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 하러 와

멀리서 날아온 친한 동생을 만나기 위해 남산에 있는 모호텔에 갔다. 비행기 도착하고 여독이 풀리기도 전에 그런 거 없이 그냥 잠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방에 들어가 차 한 잔을 마시는데 그 비싸고 유명한 호텔방이 얼마나 클래식하던지.. 1980년쯤 되는 것 같았다. 멀리 보이는 남산타워로 수십년을 버티는 호텔임이 분명했다. 걸어서 남산을 돌아 명동까지 내려가 아주 오랜만에 이런 저런“커피 한 잔 하러 와” 계속 읽기

고양이 털끝

갑작스럽게 전화가 왔다. 이따 회의에 오시죠? 라는 뜬금없는 말이었다. 느릿한 억양으로 말하는 이 남자는 두꺼운 뿔테의 안경을 썼다. 얼굴의 반을 가리는 안경이었다. 매우 지적으로 보이려는 수작임에 틀림없었다. 지적이라기 보다 의뭉스럽다는 말이 걸맞은 사람이었다. 연락을 받은 것이 없다고 대답했다. 오라면 가야 하는 입장이다. 그게 내가 할 일이었다. 시간에 맞춰 도착하겠노라고 말했다.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고 가지 않을“고양이 털끝” 계속 읽기

한 사람이야기 3 – 정아

“에휴. 이러고 살아서 뭐하나 모르겠다.” “같이 죽어. 같이 죽어? 엄마 우리 같이 죽어?” 다섯 살 짜리 아들이 정아의 손을 잡았다. 정아는 신발을 신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길고 작은 정아의 눈은 또 초승달이 되었다. “뭘 같이 죽어? 쪼끄만게!” “엄마 맨날 죽어?” 정아는 괜한 말을 했다고 후회하였다. 약 3초간. “너 어디 할머니 앞에 가서 그 소리 해봐라. 뭐라“한 사람이야기 3 – 정아” 계속 읽기

만날 수 없던 사람, 만날 수 없는 사람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마음으로 모였다. 추도 예배 내내 훌쩍이는 소리와 견딜 수 없어 터지는 탄식이 있었다. 추도 예배임에도 불구하고 고인의 유족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그만큼 모두들 가슴 속에 불 한 덩어리 크게 얹혀 있었을 것이다. 뻔히 아는 길을 가면서 계속 직진만 하느라 길을 뺑 둘러갔다. 어쩌면 그 장례식장에 영원히 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거다. 어떤 소란이 있었다고 한다해도 모두가“만날 수 없던 사람, 만날 수 없는 사람” 계속 읽기

사람은 지혜가 있대

엄마 나는 태권도 쭉 해서 상장도 받고 트로피도 받을거야. 응. 아주 좋은 생각이야. (상상이 안 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난 나름대로 친절한 대답 잘 해줌) 엄마도 좋다고 생각해? 그럼. 근데 예환아, 예환이는 공부를 잘 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은 생각도 있어? 있어! 그래? 근데 공부는 언제까지 해야 해? 음.. 누나처럼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도 가고 싶으면 가는“사람은 지혜가 있대” 계속 읽기

사람구경

1. 나는 사람을 믿지 않지. 라고 쉽게 말하곤 했다. 그게 아마 작년까지였는지, 올 여름까지였는지 모르겠다. 사람은 예측할 수 없지. 라고 지금은 바꿔 말할 수 있다. 영 능력이 안되는 것 같던 사람이 갑자기 뒷심을 크게 발휘하는 경우도 있고, 매우 잘 해낼거라 기대했던 사람이 바닥을 기는 경우도 본다. 사람들의 진정성, 순수성, 자율성, 자치적 능력들을 전혀 믿지 않으며“사람구경” 계속 읽기

사장님 사장님 우리 사장님

A양은 작년 P사를 아무 예고 없이 퇴사했다. 경리일을 보던 A양이 무슨 이유로 왜 퇴사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퇴사였다. 쉽게 말해 아침에 아무렇지도 않게 출근하여 사직서 한 장을 던져놓고 짐을 싸서 나가버린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 날은 월말이 가까웠고 세금 낼 것도 산같이 쌓여 있었다. 대표이사가 나서서 모든 세금 문제와 결제문제를 해결했다. 전직원은 한달동안 멘붕을 제대로“사장님 사장님 우리 사장님” 계속 읽기

날 미워하는 자 고마워요

사람이 없다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 이제 깨닫는다. 사람이 없을 때는 그 허기조차 느끼지 못했던 것도 깨닫는다. 내 주변에 모두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참 인복이 많다고 생각했던 이유다. 내 주변엔 인품이 훌륭한 사람도 많고 독한 사람도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적 있다. 물론 그보다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세상은 나한테 쌀 한 톨“날 미워하는 자 고마워요” 계속 읽기

자기 역사를 지우다 – 드라마 야왕

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가난한 집에 태어나 부모가 자살기도 하는 것을 목격하다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만 살아남았다. 아버지가 죽는 현장에서 한 남자가 엄마를 구해낸다. 아이는 고아원에서 자라다가 재혼한 엄마가 아이를 찾으러 온다. 성폭행을 일삼는 의붓아버지에게서 도망쳐 엄마와 단 둘이 살아간다. 지병으로 엄마가 죽는다. 소녀는 어리고, 돈이 없어 장례를 치르지 못한다. 이 때 이웃의 한 청년이 나타나 소녀를“자기 역사를 지우다 – 드라마 야왕” 계속 읽기

연정언니

숭고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러하다. 다 큰 성인의 벌거벗은 몸을 앞으로 뒤로 옆으로. 겨드랑이와 항문주변까지 구석구석 밀어내어 피부의 죽어버린 껍질을 벗겨내는 일. 단지 완력으로만 되는 일이 아니고 요령과 기술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이, 힘의 조절이다. 힘을 빼야 할 때 빼고, 강하게 밀어야 할 때 밀어야 하는 것일진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완급 조절을 하지“연정언니”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