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이 뇌전증을 앓고 있는 백씨는, 오전 내내 터진 수도를 고쳤다.
집주인에게 연락을 해봤자 안 좋은 소리를 해댈게 뻔했다.
관리를 잘 못해서 그렇다느니, 날씨가 이렇게 추우면 알아서 수도관을 보온해야지 뭘 했느냐고 말할 사람이다.
날이 추워지자 집안은 온통 한기다. 다 큰 아이들의 옷은 무겁고 두껍다. 한 겨울에 쪼그려 앉아 다 장성한 아이들의 빨래를 하고 있으면 어떻게든 생각을 끊어버려야 한다. 생각을 하면 안된다. 아파트에 가면 얼마나 좋을까. 사시사철 뜨거운 물이 나온다던데. 수도세도 훨씬 싸게 나온다는데.
미리 미리 준비를 했어야 한다던데 그 긴 세월 빚을 갚느랴고 아무 것도 준비하지 못했다.
2월에 졸업을 하는 작은 아이는 복지카드가 있으면 장애인작업장에라도 취업을 할 수 있다. 약만 꾸준히 먹으면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작은 아이는 그래도 큰 아들보다 나으니까.
엊그제는 아랫집 사는 미친년이 또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자기 털신을 아들이 훔쳐갔다고 지랄을 해댔다. 이사온 지 몇 달 된 저 미친년은 억센 부산사투리를 쓰며 뻑하면 우리집 애들이 자기 물건을 훔쳐갔다고 지랄이다. 대문 앞에 새 밥이고 고양이 먹이를 가져다 놔서 안 그대로 지저분한 동네를 더 엉망진창을 만든다. 이 동네 십년을 살면서 누구하고도 깊게 말 섞어 본 적이 없는데 저 여자 때문에 모든 평화가 깨졌다.
“다 늙어빠진 여자 털신을 젊은 아이가 왜 훔쳐가는데요?” 백씨는 눈을 부라리며 으르렁댔지만 미친년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내가 아줌마 털신 신고 다니는 꼴을 한 번도 못 봤는데 무슨 털신을 훔쳐갔다고 합니까? 아줌마 맨날 그 분홍색 목욕탕 쓰레빠 신고 다니는 거 동네 사람들이 다 알아요!”
미친년은 보라색 덧신에 분홍 목욕탕 쓰레빠를 신고 있었다.
“그럼 누가 가져갔는데! 내 털신을! 느그 아들 말고 여기 내꺼 훔쳐갈 사람이 또 있나! 직업도 없이 빈둥거리고 있으니 남의 물건이나 탐내는 거 아이가!!!”
미친년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경찰이 왔다. 한 두번이 아니다. 순경들이 아랫집 여자가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걸 보고 한숨을 쉬더니 여자를 데리고 갔다.
경찰서에 도착한 홍씨는 윗집 아들이 털신도 훔쳐가고, 전화기도 훔쳐갔다고 다 털어놓았다.
삐쩍 말라서 눈을 까리하게 뜨는 게 영 맘에 들지 않는다.
“저 위쪽에 사는 양희자는 내 돈을 훔쳐갔어요.”
홍 씨는 경찰에게 떠들어댔다. 경찰이 볼펜을 들고 뭔가를 끄적끄적 적었다.
“그래서 잡아줄껍니꺼?”
“뭘요?”
“그래서 내꺼 찾아줄껍니꺼?”
“아주머니. 네 일단 알겠는데요. 증거가 있어야 이걸 수사를 할 수 있거든요. 그 앞에 방법 CCTV가 있으니까 저희가 좀 찾아는 볼께요. 이제 집에 돌아가셔서 쉬세요.”
순경이 홍 씨에게 비타민음료수를 까줬다.
“내가 아가 없어요. 내가 여태까지 아새끼 하나를 못 낳아봤다 아임니꺼. 그래서 저렇게 나를 무시하는 게라니까요.”
“아이고 그럴 리가 있나요. 아무튼 아주머니 날씨도 추운데 들어가셔도 돼요. 저희가 털신 찾게 되면 알려드릴께요.”
“꼭입니더. 내 털신 찾으면 알려주이쏘.”
홍 씨는 파출소에서 나와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갔다.
며칠 전 복지관 프로그램에서 만났던 상주여자가 길 한 복판에 멍하니 서 있었다.
“행님. 여서 뭐합니꺼?”
말을 건 홍 씨는 입을 닫자 마자 아차 싶었다. 괜히 말을 걸었다. 엄한 소리나 해 댈텐데 쓸데없는 짓을 했다.
“아, 저를 아십니꺼?”
상주 여자가 홍 씨를 첨본다는 듯이 대답했다.
