있으니, 나는 6시에 일어나 아침자율학습을 째기로 한거다.

그 날은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비가 오면 잘 못 일어나는 사람들이 우리집 여자들인지라, 그 날은 모두 다 늦잠을 잤다. 유달리 일찍 일어나는 새아버지도 그 날은 늦잠을 잤다. 새아버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나도 동생도 같이 차에 탔다. 동생의 학교가 더 가까워 동생을 먼저 내려주고 차가 창동으로 들어설 때쯤, 아버지가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한강다리가 무너졌다는 뉴스가 나왔다.
“다리가 무너졌다고?”

조수석에 앉은 엄마가 라디오 소리를 크게 올렸다. 강북에 살아 강건너 가는 일이 드문 나에게 한강다리는 혜은이의 제 3한강교가 끝이었다. 그렇게 많은 다리가 있는줄도, 다리마다 이름이 다른 줄도 잘 모르고 지냈다.
8시가 넘어 학교에 도착하니 아침자습이 끝난 시간이었다. 나는 지각한 것은 생각도 안하고 교실로 마구 뛰어 올라가 한강 다리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호들갑 떨며 아이들에게 전했다. 내가 시끄럽게 라디오 뉴스를 전하고 있는데 덩치 큰 국어선생이 들어와 내 뒤통수를 갈겼다.

“야. 이하나. 지각했으면 가만히 있어야지 뭐 이렇게 시끄러워 아침부터.”
“아 그게 아니고 지금 한강다리가 무너졌다니까요오!!” 나에게 그 뉴스는, 희생자를 생각하지 않는, 일종의 쑈같았다. 걸프전의 생중계를 고스란히 본 나에게 재난과 사건사고소식에 사람은 들어 있지 않았다. 그건 마치 게임 시뮬레이션 화면 같은 것이었으니까. 걸프전을 CNN으로 보면서 느꼈던 것. 폭탄이 떨어질 때 참 아름다웠으니까. 광활한 사막에 떨어지는 불꽃놀이, 나에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사람은 언제나 죽고 어디서나 죽게 마련이니.
“이 새끼가, 지각한 거 무마할라고 수 쓰고 있어.” 국어선생은 대하기 어려운 사람은 아니었으나 어떻게든 나를 자리에 앉히려고 다그쳤다.
“아 진짜라니까요.”

고 3쯤 되면, 선생과 인간 대 인간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지경이 되지 않나, 나는 앞자리에 앉은 아이에게 빨리 티비를 틀어보라고 했다. 교실에는 뒤통수가 뚱뚱한 브라운관 티비가 있었다. 티비 아래 서 있던 아이가 손을 뻗어 MBC를 틀었다. 비오는 한강에, 다리 상판이 아래로 뚝, 썰어낸 듯 떨어져 있었다.

우리는 하루 종일 쉬는 시간동안 티비를 틀었다. 그리고 저녁에는 아무 일 없는 듯 자율학습을 했다. 누군가는, “저 중에 고3이 있었다면, 좋겠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죽음은 교실에 언제나 가득했다. 우리는 햇빛 한 번 못 보고 매일 매일 도시락을 싸러 집에 다녀오곤 했으니까. 타인의 죽음과 또래가 학교 가던 길에 무참하게 아무 이유없이 생명을 잃은 일에 대해서 우리는 분개할 시간도, 울 정신도 없었다. 우리에겐 수능이 불과 며칠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고, 이미 중간고사를 끝내고 내신성적을 정리할 때였을 뿐이다. 그 다음 해, 우리중 많은 아이들이 대학에 가고, 내가 명동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여름에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안타깝다거나, 슬프다거나, 억울하다거나, 누군가의 슬픔에 깊이 공감하지 못했다. 삼풍백화점의 붕괴도, 하나의 쑈처럼 보였다. 나는 일주일 내내 그 뉴스쇼를 지켜보았고 전혀 슬프지 않았다. 잠을 설치긴 했고, 뉴스를 끄지 못했으나, 같이 울거나 뭐가 문제라거나, 누구의 손을 잡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렇게 보낸 20년의 세월을 지나, 20년만에, 세월호가, 그 세월을 관통해 다시 침몰했다.

도대체 배 이름은 왜 세월호라 지은 것인가.

묻어두었던 긴 세월동안의 공감하지 못했던 타인의 죽음과 고통이, 굽이쳐 휘돌아 거대한 해일이 되어 몰려오는 오늘이다. 성수대교 붕괴 후 20년, 2014년 10월 21일이 방금 지나갔다.

2014. 10. 21.

한 사람이야기 11. 낮아줌마

졸음이 쏟아지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누가 믿을 수 있을까. 어제도 두 시간을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밤을 샜다. 하룻동안 해야 하는 일은 그닥 많지 않다. 이만하면 나쁘지 않는 자리다.
아줌마는 작은 의자를 펴고 담배를 물었다. 소란스런 영화의 배경음이 홀을 울리고 있었다. 엎어 놓은 맥주잔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아줌마는 담배를 다 피우고 저 물기를 마포자루로 한 번 걷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침 8시에 출근해 냉동고를 열어 고기를 꺼내놓는다. 꺼내놓은 고기는 점심시간까지 자연상태에서 해동을 시킨다. 9시쯤 되어 미숙이가 출근을 한다. 그 때부터 하룻동안 팔아야 하는 야채들을 다듬는다. 양파를 꺼내 껍질을 까는 일은 어딜 가나 하는 일이다. 눈물이 나는 것에 익숙해 진 지 오래되었다. 상추를 하나씩 씻어 체에 받친다. 식재료상이 와서 토마토를 한 박스 놓고 갔다. 오늘은 찰진 것이 물건이 아주 좋다. 지하 주방에서 식재료들을 모두 씻으면 커다란 함지박에 담아 위로 올린다. 철제 계단이 늘 삐걱거리고 불안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곳이라 무념히 지나친다. 신경쓰기 시작하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불안한 요소들은 도처에 숨어 있다. 얼마 전엔 지하창고에서 불꽃이 일어 차단기를 내렸다. 신속하게 대처하면 될 일이지 불안을 감지해봤자 피곤한 건 육신 뿐이다.

