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원입니다

정의당원입니다.

 

시민이지만 여기저기서 의견을 낼만한 위치에 있다보니 선거를 앞두고 당적을 밝힙니다.

 

어려서부터는 민주당을 오래 지지해왔습니다. 민주당도 미통당 만큼이나 이름을 바꾼 적이 많지만 모두 통칭해 민주당이라고 하겠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3당 합당에 대해서 “이의있습니다”를 외쳤을 때부터 민주당을 지지해왔습니다. 아주 어릴 때지만, 용기있는 모습이 멋졌습니다. 무서운 사람들 앞에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라면, 저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세상이 오길 바랐습니다.

2012년 총선은 당시 나꼼수의 열풍으로 민주당이 다 이길 줄 알았지만 애석하게 새누리당보다 의석수를 적게 얻었습니다. 다 깔아놓은 판이었는데 민주당도 잘못 판단한 것들이 있었습니다. 민주당을 욕하는 무리들도 있었지만, 내가 민주당에 해준 게 없는데 욕하는 것도 우스워보이더군요. 당원이 아닌 입장에서 정당을 욕할 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각 정당은 내부결정을 통해 외부에 의견을 개진합니다. 그 당을 바꾸고 싶다면 그 당의 당원이 되어야 하고 내부에서 역할을 해야 정당할 것입니다. 민주당원으로 가입하지 않았지만 항상 민주당을 응원하고 지지했습니다.

 

2016년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벌어지고 2017년 조기대선으로 민주당이 결국 정권을 다시 잡았습니다. 기쁜 일이었죠. 또한, 2017년 이후 우리의 정치지형이 바뀌길 바랐습니다. 자유당계열의 세력들이 정치판에서 완전히 소거되고 민주당이 제자리를 잡아 중도보수의 역할을 해주면서 극우로 쏠려 있던 우리나라의 정치판이 왼쪽으로 조금씩 이동해 중심을 잡아가길 바랐습니다. 이제 바라던 대로 조금씩 이동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노회찬 의원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울분과 비통함을 참을 수 없었고, 그가 꿈꾸던 세상을 함께 만드는데 일조하기 위해 정의당에 가입했습니다.

개인적 명분은 언제나 제1야당을 지지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제1야당은 명확히 얘기하자면 자유당에 뿌리를 둔 미통당이겠지만, 저는 미통당을 정당조직으로 보지 않습니다. 썩어빠진 봉건영주카르텔이거나 비즈니스를 위한 사이비집단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이들은 영웅을 만들고 그에 줄서서 신탁을 받기 원하며 개인의 영달과 이득을 위해 어떤 파렴치한 짓도 서슴치 않으며, 공익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따라서 제가 생각하는 제1야당은 정의당입니다. 제1야당을 지지하는 것은 정치지형이 계속 변화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앞장 선 야당을 지지하고 그에 힘을 실어주되, 그 다음 번 판이 펼쳐지면 또 다음 제1야당을 지지하게 될 것입니다. 민주당이 여러 실수를 했듯, 정의당도 여러 실수를 할 것입니다. 지금도 비난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여론이 나쁘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정의당이 먹는 욕은 내가 먹는 욕과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내가 소속된 집단이 욕 먹는게 쪽팔리니 탈당하는 것이 옳겠는가. 내부자로서 어떻게든 잘해보도록 의견도 내고 내부에서 싸우기도 해야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요? 내가 힘 보태는 게 없더라도, 같이 욕받이라도 하려고 들어간 겁니다.

 

노동당이나 민중당, 녹색당의 정책과 철학이 저와 맡는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제가 대단히 진보적이지도 않고요. 정의당은 내부에서 보면 경제활동으로 봤을 때 소상공인과 비정규직에게 맞는 정당입니다. 저의 사회적 정체성과도 맞습니다.

