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구색 – 통영 (2018.5)

1.

새벽에 배를 타고 낚시를 나가겠다던 내 남자친구는, 현금을 안 뽑아와서 선주에게 계좌이체가 되냐고 물었다. 선주의 부인이 좋다고 했다. 도시락이 있냐고 물으니 과자뿐이라면서 계란이 좀 있는데 가져가라 한다. 건담이가 4개니 2천 원 정도 받으시겠냐고 물었고 선주의 부인은 뭘 그런 걸 돈을 받냐고 쑥스러워했다. 천원짜리 두 개를 테이블에 얹어놓고 배를 타고 나갔다. 바다 갯바위 부근에 묶어놓은 뗏목까지 데려다주는 건데 돌아갈 생각이 들면 선주에게 전화를 하면 다시 데리러 온다. 일종의 택시 같은 거다.
몇 시간이 지나 딱히 회 쳐먹기도 어려운 것들만 걸리는데 옆 뗏목에서 철수하는 걸 보니 의욕이 떨어졌다. 아이가 낚시를 하고 싶어한다고 전화도 한데다가 이런 저런 이유가 겹쳐 낚시를 접었다. 선주에게 전화를 하니 아침에 데려다준 노인 말고 젊은 남자가 와서는 요즘 고기가 잘 안 잡힌다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다음에는 더 좋은 포인트를 찾아놓을테니 꼭 다시 오라는 말도 했다. 건담이가 나를 기다리는 동안 버스정류장 부근에서 장비를 정리하고 있는데 낚싯배를 운영하는 아침의 그 선주 부인이 버스정류장을 쪼르르 달려나왔다.
“버스 기다리시나예?”
“아뇨. 짐이 이리 많은데 버스를 우예 탑니까. 데리러 올낍니다. 아를 데려왔는데, 아가 낚시를 해보고 싶다케가 저쪽 가서 칠라고 접었심다.”
“아, 내는 버스 타고 오셨는지 알고. 새벽에 혼자 오셨길래. 여는 버스타고 오시는 분들 많아예. 택배로 짐 부치고 몸만 왔다가, 택배로 다시 짐 부치고 몸만 가는 분들도 있어예. 내는 버스 타고 가시는지 알고, 아침에 현금이 없다카길래 차비 갖고 나왔는데.”
“아이고 차비를 아지매가 왜 주심니꺼? ”
“요새 현금들 안 들고 다니잖아예. 아침에 현찰이 없다케가 그 생각이 나가꼬. 곤란할까봐 가꼬 나왔지예.”
“고맙심더. 담에 꼭 올께요.”
남친은 아지매가 좋다고 호들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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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이와 점심을 먹으러 길을 나섰다. 돼지국밥집을 발견한 아이가 돼지국밥을 먹자고 했다. 딱히 믿음이 가지 않는 간판이었다. 아무래도 체인점인 것 같았는데 근처에 신뢰가 가는 간판이 안 보였다. 우리는 들어가 돼지국밥 두 그릇을 시켰다. 정은정샘이 애정하는 문양의 쟁반에 반찬이 담겨져 나왔다. 양파와 풋고추를 담은 그릇을 빼고 사진을 찍었다. 다른 반찬을 가져다 주러 온 주인 아저씨가 내가 빼놓은 그릇을 다시 쟁반위에 턱 얹었다. 자기만의 규칙을 고집하는 사람일거라 짐작했다.
돼지국밥은 맛이 없었다. 돼지잡내가 심하게 났다. 아이는 오랜만에 먹는 돼지국밥이 반가운지 공기밥을 턱 말아 신 나게 먹었다. 밥을 거의 다 먹을 때쯤 가림막이 높아 안 보이던 옆 홀에서 남자 넷이 일어났다. 검은 피부의 외국인이 작업복을 입고 일행과 함께 나갔다. 항구가 바로 앞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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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국밥을 먹고 난 뒤 내리 쫄쫄 굶은 남친 주려고 충무김밥을 샀다.
순식간에 2인분이 포장되어 나왔다. 방파제에 김밥을 펴놓고 아이에게 먹으라 했더니 한 점 먹고 안 먹는다.
“왜 안 먹어? 맛없지?” 아이에게 그게 맛있을리 있나.
“이거 진짜 김.밥.이네. 맛없어.”
“이거 여기 오징어랑 같이 먹는거야.”
“안 먹어. 나 라면 먹을래.”
지금의 아이들에겐 어색한 맛. 어른들에겐 한 시절을 관통하는 음식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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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몇 시간 후 마을 어귀에서 여러 팀이 낚시를 하고 있는 방파제에서 아이가 처음으로 갯지렁이를 끼우고 낚싯대를 던지며 줄을 풀어보기도 하고 제법 잘 따라하고 있었다. 몇 시간이 지난 다음 바람을 피해 한 번 방향을 바꿔보고 난 뒤였다.
“헐. 내 지렁이.” 아이가 내 남자친구에게 자기 지렁이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낚시용품을 파는 낚시방에 가면 갯지렁이를 큰 다라이에서 꺼내 작은 종이박스에 담아준다. 아이는 지렁이박스를 바닥에 두고 고양이 밥도 주고 라면도 뽀개먹고 난 다음이었다.
저쪽에 앉아 수조에 물을 채우러 온 횟집 차가 후진을 하는데도 꼼짝도 안 하던 여자의 일행이 왔다 갔다 자리를 몇 번 옮기고는 낚싯줄이 다른 사람들과 엉켜 안 좋은 소리도 나더니만 우리는 그 일행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와 훔쳐갈끼 없어서 아 지렁이를 훔쳐가노. 인성 쓰레기네. 그것도 어린이날에. 미친 거 아이가.” 남친이 그들보고 들으라는 듯 화를 냈다.
통영시내 활어시장에서 그 일행을 다시 만났다. 길막고 서 있는 걸 보니 그들이 지렁이를 훔쳐간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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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사람 사는 건 다 그래야 구색이 맞는 거라고, 지금 사는 이 집에 이사한 지 얼마 안됬을 때 경비아저씨가 했던 말을 내내 기억하고 있다. 이날 우리는 뽈락이랑 쏨뱅이만 잡아 다시 놔주고 회는 활어시장에서 사 먹었다. 살아있는 것을 미끼로 쓰고, 살아있는 것을 잡고, 또 살아있는 것을 그 자리에서 죽여서 먹고, 그리고 또 살겠다고 나서는 것들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인간은 딱히 그닥 숭고한 존재가 아니고 나 역시 숭고해질 생각은 없다. 존재마다 다르게 갖는 생명의 의미와 그에 대한 태도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할 뿐이다.