파란색 빨간색 체에 받친 토마토와 상추를 조리주방에 올려다 준다. 이 가게에 주방은 지하 2층에 하나, 홀이 있는 지하 1층에 하나, 그리고 아줌마가 설거지하는 지하 1층 뒷편에 하나가 있다. 설거지를 하는 공간을 주방이라 명하기 어렵지만 적당한 이름을 찾아내지 못해 모두들 설거지 주방이라고 부른다. 점심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재료를 모두 다듬어 올려다 주면 이제 점심을 먹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든다. 하나 둘 들어오는 사람들은 때로 혼자, 때로 여러 명. 아줌마는 가끔 설거지 주방을 벗어나 홀에서 혼자 영화를 보며 밥을 먹는 사람들을 지켜본다. 저들은 무슨 팔자로 이 먼 나라까지 와서 제 나라 음식을 찾아 먹으며 밥을 빌어먹고 살고 있나. 설거지를 하는 나와 저들의 삶은 얼마나 닮아 있고 얼마나 멀리 있나. 머릿속을 휘감는 복잡한 생각이 들 때마다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것을 버리고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더 버리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 아침 8시에 출근에 저녁 5시까지 설거지를 하며 산다. 하루 종일 물에 손을 담그고 고무장갑을 꼈다가 벗었다가 맥주컵을 씻다 보면 그냥 하루가 간다. 대낮부터 뭔 술들을 그렇게 처마시는지 욕을 하다가도 부러운 인생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럴 때 아줌마는 주방밖에 서서 대낮에 혼자 앉아 영화를 보며 맥주를 마시는 남자들을 쳐다본다. 아줌마는 파란슬리퍼에 앞치마를 맨 채로 홀을 가로질러 바로 간다. 나 맥주 하나만 줘봐. 아줌마는 3500원을 앞치마에서 꺼내 미숙이에게 건넨다. 미숙이는 아무 말도 없이 카스 맥주 한 병을 꺼내 뚜껑을 따준다. 맥주 병을 건네는 미숙이가 눈을 흘긴다.
아줌마 눈 빨개요.
그렇겠지 뭐.
아줌마는 맥주컵에 맥주를 따라 벌컥벌컥 마신다.
또 못 주무셨어요?
언제는 잤니?
아줌마가 미숙이에게 눈을 흘긴다. 이내 웃는다.
휘청거리는 듯 하지만 휘청거리지 않는 결연한 걸음, 넘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는 뒷모습, 그리나 흔들리는 늙은 종아리. 아줌마가 맥주병을 들고 설거지 주방으로 들어간다. 홀에 있는 그 어떤 사람도 아줌마를 쳐다보지 않는다.
오후 3시, 맥주잔을 씻는 일은 마무리가 되어가고, 쌓아놓은 맥주잔은 오후에 남자아이들이 나와 운반할터였다. 설거지 주방에 조그만 의자를 펴놓은 아줌마는 세제 옆에 놓인 소주병을 여 열어 맥주잔에 부었다. 한 잔을 다 마시니 졸음이 몰려온다. 밤에는 두 세 병을 마셔도 잠도 안 오더니, 꼭 이 시간엔 반 병만 마셔도 졸립다. 아줌마는 벽에 등을 기대로 긴 숨을 몰아쉬었다.

2014. 7. 24.

한 사람이야기 – 10. 남욱

휘경역에서 탄 지하철은 꿉꿉한 냄새가 났다.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오늘따라 더욱 불쾌하다. 괜히 기분이 좋지 않다는 증거겠다. 마음따위 살필 여력은 없다. 짜증이 나면 짜증이 나는 것이고 이 감정을 폭발시킬 어떤 것들을 찾아야 한다. 그게 하루를 견디는 방법이다. 오늘 저녁은 술을 마실 것이다. 그 후엔 여자의 집에서 잠을 자야지. 내일은 어차피 아르바이트 비번이기도 하다. 오전 늦게 일어나 차려주는 라면을 먹고 나서 도서관에 나와야겠다. 인생은 정해진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다. 목적한 대로 온 적 없다. 목적이라도 세우지 않으면 삶은 완벽하게 뒤틀려 버린다는 것도 알고 있다. 게을리 사는 날도 있지만 줄곧 게을리 산 것도 아니다. 덜컹거리는 전철은 불안하기 그지 없었다. 지하철이 지상으로 올라와 아무 것도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을 스쳐가면 남욱은 끝없이 불안해졌다. 열차가 다리를 건너는 것도 아니고, 강위를 달리는 것도 아닌데 어느 날 갑자기 다리가 꺼지고 사람들이 죽었듯 남욱의 하루도 그렇게 꺼져버릴 것 같았다.
여름, 이 방학이 지나기 전에 등록금을 마련해야 한다. 남욱은 빈 자리에 앉아 팔짱을 끼고 이번 달 월급을 계산하다가 잠이 들었다.
불안하다던 흔들리는 기차는 때론 하나도 불안하지 않은 듯 사람들을 흔들흔들 재웠다. 누구나 그렇듯이 남욱도 갈아타야 할 역에서 눈을 뜨고 부리나케 뛰어내렸다. 붉은 색 라인과 파란색 라인이 만나는 곳이다. 요란스러운 소음이 잠이 덜 깬 남욱을 휘감았다. 혼자만 똑바로 서 있고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듯 했다. 스물 일곱. 아버지가 출근하지 않은 지 몇 달이 되었다. 누나들은 발길을 끊었고, 신입사원 채용을 취소한 기업들이 늘어갔다. 토익 성적은 만점에 가까웠고 어학연수를 다녀온 아이들보다 뛰어났으나 어차피 그래봤자 서울대가 아니라는 것. 남욱의 주변을 스쳐가는 사람들은 몰려오는 적군처럼 힘차게 걸었다. 2대 독자 누나 여섯, 장가가기 글렀다는 주변의 비아냥도 호기롭게 웃어넘기던 건 불과 몇 달 전임에도 불구하고 아득한 과거같았다. 스물 일곱이 아니라 마흔 일곱쯤 된 건 아닐까. 남욱은 번잡한 플랫폼에서 잠시 어지럼증을 느꼈다. 무릎을 약간 굽히고 두 팔로 허벅지를 잡았다. 고개를 숙이고 숨을 한 번 몰아쉰 뒤 다시 일어섰다. 어깨에 맨 무거운 배낭, 오늘따라 옥스퍼드 사전을 가져온 게 후회되었다. 역은 길었다. 계단을 오르고 내리며 파란색의 기차를 갈아타기 위해 다시 플랫폼에 섰다. 해가 지고 있을꺼다. 열차가 들어오고 있으니 승객여러분은 모두 한 발 물러서야 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시끄러운 소음과 함께 열차가 도착했다. 한 발 물러나라, 한 발도 물러서기 싫었다. 남욱의 얼굴 앞으로 열차가 들이닥쳤다. 지하를 뚫고 달려온 열차의 긴 호흡이 거센 바람이 되어 남욱을 밀어냈다. 눈을 찌푸리며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승강장과 열차 사이가 넓으니 발을 조심하라는 방송이 나왔다. 그럼 애초에 왜 이렇게 만든 것일까. 세상의 모든 일들은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남욱은 이 나라의 모든 일들이 멍청하기 때문에 이 지경이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열차에 올라타고 문이 닫혔다.

