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잇을 붙이다

이태원에 가기로 했다. 서초에서 잠수교를 타고 넘어가는데 잠수교 북단 끝에 세 명의 남자들이 서 있는 걸 발견하고 속도를 줄였다. 낙엽을 치우는지 두명은 안전조끼를 입은 것 같고 안전관리자도 없고 경광봉이라도 흔들어야 하는데 차도에 나와서 일을 하고 있으니 기가 막혔다.

바로 다산콜센터에 전화를 해서 위치와 상황을 알려줬다. 결과를 듣겠냐고 물어서 전화번호와 이름을 남겼다.

만두국을 사먹던 이태원시장 골목 유료주차장에 차를 대고 살인사건이 있었던 옛날 버거킹 자리에 서서 신호를 기다렸다.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수북하게 쌓인 추모의 표식들은 비닐로 씌워놓았다. 비 바람이 예보되어 그런 모양이다. 추모공간을 지키는 경찰들을 보고 있으니 속이 답답해졌다.

오래 전에 꽃집이 있던 자리를 둘러보았는데 지저분한 유리만 남은 공실이었다.

소방서 방향에도 꽃집이 없어서 일단 골목으로 올라갔다. 오래 전에도, 최근 몇 년 전에도 나는 이 골목으로 다니지 않았고 녹사평 방향의 두 번째 골목으로 주로 다녔다.

불법증축이 있었다는 해밀턴호텔의 벽은 추모의 포스트잇과 메모, 꽃과 인형 같은 추모 물품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이 벽은 추모의 벽으로 남기면 좋겠다.

내가 가방에 들은 포스트잇을 꺼내 글자를 적는 사이 남편이 꽃을 사오겠다고 골목을 내려갔다. 카메라를 든 사내가 MBC에서 나왔다며 포스트잇을 붙이는 걸 찍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나는 꽃을 사러 갔으니 조금 기다려줄 수 있냐고 물었다.

남편을 기다리는 사이 용산구청에서 전화가 왔다. 자원순환과 직원이라고 했다. 내가 다산콜센터에 전달한 내용을 확인하고 지점을 다시 물었다. 짜증이 치솟았지만 구청직원도 어렵겠다는 생각에 입술을 깨물며 마음을 눌렀다. 나는 구청직원에게 안전조끼도 모두 착용하지 않았던 것 같고 차도에서 일을 하는데 안전조치가 안 되어 있었으니 확인부탁한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카메라를 들고 있던 기자가 인터뷰도 가능하냐고 물어서 그러자고 했다.

– 오래 전에 여기 살고 일도 했었는데, 그때도, 최근에도 저는 많이 이용하지 않던 골목이거든요. 이 뒷길의 구조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의지대로 이 골목으로 오지 않았다는 걸 알 겁니다.

– 길이라는 건, 누구에게나 안전하고 편안해야 하는데, 이 좁은 길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길을 걷다가 희생되었다는 건, 지금 우리나라에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는 반증이라고 생각합니다.

– MBC에서는 1029참사로 부르기로 했는데, 일부에서는 용산구나 책임의 소재를 묻기 위해 이태원참사라고 불러야 한다는 얘기도 있거든요. 재난은 우선 그 이름을 어떻게 붙일 것인가 사회적합의를 통해 호명을 하는 일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진상규명, 책임자처벌이 있어야 추도와 회복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말은 저렇게 했지만 나는 회복이 가능하다고 믿지 않는다. 죽은 사람이 돌아오지 않듯이, 트라우마는 그저 안고 가는 역사의 일부가 될 뿐이다. 우리들의 세계와 시간은 수많은 재난으로 이미 뒤틀렸다. 구비구비 꺾어진 구간마다 억울한 죽음들이 깔려 있다. 기억하는 자들은 이 희생을 안고 남은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때로는. 희생자들을 비난하는 것으로 자기 삶의 끄트머리 단 한 톨의 공간에도 억울한 영혼이 내려앉지 못하게 혐오의 발언을 내 뱉는 자들의 비겁합과 비루한 마음과 두려움을 이해한다.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나는 세월호를 기억하자는 기억과 약속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강남역 6번 출구에 붙어있던 포스트잇을 기억한다. 구의역에서 혼자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죽은 청년의 가방에서 나온 사발면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그 스크린도어에 포스트잇을 붙였다. 얼마 전 신당역에서 있었던 스토킹 살인사건에도 포스트잇이 붙었다.

왜 우리의 추모는 벽을 가득 메운 포스트잇으로 끝나는가.

해가 뜨고 지는 사이 하루 하루 사람들이 까닭없이 죽어간다. 우리는 포스트 잇을 붙이며 이름없는 죽음을 밀어낸다.

– 용산구청에서는 자원순환과가 아닌 도시관리국 공원녹지과에서 신청건의를 처리한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 이태원추모공간 자원봉사자들이 홈페이지를 만들어 추모 메시지를 정리하는 것 같습니다. https://www.itaewonmemorial.com/

침묵하라

행안부에서 내려온 지침 “이태원 사고 사망자라 명시하고 위패나 영정은 놓지 않는다.”

이 때문에 각 지자체에서는 행안부 지침대로 진행했다가 시민항의, 의회의 문제제기로 갈팡질팡했다.

지방자치단체 즉 지방정부는 시민의 선택에 의해 선출되기 때문에 정당의 소속이며 정치성향을 드러낼 수 있으나 공직자들은 단체장과 무관하게 거기에 있던 사람들이다.

사고 사망자 > 사고 희생자 > 참사 희생자로 고친 안양시 (최대호시장, 더민주)

사고 사망자 > 참사 희생자로 고친 군포시(하은호시장, 국민의힘)의 오늘 낮 사진이다.

거듭되는 항의로 행정안전부도 ‘사고 사망자’를 고집하지 않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1. 사회적 재난은 그 이름에 여러 의미가 중첩되기에 섣부르게 정부에서 공식화할 수 없다. 사건 규명이 되고, 가장 큰 책임이 누구인지 밝히고 2차 가해가 발생하지 않는 이름으로 명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국가가 졸속으로 섣불리 참사의 이름을 바로 붙이거나 애도의 기간을 정할 수 없는 이유다.

사람들이 흔히 태안기름유출사고로 기억하는 사회적 재난의 정식명칭은 “삼성1호크레인-허베이스피리트호 원유유출사고”다. 제주 4.3의 이름은 아직도 불분명하다.

