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넷

마흔 넷.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많이 버렸다.
나에게 장애물이었던 것들, 내가 사랑하지 않는 것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

서른 살무렵부터 빨리 늙고 싶었다.

나이를 먹으면 사는 게 편해질거란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어쩌면 지금이 제일 좋은 시기일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다시 힘들어질 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삶은 몇 년째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더 이상 등짐을 진 당나귀 같은 삶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그건 내가 간절히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문경새재를 넘어오며 골짜기 깊이 파고드는 땅과 비구름을 뿌리는 하늘을 보며, 이제 다시 산을 좋아하긴 어렵다는 걸 알았다.

나는 여전히 너무 많은 걸 사랑하고 있지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 때문에 괴롭던 시절이 있다. 그게 나에겐 청춘이었던 것 같다. 한 소설가의 문장을 읽으며 명치가 뜨거워졌다. 한때 모든 것을 상징으로 읽고 깨달으려 노력한 적 있다. 지금은 그저 있는 그대로를 본다. 노력하지 않는다. 잘 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칭찬받으려고 눈치를 살피지 않는다. 마흔 넷에 이 정도 인간이 되었으면 내 깜냥에 알맞다 생각한다. 모자라도 어쩔 수 없다.

이대로 10년쯤 살다가 세상을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불쾌한 것에 화를 내고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점점 편안해진다. 아마 점점 괴팍해질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방도는 없을 것이다. 이제사 인간이 뭔지 알아채기 시작했다. 자고 일어나면 나는 다시 업무모드로 돌아간다. 많은 것을 잊은 척 할 것이다.

2018년 5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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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도시

1.

오늘 아침엔 늦잠을 자려고 맘을 먹었는데 일찍 깨어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았다. 이명박 구속으로약간 흥분상태였던 게 분명하다. 더 이상 잠이 오지 않는데다가 어깨와 팔 통증이 심해 집 근처 사우나에 갔었다. 불가마에 들어가려는데 입구를 떡 막고 어떤 여자가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육중한 몸을 움직인 여자가 통로를 열어주어 나는 불가마 안에 들어가 앉아 책을 폈다. 여자는 궁둥이를 조금 움직인 상태로 계속 통화를 하고 있었다. 수원에 누군가 입원을 했고 그 입원한 환자의 지인인지 본인인지와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여자의 목소리를 작지 않았고 나는 15분이 지난 걸 확인한 뒤 문장을 고를 새도 없이 “아주머니 통화 더 하셔야 되면 좀 나가서 하시면 어때요?”라고 큰 소리로 빠르게 말했다. 여자는 고개를 돌리고 등을 돌리더니 몸을 부비적거리며 자리를 떴다. 그 여자가 통화를 하는 그 15분 동안, 나는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 아침 9시도 안 된 시간에 찜질방에 온 사연은 무엇인지, 여기서 통화를 못하게 하면 밖에 나가선 통화를 할 수 있을 것인지,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는 모두들 소곤소곤 이야기를 하는데 저 여자는 거기서도 저런 통화를 할 수 없을 것이며, 가족이 있다면,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있지 않고서야, 가족들도 큰 소리로 장시간 통화를 하는 것에 타박을 할 것이며, 그렇다면 저 여자는 어디서 마음껏 통화를 할 수 있을 것인가. 나라도 참아야 하나.

알지도 못하는 한 사람의 행동으로 타인의 삶을 이리 저리 재단해보며 나는 15분을 견뎠고 결국은 참지 못해 그 여자를 내몰아버렸는데. 몰지각한 행동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가, 나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말하는가.

2.

명동을 나가는 지하철을 타고 회현역에 진입했을 때 내 앞에 통 넓은 회색바지에 회색 코트를 입은 여자가 섰다. 마른 여자였다. 내 눈높이에 닿은 그녀의 배가 동그랗게 불러 있었다. 가방에 “임산부 먼저”라는 고리가 달린 것을 보고 자리를 양보했다. 여자는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가방을 끌어안고 자리에 앉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임산부인지 확인하려 들었을까 생각했고, 행여 성질 못된 노인을 만나 폭언을 들은 적은 없었을까 생각했고, 그 이야기를 집에 가서 남편에게 털어놓으며 엉엉 울었을까 생각했고, 오늘도 퇴근을 하는 길인 것 같은데 3개월쯤 되어 보이는 산모와 태중의 아이는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까 염려했다.