남욱이 갑자기 열차의 닫힌 문을 손바닥으로 쳤다.
노트북.
노트북을 두고 내렸다. 붉은 라인의 열차, 앉아서 자던 그 자리 머리 위에 노트북을 놓고 내렸다. 친구에게 일주일 빌린 것이었다. 아 노트북. 남욱은 문 앞의 기둥에 마른 몸을 지탱했다. 다음 역에서 내려 역무실로 뛰어갔다. 노트북의 브랜드를 말하고 노트북 가방이 어떻게 생겼는지 말했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직장을 잃어가는 이 시점에 누가 그 노트북을 돌려줄 것인가. 땅속에 놓고 내렸으니 이미 지하의 것이다. 남욱은 역무원이 내어주는 서식에 분실물 상태를 꼼꼼히 적었다. 015로 시작되는 번호를 적었다. 괄호안에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는 연락이 안될 수 있음’ 이라고 적었다.
역무원은 빙긋 웃으며 찾을 수 있을거라고 남욱을 위로했다. 승강장으로 돌아가 다시 파란 열차를 타고 거대한 빌딩 아래 지하에서 내렸다. 지상으로 올라가 버스를 탔다.

저녁내내 지하철공사에서 연락이 오나 기다렸다. 생각해보니 노트북에는 소유자의 연락처도 적혀 있지 않았다. 남욱이 아르바이트 하는 햄버거집 주방 끝에 서서 멍하니 노트북 생각을 하고 있자 오늘 그 집에서 자려고 했던 여자가 와서 말을 걸었다.
“오빠 무슨 일 있어?”
남욱은 노트북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친구의 것이고, 일주일을 빌렸으며, 어느 역에서 내릴 때 머리 위에 두고 내렸으며 분실물 신고를 하고 왔으니 찾을 수 있을거라고 했다.
“노트북이 얼마나 해?” 여자가 되물었다.
남욱은 여자를 봤다.
“비싸.”

짧은 치마를 입고 소스통을 팔에 끼고 홀을 돌아다니며 테이블을 닦고 재떨이를 비우던 여자를 가만히 봤다. 남욱은 여자가 모아둔 돈이 있을까 생각했다. 여자가 한 달에 벌어들이는 수입이 얼마일까 생각했다. 여자가 혼자 사는 방도 지하에 있었다. 월세가 30만원이라고 들었던 기억이 났다. 친구의 노트북은 여태 이 집에서 고기를 구운 석달치 월급이 고스란히 들어갈 판이었다. 여자는 노트북의 가격이 얼마쯤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몇 번을 같이 밤새 술을 마시고 여자의 집에서 잠을 자고 나왔다. 남욱은 여자가 노트북을 어디서 파는 지나 알까 궁금해졌다. 가만히 여자를 보고 섰는 남욱의 시선을 알아채고 여자가 남욱앞에 서서 턱을 괴었다. 주방은 조금 높게 돋군 자리에 있어 남욱이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남욱은 여자의 머리통을 한 번 쓰다듬었다.
“찾을 수 있겠지?” 놀란 강아지 같은 눈을 한 여자가 남욱을 쳐다보며 말했다. 남욱은 한숨을 참으며 입꼬리를 길게 늘려 웃어보였다.
그 무엇도 찾을 수 없을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남욱은 몇 날밤이나 탐닉했던 여자가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2014. 7. 15.

한 사람이야기 – 9. 마후라아줌마

그 길의 1층은 대부분 옷가게들이었다. 서울시내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옷을 팔았다. 유난히 큰 사이즈의 옷이나 큰 신발, 맞춤 와이셔츠, 용과 태극기가 그려진 하얀 면티부터 요란한 금박무늬의 가운들, 화려하지만 전혀 고급스럽거나 세련되지 않은 드레스, 브랜드이긴 한데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것들. 앉은 자리에서 세월을 울컥울컥 집어삼킨 듯한 소품을 파는 가게, 도장을 파는 가게, 초상화를 그리는 가게, 귀금속, 여행용 트렁크, 시장으로 들어가는 좁다란 골목, 수제화를 파는 집, 목적을 가진 손님들이 드나들만한 가게들이 즐비했다. 다른 곳에서는 흔치 않은 가게인데 여기서는 줄줄이 비슷한 가게들이 가득했다. 셔터를 모두 내린 길 역시 범상치 않았다. 4차선 도로는 유독 좁게 느껴졌고 드문드문 지나가는 택시, 노변에 주차한 차들 사이로 인적도 끊겼다. 밤 10시가 넘어가면 주말을 제외하고는 걷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은색의 셔터만 이어진 길거리는 마치 다른 시공간으로 가는 기차가 서 있는 듯 했다. 은하철도 999가 서울에서 출발한다면 그 정류장은 바로 여기다. 어두운 골목 사이로 노란 백열등이 켜져 있고 누군가 미처 정리하지 못한 생업을 마무리 하고, 때로 어떤 사람은 몇 시간동안 천국에 있고 싶다며 해피스모크를 찾는 거리,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걷고 벌건 대낮에 속옷을 벗어 흔드는 여자가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거리였다. 무리지어 걷는 흑인들은 이 곳 먼 타향에서 괜한 눈치를 보고 이 도시는 언제나 너무 덥거나 너무 춥다며 어깨를 움츠리고 걷는 저 멀리 스칸디나비아라는 반도에서 온 사내들과 80년대 달력에서 튀어나온 듯, 아니면 저 먼 미래에서 온 듯, 시대와 역사를 알 수 없는 기묘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제 멋대로 돌아다니는 이 거리는 그 누구도 주인이 아니었다. 철모를 쓰고 긴 언덕으로 올라가는 헌병들과 그들의 군화소리를 들으며 긴장하는 어린 사내들과 몇 십년을 다른 사람의 얼굴을 그리다 늙어버린 영감과 몇 십년간 다른 사람의 목둘레를 재며 늙어가는 초로의 사내도 이 거리의 주인은 아니었다. 모두가 타인이고 모두가 이방인인 이 거리에 단 한 사람 주인공이 있다면, 그건 바로 밤 10시 59분에 정확하게 이 길을 훑듯이 당당하고 힘차게 지나가는 한 여자였다.

