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책임지는 사회

하천의 쓰레기가 줄어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 쓰레기를 주워요.

니들이 버린 게 아닌데?

– 누군가는 치워야 하잖아요.

오. 착하네. 근데 그건 하천 관리에 들어가는 거 아냐?

– …

하천 관리 책임은 누구한테 있어?

– 사람들하고.. 시청요.

그럼 착한 사람들이 쓰레기 치울 때 시청은 뭐해?

– …

세상에 착한 사람이 더 많을까 나쁜 사람이 더 많을까?

– (다양한 대답)

쓰레기 버리는 사람은 언제나 있어.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은 없어. 그럼 어떻데 해야할까?

– 쓰레기 버리는 사람을 잡아요.

어떻게?

– CCTV요.

CCTV가 있으면 쓰레기가 줄어드나?

*이쯤되면 애들이 피곤해하기 시작한다.

CCTV는 검거가 목적이지 예방이 목적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예방도 가능하지. 개천에 쓰레기를 버리는 경우는 지나가면서 휙 버리는 것도 있지만 작정하고 자기 집 쓰레기를 가져다 버리는 사람도 있어. 그런 사람이 많은 동네라면 자기 집 앞에 쓰레기를 버리는 게 힘들다는 뜻도 되겠지. 그러면 집 앞에 쓰레기를 잘 버릴 수 있는 조건이 안 갖춰졌다는 뜻일 수도 있거든. 그걸 살펴봐야해.

내가 왜 이렇게 복잡하게 말하느냐 하면,

아까 기름 유출된 거 얘기할 때도, 주민들이 나서서 거둬야 한다고 해서 그래.

예전에 태안에 삼성 배가 허베이스피리트호라는 현대오일뱅크 유조선이랑 부딪쳐서 기름이 바다에 쏟아진 적이 있어. 그때 사람들이 다 달려가서 그 기름을 걷어냈어. 자원봉사로. 근데 그 책임은 누구한테 있지? 기업이 책임을 회피하는 사이에 너희같은 착한 사람들이 가서 기름을 다 닦아버렸단 말야. 범죄현장을 다 치워줬다고.

게다가 그 사건의 이름을 태안반도 기름 유출사건이라고 붙였어. 전 세계 어디에도 선박사고에 지역 이름을 붙이는 경우는 없대. 나도 찾아봐서 알게 된 거야. 사고 지역의 이름을 붙이면, 마치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처럼 여겨지거든.

왜 항상 피해자들이 책임을 질까?

나는 그런 걸 물어보고 싶어.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은 따로 있고, 늘 착한 사람들이 뒷수습을 해. 그건 왜 그래?

그걸 생각해보자는 말이야. 착한 사람들도 언젠간 억울해지지 않겠어?

#피해자들이_책임지는_사회

이 나라는 이게 전통이다.

항상 피해자가 증명하고 피해자가 소명하고 피해자가 처리한다. 환경오염 뿐 아니라 성폭행도 그렇고 배달하다 알바가 죽었는데 청소년에게 노동교육을 시킨다. 을들에게 너희가 잘 해야 된다, 권리를 주장하라고 말한다.

갑들은 교육을 받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을들에게 교육하려는 사회가 비겁해서 그렇다. 이 사회는 비겁의 향연이다. 사업자등록증을 받으려면 노동법 교육을 받아야 하는 조항은 없다. 노동현장에 들어갈 사람만 노동교육을 받는다. 대기업하고 싸우지도 못하는 인간들이 무슨 을들을 교육시키자고 하나. 안전교육은 건설현장 노동자들이 받는다. 건설사 갑들은 거기서 빠진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을 잘 봐야 한다. 사회가 부패할수록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 부패를 가리는데 사용한다. 새로운 시스템은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부패로 부를 축적한 이들이 벼랑에 몰릴 때 쓰는 방법이다.

교육계에 새로운 것들이 자꾸 등장한다.

본질을 해결할 의지가 없는 것이다. 덮고 가자는 것이다. 오염된 땅을 낙엽으로 덮고, 짚가래로 덮고, 눈으로 덮고, 시멘트로 덮고, 아스팔트로 덮고, 폐타이어로 트랙을 만들어 덮고, 바닷가의 돌을 가져다 지압장을 만들어 덮는다.

