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오산문화재단 – 생애사쓰기 강좌 2기 운영

2022년 오산문화재단에서 운영한 경기예술학교 생애사쓰기 강좌를 마치고 출판기념회를 마쳤습니다.

오산문화재단은 경기예술학교 시민예술학교의 일환으로 생애사쓰기 2기 강좌를 진행했습니다. 전반부는 특수분장으로 돌아보는 나의 과거-현재-미래를 진행한 뒤, 생애사쓰기를 이어갔습니다. 글을 쓰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렵고 두려운 일인데 특수분장이 흥미를 돋우며 참가자들의 욕구를 올릴 수 있었습니다. 좋은 기획으로 특별하게 준비한 오산문화재단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진솔한 생애사쓰기로 삶을 나눠준 참여시민들 덕분에 기획자와 강사 모두 보람을 느꼈습니다. 여러분의 화양연화는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https://ggarte.ggcf.kr/?p=89&tab=citizen&page=1&viewMode=view&reqIdx=202212051341420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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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수리장애인종합복지관 – 우리들의 여덟빛깔 무지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동안 중단했던 수리장애인종합복지관의 이용자 생애사쓰기 프로그램을 재개했습니다. 2022년에는 직업훈련중인 청년발달장애인들의 생애사를 함께 쓰고 원고를 묶어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가득한 세상에서 문화공동체 히응과 수리장애인종합복지관이 함께 만드는 이 과정이, 장애란 무엇인가 다시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도서는 배포하지 않으니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수리장애인종합복지관이나 문화공동체 히응으로 연락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강좌]오산문화재단 / 경기시민예술학교 생애사쓰기 2기 모집

오산문화재단과 함께 하는 생애사쓰기

2기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특수분장& 생애사 쓰기로 만나는 나의 미래

2022-09-02 ~ 2022-12-02

매주 금요일 10:00 ~ 13:00

장소기타 (다목적실)

관람연령19세 이상 경기도민

■ 2기 특수분장 &생애사쓰기로 만나는 나의 미래

■ 접수기간 : 선착순 접수(신청자가 많을 시 오산문화재단 중복프로그램 신청자는 신청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 접수방법 : 오산문화재단 홈페이지에서 신청서를 다운받아(아래URL참조) E-mail로 접수

■ chmuninn@hanmail.net

문의처│031-379-9983

주최│경기도/경기문화재단

주관│(재)오산문화재단

후원│교육도시오산

사랑해도 될까요

#발달장애청년생애사쓰기

♥ 사랑해도 될까요 ♥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쓸까? 하고 물었다. 이미 주제계획은 다 되어 있는 상태지만, 그래도 의견을 자꾸 묻고 듣는 게 좋겠다는 생각때문이다.

희준 씨는 “곧 추석이니 추석이야기 쓰는 게 좋겠다.”고 대답했다.

오늘은 가족 이야기를 쓸 생각이었다. 가족은 가까이 접하는 사람이라 스토리가 많을 것이고, 참가자들이 길게 쓸 수 있는 소재일테니까 교육과정의 뒤쪽에 빼놓았다. 발달장애청년들은 자기 삶에서 이야기를 끌어내는데 시간이 걸리는 편이라, 이야기거리가 아주 많아야 다섯 개 정도의 문장이라도 만들 수 있다. 장애의 문제도 있겠지만 나는 그보다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비장애인에 비해 현저히 적게 얻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신체장애인보다 발달장애인의 목소리는 더 묵살되기 쉽고, 언제나 ‘하지마, 안돼. 그만. ‘이라는 금지어가 매일 반복된다.

내 가족이 맘에 들 때, 맘에 안 들 때도 써보라고 권했다. 부정적인 감정을 끌어내는 것도 발달장애인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부정적 감정은 누구에게나 스트레스라 불안과 두려움을 자아내기 때문에, 강사와 교감이 잘 형성된 뒤에나 가능하다. 특히나, 어려서부터 발달장애인으로 교육받은 경우는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낯선 사람에게 시간을 갖고 부정적 감정을 내비치는 것에 대해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 수업에 들어가면 보영씨는 휴대폰을 들고 다가와서 나와 포켓몬을 한 마리씩 교환한다. 나는 보영씨와 포켓몬고 친구를 맺었기 때문에 매일 매일 선물을 주고 받는 걸 잊지 않으려고 한다. 보영 씨와 포켓몬을 교환하고 있으면 다영씨는 1층에 내려가 커피를 가져와서 내 어깨를 토닥거려준다. 채은씨는 큰 소리로 인사를 두 번 이상 하고, 슬미는 지난 주에 있었던 일을 줄줄줄 얘기한다. 지은 씨는 나에게 손수 만든 팔찌도 선물해줬다. 홍민 씨는 벌떡 일어나 나에게 경례를 해준다. 다훈 씨는 방학이 지나고 나서야 나에게 목소리를 들려주었고 이제는 대답도 한다. 희준 씨는 사실 발달장애인지 잘 구분이 안 가는 정도라서 항상 가장 성숙하게 나를 응대한다. 이제 부정적인 감정을 건드려봐도 되겠다.

