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 하러 와

멀리서 날아온 친한 동생을 만나기 위해 남산에 있는 모호텔에 갔다. 비행기 도착하고 여독이 풀리기도 전에 그런 거 없이 그냥 잠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방에 들어가 차 한 잔을 마시는데 그 비싸고 유명한 호텔방이 얼마나 클래식하던지.. 1980년쯤 되는 것 같았다. 멀리 보이는 남산타워로 수십년을 버티는 호텔임이 분명했다.
걸어서 남산을 돌아 명동까지 내려가 아주 오랜만에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노점을 기웃거리며 뭔가를 주섬주섬 사기도 했다. 각자의 기억에 다른 모습으로 남아 있는 커피집에 들어가 커피도 한 잔 마셨다. 음악이 사라진 명동에서 우리가 다시 잡은 세월은 아마 12년이 넘었을 것이다.
비행기를 타고 온 동생은 만날 사람이 있어 거기서 헤어지고 나는 가방을 호텔 로비에 맡겨두었기 때문에 다시 택시를 타고 호텔로 올라갔다. 가방을 찾으면서 투숙객이 아니라 하니 찾아가는 사람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달라고 한다. 이름을 적고 전화번호를 적은 다음 주차권을 내밀어 동생방 호수로 얹어달라고 했다. 직원이 다섯 시간 무료주차 도장을 쾅 찍어주었다. 돌아서서 묵직해진 가방을 들고 주차장으로 가는 엘리베이터 방향을 찾아보고 있는데 누가 어정쩡한 자리에서 나를 자꾸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니 정복을 입은 호텔 직원인데, 아까 가방을 찾는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이었고 회전문 앞에 서 있을 일은 없는데 가방 찾는 데스크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나를 보고 있으니 뭔가 이상해보였다. 가만히 쳐다보니 어디선가 낯익은 얼굴이었다. 최근 들어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이름도 자꾸 잊는 통에 한 10초 정도, 정말 가만히 서로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나는 연두색 등산점퍼에 주황색 가방을 거의 둘러메다시피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그 사람은, 1995년부터 1997년경까지 내가 살던 서울역 뒤 동자동의 장학고시원에서 그 시절을 같이 보낸 사람이었다. 나보다 늦게 고시원에 들어와 나보다 일찍 고시원을 떠났다. 그 때 그의 나이는 스물 여덟 정도 되었고, 고시원을 나가 고시원 바로 앞에 쪽방을 하나 얻어 살다가 차근차근 돈을 모아 월세방으로 나갔다는 것까지만 안다. 곱상한 얼굴이고 피부가 참 흰 사람이었데 그 당시에 그 호텔에서 벨보이를 하고 있었다.
“어머. 웬일이야. 세상에 아직도 여기에 있어?” 나는 반갑게 그의 팔을 툭 치며 인사를 했다.
만면에 미소가 가득했다. 서로 묻는 것은 뻔했다. 잘 살지? 결혼은 했지? 애 몇 살이야? 와 우리 몇 년만이지? 한 15년 됐나? 그래 15년 된 거 같다고 이야기하고 돌아나오니 15년도 더 된 일이었다.
“우리는 여기 오래 있어. 25년 30년까지도 근속을 하니까. 오래된 사람들은 잘 안나가.”
평덕이오빠. 전라도 어디메에서 올라왔었다. 느릿하고 구수한 사투리를 쓰던 그는 말투는 조금 빨라졌고 머리숱도 많이 줄어들었다. 그가 본 나는 피부가 매우 거칠어졌고 살이 많이 쪘겠지. 알아보기 어려웠을거다. 내가 가방을 찾으며 이름을 적지 않았으면 그는 알아보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나는 항상 여기 있으니까, 커피 마시러 와.”
오빠가 그렇게 말했다. 반갑다고 하면서 또 보자고 하고 돌아나왔지만 나는 그에게 가방에 있는 명함을 건네지도 않았고 전화번호를 주고 받지도 않았다.

그런 시절이 있다. 나에게는.
내가 힘껏 밀며 버티는 거대한 벽. 고통과 가난이 가득한 영혼들이 아우성치며 나를 잡아채가려고 하는 거대한 검은 벽. 무너지면 절대 안된다고 내 등뒤로 힘껏 밀어대며 사람들 앞에서 하하호호 웃고 있는 거대한 벽. 그 시절의 사람들을 만나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그 벽이 다시 내 등을 후려치며 와르르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벽.

많이들, 변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며 사는데 나 혼자 너무 멀리 도망온 것 같은 느낌. 죄책감은 아닌데, 내가 누군가를 배신한 것만 같고, 내가 너무 동떨어져 온 것 같고, 어딘가 모르게 빚을 진 것 같은 느낌.

말하자면, 가만히 서 있는 기차에서 혼자 내려 뚜벅뚜벅 걸었다가 운 좋게 누군가의 승용차에 무임승차를 한 것 같은 느낌. 절대로 나는 무임승차 하며 살지 않았는데 자꾸만 그렇게 느껴지는 불편함. 그리고, 내가 앞서 달려왔다는, 내가 남들보다 무언가를 더 얻었다는 오만함도 외면할 수 없는 불편함. 더불어 밀려오는 불길함. 그 벽이 무너질까봐. 다시 그 때로 돌아갈까봐.