새로운 시스템을 의심하면

본질은 이미 회복할 수 없을 만큼 망가졌다는 결론이 나온다.

2018. 11. 22

1994년 10월 21일

집안 사정으로 고등학교를 1년 더 다닌 탓에 한 살 어린 친구들과 동급생이었다. 학교를 4년 다니다 보니 유명해져서, 나름대로 편하게 살았다. 술담배를 하거나 일탈행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교사를 어려워하지 않았고, 한 살 많은 나에게 선생님들도 나름대로의 대접을 해 준 셈이다. 고 3 때, 아침 7시 50분까지 등교를 해야 했는데, 학교는 월계동이고 우리집은 경기도 양주라서 새벽차를 타고 나가야 했다. 가을이 되어 급기야 담임에게 도저히 시간을 못 맞추겠으니 아침 자율학습을 빼달라고 통보했다. 나는 그런 애였다. 사정하는 게 아니고, 못 나오겠으니 처리는 당신이 맘대로 하시라고 선언하고 뒤돌아 나가버리는 애였다.

2학기에 들어서는 졸려서 살 수가 없었다. 야간 자율학습은 밤 11시에 끝나는데 새아버지가 매번 나를 데리러 운동장에 차를 대놓고 기다렸다. 11시에 월계동에서 출발하여 잽싸게 밟으면 집에 12시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씻고 야식먹고 공부를 조금 더 하다 보면 2시가 넘어 잠들었고 아침에는 5시에 일어나야 학교를 갈 수 있으니, 나는 6시에 일어나 아침자율학습을 째기로 한거다.

그 날은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비가 오면 잘 못 일어나는 사람들이 우리집 여자들인지라, 그 날은 모두 다 늦잠을 잤다. 유달리 일찍 일어나는 새아버지도 그 날은 늦잠을 잤다. 새아버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나도 동생도 같이 차에 탔다. 동생의 학교가 더 가까워 동생을 먼저 내려주고 차가 창동으로 들어설 때쯤, 아버지가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한강다리가 무너졌다는 뉴스가 나왔다.
“다리가 무너졌다고?”

조수석에 앉은 엄마가 라디오 소리를 크게 올렸다. 강북에 살아 강건너 가는 일이 드문 나에게 한강다리는 혜은이의 제 3한강교가 끝이었다. 그렇게 많은 다리가 있는줄도, 다리마다 이름이 다른 줄도 잘 모르고 지냈다.
8시가 넘어 학교에 도착하니 아침자습이 끝난 시간이었다. 나는 지각한 것은 생각도 안하고 교실로 마구 뛰어 올라가 한강 다리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호들갑 떨며 아이들에게 전했다. 내가 시끄럽게 라디오 뉴스를 전하고 있는데 덩치 큰 국어선생이 들어와 내 뒤통수를 갈겼다.

“야. 이하나. 지각했으면 가만히 있어야지 뭐 이렇게 시끄러워 아침부터.”
“아 그게 아니고 지금 한강다리가 무너졌다니까요오!!” 나에게 그 뉴스는, 희생자를 생각하지 않는, 일종의 쑈같았다. 걸프전의 생중계를 고스란히 본 나에게 재난과 사건사고소식에 사람은 들어 있지 않았다. 그건 마치 게임 시뮬레이션 화면 같은 것이었으니까. 걸프전을 CNN으로 보면서 느꼈던 것. 폭탄이 떨어질 때 참 아름다웠으니까. 광활한 사막에 떨어지는 불꽃놀이, 나에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사람은 언제나 죽고 어디서나 죽게 마련이니.
“이 새끼가, 지각한 거 무마할라고 수 쓰고 있어.” 국어선생은 대하기 어려운 사람은 아니었으나 어떻게든 나를 자리에 앉히려고 다그쳤다.
“아 진짜라니까요.”

고 3쯤 되면, 선생과 인간 대 인간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지경이 되지 않나, 나는 앞자리에 앉은 아이에게 빨리 티비를 틀어보라고 했다. 교실에는 뒤통수가 뚱뚱한 브라운관 티비가 있었다. 티비 아래 서 있던 아이가 손을 뻗어 MBC를 틀었다. 비오는 한강에, 다리 상판이 아래로 뚝, 썰어낸 듯 떨어져 있었다.