가족 이야기를 써보면서 채은이 헤어진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슬미는 지능이 높은 자폐인인데 직설적인 화법 그대로, 채은이네 이혼했대요. 라고 크게 말했다. 나는 “그렇군요. 선생님도 이혼했어요.”라고 대답했다. 채은과 슬미가 진짜냐고 물었다. “그럼. 재혼도 했지.”라고 대답하고 크게 웃었더니 슬미가 조금 당황했다.

“어때. 괜찮지?”라고 농을 걸었더니 “네. 그럴 수도 있죠.”라고 대답했다. 슬미는 생활에 관해서는 상당히 보수적이다.

나는 채은 씨에게 살짝 물었다. “이제 엄마 아빠 안 싸우니까 좋지 않아요?” 채은 씨는 “네. 맞아요. 안 싸우니까 좋아요.” 라고 대답했다. 채은 씨에게는 “선생님은 선생님 엄마 아빠도 이혼했어요.” 채은 씨가 웃었다.

바리스타 일자리를 옮긴 다훈 씨가 아침 7시부터 출근을 해서 너무 피곤하다고 한다. 바리스타인 다른 청년을 아느냐고 물어보려고 사진첩을 뒤지느라 휴대폰을 열어서 안경을 아래로 내렸더니 채은 씨가 나를 가만히 바라본다.

“선생님 이제 눈이 잘 안보여요. 안경 이렇게 하니까 할머니 같죠?”라고 했더니 채은 씨가 책상을 두들기며 웃었다.

“할머니. 선생님 할머니. 아하하하하하.”

가족이야기를 모두 발표하고 난 뒤에 나는 청년들에게 돌발적으로 물었다.

“결혼하고 싶은 사람 있어요?” 세 명은 결혼하고 싶다 하고 나머지는 아직 생각이 없단다.

슬미씨가 결혼해도 되냐고 물어서 “여러분은 성인이잖아요. 결혼할 수도 있고 연애할 수도 있지 않나?”라고 되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복지사 선생님이 살짝 울적한 표정이 되었다. 안타까운 마음이 말투에 묻어났다. “결혼할 수 있죠. 그럼.. 결혼할 수 있지…” 수업을 도와주는 복지사 선생님은 이들과 또래다. 한 참가자와는 같은 학교를 다니기도 했다. 삶의 경로는 타고난 것에 의해 달라졌다.

채은씨는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고 싶다고 하길래 어떤 사람과 결혼하고 싶냐고 물었다.

“착한 사람.”

결혼하고 싶은 사람, 사귀어보고 싶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보자고 하니 희준 씨는 “5개국어를 하는 키 크고 날씬한 사람”이라고 적었다. 나는 “이런 사람은 너무 바쁘지 않을까?”라고 반문했다. 희준 씨는 같이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대답했다.

다들 이상형에 대해서 대답이 잘 나오지 않아서 나는 칠판에 몇 가지를 적었다.

“나를 보고 웃어주는 사람, 나를 웃게 해주는 사람,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 나를 많이 칭찬하는 사람”

그 옆에는 “나를 울게 하는 사람, 나에게 뭘 자꾸 달라고 하는 사람, 나에게 화를 내는 사람, 나에게 무엇을 고치라고 하는 사람”이라고 적고 여기에는 크게 가위표를 그렸다.

웃어주는 사람, 나를 많이 칭찬하는 사람을 만나면 내가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시간이 별로 없어서 나랑 놀아줄 시간이 없을 지도 모른다고 얘기했다.

슬미 씨는 칠판을 보면서 “저도 남자친구 사귀고 싶은데요. 제가 아직 뚱뚱해서 못 사귀어요.”라고 말했다. 슬미 씨는 전혀 뚱뚱하지 않은데 신체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고, 늘 허리띠를 졸라매서 소화불량이 잦다. 나는 슬미 씨에게 “슬미 씨 그런 사람하고는 헤어져야 해요. 너는 뚱뚱하니까 살 빼고 와. 라고 하면 안녕 ~ 하고 헤어지고, 너 화장 좀 해. 너 머리 좀 길러. 라고 하는 사람하고는 안녕~ 하고 헤어져요. 슬미씨 그대로 예쁘다, 하는 사람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사람이에요.”라고 덧붙였다. 옆에 있던 지은 씨가 “그런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말을 보탰다. 나는 “남자친구를 만날 거면 좋은 사람을 만나아죠.”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수업을 마치고 인사를 하기 전에 슬미 씨가 손을 번쩍 들더니 말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뭐가요?”

“제 언니나 오빠 말고, 저도 결혼할 수 있다고 해주셔서요.”

슬미 씨는 자신이 자폐인이고, 그래서 차별받았고, 자기는 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자기 세계가 뚜렷하지만 사회생활도 가능하다. 기억력이 뛰어나고 학습력도 좋고 의사소통도 잘 되는 편이다. “나는 장애가 심하지 않은데 학교 다닐 때 친구들에게 놀림을 많이 받았다.”라고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

발달장애인의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에도 동의한다. 그러나 사랑이 무엇이고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는 분명히 명확하게 알릴 필요가 있다. 이들이 만나는 사람들의 범위는 한계가 있다. 우리 사회는 발달장애인들을 공동체 구성원으로 잘 받아주지 않고, 발달장애인 공동체에만 묶어둔다. 이들이 어떤 집착이나 착취가 사랑이라고 착각하지 않길 바란다. 청춘들의 연애는 장애인 복지관에서는 어려운 문제다. 가끔 연애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이들도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설레여하며 다시 만나고 싶어하기도 한다. 그 마음을 갖는 것이 잘못은 아니라고 말해주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사랑을 할 때는 나를 괴롭히는 사람을 만나서는 안된다고, 그 정도는 얘기해도 되지 않겠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3년차가 되는 수리장애인종합복지관의 발달장애청년 생애사쓰기 수업은 순항중입니다.