6층이나 되는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와 호텔뒤의 골목으로 우회전과 좌회전을 해서 맞딱뜨린 곳은 다시 그 서울역, 벽산빌딩 앞이었다.
아무리 돌고 돌아도, 과거는 다시 오고 또 재현되고 골목어귀에 숨어 있다가 어깨를 툭툭 친다. 낙엽 하나 떨어지는 무게에 놀라 죽을 수도 있고, 그것 참 곱다 하며 책갈피에 끼울 수도 있을텐데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 호텔에 전화를 하여, 오늘 그 사람이 근무하는 날이냐 묻고 커피 한 잔 하러 가겠다고 그래서 “추억”이라는 걸 나눴을 때 내 벽이 무너지지 않을 거라 확신하는 날이 과연 올 수 있을까.

2014. 10. 25. 141025_iphone5s 1093

고양이 털끝

갑작스럽게 전화가 왔다.

이따 회의에 오시죠? 라는 뜬금없는 말이었다. 느릿한 억양으로 말하는 이 남자는 두꺼운 뿔테의 안경을 썼다. 얼굴의 반을 가리는 안경이었다. 매우 지적으로 보이려는 수작임에 틀림없었다. 지적이라기 보다 의뭉스럽다는 말이 걸맞은 사람이었다. 연락을 받은 것이 없다고 대답했다. 오라면 가야 하는 입장이다. 그게 내가 할 일이었다. 시간에 맞춰 도착하겠노라고 말했다.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고 가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어쨌거나 길게 봐서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었고 굳이 길게 보지 않아도 당장 나에게 필요한 일이었다. 내가 소집해 달라고 한 회의였고 그들은 그 책임을 다 했지만 책임이 분산되면 언제나 가장 중요한 일이 누락되는 법이다. 누군가 연락을 했겠지. 그 사람이 연락을 했겠지, 저 사람이 통화했겠지. 왜 그 말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나. 통화했다면서 무슨 말을 한거야. 사람들의 책임은 핑퐁처럼 오고 간다. 외면하고자 하면 눈 감아 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도착하여 점심을 먹기로 하고 주차장에 놓인 차에 시동을 걸었다. 선생님은 옆에 탔다. 교실에서 나를 가르치지 않아도 나에게 스승이면 그걸로 선생이 된다. 휴대폰 네비게이션을 켜고 속도계 앞에 휴대폰을 올려놓았다. 휴대폰을 네비게이션으로 사용한 지 한 달쯤 되었다. 내 차에 장착된 네비게이션은 어느 날부터 글자가 잘 입력되지 않는다. 아예 안되는 것도 아니다. 잘 안된다는 것이다. 찍고자 하는 자음의 좌측 상단 30도 방향에서 입력을 해야 하는데 맨 왼쪽에 쏠려 있는 자음은 좌측 상단이 없다. 그게 네비게이션의 끝이니까. 휴대폰을 속도계에 올려놓으면 휴대폰을 보지 않을 수 있다. 계속해서 누군가와의 관계를 확인하는 일이 내가 하루를 사는 일의 절반이다. 계속해서 말하고 싶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싶기도 하다. 말하지 못하고 듣지 못하기 때문에 읽고 쓴다. 저열하고 가볍고 속된 글이나 단 하나의 문장이라도 즐거이 시간을 내어주는 것은 관계의 단절, 내가 끊임없이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과 앉아 사람과 이야기하며 다른 사람을 찾는 시대에 살고 있다니 관계의 허기는 마치 먹어도 먹어도 포만감을 느끼지 못하는 지옥의 병에 걸린 듯 하다. 무엇을 내어주지 않고 무엇을 허용하지 않았기에 계속해서 단절되고 분절되는가. 삶은 뚝뚝 끊긴 채 길에 떨어졌다.

 

한 마리, 두 마리, 어쩌면 반마리, 또 다시 한 마리, 이번에도 반 마리.

목적지까지 왕복으로 70km, 오고가며 길바닥에 죽어서 터져 있던 짐승들이 일곱 마리가 넘는다. 가는 길에 너댓마리를 봤고 오는 글에 두 세 마리를 봤다. 그 중에 어떤 것은 반마리처럼 보였다. 붉은 내장이 고스란히 드러난 사체를 보고도 나는 달려야 했다. 그 길을 지나치던 최초의 충돌자도 살아 있는 짐승과 눈을 마주쳐도 달려야 했을 것이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은 과연 변명이 되는가. 달리 방법이 없었다고. 더 큰 피해를 줄이기 위해 나는 속도를 줄일 수 없었다고. 눈을 번쩍이는 작은 짐승을 살리기 위해 내 목숨을 담보로 하거나, 내 뒤에 오는 사람의 위험을 감수할 의무가 나에겐 없었다고 모든 사람들이 같은 이야기를 할 것이다. 이 길은 자동차 전용도로이며 제한 속도는 시간당 70km 이거나 110km의 구간으로 나뉘어 있다. 속도위반 단속구간이 아닌 곳에서 많은 차들이 120km를 넘게 가속페달을 밟곤 한다. 울퉁불퉁한 도로 사정따위는 고려할 바가 아니다. 차들은 빨리 달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거침없고 싶어서 달린다. 앞 서 가는 차 안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면 운전을 할 수 없다. 앞서 가는 차와 내 곁을 치고 들어오는 차는 그저 기계다. 사람이 운전을 한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외면하고자 하면 눈 감으면 그만이다. 길에서 죽어가는 생명이 어디 짐승뿐인가. 사람도 바다에 산 채로 수장시키는 마당에, 고양이따위에게 줄 동정심이나 남아있긴 한걸까.

펄덕이며 숨쉬던 생명이 무력하게 사그라지는 것을 보는 일은 고통이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모두 어떻게든 스스로를 보호하고 살아남고자 한다. 더 좋은 방향으로. 낯선 풀도 독을 뿜어내듯 움직이는 동물도 모두 독을 품고 산다. 하악. 하고 이빨을 드러내도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이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다.