2. 도로는 국가와 도시의 발전, 시민간의 소통과 산업을 위해 공공의 목적을 띈다. 따라서 도로를 관리하고 안전을 유지하는 것은 가장 큰 권력을 가진 국가의 몫이다. 별도의 사유지가 없는 곳에 차를 세워두고 이삿짐을 올리거나 내릴 때도 도로점유에 관한 허가를 받는 것이 원칙이다. 도로에서 일어난 사고에 특정한 가해자가 없다면 도로관리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맞다. 다시 말하지만 도로의 안전과 관리는 주권을 위임받은 국가기관의 책무다.

하지만 개인의 감정과 정치적 감정은 국가가 통제하거나 권한을 갖지 않는다. 현 정부가 목이 터져라 외치는 자유민주주의국가이기 때문이다.

3. 이 도로위에서의 참사는 그 길 위에 서 있던 사람들 중 누구도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하지 않았으나 사람을 죽이는 압력의 일부가 되었기에 더욱 비통하다. 고의로 목적을 갖고 누군가를 죽이려고 그 길을 걸은 사람은 참사당일에는 없었다고 봐야 한다. 나의 몸 하나가 압력이 되어 누군가의 죽음에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생존자들이 있다. 이번 참사의 생존자를 각별히 살펴야 하는 이유다. 이 참사는 그들 세대가 겪은 불도, 물도 아니었다.

트라우마는 극복할 수 없다. 그저 안고 가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가 살아남은 이유를 말하고 떠들며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4. 2-30년전, 세골목길이라 불렀던 해밀턴호텔 뒷길엔 가끔 살인사건과 폭력사건이 일어났다. 그때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 길에 쌓이고 고인 수많은 피눈물을 떠올리며 국가란 무엇인가 다시 묻는다.

10.29 경과

종합하면

● 사고 직전까지 112 신고는 79건.

● 참사 당일 양대 노총과 진보·보수단체 시위 등으로 서울 도심 곳곳에 81개 기동대, 경찰관 4천800여 명이 배치

● 사고 현장과 약 1.5km 떨어진 용산 대통령실 근처 시위대 행진과 집회에 대비한 1천100여 명의 병력.

이들은 참사가 벌어지기 1시간 전쯤인 밤 9시쯤 시위가 끝나자 철수

● 당일 현장에 배치된 경찰관 137명 중 경비 및 안전 유지를 주업무로 하는 인력 0

● 마약단속 예고, 정복 경찰은 58명, 그 외 사복경찰

● 왜 출동하지 않았는지 철저히 감찰하겠다며 위 내용을 11월 1일 윤희근 경찰총장이 언론에 공개

● 핼러윈때마다 이태원 상인들은 지구촌축제처럼 용산구에 해밀턴 호텔 앞 차도에 차량진입을 막아달라 요청, 그 외 안전조치 요구, 전날인 금요일에도 인파가 과도해 용산구청에 통제, 안전조치를 요구했다고 함. 용산구청은 묵살

● 2021년에 통제가 과도했다며 올해는 정복경찰을 줄여달라고 상인회가 요구했다는 일부 주장 제기됨.

● 용산구 핼러윈데이 대책회의 – 2020, 2021년 구청장 주도, 소방 경찰 참석, 2022년 부구청장 주재, 소방, 경찰 불참

● 최초 119 신고는 22:15. 119가 위치를 계속 물어 신고자가 답답해 함. 소방은 3분만에 경찰에 협조요청 – 경찰은 별다른 장비없이 인력 송출

● 모바일 통신상태 불량

● 소방이 23시 경찰에 교통통제 요청, 서울청 기동대가 자정 무렵 현장 도착

● 당일 사상자의 부상정도와 무관하게 병원에 분산이송, 이송병원의 거리 등의 기준 없음.

● 압사사건 발생은 22시 15분경으로 추정

● 정부발표에 따르면 22:15 상황접수, 25분 경과 후 22:40 대응, 22:43 대응1단계 발령, 23시경, 용산소방서장이 지휘권 발동, 23:13 소방청 대응2단계, 13:53 소방청 대응 3단계발령

● 사고 발생 이후 11시 45분경, 언론사 1차 보도와 동시에 SNS에 사고현장 사진과 동영상 유포

● 23:45 20여명 사상자 발생이라는 보도 발표

● 익일 00:33 해외언론 보도 시작

● 02:15 용산소방서 언론브리핑 59명 사망, 150명 부상, 사망자 원효로 체육관으로 임시안치

●22:15부터 익일 00:56까지 약 100여건의 119 신고 접수

● 03:05 용산소방서 언론브리핑 120명 사망, 100명 부상이라 발표

● 익일 실종신고 2300여건 , 정부 실종신고 전화번호 공개

● 10월 30일 – 정부, 국가애도기간 선포, 행정안전부 각 지역 분향소 설치 지침 전달, 참사 희생자 아닌 사고 사망자로 적시. 각 지역정당 거리 추모현수막 게첨. 민주당 이태원 참사로 명시, 국힘당 이태원사고, 핼러윈사고 등으로 명시.

● 11월 1일 11시 기준 사망 156명, 부상 151명으로 집계

● 11월 1일, 112 신고 녹취록 공개, 경찰청 시민단체 동향 파악 문건 유출

JTBC, 한겨레, SBS, MBC, MBN, 서울경제, 뉴시스, 연합뉴스 등 다수 언론사 보도 참고.

11월 1일 작성

우연은 어떻게 오는가

점심시간 내내 포켓몬을 잡다가 분식집에 들어가 건빵이와 충무김밥과 순두부찌개를 시켰다.
“나 보광동 살 때 이런 분식점 순두부 자주 시켜먹었어.”

건빵이가 “나도”라고 말했다. 제일 만만하고 표준화된 맛. 냄새가 나거나 비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음식. 반찬이 허술해도 충분히 한 끼를 채울 수 있는 것. 나는 빈집에서 출근을 준비하다 순두부를 시켜 먹고 그릇을 지하방 알루미늄 새시 문 밖에 내놓곤 했다.

분식집에서 순두부를 나눠 먹고 있는데 동생이 인터넷에서 찾았다며 카톡으로 2001년 이태원 사진을 보내왔다. 건빵이와 나의 밀레니엄은 보광동과 이태원에서 교차한다. 우리는 4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한 동네에 살았다. 내가 그 동네에서 떠날 때쯤 건빵이가 그 동네에 들어섰다. 언젠가 한번쯤은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전혀 모른 채 10년이 거의 다 지나 엉뚱한 곳에서 만났다. 우리는 가끔 보광동의 이야기를 한다.