판타지와 현실 사이 – 수리장애인종합복지관 수업일지

우영우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복지관 수업을 가는 날, 오전에 회의가 있어 부랴부랴 점심을 먹고 서둘러 교실로 향했다.

학생들은 항상 먼저 와서 나를 기다린다. 셔틀버스를 타고 오기 때문이다. 이 교실에 모이는 발달장애청년들은 다수가 직업을 가지고 있다. 요양병원이나 학교에서 오전에 근무를 하고 복지관에서 와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오전 내내 커피 내리는 연습을 하다가 온 이도 있다. 장애여부를 떠나 지금의 청년 누구나 취업이 어렵다. 취업을 하더라도 커리어나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곳에 들어가는 일도 쉽지 않다. 이 교실에 있는 청년들도 비슷하다.

교실에 문이 열린 것을 흘낏 보는데 저 안쪽에서 채은 씨가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 나는 안녕하세요! 손을 흔들고 화장실에 먼저 갔다.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슬미 씨를 복도에서 마주쳤다. 슬미 씨는 나를 보고 옷이 예쁘고 가방도 예쁘다고 해줬다. 오늘은 정말 대충 입고 갔는데도 칭찬이 후하다.

교실에 들어서자 다은 씨가 나를 재촉한다. 선생님 커피를 사놨다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왔다고 말이다. 복지관 1층에는 이용자들이 직업훈련도 하고 취업도 하는 카페가 있다. 자폐인들 중 직업훈련이 가능한 사람들만 바리스타가 되거나 제과제빵 기술을 배운다. 우리는 이들을 엘리트라고 부른다. 자폐스펙트럼이라는 말처럼, 다들 다른 성향이 있는데 지적장애를 동반하지 않았거나, 경미한 경우 직업을 가질 수 있다. 글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이들은 선별된 이들이다.

신발을 벗고 교실에 들어가니 홍찬 씨는 엎드려 있다. 홍찬 씨와 정훈 씨는 자폐이고 다른 이들은 지적장애가 있다. 굳이 분류하자면 그렇다. 지적장애의 정도는 모두 다르다. 수업 시작 전까지 잠시 준비하며 인사를 나누는데 엎드려 있던 홍찬 씨가 벌떡 일어나서 차렷 열중쉬어 차렷 선생님께 경례. 하면서 이하나. 선생님. 이라고 내 이름을 기억해줬다. 그리고 나와 눈도 맞췄다. 지난 4회동안 한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는데 오늘은 홍찬 씨가 정말로 내 눈을 보면서 말했다. 자폐인인 학생이 눈을 마주치고 내 이름을 기억해준다는 건 엄청난 일이라 정말 기분이 좋았다.

교실에는 두 명의 복지사 선생님이 항상 같이 들어온다. 보영 씨와 다은 씨는 글씨를 잘 쓰지 못해서 선생님이 도와줘야 하고, 홍찬과 정훈은 스무고개처럼 질문 하나 하나씩 넘어가야 한다. 오늘은 교실안에 있는 친구를 인터뷰하고 소개하는 글을 써보기로 했다. 소통이 잘 되는 짝꿍을 지어주고 서로 질문을 해보라고 했다. 다들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질문했고 좋아하는 만화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포켓몬스터가 압도적이었다. 홍찬 씨가 벼랑위의 포뇨를 좋아한다고 해서 아이패드를 열어 포뇨 노래를 틀며 화면을 보여주었다. 홍찬 씨가 눈을 한 번도 안 떼고 포뇨 영상을 열심히 보며 양 손을 위로 올려 반짝반짝 흔들었다. 정말 기분이 좋아보였다.

정훈 씨는 아무래도 소리에 예민한 것 같아서 수업 중에 음악을 틀 때 조심한다. 아직까지 거슬린다는 표시를 한 적은 없다. 여름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 2악장을 틀어주었는데 정훈 씨는 귀에 손을 댔다가 내려놓기도 해서 그 수위를 가늠할 수 있었다.

보영 씨는 게임에 몰입해 있다. 집에서도 게임을 하기 때문에 심심할 틈이 없다고 했다. 보영 씨가 포켓몬게임을 한다고 해서 혹시 포켓몬고를 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내가 2017년부터 수집한 내 포켓몬고의 포켓몬들을 보여주었다. 보영 씨와 포켓몬고 친구를 맺었다. 나는 친구 맺는 법을 가르쳐 주고 다음 시간에 포켓몬도 교환하자고 했다. 보영 씨가 좋은지 계속해서 소리 내어 웃었다. 복지사 선생님들도 정말 좋아하는 거 같다고 했다.