5월 어린이날 여행.
통영.

노인들의 세상

동해 묵호에 가면 늘 들르는 화성곰치국.

아침7시부터 문을 여는 집이다. 도착하자마자 아침으로 곰치국을 먹으러 들어가려는데 문 앞에 발가락 양말을 신은 노인이 길에 걸어가는 노인 둘을 보고 이 집이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 문을 막고 서는 건 기본. 나는 그 앞에 가만히 서서 노인의 양말을 바라보았다. 노인이 소리를 지르다 침을 흘렸다.

7시 반이었다. 안으로 들어갔더니 단체 손님이 가득 차 있다. 꽃놀이 온 상춘객들이다. 일행을 향해 소리를 지르던 노인일행은 다른 팀인 모양이다. 우리는 자리가 없어 미처 치우지 못한 냉장고 앞 자리에 앉았다. 주인이 와서 빠르게 그릇을 걷어갔다.

우리 옆에 앉은 남성노인 일행에 아까 그 발가락양말 노인도 있었다. 유난히 목소리가 큰 남자가 내 오른쪽에 앉았는데 무슨 얘기를 하다가 뜬금없이 “좌파가 문제” 라고 큰 소리로 외치고 낄낄거렸다. 뉴욕이 어쩌고 아이들이 어쩌고, 미국에 다녀온 이야기들도 간간히 이어졌다.

“그 누구야 대통령 비서실장. 임종석이. 걔가 미국에 왜 못갔는지 알아? 걔가 빨갱이라서 미국에서 비자를 안 준다잖아. 걔가 예전에 임수경이가 북한가서 아바이 수령님 하기 전에 임수경이가 고등학생이었는데 그걸 걔가 다 교육을 시켜서 보낸 거잖아. 비서실장이 아주 빨갱이라고. 아바이 수령님 하던 애야. 그래서 미국을 못 간거야. 이게 온통 빨갱이 세상이여. 전쟁이 나면 말이지, 북한이 문제가 아니고 여기가 문제여. 정부뿐만 아니고 온통 빨갱이라고.”

나는 세월호 팔찌와 낙산사에서 산 기원팔찌를 끼고 다닌다. 오른손목을 보니 세월호 팔찌가 팔꿈치 방향으로 밀려 올라가 있었다. 팔목을 걷고 세월호팔찌를 잡아 끌어 손가락 쪽으로 당겼다. 조금이라도 더 잘 보이길 바랐다.

저쪽에 앉은 노인이 말을 이어갔다. 한쪽 다리를 뒤로 쭉 뻗은채. 노인의 발에서 큼큼한 냄새가 났다.

“근데 걔들은 일당백이야. 아주 조직적으로 움직인다고. 당할 수가 없어.”

세월호 팔찌나 리본을 하고 다니면 빨갱이라고 말하는 이들과 그들이 같은 부류라면, 나는 빨갱이천하가 되어도 아무 문제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런 노인들을 볼 때마다 이해하려 애썼고, 동정도 했지만, 이제 그럴 기력이 점점 떨어진다. 나도 당신들처럼 늙어가기 때문이다.

밥을 다 먹고 나와 계산을 하려고 섰을 때 그들도 밥을 다 먹어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임종석이 아바이수령님 하던 애, 라고 떠들던 노인은 반팔차림이었다. 성조기에 U.S.A라고 선명하게 프린트된 티셔츠를 입고 바지를 추키고 있었다.

2018.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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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돌산

돌봐야 할 것들이 없다면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스케줄이 없다면 다음 스케줄이 있는 때까지라도
한없이 돌아다닐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해서

아직 나는 여기 저기 매인 게 많고 소속된 게 많고 맘껏 떠나기에 뿌리를 너무 많이 뻗어버려서.

가끔 지나간 사진을 들춰 본다.

여수 돌산의 작은 마을은
정말 사람이 안 사는 것처럼 고요하기 그지 없었다.
관광+낚시를 활성화하고자 전략을 세운 것 같았으나 그날은 토요일인데도 쥐죽은 듯 고요했다. 항구를 지키고 있던 개가 목줄에 묶여서 몇 번 짖어댔을 뿐. 작은 항구가 있는 마을엔 가끔 개집이 하나 놓여있고 거기에 누가 키우는지 모르는 세상 단 한마리의 개가 있곤 하다.

나는 왜 도시에서 태어나 빙빙 돌다 바닷가 남의 동네에 와서 기웃거리고 사나. 어촌에서 태어나 고기를 낚는 아버지와 물질을 하는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다면 나는 어디쯤에서 또 헤매고 있을까.

떠나오면 어디든 그리운 법.
헤세는 고향은 실체가 없는 것이라 했다.
고향은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도 있다.

– 18년 3월 3일 여수 돌산 성두낚시마을

통영활어시장, 나의 비겁

통영 중앙시장이 활어가 싸다길래 가봤다. 중앙시장은 활어시장과 붙어 있는데 항구의 출입구와 바로 맞닿은 곳은 통영활어시장이고 바로 옆에 중앙시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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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시장 앞 통영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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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컨텐츠로 밀어부치는 느낌. 활어시장 입구

통영활어시장은 위치로 봐서는 그야말로 항구에서 막 잡아온 활어를 받아다 팔 수 있을 것이다. 항구 바로 앞에 주차장이 있고 4차선 도로 앞에 활어시장이 있다.

