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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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지는 시간이 늦어진다.

하루가 추웠다. 나만 추웠겠는가. 그도 추웠을 것이고, 당신도 추웠을 것이고, 우리 모두, 조금씩 시린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따듯한 것이 생각나서 나는 설렁탕을 사러 간다. 검은 나의 차를 타고 어스름이 내리는 거리에, 네온사인이 들어오는 광경을 본다. 가족들과 밥을 먹으러 나온 사람들이 식당에 삼삼오오 앉아 있기도 하고 야근을 하기 전 허기를 달래려는 남자들이 신발을 반쯤 벗은 채 앉아 설렁탕을 훌훌 먹고 있다.

외롭다고 말을 하면 그 뒷모습이 초라해보일까봐

쓸쓸하다고 말을 하면 내 신발의 뒷축을 감추고 싶을까봐

아프다고 말을 하면 앞선 자의 눈이 아련해 질까봐

오늘도 가면을 쓰고 하루를 지내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긴 한 숨을 쉰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가.

그 모든 대답은 나에게 있는데 애써 들여다 보는 시간이 엄습해오는 걸 느끼는 바로 그 때가 어스름.

침대맡에 앉아 일기를 쓰는 그 한적한 시간에 물밀듯이 밀려드는 안타까움에 대하여.

그럴 나이와 그럴 때가 따로 있다는 말 따위는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밀어내면서

최백호의 신보를 뒤적거리는 밤들이 이어지더라도,

그래 내일은 또 무슨 할 일이 산적해 있다는 것이 다행인 시절.

벚꽃은 아직 피지 않았고 여름은 멀리에 있다.

 

뒤틀리는 무릎의 통증을 느끼며 삐딱하게 서서 창밖을 바라본다. 휴대폰을 꺼내 그 어스름을 담는 시간. 그저 내가 기억하기 위해, 내 눈보다 다른 것에 의존하는 시간. 그런 시간들이 촘촘히 이어져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가고, 나이를 먹고 아이는 자란다.

2013. 4. 10.

 

날씨는 왜 좋고 지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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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이 있었어. 아기 기저귀에 쓰는 노란고무줄이 있었어. 그걸로 가속페달을 묶어놓은 버스를 상상해봤어? 내가 학교 다닐 때 타고 다니던 마을버스는 그런 버스였어. 그 버스가 기울어질 정도로 아이들이 많이 탔어. 그 버스를 타고 학교를 가던 길에 시비가 붙으면 버스기사 아저씨가 창문을 열고 욕을 했어.

“씨발 내가 너 따위 죽이고 깜빵 한 번 더 가면 돼”

똑같은 교복을 입고 깔깔대던 열일곱 열여덟 아이들이 순식간에 얼어붙는 순간이었지. 그 아이들은 그런 아이들이었어. 순수했고 착했어. 순조롭게 살아갈 수 있는 아이들이었고, 청천벽력같은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안정된 성품의 부모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다수였어. 모험심이 많거나, 책임감이 적은, 바람같은 사람들과 가족을 이루고 사는 것보다 그 반대편이 사는 데는 훨씬 수월했겠지. 몰아치는 폭풍을 헤치고 나갈 에너지를 잘 모아두었다가 자기를 가꾸는 데 쓸 수 있거든.

바다에 배가 가는데, 자꾸 폭풍이 몰아치면 무슨 기운으로 고기를 잡겠어. 근데, 날씨가 계속 좋으면.. 고기도 잡을 수 있고, 하늘도 볼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 할 수도 있거든. 폭풍만 만나면서 살면, 그런 여유는 없지. 하루 하루 버티고 견디는 게 목숨이 달린 일이니까.

그래서 가정 환경이 안정적이어야 공부를 잘한다고 말하기도 하는거야. 맨날 집에 뭐가 박살나는데 뭔 정신으로 책을 들여다보나. 그런 집구석에서 아이들은 하루하루 숨죽이며 버티는 거거든. 그 와중에 공부를 하는 애들은, 유별난 독종이라고들 하는데, 뭐 꼭 그게 독종이라 그러겠어? 그건 그냥 그 아이가 버티는 방법인데 사회에서 좀 좋아하는 방법을 고른 것 뿐이잖아. 책에다 코 박고 있으면 집중이 잘 되는 뇌를 가지고 태어났나보지. 그게 뭐 꼭 훌륭하다고 말하긴 어려운 거 아니겠냐고.