수영선수인 지영 씨는 포켓몬고를 깔 줄 모른다고 했다. 다음 주에 같이 해보자고 얘기했다.

종열 씨는 갈수록 글쓰기 실력이 늘어간다. 혼자서 척척 써내려가는데 다음 문장에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고 있을 때 힌트를 주면 완성된 문장을 하나씩 만들어낸다. 종열 씨는 요양병원에서 청소일을 한다.

교실 안에 있는 친구 소개를 마치고 지금은 만나지 않는 옛날 친구에 대해서 적어보자고 했더니 종열 씨가 한 친구에 대해서 적었는데 2018년 생애사쓰기에 참가했던 수영 씨 같았다. 나는 종열 씨에게 혹시 시 잘 쓰는 수영 씨를 말하는 건지 물었다. 안경 쓰고. 종열 씨가 맞다고 했다. 수영 씨는 감정이 풍부하고 슬픔이 가득차 있었다. 자주 울었는데 감정기복이 심해 약을 먹었고, 지적장애가 있었지만 모든 글을 운문으로 쓰는 재주가 있었다. 나는 그때 수영씨에게 우리 복지관 최고 시인이라고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럴 때마다 수영 씨는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입을 막고 웃었다.

목소리가 카랑카랑한 채은 씨도 내가 아는 이름을 적었다. 은혜언니가 보고 싶어요. 글씨도 동글동글 예쁘게 잘 쓰는 채은 씨는 정말 귀엽다. 오늘 나는 채은 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채은 씨는 알고 있어요? 본인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채은 씨가 부끄러워하며 크게 웃었다. 나는 채은 씨에게 이 글을 선생님이 다른 곳에 가서 소개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채은 씨 이름은 밝히지 않겠다고 했다. 채은 씨는 좋다고 해줬다.

슬미 씨는 오늘도 학교 다닐 때 자기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했던 친구에 대해서 적었다. 내가 채은 씨에게 글에 대한 동의를 구하는 걸 듣자 슬미 씨가 자기 노트를 가지고 와서 자기 것도 찍어서 소개해달라고 했다. 대신 실명은 빼달라고 했다. 슬미 씨는 맨 아래 “나는 이제 스물 아홉 살이다. 하지만 나이 먹는 것이 싫다!”라고 적었다. 나는 슬미 씨에게 “선생님은 내후년에 오십살 되는데 어떻게 하라고요.” 라고 농담을 걸었다. 슬미 씨가 “그래도 선생님은 정말 동안이십니다.”라고 대답해줬다. 껄껄껄.

정훈 씨는 내가 한 마디 물어볼 때마다 한 마디씩 대답했다. 종열 씨와 직업훈련을 같이 했는데 자기에겐 어려운 축구게임을 종열 씨가 잘 하더라는 기억을 말해줬다.

보영 씨는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해서 “오늘 새 게임친구가 생겼습니다. 친구의 이름은 이하나 선생님입니다.”라고 적어주었다.

쓴 글을 발표하는데 다들 사랑이 듬뿍 담겨있다. 좋아하는 사람, 그리운 사람, 친구에게 사랑한다고들 적었다. 수업이 끝나고 나는 홍찬 씨에게 다시 한 번 인사를 해보자고 부탁했다. 홍찬 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와 눈을 마주치며 차렷, 열중 쉬어, 경례를 했다. 홍찬 씨는 “이하나 선생님”이라고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다음 주에 야외 활동을 나간다는 공지사항을 들으며 나는 교실을 나왔다. 홍찬 씨가 내 이름을 기억해주고, 이름을 불러준 것이 감격스러워서, 오늘의 수업일지를 적는다.

오늘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하는 날이다.

*사진은 채은(가명) 씨에게 허락 받은 채은 씨의 글.

*참가자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안양시의 수리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는 2018년, 2019년에 이어 다시 발달장애청년 생애사쓰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강좌]오산문화재단 경기시민예술학교

오산문화재단에서 주관하는 경기도 지원사업, 경기시민예술학교에 특수분장과 생애사쓰기로 만나는 나의 미래 생애사쓰기 수업을 진행합니다.

본 강좌는 7월부터 8월까지 1기를 진행하고 10월부터 2기를 진행하게 됩니다.

문의는 오산문화재단으로 해주세요.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수리장애인종합복지관 발달장애청년 생애사쓰기 네 번째 시간.

문장을 완성하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간극을 줄이고 더 가깝고 촘촘하게 이야기를 붙여내는 것도 쉽지 않다.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다.

떠오르는 낱말과 낱말 사이을 이어붙이는 일, 그렇게 해서 만든 하나의 문장과 그 다음의 문장을 연결짓는 일.

이미 세 번의 글쓰기 시간을 마쳤다. 학생들은 단어와 단어를 나열하고 그 사이에 조사를 넣거나 서술어로 끝맺으며 짧은 이야기들을 만들었다. 나는 그 사이에 부사를 넣었다. 질문을 다시 던지면 한 줄을 더 쓸 수 있었다.

오늘은 “내가 가장 행복했을 때”와, “내가 가장 슬펐을 때”에 대해서 적어보기로 했다. 수행능력이 높아서 한 시간동안 두 개의 주제로 서너줄짜리의 글을 쓸 수 있다.