동생이 보내준 사진을 보며 가끔 회식을 하러 갔던 일송정을 이야기했고 그 길 건너 시장 입구에 있던 뚝배기 만둣국집을 이야기했다. 나는 그 집의 만둣국을 자주 먹으러 갔고 건빵이는 그 옆의 옆에 순대국집이 맛있었다고 얘기했다. 동생은 반도리노라는 구둣가게의 간판을 지목하며 ㅋ을 여러 개 보냈다. 나는 거기서 구두를 맞춰 신었다. 매일 저녁 9시에는 웨이츄리스들이 라인댄스 공연을 했다. 나를 비롯한 웨이츄리스들은 춤을 출 때 마룻바닥에 구둣발을 내 딛을 때마다 탭댄스처럼 소리가 딱딱 나야 흥이 났기 때문에 소리가 잘 나는 바닥으로 구두를 맞추곤 했다. 라인댄스는 카우보이부츠를 신어야 더 좋지만 우리는 짧은 치마의 유니폼을 입었기 때문에 카우보이부츠를 신고 서빙을 하다가 춤을 출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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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보내준 2001년 이태원 뒷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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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보내준 2001년 이태원 사진. 해밀턴 셔츠 사장은 안면이 있다. 아디다스 옆이 반도리노라는 수제화맞춤전문점이었다.

<동생이 보내준 2001년 이태원>

동생이 “내가 나중에 반도리노에서 언니 구두 사줄게”라고 했지만, 나는 이제 구두를 신을 수 없다. 동생은 언제나 “나중”을 말한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 8차선 도로의 인도쪽에 폐휴지를 잔뜩 실은 리어카를 밀고 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우회전을 하기 위해 인도쪽 차선으로 갈아타던 중 속도를 냈다면 큰 사고를 낼 수도 있었다. 운전을 하던 건빵이가 위험하다며 걱정을 했다.

집에 돌아와 내일 업무를 준비하다 야광조끼를 검색했다.
한 벌에 만 원 정도면 일반 야광조끼를 살 수 있고 2만 원 정도면 그물로 된 야광조끼를 살 수 있다. 고휘도 야광 반사테이프는 한 롤에 1400원정도 한다.

작년에 취재차 관악구에 있는 푸드뱅크에 간 적 있다.
푸드뱅크 이용자들은 종이봉투를 들고와 물건을 가져갔다. 집집마다 넘쳐나는 에코백이 처치곤란이라고 이 역시 또 다른 환경오염이라고 성토하던 자리에서 그때 그 장면을 떠올렸었다.

몇 주 전에 현수막으로 에코백을 만드는 데 공임이 얼마나 드는지 알아봤다. 현수막으로 가방을 만드는 인건비는 개당 3천원이면 가능하다고 했지만 현수막을 세탁해와야 작업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니까 폐현수막을 이용해 재작업을 하는 비용은 개당 5천 원 정도 든다. 새로 찍어내는 시장가방은 5천장 정도 대량으로 주문할 경우 개당 3천원 남짓이면 충분히 만들 수 있다. 친환경과 재활용은 돈이 더 든다.

한 사람에게 야광조끼를 입힐 수 있는 비용은 2만원.
관에서 한다면 예산을 사용해 복지관에 비치해두고 홍보 조금 하고 알아서 찾아가라고 할테지. 폐지를 가져다주는 고물상을 찾아갈 상상을 그들이 할 수 있을까.

작년인가 재작년 여름, 덥다는 이유로 차를 끌고 나가 인덕원 골목을 지나다 어느 가게 담벼락에 붙은 수도를 틀어 마구잡이로 세수를 하던 노인을 보았다. 폐지를 가득 실은 수레를 옆에 두고 얼굴이 물을 마구 묻히던 여읜 팔뚝을 기억하고 있다.

아파트 생활자들은 마트 앞에서 폐지를 담아가는 노인을 만난다. 때로 그들이 떨어뜨린 박스를 주워서 리어카에 담아주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도 그들이 어디에 사는지 알지 못한다.
사회 곳곳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치열하게 살고 있다. 어느 한 순간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우연이 겹치면 가난은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온다. 정비하지 못한 하천의 둑이 넘쳐 반지하방에 물이 넘쳐 들어오는 것처럼.

보광동의 배달 순두부를 기억하는 두 사람은 각자의 기억을 가진 채 평촌에 같이 산다. 우리가 기억하는 보광동은 다른 모습이다. 폐지를 줍는 노인의 뒷모습을 같이 바라본다. 모든 것은 우연이다. 우연은 필연적으로 온다고 했던가. 무엇이 필연이고 무엇이 우연인지 아무래도 모르겠다. 사회는 불평등을 기반으로 구성된다고 누군가 말한 적 있다. 그게 누구인지 굳이 기억하고 싶지 않다. 어떻게든 모두들 살아남고자 한다. 지금 이것보다 조금 더 나은 모습으로.

월요일로 가는 밤, 바람이 분다.

2019년 5월 26일

이태원 어느 술집

간판엔 뭐라 뭐라 글자가 써 있는데

당췌 이놈의 지구가 흔들려 알아먹을 수다 없었다.
소리가 나는 플라스틱, 유치찬란한 발을 열고 들어선 그 집은 술도 팔고 차도 팔고 뭐 또 다른 것도 파는 것 같았는데
그 사람은 자꾸 나더러 집으로 가라 했다.
만원짜리 카스맥주 한 병을 두고
이 길에만 오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고
내가 말했다.
세월이 오래 지나 빚을 진 것만 같은데
술 취한 그 사람 1과, 술 취한 그 사람 2와, 술 취한 그 사람 3을
이 거리에 버려두고 나 혼자 멀리 떠났다고
만원짜리 카스맥주 한 병을 놓고 주절거려 봤지만
긴 얼굴에 푹 파인 드레스, 납작한 가슴의 그 사람은 여자이며 남자이고 예수이며 마리아처럼
나에게 자꾸 집으로 가라 했다.
이것만 마시고 집으로 가라 했다.
썩을 놈의 지구는 맨날 술에 쩔어 있는지
온 시야가 뿌옇게 되는 밤이면 뿌옇게 남은 그 얼굴이 생각나는데, 남자이며 여자이고, 가장 완벽한 인간이던 그 사람이.
젠장맞을 간판이 기억이 나야 말이지.

