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말하다

#1. 동네 수퍼에 못 보던 아가씨가 캐셔를 보고 있다. 고운 얼굴에 피부도 깨끗한 것이 20대 초반같다. 아이라이너도 섬세하게 번짐없이 잘 그렸다. 참 예쁜 얼굴인데 표정은 좋지 않다. 일부 배달부탁드리구요 비닐봉투 하나 주세요. 라는 나의 말에 “네?” 하고 되묻는다. 방금 전 잠시만요 하고 내가 물건을 놓고 저쪽에 가서 크리넥스를 가져온 것이 못마땅했나 생각하게 되었다. 배달용 포장봉투에“일을 말하다” 계속 읽기

자기 역사를 지우다 – 드라마 야왕

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가난한 집에 태어나 부모가 자살기도 하는 것을 목격하다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만 살아남았다. 아버지가 죽는 현장에서 한 남자가 엄마를 구해낸다. 아이는 고아원에서 자라다가 재혼한 엄마가 아이를 찾으러 온다. 성폭행을 일삼는 의붓아버지에게서 도망쳐 엄마와 단 둘이 살아간다. 지병으로 엄마가 죽는다. 소녀는 어리고, 돈이 없어 장례를 치르지 못한다. 이 때 이웃의 한 청년이 나타나 소녀를“자기 역사를 지우다 – 드라마 야왕” 계속 읽기

가정환경조사서라는 솥뚜껑

내일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이다. 학교 입학에 대해서 크게 개의치 않고 지냈다가 필요한 서류를 챙기기 위해 검토를 했다. 학교에서 나눠준 유인물 묶음에 입학식에 제출하는 서류가 있었다. 가정환경조사서 / 예방접종증명서 / 저녁 돌봄 지원서 세 가지다. 저녁 돌봄은 신청하지 않을 것이라 취학통지서를 받고 준비해 온 예방접종증명서를 민원사이트에서 출력했다. 각종 전염병에 대해서 미리 접종을 완료했다는 증명서인데, 입학식“가정환경조사서라는 솥뚜껑” 계속 읽기

아들의 집

나에겐 아들이 하나 있다. 이 아이는 2006년도에 한국에서 태어났고, 2006년 12월에 처음 아파트에 입성했다. 난곡의 판자촌을 깎아 만든 재개발 단지였다. 유모차를 밀고 높은 언덕을 올라다녀야 하는 길이었다. 시흥의 뒷길을 돌아 멀리서 그 아파트를 바라보면 마치 거대한 성채가 모여 있는 듯 했다. 그만큼 생경스럽고 낯선 곳이었다. 내가 사는 곳이었지만, 언제나 기괴하고 이상야릇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산안개가“아들의 집” 계속 읽기

한국사회, 가족의 파시즘 – 강준만 글 발췌

냉정한 사회과학적 분석의 메스를 들이대자면, 한국의 어머니 역사는 어머니가 ‘자궁 가족’의 수장으로서 그런 전쟁 (입시전쟁) 체제에 순응해 온 슬픈 역사다. 그 역사는 ‘보수적 과잉반응’, ‘보상적 인정 투쟁’ 이라고 하는 세 가지 관점에서 정리할 수 있겠다. 첫째, 보수적 과잉 순응이다. 이는 어떤 체제의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는 사람이 오히려 그 체제에 과잉 순응함으로써 자신의 안전과 번영을“한국사회, 가족의 파시즘 – 강준만 글 발췌”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