마후라 아줌마.

사람들은 그니를 마후라 아줌마라고 불렀다. 마후라의 정확한 표준어가 스카프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는 사람들이지만 스카프 아줌마라고 하는 것은 왠지 한국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이었다. 한국어 사용자가 아닌 외국인들이야 그니를 미스스카프라고 불렀지만, 이 동네에서 밥을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은 모두 그이를 마후라아줌마라고 불렀다. 오래전엔 “빨간 마후라”라는 뻔뻔한 제목의 노래도 있지 않았나. 일본을 거쳐 들어온 적절치 못한 단어라 해도 상관치 않고 너도 나도 애국심에 불타 불러제끼던 노래 아니었나.

마후라 아줌마는 오늘도 정확히 10시 59분에 햄버거집 앞을 지나갔다. 그이가 그 시간에 이 길을 지나간다는 것을 알아채고 입에 올린 것은 그 시간에 하루종일 쏟아진 쓰레기를 치우던 주방보조 알바생들이었다. 또래의 사내 서너명이 같이 쓰레기를 담다보면 바퀴벌레 십 수마리가 한꺼번에 출몰하는 것을 발견하기도 하고 어두운 계단에 서서 키스를 나누는 동성애커플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들은 그런 특징적 장면들을 잡아내어 이야기거리를 만드는 재주가 있었는데 그 중 서울의 어느 대학에 다니는 안경을 쓴 청년이 도드라졌다. 마후라 아줌마가 그 자리를 지나가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이 청년은 시계를 확인했다. 일주일쯤 지나 마후라 아줌마가 매일 정확한 시간에 지나간다는 것을 확신하고는 쓰레기를 치우는 시간이 아니더라도 정확히 10시 57분쯤 밖에 나가 마후라 아줌마가 지나가는 것을 확인했다. 금요일과 토요일 밤에는 마후라 아줌마가 지나가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냈다. 청년은 흥미진진한 보물지도를 발견한 소년처럼 매니저에게 마후라 아줌마를 발견한 사실을 이야기했다. 매니저는 이미 몇 년 된 사람이라고 뚱하게 대답했다. 신나서 이야기하던 청년이 뻘쭘해질까 걱정되었는지 매니저는 그래 오늘은 무슨 색이더냐고 물었다. 청년은 여태 관찰한 바를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마후라 아줌마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언제나 한가지 색깔로 치장을 했다. 빨간 블라우스에 빨간치마, 빨간 마후라와 빨간 스타킹, 그리고 빨간 구두. 어느 날은 보라색 자켓에 보라색치마, 보라색 스타킹에 보라색 구두, 노란색이 전부인 날은 모자를 쓰기도 했고 초록색으로 온통 감싸고 지나가는 날도 있었다. 그리고 하루도 빠짐없이 옷색깔과 같은 색깔의 마후라를 길게 늘어뜨리고 지나갔다. 머리는 붉은 자주색같아 보였는데 어두침침하여 정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붉거나 주홍색계열임은 틀림없었다. 어깨를 넘는 길이에 앞머리를 잔뜩 부풀려 올렸고 머리모양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매일 매일 몸을 감싸고 있는 색깔만 바뀔 뿐이었다.

청년은 처음엔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한 달넘게 마후라아줌마를 보고 있자 섬뜩한 느낌마저 들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그 시간에 휘리릭 지나가는 듯 했다. 마후라아줌마를 다른 곳에서 봤다는 사람은 없었다. 오로지 그 길가에서 그 시간에만 발견되었다. 이 동네에서 10년을 넘긴 사람도, 20년을 넘긴 사람도 그이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청년이 이런 저런 사람에게 그이에 대해 물으면 모두들
“아 마후라아줌마?” 라고 반문할 뿐 아무도 어떤 정보도 주지 않았다.

곧 청년도 그리 되었다. 아르바이트 석달차, 오늘도 마후라아줌마가 10시 59분에 지나갔다. 마후라아줌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버스처럼 휘리릭 지나가는 사람. 이 정류장에 매일 지나가는 버스보다도 사람들은 그이에게 관심이 없었다. 이 버스가 지나가면 다음 버스가 오는 것처럼, 청년에게 마후라 아줌마의 행진은 그저 하루가 끝났다는 신호에 불과했다.

2014년 7월 11일

한 사람이야기 – 8. 옥희

한 사람이야기 – 8. 옥희

홀이 시끄러웠다. 웨이츄리스들은 군데 군데 흩어져서 인상을 구기고 한 테이블을 쏘아보고 있었다. 손님들도 더러 그 테이블을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의자에 깊이 앉아 그 테이블의 남자들을 빤히 보는 손님도 있었다. 시선이 집중된 테이블을 제외한 곳에 앉은 사람들은 대부분 단골손님들이었다. 웨이츄리스들이 그들이 즐겨먹는 메뉴가 뭔지, 테이블에 올려놓고 가는 팁이 얼마인지 이미 정해져 있는 사람들. 치킨버거에 콜라를 먹는 아저씨은 언제나 2000원, 스테이크에 레드와인을 시키는 남자 언제나 3000원.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이 가게에 들러 끼니를 해결하고 가는 외국인들이었다. 국적은 모두 다르지만 대부분 백인이었다. 이 동네에는 미국의 그 어느 식당보다도 인종이 확실히 구분되어 있었다.

옥희는 가게에 들어오면서부터 직원들의 불쾌한 표정을 보았다. 동시에 소란스러운 취객의 소리가 들렸다. 옥희의 긴 치마가 사각사각 소리를 냈다. 주방에 서서 냅킨을 뽑아 코를 닦으면서 홀을 한 번 훑어보았다. 옥희의 시선도 그 테이블에 가서 멈췄다.