행복했을 때를 쓸 때 누구와 함께 있었는지, 눈앞에 뭐가 보였는지, 날씨는 어땠는지, 내 얼굴에 쏟아지는 빛은 어느 정도였는지, 어떤 소리가 들렸는지를 적어보게 했다. 모두들 질문에 답하는 형태로 하나씩 하나씩 글자를 눌러적었다.

행복한 기억을 발표한 뒤 슬펐을 때를 적어보자고 하자 수빈이(가명) 중학교때 자기를 놀렸던 남학생의 이름을 적고 나에게 물었다. 수빈은 지적장애가 있는데 잘 설명하면 하나씩 하나씩 잘 따라오는 학생이다. 운동도 열심히 한다.

“선생님, 저 이런 얘기 써도 되요? 저 슬프게 한 아이요.”

“네. 써도 되죠.”

수빈은 중학교때, 고등학교때 자기를 괴롭힌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적었다. 중학교 3학년때 누구, 고등학교 1학년때 누구, 고등학교 2학년때 누구. 아이들의 이름 옆에 괄호를 치고 고1, 고2, 중2라고 적었다.

“얘는요! 입 튀어나왔다고 못생겼다고 했어요.” 그 얘기를 듣자 웃음이 터졌다. 나는 수빈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한국사람은 다 입이 튀어나와있어요. 수빈씨.”

“정말요?”

“그럼. 선생님도 입이 좀 나와있어요.”

“그리고 얘하고 얘는요. 나보고 춤춰보라고 하면서 막 웃었어요.”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지자 뒤통수가 싸늘해졌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너희 나한테 그러는 거 아니야! 라고 했어요.”

“잘했네요.”

“그리고 얘는요, 저한테요. ‘이 장애인새끼가!’ 라고 했어요.”

“헐. 그래서 수빈 씨는 뭐라고 그랬어요?”

“그냥 무시했어요.”

“잘 했어요.”

“얘는 장애인 아니거든요. 얘는 일반인이거든요.”

“수빈 씨. 일반인 아니고, 비장애인. 비장애인이라고 해요.”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비장애인.”

“수빈 씨는 본인이 장애인이라고 생각해요?”

“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장애가 심하지 않거든요.”

“네 그래요. 장애인을 놀려서도 안되고 비장애인을 놀려서도 안되죠. 나쁜 아이들이네요.”

수빈 씨가 초중고등학교때 앨범찍어놓은 사진을 휴대폰에서 찾아 보여주면서 이 앨범들을 모두 다 버렸다고 했다. 그 말을 하면서 숨이 빨라지길래 같이 쉼호흡을 했다.

“예전에 제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해서요. 아빠가 한의원에 데리고 갔는데요. 한의사 선생님이 숨을 쉬라고 했어요. 쉼호흡하라고.”

“네 좋은 방법이예요.”

수빈은 학창시절 자기를 괴롭힌 아이들 이름을 모두 적었다. 그리고 그들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하나씩 다 적었다. 나는 수빈씨에게 앞으로도 화가 나면 글로 적어보라고 권했다.

이어서 각자 화가 났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은지 발표했다. 학생들은 노래를 듣는다, 노래를 한다, 게임을 한다, 밥을 먹는다, 잠을 잔다, 메니큐어를 바른다, 치킨을 먹는다, 꽃에 물을 준다, 쉼호흡을 한다라고 적었다. 물건을 던지거나 술을 마시거나 소리를 지른다고 적은 사람은 없었다. 장애인으로 분류되어 살아가는 청년들은 어려서부터 여러 가지 행동교정 훈련을 받았을 것이다. 술을 마시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욕을 하는 건 아무도 가르치지 않으니까.

국가가 장애를 분류하고 구분짓고 선을 그어두었다면 그에 대한 차별도 장애등급 심사만큼이나 엄격하게 금지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2018년, 2019년에 걸쳐 진행한 발달장애청년생애사쓰기 수업을 코로나2년 휴식 이후에 재개했습니다. 좋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초대해 준 수리복지관관계자들께 감사드립니다.

2013.6.17.

어쩌다 노인복지관 수업을 맡게 되어 5주차의 강의를 끝냈다.
사실 강의라고 하기도 애매한 것이 내가 이 어르신들에게 뭘 가르칠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고 그 분들도 뭘 배울 형편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하는 일은 한 시간 가량 그 분들이 하나라도 기억을 살려내고 그 기억을 말로 표현하실 수 있도록 돕는 일이었다.

첫 시간에는 다른 사람의 말이 길어지는 것을 기다리지도 못하시던 분들이 차츰 차츰 순서대로 이야기도 하시고 남의 얘기도 듣기도 하시고 적당한 추임새를 넣게도 되셨다.
담당 사회복지사는 놀랍다고 했고 나 역시 빠르게 적응하시는 어르신들에게 가능성을 보았다.
처음엔 11시부터 40분 남짓 진행되다가 식사하러 가야된다고 자리를 떠버리시는 분들이셨는데 우리 한 시간 일찍 시작합시다 라는 어르신들의 제안에 10시에 시작에 30분은 워밍업으로 간단한 신체놀이를 하고 (이 부분은 다른 분께서 진행) 나머지 1시간 1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되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요. 라는 질문에 글쎄요. 하고 어르신들이 말문이 터지던 순간의 몇 가지 사례를 들었더니 듣던 분께서 “자랑할 수 있는 걸 끄집어내셨군요.” 라고 하셨다.