우리는 하루 종일 쉬는 시간동안 티비를 틀었다. 그리고 저녁에는 아무 일 없는 듯 자율학습을 했다. 누군가는, “저 중에 고3이 있었다면, 좋겠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죽음은 교실에 언제나 가득했다. 우리는 햇빛 한 번 못 보고 매일 매일 도시락을 싸러 집에 다녀오곤 했으니까. 타인의 죽음과 또래가 학교 가던 길에 무참하게 아무 이유없이 생명을 잃은 일에 대해서 우리는 분개할 시간도, 울 정신도 없었다. 우리에겐 수능이 불과 며칠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고, 이미 중간고사를 끝내고 내신성적을 정리할 때였을 뿐이다. 그 다음 해, 우리중 많은 아이들이 대학에 가고, 내가 명동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여름에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안타깝다거나, 슬프다거나, 억울하다거나, 누군가의 슬픔에 깊이 공감하지 못했다. 삼풍백화점의 붕괴도, 하나의 쑈처럼 보였다. 나는 일주일 내내 그 뉴스쇼를 지켜보았고 전혀 슬프지 않았다. 잠을 설치긴 했고, 뉴스를 끄지 못했으나, 같이 울거나 뭐가 문제라거나, 누구의 손을 잡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렇게 보낸 20년의 세월을 지나, 20년만에, 세월호가, 그 세월을 관통해 다시 침몰했다.

도대체 배 이름은 왜 세월호라 지은 것인가.

묻어두었던 긴 세월동안의 공감하지 못했던 타인의 죽음과 고통이, 굽이쳐 휘돌아 거대한 해일이 되어 몰려오는 오늘이다. 성수대교 붕괴 후 20년, 2014년 10월 21일이 방금 지나갔다.

2014. 10. 21.

피리부는 사나이, 깃발을 내려라.

진보나 보수는 성향과 철학의 차이이지 옳고 그름의 가치는 아니다.
단지 이 나라에서는 예외인 것이 보수를 자칭하는 것들이 파렴치범인 경우가 더 눈에 띄기 때문인데, 진보를 자칭하는 것들 중엔 더 파렴치한데도 불구하고 사회 중심에 있지 않고 비주류로 비껴나 있기 때문에 덜 주목받는 부분이 있다.

대부분 사회불만이 진보로 투영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사회불만의 일부는 개인불만에서 출발해 죄책감과 공감능력으로 포장되어 발전할 때 타인의 힘을 빌리려고 한다.
타인의 힘을 빌리는 방법 중 하나는 설득이다. 설득은 논리와 감성이 고루 자격을 갖춰야 가능하다.
공감능력과 죄책감이 진보의 무기라면, 자수성가형 노력과 수치심이 보수의 무기다.
죄책감은 수치심보다 더 공감력을 이끌어내기 쉬운 집단의 성격을 띈다. 수치심은 개인적인 일로 전환되기 쉽다. 수치심을 외부에 노출시키는 것은 자기 자신을 파괴할 줄 알아야 하는 일이지만, 죄책감은 그렇지 않다.
인간의 본성은 보수적이다. 있는 것을 지키려는 보수성은 모든 생물에게 공통적이다. 그런 이유로 진보는 늘 보수에 밀리는 바람이 되기 쉽다.

최근 들어 진보입네 하고 여러가지 주장들을 펼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그들이 얼마나 편협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가 다시 느낀다. 물론 나도 그랬을 것이다. 적어도 이번 대선을 거치기 전에는 그러했다. 내가 옳다고 믿는 가치가 있었고 그 가치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건 말하자면 나는 옳은 가치를 믿는 사람, 즉 나는 옳은 판단을 하는 사람, 여기서 비약된 논리는 나는 곧 “옳은 사람”이라는 거다.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어내지 못하는 진보진영의 문제는 여기서 출발한다. 자기가 믿는 가치가 너무나 옳아서, 타인들의 의견- 반대파의 의견은 “옳지 않은 것”으로 치부한다. 그들은 모두 미쳤고 그들은 모두 제정신이 아니며 그들은 모두 사리판단을 할 줄 모른다. 그래서 진보는 진보가 아닌 자를 쉽게 욕하고 쉽게 밀쳐낸다.