3.

명동성당을 올라가는 계단에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중늙은이라는 말이 어울릴 법한 여자는 스카프인지 목도리인지 모를 것으로 머리통을 감싸고 있었는데, 그 감싼 것 밖으로 흰 머리칼이 삐져나와 있었다. 여자는 웃고 있었다. 분명히 나를 보고 내 눈을 바라보며 실실 웃고 있었는데 제정신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계단을 올라가는 게 쉽지 않은 내가 천천히 계단을 하나씩 디뎌 올라가자 여자는 “천원만 줘.”라고 말을 했다. “천원만 줘.”

나는 목소리를 못 들은 척 앞만 보고 계단을 올랐다.

신을 만나러 가는 것도 아니고 제단을 보러 가는 것도 아니다. 저기 남겨둔 기억 하나를 되살리고 싶었던 건, 공기 때문이었다. 적당히 쌀쌀한 날씨에 어둠이 깔린 거리를 환하게 밝히는 전등 사이를 헤매고 다니다 이 분주한 도시 한 복판의 섬같은 저 곳을 찾아가는 이유는, 거기 그 건물이 있기 때문이다.

구걸을 하는 사람을 외면하는 부자들을 떠올렸다.

행여 그와 마음이 닿을까봐, 그 마음에 가난이 옮아올까봐, 전염병을 피하듯 돌아가고자 하는, 걍팍한 마음을 느꼈다. 내 안에 있었다. “천원만 줘.” 그 말이 어색하지 않은 날이 올 수도 있다. 그건 아무도 모를 일이다.

공포는 골목 마다 숨어있다. 기억이 없던 시절부터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오고갔던 그 거리에서 나를 밀쳤던 어쩔 수 없는 것들의 힘은 언제나 나를 짓누른다.

4.

명동의 섬.

카톨릭회관 지하에 있는 전광수 커피에서 저녁커피라는 드립커피를 시켰다. 커피를 마시고 화장실을 갔다가 집에 가면 되겠다. 휴대폰을 열어 집에 가는 여러 가지 경로를 찾아보다가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코스를 살피고 있는데 한 여자가 나를 빤히 본다. 중년의 여자가 입구에 있는 테이블에 짐보따리를 올려놓는 걸 내가 보고 말았다.

“짐 좀 봐주세요. 화장실을 가야 하는데 보따리가 많아서.”

나도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날까 하던 참인데 예기치 못한 남의 짐을 쳐다보고 있었다. 여자는 내가 검색을 끝낸 뒤에 금세 돌아왔다. 커피를 다 마시고 화장실에 갔더니 그 여자가 짐을 들고 문 앞에 서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어머니가 안 나오셨다며 웃었다.

5.

집에 오는 버스엔 자리가 있었다. 앉자마자 이어폰을 꽂고 학교 강의를 들다가 꾸벅꾸벅 졸았다. 휴대폰을 잡은 내 손을 누군가 몇 번 누르는 느낌이 나서 잠이 깼다. 휴대폰을 들은 여자의 손이었다. 내 고개가 의자 밖으로 떨어지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여자의 얼굴은 확인하지 못했다. 내 휴대폰이 떨어지려고 해서 나를 살며시 깨운 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저 손잡이를 잡지 못해서 실수로 내 손을 스친 것일 수도 있다. 나는 낯모르는 여자의 손길 덕에 잠에서 깨어 갈아타야 할 정류장에 무사히 내렸다.

6.

집에 돌아와 늙은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몇 번 봤던 늙은 시츄가 공원에서 혼자 어기적대며 걷고 있었다. 따뜻한 천으로 몸을 감쌌는데 주인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같은 단지에서 봤던 아이였다. 많이 늙었고, 눈은 안 보인지 오래된 듯 했고 걸음걸이도 좋지 않았다. 나는 주인이 보이지 않아 엄마는 어디로 갔냐고 시츄에게 물었다. 쭈그려 앉아 엉거주춤 걸음을 겨우 떼는 시츄의 사진을 찍었다. 생각했다. 버렸나? 잃어버렸나? 주인이 있는 개인데. 그 개가 맞는데. 아프다고, 늙었다고 버린 건가. 데리고 가야 하나? 동물병원은 문을 닫았을 텐데. 얘를 내가 또 데리고 갈 수 있나? 내가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자 내 시야 밖에 있던 개주인인 여자가 나타났다.