네 남자가 앉아 있었고 가운데는 잘 나가지 않는 3000cc짜리 맥주피처가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흥건히 취해 있었고 이미 맥주도 바닥에 꽤 쏟은 상태였다. 옥희가 가만히 주시하고 있는 사이 키가 큰 웨이츄리스가 행주 두 개를 들고 맥주잔의 자리를 옮겨가며 테이블을 닦았다.

“저 바닥에 맥주 흘리셨는데요. 좀 닦아도 될까요?”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키가 큰 아이는 짝다리로 서서 남자 넷을 내려다보았다.
“어 그래 그래. 그래 주면 고맙지.” 술 취한 남자 하나는 안경이 코끝까지 내려온 채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키가 큰 웨이츄리스가 테이블을 싹 닦아내는데 바로 옆에 앉은 남자가 웨이츄리스의 엉덩이를 만졌다. 툭툭.
“뭐하시는 겁니까?” 웨이츄리스가 정색하며 물었다.
“아니 뭐. 나는 딸 같아서 고맙다고..” 남자가 헤벌쭉, 더럽게 웃었다.
“손님은 딸한테 그러십니까?” 억센 경상도 억양이 묻어나왔다.
“그러시는 거 아닙니다.” 웨이츄리스는 설거지를 하는 뒷주방에 가서 대걸레를 가지고 나와 바닥을 닦았다. 대걸레를 미는 팔에 힘줄이 불거졌다.
“아 뭐 그런 거 가지고 그래 까칠하게!” 남자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손님, 여기는 식당입니다. 밥 먹는 데예요. 다른 손님들에게 방해가 됩니다.” 웨이츄리스는 딱딱하게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뭐 씨발.. 양놈들만 좋다 이거지? 조선놈은 싫으냐? 줘도 싫으냐?” 남자가 흥얼거리듯 말했다. 웨이츄리스가 대걸레를 바닥에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양 손을 허리에 얹고 삐딱하게 섰다. 남자를 노려봤다.

“니가 뭔데? 이..양공주년이 어디서 눈을 부라려!” 남자의 목소리가 거세졌다.
사무실 문앞에 남편과 서서 상황을 지켜보던 옥희가 나왔다. 남편도 나와 옥희의 뒤에 섰다.

“여보세요. 손님.” 남자들이 작은 옥희를 쳐다봤다.
“나가세요.” 남자들은 미동도 없이 옥희의 작은 얼굴을 빤히 보고 있었다.
“나가시라고요. 여기는 이렇게 술 취해서 소리지르고 우리 아가씨 만지고 시비걸고 그러는데 아니예요. 나가시라고요.”
남자 하나가 벌떡 일어났다. 테이블에 다리가 부딪치면서 맥주잔이 엎어졌고 맥주가 질질 흘러 남자의 바지에도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뭐? 니가 뭔데? 너도 양색시야?”

옥희는 입술을 앙 다물었다. 안경이 코끝까지 걸린 남자가 일어난 순간 옥희가 더 작아졌다.
“나가 이 개새끼야. 어디서 양색시 운운하고 지랄이야? 나가 이새끼야! 양색시? 뭐? 양공주? 왜 양갈보라고 하지? 니들은 어디서 뭐하다 온 새끼들이야? 이러니까 엽전소리를 듣는거야! 나가 이 새끼들아! 이 더러운 새끼들 나가!”
옥희가 우렁차지 않되 명징한 목소리로 말을 하자 뒤에 서 있던 남편이 옥희 앞으로 나서서 한 남자를 끌어냈다. 한 남자가 커다란 남편의 손에 허리춤을 잡혀 거의 들리듯이 문쪽으로 끌려나가자 다른 남자 아르바이트들도 주방에서 뛰어나왔다. 밝은 홀과 구분된 앞쪽 홀로 남자들이 어어어 하며 끌려 나갔다.

옥희는 남편이 옥죄고 있는 남자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그러는 니들은 뭐 했는데? 우리가 여기서 술 팔고 밥 파는 사이 니들은 뭐 했는데? 내가 여기서 바닥을 기어다니면서 담배꽁초 주으면서 딸라 번 년이야. 그러는 사이 니들은 뭐했는데? 흥청망청 다 처먹고 니들 때매 IMF 온 거 아냐? 니들이 언제 딸라 벌어봤어? 왜 남의 영업장에 와서 술주정을 하고 개지랄들이야 지랄들이! 야! 여기는 원래 니들같은 애들 안 받아! 여기가 술집이야? 니들 조선놈들 떼로 모여서 기집질이나 하는 그런데나 가! 어디 남의 점잖은 밥집에 와서 생지랄들을 하고 술처먹고 염병을 떨어! 어디 호랑말코 같은 새끼들이! 니들 때매 국가가 암담해 이 개새끼들아!”

남편이 한 남자를 질질 끌고 지하계단을 올라 1층으로 끌어올려 밖으로 던졌다. 나머지 남자 아르바이트생들도 다른 남자들을 하나씩 붙잡고 위로 올렸다.
옥희는 남편과 아르바이트생들이 돌아오자 허리에 손을 얹고 분을 삭이며 서 있었다.

“언니 물 좀 줘라.”옥희는 캐셔박스 앞에 서 있던 지원에게 말했다.
지원이 물을 한 잔 따라줬다.
옥희는 얌전한 유리컵에 담긴 생수를 마시다 말고 다시 말했다.

“지들이 언제 딸라 벌어봤어? IMF나 만든 새끼들이. 하여튼 조선것들은 안돼. 저래서 안돼. 얘, 앞으로 한국손님 가려 받아.”
지원이 흥겹게 큰 소리로 대답했다.
옥희가 다시 주방쪽으로 걸아갔다. 치마에서 사각사각하는 소리가 났다.