 

현재 제가 살고 있는 곳은 심재철 미통당 원내대표가 5선째 지역구 의원을 하고 있는 곳입니다. 왜 우리 지역구 사람들이 계속 심재철을 찍어주느냐, 타 지역에서는 동안을 지역주민들이 똥멍청이라 그렇다고 비난도 합니다. 중앙에서 인정받는 정치인이 지역에서 낙선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지역구에서 잘 안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지역에서는 잘 하는데 중앙에서 영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지역은 그동안 민주당이 제대로 된 대항마를 내세우지 못한 면도 있지만, 심재철이 그만큼 지역구 관리를 티나게 잘 해왔습니다. 과장도 있고 특유의 수단도 있지만, 어쨌든 지역에서 큰 불만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건 인정해야 합니다.

이번에 안양에서 민주당의 다선 의원 두 명이 경선에서 떨어졌습니다. 안양시민들의 결정입니다.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겁니다.

 

저는 우리 지역구 사람들이 정말 똥멍청이라 계속 심재철을 찍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국의 대중은 정치인을 잘 부리는 특성이 있습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습니다. 써먹을 만 하니 찍어준거고 써먹을 게 없으면 버리는 겁니다. 저는 언제나 시민의 선택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투표때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기가 막힌 균형을 만들어냅니다.

 

미통당 정치인들은 시민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말없이 투표장에서 그들을 뽑는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다 그 지역만의 이유가 있습니다. 대구 경북이 촛불이후에도 계속 자유당계열이 승리하는 것도, 그 이유가 있는 겁니다. 일반 시민의 정치적 결정에 대해서 비난할 권리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민주당의 투쟁과 역사를 존중합니다. 하지만 민주당은 분명히 여당입니다. 의원수도 가장 많고, 대통령도 있습니다. 미통당을 제거하기 위해 여야연합을 한다는 게 과연 민주적인가 생각합니다. 제일 큰 권력을 가졌는데 ‘우리 힘으로 역부족’이라는 말은 부끄럽습니다. 국민 모두가 민주당을 전폭적으로 지지했고 지금도 지지하고 있습니다. 미통당을 반대할 수 있지만 미통당을 지지하는 시민들까지 모두 멸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게 진보진영에서 늘 주장하는 다양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2020년 현재, 정의당원입니다. 회비를 내는 권리당원이고요. 욕 먹는다고 도망갈 생각 없고요. 당원으로 남아 같이 욕을 먹을 겁니다. 불가능한 것에 도전하는 게 성향에 맞습니다.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더 잘 해주길 바랄뿐입니다. 그리고 시민의 역할은, 권력에 대한 감시에 있습니다. 촛불로 이룬 정권도 잘 감시해야 민주주의가 발전한다고 믿습니다.

 

한 가지 더,

저는 전 국민이 당원이고 조합원이고 단체 회원이길 바라는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이 각자의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고 발언을 할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숨죽여 말도 못 꺼내고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어가지 않기 위해, 모두가 정당인이고 조합원이고 회원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지금 페친이 너무 많아요. 먼저 끊어주시면 감사.

피해자가 책임지는 사회

하천의 쓰레기가 줄어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 쓰레기를 주워요.

니들이 버린 게 아닌데?

– 누군가는 치워야 하잖아요.

오. 착하네. 근데 그건 하천 관리에 들어가는 거 아냐?

– …

하천 관리 책임은 누구한테 있어?

– 사람들하고.. 시청요.

그럼 착한 사람들이 쓰레기 치울 때 시청은 뭐해?

– …

세상에 착한 사람이 더 많을까 나쁜 사람이 더 많을까?

– (다양한 대답)

쓰레기 버리는 사람은 언제나 있어.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은 없어. 그럼 어떻데 해야할까?

– 쓰레기 버리는 사람을 잡아요.

어떻게?

– CCTV요.

CCTV가 있으면 쓰레기가 줄어드나?

*이쯤되면 애들이 피곤해하기 시작한다.

CCTV는 검거가 목적이지 예방이 목적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예방도 가능하지. 개천에 쓰레기를 버리는 경우는 지나가면서 휙 버리는 것도 있지만 작정하고 자기 집 쓰레기를 가져다 버리는 사람도 있어. 그런 사람이 많은 동네라면 자기 집 앞에 쓰레기를 버리는 게 힘들다는 뜻도 되겠지. 그러면 집 앞에 쓰레기를 잘 버릴 수 있는 조건이 안 갖춰졌다는 뜻일 수도 있거든. 그걸 살펴봐야해.