한 사람이야기 11. 낮아줌마

졸음이 쏟아지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누가 믿을 수 있을까. 어제도 두 시간을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밤을 샜다. 하룻동안 해야 하는 일은 그닥 많지 않다. 이만하면 나쁘지 않는 자리다.
아줌마는 작은 의자를 펴고 담배를 물었다. 소란스런 영화의 배경음이 홀을 울리고 있었다. 엎어 놓은 맥주잔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아줌마는 담배를 다 피우고 저 물기를 마포자루로 한 번 걷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침 8시에 출근해 냉동고를 열어 고기를 꺼내놓는다. 꺼내놓은 고기는 점심시간까지 자연상태에서 해동을 시킨다. 9시쯤 되어 미숙이가 출근을 한다. 그 때부터 하룻동안 팔아야 하는 야채들을 다듬는다. 양파를 꺼내 껍질을 까는 일은 어딜 가나 하는 일이다. 눈물이 나는 것에 익숙해 진 지 오래되었다. 상추를 하나씩 씻어 체에 받친다. 식재료상이 와서 토마토를 한 박스 놓고 갔다. 오늘은 찰진 것이 물건이 아주 좋다. 지하 주방에서 식재료들을 모두 씻으면 커다란 함지박에 담아 위로 올린다. 철제 계단이 늘 삐걱거리고 불안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곳이라 무념히 지나친다. 신경쓰기 시작하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불안한 요소들은 도처에 숨어 있다. 얼마 전엔 지하창고에서 불꽃이 일어 차단기를 내렸다. 신속하게 대처하면 될 일이지 불안을 감지해봤자 피곤한 건 육신 뿐이다.

파란색 빨간색 체에 받친 토마토와 상추를 조리주방에 올려다 준다. 이 가게에 주방은 지하 2층에 하나, 홀이 있는 지하 1층에 하나, 그리고 아줌마가 설거지하는 지하 1층 뒷편에 하나가 있다. 설거지를 하는 공간을 주방이라 명하기 어렵지만 적당한 이름을 찾아내지 못해 모두들 설거지 주방이라고 부른다. 점심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재료를 모두 다듬어 올려다 주면 이제 점심을 먹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든다. 하나 둘 들어오는 사람들은 때로 혼자, 때로 여러 명. 아줌마는 가끔 설거지 주방을 벗어나 홀에서 혼자 영화를 보며 밥을 먹는 사람들을 지켜본다. 저들은 무슨 팔자로 이 먼 나라까지 와서 제 나라 음식을 찾아 먹으며 밥을 빌어먹고 살고 있나. 설거지를 하는 나와 저들의 삶은 얼마나 닮아 있고 얼마나 멀리 있나. 머릿속을 휘감는 복잡한 생각이 들 때마다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것을 버리고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더 버리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 아침 8시에 출근에 저녁 5시까지 설거지를 하며 산다. 하루 종일 물에 손을 담그고 고무장갑을 꼈다가 벗었다가 맥주컵을 씻다 보면 그냥 하루가 간다. 대낮부터 뭔 술들을 그렇게 처마시는지 욕을 하다가도 부러운 인생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럴 때 아줌마는 주방밖에 서서 대낮에 혼자 앉아 영화를 보며 맥주를 마시는 남자들을 쳐다본다. 아줌마는 파란슬리퍼에 앞치마를 맨 채로 홀을 가로질러 바로 간다. 나 맥주 하나만 줘봐. 아줌마는 3500원을 앞치마에서 꺼내 미숙이에게 건넨다. 미숙이는 아무 말도 없이 카스 맥주 한 병을 꺼내 뚜껑을 따준다. 맥주 병을 건네는 미숙이가 눈을 흘긴다.
아줌마 눈 빨개요.
그렇겠지 뭐.
아줌마는 맥주컵에 맥주를 따라 벌컥벌컥 마신다.
또 못 주무셨어요?
언제는 잤니?
아줌마가 미숙이에게 눈을 흘긴다. 이내 웃는다.
휘청거리는 듯 하지만 휘청거리지 않는 결연한 걸음, 넘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는 뒷모습, 그리나 흔들리는 늙은 종아리. 아줌마가 맥주병을 들고 설거지 주방으로 들어간다. 홀에 있는 그 어떤 사람도 아줌마를 쳐다보지 않는다.
오후 3시, 맥주잔을 씻는 일은 마무리가 되어가고, 쌓아놓은 맥주잔은 오후에 남자아이들이 나와 운반할터였다. 설거지 주방에 조그만 의자를 펴놓은 아줌마는 세제 옆에 놓인 소주병을 여 열어 맥주잔에 부었다. 한 잔을 다 마시니 졸음이 몰려온다. 밤에는 두 세 병을 마셔도 잠도 안 오더니, 꼭 이 시간엔 반 병만 마셔도 졸립다. 아줌마는 벽에 등을 기대로 긴 숨을 몰아쉬었다.

2014. 7. 24.

