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만들기 – 10. 찰리찰리

다음 주가 마지막시간이다.

몇 몇 아이들은 이미 지난 시간에 책을 다 만들었다. 성글게 만든 아이들은 일찍 끝났고 조밀하게 하는 아이들은 아무래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처음부터 거대하게 대하드라마를 짰다가 난관에 봉착한 아이도 있다. 내가 중요시 하는 건 결과물을 잘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선생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자기 뜻대로 해보는 것이다. 조언을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본인의 몫이며, 그 과정에서 스스로 깨달아나가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선생이 알려주는 대로 하는 아이들이 있기도 하지만 자유로운 분위기라 자기 뜻대로 진행하는 아이들이 많다. 생각보다, 펼침 9면을 메꿔나가는 일을 아이들이 어려워했다.

기승전결이 있고 위기와 절정이 있는 일을 만드는 일은 어른들에게도 어려운 일인데 전문적으로 글쓰기 교육을 오래 받지 않은 아이들이 해나가는 일은 쉽지 않다.

열 네 명의 아이들을 두고 이런 작업을 하는 일도 사실 버겁다.

사실은 한 명 한 명 따로 따로 봐줘야 하는 일이다. 알아서 잘 해나가는 아이들도 있지만, 조금만 선을 잡아주면 잘 따라올 수 있는 아이들도 분명히 있다.

 

일찍 끝낸 아이들은 각자 간단하게 책만들기 소개글을 만들어 벽에 붙이도록 했다. 상담선생님의 도움이 없으면 매 번 수업을 해내기가 어려워보이지만, 또 막상 선생님이 안 계실 때는 아이들 통제가 잘 되는 편이기도 하다. 이번 주엔 예산이 다 떨어졌는지 간식이 없었다. 아이들이 크게 실망했다.

 

자, 우리 다음 주에 마지막 시간이야.

아이들이 의외로 아쉬움을 드러냈다. 늘 하기 싫어하는 듯 하더니 은근히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다음 주에는 상담교실에 있는 각종 교구들을 이용해서 우리 마을을 만들어 보는 걸로 마무리를 할 것이라 했다. 그림책을 다 못 끝낸 아이들은 마무리를 하고 합류하게 될 것이다. 진도가 다른 아이들을 일일이 별도로 맞춤지도 하는 일이 쉽지 않다.

역시 학원처럼 소수정예로 가야 할 필요가 있다.

 

수업을 끝내고 나오는데 아이들이 현관 앞에 앉아 찰리찰리를 하고 있었다. 최근에 다시 시작되는 분신사바 놀이다. 10살과 11살, 아이들이 공포를 배우는 나이가 아닐까. 수업시간에도 아이들은 가위눌림과 귀신을 보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아이들이 찰리찰리를 해봤냐고 물어서 선생님은 그런 거 안해도 귀신이 다 보인다고 했더니 꺄악~ 하고 소리를 지른다.

찰리찰리를 하던 은서가 갑자기 막 뛰어와 내 옆에 섰다.

선생님 같이 가요.

나는 은서의 작은 어깨를 붙잡고 같이 걸었다.

저 다이소 갈거예요.

어디 있는 다이소? 인덕원에 있는 거?

모르겠어요. 같이 가요 선생님.

음. 선생님은 바로 다른 일을 하러 가야 해서 같이 못 가겠는데, 대신에 같이 가는 길까지 같이 가자.

은서는 쉬지 않고 이야기를 했다. 외숙모네 놀러간 일, 잠자리가 바뀌어서 잠을 못 잔 일, 사촌동생이 몇 살이고, 그 날 어떻게 잠들었는지 이야기했다.

선생님은 어느 쪽으로 가세요?

선생님은 왼쪽. 다이소는 저쪽에 있던데, 저기까지 갔다가 집에 혼자 갈 수 있어?

저쪽으로 가면 다시 와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돼요. 갈 수 있어요.

그럼 여기서 너는 길을 건너야겠다. 다음 주에 보자.

나는 은서가 길을 건너는 것을 보았다. 차 한 대가 들어오고 있어서 손을 들고 길을 막았다. 은서에겐 위협적이지 않은 거리였지만 아이는 놀란 듯이 바쁘게 뛰어갔다.

길을 건넌 은서가 손을 흔들고 다이소를 향해 갔다.

나는 개천을 건너며 눈물을 조금 흘렸다.

갸녀린 팔다리와 무거워보이는 가방, 아이들에게서 나는 큼큼한 냄새.