그렇게 폭풍이 쉴 새 없이 불던 날이 있었어. 이번엔 정말 큰 건이 터진거야. 그 때 내가 열일곱살이었는데. 와 정말 살다 살다 결국 이런 일도 터지는구나. 싶더라고. 욕이 절로 나와. 씨발 이게 뭐지. 내가 왜 이러고 살아야 되지? 내가 뭘 잘못 했는데? 난 하라는대로 다 하고 살았잖아. 내가 학교에서 하지 말라는 짓을 했냐, 집에서 하지 말라는 짓을 했냐. 열일곱의 나는.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피고 지각도 안하고 공부도 열심히 했어. 게다가 교회도 열심히 다니고 성경을 세 번이나 읽었다고. 그 때 욥의 심정이 뭔가 생각했어. 와 정말 좆같겠구나. 씨발.

내 생일이 8월 말인데.

그 날 학교에 자퇴서를 쓰러 갔지. 담임선생님이 무슨 일인지 다 알기 때문에, 그리고 나는 학교에서 인정받는 아이였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내년에 만나자고 힘내라고 다 격려를 해줬어. 그리고 집에 오는 길에 그 마을버스를 탔어. 나는 사복을 입고 있었지. 나는 학교에 소속된 아이가 아니니까. 사복을 입고 싶었어. 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아니라고 완강하게 외치고 싶었던 거 같애. 내가 이만저만한 그지같은 일이 생겨서 학교에 못 다니게 됬다구요!! 라고 나를 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고함을 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원망을 퍼붓고 싶어서. 내가 뭘 잘못했냐고! 난 아무것도 잘 못 한 게 없는데! 내가 왜 자퇴서를 써야 되냐고!!

그건 지금 생각해도 충분히 억울할 만한 일이거든.

그래 그 마을버스를 타고 오는데.. 버스 안에 아이들이 하나도 없는거야. 자리가 비었더라고. 애들은 다 학교에 있었거든. 게다가 내 생일인데 말야. 날씨가 겁나게 좋은거야. 진짜 허벌나게 좋더라고. 햇빛이 막 미치게 내려쬐고 말야. 8월 말, 내 생일 즈음엔 주로 태풍이 오지. 그게 참 이 엿같은 팔자를 반영한다고 생각하던 나이였는데. 와 .. 날씨는 왜 좋고 지랄. 약올려?

날씨 좋으면 놀러가고 싶잖아. 사람들의 표정도 좋잖아. 길에 웃는 사람들도 많잖아. 나는 미치겠는데 말야. 내 세상은 무너졌는데 햇빛이 짱짱해. 태양이 비웃는 거 같은거지.

그건 니 문제야. 나는 멀쩡하단다.

슬펐지. 그래서 그 날 어디 쪼그리고 앉아서 뭘 적었을 거야.

내 세상이 무너지는 날, 누군가는 빨래를 널고 세탁소에 옷을 맡긴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누군가가 태어나고 누군가가 죽기도 한다. 일을 하고 돈을 벌기 위해 사람들은 회사에 가고 시장에 가서 고등어를 사겠지. 수박을 사오는 누군가의 엄마도 있을 것이고 아이스크림을 베어먹으며 골목을 뛰어노는 아이들도 있다. 내 세상은 무너졌는데, 그건 내 세상만 무너진 일이었다.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간다. 비록 내가 사라진다 해도, 세상은 아무 일 없이 돌아갈 거다.

뭐 대충 그런 내용이었어..

비참하지. 나 없이도 조직이나, 세상이나, 내가 속했던 사회가 돌아간다는 게 진짜 짜증나잖아. 그게 얼마나 슬퍼. 나 없으면 죽을 거 같은 사람이 있어야 하잖아. 근데 그게 아니더라고. 인간은 그냥 그렇게 먼지같은 존재야. 근데 그걸 깨달았는데도, 그 때 한 생각은. 아 나는 정말 무용지물. 여기서 끝났거든.