통영활어시장만큼 싼 곳이 없다길래 회를 먹으러 갔다.

시장 한 가운데 쪼그려 앉은 아지매들이 소쿠리에 각종 바닷고기를 놓고 흥정을 한다. 감성돔, 민어, 점성어, 도다리, 능어, 송어, 제철에 올라오는 온갖 고기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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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쪽과 안쪽 가격이 조금 다를 수도 있다. 생선을 잘 아는 사람이 흥정을 잘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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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을 고르고 흥정을 마치면 아지매들이 잽싸게 회를 뜨기 시작한다. 생선을 도마에 놓고 칼로 정확하게 뼈를 발라낸 뒤 껍질과 살점 사이에 칼을 집어넣어 살살 밀다가 손으로 생선 껍데기를 확 벗겨낸다. 비늘을 다듬고 자시고 할 시간이 없다. 껍질과 내장, 뼈를 다 발라낸 생선은 소쿠리에 다시 넣어 물에 헹군다. 아지매마다 수도꼭지를 하나씩 가지고 있고 콸콸 물이 나온다. 모두들 어부바지와 장화를 신고 있다. 목욕탕의자만큼 작은 의자에 앉은 아지매가 허리를 펴지 못하고 구부정한 상태로 엉거주춤하게 일어났다 앉으며 회써는 도마를 초벌손질 도마 위에 올린다. 포장비닐 안에 들어있는 흰 수건 위에 손질을 마친 생선을 올려 물기를 꽉꽉 짜낸다. 오로지 악력으로 물기를 짠다. 다시 살점을 꺼내 흰 도마위에 얹고 먹기 좋게 회를 썰어준다. 배바지는 배바지대로, 세꼬시는 세꼬시대로. 흰색 스티로폼 도시락에 대나무포장재를 얹은 위에 횟감을 썩썩 얹는다. 매운탕을 먹을거냐고 묻고 먹을 거라 하면 뼈는 다른 흰 비닐봉투에 얹어준다. 흰 비닐에 각각 도시락을 담고 검은 봉투에 한 번 더 담아주면 아지매의 역할은 끝난다.

 

우리가 감성돔 한 마리에 도다리 세 마리를 삼만원 주고 사서 회를 썰고 있는 사이, 비어 있던 옆자리의 주인이 나타났다. 분명히 통영 사투리인데 이야기가 심상치 않다.

“니 어데 갔다왔노? 고기를 이래 놓고 몇 시간을 안 나타나면 우짜노? 오다가 뭔 일 났는지 알았다.”우리 회를 써는 아지매가 옆 자리 여자를 보고 말한다. 옆 자리에 나타난 여자는 야구모자를 쓰고 안경을 쓴 젊은 여자다. 시장에서 제일 젊은 여자로 보였다.

“아가 아파가지고예. 캄뽀디아에 전화를 했는데예. 전화가 안되지 뭡니까. 아 그래가지고예. 전화를 계속 하고 머 이래 이래 하다가, 연락이 안 되가꼬.” 여자가 하는 말을 나는 못 알아듣겠는데 부산 출신 동행은 들으며 웃고 있고, 앞자리 옆자리 아지매들은 빠른 사투리로 지청구를 했다. 앞자리에서 해산물을 팔던 아지매가 고개를 숙이며 중얼댔다.

“안 오니까는 걱정을 했지. 뭐 사고라도 났는가 싶어가.”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동행을 바라보자 캄보디아 사람인데 애가 아파서 고향에 전화한다고 자리를 비웠다고 해준다. 다시 여자를 보니 이목구비가 좀 달라보인다. 사투리는 제대로였다.

횟감을 들고 시장을 둘러치고 있는 초장집으로 들어간다. 초장집은 1인당 4천원 정도의 상차림비용을 받는다. 음료수와 술값은 별도고, 매운탕은 10,000원을 받는다.

 

초장집 아지매의 말씨가 구성지고 맛깔난다. 원래 장어구이도 하는 집인데 노인네들이 와서 장어값이 비싸네 어쩌네 한다고 짜증이 잔뜩 올랐다.

“할배요. 그거 그리 돈 생각하고 먹으면 다 맛이 없는깁니다. 그냥 먹을 때는 맛있게 자셔야지. 그렇게 비싸네 어쩌네 돈 생각할 거 같으면 딴 데 가이소 마.”

전채음식이 하나도 없어서 해산물이 좀 먹고 싶다 했더니 동행이 1만원을 들고 나가 해삼멍게개불을 사왔다. 해삼은 주로 딱딱해서 잘 못 먹었는데 여기만큼은 오독오독 잘 씹히고 고소했다. 굴은 소량으로 안 판다 해서 맛을 못 봤다.

저쪽 끝에 수도권에서 온 듯한 커플이 앉아 초장집 아지매에게 이런 저런 걸 물었다.

“고등어회가 어디 어디가 맛있다던데, 거기 아세요?”

“어데?”

“ㅇㅇ이라고..”

“거기가 맛나다하요?”

“블로그 봤는데요. 인터넷에 올라온거요.”

아지매가 걸레로 바닥을 훔치며 낮지 않은 소리로 말했다.
“아니 그 집이 맛나다해요? 대체 누가 그런 걸 올린대요? 난 그것이 참말로 궁금하네.”

“어머 아주머니 표정이 안 좋으셔요. 맛 없는집이예요?” 여자가 웃었다.

“마, 가보이소. 가봐야 알제. 뭐든지 다 자기가 묵어봐야 이게 맛나나 안 맛나나 확인이 되제. 가보이쏘. 가보고 댓글 달아보소.”

커플이 가면 안되겠다고 속닥거린다.

여자가 계속 아지매에게 맛집을 물었다.