타인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줄 모르는 진보는 더 이상 진보가 아니다. 그들은 진보가 쉽게 욕하는 “수꼴”과 다를 바 없다. 나와 가치관이 다르고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귀를 닫고 소리를 지르는 것은 아무 발전도 가져오지 못한다. 왜 그들이 그런 주장을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귀를 기울여 듣고 반대진영에 서 있는 사람들이 과연 무엇을 원하는지 조근조근 따져봐야 한다.

우리는 연대하겠습니다 라는 말은 자칫 잘 못하면 패거리를 형성하겠습니다. 가 될 수 있다.
우리 편이 되어주세요. 라는 문화는 김어준의 곽노현 쉴드에서 분수령을 이뤘다. 김어준은 바로 이런 식의 패러다임을 전복시켜버리는 가공할 능력을 지녔다. 우리끼리 편을 먹고 저들을 싸워 이기자. 라는 논리가 정당하게 들리는 건 그 때부터였다. 그러나, 두 번의 선거를 치르고 대한민국에서 “진보”라 일컬어지는 진영은 처절하게 패배했다. (이 나라에서의 보수/진보 개념에 대한 논쟁은 일단 미루고 편의성을 위해 용어를 사용하도록 한다)
말하자면, 한나라당이 자리를 차고 앉아 세상을 휘젓는 꼴이 보기 싫어 억울함이 하늘꼭대기까지 닿은 비새누리당진영이 외친 구호들은 한마디로 찌질하기 그지 없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렇다.

우리는 옳고 당신들은 그르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한나라당이기 때문에. 당신들은 이명박과 박근혜와 한 패이기 때문에. 라는 논조는 아무 동의도 얻어낼 수 없다. 이 나라의 반이상이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모든 사람들이 정치평론가가 된 SNS 대한민국에서, 이제 그 자리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나 한 때 나도 한 패거리였던 진영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래서는 또 망하는 길밖에 없겠다는 생각만 든다.
종북 빨갱이를 몰아내자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들도 외롭고, 우리도 외롭다.
외로운 사람들에게 내 얘기를 할 수 있는 방법은 먼저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진보라는 사람들은 여전히 고함만 지르고 있다. 여전히 깃발을 높이 세워 북을 치며 전진한다. 그리고 소리 높여 구호만 외친다. 그들은 그들의 행진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고민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이래서는 앞으로도 필패다. 그리고 몇 몇 진보의 패거리에서 함께 웃고 떠들던 사람들은 슬슬 뒤로 물러나 부동층으로 옮겨가며 정치에서 멀어질 것이다. 깃발을 내리고 주저 앉아 귀를 열어라. 지금의 반 한나라당 정서는 여전히 피리부는 사나이를 따라가는 쥐떼로 보일 수 있다.
2013. 5. 27.

재벌은 살찌고 국민은 자살한다.