한 사람이야기 – 10. 남욱

휘경역에서 탄 지하철은 꿉꿉한 냄새가 났다.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오늘따라 더욱 불쾌하다. 괜히 기분이 좋지 않다는 증거겠다. 마음따위 살필 여력은 없다. 짜증이 나면 짜증이 나는 것이고 이 감정을 폭발시킬 어떤 것들을 찾아야 한다. 그게 하루를 견디는 방법이다. 오늘 저녁은 술을 마실 것이다. 그 후엔 여자의 집에서 잠을 자야지. 내일은 어차피 아르바이트 비번이기도 하다. 오전 늦게 일어나 차려주는 라면을 먹고 나서 도서관에 나와야겠다. 인생은 정해진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다. 목적한 대로 온 적 없다. 목적이라도 세우지 않으면 삶은 완벽하게 뒤틀려 버린다는 것도 알고 있다. 게을리 사는 날도 있지만 줄곧 게을리 산 것도 아니다. 덜컹거리는 전철은 불안하기 그지 없었다. 지하철이 지상으로 올라와 아무 것도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을 스쳐가면 남욱은 끝없이 불안해졌다. 열차가 다리를 건너는 것도 아니고, 강위를 달리는 것도 아닌데 어느 날 갑자기 다리가 꺼지고 사람들이 죽었듯 남욱의 하루도 그렇게 꺼져버릴 것 같았다.
여름, 이 방학이 지나기 전에 등록금을 마련해야 한다. 남욱은 빈 자리에 앉아 팔짱을 끼고 이번 달 월급을 계산하다가 잠이 들었다.
불안하다던 흔들리는 기차는 때론 하나도 불안하지 않은 듯 사람들을 흔들흔들 재웠다. 누구나 그렇듯이 남욱도 갈아타야 할 역에서 눈을 뜨고 부리나케 뛰어내렸다. 붉은 색 라인과 파란색 라인이 만나는 곳이다. 요란스러운 소음이 잠이 덜 깬 남욱을 휘감았다. 혼자만 똑바로 서 있고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듯 했다. 스물 일곱. 아버지가 출근하지 않은 지 몇 달이 되었다. 누나들은 발길을 끊었고, 신입사원 채용을 취소한 기업들이 늘어갔다. 토익 성적은 만점에 가까웠고 어학연수를 다녀온 아이들보다 뛰어났으나 어차피 그래봤자 서울대가 아니라는 것. 남욱의 주변을 스쳐가는 사람들은 몰려오는 적군처럼 힘차게 걸었다. 2대 독자 누나 여섯, 장가가기 글렀다는 주변의 비아냥도 호기롭게 웃어넘기던 건 불과 몇 달 전임에도 불구하고 아득한 과거같았다. 스물 일곱이 아니라 마흔 일곱쯤 된 건 아닐까. 남욱은 번잡한 플랫폼에서 잠시 어지럼증을 느꼈다. 무릎을 약간 굽히고 두 팔로 허벅지를 잡았다. 고개를 숙이고 숨을 한 번 몰아쉰 뒤 다시 일어섰다. 어깨에 맨 무거운 배낭, 오늘따라 옥스퍼드 사전을 가져온 게 후회되었다. 역은 길었다. 계단을 오르고 내리며 파란색의 기차를 갈아타기 위해 다시 플랫폼에 섰다. 해가 지고 있을꺼다. 열차가 들어오고 있으니 승객여러분은 모두 한 발 물러서야 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시끄러운 소음과 함께 열차가 도착했다. 한 발 물러나라, 한 발도 물러서기 싫었다. 남욱의 얼굴 앞으로 열차가 들이닥쳤다. 지하를 뚫고 달려온 열차의 긴 호흡이 거센 바람이 되어 남욱을 밀어냈다. 눈을 찌푸리며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승강장과 열차 사이가 넓으니 발을 조심하라는 방송이 나왔다. 그럼 애초에 왜 이렇게 만든 것일까. 세상의 모든 일들은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남욱은 이 나라의 모든 일들이 멍청하기 때문에 이 지경이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열차에 올라타고 문이 닫혔다.

남욱이 갑자기 열차의 닫힌 문을 손바닥으로 쳤다.
노트북.
노트북을 두고 내렸다. 붉은 라인의 열차, 앉아서 자던 그 자리 머리 위에 노트북을 놓고 내렸다. 친구에게 일주일 빌린 것이었다. 아 노트북. 남욱은 문 앞의 기둥에 마른 몸을 지탱했다. 다음 역에서 내려 역무실로 뛰어갔다. 노트북의 브랜드를 말하고 노트북 가방이 어떻게 생겼는지 말했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직장을 잃어가는 이 시점에 누가 그 노트북을 돌려줄 것인가. 땅속에 놓고 내렸으니 이미 지하의 것이다. 남욱은 역무원이 내어주는 서식에 분실물 상태를 꼼꼼히 적었다. 015로 시작되는 번호를 적었다. 괄호안에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는 연락이 안될 수 있음’ 이라고 적었다.
역무원은 빙긋 웃으며 찾을 수 있을거라고 남욱을 위로했다. 승강장으로 돌아가 다시 파란 열차를 타고 거대한 빌딩 아래 지하에서 내렸다. 지상으로 올라가 버스를 탔다.

저녁내내 지하철공사에서 연락이 오나 기다렸다. 생각해보니 노트북에는 소유자의 연락처도 적혀 있지 않았다. 남욱이 아르바이트 하는 햄버거집 주방 끝에 서서 멍하니 노트북 생각을 하고 있자 오늘 그 집에서 자려고 했던 여자가 와서 말을 걸었다.
“오빠 무슨 일 있어?”
남욱은 노트북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친구의 것이고, 일주일을 빌렸으며, 어느 역에서 내릴 때 머리 위에 두고 내렸으며 분실물 신고를 하고 왔으니 찾을 수 있을거라고 했다.
“노트북이 얼마나 해?” 여자가 되물었다.
남욱은 여자를 봤다.
“비싸.”

짧은 치마를 입고 소스통을 팔에 끼고 홀을 돌아다니며 테이블을 닦고 재떨이를 비우던 여자를 가만히 봤다. 남욱은 여자가 모아둔 돈이 있을까 생각했다. 여자가 한 달에 벌어들이는 수입이 얼마일까 생각했다. 여자가 혼자 사는 방도 지하에 있었다. 월세가 30만원이라고 들었던 기억이 났다. 친구의 노트북은 여태 이 집에서 고기를 구운 석달치 월급이 고스란히 들어갈 판이었다. 여자는 노트북의 가격이 얼마쯤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몇 번을 같이 밤새 술을 마시고 여자의 집에서 잠을 자고 나왔다. 남욱은 여자가 노트북을 어디서 파는 지나 알까 궁금해졌다. 가만히 여자를 보고 섰는 남욱의 시선을 알아채고 여자가 남욱앞에 서서 턱을 괴었다. 주방은 조금 높게 돋군 자리에 있어 남욱이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남욱은 여자의 머리통을 한 번 쓰다듬었다.
“찾을 수 있겠지?” 놀란 강아지 같은 눈을 한 여자가 남욱을 쳐다보며 말했다. 남욱은 한숨을 참으며 입꼬리를 길게 늘려 웃어보였다.
그 무엇도 찾을 수 없을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남욱은 몇 날밤이나 탐닉했던 여자가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2014. 7. 15.