나는 홍콩할매귀신 때문에 두려움에 떨던 의정부 버스터미널 뒷골목의 10살이 되어 서 있다. 내가 빼앗아 타던 상미의 자전거가 생각났다. 앞 집의 미군아저씨가 소풍이라고 가져다 줬던 프링글스가 사각거리는 듯 했다. 나의 열 살은 지독하고 무서운 시절이었다. 이 아이들도 그런 것만 같아 나는 매번 슬프다.

 

2015. 6. 19.  기록

마을이야기 만들기 – 초등학교 독서클럽 9. 버터링 쿠키

금요일 독서클럽
오늘은 상담샘이 출장을 가셔서 조금 일찍 도착. 교실문을 열고 아이들을 기다렸다.

이야기동화책을 완성해 가는 중이다. 기대한 이야기는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9장에 맞춰 끝까지 완성하는 데에 의의를 두기로 맘을 비웠다.

쉬는 시간엔 간식을 나눠준다.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마을교육 방과후 활동엔 간식비가 책정되어 있다. 오늘은 버터링 쿠키가 놓여 있었다. 그 옆엔 다른 활동시간에 아이들이 먹은 것 같은 빈 박스가 쌓여있다. 오뜨, 마가레트같은 과자박스이다. 왜 아이들에겐 늘 달디단 과자와 설탕이 가득한 음료수를 간식으로 줘야 하나.
마을교육 프로그램에 신청하지 않으려는 아이들을 붙잡아매는 유혹거리를 보며 속이 불편했다. 내 새끼에게는 먹이려 하지 않는 과자를 숫자대로 나눠주려니 파렴치한이 된 것 같았다.
이것부터 바꿔야겠다, 내년엔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겠다며 아이들에게 정수기에서 떠온 물을 따라주었다. 아이들이 하나씩 순서를 기다리며 선생님, 제가 도와드릴께요, 제가 나눠줄께요 라고 하며 손을 벌렸다.

은서가 울지 않은 지 3주가 되었다. 은서의 섬세한 그림이 자꾸 맘에 들어온다.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파키스탄에 간 제니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제니랑 우격다짐을 하며 싸우던 하윤이의 그림책은 제니와 하윤이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아이들은 제니가 아직도 오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4학년 아이들은 꽤 많이 진도를 나가 많이 완성했다. 아이들의 작업을 보고 있는데 뒷문에 야구모자를 쓴 작은 아이가 서서 날 보고 있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의 민영이가 있었다.

몇 주전, 엄마가 방과후를 그만하고 영어학원을 다니라 했다며 독서클럽을 그만두었다. 늘 무기력하던 민영이는 첫 날 독서실 구석에 앉아 보리출판사의 개똥이네 놀이터를 읽었다. 예쁘장하게 생긴 민영이에게 선생님도 이 책 되게 좋아한다고 말을 건넸었다. 캠코더를 가져 왔을 때 가장 신이 나서 방방 뜨던 민영이가 평소에 늘 무기력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복도 신발장에 기대 서 있는 민영이에게 다가갔다. 어우 어쩐 일이야. 들어올래? 민영이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바빠?
민영이는 고개를 위 아래로 끄덕였다.
학원 가야 되니?
이번에도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친구들 만나러 왔어?
아녀. 민영이가 대답했다.
그냥 들렀어요.
지쳐서 금새 쓰러질 거 같은 모습이었다.
잠깐 들어왔다가 가.
집에 들었다가 영어학원 바로 가야 돼요.
그럼 선생님이 간식 남은 거 있는데 좀 줄까?
민영이가 큐브블록을 손에 들고 만지작거렸다.

나는 교실로 들어가 아이들이 선생님꺼라며 따로 챙겨둔 버터링 7개를 크리넥스에 싸고 종이컵에 물을 따라 민영이에게 가져다주었다. 물을 먼저 주었더니 민영이가 물을 조금 마셨다.

버터링 쿠키를 받아든 민영이의 손이 너무 번잡했다. 나는 교실로 다시 들어가 종이컵을 하나 들고 나와 버터링쿠키를 담아 주었다.

지금 가야 되니?
민영이는 다시 고개만 끄덕거렸다. 엉거주춤하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가방이 천근만근인 듯 걸음이 너무 무거웠다. 민영이를 뒤에서 살짝 안아들고 다섯걸음을 걸었다. 내 새끼는 40키로에 육박하는데 그보다 한 살 많은 민영이는 30kg남짓인 거 같았다.