“다리를 잘 못 써서 좀 걸어보라고 데리고 나왔어요.” 개 산책을 시키다 몇 번 마주쳤던 그 여자였다. “아…”나는 말을 보태지 않았으나 나보다 나이가 열 댓살은 많아 보이는 그 여자는,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다 알 것이다. “개를 데리고 다니다 보니 혼자 있는 애들 보면 걱정되죠.” 여자가 내가 할 말을 대신 했다.

 

날씨가 적당히 쓸쓸하다. 세상엔 이렇게 여자들이 많다. 품고 기르고 돌보고 그리고 헤매는. 수많은 여자들의 도시를 저녁 내내 걸었다.

2018년 3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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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빵, 마른 잎 

이한열열사의 추모제가 열리는 시청 앞 광장에 노을이 내려앉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안치환이 나와 거칠고 익숙한 목소리로 “마른 잎 다시 살아나”를 부르고 있었다. 

시청 뒤 NPO센터에서 있을 행사에 가러 나온 길이었다. 

행사 시작전인 센터 안은 꽤 무더웠다. 냉방이 필요했는데 아직 장치를 가동하지 않은 듯 했다.

북태평양에서 바람이 불어온다는 며칠, 바깥 바람이 상당히 시원했다. 

베이스와 낮은 드럼 소리의 진동이 거리를 쿵쿵 울리는 시청 뒷골목에 앉아 있었다. 

사위가 곧 어두워질 것이었고 아직 여기 저기 햇빛이 남아 있었다. 

선배를 만나 벤치에 앉아 일 이야기를 하다, 80년대의 이야기를 잠시 들었다. 
우리가 앉아있던 벤치 앞, 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이면도로에 작은 원동기가 하나 섰다. 뭔가 들은 것 같은 비닐봉투를 안장에 얹은 작은 원동기에서 노인이 내렸다. 그는 내가 바라보는 방향의 가장 끄트머리 벤치에 앉았다. 주섬주섬 품에서 빵과 우유를 꺼내 천천히 입에 쑤셔 넣었다. 나는 선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가 빵을 먹는 모습이 자꾸 시야에 들어왔다. 70년대 학번들의 낭만과, 80년대 학번들의 전투적이고 조직적인 행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빵이 들어가는 노인의 입 매무새가 자꾸 눈에 들어와, 87년쯤, 저 사람은 몇 살이었을까, 딴 생각을 했다. 
칠순은 훌쩍 넘었을 거 같은 노인의 저녁은 시원한 북풍이 부는 시청 뒷골목의 벤치 위에서 마른 빵 하나. 오늘치 빵 하나의 노동은 어떠했을까.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고, 대통령 탄핵을 거머쥐고, 새로운 정권을 창출한 오늘, 박종철과 이한열이 죽고 30년이 지난 지금, 노인의 삶을 얼마나 달라졌을까. 
적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대오는 흩어져 골목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가스처럼 낮게 깔리는 귀신에 사로잡혀 여기까지 왔는지도 모른다. 단 하나의 마른 빵을 위해, 마른 잎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걱정말라는 노래의 가사를 믿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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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덕원 고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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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살다가 중년의 어느 날, 인생이 확 뒤엎어지는 고비를 겪곤 한다. 주변을 돌아보면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모두 어떻게 인생을 엎어치고 매치고 다시 일어났는지 궁금해졌다.
내 어머니는 땅에 침을 뱉는 것처럼 욕지거리를 하며 세상을 밀쳐내고 일어났고, 아버지는 바다를 건너가 삶의 기준을 뒤틀었다. 누군가는 그때쯤, 가정을 잃고, 누군가는 그때쯤 자식을 잃고, 또 누군가는 그 비슷한 시기에, 직장을 잃고, 사랑을 잃기도 한다.
삶의 절반을 지배해 온 것들을 버리는 순간이, 누구나에게 오는 것일까. 모든 이에게 그런 날이 오던가, 그것이 궁금해졌다.

