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어두운 밤 두레박에 물 길어올리듯 그깟 반쯤 깨진 두레박엔 물이 반밖에 안 찼을 테지만 낡은 펌프의 삐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물을 긷는 갈증 소리가 절반을 해갈한대도 하루는 코 한 올이 풀린 그물 같은 것 빠져나갈 물고기가 아쉬워 뒤척이는 어부의 이부자리처럼 배는 곪지 않아도 먹고 살 일이 까마득해 먼 바다에 나가 안개만 먹고 노래했으면 그리운 것이 많아“새벽” 계속 읽기

초승달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콧수염 사내가 말했지. 요즘들어 잘 알지도 못하는 그 사내가 참 그립네. 처음에는 비극으로 나중에는 희극으로 온다는 말은 참담하다. 수많은 비극을 겪어야만 한다는 건지. “칭얼칭얼”을 하지 못해 그 자리에 “씨발씨발”을 넣는 어른들이 있네. 익숙했던 풍경은 수십년이 지나도 그대로 반복되고, 우물속에 빠진 두레박에 어린 계집애 둘이 떨고 있는 그림이 되네.“초승달” 계속 읽기

풍선이 뒹구는 밤

오후부터 비가 내렸다. 가까운 곳에 친구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언제나 같은 생각을 한다. 초등학교부터 한 동네에서 살던 녀석들과 겨울밤 거의 매일 모여 삼치구이에 소주를 마시던 생각을 한다. 꼭 삼치를 시켜달라 하고 꼬닥꼬닥 졸던 녀석이 있다. 집에 가서 자라고 욕지거리를 해도 있다 갈꺼라 했다. 그 때 우리는 서른을 몇 년 남겨두고 있었다. 아무리 마셔도 취할 것“풍선이 뒹구는 밤” 계속 읽기

어스름

  해 지는 시간이 늦어진다. 하루가 추웠다. 나만 추웠겠는가. 그도 추웠을 것이고, 당신도 추웠을 것이고, 우리 모두, 조금씩 시린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따듯한 것이 생각나서 나는 설렁탕을 사러 간다. 검은 나의 차를 타고 어스름이 내리는 거리에, 네온사인이 들어오는 광경을 본다. 가족들과 밥을 먹으러 나온 사람들이 식당에 삼삼오오 앉아 있기도 하고 야근을 하기 전 허기를 달래려는“어스름” 계속 읽기

도시의 극장

갑작스럽게 내 신변을 환기할 필요가 있었다. 스트레스 저항력이 약해지는지, 이제는 몸의 증상으로 치환되는 일이 너무 잦아지는 중이다. 사소한 일을 마치고 나서 갑자기 진땀이 나고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까지 아파져 급하게 휴대폰 어플을 켜고 제일 빨리 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의 극장에 영화예매를 했다. 바지만 다른 것으로 갈아입고 외투를 챙겨입고 부랴부랴 어두워 지는 밤길을 달려 극장까지“도시의 극장” 계속 읽기

도시, 한 밤중

아이를 재우다 잠들었고 새벽 2시 반이 넘어 깼다. 내가 자고 일어나면 무조건 밖에 나가는 줄 아는 개를 데리고 아무도 없는 길의 짧은 산책 아무도 없는 새벽, 신선한 공기를 마시러 나간 게 이런 풍경. 모두가 벽으로 둘러쳐진 아파트, 똑같은 풍경이라니 참으로 재미없고 정떨어진다. 아파트 생활 6년. 다시 또 생각한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2013.1.30.

봄 밤

밤벚꽃 아래 남자고등학생 애들이 시끄럽게 떠들며 덩치에 안 어울리는 놀이기구를 타고 놀고 있다. 공기는 차가운데 아이들의 목소리는 뜨겁다. 별 것 아닌 농담에 깔깔대는 앳된 사내의 목소리에 사춘기와 변성기를 지낸 여물지 않는 수컷의 성성함이 낯설다. 그저 아이들은 웃고 있을 뿐인데, 그 소리들을 제어해 본 적 없는 치기에 아파트 단지가 우렁우렁하다. 줄여입은 교복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작은 아파트“봄 밤”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