“시락국은 거가 아이고, 거 말고, 그 대로변에 큰 집이 있어. 거 말고 그 안에 들어가면 쪼만한 데가 있어요. 거가 제대로지. 그 아지매가 서울아지맨가 그래. 그 집 간판? 그 집 간판 없을걸. 간판 못 봤는데? 여보, 당신 그 집 간판 봐쓰요? 못 봤제? 응. 그 집 간판 없다. 없을기다. 낸 본 기억이 없어. 원조는 무슨, 여기 뭐 죄다 원조지 그래 따지면. 60년이고 50년이고, 우리도 여기 24년 됬쓰요. 그럼 뭐 우리도 원조지. 방송 나온 집? 방송 다 나왔쓰. 돈 내고 방송 나오라케. 우리도 아니 초장집도 돈 내고 방송 나오라카대. 안 나간다캤어. 뭔 초장집에서 돈 내고 방송엘 나가. 그 시락국은 일찍 닫아. 새벽 4시에 열고 9시에 닫아. 거가 원래 뱃사람들 먹는 데지. 외지 사람들 먹는 데가 아니예요.

충무김밥은, 명가가 좋다. 거가 재료를 좋은 거 써. 밥이나 김은 다 똑같애. 그 무침 있자나. 반찬. 오징어 이런 걸 존 거 쓴다. 거가 좋고. 꿀빵은 원래 꿀봉이가 원조다. 갸가 그거 하고 나서 돈 좀 번다카니 여기 저기서 따라해가 톳빵이고 뭐고 난리다. 아주.

다찌집? 다찌집은 다 거기서 거기지. 근데 외지사람들이 둘이 가면 사실 다찌집에서 별로 안 좋아해. 그게 왜그냐하믄, 통영 사람들이 술을 엄청 마셔요. 서울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그만큼 못 마셔. 한 상에 4만원 이래 하면, 술을 추가해야 돈이 된다고. 술에다가 안주가 기본으로 나가자나. 술 한 병에 만원 받는데 안주가 새로 나간다고. 근데 둘이 가서 술하고 안주를 먹어봤자 얼마나 먹겠노. 그 집은 술이 계속 나가야 돈이 된다 말이다. 근데 둘이 가서 두 병 마시고 한 상 받으면 그 다 먹지도 몬한다. 여러 명 가서 여러 병 먹어야 좋아하지.

아 택시? 멀다캤는데 가깝드라꼬? 통영사람들이 승질이 급해가 다 그러고 다녀요. 걸어가도 되는데 그걸 못 기다리는기라. 버스도 다른 도시보다 정거장 사이가 짧아. 근데도 그걸 못 참아. 택시 탄다꼬. 버스 정거장 하나 거리가 문 열고 닫는 시간인기라. 승질이 엄청 급해.”

아지매의 말을 들으며 낄낄대느라 불편했던 마음이 모두 사그라들었다. 나는 휴대폰을 열어 아지매가 말하는 식당의 간판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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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피랑 올라가는 길. 다음을 기약하며 패스.

통영에서 그렇게 회를 먹고 동피랑 마을 아래 커피집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집으로 가려고 운전대를 잡았다. 회를 써는 아지매들을 보며 눈물이 나더라고 내가 말했다. 동행은 생선이 불쌍해서 울었냐 할매가 불쌍해서 울었냐고 물었다.

그게 아니라. 그 삶에 대해서, 내가 너무 비겁하게 사는 거 같아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수십년을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한채, 여름엔 더워서 물것이 상할까봐. 겨울엔 추워서 손에 감각을 잃은 채로. 하루종을 물에서 생선을 건지고 또 썰어대던 손목. 그 앞에서 문학이니 예술이니, 모두가 나발이다.

부끄러웠다. 내 삶이. 이렇게 살아도 되나. 선 채로 나불대며 입으로나 떠들고, 앉아서는 모니터 앞에 앉아 헛된 주장들만 쏟아내는 이 따위 삶은 얼마나 비겁한가.

바다와 싸우고 매일 사람과 실갱이 하는 삶을 구경하며, 이따위로 살아도 되나.

뭔가를 하고 있다지만 사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추상적인 일상 아닌가.

통영은 그랬다. 싸게 회를 먹겠다고 간 도시에서. 나는 한없이 비겁하고 무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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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통영을 두고 오다

2018년 3월 13일.

거제, 해금강마을

거제에 가면 봐야 할 것이 해금강과 바람의 언덕이라고 한다. 바람의 언덕은 개인 사유지인데 얼마 전에 너무 지저분해져서 소유자가 개방을 재고하겠다는 소식이 있었다. 주말이 되면 도로가 꽉 막힐 정도로 관광객이 몰린단다.

거제 와현해수욕장 부근에서 1박을 하고 해금강쪽으로 차를 돌렸다. 구비구비 산길이 해변으로 이어져 있다. 운전자는 볼 수 없지만 동행자는 좋은 경치를 구경할 수 있다.

해금강은 바다의 금강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멋진 바위섬이 이어져 있는데 바위섬과 바위섬 사이로 여객선이 다니며 이 경치를 자랑한다. 여객선은 몇 가지 코스가 있었는데 내가 간 날은 2시간 30분짜리 외도 왕복 코스밖에 없어서 유람선 타는 것은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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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강일대는 해금강마을이라 불리고 숙박시설과 횟집이 상당히 많지만.

거제 물가가 그렇다 하니 섣불리 뭘 먹으러 들어갈 수는 없다.

해금강 호텔은 영업을 중단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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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횟집 아주머니들이 점심을 먹고 가라고 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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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만 바라보며 갯바위에 앉아 책을 읽다가 가져간 숄을 뒤집어 쓰고 낮잠을 잤다. 얼굴이 조금 달아올랐지만 아직 여름만큼은 아니다. 낚시를 하러 온 사람들을 갯바위로 실어나르는 낚싯배만이 오고 갔다. 날씨는 좋았고, 군데 군데 동백꽃이 떨어져 있었다.

아. 거제의 해변 곳곳엔, 화장실이 깨끗하다. 그거 하나는 좋다.