넥타이를 동여맸던 낮의 남자들이 소주에 불타는 고기를 입에 넣고 우적거리는 사이, 테이블 사이로 그릇을 나르는 여자들이 오간다. 그들은 모두 그 고비에 있거나, 그 고비를 넘겼거나, 어쨌거나 절반의 생을 살아낸 사람들로 보였다.

삶의 크레바스가 있다면 그 사이에 빠져 사라지지 말고 어떻게든 뛰어넘어 건너야만 하는걸까. 사는 건 그렇게 치열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면, 사는 건 대체 얼마나 독한 놈이 고개를 쳐들 수 있는지 경쟁하는 과정일까.

고기가 지글지글 익고 술에 취해 떠드는 소리가 가득한 고깃집에서 네가 말했다. 지옥이 있다면 바로 여기일 것이라고. 살이 타는 냄새가 나고 모두가 우격다짐을 하고 있지 않냐고.
우리가 이 지옥을 빠져나가면 그때는 평화가 올까. 그런 일은 태초부터 없을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크레바스에 빠져 죽지 않은 이들이 고기를 굽고 고기를 먹는 저녁에, 연두색 국빈관나이트 점퍼를 입은 남자들이 작은 비닐봉투에 명함과 주전부리를 넣어 테이블 사이를 돌며 인사를 했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전도연이 <무뢰한>이라는 영화에서 저렇게 사탕을 돌렸다. 문득 그녀가 보고 싶었다. <무뢰한>의 그녀. 삶의 모든 고통을 삼겹살 씹듯이 거침없이 삼켜버렸을, 그녀만 알고 있을 것 같은 비밀을 엿볼 수 있을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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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8일 인덕원

더 많은 내부고발자

 

외부충격이다, 음모론이다,

잠수함이다, 암초다.

믿고 싶지 않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이유를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우리는, 그 커다란 배가 어찌 그렇게 넘어갔으며, 모두가 살아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너무나 당연해보였던 예상을 뒤엎고 너무 많은 아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생중계로 봤기 때문이다.

그날 해가 지던 순간을 기억하는가.

청문회에 나와 마이크 앞에 앉은 자들은 모두 그날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헌법재판소에서는 “그날은 일반 국민들도 자기가 뭘 했는지 기억할 수 밖에 없는 날”이라고 했다.

2014년 4월 16일, 해가 지던 순간을 기억하는가.

목이 메이고 눈물을 참으려고 눈알이 벌개지도록, 당신도, 나도 TV 화면을 바라보며 옥죄어드는 가슴을 부여잡고 있었으니까.

해가 진다,

해가 진다,

해가 지면 안 되는데,

해가 지면 안 되는데.

그날 아침 8시 49분, 세월호가 침몰했고, 뉴스 속보가 떴다.

진도 앞바다 여객선 침몰. 이라는 속보를 보고 앞바다라니 별 일 없을거라 생각했다. 비어 있는 큰 아이의 방문을 닫다가 한 여자아이를 보았다. 젖은 생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교복을 입은 아이가, 큰 아이의 방에 잠시 섰다가 사라졌다. 아이의 머리는 길었고 앞머리가 단정했다. 그 교복은 하복이었다. 살아남은 아이들이 나중에 학교로 돌아올 때 입었던 그 교복의 형태. 반팔의 흰 셔츠로 되어 있는, 짧은 치마와 흰 양말이 흐릿한 형체.

팔에 돋는 소름을 거두고 서울 서초에서 볼일을 보고 나올 때 전원구조라는 속보가 떴다. 그리고 나는 제암리에 있었다. 제암리교회에 도착해 기념관을 둘러보고 자목련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바람이 적당히 불었고, 공기가 텁텁했다. 봄마다 오는 그런 날이었다. 갑자기 대기가 묵지근해지고 바람엔 먼지와 모래가 섞여 있는 듯 하고, 멀리서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자꾸 아른아른하고 몽롱하게 들리는, 햇빛은 나지만 찬란하지 않은, 조금 걸으면 몸이 더워져서 겉옷을 벗어들게 되는, 화창하지 않은, 그런 날이었다.

바람이 불어 자목련 잎사귀가 마구 떨어지는 것을 영상으로 찍으며, 전원구조가 오보였다는 걸 알았다. 나는 왜, 지금, 왜 하필이면 여기 제암리에 있는가, 참담했다.

