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

  해 지는 시간이 늦어진다. 하루가 추웠다. 나만 추웠겠는가. 그도 추웠을 것이고, 당신도 추웠을 것이고, 우리 모두, 조금씩 시린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따듯한 것이 생각나서 나는 설렁탕을 사러 간다. 검은 나의 차를 타고 어스름이 내리는 거리에, 네온사인이 들어오는 광경을 본다. 가족들과 밥을 먹으러 나온 사람들이 식당에 삼삼오오 앉아 있기도 하고 야근을 하기 전 허기를 달래려는“어스름” 계속 읽기

날씨는 왜 좋고 지랄

그런 날이 있었어. 아기 기저귀에 쓰는 노란고무줄이 있었어. 그걸로 가속페달을 묶어놓은 버스를 상상해봤어? 내가 학교 다닐 때 타고 다니던 마을버스는 그런 버스였어. 그 버스가 기울어질 정도로 아이들이 많이 탔어. 그 버스를 타고 학교를 가던 길에 시비가 붙으면 버스기사 아저씨가 창문을 열고 욕을 했어. “씨발 내가 너 따위 죽이고 깜빵 한 번 더 가면 돼” 똑같은“날씨는 왜 좋고 지랄” 계속 읽기

무거운 시간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괴로운 마음을 안다.  그건 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하는 말이었다.  그래서 죽음을 체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 헤매는 것도 안다. 죽음을 통해 뭔가 다른 것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것도 안다.  죽고 싶다라는 말은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내 세상을 바꾸고 싶다. 라는 절절한 호소였다는 것도  아주 뒤늦게 알았다.  무거운 시간들이 흘러간다. “무거운 시간” 계속 읽기

이틀

이틀이 지났다.점과 점이 이어져 선이 되듯시간이 이어져 하루가 되는데,모든 것이 뚝.뚝. 끊겨 있다. 자고 일어나면 꿈이었나의심하는 순간 이미 알고 있다꿈이길 바라는 마음을 똑똑노크한다 부른다엄마 – 라고. 전화기를 본다 없다 아무도 아무 것도 남지 않았고보안경비를 건다 밤은 가고나는 잔다너도 잘 것이다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밤. 나는 안다 그 어딘가에헤메는 우리의 두 손과더듬는 우리의 두 발을“이틀” 계속 읽기

ER

여기는 모두가 살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다. 하루라도, 한 시간이라도, 더 붙잡기 위해, 공포에 빠지지 않기 위해 매달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 위해 오는 곳이다. 살기 위해 오는 사람들 가운데죽기를 원했다가 다시 살기를 원해 오는 생명이 있다. 오늘을 넘기지 못할 것 같은 노인이 끊임없이 말하기 위해 노력한다. 언제나 지나간 것은 미련스럽고딱 한 번만이라고 말한 순간은 이미늦은 때이다.“ER” 계속 읽기

목욕탕 단상

1. 오랜만에 목욕탕에 갔다.체질상 당분간 온몸을 담그는 탕목욕이나 사우나를 피하라는 얘기를 들었는데그래도 나는 물에 몸을 푹 담그거나 뜨거운 찜질방에서 땀을 쭉쭉 빼는 걸 좋아한다.하루키의 잡문집을 들고 제일 조용한 찜질방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어디가 막혔는지 땀이 잘 나지 않았다.몇 몇 사람들이 들어왔다가 다시 나갔다. 60℃의 방에서 중년남녀가 다리를 베고 누워 다정한 말을 속삭인다.어디를 놀러갈까 이야기를 한다.정상적 부부관계로“목욕탕 단상” 계속 읽기

그 어느 꿈속에서

낯선나라에서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다 고현정을 만났다.얼큰하게 취한 그녀와 낯선 이국의 거리를 헤매다 그녀가 나에게 전화번호가 적힌 인쇄된 명함을 주었다.아마 중국이나 대만 어디쯤..음주후였으나 운전을 해서 어딘가로 가야만 했다.한 잔 더 할까 생각이 든 나는 고현정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ARS팬서비스였다.그럼 그렇지… 나는 마음을 접었다.붉은 색 나의 차에 홍콩이나 상해에 있는 연립주택 지하, 남의 집 철문옆에 묶여있는 나의“그 어느 꿈속에서” 계속 읽기

무엇을 하였는가

세종 이도가 소이에게 말했다그러는 너는 네 인생에 대해서 무엇을 하였느냐네가 이따우로 살고 있는 게 모두 내 탓이냐 나도 누군가에게 그랬다.너 때문이라고당신 때문이라고 그러면서 묻는다나는 내 인생에 얼마나 많은 것을 해주었는가. 생각해보면,참 많은 것을 하였다.참으로 많은 것을 시도하였고 좌절하였고 노력하였다.진실로 그러하다. 그런데 나는 지금또 다시 원점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원망하는그 원점이다.“무엇을 하였는가” 계속 읽기

가을

가을은 이렇게 가고.은행잎은 후두둑 떨어지고태풍은 오지 않았으나마음은 처연하고세월은 나를 외면하고 떠나가고아이들은 모른척 하고 자라나고 소리없이 사라지는 모든 것을미련없이 보내줘야 하는 것은여전히 쉽지 않다. 2011. 1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