근데..나는 무용지물이다 – 에서 모든 인간은 다 그렇지만 그래도, 무용지물은 아니다. 이런 고차원적인 생각으로 발전하는데.. 20년이 걸린 거 같애. 뭘 억지로 해서 티비에 나오는 인물이 되고 싶다는 그 경박한 욕심을 버리는데 말야. 왜 그렇게 오래 걸린 걸까. 한심한가? 근데 또 그것도 아니거든. 뭐가 한심해. 인간은 원래 다 한심해. 나만 그런 게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다 그래. 더 한심한 인간도 다 잘 살아. 밥 잘 먹고 잘 자고 똥만 잘 싸고 잘 살아.

날씨를 뭐 어떻게 할꺼야.

날씨 좋다고 하늘에 돌 던지면 나빠지나.

아니면 돈이 많아서. 내 기분이 맞는 날씨를 찾아 비행기를 타고 가나? 갔는데 거기 날씨가 바뀌면? 그럼 말짱 꽝이잖아.

기분이 나빠. 날씨 좋아서 더 나빠. 날씨가 나빴으면 좋겠어. 비가 주룩주룩 왔으면 좋겠어. 그럼 뭐..기다려야지. 비 오는 날까지. 뭘 어떻게 하겠어. 그리고 오늘은 집에 가서 적는거야.

와..오늘은 정말 좆같은 날이었습니다. 씨발. 오늘을 최악의 개같은 날로 정하면, 내일은 덜 개같겠지요. 하하하. 잠이 오나. 잠이 안 오겠지. 안 오면 뭐 못 자는거지 뭘 어떻게 하나. 꼭 자야되나. 하루 안 잔다고 죽지 않아. 그냥 내일 좀 피곤할 뿐이야. 세상에 .. 그렇게 큰 일은 없어. 다 어떻게 보면 그냥 먼지같은 일이야. 할매들한테 어떻게 사셨나요? 물어봐봐. 그 새털같이 많은, 개털보다 많은 날들이 한 줄이 되거든. 그 해에는 애를 낳았지. 2년이 넘어가고 그 해에는 둘째를 낳았지. 아마 큰 애가 아팠던가.. 안 죽었으면 다 별 일 아닌거가 되는 거 같애. 사람은 그렇게 쉽게 죽지도 않잖아. 안 죽으면 됐지. 뭐. 살아있으면 언젠가 억울하다고 말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 혹시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살려두는 게 나을 거 같애. 언젠가 붙잡고 말해줘야지. 너 때매 뒈져버리는 줄 알았어. 알고는 있냐? 라고.

2013. 3. 15.

 

근데 그 때 그렇게 억울했는데 말야.

그 때 내가 꼭 그렇게 억울해하지 않을 수도 있는 방법이 있었다. 그게 뭔지 알아? 자퇴서를 안 쓰는거야. 버티고 학교에 다닐 수 있었거든. 근데 나는 내가 더 비참해지는 방법을 택한거지. 누가 알아줄까봐. 그냥 훈장 하나 달고 싶었던거야. 그래서 훈장을 달았지. 트라우마. 내 트라우마. 내가 골라서 내 가슴속에 새긴거야. 그냥 학교 버티고 다녔으면.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의 위로를 받으면서 혹시 알아. 학교에서 장학금을 줬을 수도 있어. 그 일은 생각보다 무척 금방 해결됬거든.

그렇다고 해서 그 때 왜 자퇴서를 썼나.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아. 그냥 내가 그런 인간이구나. 깨달은 걸로 만족이야. 어쨌거나 쉬는 동안 공부를 좀 해서 성적을 올리고 다음 해에 당당히 재입학을 했고 학교도 잘 다녔으니까. 그게 막 가슴아파할 일은 아닌거 같애. 내가 그냥.. 모르는 길이 있으면 일단 가봐야 직성이 풀리는. 지랄같은 성격때문이겠지 뭐. 내 트라우마, 내 상처ㅡ 그런 거 말야. 뭐든지, 일단 외부에서 어떤 자극이 왔을 때, 결국 어느 방의 문을 여는가는. 내가 선택하는 거더라고. 등 떠밀려 들어갔어도, 나올라면 나오는거지 뭐. 올드보이의 최민식이 아닌 이상.

