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와 몇 시간에 걸쳐 띄엄띄엄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의 고민은 과를 바꾸는 것인데 그 바닥에는 취업과 진로에 대한 고민이 있다. 나는 대학 4년간 해야 할 일은 가장 넓게 보고 넓게 경험하는 일이라 생각해왔고 아이에게도 그러길 바란다고 권해왔다.
직장들어가 승진하는 게
인생의 목표가 아니라면 어쨌거나 즐겁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게 우선이고 전공과 먹고 사는 문제는 연관이 없지도 있지도 않은 개인의 그 때 그 때의 사정에 달려 있으니 취업을 우선시 해서 결정하지 않길 바란다 했다.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으나 지금 20대들의 상황은 생각보다 매우 나쁘다. 스펙 좋은 아이들은 특정 계층에 몰려 있고 어차피 내 새끼들은 그 계층과 승부를 볼 수 없으며 그런 일로 스트레스 받길 원하지도 않는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예측불허인 일들은 산처럼 몰려올테니 그저 한 순간 한 순간 즐거울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겠느냐 했다.
덧붙여, 이 글로벌한 세상에 이 나라가 어떻게 될 지도 모르고 인공재해로 인해 한 나라가 작살나는 경우도 많은 위험시대에서는 어느 나라에 가서도 먹고 살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 정말 좋겠다고 했다.
예를 들어, 네가 낯선 도시에 여행을 갔다가 돈이 떨어져 한 끼 식사를 벌어먹을 수 있는 거리에서 펼칠 수 있는 재주 같은 건 꼭 키웠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다.
아이가 물었다.
“엄마때는 우리보다 상황이 좋지 않았어요? 취업도 잘 되고?”
“좋았다고 할 수 없지만 너희보다야 나았지. 우리는 먹고 사는 문제를 그렇게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어. 그냥 잘 될 거라고 생각했지. 그러다 다들..
대학 졸업하고 취업이 되었다가 모두 취소통보를 받았지. 네 아빠도 ㅎ대기업에 취업이 됐다가 취소당했다 하지 않더냐.
그 전조증상 같은 것도 있었어. 고 3때 한 달에 한 분씩, 친구들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거야. 자살은 없었어. 심근경색, 뇌졸중, 간경화 뭐 그런 스트레스성으로 줄초상이 이어지는데… 굿 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했었어.
뭐 취업할라니까 IMF터져서.. 다들 공짜로 일하고 전문 자격증 따고 그랬어. 엄마는 닥치는 대로 아무거나 하고 살아서, 잘 몰라. 너 같은 고민을 해 본적이 없다.”
취업고민 해 본 적 없다. 그래서 늘 비정규직이라는 단어가 있지도 않은 시절에 비정규직으로 떠돌았고 퇴직금으로 스타킹 한 박스 받아본 적 없다. 그래도 먹고 살 수 있었다. 내가 뛰는 만큼 스물 한 두살에도 잠을 줄이면 몇 백씩 벌기도 했으니까.
지금은 아니다.
지금 아이들은 벽이 점점 좁아지는 큐브속에서 두려움에 떨고만 있다.
어차피 옛사람들이 말하는 입신양명 못할 거,
그저 즐겁고 행복하길 바랄 뿐.
2015. 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