#한사람이야기

한 사람이야기 7 – 지원

웃고 있었다. 팔꿈치를 바닥에 대고, 두 손을 모아 깍지를 낀 채, 앞에 있는 사람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앞에 앉은 갈색머리의 남자도 호기롭게 웃었다. 지원의 큰 입은 웃을 때 진가를 발휘했다. 가지런한 치아, 붉은 입술, 넓게 퍼져 광대근육 바로 아래로 올라붙는 입꼬리가 시원했다. 앞머리를 길게 내리고 안경을 썼다. 사람들이 왜 안경을 쓰느냐고 물으면 그저 눈이 나쁠 뿐이라고 했다. 콘택트렌즈는 불편하고 무섭다고 대답했다. 이물감도 거추장스러웠고 눈 건강에도 해로울 듯 했고, 더군다나, 안경은 지원이 가리고 싶은 긴 얼굴을 감춰주었다. 지원이 바에서 나와 맥주잔을 들고 주방쪽으로 향해 가면 근처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지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엉덩이는 봉긋 솟아올랐고 허리는 잘록했다. 가슴은 크지도 작지도 않고 어깨를 쭉 펴고, 가슴을 내밀고, 맥주잔을 든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만큼 캣워크를 하는 모델처럼 걸었다. 장점은 살리고, 약점은 가리랬다고, 지원은 긴 바지나 긴 원피스를 즐겨 입었는데 하나같이 몸에 딱 달라붙는 디자인이었고 다소 짧은 종아리는 9cm가 넘는 힐로 감췄다. 하의가 신발 등위까지 내려왔기 때문에 키가 작은지, 다리가 짧은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적어도 지원이 그렇게 걸을 때는 모델을 하다 은퇴한 20대 후반의 여자로 보였다.

생맥주를 따라온 지원이 앞에 앉은 남자에게 컵받침을 새 것으로 바꿔주며 맥주잔을 내려놓았다. 남자가 고맙다고 인사하자 지원도 “땡큐”라고 입술을 오므리며 귀여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원은 오늘 노란바탕의 딱 달라붙는 니트원피스를 입었다. 남자는 연신 지원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고, 지원은 귀기울여 들었다. 금전출납기를 열어 돈을 넣고 닫을 때도, 웨이츄리스들의 주문을 받아 술을 만들 때도, 병맥주를 딸 때도 연신 웃음을 잃지 않았다.

가게는 지하에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지원이 보였다. 지원은 드나드는 모든 사람들에게 웃으며 인사를 해야하는 자리에 있었다. 그에 대해 불평을 한 적은 없다. 가끔 만사가 귀찮거나 몸이 안 좋거나 일이 너무 바쁠 때면 웃지 않을 뿐이었다. 문이 열릴 때마다 문 위에 달린 작은 종이 딸랑. 하고 소리를 내었다. 지원은 거의 모든 순간 웃으며 헬로, 라고 인사했다.

지원의 앞에 앉은 남자가 일어서서 계산을 하고 팁통에 만원짜리 하나를 넣었을 때 지원은 다시 한 번 활짝 웃었다. 자꾸 뒤돌아보며 문을 여는 남자에게 지원은 손을 흔들며 바이,라고 말했다. 주방에서 보조일을 맡고 있는 청년이 성큼성큼 걸어왔다. 지원 앞에선 청년은 봉투를 하나 들고 있었다.

“누나, 함춘임이 누구예요?”

“왜?”

“이거 아까 낮에 대타 뛰다가 받은 건데, 누구한테 물어봐야 되나 하고..”

지원은 청년의 손에 든 봉투를 나꿔챘다.

“누구예요?”

“나야.”

“아, 누나 이름이 함춘임이예요?”

“옛날 이름.” 봉투는 등기우편이었다.

지원의 표정이 다소 굳어졌다. 청년은 웃으면 안되겠다는 걸 알아챘는지 뒤로 물러나서 잠깐 멈칫했다. 지원이 환히 웃으며 얘기했다.

“그래도 나는 지원이야. 알았지?”

청년은 마음이 가벼워져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누나 오늘 정말 예뻐요.”

“땡큐” 지원은 다시 입술을 오므리며 발음한 뒤 입꼬리를 길게 올리고 미소지었다.

바에서 설거지를 하는 아르바이트생이 쓰레기를 버리러 간 사이 지원은 등기우편을 열어보았다.

 

지원의 주민등록지는 이 가게로 되어 있었다. 지원은 7년전 일로 다시 법원을 가고, 그 남자를 만나거나 마주보아야 한다고 서류에 적혀 있었다. 짐도 없이 거리로 나왔다. 눈이 부어 앞이 보이지 않았고 이도 몇 대 부러진 상태였다. 기억을 더듬어 옛 인연을 찾아 이 가게로 왔다. 춘임이었던 때, 찾아온 인연은 그녀를 내치지 않고 집에서 며칠을 같이 지내다 방을 구하기 위해 우사단 길을 걸었고 칵테일 만드는 법을 가르쳤으며 주민등록을 가게로 옮기게 했고 금전출납기와 장부를 맡겼다. 지원에게 장부를 맡긴 여자는 주방에서 스테이크를 굽고 있는 주방장에 옆에 서서 웃고 있었다. 작은 키의 그녀가 주방을 돌아나와 지원에게 왔다.

“나 와인 한 잔만 줘.”

지원은 냉장고에서 와인 한 병을 꺼내 마개를 따고 길쭉한 와인잔에 따라 건넸다.

“아 예쁘네 이거. 이거 뭐야?”

“로제와인, 어제 장사장님이 신제품이라고 가져왔어.”

와인을 든 여자가 지원을 빤히 봤다.

“그거, 내가 일부러 모르는 척 했다?”

“뭐?”

“아까 그 등기우편. 내가 성욱이한테 난 모르니까 너한테 가서 물어보라고 했다?”

“아 언니!”

여자는 깔깔대고 웃었다.

“그 새끼니?”

“어.”

“미친 새끼.”

키 작은 여자는 와인잔을 들고 총총히 걸어 주방으로 돌아갔다.

지원은 펴 놓은 매출장부로 쓰는 다이어리에 글자를 적었다.

‘쇼리언니 로제와인 1병 카를로로시– 장사장 증’

 

 

2014. 7. 6.

한 사람이야기 6 – 쑈리

쑈리는 어두운 방안에 혼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입에 담배를 문 채로 벌떡 일어나 커튼을 제쳤다. 창을 열자 비루한 햇빛이 쏟아졌다. 햇살이 좋은 모양이다. 눈 앞에 흰 먼지들이 날아다녔다. 쑈리에게 모든 창문은 너무 높았다. 담뱃재가 길어져 떨어지려 하자 쑈리는 바닥에 놓인 검은 재떨이에 재를 털었다. 방안에 불을 켰다. 궁상은 질색이다. 질색하는 궁상을 몇 시간을 떨고 있었던건가.