한 사람이야기 – 9. 마후라아줌마

그 길의 1층은 대부분 옷가게들이었다. 서울시내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옷을 팔았다. 유난히 큰 사이즈의 옷이나 큰 신발, 맞춤 와이셔츠, 용과 태극기가 그려진 하얀 면티부터 요란한 금박무늬의 가운들, 화려하지만 전혀 고급스럽거나 세련되지 않은 드레스, 브랜드이긴 한데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것들. 앉은 자리에서 세월을 울컥울컥 집어삼킨 듯한 소품을 파는 가게, 도장을 파는 가게, 초상화를 그리는 가게, 귀금속, 여행용 트렁크, 시장으로 들어가는 좁다란 골목, 수제화를 파는 집, 목적을 가진 손님들이 드나들만한 가게들이 즐비했다. 다른 곳에서는 흔치 않은 가게인데 여기서는 줄줄이 비슷한 가게들이 가득했다. 셔터를 모두 내린 길 역시 범상치 않았다. 4차선 도로는 유독 좁게 느껴졌고 드문드문 지나가는 택시, 노변에 주차한 차들 사이로 인적도 끊겼다. 밤 10시가 넘어가면 주말을 제외하고는 걷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은색의 셔터만 이어진 길거리는 마치 다른 시공간으로 가는 기차가 서 있는 듯 했다. 은하철도 999가 서울에서 출발한다면 그 정류장은 바로 여기다. 어두운 골목 사이로 노란 백열등이 켜져 있고 누군가 미처 정리하지 못한 생업을 마무리 하고, 때로 어떤 사람은 몇 시간동안 천국에 있고 싶다며 해피스모크를 찾는 거리,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걷고 벌건 대낮에 속옷을 벗어 흔드는 여자가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거리였다. 무리지어 걷는 흑인들은 이 곳 먼 타향에서 괜한 눈치를 보고 이 도시는 언제나 너무 덥거나 너무 춥다며 어깨를 움츠리고 걷는 저 멀리 스칸디나비아라는 반도에서 온 사내들과 80년대 달력에서 튀어나온 듯, 아니면 저 먼 미래에서 온 듯, 시대와 역사를 알 수 없는 기묘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제 멋대로 돌아다니는 이 거리는 그 누구도 주인이 아니었다. 철모를 쓰고 긴 언덕으로 올라가는 헌병들과 그들의 군화소리를 들으며 긴장하는 어린 사내들과 몇 십년을 다른 사람의 얼굴을 그리다 늙어버린 영감과 몇 십년간 다른 사람의 목둘레를 재며 늙어가는 초로의 사내도 이 거리의 주인은 아니었다. 모두가 타인이고 모두가 이방인인 이 거리에 단 한 사람 주인공이 있다면, 그건 바로 밤 10시 59분에 정확하게 이 길을 훑듯이 당당하고 힘차게 지나가는 한 여자였다.

마후라 아줌마.

사람들은 그니를 마후라 아줌마라고 불렀다. 마후라의 정확한 표준어가 스카프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는 사람들이지만 스카프 아줌마라고 하는 것은 왠지 한국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이었다. 한국어 사용자가 아닌 외국인들이야 그니를 미스스카프라고 불렀지만, 이 동네에서 밥을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은 모두 그이를 마후라아줌마라고 불렀다. 오래전엔 “빨간 마후라”라는 뻔뻔한 제목의 노래도 있지 않았나. 일본을 거쳐 들어온 적절치 못한 단어라 해도 상관치 않고 너도 나도 애국심에 불타 불러제끼던 노래 아니었나.

마후라 아줌마는 오늘도 정확히 10시 59분에 햄버거집 앞을 지나갔다. 그이가 그 시간에 이 길을 지나간다는 것을 알아채고 입에 올린 것은 그 시간에 하루종일 쏟아진 쓰레기를 치우던 주방보조 알바생들이었다. 또래의 사내 서너명이 같이 쓰레기를 담다보면 바퀴벌레 십 수마리가 한꺼번에 출몰하는 것을 발견하기도 하고 어두운 계단에 서서 키스를 나누는 동성애커플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들은 그런 특징적 장면들을 잡아내어 이야기거리를 만드는 재주가 있었는데 그 중 서울의 어느 대학에 다니는 안경을 쓴 청년이 도드라졌다. 마후라 아줌마가 그 자리를 지나가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이 청년은 시계를 확인했다. 일주일쯤 지나 마후라 아줌마가 매일 정확한 시간에 지나간다는 것을 확신하고는 쓰레기를 치우는 시간이 아니더라도 정확히 10시 57분쯤 밖에 나가 마후라 아줌마가 지나가는 것을 확인했다. 금요일과 토요일 밤에는 마후라 아줌마가 지나가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냈다. 청년은 흥미진진한 보물지도를 발견한 소년처럼 매니저에게 마후라 아줌마를 발견한 사실을 이야기했다. 매니저는 이미 몇 년 된 사람이라고 뚱하게 대답했다. 신나서 이야기하던 청년이 뻘쭘해질까 걱정되었는지 매니저는 그래 오늘은 무슨 색이더냐고 물었다. 청년은 여태 관찰한 바를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마후라 아줌마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언제나 한가지 색깔로 치장을 했다. 빨간 블라우스에 빨간치마, 빨간 마후라와 빨간 스타킹, 그리고 빨간 구두. 어느 날은 보라색 자켓에 보라색치마, 보라색 스타킹에 보라색 구두, 노란색이 전부인 날은 모자를 쓰기도 했고 초록색으로 온통 감싸고 지나가는 날도 있었다. 그리고 하루도 빠짐없이 옷색깔과 같은 색깔의 마후라를 길게 늘어뜨리고 지나갔다. 머리는 붉은 자주색같아 보였는데 어두침침하여 정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붉거나 주홍색계열임은 틀림없었다. 어깨를 넘는 길이에 앞머리를 잔뜩 부풀려 올렸고 머리모양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매일 매일 몸을 감싸고 있는 색깔만 바뀔 뿐이었다.

청년은 처음엔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한 달넘게 마후라아줌마를 보고 있자 섬뜩한 느낌마저 들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그 시간에 휘리릭 지나가는 듯 했다. 마후라아줌마를 다른 곳에서 봤다는 사람은 없었다. 오로지 그 길가에서 그 시간에만 발견되었다. 이 동네에서 10년을 넘긴 사람도, 20년을 넘긴 사람도 그이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청년이 이런 저런 사람에게 그이에 대해 물으면 모두들
“아 마후라아줌마?” 라고 반문할 뿐 아무도 어떤 정보도 주지 않았다.

곧 청년도 그리 되었다. 아르바이트 석달차, 오늘도 마후라아줌마가 10시 59분에 지나갔다. 마후라아줌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버스처럼 휘리릭 지나가는 사람. 이 정류장에 매일 지나가는 버스보다도 사람들은 그이에게 관심이 없었다. 이 버스가 지나가면 다음 버스가 오는 것처럼, 청년에게 마후라 아줌마의 행진은 그저 하루가 끝났다는 신호에 불과했다.