우리, 다음 다음주까지 할꺼야.
시간 나면 또 놀러와.
민영이가 배꼽에 한 손을 대고 무겁게 계단을 내려갔다.

교실에 돌아와 아이들을 보다가 창밖을 보는데 민영이가 뜨거운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는 게 보였다.

‘민영이는 부모님이 늘 늦게 오세요. 무기력한 편이죠.’ 상담 선생님의 말이 환청처럼 맴돌았다.

눈물이 고여 선생님 책상에 있는 휴지를 얼른 뜯어 눈가에 대는데 아이들이 제가 그린 것들을 들고 와 떠들었다.
아이들을 한 바퀴 둘러보며 다시 운동장을 보았다. 민영이가 모래위를 터덜거리며 지나갔다.

2015.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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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야기 만들기 – 초등학교 독서클럽 8.

은서가 그린 그림.
은서는 집에 가는 길에 늘 화물운송 사무실 앞에 들른다.
거기엔 잘 씻기지 않는 커다란 개 두 마리가 산다. 지난 번 마을탐사할 때 은서의 소개로 다 같이 가서 봤다.

오늘은 릴레이동화를 지었는데 은서가 새끼 낳은 개를 그렸다.

미술학원은 따로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집에 오는 길, 계속 은서 생각을 했다.150531_iphone6+ 232

2015. 5. 22.

마을이야기 만들기 – 초등학교 독서클럽 7.

토요일 초등학교 독서클럽 수업

늘 우는 은서, 교실로 올라가는데 마주쳤다.
기운빠진 목소리로 보건실에 간다했다.
교실에 들어오더니 보건선생님이 안 계시단다.
오늘 안 좋은 일이 있었다며 상담선생님 앞에서 울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 안경을 들어올리고 한 손의 소매깃을 길게 빼서 눈물을 연신 훔치며 흐느끼고 있었다. 수업시작 15분 전부터 계속 울고 있었다.
상담선생님이 너무 힘들면 집에 가도 된다고 하셨다.

학교에서 여러 반이 한꺼번에 강당이나 시청각실로 움직이는 일이 있을 때 다른 아이들이 밀치거나 신체적인 접족이 있으면 그 날 하루종일 못 견뎌한다 했다. 은서는 또래 아이들보다 체격이 작고 매우 갸날프다.
은서가 집에 가버린 교실.
아이들이 약간 반기는 거 같아 씁쓸했다.

오늘은 이야기의 주인공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교실에 있는 도화지를 한 장씩 나눠주고 교실에 있는 색연필과 크레파스, 매직을 나눠주었다. 아이들은 필통을 가지고 다니지 않거나, 가지고 다녀도 꺼내려 하지 않는다. 연필까지 한 자루씩 다 깍아서 나눠줘야 하는 판이다.

주인공은 동물, 사물, 사람 중에 하나씩 골라서 마음속으로 정하는거야.
앞으로 우리가 만들 이야기의 주인공이야.
나를 그리라는 게 아니고, 내가 만드는 거야. 나는 오늘 신이다!
자 이제 그럼 마음속으로 정한 주인공을 그려보자!

아이들이 조용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5분이 넘어가면서부터 분란이 시작되었다.

선생님 쟤가 내꺼 훔쳐봐요.
선생님 쟤가 내꺼 베껴요.
선생님 저 안 베꼈어요.
선생님 저 그만하면 안돼요?
선생님 저 다했어요!

다 그린 사람은 옆에다가 주인공의 이름을 지어주고 성격과 특징을 적으라고 했다. 무슨 말을 적어야 할 지 모르겠다는 아이들에게
누구랑 같이 살고 있는지,
집은 어디인지,
좋아하는 음식
싫어하는 음식
좋아하는 색깔,
싫어하는 것
화가 나면 어떻게 하나?
기쁠 땐 어떤 행동을 하나? 등등을 적으라고 했다.

내가 주력한 것은 이 아이들의 마음속에 숨어있는 비밀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겨우 겨우 수업을 끝내고 자기가 그린 걸 발표하게 했다.
아이들은 부끄러워하며 자기 그림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애썼다.
선생님이 구분할 수 있도록 자기 이름을 적어놓고 제출하고 가라 했다.

아이들이 다 간 다음 그림을 모아놓고 한 장 한 장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몇 가지를 사회복지사선생님(상담선생님)께 알려드렸다.