무거운 시간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괴로운 마음을 안다. 
그건 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하는 말이었다. 
그래서 죽음을 체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 헤매는 것도 안다.
죽음을 통해 뭔가 다른 것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것도 안다. 
죽고 싶다라는 말은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내 세상을 바꾸고 싶다. 라는 절절한 호소였다는 것도 
아주 뒤늦게 알았다. 
무거운 시간들이 흘러간다. 
눈이 녹아가고 있는데 봄이 와도 화려하지 못할까 두렵다.
지리멸렬하다는 단어가 가슴에 맺힌다.
인연도 사랑도 모두가 업보다
지은 것이 많아 풀어야 할 것이 많다
벌을 받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사는 모습들이 애당초 이런 것이라는 것
그저 조금 더 쉽게 가고 싶어서 
울고 불고 안달했다는 것을
이제 안다
그저 걸으면 될 일이다
해는 뜨고 달이 진다
내가 걷는 동안 
내가 엎드려 쉬는 동안
시간은 가고 아이들을 자란다
겨울나무는 소리없이 자라고
봄나무는 요란하게 노래할 뿐
그저 걸으면 될 일이다
아무 것도 기대하지 말고 
묵묵히 걸으면 될 일이다
때로는 고개를 숙이고 
때로는 고개를 쳐들고
그 날 그 날 
그저, 가야 할 곳을 잊지 말고 
걸으면 될 일이다 
2012. 2. 14. 

이틀

이틀이 지났다.
점과 점이 이어져 선이 되듯
시간이 이어져 하루가 되는데,
모든 것이 뚝.뚝. 끊겨 있다.

자고 일어나면 꿈이었나
의심하는 순간 이미 알고 있다
꿈이길 바라는 마음을

똑똑
노크한다

부른다
엄마 – 라고.

전화기를 본다

없다 아무도

아무 것도 남지 않았고
보안경비를 건다

밤은 가고
나는 잔다
너도 잘 것이다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밤.

나는 안다

그 어딘가에
헤메는 우리의 두 손과
더듬는 우리의 두 발을

머쓱한 그 자리의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의 젖은 물들.

2012. 2. 10.

ER

여기는 모두가 살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다.
하루라도, 한 시간이라도, 더 붙잡기 위해, 공포에 빠지지 않기 위해 매달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 위해 오는 곳이다.

살기 위해 오는 사람들 가운데
죽기를 원했다가 다시 살기를 원해 오는 생명이 있다.

오늘을 넘기지 못할 것 같은 노인이 끊임없이 말하기 위해 노력한다.
언제나 지나간 것은 미련스럽고
딱 한 번만이라고 말한 순간은 이미
늦은 때이다.

주춤하고 서 있는 골목에서 아무 일 없다는 듯 휘파람 불며 걷고 싶다.
너도 그러길 바란다.

2012. 2. 7.

목욕탕 단상

1.

오랜만에 목욕탕에 갔다.
체질상 당분간 온몸을 담그는 탕목욕이나 사우나를 피하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래도 나는 물에 몸을 푹 담그거나 뜨거운 찜질방에서 땀을 쭉쭉 빼는 걸 좋아한다.
하루키의 잡문집을 들고 제일 조용한 찜질방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
어디가 막혔는지 땀이 잘 나지 않았다.
몇 몇 사람들이 들어왔다가 다시 나갔다.

60℃의 방에서 중년남녀가 다리를 베고 누워 다정한 말을 속삭인다.
어디를 놀러갈까 이야기를 한다.
정상적 부부관계로 도저히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약간 씁쓸하다.
부부가 된 지 10년이 된 사람들이 저리 다정한 경우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부가 일종의 “경제공동체”의 속성을 더 많이 띄고 있다는 얘기다.

2.