 

‘어디 못 배워 먹은 그지같은 년 데려다가 사람 만들어놨더니 니가 내 뒤통수를 쳐? 썅년같으니라고.’

 

17년이다.

한 가족처럼 지냈다. 언니가 아니어도 언니라고 불렀고, 형부가 아닌데도 형부라고 불렀다. 그 여자의 아이들은 쑈리를 이모라고 불렀고 낯선 이들은 자매간으로 알기도 했다.

17년이다. 자그마치 17년.

집도 절도 없이 떠돌던 때였긴 하다. 그렇다고 빌어먹고 살진 않았다. 부모나 형제, 가족이 뭔지 알 필요 없이 지냈다. 하나뿐인 오빠는 고향근처 소도시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모양이었다. 내놓을 것도 없는데 괜히 나타나 번잡스럽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사랑에 상처받았던가, 젊은 나이에 사랑에 상처 안 받는 인간도 있나. 20대였다. 처음 그 동네에 발을 들인 것은. 재치있었고 배짱이 좋았다. 체구와 다르게 손님들과 싸움도 잘 붙었다. 셈이 빨라서 거쳐 가는 곳마다 사장들이 좋아했다. 그런 쑈리를 발탁해서 자기 가게로 데려온 게 그 여자다. 짐을 싸는 뒷통수에 대고 욕지거리를 해댔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늙지도 않는다. 환갑이 되어가는데 어쩜 저래 기세가 등등할까.

쑈리는 담배를 물고 여자를 꼬나보았다.

“씨발 진짜 고만해 좀.” 여자는 지치지도 않은 지 쑈리가 트렁크 두 개에 옷 몇 가지 챙겨 나와 어기적거리며 계단을 내려갈 때까지 떠들어댔다.

쑈리는 계단 아래에 무거운 트렁크를 내려놓고 담배를 발로 비벼껐다.

“어따가 담배를 끄고 지랄이야 저 미친년이! 야!!!”

“잘 먹고 잘 사쇼. 염병 진짜. 니미 뽕이다 이 씨발년아.” 쑈리는 오래전 남자들이 했던 것처럼 주먹을 쥐고 왼손으로 팔목을 감쌌다. 손등을 아래로 한 작은 주먹, 검지 중지 사이에 엄지를 끼워서.

 

대체 뭐가 잘못된 건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17년을 한결같이 언니라고 부르며 살아온 여자였다. 자기는 집도 사고 땅도 사고 남자 바꿔치워 아들 둘도 잘 키우지 않았나. 그럼 나에게 뭐 하나라도 넘겨줘야 옳은 거 아닌가. 가게 매상 하나만 내달라는 게 그렇게 부아가 나는 일이었나. 그럼 저년은 여태 나를 뭘로 본 건가. 내가 지 메이드(maid)야? 미친년. 호랑말코같은 썅년. 좆같은 년, 개보지같은 년. 쑈리는 길바닥에 서서 혼자 욕을 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남자가 쑈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쑈리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렸다. 마침 지나던 택시가 있어 얼른 올라탔다.

 

이 호텔에선 그 동네가 빤히 내려다보인다. 저 땅에서 몇 십년을 부쳐먹고 살았나. 마치 소작농처럼. 죽어라 노동을 해도 퇴직금은커녕 빤스 한 장 못 받고 쫓겨나다니 주방에서 스테이크 고기를 쌓아놓던 낡아빠진 양은 쟁반으로 그년의 머리통을 깨지도록 갈겨주고 싶었다.

 

146cm의 키, 몸무게 38키로, 나이는 마흔 넷, 쑈리의 이름은 영어 shorty에서 왔다. 키가 큰 남자들이 쑈리라고 불렀다. 영국애들이었다면 쑛티가 되었을텐데 이름을 부르는 놈들이 모두 입움직이는 것도 게으른 미국놈들이라 이름이 쑈리가 되었다.

 

쑈리는 1층 로비로 내려가 커피를 한 잔 시켰다. 이 호텔은 아직 로비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다. 커피를 시키고 룸 계산에 달아달라 하자 웨이터가 영수증을 가져와 쑈리에게 방호수를 확인하고 싸인을 해달라고 했다. 쑈리는 담배를 물고 웨이터에게 펜을 달라고 손바닥을 펼쳤다. 웨이터가 건네주는 볼펜은 모나미였다.

“격 떨어지게 모나미가 뭐야?” 어린 웨이터의 얼굴이 벌개졌다. 쑈리는 영수증 밑에 싸인을 했다.

가 순 희. 그녀의 이름이다.

 

2014. 7. 5.

한 사람이야기 5 – 성욱

세상 모든 만물은 다 이유가 있다.
수긍할 수 없는 말이었다. DJ박스에 한참을 앉아 있던 성욱은 그 말을 믿기로 했다.
컨트리음악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 성욱은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혼자 그 말을 두 번 중얼거렸다.
미국의 컨트리 음악을 모두 데이터베이스화 하는 작업을 며칠 째 하고 있었다. 낮에는 바텐을 보는 영상이가 작업을 하고 저녁에는 성욱이 음악을 틀면서 교대하고 있었다. 컨트리 음악의 LP는 약 3천장쯤 되었다. 여태 작업한 양은 500장도 되지 않았다. PC통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컴퓨터가 과연 삶에 얼마나 쓸모가 있을까 의심하던 처지였다. 자기의 할아버지는 아일랜드 사람이라고 하는 사장이 이 일을 지시했다. 이 집에서 일을 한 지 6개월이 되었다.
낮에는 집게를 들고 고기를 구웠다. 11시쯤 출근을 하면 일찍 나온 동료들이 햄버거 패티를 한 장씩 싸고 있었다. 냉동된 패티를 불판에 올리고 간혹 스테이크를 굽기도 했다. 저녁에는 주방장이 출근하기 때문에 주방에 있던 성욱은 DJ 박스로 돌아가고 영상이는 바로 들어갔다.
하루종일 이 햄버거 가게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큼큼한 고기 누린내는 익숙해졌다. 간혹 관심이 가는 웨이츄리스가 새로 들어오기도 했다. 무엇보다, 어학연수를 갈 형편이 되지 않는 성욱에게 이 곳은 매우 좋은 어학연수기관이었다. 사장내외는 한국인 여자와 미국 남자였는데 남자 사장은 단어가 현란하지 않으나 매우 또렷한 발음을 구사했고 음악을 틀고 있다 보면 DJ 박스에 와서 신청곡을 말하며 이런 저런 말을 거는 사람들도 있었다.
성욱은 그럴 때마다 그들에게 되물었다.
“두 유 노우 메탈리카?”