내가 왜 이렇게 복잡하게 말하느냐 하면,

아까 기름 유출된 거 얘기할 때도, 주민들이 나서서 거둬야 한다고 해서 그래.

예전에 태안에 삼성 배가 허베이스피리트호라는 현대오일뱅크 유조선이랑 부딪쳐서 기름이 바다에 쏟아진 적이 있어. 그때 사람들이 다 달려가서 그 기름을 걷어냈어. 자원봉사로. 근데 그 책임은 누구한테 있지? 기업이 책임을 회피하는 사이에 너희같은 착한 사람들이 가서 기름을 다 닦아버렸단 말야. 범죄현장을 다 치워줬다고.

게다가 그 사건의 이름을 태안반도 기름 유출사건이라고 붙였어. 전 세계 어디에도 선박사고에 지역 이름을 붙이는 경우는 없대. 나도 찾아봐서 알게 된 거야. 사고 지역의 이름을 붙이면, 마치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처럼 여겨지거든.

왜 항상 피해자들이 책임을 질까?

나는 그런 걸 물어보고 싶어.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은 따로 있고, 늘 착한 사람들이 뒷수습을 해. 그건 왜 그래?

그걸 생각해보자는 말이야. 착한 사람들도 언젠간 억울해지지 않겠어?

#피해자들이_책임지는_사회

이 나라는 이게 전통이다.

항상 피해자가 증명하고 피해자가 소명하고 피해자가 처리한다. 환경오염 뿐 아니라 성폭행도 그렇고 배달하다 알바가 죽었는데 청소년에게 노동교육을 시킨다. 을들에게 너희가 잘 해야 된다, 권리를 주장하라고 말한다.

갑들은 교육을 받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을들에게 교육하려는 사회가 비겁해서 그렇다. 이 사회는 비겁의 향연이다. 사업자등록증을 받으려면 노동법 교육을 받아야 하는 조항은 없다. 노동현장에 들어갈 사람만 노동교육을 받는다. 대기업하고 싸우지도 못하는 인간들이 무슨 을들을 교육시키자고 하나. 안전교육은 건설현장 노동자들이 받는다. 건설사 갑들은 거기서 빠진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을 잘 봐야 한다. 사회가 부패할수록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 부패를 가리는데 사용한다. 새로운 시스템은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부패로 부를 축적한 이들이 벼랑에 몰릴 때 쓰는 방법이다.

교육계에 새로운 것들이 자꾸 등장한다.

본질을 해결할 의지가 없는 것이다. 덮고 가자는 것이다. 오염된 땅을 낙엽으로 덮고, 짚가래로 덮고, 눈으로 덮고, 시멘트로 덮고, 아스팔트로 덮고, 폐타이어로 트랙을 만들어 덮고, 바닷가의 돌을 가져다 지압장을 만들어 덮는다.

새로운 시스템을 의심하면

본질은 이미 회복할 수 없을 만큼 망가졌다는 결론이 나온다.

2018. 11. 22

컬링 vs 팀추월

<컬링 VS 팀추월>

올림픽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수백년된 나무를 베어내는 걸 몰랐더라도, 순실이가 개입했다는 걸 몰랐더라도, 난 스포츠가 만들어내는 감동의 드라마 따위에 관심을 잃은 지 꽤 되었다. 교훈적인 이야기는 진부했고, 현실에서 의미를 찾는 것도 귀찮았다.

올림픽 개막식이 이슈가 되고, 올림픽에 대한 관심은 북한이 온다는 것 하나. 대통령에 대한 인기가 올림픽을 이끌어가는 건 아닌가 의심도 했다.

그러던 중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두 가지 일어났다.

여자 컬링이 사상 최초로 상위권에 진입했다는 것.

그 안에 숨은 스토리가 재미있었다. 동네 언니와 친구가 학교 방과후 수업으로 시작한 취미생활이 국가대표까지 오르게 했고 이 글을 쓰고 있는 21일 저녁, 여자 컬링 대표팀은 조별 예선 7승 1패로 현재 덴마크와 경기를 치르고 있다. 경북 의성의 의성여고 출신인 네 명은 잘 알려진대로 영미랑 영미친구, 영미 동생, 영미 동생 친구로 구성된 지연과 혈연의 팀이다.