오늘은 내가 맡은 강의의 마지막 날이었다.
어제 오후까지도 대체 내일은 무슨 이야기를 해야 되나 고민을 하다가
“자랑할 수 있는 걸 말할 기회” 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오늘 내가 준비한 것들은 사라진 직업에 대한 것이었고 “제가 잘 모르니 얘기해주세요” 라며 하나씩 하나씩 물어나갔다. 사실 정말로 몰랐다. 내가 똥지게가 뭐고 물지게가 뭔지, 신기료 장수가 뭐며, 가마니를 어떻게 짜는지 알게 뭐겠나.

오늘은 11시 40분이 될 때까지 이야기들이 끝없이 이어졌고 한 아버님은 노래 한 자락 해주겠다며 해방때쯤의 가사로 추정되는 노래를 불러주시고 자리를 뜨셨다.
이가 거의 없어 가사를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지만 후반부의 가사는 이런 것이었다.

재주 좋은 제트기랑 (중략)
한시바삐 한국땅에서 주저앉고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자유의 평화를 이제 볼까

1930년대에 태어나신 분들과의 괴리는 엄청났다.
세월의 차이뿐 아니라 문화적 차이도 엄청났다.
동시대를 살아온 나의 할머니와 무척이나 다른 분들이셨다.

집에 돌아와 나에게 “자랑할 수 있는 걸 말할 기회” 라는 힌트를 다시 생각한다.
그리고, 좋은 강사는 앉아서 수업을 듣는 사람을 ‘높이고, 그들의 자존감을 회복시켜주며, 그들의 숨은 가능성을 스스로 찾아내게 하는’ 사람이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강의를 주로 할 것은 아니겠지만 그런 자세로 임하면 실수가 적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듣자하니 거슬리고 거북했던 강의들의 원인이 무엇인가도 알아낼 수 있었다. 그저 칭찬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나를 보고 있는 당신이 나보다 더 좋은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끊임없이 재촉하는 것. 그런 자세는 마음에 든다.

혼자 전담했던 첫 강좌의 소회다.

[강좌]발달장애청년 생애사쓰기

안양시 수리장애인복지관의 이용자 중 발달장애 청년들의 생애사쓰기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2018년과 2019년, 2년 간 발달장애 청년들의 마음을 함께 읽어보았는데요, 코로나로 2년간 쉬었네요.

복지관에서 다시 프로그램을 준비해 오늘부터 12번 함께 만나 청년들의 삶을 글로 써볼 겁니다.

이번에 참여하는 청년들은 재능이 많아요. 수영선수, 볼링선수도 있고 바리스타도 있습니다. 직업훈련을 마치고 이미 일을 하고 있는 청년들도 있고요.

오늘은 첫 수업이라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자기 소개와 자랑거리를 나누었어요.

각자 자기 얼굴을 그려보고 앞으로 재미나게 글쓰기 수업 하자는 의미로 서로 하트를 그려주거나 응원의 메시지도 전달해봤습니다.

저도 참가자들과 함께 자화상을 그려봤네요.

열 두번의 만남을 통해 어떤 마음속 보물을 찾게될지 기대됩니다.

[강좌후기]정신건강보건센터 7회기

7회를 진행한 정신건강보건센터의 수업을 끝냈다.

조현병과 양극성장애를 앓고 있는 참가자들이었고, 이들은 모두 재활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다.

글쓰기 수업은 다양한 재활프로그램중의 하나였다.

수업 도중에 한 참가자는 증상이 심해져 입원을 했다. 대부분 오래 약을 복용한 이력이 있다고 했다. 나는 몇 몇 참가자들의 언어가 어눌해진 것이 약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2008년쯤이었나. 나도 그랬으니까.

아침에 일어나면 혀가 말려있었다.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서 가족은 나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손에도 힘을 줄 수 없어서 글로 뭔가를 전할 수도 없었다. 눈에 초점이 맞을 때까지 그저 기다렸다. 안경을 쓰고 사물이 잘 보일 때까지 30분 이상이 걸렸다. 그 때쯤 되면 혀도 풀려서 말을 할 수 있었다. 운동신경이 둔해져 길을 걷다가 넘어졌다. 당시의 나를 기억하는 가족들은 눈의 초점이 늘 탁했다고 전한다.

방금 전에 한 일이 기억나지 않아서 계속 수첩을 들고 다니면서 적었다. 아기가 어렸다. 밥을 줬는지 안 줬는지 알 수가 없으니 계속 적는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놓고 산에 올랐다. 호압사에 가서 108배를 하거나 300배를 하거나, 땀을 흘리고 웃는 셀카를 찍고 내려오기도 했다. 양극성 장애때문에 혀가 어눌해지는 것인지 약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당시 내가 먹었던 우울증약은, 일반 우울증 환자들의 세 배에서 다섯 배 정도 되는 양이었다. 자살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고, 의사는 내가 입원해야 할 단계라고 했으나 일상에서 버티는 게 회복이 빠를 거 같다며 약을 강하게 처방했다. 내가 약을 완전히 끊은 것은 2016년이었다. 약 8년, 양극성장애, 우울, 공황장애등의 복합적 정신과 투병이 간헐적으로 있었다.)

