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넷

마흔 넷.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많이 버렸다. 나에게 장애물이었던 것들, 내가 사랑하지 않는 것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 서른 살무렵부터 빨리 늙고 싶었다. 나이를 먹으면 사는 게 편해질거란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어쩌면 지금이 제일 좋은 시기일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다시 힘들어질 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삶은 몇 년째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더 이상 등짐을 진 당나귀“마흔 넷” 계속 읽기

여자들의 도시

1. 오늘 아침엔 늦잠을 자려고 맘을 먹었는데 일찍 깨어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았다. 이명박 구속으로약간 흥분상태였던 게 분명하다. 더 이상 잠이 오지 않는데다가 어깨와 팔 통증이 심해 집 근처 사우나에 갔었다. 불가마에 들어가려는데 입구를 떡 막고 어떤 여자가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육중한 몸을 움직인 여자가 통로를 열어주어 나는 불가마 안에 들어가 앉아 책을 폈다.“여자들의 도시” 계속 읽기

마른 빵, 마른 잎 

이한열열사의 추모제가 열리는 시청 앞 광장에 노을이 내려앉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안치환이 나와 거칠고 익숙한 목소리로 “마른 잎 다시 살아나”를 부르고 있었다.  시청 뒤 NPO센터에서 있을 행사에 가러 나온 길이었다.  행사 시작전인 센터 안은 꽤 무더웠다. 냉방이 필요했는데 아직 장치를 가동하지 않은 듯 했다. 북태평양에서 바람이 불어온다는 며칠, 바깥 바람이 상당히 시원했다.  베이스와 낮은 드럼“마른 빵, 마른 잎 “ 계속 읽기

인덕원 고기집

사람들은 살다가 중년의 어느 날, 인생이 확 뒤엎어지는 고비를 겪곤 한다. 주변을 돌아보면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모두 어떻게 인생을 엎어치고 매치고 다시 일어났는지 궁금해졌다. 내 어머니는 땅에 침을 뱉는 것처럼 욕지거리를 하며 세상을 밀쳐내고 일어났고, 아버지는 바다를 건너가 삶의 기준을 뒤틀었다. 누군가는 그때쯤, 가정을 잃고, 누군가는 그때쯤 자식을 잃고, 또 누군가는 그 비슷한“인덕원 고기집” 계속 읽기

더 많은 내부고발자

  외부충격이다, 음모론이다, 잠수함이다, 암초다. 믿고 싶지 않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이유를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우리는, 그 커다란 배가 어찌 그렇게 넘어갔으며, 모두가 살아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너무나 당연해보였던 예상을 뒤엎고 너무 많은 아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생중계로 봤기 때문이다. 그날 해가 지던 순간을 기억하는가. 청문회에 나와 마이크 앞에 앉은 자들은 모두 그날이“더 많은 내부고발자” 계속 읽기

응급실의 찌꺼기

아이의 옆 침대에 한두 살 많아 보이는 여자아이가 왔다.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 초까지의 아이들은 한창 성장하는 중이라 그런지, 어딘가 생김새에 균형이 깨져 있다. 진료를 받는다고 왔다갔다 하더니 어디서 다 큰 여자아이의 통곡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쭉 빼고 내다보니 옆 침대에 있던 그 아이인데 엄마 아빠가 말리고 난리다. 메르스 이후, 한림대평촌성심병원은 경기도 서남권역 응급센터가 되어 병동이“응급실의 찌꺼기” 계속 읽기

뒤통수

1. 몇 년전,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이었다. 암 생각없이 길을 걷다가 갑자기 턱에 뭔가가 날아왔고 엄청난 충격이 있었다. 날아와 내 턱에 부딪쳐서 떨어진 건 일수대출 찌라시. 일수대출 찌라시를 뿌리는 사람들은 스쿠터를 타고 다니며 여기 저기 종이를 던지는데 그 종이는150~200g 정도 되는 아트지 류다. 코팅된 두꺼운 종이라는 얘기. 기껏해야 책 표지 정도 되는 얄팍하고 작은“뒤통수” 계속 읽기

조금은 성글게

아지 산책을 하러 나갔다. 공원엔 웬 덩치 큰 남자가 서서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위협적인 느낌마저 들었지만 이 느낌이 전해지면 저 사람은 억울하겠지. 아지와 공원 한 바퀴를 돌고 공원과 단지사이의 문에 서 있는데 곱게 정장을 차려입은 할머니가 아지를 보고 묻는다. 이 개는 몇 살이죠? 음.. 얘가 열 세 살이예요. 나는 2004년생인 아지에게 한 살을 더 해“조금은 성글게” 계속 읽기

어느 봄

– 숨막히게 그리운 사람 하나 없는 인생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 숨막히게 그리운 그 사람은,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 했던 나의 한 시절, 어쩌면 그 때의 나에 대한 그리움인지도 모르겠다. –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걸 분명히 알기 때문에. – 밤에 삼각대를 놓고 벚꽃을 찍고 있으면 술에 취해 흔들흔들하면서도 가만히 서 있던 그 사람,“어느 봄” 계속 읽기

공범

1. 오전에 목동까지 가서 바이올린 앙상블을 연습했다. 근처에 사는 분과 동행했고 같이 점심을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포도밭과 산을 갈아엎어 만든 아파트에 사는 그 사람과 나는 각각 15,000원이 넘는 스테이크를 하나씩 먹었다. 그 분은 내 차를 얻어탔다며 밥값을 내겠다고 했다. 나는 밥을 잘 얻어먹고 집으로 돌아와 주차장에 차를 댔다. 한 달째 주차장 크랙을 메우는 공사를 한다.“공범”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