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의 세상

동해 묵호에 가면 늘 들르는 화성곰치국.

아침7시부터 문을 여는 집이다. 도착하자마자 아침으로 곰치국을 먹으러 들어가려는데 문 앞에 발가락 양말을 신은 노인이 길에 걸어가는 노인 둘을 보고 이 집이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 문을 막고 서는 건 기본. 나는 그 앞에 가만히 서서 노인의 양말을 바라보았다. 노인이 소리를 지르다 침을 흘렸다.

7시 반이었다. 안으로 들어갔더니 단체 손님이 가득 차 있다. 꽃놀이 온 상춘객들이다. 일행을 향해 소리를 지르던 노인일행은 다른 팀인 모양이다. 우리는 자리가 없어 미처 치우지 못한 냉장고 앞 자리에 앉았다. 주인이 와서 빠르게 그릇을 걷어갔다.

우리 옆에 앉은 남성노인 일행에 아까 그 발가락양말 노인도 있었다. 유난히 목소리가 큰 남자가 내 오른쪽에 앉았는데 무슨 얘기를 하다가 뜬금없이 “좌파가 문제” 라고 큰 소리로 외치고 낄낄거렸다. 뉴욕이 어쩌고 아이들이 어쩌고, 미국에 다녀온 이야기들도 간간히 이어졌다.

“그 누구야 대통령 비서실장. 임종석이. 걔가 미국에 왜 못갔는지 알아? 걔가 빨갱이라서 미국에서 비자를 안 준다잖아. 걔가 예전에 임수경이가 북한가서 아바이 수령님 하기 전에 임수경이가 고등학생이었는데 그걸 걔가 다 교육을 시켜서 보낸 거잖아. 비서실장이 아주 빨갱이라고. 아바이 수령님 하던 애야. 그래서 미국을 못 간거야. 이게 온통 빨갱이 세상이여. 전쟁이 나면 말이지, 북한이 문제가 아니고 여기가 문제여. 정부뿐만 아니고 온통 빨갱이라고.”

나는 세월호 팔찌와 낙산사에서 산 기원팔찌를 끼고 다닌다. 오른손목을 보니 세월호 팔찌가 팔꿈치 방향으로 밀려 올라가 있었다. 팔목을 걷고 세월호팔찌를 잡아 끌어 손가락 쪽으로 당겼다. 조금이라도 더 잘 보이길 바랐다.

저쪽에 앉은 노인이 말을 이어갔다. 한쪽 다리를 뒤로 쭉 뻗은채. 노인의 발에서 큼큼한 냄새가 났다.

“근데 걔들은 일당백이야. 아주 조직적으로 움직인다고. 당할 수가 없어.”

세월호 팔찌나 리본을 하고 다니면 빨갱이라고 말하는 이들과 그들이 같은 부류라면, 나는 빨갱이천하가 되어도 아무 문제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런 노인들을 볼 때마다 이해하려 애썼고, 동정도 했지만, 이제 그럴 기력이 점점 떨어진다. 나도 당신들처럼 늙어가기 때문이다.

밥을 다 먹고 나와 계산을 하려고 섰을 때 그들도 밥을 다 먹어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임종석이 아바이수령님 하던 애, 라고 떠들던 노인은 반팔차림이었다. 성조기에 U.S.A라고 선명하게 프린트된 티셔츠를 입고 바지를 추키고 있었다.