의성은 마늘로 잘 알려진 고장이기도 하지만 몇 달전 발표된 조사결과에 의하면 인구소멸도 1위로, 사라질 가능성이 가장 높은 도시 1위이기도 하다. 시사인에서 취재한 기사를 보면 의성엔 산부인과가 없고 노인인구만 남아 의성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 사람들도 인근 대도시로 다시 나가야 하나 고민한다는 얘기가 있다.

의성 사람들은 설령 인구소멸가능성이 1위더라도, 그 사실을 입에 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그런 도시에서 세계 1위를 할 지도 모르는 여성 스포츠팀이 나타났다.

어릴 때부터 엘리트 체육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것, 동네 언니, 동네 친구가 뭉쳐 올림픽까지 왔다는 건, 수년간 인기를 끈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과 비슷해 보인다. 이 팀의 인기는 혈연과 지연으로 꽉 짜여진 이 나라의 정서에 맞아 떨어지면서도 그들이 비수도권출신으로 성공스토리를 써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과거사를 밝힌 의성의 전 구의원의 글도 이슈가 되었는데 가정형편이 부유하거나 뛰어난 엘리트가 아니었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칠판에 <컬링 배울 사람> 이라고 쓴 글을 보고 하나씩 모여들었다는 건, 보는 사람들에게 “나같이 평범한 사람”이 “나만큼 평범한 친구”를 만나 말도 안되는 도전을 했다는 얘기로 들린다.

단언컨대 이번 동계올림픽 최고의 스타는 컬링여성대표팀이며, 그 이유는 영미와 영미친구와 영미동생과 영미동생친구이기 때문일 것이다.

컬링팀의 인기가 치솟는 사이에 여성 팀추월에서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 생겼다. 팀추월이 무슨 경기인지 알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팀워크를 이루지 못하고 한 사람을 따돌린 것으로 보이는 영상에 흥분했다. 한 명의 주자를 이끌지 못하고 낙오시킨 채 결승점을 통과하고, 실소를 뿜은 한 선수가 있었다. 밤새 대표팀 자격박탈과 빙상연맹 해체를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이 일어났고 이틀밤이 지난 오늘 이 청원에 동의한 사람들의 숫자가 50만명이 넘었다. 분노를 금치 못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놀라웠다.

가장 약한 고리를 공격한다는 이야기와 선수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의견에 이어 빙상연맹의 오래된 파벌문제와 전명규 부회장의 공과논란이 엘리트체육교육에 관한 성토로 이어졌다.

하룻밤새 30만명 넘게 청원했다는 얘기를 듣고 몇 개 커뮤니티 게시판을 들여다보았다. 사람들은 따돌림 당한 것으로 보이는 노선영 선수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있었고 그 사연에는 각자 겪었던 공동체 내에서의 따돌림 경험이 섞여 있었다. 수십개의 게시글을 읽고 나서 나는 분노의 원인을 여럼풋이 느낄 수 있었다.

이 나라는 라인을 잘못타면 망하기 십상이고, 알량한 권력때문에 불이익을 당하기 쉬우며 자기 의사를 솔직하게 얘기했다가 어느 편에도 끼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이 억울한 경험은 고스란히 공동체의 기억속에 쌓여 있었다.

2016년부터 이어져 결국 대통령 탄핵까지 이어진 촛불혁명의 불쏘시개는 정유라였다. 최순실과 정윤회의 딸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특혜를 받았던 아이. 그래서 달그락 훅, 하는 것으로 명문대학을 다녔고, 수십억의 기업체 후원을 받았으면서 “부모 잘 만나는 것도 능력”이라는 아무리 생각해도 말도 안되는 주장을 했던 정유라에게 사람들이 분노했던 건, 특혜였다.

안 그래도 출발선이 다른 아이가, 특혜까지 받았다는 것, 평등과 호혜를 거스르는 일이다. 꽤 많은 인류가 민주주의를 선택한 이유는 더 넓은 평등과 더 많은 자유를 쟁취하기 위함인데, 돈과 권력을 가진 집안의 아이가 그 이유로 특혜까지 받는다면 수많은 민중이 민주주의를 지향해봤자 다 헛거다.