2018년 3월 13일

거제, DSME 남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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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다섯 시 40분.
대우조선해양 남문 앞 미니스톱.
로또는 6시 조금 지난 시간부터 판다.
작업복의 남자들이 한 둘씩 편의점에 들어와 각자의 하루를 책임질 물건을 사간다. 담배, 딸기 우유 하나, 숙취 해소 음료 하나, 일주일을 책임질 로또 같은 것들.

– 삼년 전에 성과급 좋을 때 이 동네 여자들은 싸우나 끊어 다니고 그랬죠. 이제는 성과급 없다고 봐야 돼요. 이제는 뭐 그냥, 아끼는 거 말고 뭐 하겠습니까.

– 여 조선소는 잘 될 수가 없심더. 우리 일할 때요, 볼트 너트가 없어가지고 다음 배 작업장 가서 몰래 훔쳐다 하고 그랬심더. 그게 왜 그랬겠어요. 중간에 누가 해처먹고 누가 잃어버리고 그런 거 책임을 안 지는 깁니다. 직영은 일 안 하고 놀지요. 하청에 하청은 책임감 없지요. 그냥 일당만 받아가면 되는데 누가 열심히 합니까. 열심히 한다고 누가 알아줍니까 일당이 올라갑니까. 구조 자체가 그래요. 여기는 아무도 책임 안 집니다. 수주 받으면 뭐 합니까. 수주 받는다고 돈 버는 게 아니라예. 오히려 그게 더 손핸데 일부러 싸게 수주 받아오면 뭐 합니까. 부품 모잘라가 결국에 마지막 배는 못 만들 상황이예요.

– 조선소 일 힘들지요. 우리 아는 동생은 여 와서 하루 교육 받고 그냥 갔습니다. 원래 갸가 편한 일만 하던 아다 보이, 못 하겠답디다. 또 다른 동생 하나도 이틀 일하고 가뿔데요. 일 힘들지요.

– 우리 남편도 어려서 배운 게 없어가, 그냥 억지로 억지로 다닙니다. 지금도 하기 싫어 죽을라 해요. 근데, 그만두라 소리는 못하고…

나는 창밖을 내다보며 대화를 못 들은 척 하다가 들은 척 하다가를 반복했다. 나는 이럴 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어쩌다 저기에, 거기에, 없었을까. 나는 어쩌다 지금 여기에 있을까.

사람들은 먼 산의 긴 노을처럼 천천히 움직였다. 신호가 바뀌어도 뛰지 않았다. 사람이 덜 지나갔는데도 차들은 날카로운 경적을 울리며 씽씽 달렸다.

그 많던 조선소 노동자들은 모두 어디에 갔을까.

18.03.12.

 

 

거제 (2017, 5)

거제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6시였다.


멀리서 남해의 태양이 노오랗게 떠오르고 있었다.


동해의 일출이 붉은 색을 많이 띈 주황이라면 이 곳의 태양은 노란빛이 절반이상을 휘감고 있었다.


거제엔 조선소가 있다.


대형 선박을 만드는 대우조선해양부터 삼성중공업을 비롯해 크고 작은 중공업 공장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 거대한 섬의 삶을 책임진다.


입구부터 휘발유 값이 안양보다 싼 게 눈에 띄였다. 거제도는 절대 물가가 싸지도 않고 음식이 맛있지도 않다고 했다. 내내 격한 노동으로 하루 하루를 꾸려가는 사람들이 양질의 음식 서비스를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음식이 맛없는 도시는 뜨내기들이 많은 도시일수록 더하다. 토박이가 오래 사는 곳에는 맛없는 식당이 살아남기 힘들다. 역전 앞 식당이 찐 밥으로 스텐공기를 채우고 조미료가 가득한 텁텁한 찌개를 내어놓고도 아무 꺼리낌 없는 것과 다름없다.


식당 밥이라는 건 다시 올 사람에게만 친절하다. 관계가 형성되어야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다. 다시 볼 일 없는 이에게 정성스러운 밥을 내어주는 일을 흔치 않는, 어쩌면 숭고하기까지 한 일인 것이다.


음식에 대해 타박한 적 없는 이들도 거제에 와서 고된 노동에 시달리다 보면 이렇게도 음식이 맛없을 수 있나 생각하게 된다고 들은 적 있다. 지역의 음식맛이라는 건 개개인의 편차겠지만 하루에 10시간 이상 쇳덩어리와 사투를 벌이는 이들이 “맛없다”고 하는 것을 믿지 않기 힘들다.


노란 해가 다 떠오르고 유달리 맑을 거라는 하루가 시작되자 작업복을 입는 사내들이 한 둘씩 거리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토요일이지만 오늘은 일하는 날이라 한다.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은 주로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직원들이다. ㅇㅇ 인력이라고 써 있는 버스들이 작업복 차림의 사내들을 태워가기도 했으며 안전화를 신은 남자가 다가와 서는 승용차에 올라타기도 했다. 아웃소싱업체라는 인력공급회사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실어나른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쉬는 날도 딱히 정해진 바가 없으며 잔업과 야근을 계속 이어간다. 조선소는 24시간 불빛이 꺼지지 않는 곳이라 한다. 이 섬에서는 낮에 거리를 돌아다니는 성인 남자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다고 했다. 모두가 일하는 도시, 모두가 노동으로 하루를 일궈나가는 도시다.


육지의 끄트머리에 배의 밑바닥 판을 깔고 그 위에 하나씩 조각을 이어붙이는 작업, 거대한 배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다. 갑판이 만들어지기 전, 배의 바닥을 건조하는 작업엔 불빛도 없는 막장과 같다고 한다. 헤드라이트에 의존해 머리통도 들어가지 않는 좁은 공간에 선과 관을 끼워넣는 작업들을 이 곳에 모인 사내들이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배들이, 그 배들의 출항을 돕는 거대한 기계들이 바다를 점령하고 있다. 낮은 갯벌처럼 보이는 잔잔한 바다위에 드문드문 제 영역을 지키고 섰는 기계들은 마치 골리앗의 무기같다. 작은 다윗들은 골리앗의 무기에 올라타 작은 망치를 들고 무엇을 이겨내고 있는가.