솔미는 이야기를 만드는 재주가 있다. 지난 번에도 스토리를 줄줄줄 만들어 냈다. 오늘 솔미는 구미호족을 그렸다. 자기는 주인공보다 악당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악당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평소에는 일반 아이처럼 다니다가 가끔 변신을 하는 구미호인데, 초능력을 가졌고 피가 묻은 꼬리를 백개 넘게 달고 다닌다. 솔미가 말했다.
얘는요, 엄마 아빠를 이미 죽였어요. 악당이거든요. 얘는 델포이에 사는데요, 왕권을 물려받으려면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잖아요. 그래서 죽여버렸어요.

늘 밝게 친구들 사이에서 중재를 잘 하고 잘 달래주는 유정이가 남긴 그림을 보았다. 싫어하는 것. 술. 화가 나면, 도로로 끌고 가 죽여버린다.

귀여운 머리띠를 하고 와서 정말 예뻐서 눈을 떼기 힘든 서희의 주인공은 미완성이다. 화가 나면, 때린다.

어떤 아이는, 얘는 화를 나지 않아요. 화 내는 거 싫어요. 아주 아주 착하거든요.

얘는 화가 나면, 옆에 있는 햄스터가 빨개져요.
본인은 괜찮고? 네. 얘는 표시나지 않아요.

얘는 초능력 눈이 있어요. 화가 나면 눈이 뾰족하게 튀어나와요. 가족이 있는데 혼자 살고 있어요.

어른도 마찬가지, 마음의 비밀은 숨길 수 없다.
모두 다 들통나기 마련.
아이들의 비밀을 엿보는 일이 가슴아프다.

+ 수업중에 아이들과 매번 적잖은 갈등을 일으키는 하윤이가 내 무릎에 앉아 다른 친구들의 발표를 들었다. 스쳐가는 아이들의 외로움을 어루만지기 위해, 더욱 건강해야 한다.

2015. 5. 15. 기록

마을이야기 만들기 – 초등학교 독서클럽 6.

아이들이 그린 마을지도
조별로 마을지도 그리기를 했다.
상상력이 가득 들어간 지도도 있고
정확한 축척을 맞추려고 애쓰다가 지쳐버린 지도도 있고
곱고 예쁘게 그린 지도도 있다.
한 시간 동안 그리고 30분동안 발표했다.
중간에 툭탁대기도 했지만 큰 싸움 없이 정리.

은서는 오늘 울지 않았는데
자기 맘에 안 드는 아이와 한 조가 되었다고 하다가 그만두고 혼자 앉아 있었다.

 

그래도 울지 않았으니.

2015.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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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야기만들기 – 초등학교 독서클럽 5.

아가들 데리고 마을 탐사를 한 시간 정도 진행했다.
인덕원 지구대에 가기로 했는데 지구대장님이 나와서 안내해주시고 간식도 주시고 총도 보여주심 ㅋ

여경언니도 둘이나 있고 훈남 순경들도 있고 아이들이 이런 저런 거 물어보는 것도 귀여웠다.

오늘도 은서가 울었고 제니도 화가 났다. 아이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는 일이 어렵다. 그게 내가 못하는 일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스케줄이 많아 정신이 없고 친구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가 제일 중요한 모양이다.
저 아이가 나를 어떻게 쳐다봤고 무슨 뒷담화를 하는 ‘것 같으며’ 나에게 어떤 (말로) 공격을 가했는지, 이게 하루를 지배하는 모양이다.

모두 여자아이들이라 그런가.
어렵다.

2015. 4. 24.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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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야기만들기 – 초등학교 독서클럽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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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케 수업을 하는지 모니터링을 하려고 캠코더를 가져가서 돌려놨는데 아이들이 금방 알아차렸다. 쉬는 시간 동안 아이들이 독서클럽 회의라며 학교를 없애야 한다고 안건을 냈다.

나는 학교를 없앨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얘기해달라고 했으나 아이들은 “잘 없애면 된다”고 하며 웃었다.
캠코더를 들고 있는 아이는 내내 무기력하던 아이인데 저 날은 펄펄 날았다.

세 번째 수업, 아이들이 가장 활발하게 말을 많이 한 두 번째 시간, 은서가 울지 않았고 쉬는 시간에 블럭으로 박물관을 만들었다.

“선생님 사진 찍어주세요.” 나는 어디가 문이냐고 물었다.

다음 주에 있을 수업내용을 결정하는 회의를 했다.
다음 주엔 탐사를 할 예정이었다.
아이들에겐 실내화를 갈아신고 나가야 하는가 실내화주머니를 들고 가야 하는가가 가장 치열한 토론문제였다.
적극적인 발표로 탐사준비회의는 매우 기분좋게 마쳤다.