동료가 쳐진 것을 두고도 마지막 스퍼트를 올리고, 인터뷰에서 피식 웃어버린 김보름 선수에 대한 비난을 보며 사람들은 정유라를 떠올렸을 것 같다. 스피드 스케이팅이 엘리트체육이 아니면 도전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건 동계올림픽을 보는 사람이라면 아는 일이고, 게다가 대학과 파벌로 나뉘었다는 얘기까지 알려지면서 이 집단감정의 오버랩은 점점 강화되는 듯 하다.

사람들이 말하는 적폐는, 평등과 자유를 저해하는 수많은 집단의 구조일 것이다. 팀추월을 보며 화를 낸 이유도, 컬링을 보며 환호하는 이유도, 모두들 좀 더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꿈꾸기 때문이라고 본다.

누군가의 실수, 누군가의 행운 따위를 말할 필요는 없겠다.

나는 이 두 사건으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토리가 무엇이고, 지금 필요한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았을 뿐이다.

2018년 지금 이 나라 민중들의 원하는 스토리가 무엇인지, 왜 무한도전이 수년간 인기를 끌 수 있었는지, 우리가 가장 혐오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세상은 우리가 좋아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게 미래를 만든다고

더 많은 내부고발자

 

외부충격이다, 음모론이다,

잠수함이다, 암초다.

믿고 싶지 않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이유를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우리는, 그 커다란 배가 어찌 그렇게 넘어갔으며, 모두가 살아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너무나 당연해보였던 예상을 뒤엎고 너무 많은 아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생중계로 봤기 때문이다.

그날 해가 지던 순간을 기억하는가.

청문회에 나와 마이크 앞에 앉은 자들은 모두 그날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헌법재판소에서는 “그날은 일반 국민들도 자기가 뭘 했는지 기억할 수 밖에 없는 날”이라고 했다.

2014년 4월 16일, 해가 지던 순간을 기억하는가.

목이 메이고 눈물을 참으려고 눈알이 벌개지도록, 당신도, 나도 TV 화면을 바라보며 옥죄어드는 가슴을 부여잡고 있었으니까.

해가 진다,

해가 진다,

해가 지면 안 되는데,

해가 지면 안 되는데.

그날 아침 8시 49분, 세월호가 침몰했고, 뉴스 속보가 떴다.

진도 앞바다 여객선 침몰. 이라는 속보를 보고 앞바다라니 별 일 없을거라 생각했다. 비어 있는 큰 아이의 방문을 닫다가 한 여자아이를 보았다. 젖은 생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교복을 입은 아이가, 큰 아이의 방에 잠시 섰다가 사라졌다. 아이의 머리는 길었고 앞머리가 단정했다. 그 교복은 하복이었다. 살아남은 아이들이 나중에 학교로 돌아올 때 입었던 그 교복의 형태. 반팔의 흰 셔츠로 되어 있는, 짧은 치마와 흰 양말이 흐릿한 형체.

팔에 돋는 소름을 거두고 서울 서초에서 볼일을 보고 나올 때 전원구조라는 속보가 떴다. 그리고 나는 제암리에 있었다. 제암리교회에 도착해 기념관을 둘러보고 자목련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바람이 적당히 불었고, 공기가 텁텁했다. 봄마다 오는 그런 날이었다. 갑자기 대기가 묵지근해지고 바람엔 먼지와 모래가 섞여 있는 듯 하고, 멀리서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자꾸 아른아른하고 몽롱하게 들리는, 햇빛은 나지만 찬란하지 않은, 조금 걸으면 몸이 더워져서 겉옷을 벗어들게 되는, 화창하지 않은, 그런 날이었다.

바람이 불어 자목련 잎사귀가 마구 떨어지는 것을 영상으로 찍으며, 전원구조가 오보였다는 걸 알았다. 나는 왜, 지금, 왜 하필이면 여기 제암리에 있는가, 참담했다.