찜질방에서 여탕에서 이어지는 통로에 여성 전용 수면방이 있다.
네일아트를 하는 자리가 있고 불가마가 있다.
여기까지는 너무 뜨거워서 들어가지 못하는데 많은 중년여성들이 불가마를 좋아하는 듯 하다.
불가마에서 막바로 나왔는가 웃통을 벗고 앉아 있는 여자들이 많다.
여자 목욕탕에서는 속옷을 파는 곳도 더러 있는데 이 공간에도 그런 곳이 있다.
속옷판매대의 윗쪽에 전기공사가 필요한 모양인지
아저씨 하나가 입구에서 뻘쭘거리다 전기공사를 하러 들어간다.
여자들은 등을 돌렸으나 옷을 입진 않았다.
그 모습이 낯설었다.
여성성 따위, 이제 모두 개나 줘버린 모습인가.
추하거나 아름답거나 하는 판단을 하진 못했다.
그저 자연스럽게, 그런 것들이,
성욕을 일으키는 가슴이 아니라 생명을 낳아 기른 어미의 젖이 된 늙어가는 여자들이
쳐진 젖가슴을 내놓고 땀을 식히고 있다.
이 곳은 마치 연옥의 어느 한 복도처럼.

3.

목욕탕으로 내려가 작은 노천탕에 앉아 쉼호흡을 한다.
보호자 명목으로 최근 병원을 하도 다녀서인가..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치고 피곤하다.
심장이 계속 벌렁거려 전신을 담그지 않는다.
복식호흡만 잘해도 몸이 많이 좋아진대..하던 말을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3.

벗은 몸의 사람들을 가만히 본다.
사람의 몸을 봐도 저 사람은 어딘가가 아프구나, 혹은 아팠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매우 건강하고
어떤 사람은 운동을 참 열심히 하는구나 싶다.
잘 발달된 정강이를 가진 여자,
눈썹과 아이라인에 문신을 한 여자,
가슴이 납작한 여자
출산후 군살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여자
보기에도 싱그러운 어린 여자
그리고

모두가 벌거벗어 똑같이 평등한 가운데서도
멋스럽게 커다란 집게핀으로 머리를 올리고
금색의 천을 허리에 두르고 걷고 있는 날렵한 40대 후반의 여자가 있다.
다 벗었어도 멋을 부리는 사람이 있구나.
저런 능력은,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 설령 본인의 컴플렉스의 발현이거나
삶의 즐거움이거나 그 어떤 것이라 하더라도, 그 어떤 가치라 하더라도.
그저 그럴 뿐이다.

4.

세신관리사, 혹은 목욕관리사라고 이제는 이름이 붙은 사람들이 있다.
한 때 우리는 그녀들을 때밀이아줌마라고 불렀다.
때밀이아줌마들은 검은 레이스로 된 속옷을 입는다.
구분을 하기 위해서다.
하루종일 젖은 몸, 축축한 곳에서, 아무리 레이스로 되었다 하더라도, 속옷을 입고 있는다는 건 에지간히 익숙해지기 전엔 곤욕스러운 일일 것이다.

점심시간이 다가온다.

가끔, 아니 가끔보다 조금 더 자주,
나는 전문가에게 내 몸을 맡긴다.
내 엄마도 이렇게 나를 샅샅이 씻겨주진 않았지.
그렇다고 무슨 모성따위를 기대하는 건 아니다.
그저 그녀들의 노동이, 매우 숭고하다는 생각을 한다.
돈과 노동을 교환하는 것이지만, 이다지도 쑥쓰럽고 부끄러운 일을 거침없이 해내는 노동이 세상에 또 어디에 있는가 늘 생각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내 삶이 너무 느슨해져 있기 때문인가.
아니, 늘 분주하나, 내 스스로의 성취감을 이룰 일들을 하지 않고 있어서인가.
그건 내가 누군가를 돌보는 보호자로서의 삶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밖에 없는, 환경때문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하려고 전투적으로 뛰어드는 내 열정이 부족해서인가.

문제는 내가 체력을 되찾지 못해서인가
혹은 내가 정신적으로 해이해져서인가.