컨트리음악을 주로 틀기 때문에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시대착오적인 옷을 입은 남자들도 꽤 드나들었다.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으면 그들은 엔지니어라고 대답했다. 거의 다 엔지니어였다. 경영을 전공하는 성욱은 그들이 어떤 회사에서 어떤 대우를 받으며 일하는 지도 궁금했다. 음악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삶의 이야기로 옮겨갔다. 고국에 두고 온 가족들의 사진을 보여주는 사람들도 있었고 음악을 틀어달라고 CD를 가져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외로움, 15년이 넘은 지하 햄버거 가게에 눅진하게 늘러붙어 있는 정서였다.

9시가 되었다.
웨이츄리스들이 바 앞으로 모여 줄을 맞췄다.
미스박이 매일 노래를 정했다. 손님이 없을 때는 새로 들어온 웨이츄리스들에게 미스박이 춤을 가르쳤다. 짧은 자주색 치마를 입은 젊은 웨이츄리스들이 라인댄스를 췄다. 매일 세 곡의 라인댄스를 췄는데 미스박은 오늘도 귀여운 글씨로 메모지에 노래 세 곡을 적어줬다. 이미 MP3로 만들어 저장해 둔 곡들이었다. 성욱은 오케이~! 라고 호기롭게 대답하며 노래를 틀었다. 새로 들어온 어린 웨이츄리스는 춤을 출 때마다 힘이 넘쳤다. 얼굴에 땀이 맺힐 정도로 열심히 춤을 추었다. 춤추는 여자들은 모두 즐거워보였다. 성욱은 그 모습이 보기 좋아 배워보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세 곡의 라인댄스가 끝나고 바 앞으로 자리를 옮겨 춤을 구경했던 손님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일어섰다. 바에서 물을 한 잔 마시고 주방쪽으로 가는 새로 들어온 어린 웨이츄리스에게 성욱이 말을 걸었다.
“현아?”
눈이 동그란 아이는 성욱이를 빤히 보았다.
“바닥 꺼질 거 같애.” 성욱은 말이 끝나자마자 목소리와 안 어울리게 요란하게 웃었다.
여자애는 사람 좋게 씩 웃었다.
“너 성격 좋지? 그래 보인다.”
“성격 좋은 게 뭘까아요.?” 현아는 장난스럽게 대답하며 주방쪽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귀엽다. 10시가 넘어 손님들이 하나 둘 빠지기 시작하자 성욱은 음악을 걸어놓고 창고쪽으로 갔다. 주방에 있던 세 명의 청년도 창고쪽으로 나왔다. 목장갑을 끼고 쓰레기를 정리했다. 까만 봉투에 하룻동안 밀린 쓰레기를 쑤셔박았다. 빈 맥주병과 콜라병도 옮겨야 했다. 햄버거 가게는 지하 1층인데 창고쪽 문을 열면 골목의 계단이었다. 계단을 올라가 검은 쓰레기봉투를 전봇대 옆에 차곡차곡 쌓고 청년 넷이 쪼그려 앉아 별 시덥지 않은 농담을 하며 담배를 피웠다. 학교에 계속 다니고 있었다면 만나기 힘든 친구들이었다. 화장실에 들러 손을 닦고 DJ 박스에 들어가 앉아 헤드폰의 한 쪽만 대고 있는데 현아가 DJ 박스 앞에 서서 뭔가를 적고 있었다. 글씨를 적을 곳은 DJ박스 외에도, 여러 곳에 있었다.

“많이 벌었어?”
“아직 얼마 안 됬으니까 별로 없죠. 아까 스테이크 손님 있었는데, 3천원 주고 갔어요. 오늘의 빅팁.” 현아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작은 수첩에 숫자를 적고 있었다. 성욱은 현아의 글씨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오빠.”
“응?”
“성욱이오빠죠?”
“아. 내 이름 몰랐어?”
“성욱이오빠. 오빠 송승헌 닮았다는 소리 많이 듣죠?”
성욱은 얼굴이 벌개지며 크게 웃었다.
“되게 쑥스러워하네.” 현아는 수첩을 들고 씩 사라졌다.
뻘쭘해진 성욱이 앉지도 못하고 서 있는데 현아가 다시 나타났다.
“숱댕이 눈썹 성욱이 오빠. 오빠 고대 다닌다면서요?”
“아.. 휴학중이야.”
“고대 다니는 사람이 왜 이런 데서 일해요?”
성욱은 다시 요란스럽게 웃었다. 쑥스러워요 라는 문장이 성욱에 얼굴에 반점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재밌잖아.” 현아의 표정이 어땠는지도 모르겠다. 성욱의 얼굴은 씨벌겋게 달아올랐다.

물이나 마시려고 DJ박스의 쪽문앞으로 문을 숙였다. 선반이 길게 놓여 있고 그 아래 공간으로 나와야 하기 때문에 몸을 잔뜩 웅크려야 했다. 쪽문을 나와 몸을 일으켜는데 다시 현아가 나타났다.
“오빠 되게 쉬운 사람이구나?” 성욱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잠시 멈춰 있었다.

학교에서는 만날 수 없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이 곳이 아니면 저런 여자애는 어디가서도 만날 수 없을 것이었다. 눈이 길고 얼굴이 호빵처럼 동그란 저 아이는 어디서 왔을까. 성욱은 자기가 안암동이 아닌 조치원 캠퍼스라는 걸 얘기해도 모를 거라고 확신했다.
성욱은 몸을 살짝 좌우로 흔들며 바로 가서 영상이에게 물을 한 잔 달라고 했다. 영상이 맥주컵에 물을 따라줬다. 단 숨에 물을 들이킨 성욱이 영상이를 보며 정색을 하고 말했다.
“연애나 해야겠다.”
영상이 성욱을 빤히 바라보며 정색하고 대답했다.
“미친놈. 너하고 안 해 이 개새끼야.”
성욱은 눈을 크게 뜨고 다시 영상을 쳐다봤다.
“너… 너.. 게이야?”
“아니야 이 미친년아 물마셨으면 꺼져.”

#한사람이야기

 

2014. 7.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