학교는 앉아 있어야 하고 공부를 해야 한다.
지루하고 재미없다.
왜 앉아야만 공부가 된다고 생각하는걸까.

학교는 흡사 동물쇼의 조련실과 같다.
훈련이 잘 된 아이들이 많을수록, 그 학교에 대한 평가는 좋아진다.

아이들이 떠들고 움직이고 땀을 흘리는 학교는 정녕 불가능한가.

2015. 4. 19. 기록

마을이야기만들기 – 초등학교 독서클럽 2

금요일 독서클럽 수업.
수업을 가기 전부터 나는 그 아이가 걸렸다. 매일 한 번 이상 눈물을 쏟아낸다는 아이. 피해의식, 타인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한 열 한 살.

아이들은 약간 뺀질거리는 태도로 수업에 들어왔다. 귀찮고 놀고 싶고 재밌으면 좋겠고 쉬고 싶고. 아이들에겐 당연한 일이다.

즐거워야 하고, 자유로워야 한다. 억지로 하지 않고 아이들이 한 마디라도 더 말하는 게 내가 원하는 것.

각자 숙제로 읽어온 책의 내용을 적어보랬더니 절반 이상이 숙제를 안 했다며 숙제가 없었던 거 같다고 우기기까지 했다. 명료하게 각인시키지 않은 건 내 실수라 본다.
애들은 그래도 된다.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인데 숙제따위 새겨가고 싶을까.

숙제를 못 한 친구는 각자 재미있게 읽은 이야기를 적어보랬더니 어떤 아이는 자기가 지은 글을 적어도 되냐고 물었다. 나는 당연히 된다고 대답했다.

그 아이, 은서.
매일 운다는 아이가 발표시간에 드디어 화가 터졌다. 옆 자리 친구가 뭘 썼냐고 은서의 발표내용을 잠깐 봤는데
“남의 허락도 없이 왜 나서서 남의 걸 들춰보고 까발리느냐”며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조용히 하라고오!!” 라며 은서가 옆 친구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엄한 목소리로
“선생님한테 조용히 하라고 한거니?”라 물으니 잠시 조용해졌다. 1교시 마무리 중이라 모두 발표를 무사히 마치고 간식을 나눠주었다.

은서는 옆친구에게 같은 말을 반복했다.
“왜 남의 허락도 안 받고 내 껄 들춰서 까발리느냐고오!!”

나는 은서를 따로 불러 교실 창문 아래 작은 의자에 마주보고 앉았다. 햇빛이 따스했고 아이들은 간식을 먹고 화장실을 다녀오며 떠들었다. 은서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같은 문장을 계속 반복했다.

그래서 속상했구나.
화가 많이 났니?
라는 질문에도 같은 문장만 되뇌었다.
“왜 남의 꺼를 허락도 안 받고 들춰보고 까발리느냐고요! 그걸 가만 둬도 되냐고요오!”

은서야, 은서의 마음을 말해봐. 화가 난거야?
억울한거야? 아니면 섭섭한 거야?
어떤 질문에도 대답은 같았다.

“왜 남의 꺼를 허락도 안 받고 들춰보고 까발리느냐고요! 그걸 가만 둬도 되냐고요오!”

다른 아이들이 아 좀 그만하지 진짜. 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은 은서는 고개를 휙 돌려 아이들에게
“시끄럽다고오! 그걸 가만 두냐고오!!” 하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나는 아이의 두 손을 꼭 잡고
“어디서 소리를 질러!” 하며 크게 말했다.

은서에게 억양과 소리높이와 크기를 바꿔가며 계속 네 마음을 말하라 했으나 은서의 대답은 토씨하나 안 틀리고 같았다.
은서가 화를 낸 옆자리 친구를 불러 너는 사과할 생각이 있느냐 물으니 이 아이도 완강하게
“저는 절대 사과하지 않을 거예요!” 라고 대답했다.

은서는 그 아이를 끌고 그 아이의 담임선생님에게 가서 야단을 맞도록 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따지고 싶으면 너 혼자 가서 선생님께 ‘따지는 게 아니라 말씀드리고’ 그 다음 친구가 야단을 맞아야 하는지는 선생님과 친구의 일이니 혼자 가서 말씀을 드리고 오라고 했다. 은서는 같은 말을 반복하다가 그 아이의 담임을 만나겠다고 교실을 나갔다.

쉬는 시간이 지나고 두번째 시간을 진행하는 중에 은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들어왔다. 손도 들고 발표도 잘 하며 수업을 무사히 마쳤다.