 

하악, 하고 이를 드러내는 것은 짐승만의 일은 아니다.

나와 감정적으로 엮일 일이 없는데 한 남자가 그 오후에 이를 드러냈다.

뭐하는 짓인가.

나는 가만히 서서 나에게 이를 드러내고 사라지는 그 남자의 등판을 바라보았다. 가만히 서 있었으나 그를 바라보고 서 있는 나의 몸은 낱낱이 알고 있었다. 죽여버릴까.

내가 감히 어떤 생명을 죽일 수 있나. 할 수 없어도 문장을 뱉는 일은 얼마나 쉬운가.

내가 설령 누군가에게 가만두지 않겠다, 라고 한다면 가만두지 않는다는 것은 어떻게 한다는 것인가. 과연 그는 가만히 있기나 했나. 폭력. 죽여버릴까에서 비롯되는 폭력, 나에게 이를 드러내는 자의 이를 몽창 뽑아버리고 싶다는 건 분노의 감정을 나에게 전이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불쾌하다는 이유로. 너의 분노가 나의 감정에, 나의 삶에 개입했을 때 내가 느끼게 되는 이 번잡함. 심장이 빨리 뛰고 식은 땀이 나는 것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처한 인간이 기계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매우 복잡한 구조. 사람이 사람을 무시하는 일에 대해서 느끼게 되는 분노는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인가. 나를 존중해 달라고 하는 욕구는 대체 왜 일어나는가.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을 존중해야 하는 타당한 이유는 어디서 찾아야 하나.

 

나는 그가 나를 존중해주길 바랐다. 존중이라는 것은 예의를 갖추고 공손하게 말을 하며 때로 두 손을 모으기도 하고 내가 털끝만큼 그 사람을 배려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감사히 여길 줄 알길 바랐다. 왜 그는 나에게 감사를 표해야 하나. 나의 삶의 일정부분을 그에게 소비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길 바랐던 것이다. 어쨌거나 그에게 소비되는 나의 감정과 시간은 원래 내 것이므로. 내 것을 너에게 딱 고양이 털끝만큼 내어준 것에 대하여 고마워하라. 당신은 나의 수명을 딱, 고양이 털끝만큼 가져갔으므로.

 

내가 내어준 고양이 털끝을 고맙다는 인사 한 마디 없이 가져가고 그는 나에게 이를 드러내어 관여하고 싶지 않은 분노를 전이시켰다. 분노를 고스란히 떠안고 삭히고 원인을 찾는 시간을 그가 강요하게 된 셈이다. 그리하여 나의 수명의 일부를 그가 가져갔다. 아 그래서 화가 나는 것이었나. 그가 나에게 강요한 분노의 용량이 고양이 털끝을 넘어 개똥만한 것이었는데 그 개똥만한 크기의 예측불가로 인해 나는 소똥만한 수명을 단축시켰다.

 

죽어버린 짐승의 사체를 고스란히 목도하며 돌아오는 길은 괴로웠다. 타인의 분노를 떠안은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밤이 깊어갈 무렵 사과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길에 깔려 죽은 고양이만큼 당신은 숭고하게 살았는가 묻고 싶었다. 해가 넘어가는 시간 내내 분노를 전가했다는 이유로 씩씩대고 내 수명을 스스로 갉아먹던 나는, 사람들을 피해 냇가로 도망치는 작은 짐승만큼 충실하게 살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삶을 보존하는 방법에 집중하기에 우리는 너무 헐렁하게 지낸다. 눈 감고 외면하면, 그만인 것들이 많다는 건 내 눈이 그만큼 헛 것이라는 얘기일까.

 

2014. 7. 15.

한 사람이야기 3 – 정아

“에휴. 이러고 살아서 뭐하나 모르겠다.”
“같이 죽어. 같이 죽어? 엄마 우리 같이 죽어?”
다섯 살 짜리 아들이 정아의 손을 잡았다. 정아는 신발을 신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길고 작은 정아의 눈은 또 초승달이 되었다.

“뭘 같이 죽어? 쪼끄만게!”
“엄마 맨날 죽어?” 정아는 괜한 말을 했다고 후회하였다. 약 3초간.
“너 어디 할머니 앞에 가서 그 소리 해봐라. 뭐라 그러나.”
등 뒤에 선 여자는 다문 입을 열었다.
“애들 앞에서 숭늉도 못 마신다더니.”
“이러니 내가 살겠니?” 정아는 얼굴도 들지 않고 아이의 신발을 신기며 말하였다.
“이모 안녕.” 아이가 집안에 선 여자에게 손을 흔들었다.
“집으로 가?” 아이에게 손을 흔들며 여자가 말했다.
“얘 맡기고. 일찍 나갈게.”
“조심해서 가. 엄마 말 잘들어?”

아이는 신발을 신고 뭐가 좋은지 폴짝 한 번 뛰었다. 현관에 놓인 어지러진 신발 때문에 아이가 미끄러질까 염려되었다. 아이의 손을 꼭 잡은 정아의 왼손목에 샤넬팔찌가 찰랑. 움직였다.

정아는 아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반지하를 벗어나려면 몇 칸의 계단이 필요하고 그 집의 대문을 나서면 다시 내리막길이다. 골목을 벗어나면 야트막한 언덕이 나타난다. 정아의 집까지는 몇 개의 계단과, 몇 번의 오르막을 더 올라야 할 것이다.