오늘 하루를, 지나간 시간의 회한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는 노동의 섬. 골목마다 들어찬 깔끔한 건물과 마당이 넓은 아름다운 개인주택들이 이만큼 잘 살고 있지 않냐고 속삭이는 듯 하다.


시내에는 둘 셋 되는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젊은 여자들이 눈에 많이 띄였다. 그만큼 먹고 살만 하고 키울 만 하다는 얘기인가, 이 도시는 대기업 조선소의 추락으로 예전같지 않다는데 그래도 여전히 활기가 있었다. 나머지가 없는 노동의 도시 같달까.


거제에서 2차선 다리를 건너 칠천도를 들어선다. 연초면에서부터 대나무 군락이 꽤 많아 산 빛깔이 다채롭다. 온통 초록인 숲속에 연두빛 대나무가 시원하다. 산 위에 색종이 한 장씩을 덮은듯이 손바닥 하나로 꾹, 또 하나의 손바닥으로 꾹 누른듯 환하다. 대나무가 있으면 잡귀가 없다던가. 대나무는 잡귀를 쫓고 복을 부른다하며 설날 새벽엔 문 밖에서 대나무를 태워 잡귀를 쫓고 복을 불렀다는 유래를 읽는다. 알게 뭐람. 처음 듣는 얘기지만, 거친 바다를 앞세워 살아가는 터전에 잡귀를 쫓는 대나무가 많은 것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만큼의 안정을 주는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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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천도는 조선조에 검은 소와 붉은 말을 키우는 곳이었는데 그 검은 소가 옻색깔과 같고 일곱개의 하천이 있다고 하여 漆川이라 불렀는데 일제강점기에 지명을 약자로 축약해버리며 七川으로 변형되었다고 추정한다. 근래 들어 가장 맑은 하늘에 북풍이 적당히 불어 그늘은 쌀쌀하고 양달은 뜨거웠다.


칠천도에 들어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10분 못 미쳐 물안마을에 닿는다. 대나무 군락이 산을 덮고 있는 작은 산 아래 30여가구의 지붕이 알록달록하다. 파란 하늘과 더 파란 바다를 안고 물안항이라는 아주 작은 포구에 작은 고깃배 열 척 정도가 기다리고 있다가 아침 7시부터 드문드문 출항을 시작했다.


방파제를 걷는 아이에게 배에 오른 어부가 닻줄을 풀어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는 생전 처음 보는 닻줄을 풀어 어부의 배로 던졌다. 네가 뭍에 있고 내가 물에 있으니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한 협조. 사람들은 대부분 저렇게 살아갈 필요가 있다.


묶인 줄을 풀어주고, 묶어야 할 배를 잡아주고, 물을 건널 때 손을 잡아주고 배에서 내릴 때 배가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는, 그 사람과 딱히 어떤 인연이 없더라도, 그저 옆에, 한 번쯤 스쳐간다는 이유로,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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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안마을의 물안항 방파제 앞산에는 시들어 떨어진 아카시아가 지천이다. 꽥꽥거리는 새소리가 요란해 올려다보니 왜가리인지 백로인지 무지한 나는 모를 날 것들이 나무 위에 잔뜩 올라붙어 있다. 아침 8시를 넘기며 새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떠났다. 새들도 어디로 출근을 하는건가. 해가 뜬 후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당연한 섭리인가. 나무 위에 앉아 있던 새들이 줄어들자 내가 당황스럽다.


해변에 가족단위, 모임 단위 사람들이 방파제까지 다가와 하늘아래 천국이 있다면 이런 모양이겠다며 신이 나서 떠들고 갔다. 등대주변에서 돗자리를 깔고 자다 깨어 책을 읽다가 바다를 보다가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일행을 한 번 내려다보고 등대 아래 그늘 아래 앉았다가 햇빛에 앉았다가를 반복했다.


저녁나절이 되자 동네가 소란스러워진다. 민박을 통채로 빌려 오는 객들이다. 20여명이 넘는 중년의 남녀가 노래방 기계를 켜놓고 밤늦게까지 노래를 부르고 이리 저리 건배사가 마을에 넘친다. 이 동네는 작은 방은 별로 없고 민박도 독채로 쓰거나 단체 여행객들이 많다고 한다. 두 군데 민박에서 자리가 없다는 얘기를 듣고 붉은 지붕을 얹은 펜션의 방 하나를 잡았다. 적지 않은 평수에 일행과 함께 들 수 있게 생겼다. 칠천도 밖에 있는 마트에서 삼겹살과 반찬거리, 햇반을 사다가 소주에 곁들여 저녁을 먹었다. 상을 치우고 남자들은 낚시를 하러 다시 방파제로 나갔다. 먼 바다를 바라보고 앉았는데 펜션 주인 여자가 올라와 필요한 게 있으면 얘기하라고 인사를 한다.


아들이 몇 살이냐 물어 5학년이라 하니 주인여자도 5학년 아들이 있다며 내 아이 칭찬을 한다.
“아이고 그렇지도 않아요.” 라는 건 애엄마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의 시작이다. 펜션 주인의 남편은 조선소에 다닌다. 딸 둘에 막내아들이 하나 있는데 여자가 펜션을 지키느라 아이들은 주로 친정언니네 맡긴다. 아이를 데리고 오면 좋은데 아이들이 여간해서 따라다니지 않는다. 요즘 아이들은 어찌나 자기 주장이 강한지 답답할 뿐이다. 큰 아이가 중학생이라 여기서 학교를 보내기가 어려워 아이들은 모두 육지에 있다. 숙박업이라는 게 남들 놀 때 일하고 남들 일할 때 쉬는 업종이라 쉽지 않다. 배를 한 척 구했으면 좋겠는데 차로 치면 폐차직전에 있는 배 한 척도 기천만원이 넘어가 엄두를 못 낸다. 일행이 방파제에 잡히지도 않는 고기를 잡겠다고 내려가 있다니 믹스커피라도 타 가서 대접해야겠다고 웃는다. 이모도 내려오세요. 나에게 그녀가 말했다.