4회기를 넘어서면서 참가자들의 말이 많아졌다. 몇 명은 망상이 있는 게 확실했고 몇 명은 강박이 엿보였다. 꾸준히 치료를 받는 재활자들이라 수업에 적응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걸 알 수 있었다.

참가자들은 아름다웠던 과거를 나에게 들려줬다. 반짝이는 시냇물과 북적이던 마을잔치, 행복했던 여름날의 화목한 가족의 나들이, 사랑받고 자란 어린시절, 자랑스러운 어버이에 대해서 말하기도 했다. 지금도 사랑하는 가족에 대해서 말했다. 내가 갖지 못한 것들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지금 많이 아팠다. 헤어진 연인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었다. 그 사람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얼마나 그리운지 말했다.

마지막 수업이었던 오늘, 나는 10년 후 나의 모습을 써보자고 했다. 구체적인 모습을 만들어내는데 힘겨워했지만 이내 여러가지 모습을 만들어냈다. 운전면허를 따서 가족들을 태우고 속초에 놀러가기, 집에서 짜장면을 만들어 가족들과 즐겁게 먹기, 꽃꽂이 하기, 봉사활동 다니기, 시집을 출판하기, 사람을 많이 만나는 직장에서 일하기. 지금 내가 모두 할 수 있는 것들이다. 나는 10년이면, 다 할 수 있을 것이니 절대 이 꿈을 잊지 말자고 말했다.

웃으면서 말했다.

수업일지를 쓰며 나는 다시 운다.

누군가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내내.

그들을 괴롭힌 누군가가 있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견딜 수 없게 만드는 누군가가 있었을거라고, 어떤 사건이 있었을거라고. 그들의 영혼이 나에게 그리 말하는 듯 했다.

어쩌면, 내가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연두가 가득하던 계절에 만나, 장미꽃이 만개한 날 헤어졌다. 꽃이 다 피었다는 것은 곧 진다는 이야기다. 경주(가명) 씨가 자기를 잊지 말아달라고 했다. 경주 씨의 삶의 이야기를 나누어줬기 때문에, 나는 당신을 잊지 못할 거라고 대답해줬다.

모두의 회복과 행복을 빈다.

진심으로 간절히.

아픈 수업이었으나,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안녕. 아름다운 사람들.

이들을 위해서는 기꺼이 울어도 된다.

3회차 수업 후기

지난 주 내내 안 좋은 생각이 들어 힘들었다는 참가자가 “평안하다”는 단어를 골랐다. 오늘은 괜찮다고.

바쁘게 살아야 하는데 게으름을 피운 자신에게 미안하다는 참가자는 “미안하다”와 “바쁘다”를 골랐다. 그에게 일주일에 닷새를 바쁘게 산다면 이틀은 게을러도 괜찮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환하게 웃었다.

시를 쓰고 SNS에 올리는 참가자도 있다. 오래된 약물복용으로 감정이 얼굴을 뚫지 못하거나, 가상의 풍선 하나 만들어놓고 그 안에 들어앉은 것 같은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최근들어 많이 호전되었다는 한 참가자가 유년시절 가족들과 산속의 계곡에 놀러가 아버지와 함께 가재를 잡고, 아버지가 가재는 절대 날 것으로 먹으면 안된다고 얘기한 게 기억난다는 추억담을 적었다.

그가 쓴 글을 내려놓고 다른 일정이 있다며 먼저 자리를 떴다. 나는 그의 글을 읽고 눈물이 터져서 서둘러 휴지를 꺼내 눈가를 꾹꾹 눌렀다. 글 아래 포스트잇을 붙여 적었다.

“사랑받고 자란 유년시절이 반짝이네요. 진실한 마음을 담은 단정한 문장이 좋습니다. 함께 뛰놀던 마을의 이야기도 궁금해집니다.”

가장 행복했던 날을 함께 적었다.

내가 선정한 행복했던 순간은 자신이 평생 닿지 못할 열망을 담고 있다. 어떻게 해도 그 순간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을 알아서, 기억이라고 이름 붙이고 서랍 어딘가에 넣어두는 것. 행복한 날을 떠올리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순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비통한 날을 떠올릴 때는 자신을 대견해하고 잘 넘겼다고 억지로라도 생각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올가미가 있다.

자기 목을 조르는 올가미. 벗어날 수 없는 내 올가미. 그 목줄을 내가 쥐고 있는데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올가미.

나를 후려치는 감정을 모두 똑바로 바라본다는 건 대체 얼마나 강인해져야 하는걸까.

이것은 병이고, 완치가 어려우나, 잘 관리하면 일상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라는 센터의 안내문을 곱씹는다.

3회차.

2주차 수업 후기

교실에 앉은 최 씨는, 간명하고 간결하게, 자기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했다. 내가 주는 주제로 시작해 유치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끌어오는데, 엘리트계층이라 주장하는 자들의 욕망 가득한 글과 다르게 담백하고 소박한 욕심을 담아 자신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 결론을 냈다.