얼마나 많이 버려야 하는가,
벗겨져 나가는 묵은 시커먼 때들처럼.
얼마나 많이 새로워져야 하는가
얼마나 다시 치열해져야 하는가.

과연 나는 오늘 이따위로 살아도 되는건가.

삶은, 치열해야 한다고 늘 생각해왔는데
왜 지금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팔다리가 잘려 항아리에 담기는 형벌을 받은 것처럼
나는 이렇게 무기력하게 시간에 쫒기고 길에 쫒기고 정신없이 휘몰아치는가.

생로병사의 한 가운데서
그 모든 것들을 목도해 내는 일은 쉽지 않다.

인정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다시 걸어야 할 길이 어디인지도
아직은 어렴풋할 뿐이다.

5.

갓 돌지난 어린아기가 탕속을 아장아장 걸으며 좋아한다.
한 손엔 뽀로로를 한 손엔 크롱인형을 들고 제 엄마에게 걸어갔다가
반대편으로 걸어갔다가 그저 그 걸음마 하나 하나가 즐겁다고 까르르 웃는다.

의도치 않게 눈물이 흘러 고개를 돌리고 안경을 벗는다.

나의 생명력이 어디선가 줄줄 새고 있는 것 같아
그래서 처연하다.

나는 아직 서른일곱밖에 안되었는데
너무 많이 걸어왔고
너무 많은 걸 알아버렸다.

그러면서도 내가 누군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래서 슬프고 고달프다.

2011. 11. 28.

그 어느 꿈속에서

낯선나라에서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다 고현정을 만났다.
얼큰하게 취한 그녀와 낯선 이국의 거리를 헤매다 그녀가 나에게 전화번호가 적힌 인쇄된 명함을 주었다.
아마 중국이나 대만 어디쯤..
음주후였으나 운전을 해서 어딘가로 가야만 했다.
한 잔 더 할까 생각이 든 나는 고현정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ARS팬서비스였다.
그럼 그렇지… 나는 마음을 접었다.
붉은 색 나의 차에 홍콩이나 상해에 있는 연립주택 지하, 남의 집 철문옆에 묶여있는 나의 자전거를 풀어 차에 실었다. 그 건물의 1층에 묶여있던 나의 개를 풀었다. 운전을 하려는데 네이버에 다니는 후배가 남편과 나타나 술을 먹었으니 운전을 대신해주겠다 했다. 후배는 어린아이를 안고 있었고 갑자기 나에게도 강보에 싸인 어린아이가 생겼다. 아이를 뒷좌석에 앉히고 후배와 내가 뒷좌석에 비좁게 앉았다. 주인을 잃은 듯 귀를 붙이고 떨던 개를 불러 트렁크에 넣었다.
후배의 신랑이 운전을 시작했다.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그 집이, 지금 나의 집인지, 엄마의 집인지, 우리의 나라인지 알 수 없었다.

FTA, 조약 날치기, 포털의 조작, 삼성.
오직 나만의 것들을 지키려던 혈혈단신.
그런 것들이 반영되었다.
깨고 나니 밤 12시 28분이었다.

무엇을 하였는가

세종 이도가 소이에게 말했다
그러는 너는 네 인생에 대해서 무엇을 하였느냐
네가 이따우로 살고 있는 게 모두 내 탓이냐

나도 누군가에게 그랬다.
너 때문이라고
당신 때문이라고

그러면서 묻는다
나는 내 인생에 얼마나 많은 것을 해주었는가.

생각해보면,
참 많은 것을 하였다.
참으로 많은 것을 시도하였고 좌절하였고 노력하였다.
진실로 그러하다.

그런데 나는 지금
또 다시 원점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원망하는
그 원점이다.

겨울이다

내가 한 번 일어섰던 그 겨울
다시 붙잡고 일어서야 할 겨울이 온다.

2011. 11. 17.

가을

가을은 이렇게 가고.
은행잎은 후두둑 떨어지고
태풍은 오지 않았으나
마음은 처연하고
세월은 나를 외면하고 떠나가고
아이들은 모른척 하고 자라나고

소리없이 사라지는 모든 것을
미련없이 보내줘야 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2011. 1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