별 일 없을 거라 믿었다. 침몰했다는 여객선은 거대했고, 쉽게 넘어갈 것처럼 보이지 않았으며, 진도 앞바다라 어민들도, 해경도, 모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저녁이 되면 아이들이 오돌오돌 떨며 담요를 뒤집어쓰고 엄마아빠에게 안겨 실컷 울다가 저주받은 수학여행이라 운수가 나빴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믿었다.

저녁이 되면, 전 국민이 뉴스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고 대참사를 피해가는 과정에 등장한 시민영웅이 한두 명쯤 나와 인터뷰를 할 것이라고, 믿었다.

당연하게 펼쳐질 거라 생각했던 뉴스는 없었다. 진도에는 비가 왔고, 아이들은 바다에서 나오지 못했고, 아이들이 왜 나오지 못하는지, 알 수 없었다. 비 오는 진도에서 비옷을 입고 청와대로 가겠다는 길이 막혔고, 우리의 모든 소망이 그때부터 가로막혔다.

이후로 우리는 바다, 침몰, 여객선 같은 단어를 쓰기 어렵다. 노란색, 배, 고래, 리본을 보면 가슴이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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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2일, 안양 범계역

자로의 세월X는 돌을 던진 셈이다.

그는 동영상 시작부분에서 “개인적 견해”라는 점을 밝혔다. 이렇게 2년간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 궁금해 한 사람이 있다고, 그게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려주며 모든 것을 원점에서 재수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정유라가 독일에 있고 독일검찰이 수사에 들어갔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한 네티즌이 썼던 댓글을 잊지 못한다. “독일이 어떤 나란데. 과거를 청산한 나라다.”

오늘은 자로의 세월X가 업로드되었고 언론에 조명을 받았다. K스포츠재단의 내부고발자가 한 명 더 나타나 이제 K스포츠재단내의 내부고발자가 세 명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의인”이라 칭함은 옳지 않으나 “내부고발자”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과거를 청산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죄를 인정하고 처벌을 감수하되 개인의 사익을 위해서라도 더 많은 공익을 위해 위험을 감내할 각오를 보였다. 지금 여기엔 더 많은 내부고발자가 필요하다. 세월호를 잊고 싶던 개인의 내면, 유가족들에게 가졌던 불편한 마음의 내면, 고통을 응시하지 못했던 비겁한 내면, 때로는 잊히길 바랐던 이기적인 내면, 그 모든 내부에 깊숙이 파고 들어가 다시 끄집어내고 이 모든 것을 전부 다 바로 세워야 한다고 말하는 각자의 내면의 고발이 필요하다.

그날 아침부터 모두들 해가 지기 전에

아이들이 돌아오길 바라는 그 하룻동안, 박근혜는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일정이 없는 날이니 느즈막이 일어나 드라마를 보거나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며 쉬었을 것이다. 배가 가라앉았는다는데 해경은 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냐고 질책하며, 본인은 아무 책임이 없다는 것을 굳게 확신하며 머리를 올리고 화장을 한 뒤 중대본으로 갔을 것이다. 책임자들이 제대로 구조하지 않은 것에 분개하며, 자신의 임무에 집중했을 것이다. 박근혜가 알고 있는 자신의 책임은 오로지 의전뿐이니까.

그런 자를 대통령으로 뽑아 앉힌 자들이 내 이웃에 있다. 어떤 기관의 보안손님이고 싶었던 내 내면에 최순실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더 많은 내부고발자가 필요하다.

왜 그랬을까.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작은 욕망들이 뒤틀려 기괴한 모습으로 갑작스럽게 튀어나올 때 일어난다. 왜 그랬는지. 세월호의 진실은 아무리 파헤쳐도 우리가 죽는 날까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아이들을 왜 구하지 못했는지 왜 구하지 않았는지 세상이 끝날 때까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어떤 진실도 살아남은 자들을 설득할 수 없다.

그리하여 우리가 할 일은 명확하다.

끊임없이 의심하는 일. 지치지 말고 진실을 파헤치는 일, 끝까지, 책임을 묻고 스스로 내부고발자가 되어 이 모든 과거를 청산하는 일. 살아남은 자들의 의무다.

2016년 12월 26일

그날, 2014년 4월 16일, 화성 제암리

응급실의 찌꺼기

아이의 옆 침대에 한두 살 많아 보이는 여자아이가 왔다.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 초까지의 아이들은 한창 성장하는 중이라 그런지, 어딘가 생김새에 균형이 깨져 있다.