오늘의 주제는 “나는 무슨 색깔인가요”였다.

최 씨는 나는 빨간 색입니다. 라고 서두를 시작했다. 아이언맨의 슈트가 빨간 색이기 때문입니다. 라고 시작한 이야기는 아이언맨의 삶 속으로 쑥 들어갔다가, ‘나도 아이언맨처럼 다른 사람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라고 마무리했다.

나는 최 씨의 정확한 발병사유를 모른다. 아마 곧 알게될 것이라 생각했다. 한 사람이 써내는 글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의 궤적을 대략 유추하게 되고 그 사람의 결핍이 어느 지점인지 보이는 때가 온다.

생애사쓰기에서는 나의 가장 최초의 공동체를 이야기하게 되는데 좋으나 싫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족을 얘기한다. 최 씨는 자신의 최초 공동체의 인물들을 적으며 어머니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패륜적인 면을 적었다.

“지금은 어머니와 같이 지내시나요?” 내가 물었다. 그가 지난 주에 어머니가 운동기구를 사다주었다고 말했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은 질문이라 여겼다.

“네. 엄마하고, 남동생도 같이 있어요.”

“남동생하고는 어때요?”

“서로 생활을 침범하지 않아요.” 나는 정말 이상적인 관계라며 박수를 치고 웃었다.

최 씨가 오늘 간략하게 적은 것만 봐도 아동학대, 가정폭력의 피해자인 것이 너무도 명확했다. 건너편에 앉은 김 씨는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는 자녀였는지를 계속 강조했다. 그 사랑에 비해, 그렇지 못한 어떤 상황이 있었을 것이다.

한 시간반동안, 이들과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아프다.

엄마는 이모가 ‘미쳐서 죽었다’고 했다. 이모는 조현병이었을 것이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폐쇄병동에 갇힌 이모는, 밥을 차려다주면 제어할 수 없을 때까지 밥을 먹었고, 제어할 수 없을 때까지 김치만 먹곤 했다고 말했다. 기껏해야 20대 초반이었던 엄마는 그런 이모의 보호자였다. 두 자매는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어떤 일을 겪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두 사람은 전쟁이 끝날무렵 예닐곱살이었으니까. 지금의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 있었을 것이다.

이모는 병원에서 나온 뒤, 육체에 병을 얻었고 치료 기회를 놓쳤고 어느 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했다. 엄마는 세상에 남았고 성격장애가 고착되었다. 결국 내가 당신을 외면해야 하는 노년을 맞았지만, 당신은 여전히 혈기왕성하게 잘 지낸다.

생명력.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강인하게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바람불면 꺼질 듯이 여리여리하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녹두빛을 좋아한다던 김 씨는 2주 연속 “무언가 해야한다.”는 이야기를 적고 있다. 김씨가 적은 이야기는, 스파게티를 만드는 법, 난초를 키우는 법, 건강하게 사는 법. 같은 것이었다.

나는 이들에게 김수복의 시를 소개했다.

“봄나무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두 눈을 감고 한없이 호수의 밑바닥으로 내려가서

눈을 뜨고 죽고 싶었던

겨울에서

이제는 한없이 바람에게 말을 걸고 싶은

봄나무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라는 구절을 읽으며, 터지는 눈물을 눌렀다.

사는 건 쉽지 않고 외로움은 끝이 없는데.

아무 잘못 없이, 병을 가졌다는 이유로 평생을 차별받고 배제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프고, 또 아프다. 다른 말을 찾을 수 없이. 아프다.

서울의 어느 정신건강지원센터,

조현병 자활대상자들의 글쓰기,

제 2주차.

첫 주 수업 후기

모 지역의 정신건강센터에서 7회기의 삶 쓰기 강좌를 진행한다. 대상자는 조현병환자들이다. 여기 환자라는 이름을 붙이는 게 어색하다. 환우라는 말은 더 이상하고.

조현병이라는 이름은 정신병이라는 이름보다는 낫다. 나는 정신병이라는 이름보다 뇌신경질환같은 이름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조현병에 대해서 공부를 더 해야 한다. 지식은 일천하다.

긴장하고 만났지만 글쓰기 능력도 괜찮고 의사소통도 잘 되었다. 각자의 세계를 흰 종이에 쭉 써내려가는 것을 보며 마음이. 뭐랄까. 심장에 뜨거운 물이 쏟아지는 기분이었다.

시 쓰기를 즐긴다는 참가자가 써내려가는 모습을 보며 업무용 다이어리에 이렇게 적었다.

모두 각자의 세계가 있다. 누구나 자기만의 세상을 산다. 그 세계는 각자의 이야기로 가득차 있다. 그 세계를 말이나 글, 소리나 그림과 같은 각자의 언어로 풀어낼 수 있다면 축복이다. 모두의 세계는 존중받아야 하며, 그 자체로, 아름답다.

글을 쓰는 타인의 세계를 탐색한다.

세계와 세계의 씨줄과 날줄을 이어보고 퍼즐을 맞춰본다. 타인의 숲에 흩어진 보물을 찾아낸다. 구슬을 엮어 목걸이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목련이 피면 봄이 왔다는 걸 알 수 있다.”

오늘 처음 만난 김 씨가 쓴 문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