별 일 없을 거라 믿었다. 침몰했다는 여객선은 거대했고, 쉽게 넘어갈 것처럼 보이지 않았으며, 진도 앞바다라 어민들도, 해경도, 모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저녁이 되면 아이들이 오돌오돌 떨며 담요를 뒤집어쓰고 엄마아빠에게 안겨 실컷 울다가 저주받은 수학여행이라 운수가 나빴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믿었다.

저녁이 되면, 전 국민이 뉴스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고 대참사를 피해가는 과정에 등장한 시민영웅이 한두 명쯤 나와 인터뷰를 할 것이라고, 믿었다.

당연하게 펼쳐질 거라 생각했던 뉴스는 없었다. 진도에는 비가 왔고, 아이들은 바다에서 나오지 못했고, 아이들이 왜 나오지 못하는지, 알 수 없었다. 비 오는 진도에서 비옷을 입고 청와대로 가겠다는 길이 막혔고, 우리의 모든 소망이 그때부터 가로막혔다.

이후로 우리는 바다, 침몰, 여객선 같은 단어를 쓰기 어렵다. 노란색, 배, 고래, 리본을 보면 가슴이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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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2일, 안양 범계역

자로의 세월X는 돌을 던진 셈이다.

그는 동영상 시작부분에서 “개인적 견해”라는 점을 밝혔다. 이렇게 2년간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 궁금해 한 사람이 있다고, 그게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려주며 모든 것을 원점에서 재수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정유라가 독일에 있고 독일검찰이 수사에 들어갔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한 네티즌이 썼던 댓글을 잊지 못한다. “독일이 어떤 나란데. 과거를 청산한 나라다.”

오늘은 자로의 세월X가 업로드되었고 언론에 조명을 받았다. K스포츠재단의 내부고발자가 한 명 더 나타나 이제 K스포츠재단내의 내부고발자가 세 명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의인”이라 칭함은 옳지 않으나 “내부고발자”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과거를 청산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죄를 인정하고 처벌을 감수하되 개인의 사익을 위해서라도 더 많은 공익을 위해 위험을 감내할 각오를 보였다. 지금 여기엔 더 많은 내부고발자가 필요하다. 세월호를 잊고 싶던 개인의 내면, 유가족들에게 가졌던 불편한 마음의 내면, 고통을 응시하지 못했던 비겁한 내면, 때로는 잊히길 바랐던 이기적인 내면, 그 모든 내부에 깊숙이 파고 들어가 다시 끄집어내고 이 모든 것을 전부 다 바로 세워야 한다고 말하는 각자의 내면의 고발이 필요하다.

그날 아침부터 모두들 해가 지기 전에

아이들이 돌아오길 바라는 그 하룻동안, 박근혜는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일정이 없는 날이니 느즈막이 일어나 드라마를 보거나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며 쉬었을 것이다. 배가 가라앉았는다는데 해경은 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냐고 질책하며, 본인은 아무 책임이 없다는 것을 굳게 확신하며 머리를 올리고 화장을 한 뒤 중대본으로 갔을 것이다. 책임자들이 제대로 구조하지 않은 것에 분개하며, 자신의 임무에 집중했을 것이다. 박근혜가 알고 있는 자신의 책임은 오로지 의전뿐이니까.

그런 자를 대통령으로 뽑아 앉힌 자들이 내 이웃에 있다. 어떤 기관의 보안손님이고 싶었던 내 내면에 최순실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더 많은 내부고발자가 필요하다.

왜 그랬을까.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작은 욕망들이 뒤틀려 기괴한 모습으로 갑작스럽게 튀어나올 때 일어난다. 왜 그랬는지. 세월호의 진실은 아무리 파헤쳐도 우리가 죽는 날까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아이들을 왜 구하지 못했는지 왜 구하지 않았는지 세상이 끝날 때까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어떤 진실도 살아남은 자들을 설득할 수 없다.

그리하여 우리가 할 일은 명확하다.

끊임없이 의심하는 일. 지치지 말고 진실을 파헤치는 일, 끝까지, 책임을 묻고 스스로 내부고발자가 되어 이 모든 과거를 청산하는 일. 살아남은 자들의 의무다.