2014년 7월 11일

한 사람이야기 – 8. 옥희

한 사람이야기 – 8. 옥희

홀이 시끄러웠다. 웨이츄리스들은 군데 군데 흩어져서 인상을 구기고 한 테이블을 쏘아보고 있었다. 손님들도 더러 그 테이블을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의자에 깊이 앉아 그 테이블의 남자들을 빤히 보는 손님도 있었다. 시선이 집중된 테이블을 제외한 곳에 앉은 사람들은 대부분 단골손님들이었다. 웨이츄리스들이 그들이 즐겨먹는 메뉴가 뭔지, 테이블에 올려놓고 가는 팁이 얼마인지 이미 정해져 있는 사람들. 치킨버거에 콜라를 먹는 아저씨은 언제나 2000원, 스테이크에 레드와인을 시키는 남자 언제나 3000원.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이 가게에 들러 끼니를 해결하고 가는 외국인들이었다. 국적은 모두 다르지만 대부분 백인이었다. 이 동네에는 미국의 그 어느 식당보다도 인종이 확실히 구분되어 있었다.

옥희는 가게에 들어오면서부터 직원들의 불쾌한 표정을 보았다. 동시에 소란스러운 취객의 소리가 들렸다. 옥희의 긴 치마가 사각사각 소리를 냈다. 주방에 서서 냅킨을 뽑아 코를 닦으면서 홀을 한 번 훑어보았다. 옥희의 시선도 그 테이블에 가서 멈췄다.

네 남자가 앉아 있었고 가운데는 잘 나가지 않는 3000cc짜리 맥주피처가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흥건히 취해 있었고 이미 맥주도 바닥에 꽤 쏟은 상태였다. 옥희가 가만히 주시하고 있는 사이 키가 큰 웨이츄리스가 행주 두 개를 들고 맥주잔의 자리를 옮겨가며 테이블을 닦았다.

“저 바닥에 맥주 흘리셨는데요. 좀 닦아도 될까요?”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키가 큰 아이는 짝다리로 서서 남자 넷을 내려다보았다.
“어 그래 그래. 그래 주면 고맙지.” 술 취한 남자 하나는 안경이 코끝까지 내려온 채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키가 큰 웨이츄리스가 테이블을 싹 닦아내는데 바로 옆에 앉은 남자가 웨이츄리스의 엉덩이를 만졌다. 툭툭.
“뭐하시는 겁니까?” 웨이츄리스가 정색하며 물었다.
“아니 뭐. 나는 딸 같아서 고맙다고..” 남자가 헤벌쭉, 더럽게 웃었다.
“손님은 딸한테 그러십니까?” 억센 경상도 억양이 묻어나왔다.
“그러시는 거 아닙니다.” 웨이츄리스는 설거지를 하는 뒷주방에 가서 대걸레를 가지고 나와 바닥을 닦았다. 대걸레를 미는 팔에 힘줄이 불거졌다.
“아 뭐 그런 거 가지고 그래 까칠하게!” 남자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손님, 여기는 식당입니다. 밥 먹는 데예요. 다른 손님들에게 방해가 됩니다.” 웨이츄리스는 딱딱하게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뭐 씨발.. 양놈들만 좋다 이거지? 조선놈은 싫으냐? 줘도 싫으냐?” 남자가 흥얼거리듯 말했다. 웨이츄리스가 대걸레를 바닥에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양 손을 허리에 얹고 삐딱하게 섰다. 남자를 노려봤다.

“니가 뭔데? 이..양공주년이 어디서 눈을 부라려!” 남자의 목소리가 거세졌다.
사무실 문앞에 남편과 서서 상황을 지켜보던 옥희가 나왔다. 남편도 나와 옥희의 뒤에 섰다.

“여보세요. 손님.” 남자들이 작은 옥희를 쳐다봤다.
“나가세요.” 남자들은 미동도 없이 옥희의 작은 얼굴을 빤히 보고 있었다.
“나가시라고요. 여기는 이렇게 술 취해서 소리지르고 우리 아가씨 만지고 시비걸고 그러는데 아니예요. 나가시라고요.”
남자 하나가 벌떡 일어났다. 테이블에 다리가 부딪치면서 맥주잔이 엎어졌고 맥주가 질질 흘러 남자의 바지에도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뭐? 니가 뭔데? 너도 양색시야?”

옥희는 입술을 앙 다물었다. 안경이 코끝까지 걸린 남자가 일어난 순간 옥희가 더 작아졌다.
“나가 이 개새끼야. 어디서 양색시 운운하고 지랄이야? 나가 이새끼야! 양색시? 뭐? 양공주? 왜 양갈보라고 하지? 니들은 어디서 뭐하다 온 새끼들이야? 이러니까 엽전소리를 듣는거야! 나가 이 새끼들아! 이 더러운 새끼들 나가!”
옥희가 우렁차지 않되 명징한 목소리로 말을 하자 뒤에 서 있던 남편이 옥희 앞으로 나서서 한 남자를 끌어냈다. 한 남자가 커다란 남편의 손에 허리춤을 잡혀 거의 들리듯이 문쪽으로 끌려나가자 다른 남자 아르바이트들도 주방에서 뛰어나왔다. 밝은 홀과 구분된 앞쪽 홀로 남자들이 어어어 하며 끌려 나갔다.

옥희는 남편이 옥죄고 있는 남자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그러는 니들은 뭐 했는데? 우리가 여기서 술 팔고 밥 파는 사이 니들은 뭐 했는데? 내가 여기서 바닥을 기어다니면서 담배꽁초 주으면서 딸라 번 년이야. 그러는 사이 니들은 뭐했는데? 흥청망청 다 처먹고 니들 때매 IMF 온 거 아냐? 니들이 언제 딸라 벌어봤어? 왜 남의 영업장에 와서 술주정을 하고 개지랄들이야 지랄들이! 야! 여기는 원래 니들같은 애들 안 받아! 여기가 술집이야? 니들 조선놈들 떼로 모여서 기집질이나 하는 그런데나 가! 어디 남의 점잖은 밥집에 와서 생지랄들을 하고 술처먹고 염병을 떨어! 어디 호랑말코 같은 새끼들이! 니들 때매 국가가 암담해 이 개새끼들아!”

남편이 한 남자를 질질 끌고 지하계단을 올라 1층으로 끌어올려 밖으로 던졌다. 나머지 남자 아르바이트생들도 다른 남자들을 하나씩 붙잡고 위로 올렸다.
옥희는 남편과 아르바이트생들이 돌아오자 허리에 손을 얹고 분을 삭이며 서 있었다.

“언니 물 좀 줘라.”옥희는 캐셔박스 앞에 서 있던 지원에게 말했다.
지원이 물을 한 잔 따라줬다.
옥희는 얌전한 유리컵에 담긴 생수를 마시다 말고 다시 말했다.