“엄마 돈 많이 벌어?” 아이가 말했다.
“그럼. 엄마 돈 많이 벌지. 아빠보다 더 벌지.”
땀이 송글송글 돋아났다. 아무리 화장을 진하게 해도 기미는 쉽게 눈에 띄였다. 눈두덩이에 깊은 아이라이너가 번질까, 새로 산 마스카라로 길게 올린 속눈썹이 번질까 걱정되었다. 정하는 땀을 닦지 않고 길을 걸었다.

“벌어야지 그럼. 벌 수 있을 때 벌어야지.” 아이는 땅바닥의 불규칙한 무늬를 보며 제 나름대로의 규칙을 가지고 건너 뛰며 말했다. 애 할머니가 자주 하는 말이었다. 정아가 피곤에 찌들은 얼굴로 인상을 쓰고 아이를 시댁에 맡기고 나갈 때 아이 할머니는 나가는 정아의 뒷모습에 대고 그렇게 말하곤 했다.

“엄마 아들이 사고만 안 쳤어도 이러고 안 살아.” 정아는 쏘아붙이는 것도 아니고 뇌까리는 것도 아닌 말투로 대답하곤 했다. 아이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부엌의 쪽문에서 바로 길로 떨어지는 정아의 맨다리를 보며 문을 닫곤 했다.

오늘도 같은 말을 할까. 문득 정아는 간밤에 들어오지 않은 남편 생각에 짜증이 치밀었다.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했다. 냉면이나 한그릇 먹었으면 좋으련만 마음 뿐이었다. 사람들이 간혹 줄을 서기도 하는 허름한 냉면집을 지났다. 아이는 별 말 없이 순순히 걸었다.

“재윤이 놀이방 재밌어?”
“어.” 아이는 계속해서 바닥만 바라보고 걸었다. 불평이 없는 아이다. 그게 이상하게 느껴질 때가 있지만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매일 매일은 고단하기만 했다. 아침 9시에 나와 밀린 설거지를 하고 가스불을 올려 자갈을 달궜다. 10시부터 주방을 정리하기 시작하면 11시 반부터는 점심시간 손님들이 몰려왔다. 집게를 들고 몰아치는 전표를 확인하며 고기를 구웠다. 뜨거운 접시에 이력이 난 손은 물집도 잡히지 않은지 오래, 굳은 살 덕에 뜨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손끝이 고마울 때가 있다. 오늘은 점심시간을 마치고 잠시 집에 들렀다. 혜선이가 3시부터 6시까지 대타를 뛰어주기로 했다. 대타를 뛰는 혜선에게는 시간당 3천원씩 9천원을 줘야 한다. 지갑에 그만한 돈은 있을터. 4시쯤 되면 점심손님이 빠져나가고 저녁손님도 들어오지 않는 시간이라 일수쟁이가 들렀다. 정아는 매일 꼬박꼬박 도장을 찍었다. 오늘은 6시쯤 보자고 이미 전화를 했다. 나가자마자 일수쟁이부터 만날터였다. 남편은 동창과 영동에 주점을 열겠다고 설치고 다니고 있다. 포장마차 해먹은 게 언제라고 또 날뛰기 시작한다. 말릴 기력도 없고 그저 안보고 싶을 뿐이다. 정아는 요즘 이혼에 대한 생각을 구체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헤어지면 이 동네를 떠나고 싶고, 아이는 키울 자신이 없고, 시어머니가 젊으니 아이를 맡기고 훌훌 떠나는 게 가장 좋을 성 싶다. 얼마 전 사람을 통해 일본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들었다. 파출부 생활 5년에 설거지만 2년이다. 밤에는 업소에서 설거지를 했고 낮에는 업소 청소를 했다. 가서 무엇인들 못할까 정아는 지금보다 그 어떤 것도 나을 것이라 확신했다.

터번캣을 쓴 남자들이 느린 걸음으로 길을 걸어오고 정아는 아이의 손을 잡고 시댁에 당도했다. 내년에는 이혼해야지. 정아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샷시문을 열었다.

출렁. 하고 유리가 진동하는 소리가 났다.
“엄마” 정아는 시어머니를 그렇게 불렀다. 정아의 어깨에 매달린 까르티에 배낭도 한 번 출렁였다.

2014. 6. 30.

만날 수 없던 사람, 만날 수 없는 사람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마음으로 모였다. 
추도 예배 내내 훌쩍이는 소리와 견딜 수 없어 터지는 탄식이 있었다. 
추도 예배임에도 불구하고 고인의 유족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그만큼 모두들 가슴 속에 불 한 덩어리 크게 얹혀 있었을 것이다. 

뻔히 아는 길을 가면서 계속 직진만 하느라 길을 뺑 둘러갔다. 
어쩌면 그 장례식장에 영원히 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거다. 

어떤 소란이 있었다고 한다해도 
모두가 황망하고, 화가 나고,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평소에 악수만 하고 지내던 사람들끼리, 팔을 쓰다듬으며 인사했다.
꼭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다 큰 남자들이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토해냈다.
누군가 무너질 것 같아 걱정만 더해졌다.

장례식장이 있는 그 병원 로비와, 고인의 장례식장에 몰려드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키가 크고 안경을 쓰고, 자켓을 입은 남자를 볼 때 멈칫했다.

고인의 장례식장을 찾은 조문객 속에서 고인을 찾고 있었다.
머리로, 괜찮다고 쓰다듬어도 절대 인정할 수 없는 것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득 문득, 모두가 그렇게 얘기하듯이 나도 그 분이 저 멀리서 성큼성큼 걸어오며 환하게 웃어줄 것만 같다.

내가 2년전 찍어드렸던 사진이 영정사진이 되었다.
원본이 필요하다는 말도 전해듣지 못했다.
얼마나 서로 경황이 없었다는 얘기였을까.