국산품 애용 운동이 벌어진 시절이 있었다. 
식민시절 물산장려 운동 등은 이 나라, 이 민족에게 자본을 벌게 하여 국가의 부강을 만들어가자는 의도였을 것이다. 어차피 자본주의, 돈 없으면 국가도 없다. 
80년대, 90년대까지도 국산품 애용이 칭송받던 시절이 있었다. 
일제 밥통, 일제 보온병을 쓰면 매국노 취급을 당했고 쉬쉬하면서 몰래 들여와 썼다. 
미제 좋아하면 미제국주의의 잔재라고 호되게 당하는 경우도 있었고 학교에선 알파벳이나 외국어글자가 크게 쓰여진 티를 입고 가면 야단을 받았고 교칙으로 금지했다. 
개인적으로 중학교때 전체 조회가 있는 날, 아무 생각없이 엄마가 사다 준 영문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갔다가 (반장이라 맨 앞에 서야 하는데) 교무실에 불려가 개망신을 당한 기억이 있다. 
외국인들은 한국에 오면 한국산 자동차가 가득한 것을 보고 놀랍다고 하며, 
사람들은 삼성과 LG가 타임스퀘어에 광고가 올라가는 날 벅차하며 애국심에 눈물 흘렸다. 
IMF가 불어닥치던 시절, 장롱에서 금반지를 빼서 내놓던 순박하고 책임감 강한 국민들은 그래도 우리 물건 써줘야 한다며 삼성핸드폰 국내점유율을 세계가 놀랄만큼 만들어 주었다. 
국내 지형에 강한 휴대폰이라며 노키아가 망해나갔고, 모토롤라도 유례없이 하위로 추락했다. 
국산 기업에 대한 이 나라 국민들의 애정은 망극할 지경이라, 
월마트, 노키아, 카르푸가 망해나가는 희한한 나라로 자리매김했다. 
외국기업의 물품을 수입추진할 때 거래처에게 늘 강조했던 건, 이 나라는 “월마트와 노키아, 까르푸가 망해나가는 나라다” 라는 거였다. 그들에게 한국만의 감수성에 맞추는 제품을 내놓아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렇게 내가 나고 자란 나라의 기업들은 나보다 무럭무럭 자랐다. 
회장들은 모두 휠체어를 타고 비자금을 조성했고 어떤 불법적인 증여나 상속도 모두 면제 받았다. 그들은 국가의 경제력을 책임지는 중대한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밀어주고 당겨주던 그 기업들은 아무도, 전문경영진으로 구성해 국가와 국민에 보답하지 않는다. 
보름달을 만들던 삼립은 각종 간식을 모두 점령해 빵과 커피는 물론, 떡까지 장악한다. 
동네빵집은 사라지고 모두 다 삼립이 이름을 바꾼 SPC와 CJ 뜨레주르의 양대 산맥의 종업원이 되었다. 
LG의 자녀들이 100% 주주로 있는 아워홈이라는 외식업체는 순대도 판다. 
작년에 논란이 되었던 롯데마트 통큰 치킨, 신세계 계열사인 이마트의 피자, 동네 골목을 치고 들어온 SSM 수퍼마켓, 전국민이 대기업의 종업원이 될 추세이다. 
이게 전세계적인 추세인가? 신자유주의 끝물에 한국만큼 재벌이 거대해지는 나라도 있나?
이 나라의 재벌은 Chaebol 이라는 영문고유명사가 있다. 
이 고유명사는 한국의 재벌문화에 대해서 연구한 국내의 한 학자가 직접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해 영어단어로 인정이 된 경우이다.
기업은 흑자다. 공공요금은 치솟는다. 물가는 오르고, 국민은 자살한다. 
재벌은 살찌고 소비자는 죽어간다. 
각종 자동차는 국내에서 비싸게 팔고 수출이 아니면 살 길이 없다는 박정희의 신념을 이어받아 이 나라는 여전히 재벌에게 관대하고 재벌을 위해 나라가 굴러가고 국민들은 봉이 된다. 
신형 휴대폰을 개발한 회사들이 수십조의 흑자를 내면서 별도의 운영체제를 개발하지도 않고, 새로운 OS로 업그레이드 해주지도 않는다. 그저 팔아먹으면 그만이고 억울하면 새로 사세요. 지원금 드립니다. 이게 지들 나름대로의 서비스다. 
그러면서 죄없는 서비스 직원들만 조져, 소비자들에게 서비스를 잘 받았느냐고 확인을 하고 점수를 매기라 하고 불만사항을 접수하고 고운 음성으로 사랑합니다 고객님을 운운한다. 
닥쳐라 더러운 돼지들아. 
대기업이 수조원대, 수천억원의 흑자를 내면 사회의 모든 자원을 낼름낼름 받아먹은 만큼 기술개발을 하고 재투자를 해야지 전 국민의 종업원화를 꾀해 동전이나 뜯어가고 쉽게 현금으로 만들 수 있는 소매업까지 장악하라고 밀어준 거 아니다. 
오래전부터 국산품 애용이 상당히 소용없는 일이라는 걸 느꼈지만 최근들어 극에 치닫는 듯 하다. 전국민을 종업원화 해서, 전국민 정규직이라도 시켜줄 것인가? 그것도 아니잖는가?
사회환원 하라고 강요하는 거 아니다. 
재투자 재개발, 국가가 할 수 없는, 중소기업이 할 수 없는 거대한 프로젝트, 엄청난 투자금이 필요한 연구개발. 힘쓰란 말이다. 골목에서 천원떼기 백원떼기 팔아먹지 말고. 그런 건 당신들 아니어도 충분히 할 사람 많다. 
어차피 이윤추구하는 기업이다.
그들에게 윤리적인 걸 강요할 수도 없고, 사회복지재단이 되라고 할 수도 없다.
작작 해 처먹으라는 거다.
꼼수도 부릴만큼 부려야지, 아주 영악해서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부리지 않는 이상, 수가 너무 얕아 구린내가 풍긴다.