“지들이 언제 딸라 벌어봤어? IMF나 만든 새끼들이. 하여튼 조선것들은 안돼. 저래서 안돼. 얘, 앞으로 한국손님 가려 받아.”
지원이 흥겹게 큰 소리로 대답했다.
옥희가 다시 주방쪽으로 걸아갔다. 치마에서 사각사각하는 소리가 났다.

#한사람이야기

한 사람이야기 7 – 지원

웃고 있었다. 팔꿈치를 바닥에 대고, 두 손을 모아 깍지를 낀 채, 앞에 있는 사람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앞에 앉은 갈색머리의 남자도 호기롭게 웃었다. 지원의 큰 입은 웃을 때 진가를 발휘했다. 가지런한 치아, 붉은 입술, 넓게 퍼져 광대근육 바로 아래로 올라붙는 입꼬리가 시원했다. 앞머리를 길게 내리고 안경을 썼다. 사람들이 왜 안경을 쓰느냐고 물으면 그저 눈이 나쁠 뿐이라고 했다. 콘택트렌즈는 불편하고 무섭다고 대답했다. 이물감도 거추장스러웠고 눈 건강에도 해로울 듯 했고, 더군다나, 안경은 지원이 가리고 싶은 긴 얼굴을 감춰주었다. 지원이 바에서 나와 맥주잔을 들고 주방쪽으로 향해 가면 근처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지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엉덩이는 봉긋 솟아올랐고 허리는 잘록했다. 가슴은 크지도 작지도 않고 어깨를 쭉 펴고, 가슴을 내밀고, 맥주잔을 든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만큼 캣워크를 하는 모델처럼 걸었다. 장점은 살리고, 약점은 가리랬다고, 지원은 긴 바지나 긴 원피스를 즐겨 입었는데 하나같이 몸에 딱 달라붙는 디자인이었고 다소 짧은 종아리는 9cm가 넘는 힐로 감췄다. 하의가 신발 등위까지 내려왔기 때문에 키가 작은지, 다리가 짧은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적어도 지원이 그렇게 걸을 때는 모델을 하다 은퇴한 20대 후반의 여자로 보였다.

생맥주를 따라온 지원이 앞에 앉은 남자에게 컵받침을 새 것으로 바꿔주며 맥주잔을 내려놓았다. 남자가 고맙다고 인사하자 지원도 “땡큐”라고 입술을 오므리며 귀여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원은 오늘 노란바탕의 딱 달라붙는 니트원피스를 입었다. 남자는 연신 지원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고, 지원은 귀기울여 들었다. 금전출납기를 열어 돈을 넣고 닫을 때도, 웨이츄리스들의 주문을 받아 술을 만들 때도, 병맥주를 딸 때도 연신 웃음을 잃지 않았다.

가게는 지하에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지원이 보였다. 지원은 드나드는 모든 사람들에게 웃으며 인사를 해야하는 자리에 있었다. 그에 대해 불평을 한 적은 없다. 가끔 만사가 귀찮거나 몸이 안 좋거나 일이 너무 바쁠 때면 웃지 않을 뿐이었다. 문이 열릴 때마다 문 위에 달린 작은 종이 딸랑. 하고 소리를 내었다. 지원은 거의 모든 순간 웃으며 헬로, 라고 인사했다.

지원의 앞에 앉은 남자가 일어서서 계산을 하고 팁통에 만원짜리 하나를 넣었을 때 지원은 다시 한 번 활짝 웃었다. 자꾸 뒤돌아보며 문을 여는 남자에게 지원은 손을 흔들며 바이,라고 말했다. 주방에서 보조일을 맡고 있는 청년이 성큼성큼 걸어왔다. 지원 앞에선 청년은 봉투를 하나 들고 있었다.

“누나, 함춘임이 누구예요?”

“왜?”

“이거 아까 낮에 대타 뛰다가 받은 건데, 누구한테 물어봐야 되나 하고..”

지원은 청년의 손에 든 봉투를 나꿔챘다.

“누구예요?”

“나야.”

“아, 누나 이름이 함춘임이예요?”

“옛날 이름.” 봉투는 등기우편이었다.

지원의 표정이 다소 굳어졌다. 청년은 웃으면 안되겠다는 걸 알아챘는지 뒤로 물러나서 잠깐 멈칫했다. 지원이 환히 웃으며 얘기했다.

“그래도 나는 지원이야. 알았지?”

청년은 마음이 가벼워져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누나 오늘 정말 예뻐요.”

“땡큐” 지원은 다시 입술을 오므리며 발음한 뒤 입꼬리를 길게 올리고 미소지었다.

바에서 설거지를 하는 아르바이트생이 쓰레기를 버리러 간 사이 지원은 등기우편을 열어보았다.

 

지원의 주민등록지는 이 가게로 되어 있었다. 지원은 7년전 일로 다시 법원을 가고, 그 남자를 만나거나 마주보아야 한다고 서류에 적혀 있었다. 짐도 없이 거리로 나왔다. 눈이 부어 앞이 보이지 않았고 이도 몇 대 부러진 상태였다. 기억을 더듬어 옛 인연을 찾아 이 가게로 왔다. 춘임이었던 때, 찾아온 인연은 그녀를 내치지 않고 집에서 며칠을 같이 지내다 방을 구하기 위해 우사단 길을 걸었고 칵테일 만드는 법을 가르쳤으며 주민등록을 가게로 옮기게 했고 금전출납기와 장부를 맡겼다. 지원에게 장부를 맡긴 여자는 주방에서 스테이크를 굽고 있는 주방장에 옆에 서서 웃고 있었다. 작은 키의 그녀가 주방을 돌아나와 지원에게 왔다.

“나 와인 한 잔만 줘.”

지원은 냉장고에서 와인 한 병을 꺼내 마개를 따고 길쭉한 와인잔에 따라 건넸다.

“아 예쁘네 이거. 이거 뭐야?”

“로제와인, 어제 장사장님이 신제품이라고 가져왔어.”

와인을 든 여자가 지원을 빤히 봤다.

“그거, 내가 일부러 모르는 척 했다?”

“뭐?”

“아까 그 등기우편. 내가 성욱이한테 난 모르니까 너한테 가서 물어보라고 했다?”

“아 언니!”

여자는 깔깔대고 웃었다.

“그 새끼니?”

“어.”

“미친 새끼.”

키 작은 여자는 와인잔을 들고 총총히 걸어 주방으로 돌아갔다.

지원은 펴 놓은 매출장부로 쓰는 다이어리에 글자를 적었다.

‘쇼리언니 로제와인 1병 카를로로시– 장사장 증’

 

 

2014. 7.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