유족의 손을 잡고 이럴려고 찍었던 사진이 아니라고 했으나, 오히려 나를 위로하셨다.

괜찮다고, 나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10년을 같이 한 사람도, 33년을 같이 한 사람도 있는데 나의 황망함은 비교할 수 없다고 그러니 나는 금방 일어날 거라는 말은,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다.

내일까지, 통곡하고 울고 나면.
이 귀한 분을 보낼 수 있을까.

이 세상을 살면서 만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앞으로도 이런 분을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세상 어디에도 없던 사람. 그래서 그 분은 하늘의 것이었나.

故 문홍빈 사무총장

아직은 명복을 빈다는 말도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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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지혜가 있대

엄마 나는 태권도 쭉 해서 상장도 받고 트로피도 받을거야.
응. 아주 좋은 생각이야. (상상이 안 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난 나름대로 친절한 대답 잘 해줌)
엄마도 좋다고 생각해?
그럼. 근데 예환아, 예환이는 공부를 잘 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은 생각도 있어?
있어!
그래?
근데 공부는 언제까지 해야 해?
음.. 누나처럼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도 가고 싶으면 가는 건데, 근데 사람이랑 동물이랑 차이점이 뭔지 알아?
알아!
뭔데?
지혜! 사람은 지혜가 있어!
그래, 동물은 본능만 있지? 사람은 지혜가 있어. 왜냐하면 문자가 있어서 그걸 기록하고 나눠갖고 책을 읽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응!
그러니까 사람은 동물과 다르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늘 공부를 해야 하는 게 맞아. 그렇겠지?
응. 책도 읽고!
그래. 늘 생각하고. 그러니까 공부가 언제끝날까 이런 생각은 하지 마. 공부는 죽을 때까지 하는 거야. 그래서 사람인거야.

2013. 12. 21.

사람구경

1.

나는 사람을 믿지 않지. 라고 쉽게 말하곤 했다.
그게 아마 작년까지였는지, 올 여름까지였는지 모르겠다.

사람은 예측할 수 없지. 라고 지금은 바꿔 말할 수 있다.
영 능력이 안되는 것 같던 사람이 갑자기 뒷심을 크게 발휘하는 경우도 있고, 매우 잘 해낼거라 기대했던 사람이 바닥을 기는 경우도 본다.

사람들의 진정성, 순수성, 자율성, 자치적 능력들을 전혀 믿지 않으며 살아왔다. 나 역시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내가 생각한 인간의 조건 중의 하나는 “절실함”이었다. 절실하지 않으면 아무도 치열하게 살지 않는다는 것 때문이었다. 누군가 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잘 하지 않는다는 건 절실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한 해를 보내며 다시 점검하는 것들 중에 사람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한 사람이 역량을 발휘하는 문제에 대해서, 한 집단이 힘을 모아내는 일에 대해서 생각한다.

모든 인간은 어느 정도 게으르고, 안주하길 원하며, 안전하길 기원한다는 건, 생존의 법칙 때문일 것이다. 변화는 모든 동물에게 두려운 일이고, 스트레스고, 도전이다.
“나는 쉴 새 없이 변하는 게 좋아.” 라는 건 그 바닥에 터져 나오지 않은 다른 이야기가 분명히 있다. 그 어떤 것에도 만족하지 못하거나, 집중하지 못한다는 건, 달리 말하면 끝없이 탐색하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은 구석에 몰리고, 위기에 봉착하면 힘을 발휘한다. 안전한 상태에서 굳이 치열하게 살아나가야 할 필요가 무엇일까. 위기라는 건 생계나 생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의 정서, 자존감, 스스로 지켜야 할 마지막 존엄에도 위기는 찾아오곤 한다.

“에이 썅 내가 본때를 한 번 보여주겠어! ”
이게 바로 자존감의 위기를 맞이할 때 하는 말들일게다.

2.

올 해도 참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든 역동의 이유를 들여다 보기도 했고 혼자 추측해보기도 했다. 나날이 사람에 대한 이해도는 높아지는 듯 한데, 이런 건 참 위험한 일이라, 섣불리 나대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으나, 나도 모르게 행동으로 표정으로 발휘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해마다 일기장을 새로 열며
“삶은 치열해야 한다” 라고 적었다. 그렇게 적은 게 20여년이 되었다.

어제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힘들게 살지 말자.
지나치게 치열하게 굴지도 말자.
힘을 차곡차곡 쌓아야 오랫동안 버틸 수 있다.
변함없이 버티는 일,
그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라고.

정말 매년 다짐처럼 치열하게 살았던가,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이삼십대는 그렇게 살면서 바닥을 굴러보는 게 나았을 게다.

인간의 숭고함을 철석같이 믿고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시각을 만나면 당황스럽다. 그럴 때는 쓰레기장에서 재활용을 줍다가 밖으로 나온 기분이 든다.
얼마 전 만났던 YMCA 꿈프로젝트 친구들에게 마무리로 그런 얘기를 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인간은, 그 어떤 동물보다 더 한없이 악랄하고 저열하고 폭력적일 수 있으나, 또 그 똑같은 인간이 이루어 낼 수 있는 숭고함은 신과 닿을 수도 있는 것 같다고.

3.

딸아이가 낮에 절친이라 하기 어려운, 아는 아이의 이야기를 전했다.
실종된 지 3주가 됬다는데 소식도 없고 가족들도 적극적으로 찾고 있지 않는 것 같다 했다. 그 아이는 남자아이인데 두루두루 아이들과 친하지만 딱히 친한 친구는 없으며 가정환경도 복잡한 것 같다 했다.
나는 심드렁하게 “배타러 갔을 지도 모르지” 라고 대답했다.
“에?? 새우잡이?” 라고 대답하는 아이한테
“뭐 세상만사 귀찮고 정붙일 사람도 없고 배타고 돈 벌고 그런 생각 했을 지도 모르는 거 아냐. 죽었을 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좀 그렇잖아.”