은서가 울지 않을 때 나는 ADHD가 심한 남자아이 옆에 앉아서 수업을 진행했다. 아이의 증상은 내가 보기에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고 수업이 안되는 정도가 아니라 일반 대화가 안 될 지경이라 지적장애를 의심받을 정도였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 나는 아이들 몇 명을 따로 불렀다.
솔미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능력이 분명히 있는 아이라 꼭 재미난 이야기를 지어서 가져오도록 했고, 기영이는 이야기를 정리해서 말로 전달하는 능력이 뛰어나니 독후감을 자주 써보라 했으며, 은서는 기분이 좋아졌냐고 확인하고 웃옷을 접어 가방속에 넣어주었다.

아이들이 나가고 교실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수고 많았다.
나도, 아이들도.

2015. 4.10. 기록

마을이야기만들기 – 초등학교 독서클럽 1.

초등학교 3학년 <독서클럽 : 우리마을이야기> 첫 수업.

오늘 수업은 학교 도서실을 가서 마을에 관련되는 책을 찾아보는 과정이 있었다.
20분정도 도서실을 돌아보면서 책을 찾아보라 하는 사이 여자아이 한 명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다른 한 아이를 향해 화를 내고 있었는데 상대방 아이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가만히 멈춰서 있고 화가 난 아이만 혼자 열이 나서 펄펄 뛰고 있는 꼴.

저학년만 이용할 수 있는 미니 2층이 있는데 거기서 내려오다가 상대편 아이가 자기를 계단에서 밀쳤다는 것이다. 아이가 흥분해서 마구 달려들려고 하길래 꼭 안고 잠깐 쉬었다가 얘기하자며 일단 교실로 데리고 올라왔다.

화가 난 아이는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내내 울면서 말하기를
계단에서 자기를 밀치는데 그럼 그걸 가만히 두느냐 라고 하더니
계단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오면 (말 그대로 갑툭튀) 어쩌냐고 말이 바뀌었다.
계단에서 넘어지면 병원을 가야 하고 병원비도 많이 드는데 다 니가 책임질꺼냐, 로 시작되더니 사람이 죽을 수도 있고 목숨이 달린 문제라는 이야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수업주관을 하는 사회복지사선생님이 아이를 앉혀놓고 이야기를 하려는데 화가 난 아이는 밖으로 튀쳐나갔고 뒤쪽에 앉은 다른 아이들은 걔 집에 갔을껄요~ 원래 성격이 소심해요~ 라고 전했다.

다시 들어온 아이가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울먹거려서 수업이 20분 정도 중단되었고 다른 아이들은 간식을 먹으며 사태가 진정되길 기다렸다.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화가 난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도록 분위기를 정리했고 다른 친구들이
“많이 놀랬겠구나. 괜찮아.” 라고 이야기 하도록
(아 갑자기 갠찮아여? 많이 놀랬져? 장수원 드립 생각;;) 권유했다.

계단에서 갑툭튀했다는 애는 나름대로 억울해서 자기는 앞을 보고 내려가고 있었고 화가 난 아이가 고개를 숙이고 내려오다 부딪힐 뻔 한 것이라며 억울해했다.

어찌저찌 수업을 끝내고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커피 한 잔 하고 갈 수 있느냐 물으셔서 앉아서 얘기를 하는데.

오늘 화를 낸 아이는 하루에 한 번씩 그렇게 억울한 일이 생겨서 울며 진을 빼고 화를 내는데 그 이야기는 늘 누군가 일부러 자기를 괴롭힌다는 것이 주테마라는 것이다. 아이가 피해의식이 심한 거 같아서 걱정인데 엄마에게 연락을 해도 답이 없다는 것이다. 전화도 안되고 메세지도 답이 없고 편지도 쪽지도 모두 답이 없단다.
아이가 정말 힘들겠네요 하는 차에 이 사회복지사 선생님왈

“독서클럽이라, 담임선생님들이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일부러 모았어요… 음.. 아까 걔는 ADHD 약을 먹다가 최근에 중단했고요, ㅇㅇ이는 수업이 불가능한 아이고요.. ㅇㅇ이는 부모님이 퇴근이 늦어서 주로 혼자 지내는데 애가 좀 무기력하죠.. ㅇㅇ이는…..”

믹스 커피 잘 마시고 교실을 나왔다.

……………..왜 때문이죠?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반복되는거죠? 왜 때문이죠…………..

2015년 4월 3일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