2016년 12월 26일

그날, 2014년 4월 16일, 화성 제암리

박근혜 이후 – 시민의회 답변내용

citizenassembly.net 에 공동제안자로 참여했는데 다음 세 가지 질문에 답변을 요청해와서 적어본 내용입니다.

 

1) 87년 이후 민주화 시대가 열린 듯 보였지만, 지난 30년 동안 우리가 믿어왔던 한국의 민주주의는 가짜에 가까웠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무너진 대의민주주의의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87년 체제가 가짜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만큼도 잘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87년 이전의 이 국가는 누군가 가져다 준 민주주의의 한 토막, 공화제의 한 토막을 가지고 스스로 자위하며 살아온 건 아닐까요? 87년의 투쟁으로 얻어낼 수 있는 수준 자체가 아니었을 겁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배운 적이 없습니다. 배운 적 없는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해 낸 민주주의과 공화제를 시민들의 힘으로 결합시켜 헌법을 개정하고 직선제를 쟁취하고 군부 독재 정권을 종결한 것도 큰 업적이라 생각합니다.

이후 독재정권은 바로 신자유주의, 자본의 폭주로 가면을 바꿔 씁니다. 신도시 개발이 바로 그 시발점이었다고 봅니다.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전면에 나서야 하는 일이지만, 자본은 거대해서 그 뒤에 숨어 폭력을 휘두르기 좋습니다. 그저 폭력정권은 시대가 바뀌자 그에 걸맞은 열차로 바꿔 탄 것일 뿐입니다. 시민들이 이를 알아채지 못한 것입니다. 괴물과 싸우다 보니 괴물이 된 것이 아니라, 폭력정권이 얼굴을 바꾼 것을 미처 알아보지 못한 것이겠지요. 시대에 영합하는 재빠른 이들이 바꿔 쓴 가면을 이제야 알아챈 것은 아닐까요?

 

 

2) 당신이 생각하는 진짜 민주주의‘. ‘새로운 민주주의는 무엇인가요? 민주주의를 재편한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지방자치제의 확립, 균형있는 발전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 실행안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굽은 나무가 마을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곧은 나무도 마을을 지킬 수 있는 제도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입시제도를 어찌 바꾸느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이 나라 대부분의 적폐는 입시제도 중심으로 벌어져 왔습니다. 성적순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제도를 뒤집으면 우리가 처해 있는 수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서 지역별로, 모임별로 꾸준한 공부모임과 토론방이 이어져야 합니다. 모든 공적기관, 공공시설물의 사용권을 확대하여 시민들의 모임이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공공기관과 정부는 시민모임을 적극 지원하고 지역별로는 직접민주주의에 가까운 형태가, 이를 집적하여 대의민주주의를 이루어나가는 이중구조를 유지해 나가야 합니다.

입법기관이 절대적으로 대리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3) 국가 위기의 상황마다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 촛불이 국면을 전복한 경험을, 우리는 아직 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촛불을 꺼트리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2번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지역별, 모임별로 꾸준한 시민모임이 이어져야 합니다. 시민단체들은 시민단체의 유무를 인지하지 못하는 시민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시민단체들이 자생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도록 개방적인 체계로 급전환해야 합니다. 운동성을 유지한다고 세상과 격리되어 있는 단체들도 있습니다. 시민단체가 가장 먼저 변해야 합니다. 문턱을 낮추고 쉽고 편안한 말로 마을에서 함께 느리고 느슨한 연대를 추구해야 합니다. 거기부터 다시 시작입니다.

이는 제2의 건국에 다름아닙니다. 대신 싸워온 사람들이 먼저 일어나야 합니다.

 

지금, 201611, 촛불을 경험한 사람들은 성공의 기억을 가진, 집회와 시위를 즐기는 자들입니다. 이런 시민들을 이겨낼 세력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공의 기억을 더하고, 모이기에 힘쓸 때입니다. 각 지역별 활동가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시점입니다.

1987년, 민주주의는 더디게 온다 

1987년 나는 6학년이었다. 우리 담임선생님은 젊은 여선생이었는데 화장은 거의 하지 않고 개량한복을 입고 다녔다. 입술위에 검은 점이 있었다. 

선생님이 노래를 가르쳐주었다. 