2012. 1. 25. 

대한민국 새판짜기

진보나 보수가 없는 이 나라에서 그러니까 지금 보수들은 말도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다가 가카와 기득권을 비판하면 자기도 모르게 진보진영에 올라탄 꼴이 된다.

여론이나 파벌을 나누는 건 상당히 우스운 일이지만 굳이 규정하자면 기득권과 비기득권으로 나뉘지 않겠는가.
말하자면 이 나라는 군림하고자 하는 놈들과 군림당하지 않으려는 세력으로 나뉘는 것인데. 그나마 웃긴 건 이게 1%와 99%의 대도 아닌 것이 이 1%축에도 못 끼고 자기가 누구 때문에 삥을 뜯기고 사는지 잘 모르면서 마치 자기가 1% 인 것처럼 착각한다는 거다. 그러면서 자기가 호위무사라도 된 듯 까부는 형국인데 대표적인 자가 강재천 되겠다.

사실 학문이라는 게 깊이 들어가다보면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드러나기 마련이고 공산주의는 현실적용하는 거에 모두 실패했는데 그건 인간 본성을 거스르는 유토피아적 발상 때문 아닌가. 그러다 보니 공부 좀 했다 하는 것들은 니들이 아는 게 이게 정답이 아닌 세상인데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줄테니 잘 들어봐 이런 태도를 취하게 되니.. 이건 자본으로 군림하려는 새끼들을 깐다는 것들이 지식으로 또 군림을 하겠다고 하는 거 아닌가.
기분이 좋을 수가 없잖아.

그러다 보니 이건 마치 피라미드처럼 군림하려는 자본가는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 앉아있고 그 밑에서 개뿔 가진 게 지식밖에 없는 지식분자들이 2차 군림을 꿈꾸면서 이들에 의해 선동된 자들과 반대하는 세력들이 박터지게 싸우고 있는 꼬라지밖에 안되는 거다.
중국의 혁명과정에서 지식분자들을 죄다 노동으로 교화시켜야 한다며 하방운동을 시켜버린 공산당과 모택동의 심정이 바로 이런 데에서 기인할 것이다.

그렇다고 분쟁과 토론이 나쁘니까 서로 연대하고 까지 말고 싸우지 말자고 얘기하는 건 그야말로 반민주주의적인 생각이겠다.
이 엄청난 역동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건 이 나라의 빈곤한 민주주의가 발전해나가는 과정이니 설령 이게 피곤하고 머리가
아프다 해도 조금 견디고 참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영화 도가니에서 말한 것처럼 “세상이 우리를 바꾸지 못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리가 부러지면 멍이 들고 부어오르고 그 멍이 빠지고 깁스를 하고 뼈가 다시 붙어가는 과정이 있어야 다시 걸을 수 있는 것처럼 소란스러운 우리의 이 나라도 그 모두 과정중에 서 있는 아주 올바른 현상 아닐까.

건국 60년중에 민주주의 한 게 몇 년인가.
친일과 독재를 청산하지도 못한 바로 오늘의 시점에서 얼토당토 않은 자가 대권주자로 나서는 여기는 아직도 군림하려는 자에게 “여지를 주는” 답답하리만큼 선량한 국민들이 있는 나라다.

자본주의의 새로운 형태와 신자유주의의 몰락이 있다는 이 시기에 이 나라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기운은 잘 하면 뭔가 아주 혁신적인 형태로 발전할 수도 있다고 믿고 싶다.

2012. 1. 4.

휴대폰에서 어썸노트에 끍적거린 건게 너무 길어져서 뭐 블로그에 올려도 돠겠다 싶어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