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내 어리석은 낱말들을 모아 미련한 문장 하나를 만들어 뽑혀나갈 나무 뿌리 아래에 숨겨두고 싶었다 부끄러운 연필을 부러뜨리고 운동화 끈을 꼭 묶고 달릴 수 있다면 사다리를 타고 척척 달에 갈 수 있을까 흩어질 꽃잎을 모아 주인 잃은 의자 위에 뿌리면 오늘이 조금 짧아질까 해가 너무 길다고 네가 말했다 170319 경기도 이천

루의 산책 

성곽이 있어 다행이지 죽은 자들의 숨결도 모두 갈아엎은 천박한 땅위에 발 딛지 못하고 간신히 폴짝 어둔 밤이라 망정이지 존재는 헛되어서 제 이름을 가지니   눈물을 흘리지 마 산이 무너질테니 물이 차면 숨이 막히니 메마른 성곽이라 다행이지 발 딛지 못하고 다시 폴짝 2016. 1. 18.

빈 집

빈 집     아이들이 물 마시러 들락거리는 이 집은 어쩌면 우물   두레박 깊이 내려 시원한 물 한 모금 아니면 이 집은 펌프가 달린 수돗가 마중물 부어대면 쏴아하고 내려오는 녹맛이 나던 지하수   벌컥 벌컥 마셔도 아무 일 없이 하루가 잘만 가던 시원한 여름날   꼴락꼴락 늙은 개가 물 마시는 소리 와르르르 내 입에“빈 집” 계속 읽기

바다바람

입추가 지나면 바닷물이 찹다는데 주문진 아들바위 다리뻗은 두 연인 회 한접시에 소주 한 병 깻잎에 싸먹는 달큰한 생물의 삶 살아 펄떡이던 삶을 작살내고 오독오독 씹으며 오가는 웃음 맞잡은 두 손가득 이유있는 진땀들 바다멀리 옹졸한 하늘 아래 배롱나무 꽃 진다고 애업고 우는 미친 여편네 차디찬 바닷물이 나는 싫어라 아무 것도 보기 싫다며 얼굴을 파묻는데 어디서 날아오는“바다바람” 계속 읽기

이성복 새 시집 – 래여애반다라

빛에게  빛이 안 왔으면 좋았을 텐데 빛은 왔어  균열이 드러났고 균열 속에서 빛은 괴로워했어 저로 인해 드러난 상처가  싫었던 거지 빛은 썩고 농한 것들만  찾아 다녔어 아무도 빛을 묶어둘 수 없고 아무도 그 몸부림 잠재울 수 없었어 지쳐 허기진 빛은  울다 잠든 것들의 눈에 침을 박고, 고여 있던 눈물을 빨아 먹었어 누구라도 대신해 울고 싶었던“이성복 새 시집 – 래여애반다라” 계속 읽기

시골 큰집 – 신경림

이제 나는 시골 큰집이 싫어졌다.장에 간 큰아버지는 좀체로 돌아오지 않고감도 다 떨어진 감나무에는어둡도록 가마귀가 날아와 운다.대학을 나온 사촌형은 이 세상이 모두싫어졌다 한다. 친구들에게서 온편지를 뒤적이다 훌쩍 뛰쳐나가면나는 안다 형은 또 마작으로밤을 새우려는 게다. 닭장에는지난봄에 팔아 없앤 닭 그 털만이 널려을씨년스러운데 큰엄마는또 큰형이 그리워지는 걸까. 그의공부방이던 건넌방을 치우다가벽에 박힌 그의 좌우명을 보고 운다.우리는 가난하나 외롭지 않고,“시골 큰집 – 신경림” 계속 읽기

겨울밤- 신경림

우리는 협동조합 방앗간 뒷방에 모여묵내기 화투를 치고내일은 장날, 장꾼들은 왁자지껄주막집 뜰에서 눈을 턴다.들과 산은 온통 새하얗구나.눈은펑펑 쏟아지는데쌀값 비료값 얘기가 나오고선생이 된 면장 딸 얘기가 나오고,서울로 식모살이 간 분이는아기를 뱄다더라. 어떡헐거나.술에라도 취해볼거나. 술집 색시싸구려 분 냄새라도 맡아볼거나.우리의 슬픔을 아는 것은 우리뿐.올해에는 닭이라도 쳐볼거나.겨울밤은 길어 묵을 먹고.술을 마시고 물세 시비를 하고색시 젓갈 장단에 유행가를 부르고이발소집 신랑을 다루러보리밭을“겨울밤- 신경림”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