진료를 받는다고 왔다갔다 하더니 어디서 다 큰 여자아이의 통곡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쭉 빼고 내다보니 옆 침대에 있던 그 아이인데 엄마 아빠가 말리고 난리다.

메르스 이후, 한림대평촌성심병원은 경기도 서남권역 응급센터가 되어 병동이 모두 격리되어 있고, 각 분과별로 격리병실이 따로 있어 무척 쾌적해졌다. 보호자는 1인만 동반입실 가능한데 그 아이는 엄마 아빠가 다 들어와서 설득하고 말리고 있었다.

나는 혹시 선단공포증인가 싶어 귀를 기울여 들었다.

주사바늘이 무서울 수 있다. 특정 공포증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전혀 이해하지 못할 일일거고, 나 역시 쉽게 이해할 수 없다. 모두가 각자의 공포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게 잘못은 아닌데 세상은 극복하라고 윽박지른다. 세상이 늘 그렇듯이.

나는 그 가족의 대화를 엿들으며 응급실에 온 부모와 자식의 입장을 생각했다. 아이가 아파서 왔다. 응급실에 접수를 하는 순간 8만원이 청구된다. 검사비용까지 더하면 15만원이 훌쩍 넘어가기도 한다. 휴알의 야간 응급실은 북새통이고, 아이는 통증을 호소한다. 아무리 경미한 질병으로 왔어도 당사자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응급실에 오는 것이다. 부모는 아이보다 수십 년 더 사회적 질서를 몸으로 익힌 사람들이고 이들은 아이가 타인에게 폐를 끼칠까 걱정을 한다. 환자와 보호자는 의료진 앞에서 약자가 된다. 환자는 통증에 신경을 빼앗겨 자기 통증과 증상에 집중하는 반면, 그 통증을 고스란히 느끼지 못하는 보호자는 긴급하고 정확하게 의료진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환자와 보호자는 이미 단단하게 구축된 관계가 있으니 보호자는 응급실 안에서는 보호자와의 관계형성에 들일 에너지를 잘라내어 의료진과 관계를 설정하는데 힘을 다한다. 환자가 통증을 호소하거나 고통을 느낄 때 보호자는 의료진과 더욱 돈독하고 관계를 신속하게 맺으면 환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한다. 이것은 어쩌면 이 사회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증상일수도 있는데, 타인과의 관계형성이 순조로운 일처리를 순조롭게 해준다는 인정과 감성에 호소하는 형태이기도 하고, 구조보다 개인에게 집중하는 인간중심적이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사람은 모든 사람과 관계를 맺거나 모든 사람에게 집중하기 어려우므로 인간중심적이라는 것에는 “특정한”인간 중심이라는 말이 생략되는 것이 필수적인지도 모르겠다. 특정 인간 중심으로 구조가 개편되었을 때, 박근혜 게이트가 터지는 것이다. 의료진은 이러한 인정중심을 탈피하고 기계적으로 환자를 대해야 할 필요가 생기는 것이다.

환자는 보호자와 의료진 모두가 자신에게 집중해주길 바라게 된다. 의료진에게 환자 한 명은 응급실에 누워 있는 수많은 환자들 중에 한명일 뿐이다. 의료진은 공평한 의술을 펼쳐야 하고 순서를 지켜 각기 다른 증상을 가지고 각기 다른 언어형식으로 표현하는 모든 환자를 돌봐야 한다. 응급실이 개편된 다음 “응급실 진료 순서는 선착순이 아니라 응급정도에 따른다”는 표어가 여기 저기 나붙었다. 의료진에게는 더 급한 환자가 많이 있고 더 위중한 환자는 언제나 있는 법이다.

응급실 병동이 모두 격리된 다음 이제 이 병원 응급실의 “구경거리”는 줄어들었다. 타인의 고통을 구경한다는 것은 불편한 일이지만 사람들은 타인의 더한 고통을 보며 자기 위안을 삼는다. 유치하지만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또한 그들이 응급실에 오게 된 수많은 사연들을 접하며 삶의 이치 한조각 정도 주워가려는 시도도 한다. 어쩌면 사람들은 견디기 힘든 특정한 장소에서 무언가를 배우거나 깨닫고자 하는 학습욕구가 있는지도 모른다. 응급실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환자들은 결국 익명으로만 존재한다. 그들은 그저 타인의 기억 속에 “어떤 사람”이 되거나 “교통사고 피해자”가 되거나 때로 “진상”이 되기도 한다. 이제 아이가 응급실에 가도, 술 취해 바닥에 마구 구토를 해대는 아저씨를 보며 깔깔대거나 무서워할 일이 사라졌다.