나는 동네에 몰려든 관광객들이 방파제에서 떠드는 모습을 보며 뭉개고 앉았다가 슬슬 바닷가로 나갔다. 오늘은 달 때문에 만조라 물이 잔뜩 들어찼다. 밤이 되면서 물이 엄청 높아졌다. 인근 마산지역은 만조로 인한 피해가 예상된다고 계속 재난 문자가 왔다. 잠깐 떴다 사라진 커다란 초승달은 태양보다 붉은 빛이었다. 펜션 주인 여자가 나눠준 종이컵에 담긴 믹스커피를 고맙게 마시며 물이 들어차서 걸어놓은 낚싯대가 떠내려 갈 뻔 했다는 얘기를 듣는다. 여자는 빈 쟁반을 들고 그녀를 따라나온 남편이 여자의 어깨에 팔을 걸고 펜션으로 돌아가는 뒷모습을 봤다.
바닷가에 앉아 물에 떠밀려온 쓰레기를 본다. 철썩대는 파도소리가 들린다. 바다가 있고 산이 있어 좋다는 일행의 옆에 앉아 바흐의 1043번을 틀었다.


새벽까지 시끄럽던 민박들은 아침에도 노랫소리가 이어졌다. 새벽 4시부터 수탉이 울어대고 산에서 새들이 계속 시끄럽게 날았다. 해가 뜰 때쯤 숭어와 뽈낙을 잡았다고 전갈이 왔다. 낚시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할 생각이 없었고 살아있는 생명을 잡아내는 일에 대새 적잖은 불안감이 있는데, 저녁에도 삼겹살을 먹은 주제에 생명 운운 할 일은 아닌 듯 하다. 작은 치어들은 바늘을 빼서 놓아주고, 바늘을 삼겨버린 도다리는 바늘을 잘 제거해 바다로 되돌려 보내기도 한다.
낚시를 하는 자들의 뒷모습은 돌아오지 않을 인연을 기다리는 그림자같다. 언제가 되어도 절대 내 것이 되지 않을 바다에서 한줌 희망을 낚는 이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을 바라보는 심정은 누구나 엇비슷하다.


해가 뜨고 하루가 또 시작된다.
칠천도의 해안도로를 달리는 버스 한 대가 지나가고 마을 어귀에 있던 잘 생긴 말을 타고 누군가 해안도로를 달린다. 일군의 자전거 부대가 도로를 내려오고 까마귀와 물새들이 이리저리 하늘을 나는 사이, 동네 터줏대감같은 고양이들이 밭 사이를 어슬렁거린다. 사투리가 진한 마을 이장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마을에 내려앉고 숙소 뒤편 집은 아침부터 밭고랑을 경운기로 뒤집었다. 새벽에 숭어와 뽈낙을 잡은 일행은 설거지를 마치고 다시 방파제로 내려갔다. 나는 드물게 오가는 차를 바라보며 도시에 있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오늘 이 곳을 오래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간만에 이렇게 매일 행복했으면 좋겠다던 너의 그을린 음성을 떠올린다.


숙소에 앉아 방파제를 바라본다. 내가 미처 돌아보지 않은 사이 누군가는 또 출항을 했다. 항구에 매어져 있던 배가 몇 척 뿐이다. 아이와 함께 물안마을을 살짝 돌아가는 섬의 해안도로를 달린다. 엎개, 라는 이름의 작은 해수욕장엔 철 이른 피서객들이 모여들고 있다. 여기도, 아이들이 많다. 미취학 연령의 아이들이 이렇게 많이 모여 있는 모습을 몇 년만에 보는지 모르겠다. 오래 전 신림동 난곡을 재개발 한 아파트에 살 적에 이렇게 아이들이 많았다. 그곳은 학교에 가기 전 아이들을 데리고 사는 젊은 부부들이 밀집해 살기 적절한 조건이었는데 젊은 부부와 한 둘의 아이들이 가족을 이뤘다면 이 곳에 잔뜩 보따리를 싸 짊어 지고 오는 부부들은 둘을 걸리고 하나는 업거나 안고 있는 일이 많았다. 어젯밤 펜션 주인이 이 동네는 기본이 애 셋, 이라는 얘기를 해줬던 게 생각났고 더불어, 신림동에서 들었던 불쾌했던 어느 노인의 언사가 생각났다. “없는 동네에 애새끼만 많다.” 그 노인은 저출생 문제로 나라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지금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없는 동네엔, 애들도 없다.


조선소의 삶을 모르는 내가 거제는 살만한 동네라 아이들이 많다고 말할 순 없다. 그저 이것은 어떠한 현상일 뿐. 밥벌이를 하는 자의 수입이 보장되어 있고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도시라면 어디든지 아이들이 늘어날테고, 서울 인근 수도권에서는 한 아이를 두 명의 성인이 키우는 일도 버거운 것이 틀림없을 뿐. 아무튼 엎개 해수욕장엔 아주 작은 아이들이 춥지도 않은 지 물가에 들어가 고무튜브를 타거나 모래밭에서 성을 만드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돌보다가 자기네 자리로 돌아가 어른들만의 이야기를 했다. 넓은 그늘막을 치고 간이의자를 펴고 앉은 몇 명의 무리들은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여유있게 바라봤다. 이 곳의 삶을 아는 사람들은 주말이 되면 딱히 별다르게 할 게 없고 집은 갑갑하고 아이들이 있으니 야외로 놀러나오는 것 뿐이라고 했다. 주말에 딱히 할 게 뭐가 있겠나. 안 그래도 지나치게 일을 많이 하는 한국사람들은 주말이 되면 “딱히 할 일 없는” 시간을 보내는 게 마땅하다.