아이는 다른 이야기들을 연이어 꺼내놓았는데 우리는 결국 “개천에서 용난다” 이야기까지 발전했다.
딸아이는 “되게 열심히 살고 훌륭한 아이들이 있는데 식구들 때매 신세 망치는 것 같은 애들이 꼭 있어. 걔들은 그런 가족이 없으면 더 잘 될 수 있을 거 같은데.” 라고 하길래
“그런 가족이 있어서 열심히, 치열하게 살고, 훌륭해 지는 지도 모르지.”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날 봐라. 내가 안정적이고 아름답고 막 존나 우아하고 선량한 집구석에서 사랑 듬뿍 받으며 자랐으면, 엄마가 지금 이만큼 왔겠냐?”
아이는 피식 웃었다.

4.

원인을 찾는다는 게, 찾다 보니 원망이 쌓이고 그게 분노가 되고 되려 홧병이 되어 덮쳐 오기도 했다. 원인을 찾았으면 해결방법을 찾으러 가야 했는데 원인을 찾고 나니 해결방법을 찾기 전에 너무 쇼킹해서 눈은 멀어버리고 정신을 잃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고, 아는 게 병이라고 했던가.
몰랐던 건 약으로 때우면 되지만 알게 되면 개복을 해야 된다는 얘기인가..
(잘도 갖다 붙이고 있다)

5.

암튼 그랬다.
오늘도, 어제도 나는 매일 매일 사람구경을 한다.
한 사람의 표정과, 그 사람의 마음과, 그 안에 도사리고 있는 두려움과 슬픔에 대해서. 어두운 방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왜 엄마가 안 오지. 하고 혼자 별의 별 상상을 다 지어내어 훌쩍이고 있던 세상 모든 늙어버린 아이들에 대하여.

오늘도 내가 젖은 머리를 말리고 얼굴에 치덕치덕하게 끈적한 크림을 바르는 동안 “엄마 안아줘.”를 반복해서 옹알거리다 잠든, 서캐낀 대구빡의 내 새끼에 대하여도.

+ 요즘들어 자꾸 의심되는 것은 내가 살아온 세월동안 내가 믿어온 가치관, 옳다, 아니다. 라고 판단했던 그 당시의 생각들이, 정말 옳은 것인가. 하는 거다. 아주 어렸을 때도 “이건 아니지” 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지금 생각해도 “이건 아니지”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긴 한데 그게 과연 모두 다 객관적으로 검증해봐도 그렇게 볼 만한 사안인가. 하는 것들이다. 흠.

+ 그래서 내가 간혹 탈북. 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가치관의 전복, 살아온 모든 삶에 대한 부정. 그게 가져오는 충격은 과연 어떤 것일까.

 

2013. 11. 18.

사장님 사장님 우리 사장님

A양은 작년 P사를 아무 예고 없이 퇴사했다. 
경리일을 보던 A양이 무슨 이유로 왜 퇴사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퇴사였다. 쉽게 말해 아침에 아무렇지도 않게 출근하여 사직서 한 장을 던져놓고 짐을 싸서 나가버린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 날은 월말이 가까웠고 세금 낼 것도 산같이 쌓여 있었다. 대표이사가 나서서 모든 세금 문제와 결제문제를 해결했다. 전직원은 한달동안 멘붕을 제대로 경험했다. 아무도 사라진 A양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사직서는 내고 갔으니 인수인계를 안 하고 갑자기 그만 둔 것은 괘씸하지만 범법행위는 아니기 때문이다. 

1년이 지났다. 
P사의 사장은 A양의 전화를 받았다. 
어 너 웬일이냐. 
사장은 뻔뻔하기도 하지. 라고 생각했으나 속내는 대체 무슨 말못할 사연이 있었길래 짐짓 궁금하기도 하였다. 
A양은 그렇게 잠적하듯 퇴사를 한 후 스포츠마사지 자격증을 따서 마사지샵에서 일년간 고되게 일했다는 구구절절한 사연을 스마트폰을 통해 음성으로 전했다. 그리고 돈을 천만원 이상 모았다는 얘기도 했다. 
어 그래 잘했네. 라는 대표의 말이 끝나자 마자 A양은 
“근데요 사장님” 이라며 어떤 역사의 전조가 되기에 충분한 접속어를 뱉었다. 근데요.. 라는 것. 

A양은 열심히 일하고 돈도 모으던 중 갑자기 몸에 이상을 느껴 병원을 찾았는데 동네 병원에서는 큰 병원에 가보라 하여 대형병원을 찾았단다. 검진을 마치고 A양이 들은 얘기는 원인은 알 수 없으나 간의 일부가 괴사하고 담낭에 문제가 생겨 수술을 해야 하는데 본 병원에서는 할 수 없으니 한국최고의 병원(?)이라는 H사의 병원이나 S사의 병원으로 가보라 했다는 것이다. 
A양이 전하는 의학적 조치법은 매우 어려웠다. 간의 일부를 절제하고 담낭관을 잘라내고 쓸개즙을 빼기 위해 소장을 연결하고 어쩌고 저쩌고 아무튼 엄청난 대수술이라 에지간한 3차 병원에서도 쉽게 할 수 없다는 거다. 
A양은 결국 눈물을 쏟으며 그 간 모은 돈이 천만원이 넘는데 수술비는 2천만원이 든다 하니 이 일을 어쩌냐 하면서 사장님 주변에 아는 분 많으시잖아요. 하며, 병원예약을 앞으로 당겨달라고 부탁 좀 해달라고 말했다. 

