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넷

마흔 넷.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많이 버렸다. 나에게 장애물이었던 것들, 내가 사랑하지 않는 것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 서른 살무렵부터 빨리 늙고 싶었다. 나이를 먹으면 사는 게 편해질거란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어쩌면 지금이 제일 좋은 시기일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다시 힘들어질 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삶은 몇 년째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더 이상 등짐을 진 당나귀“마흔 넷” 계속 읽기

마른 빵, 마른 잎 

이한열열사의 추모제가 열리는 시청 앞 광장에 노을이 내려앉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안치환이 나와 거칠고 익숙한 목소리로 “마른 잎 다시 살아나”를 부르고 있었다.  시청 뒤 NPO센터에서 있을 행사에 가러 나온 길이었다.  행사 시작전인 센터 안은 꽤 무더웠다. 냉방이 필요했는데 아직 장치를 가동하지 않은 듯 했다. 북태평양에서 바람이 불어온다는 며칠, 바깥 바람이 상당히 시원했다.  베이스와 낮은 드럼“마른 빵, 마른 잎 “ 계속 읽기

뒤통수

1. 몇 년전,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이었다. 암 생각없이 길을 걷다가 갑자기 턱에 뭔가가 날아왔고 엄청난 충격이 있었다. 날아와 내 턱에 부딪쳐서 떨어진 건 일수대출 찌라시. 일수대출 찌라시를 뿌리는 사람들은 스쿠터를 타고 다니며 여기 저기 종이를 던지는데 그 종이는150~200g 정도 되는 아트지 류다. 코팅된 두꺼운 종이라는 얘기. 기껏해야 책 표지 정도 되는 얄팍하고 작은“뒤통수” 계속 읽기

공범

1. 오전에 목동까지 가서 바이올린 앙상블을 연습했다. 근처에 사는 분과 동행했고 같이 점심을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포도밭과 산을 갈아엎어 만든 아파트에 사는 그 사람과 나는 각각 15,000원이 넘는 스테이크를 하나씩 먹었다. 그 분은 내 차를 얻어탔다며 밥값을 내겠다고 했다. 나는 밥을 잘 얻어먹고 집으로 돌아와 주차장에 차를 댔다. 한 달째 주차장 크랙을 메우는 공사를 한다.“공범” 계속 읽기

기록으로 남다

  아래의 글은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의 서울지역 조합원 자격으로 은빛기획, 서울시시설관리공단과 같이 진행한 다음스토리펀딩의 연재글로 작성한 것입니다. 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3234 2012년 9월, 5년간의 투병을 끝으로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머님의 장례식을 치르며 장례식장에서 집에 잠시 들러 내가 부랴부랴 한 일은 집에 와서 기록을 챙기는 일이었다. 2008년부터 시작된 병원순례, 어머님의 마지막 5년은 병원기록으로 남았다. 진료비 영수증, 예약증, 병원을 옮길 때 받았던 의무기록지,“기록으로 남다” 계속 읽기

22원 그리고 10원

  지난 금요일 롱바이라는 동네에 갈 일이 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출발을 했었다. 날씨는 갑자기 추워졌고, 시간은 촉박해, 털모자와 목도리를 하고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보니 땀이 나서 옷은 젖어가는데 바람이 칼같아서 속도는 나지 않았다. 이제는 아무렇게나 아플 수도 없는 생활임을 알고 있었다. 자주 가던 시엔시아루 스타벅스앞에 다다라 자전거를 묶어놨었다. 그리고 오늘 저녁 자전거를 다시 찾으러 갔다.“22원 그리고 10원” 계속 읽기

소나기가 지나간 저녁

  지난 밤에 공씨디를 사러갔던 대형전자상가에는 내가 찾는 공씨디가 없었다. 지난 금요일쯤 그 곳에 갔을 때 남아있는 19장의 씨디를 모두 챙겨나왔는데, 그 빈자리 그대로였다. 빈자리 그대로, 장사를 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어젯저녁 심한 돌풍과 비가 내렸던 그 축축하고 어두운 길을 걸어왔었다.   집 근처에 있는 다른 전자상가는 흡사 용산전자상가의 축소판 같았다. 공씨디를 여러종류“소나기가 지나간 저녁” 계속 읽기

볶음 국수 한 그릇

  먼 하늘에서 구름이 밀려오는 게 보였다.   구릉구릉 거리는 소리가 공기를 휩싸더니 바람이 심하게 불기 시작했다. 비가 오려나보다 생각하자 마자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는데, 후두둑 거리는 소리가 요란해 마치 우박이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 비는 오래 가지 않았고, 10여분 만에 그쳐버렸다. 비가 그쳤다고 생각하고 슬리퍼를 신고 국수나 한그릇 먹어야겠다 하고 아파트를 나섰을 때 굵은 빗방울은“볶음 국수 한 그릇” 계속 읽기

NOT THAT BADLY

  # 1.   “근데 이 나라 사람들은 왜 식당이고 술집이고, 잡상인들이 이렇게 드나들게 내버려두죠? 여기도 그래. 복권까지는 괜찮다 쳐. 뻥튀기까지도 넘어가. 근데 왜 술집에 들어와서 한치 안주 사라고 그러는데도 왜 주인이 가만히 내버려두죠? 설마 이런 술집까지 국영인 건 아니겠죠?” “외국인들만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베트남 사람들은 아무도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나라가 아직 가난하지만 남의“NOT THAT BADLY” 계속 읽기

초승달 2

살수록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다는 건 겪지 않아도 될 일을 자꾸 겪게 된다는 뜻이다. 이따봐용맘미. 라고 카톡을 보내는 딸아이의 수줍은 미소는 왜 이리도 처연한가. 하루 종일 술독에 절궈져 초저녁부터 코를 고는 사내 앞에서 티비를 틀어놓고 춤을 추는 아이의 허벅지가 튼튼하다. 늙은 개와 손바닥만한 아파트단지를 두 바퀴 돌았다. 이제는 누구 앞에서도 울고 싶지 않은 나이가“초승달 2”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