2018.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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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호항 (2017.5)

 

묵호항은 꽤 큰 항구로 보인다. 묵호항으로 네비게이션을 찍으면 여객터미널이자 배가 드나드는 진짜 항구로 들어선다. 울릉도로 가는 여객선을 타는 터미널과 여객터미널이 분리되어 있다. 묵호등대는 상징물이 되어 그 주변에 등대오름길과 수변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묵호항 수변공원에서는 방파제가 이어져 있다.
이 동네 사람들은 내항이라고 부르는 곳에 바다쪽으로 다리를 놓았다. 파란색 금속펜스를 두른 전망대에는 동네 사람들이 몰려와 낚싯대를 던진다.
주인아저씨를 따라 나온 강아지가 딸랑딸랑 방울소리를 내며 바다를 들여다 보다가 뒷걸음질 쳤다. 엄마 아빠를 따라 나온 어린아이는 종이박스 안에 호일로 감싼 치킨을 먹으며 등대며 배의 불빛을 바라봤다. 오는 7월 묵호항엔 야시장이 열린다. 청년 판매자를 모집한다는 현수막이 있었다. 묵호항을 바라보는 언덕빼기엔 작은 마을이 있는데 논골마을이라며 벽화도 그리고 산책로를 조성해 놓은 모양이다.
근처 동해항은 물류가 오가는지 인적이 드문데 비해 묵호항은 사람이 많다. 묵호역에서 묵호항으로 들어가는 길엔 건어물 도매상과 묵호시장, 횟집이 늘어서 있다. 묵호항부터 시작된 해안도로는 망상해변까지 이어지는데 해안도로를 따라 숙박업소와 식당, 까페가 끊이지 않고 늘어서 있다.
묵호항에서 가면 인근 회센터에서 저녁을 먹는데 횟값이 싼 편은 아니다. 묵호항 주변의 회센터는 모두 비슷한 쌈장을 주는데 생선뼈를 삭혀 막장에 담근 것으로 보이고 생와사비를 주는 집이 없었다. 반찬에 꼭 찹쌀떡을 두어개 주는데 달달하다. 서빙하는 이들이 딱히 정감가지 않아 자세히 물어본 적은 없다.
아침에는 늘 화성곰치국에 가서 곰치국을 먹었다. 이 곳의 주인은 늘 밖에 서서 곰치가 가득찬 수조앞에서 뭔가를 하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투명한 수조에 들은 커다란 곰치에 관심을 보이면 곰치에 대해서 마구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곰치는 심해에 살아서 홍게나 새우 등 사람 몸에 좋은 것만 먹고 산다며, 그러니 이 곰치가 얼마나 영양가가 있겠냐는 논리다. 곰치는 살이 흐물흐물하고 생긴 게 못나 사람들이 잘 먹지 않았던 생선인데 부산 부근에서 신김치국에 곰치를 넣기 시작해 곰치국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묵호항 주변에는 곰치국 하는 곳이 가장 많다.
화성 곰치국 옆에는 4월에 새로 문을 연 마젠타라는 커피집이 있다. 인근에서 눈에 띄게 예쁜데 벽면은 사이언 색깔이고 간판은 마젠타다. 인쇄나 디자인을 한 사람들은 CMYK 색상표를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집은 8시 조금 넘어 문을 여는데 커피 맛도 괜찮은 편이고 젊은 커플이 운영한다. 몇 번을 마주치자 스쿠버다이빙을 해서 12kg짜리 문어를 잡아 동네 잔치를 한 얘기며 미역철이라 물에 들어가지 않고 바닷가에 다가온 것만 건져 말려도 맛있다는 얘기를 한다. 마젠타는 민박도 겸하고 있는데 평일엔 13만원, 주말엔 18만원으로 주변 민박에 비해 한참 비싼 가격이다.
인근엔 민박과 펜션이 많은데 민박은 비수기 평일 2만원, 주말 5만원 선이고 펜션이라 간판을 걸었어도 민박과 비슷한 구조면 가격대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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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에 떡하니 자리잡은 동해비취호텔과 꿈의궁전호텔은 손님이 늘 많은지 친절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꿈의궁전호텔 안에는 해수사우나가 있는데 목욕탕 안에서 바다가 보이긴 하지만 습기로 유리창이 뿌얘서 딱히 경관을 즐기기 어렵고 시설은 동네 오래된 목욕탕 정도다.