아침을 먹고 난 뒤 커피를 마시지 않아 어금니 하나가 빠진 기분이다. 엎개해수욕장까지 오는 길에 봤던 “도로시” 까페가 전방에 있다는 입간판을 떠올리고 차에 올라 한참을 달렸다. 3km정도 되었을까. 해안도로 언덕 두어개를 넘어가니 작은 포구와 인가가 보인다. 십여명의 사람들이 북적대는 곳에 도로시라는 분홍색 글씨의 돌출간판이 보였다. 짧은 커트머리를 하고 세련된 인상을 가진 젊은 여자가 방금 들어온 일대의 무리에게 내어주기 위해 팥빙수 위에 콩가루를 올리고 있었다. 아메리카노가 되느냐고 물으니 방금 넉 잔 주문이 들어와 잠시만 기다려달라 부탁한다.
커피집 야외 테이블에 자리잡은 무리에도 아이들이 너댓 정도, 그 부모들이 두 커플인지 세 커플인지 눈여겨 보지 않았다. 아무튼 커피집 사장은 분주하게 에스프레소를 내려 아메리카노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구석 탁자에 아무렇게나 올려놓은 몇 권의 문학 계간지를 본다. 까페 주인은 문학을 가까이 두는 사람이겠다. 포스에 달라붙은 고양이 인형을 보고 사진을 찍고선 아메리카노 몇 잔을 받아 종이 캐리어에 담았다. 섬에서 유일한 까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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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같아선 어디가 되었든 그냥 좀 주저앉아 멍 때리고 싶지만 나는 여기 와서도 할 일이 많다. 커피를 낚시하는 일행에게 가져다 주었고 아이가 혼자 놀고 있어 다시 해수욕장으로 돌아가 아이를 쳐다보며 책을 펼쳤지만 이내 졸음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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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에서 가장 적절한 행동은 자는 거다. 뜨거운 햇살이 절반쯤만 비치는 곳에 자리를 잡고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자리에 아무렇게나 눕는 일. 아이를 바라보다 김금희의 소설을 읽다가 바람이 불어와 벤치에 누워 깜빡 잠이 들었는데 전화가 왔다. 펜션의 짐을 정리해야 한다. 이방인의 그 해변도 이러했을까. 햇빛도 바람도 적당했을텐데, 아마 그 해변엔 아무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노는 아이들도, 아이를 부르는 어미의 목소리도.


그늘막에 펼쳐놓은 텐트를 접고 섬 여기저기에 펼쳐놓은 우리의 흔적들을 치운다. 결국 쓰레기는 남기고 떠난다. 아껴둔 비닐봉투를 꺼내 1박 2일간 머무르며 외주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인간임을 증명한다. 봉투와 봉투, 플라스틱과 비닐로 이루어진 온갖 것들을 쓰레기하적장에 버린다. 쓰레기 하적장 옆엔 작은 개집이 있다. 밤과 아침나절엔 사라졌다가 낮에는 혼자 하루종일 줄에 매여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작은 개 한마리. 아침엔 집에 없던 아이. 어딜 갔다왔냐고 물을 수도 없다. 눈이 마주치면 마음이 무겁다. 주인이 누군지, 왜 아무도 놀아주지 않는지, 오가는 관광객의 아이들이 너에게 몹쓸 짓을 하지는 않았는지. 아무 것도 묻고 싶지 않다.


물새가 날아드는 해변과 아득한 마을을 바다에 두고 우리는 다시 도시로 나간다.
조선소의 정규직들이 쉬는 날, 거제에선 뭐 사먹는 거 아니라는 말을 들으며, 바다를 굽어보고 있는 골리앗과 골리앗과 또 다른 골리앗들을 뒤로 한 채, 내가 사는 도시보다 조금 싼 휘발유를 가득 채우고 통영은 세상에 없다는 듯이 모른 척 하고 지나간다.
새로 닦인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타고 꾸역꾸역 도시로 도시로, 또 다시 일터로 힘껏 애써 벌어 먹고 살다가 또 다시 찾아와 죽어도 내 것이 되지 않을 바다 앞에 앉아 웃고 울어보겠노라고. 지리산에 걸린 해가 한참동안 나를 간지럽혔다.


2017년 5월

기역의 바다

허리가 기역자로 고부라진 할머니를 보면 미원 맛이 최고라던 고흥의 박 씨네 할머니가 생각나곤 해. 도무지 일어날 수도 앉을 수도 없을 것 같던 노인이 하루 종일 뭔가를 하고 있었거든.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노인이 하는 일이라곤 온통 먹거리를 만드는 거였어. 그 집 마당엔 뭔가 펼쳐져 있었는데 계절별로 아마 다른 것들이었을 거야. 가을에 갔을 때는 유자껍질이 있었으니 그 전엔 고추가 있었겠고, 봄에는 또 다른 게 있었겠지. 헛간 옆에는 마늘과 양파가 매달려 있었고 서대라는 생선도 여기 저기 있었어. 하루 종일 널었다 걷었다 빻고 다듬고 하는 것들은 내가 슬리퍼를 꿰차고 집 앞 수퍼에 가면 10분도 안 돼서 사올 수 있는 것들. 섬에서 80년을 나무처럼 살았다던 두 노인 내외는 그런 먹거리들을 모두 손으로 다듬고 만져가며 마련했어. 그 집의 할머니는, 먼 바다가 곧바로 내려다보이는 경치 좋은 집에 살면서도 한 번도 허리를 편 적이 없을 것 같이 완전히 허리가 굽어 있었지. 희한한 건, 그 집의 영감님은 키가 크고 훤칠했는데 허리가 얼마나 꼿꼿한지 먼 바다에 떠가는 작은 배도 한 눈에 알아차릴 것 같았거든. 두 사람은 언젠가부터 다른 바다를 보고 있지 않았을까.

쪼그리고 앉으면 무릎이 턱에 닿던 고흥의 할머니를 생각해. 자식들이 가는 모습을 보며 이 빠진 입을 앙 다물던 모습을 보고 말았거든. 바위 위를 가볍게 넘나들던 노인을 보며, 나는 또 다른 노인들을 생각해. 우리는 어디서 헤어졌다가 여기까지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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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삼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