사장은 난감했으나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맞을 때는 그저 “응 그래” 하고 일단 대답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A양의 예전 사장님은 이리 저리 전화를 돌려 각 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지인들을 찾았다. 그리고 통화를 연결하니 아직 접수도 안 한 상태라는 어이없는 대답까지 들었다. 

얘가 병원에 혼자 있으니 심심한 모양이다. 사장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마시던 소주를 털어넣었다. 
속이 부대끼는 다음 날 아침, A양은 아침 9시 전에 대표에게 전화를 했다. 부탁한 거 어떻게 되었냐며 맡겨놓은 것 같이 말했다. 대표는 이게 무슨 상황이지? 황당해 하며 어 내가 빨리 알아봐줄게 하고 전화를 끊었다. 
설렁탕에 밥을 푹푹 말아 한 사발을 퍼먹고 있던 마누라가 무슨 전화냐고 물었다. 여차저차한 사정을 이야기하니 마누라가 퉁명스럽게 한 마디 던진다. 
뻔뻔하네. 

그 날 오후 A양의 전사장은 A양으로부터 다른 부탁을 듣게 된다. 
“사장님 근데요, 제가요 이 수술을 마치고 나면요, 그 스포츠마사지 일은 힘들어서 못 하거든요. 저 다시 입사하면 안될까요”
사장은 등줄기에 불덩이가 솟구치는 느낌을 받았다. 뒷통수가 오싹해지며 혈당수치가 급격히 하강하는 것처럼 찌릿한 느낌이 들어 급하게 말을 뱉었다. 
“니 몸관리나 잘해 임마” 
“사장니임..”
“다 낫고, 다 낫고 나서 얘기해 임마. 지금 취직이 중요하냐 빨리 낫고 그 담에 얘기하자”

사장은 손님이 찾아왔다며 성급히 전화를 끊었다. 
널찍한 사무실 소파에 맥없이 주저 앉았다. 
‘분명히 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지은게야..사람을 한 삼천명쯤 죽였던가…’ 

Based on True Story…

 

2013. 10. 30. 

날 미워하는 자 고마워요

사람이 없다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 이제 깨닫는다.
사람이 없을 때는 그 허기조차 느끼지 못했던 것도 깨닫는다.
내 주변에 모두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참 인복이 많다고 생각했던 이유다.

내 주변엔 인품이 훌륭한 사람도 많고 독한 사람도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적 있다.
물론 그보다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세상은 나한테 쌀 한 톨 보태주지 않는다며 악에 받쳐 두 주먹을 꾹 쥐고 어금니를 꽉 깨물고 휘청휘청 걸어가던 어린 시절도 있었다.
그 휘청대는 걸음으로 한참을 지난 뒤, 그래도 누군가 술 한 잔 따라주었고, 그래도 누군가 라면이라도 사주었다는 걸 뒤늦게 기억했다.

“세상에 참 좋은 사람이 많아, 내 주변은 다 그래, 그게 내가 만든 세상이거든, 내가 만드는 세상의 중심은 어찌됬건 나니까.” 라고 생각했던 건 얼마 전까지다. 이건, 드라마 에서 경이가 복수에게 “복수씨의 인생을 바꾸는 건 세상을 바꾸는 거예요” 라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런데 –
얼마 전부터, 사람이 사람답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물론 사람이 필요하고 사람들 속에서 자라야 하는 게 맞지만, 그 사람들이 모두 좋은 사람이어서는 안된다는 걸 깨달았다.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는 사람, 나를 윽박지르는 사람, 내 바닥을 보게 하는 구타유발자, 끝없이 나와 불화하고 나와 적이 되는 사람, 언제나 나에게 딴지를 걸고 시비를 거는 사람도, 사람이 온전한 인품을 갖기 위해서 꼭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거다.

내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가득 채운 나만의 제국에서, 인간은 얼마나 오만방자 하기 쉬운가.

세상에서 나를 괴롭히는 그 누군가로 인해 인간은 성숙한다. 내 편보다 남의 편이 많아야 반성할 기회가 많아진다. 내 편으로 가득한 세상에선 바닥을 볼 일도, 성장을 할 필요도, 반성을 할 이유도, 사과를 하거나, 손해를 보거나, 베풀 이유도 없다.

어떤 엄마는 자기남편을 남편이라 부르지 않고 “내편”이라 부른다 했다. 그러나 오늘같은 날은. 남편처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은 그저 남편인 게 좋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늘 남의 편인 사람이 가족중에 있을 때, 그런 성장기를 거친 사람이 더 많은 자를 이해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도 있겠다. 물론 누군가 나를 적대시 하는 것이 대해서 쉽게 배척하고 미워하기를 즐긴다면 콩알만큼의 깨우침도 없을 것이지만.

니체가 그랬다던가.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이, 나를 가장 강하게 만든다고. 뭐 그런 맥락.

2013. 6. 19.

자기 역사를 지우다 – 드라마 야왕

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가난한 집에 태어나 부모가 자살기도 하는 것을 목격하다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만 살아남았다.

아버지가 죽는 현장에서 한 남자가 엄마를 구해낸다.

아이는 고아원에서 자라다가 재혼한 엄마가 아이를 찾으러 온다.

성폭행을 일삼는 의붓아버지에게서 도망쳐 엄마와 단 둘이 살아간다.

지병으로 엄마가 죽는다.

소녀는 어리고, 돈이 없어 장례를 치르지 못한다.