북쪽으로 해안도로를 타고 걸어 올라갈 정도 거리에 어달항이 있는데 어달항은 낚시를 하기 좋다고 조성해놓은 곳이다. 대한민국에 낚시꾼들이 그리 많은 줄 최근에 처음 알았다.
대진항을 지나 망상해수욕장까지 올라가면 오토캠핑장이 있어 북적인다. 봄이 되면서부터 카라반을 빌리는 사람과 캠핑장에 텐트를 치는 가족들이 많다. 망상해수욕장까지 철길이 이어져 있다. 해안철도는 옥계에서 내륙으로 조금 들어갔다가 바로 정동진으로 향한다. 해안철도는 남으로는 삼척역까지 이어져있다.
토요일 저녁 묵호항 인근엔 중년의 관광객들이 가득하다. 열 명 남짓한 남녀가 어울려 회에 술을 마시며 소란스럽게 떠든다. 깔깔대는 중년 여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사는 게 별 거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횟집에서는 너무 소란스러워 우리 주변에 앉은 내 또래 여자가 정중하게 항의를 하기도 했다. 정중한 항의는 순식간에 데시벨을 낮춰놨고 20대의 젊은 커플들은 고소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고 킥킥대며 웃다가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웠다.
관광버스가 저녁나절에 묵호항에 더러 들어오는데 한무리의 등산복 중년들은 도대체가 당할 재간이 없다. 자신감이 가득한 목소리와 거슬릴 정도로 거침없는 목소리가 외려 허탈하다. 사는 게 별 재미가 없는 순간이 이어지면 일부러 크게 웃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주로 그들을 이해하고 싶지만 자주, 내 일행과 대화가 불가능해지곤 한다.
동해를 오가는 내내 휴게소에서 그들을 만난다. 알록달록한 아웃도어를 입은 중년의 남녀들은 딱 달라붙는 바지에 잘 가꿔온 몸매를 뽐낸다. 배가 볼록 나온 아재들도 딱 달라붙는 드라이핏 셔츠를 자신있게 입는다. 가끔 그들이 팔짱을 끼고 지나가며 하는 말을 엿듣게 될 때가 있는데 한 사람의 삶을 가늠하려는 오만을 범하게 된다.
“애들 다 키우고 여우고 돈 쓸 데도 없으시겠네요. 호호호.” 와 같은 대화에 담배연기가 목에 걸릴 만큼 켁켁대고 웃게 된다. 사람의 욕망은 늙지 않을 것이고, 나의 세상과 그들의 세상이 그닥 멀지도 않다. 불과 몇 년 후면 젊은이들이 나를 보고 “아웃도어 입은 중년의 어느 갱년기 아줌마” 라고 칭하겠지.
그들은 휴게소에서도 늘 즐겁다. 깔깔대는 웃음소리는 사방에서 휘몰아치고 쿵짝대는 고속도로 테이프 뽕짝에 맞춰 스텝을 밟기도 한다. 여럿이 있으면 용감해진다고, 부끄러울 것도 없는 그들의 용기가 때론 부럽기도 하다. 각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모두 다르니, 그저 오늘 하루 즐겁다면 그것으로 족할 것이다.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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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어두운 밤
두레박에 물 길어올리듯
그깟 반쯤 깨진 두레박엔 물이 반밖에 안 찼을 테지만
낡은 펌프의 삐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물을 긷는 갈증
소리가 절반을 해갈한대도
하루는 코 한 올이 풀린 그물 같은 것
빠져나갈 물고기가 아쉬워
뒤척이는 어부의 이부자리처럼
배는 곪지 않아도
먹고 살 일이 까마득해
먼 바다에 나가 안개만 먹고 노래했으면
그리운 것이 많아
목이 타는 밤, 그런 밤
밤과 밤을 넘나드는 알 수 없는 짐승의 소리
아무 것도 그립지 않았으면
베개가 딱딱한 그런 밤,
해가 뜨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밤과 밤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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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후, 4월의 바다