홍 씨는 번쩍 머리가 시원해졌다.
“아입니더. 사람을 잘못봤심더. 미안합니데이.”
“아 그란데 내가 여기 복지관을 가야 하는데 입구가 어딘지 혹시 아시니껴?”
“여가 복지관 아니라요? 여 계단 올라가이소마.”
홍 씨는 손으로 복지관 입구를 가르쳐줬다.
완전히 미쳐가는구마. 홍 씨는 생각했다.
갈수록 태산이구만. 제정신이 아닌 거 같더니 나날이 심해지는 것 같다.
한 늙은 남자가 홍씨를 가만히 봤다. 홍 씨는 기분이 나빠져서 집 앞에 침을 퉤 뱉고 초록색 대문을 쾅 닫았다.
별 시덥잖은 노인네들이 다 지랄이고 지랄이. 홍 씨는 목에 건 수건을 들고 일바지의 아랫단을 툭툭 털었다.
홍 씨를 바라보던 노인은 복지관으로 들어갔다. 로비에 상주 여자가 서 있었다.
노인이 인사를 했는데도 상주 여자는 가만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노인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갔다. 반찬도시락 서비스를 다시 받으라고 복지사가 전화를 해왔었다.
담당 복지사는 오늘도 눈을 초승달처럼 꼬리를 말고 웃었다.
“저기, 선생님.”
“네 아버님.”
“제가 지금 오다가 그, 우리 프로그램 같이 했던 상주 아주머니하고, 부산 아주머니를 봤는데 말입니다.”
“네.”
“근데 저를 못 알아보시는 거 같더라고요.”
“아……. 가끔 그러세요.”
“하이고 이런.”
“네 좀.. 최근들어서 잦아지시는 거 같아요. 방금 보셨어요?”
“네. 부산아주머니는 전혀 못알아보는 거 같고. 상주 아주머니는 로비에 아주 이상하게 서 있던데.. “
“저희도 걱정이네요.”
신 노인은 복지사에게 주소와 전화번호가 적힌 서류를 다시 확인해주고 피아노연습실로 향했다.
젊은 사람들이, 벌써부터 정신줄을 놓기 시작한다니. 입이 썼다.
복도에서 식당에서 자원봉사 하는 김 씨가 아는 체를 했다.
“어르신 오늘 동지라 팥죽 했어요. 이따 꼭 식사하고 가세요.”
교수 부인이라고 했던가. 그래서 인지 참으로 사람이 기품있고 차분하다.
“네 여사님 고맙습니다.” 신 노인은 허리를 숙여 깊이 인사하고 피아노 교실로 들어갔다.
신 노인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선 김 씨는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문이 열리자 휠체어를 탄 청년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보호자도 없이 혼자 휠체어를 능숙하게 밀고 사무실로 향했다. 김 씨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서 있었다.
병원에 누워 있는 둘째집 조카가 생각났다.
여름에 교회 수련회에 갔다가 수영장에서 머리를 다쳐 지금 병원에 누워 있은지 6개월째다. 목 아래로 아무 것도 움직이지 못하게 된 스물 네 살의 조카는, 제 누나가 휴직계를 내고 병간호를 하고 있다. 조카가 물리치료를 받는 모습을 보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아 그 이후로 병원에 한 번도 못 간게 석달째다. 우리 조카도 언젠가 일어나서 휠체어라도 탈 수 있게 될까. 그래도 막내 동생처럼 어느 날 갑자기 죽어버린 건 아니니 다행인걸까. 김 씨는 손에 쥐고 있던 고무장갑을 으스러지라 꽉 쥐었다.
조카네 강아지는 잘 자라고 있을까. 큰 조카가 맨날 병원에 있으면 강아지는, 혼자 집에 있게 되는걸까. 1년동안 해외를 나간다 해서 잠시 키워줬던 그 강아지라도 다시 데려올까. 강아지 이름은 메리다. 촌스럽기도 하지. 어쩌면 요즘애들인데 개 이름을 그리 촌스럽게 지었을까. 메리를 몇달이라도 맡아 키우면, 그러면 조카의 병실에 갈 수 있을까.
같이 식당 봉사를 하는 이 씨 아주머니는 마흔이 넘은 아들이 뇌병변이다. 네 살에 다쳐 마흔 다섯이 되었다고 했다. 그래도 우리 조카는 말도 하고 생각도 하고 눈물도 흘릴 줄 아니까 다행인걸까. 김 씨는 서둘러 식당으로 갔다. 몸을 움직여야 해. 자꾸 생각을 하면 안돼.
식당에서 팥을 삶는 냄새가 고소하게 났다.
– 지난 크리스마스에 썼던 글을 여기 안 올려서, 이제서야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