“저 놀부 두 손에 떡들고 가난뱅이 등치고” 로 시작되는 노래였다. 

6월이 지나고 대통령 직선제가 선포된 이후 담임선생님이 나와 같은 반 남자 아이 하나를 불렀다. 

아마 그때 내가 2학기 반장이고, 걔가 부반장이었을거다. 성적은 비슷했다. 

담임선생님은 우리에게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되야 한다고 생각해?” 라고 물었다. 

나는 당당하게 

“노태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평화적인 정권이양이 이루어져야 88올림픽을 잘 치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88올림픽은 우리 나라에게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그래?” 라고 반문한 뒤, 그래, 하나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라고 말하고 내 옆에 섰던 그 녀석에게 물었다. 

이 녀석은 장래희망이 “직장인”이라고 쓰는 매력 터지는 녀석이었는데 대답하기를 

“김대중 선생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 녀석에게 선생님이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그 자식의 그 대답 자체가 충격적이었다.

내가 틀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거다. 

참고로, 내가 다녔던 학교는 서울 도봉구에 있었다. 

지금 어떤 6학년은 

다음 대선에서 누가 되면 좋을까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세 살짜리도 최순실을 아는 세상이 되었으니까. 

이제는 “누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누가 되더라도 “국민의 말을 귀담아 들을 사람을 뽑으면 좋겠지만, 감시할 권리와 의무는 우리에게 있다”고 말해야 하겠지. 

죽 쒀서 노태우줬던 87년은 실패였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그렇게 그렇게 더디게 오니까. 

당당하게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던 내가 부끄럽지도 않다. 내가 봤던 건 이득렬앵커의 뉴스 뿐이었으니까. 

모두가 어른들의 몫이다.
2016.11.29.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 조금.

1.

민주주의의 원칙이 다수결이라고 한다면, 다수는 늘 현명한 판단을 내릴 거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 혹은 그렇게 믿고 싶기도 하다. 소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이 명제를 전복시켜야 지배가 용이하다. 대중은 우매하며, 함부로 휩쓸린다는 가치를 내세워야 한다.

2.

대중의 무지함과 잔혹함을 역설하기 위해선 소수지배계층이 이 의견과 여러 사례들을 대중에게 지속적으로 노출시켜야 한다. 당신들이 의견을 모아봤자 모두 쓸데없다고. 그리하여 사회적 잔혹뉴스가 유통되면 그들에게 좋다. 신문의 사회면의 잔혹성과 비도덕성이 부각될 수록 대중은 서로를 의심하고 불신하며 스스로 차별화 하여 고립된다. 대중의 고립과 상호간의 불신은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3.

(1)대중이 우매한 권력자를 선택하거나 잘못된 주권행사 (투표/선거)를 하는 경우는 숱하게 많다. 이 상황의 원인중 하나로는 권력층에게 독점된 정보의 폐쇄성에 있을 수 있다. 말하자면, 은폐, 왜곡, 즉 거짓말이 정의(定意)로, 명제로 유통되고 점령하는 것이다.

4.

국가권력의 지도자가 올바른 민주주의에 입각한 정치를 하기 위해선 지도자를 앙망하는 정치가 아니라 시스템이 확고해야 한다. 이 경우 (2)지도자가 절대 善을 추진할 수 없음도 감안해야 한다. 훌륭하고 능력있고 선량한 지도자가 그러한 정책만을 펼친다는 것은 환상이다. 민주주의의 근본은 그 어떤 지도자도 독단적으로 어떤 것도 결정할 수 없음을 말한다.

5.

그리하여 법(헌법)과 중재, 감시기관이 모든 권력을 철저히 나눠갖고 이 시스템이 그 어떤 폭력적 정권이나 지도자가 나오더라도 변질되지 말아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감시체계가 되는 법을 누가 정하느냐와 감시기관이 특정계층에 의해 장악당했을 경우 민주주의는 보완할 방법이 없다.

(1), (2)는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 에 나온 문장의 차용입니다.
이건 책을 읽으며 한 생각들이고, 앞으로 더 좋은 생각이 나면 또 정리해보겠습니다.

2012. 3.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