꿈은 기억 위에 돋아난다.
상상했던 모든 것들은 과거에서 온다.
들었거나 읽었거나 봤거나 느껴봤던 것들.
기억 속에 숨어있거나 그 밖에서 혼자 울고 있었더라도.
꿈꾸지 않았던 일들은 늘 일어나고 만다. 다시 과거가 된다.
바다를 바라보고 산철쭉이 혼자 섰다.
어울리지 않는 자리, 분홍옥매와 꽃잔디와 뜬금없는 난까지.
바다앞에서 나를 잊지 말라 했던가.
바다는 예전의 바다가 아니다. 나쁜 기억은 좋은 기억으로 덮으라 했던가. 그건 방향제로 악취를 덮는 것과 다름없지 않을까. 덮는다고 덮어질까. 눈이 녹으면 벌겋게 드러나는 황토처럼, 꽃이 지면 질퍽해진 목련그늘 아래처럼.
기억이 기억을 덮고, 세월이 세월을 덮으면,
바다는 다시 예전의 그 바다가 될까.
살아있는 자의 손을 꼭 잡는다.
바다 앞에서 우리는 모두 속수무책이므로.
그림자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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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역의 바다

허리가 기역자로 고부라진 할머니를 보면 미원 맛이 최고라던 고흥의 박 씨네 할머니가 생각나곤 해. 도무지 일어날 수도 앉을 수도 없을 것 같던 노인이 하루 종일 뭔가를 하고 있었거든.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노인이 하는 일이라곤 온통 먹거리를 만드는 거였어. 그 집 마당엔 뭔가 펼쳐져 있었는데 계절별로 아마 다른 것들이었을 거야. 가을에 갔을 때는 유자껍질이 있었으니 그 전엔 고추가 있었겠고, 봄에는 또 다른 게 있었겠지. 헛간 옆에는 마늘과 양파가 매달려 있었고 서대라는 생선도 여기 저기 있었어. 하루 종일 널었다 걷었다 빻고 다듬고 하는 것들은 내가 슬리퍼를 꿰차고 집 앞 수퍼에 가면 10분도 안 돼서 사올 수 있는 것들. 섬에서 80년을 나무처럼 살았다던 두 노인 내외는 그런 먹거리들을 모두 손으로 다듬고 만져가며 마련했어. 그 집의 할머니는, 먼 바다가 곧바로 내려다보이는 경치 좋은 집에 살면서도 한 번도 허리를 편 적이 없을 것 같이 완전히 허리가 굽어 있었지. 희한한 건, 그 집의 영감님은 키가 크고 훤칠했는데 허리가 얼마나 꼿꼿한지 먼 바다에 떠가는 작은 배도 한 눈에 알아차릴 것 같았거든. 두 사람은 언젠가부터 다른 바다를 보고 있지 않았을까.

쪼그리고 앉으면 무릎이 턱에 닿던 고흥의 할머니를 생각해. 자식들이 가는 모습을 보며 이 빠진 입을 앙 다물던 모습을 보고 말았거든. 바위 위를 가볍게 넘나들던 노인을 보며, 나는 또 다른 노인들을 생각해. 우리는 어디서 헤어졌다가 여기까지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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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삼척

삼척

삼척
오래된 골목을 걸으며
당신의 바다를 만져본다

반짝, 하고 빛나던 별들의 폭발과
무너져 내리던 한 세상에 관하여
돌아보면 돌이 될 거라던 이방인의 주문이
국자에 스뎅그릇에
덜그럭, 소리를 내고 떨어질 때

도깨비처럼 벚꽃잎처럼 천변에 흩날리던
산 자의 영혼에 관하여
꽃잎처럼 뛰어내린 여자들에 관하여
비 내리는 기차역 앞마당에 관하여

비린내가 싫었던
당신의 차가운 우주를 잡아본다
여기 이 손끝에 와닿기를

기억이 소멸되지 않기를
시간이 사라지지 않기를
기도가 하나씩 늘어갈수록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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