이 때 이웃의 한 청년이 나타나 소녀를 돕는다.

소녀는 결심한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나에게 세상으로 나갈 길은 공부.

소녀는 영민한 머리로 공부를 하고 대학을 간다.

가난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는다.

소녀를 돕던 청년은 학비를 대기 위해 기술직을 버리고 유흥업소의 접대부로 일을 한다.

이제 소녀는 여자가 되었다.

유흥업소에서 접대부로 일하는 남편이 부끄럽다.

여자는 이제 과거와 정체성을 지우고 싶다.

입사면접에서 가난의 흔적, 오해, 독한 기질 때문에 탈락한다.

여자는 여기서 물러날 수 없다.

남편이 호스트로 일하는 돈으로 여자는 미국유학을 감행한다.

타고난 미모, 영민한 머리로 재벌의 아들의 사랑을 얻어낸다.

거칠 것이 없어진 여자는, 거슬리는 것들을 제거하는 폭주를 시작한다.

손이 하늘에 닿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여자는 권력의 중심에서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든다.

언제나 들어갈 수 없는 성벽, 그 안에 들어가기 위해 자기가 가진 무기를 꺼내 들은 여자는

처참하게 모멸 당하고 버려진다.

이제 아무도, 그녀를 돕지 않는다.

그녀는 혼자지만, 누구보다 생명력이 강하다.

이 여자아이의 가정이 가난에 허덕여 자살시도를 하지 않는 사회였다면,

그 어머니와 아이가 구출되었을 때 다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제도가 정비되어 있었다면,

여자아이가 성폭행으로 유년시절을 거듭해야 했을 때 누군가 이 아이를 구해주었다면,

성폭행가해자를 과실치사로 살해하게 된 것이 법으로 절대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여자와 연인에게 있었다면.

정당한 기술을 배웠던 여자의 연인이 그 직업으로 여자가 대학을 무사히 마칠 수 있는 조건이었다면,

혹은 여자의 배경 없는 신분과 독기 어린 눈빛도 품어줄 수 있는 기업의 리더가 있었더라면.

그녀가 권력의 상층부까지 상승했을 때, 그 집안에서 동물적 본능으로 그녀를 밀어내지 않았더라면.

이제는 평생의 적이 된 그녀의 옛 남자는 여자에게 지속적으로 말한다.

산동네의 그 여자로 다시 돌아가라고.

권력과 돈의 맛을 본 여자는 끊임없이 자기 정체성을 지우고 다시 만든다.

역사를 수정하고 재구성하는 여자는 보수적 사회적 통념 하에서

아비를 죽이고 딸을 죽이고 남편을 죽이는 악녀로 재탄생한다.

여자는 산동네의 소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아무도 그녀를 환영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그녀는 이제 다시 혼자다.

어떤 것을 평생 사랑하는 일은 인간이 해내기 어려운 일이지만,

어떤 것을 평생 미워하고 증오하는 일은, 인간이 해내기 조금 쉬운 일이다.

지독하게 외롭고 슬픈 여자는 사회적 피해자와 희생자에서 가해자로 거듭나는 과정을 걷고 있다.

여자는 더욱 더 독한 가해자로 끝까지 달려갈 것이다. 이제 관성과 가속도가 붙었으므로.

돌아갈 수 없다.

정체성을 지우고 자기 역사를 다시 쓰는 일.

그녀 안에 숨은 나를 본다.

난 그녀를 미워할 수 없다.

왜 그녀가 산동네의 주다혜로 돌아가야 하는지, 나는 그 말이 더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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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정언니

숭고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러하다.
다 큰 성인의 벌거벗은 몸을 앞으로 뒤로 옆으로.
겨드랑이와 항문주변까지 구석구석 밀어내어 피부의 죽어버린 껍질을 벗겨내는 일.
단지 완력으로만 되는 일이 아니고 요령과 기술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이,
힘의 조절이다.
힘을 빼야 할 때 빼고, 강하게 밀어야 할 때 밀어야 하는 것일진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완급 조절을 하지 못한다.
아이들이 크게 실수하고 잘 넘어지거나
친구간에 크게 싸움이 나고 우격다짐을 하는 일이 그런 이유다.

비록 돈을 받고 하는 일이라도,
돈을 받는다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모든 일을 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인이 되어 누군가에게 보살핌을 받는다거나,
누군가에게 살뜰한 아낌없는 대접을 받는 일은,
천국에 와 있는 듯한 몽롱함까지 가져다 준다.

인체를 이해하고, 때로는 사랑하기도 하리라.
청결함에 대해서, 건강함에 대해서, 사람이 살아가는 일에 대해서,
그리고 노동의 숭고함에 대해서, 팔다리를 움직이는 일에 대해서,
물과 기름과 땀의 구별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겪고 느끼고 지켜보았을까.

체구가 작은 그녀는 나에게 더 큰 돈을 받고 뜨거운 타올을 얹어 온 근육을 풀어내고
밟고 문지르고 두들기고 눌러주기를 한 시간여.
고개를 숙일 때마다 찢어질 거 같던 등짝의 고통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쥐약을 먹고 일한다는 그녀의 깔깔대는 웃음은
박카스 한 병에 다시 일어나는 일상이며,
맨소래담과 잘게 썰은 오이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기술자다.

5천원의 팁을 얹어 드리며 꾸벅 인사를 한 나는 맨몸뚱이였는데
갸날픈 체구의 검은 속옷을 입고 흰 타올을 허리에 두른 그녀가 말하기를
일주일은 주간, 일주일은 야간이니 전화번호를 가져가라 한다.
그녀의 호칭은 연정언니.
사우나파크의 세신관리사.

2013. 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