 

옆 침대 아이는 극심한 복통으로 병원에 온 거였다. 며칠 변을 못 봐 안에서 딱딱하게 굳어서 관장을 해야 된다는 말을 듣고 놀랐던 것이었다. 생전 해보지 않은 일을 해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무서운지 내내 제 엄마를 쳐다보지도 않고 무섭다며 엉엉 울었다. 엄마는 아이를 달래다가 창피하게 왜 이러냐는 말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된다는 말도 했다. 무서운 일이 아니라고도 하고, 다 컸으니 할 수 있을 거라고도 하고, 별 일 아니라고도 하고, 애기들 모인 소아병동에서 제일 큰 언니가 이러면 어쩌냐고도 했다. 아이 아빠는 경고조로 이러고 집에 가면 큰 일난다, 밤새 배가 아플 것이다, 내일도 해결이 안 될 것이다, 더 큰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노폐물이 너무 많이 차서 그러니 해결을 하고 가야 한다 등등의 이야기를 했다. 그러니까, 이 두 사람은 아이가 뭔가를 거부할 때 할 수 있는 모든 관용어구를 총동원해서 아이를 설득하고 있었다. 간호사는 어머니가 해주셔도 된다고 얘기했는데, 그 얘기를 들은 엄마도 경험이 없는지 방법을 알려달라면서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부모의 설득은 모두 다 타당한 말이었으나 아이의 마음은 쉽게 돌아서지 못했다. 거부한다는 것은 감정의 문제고, 설득한다는 것은 이성의 문제가 더 강한 것일까. 윽박지르고 따지기도 하고 화도 내고 달래도 보고 부모는 왜 늘 자식의 감정을 해결하지 못하며, 자식은 왜 늘 부모의 이성적 판단을 못 미더워하는 것일까.

내 앞에 누운 내 아이는 응급실에 와서 진료를 받고 집에 돌아갈 때가 되면 늘 기분이 좋아진다. 어릴 때부터 병원출입이 잦아서 그런지 의료진에 대한 신뢰가 있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괜찮다, 별 일 아니다, 라고 얘기해주면 의연해지고 가뿐한 표정을 짓곤 한다.

이 병원 응급실은 지난 10년간 내가 수차례 드나들던 곳이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죽음의 고비를 넘기기도 했고, 아이의 가벼운 중이염이나 아주 작은 골절로 찾기도 했다. 응급실의 구조가 완전히 바뀌면서 내 기억의 응급실도 사라졌다. 환자이기도 했고 보호자이기도 했다. 옆 침대의 대화는 때로 내 입 밖으로 튀어나왔고, 때로 내 입 안에서 맴돌다 사라졌다.

우리는 타인을 설득하는데 얼마나 무능한가.

관계가 확실한 대상에게는 더욱 더 그러하다. 감정을 감정이라 말하지 못하고 논리적근거와 감정을 뒤섞어 뒤죽박죽이 되어버린다. 대부분의 부모, 응급실의 보호자들은 비논리와 불합리, 부조리의 총체가 되어버린다. 간절한 욕망이 최고점을 찍는 순간, 어쩌면 인간은 바닥으로 내리 꽂히는지도 모른다. 인정하기 싫은 불행이 고개를 쳐들 때,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순간, 인간에게 남는 것은 온갖 감정과 이성에서 떨궈져 나온 찌꺼기들 뿐인지도.

2016년 12월 25일

 

 

 

뒤통수

1.
몇 년전,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이었다.

암 생각없이 길을 걷다가 갑자기 턱에 뭔가가 날아왔고 엄청난 충격이 있었다. 날아와 내 턱에 부딪쳐서 떨어진 건 일수대출 찌라시.

일수대출 찌라시를 뿌리는 사람들은 스쿠터를 타고 다니며 여기 저기 종이를 던지는데 그 종이는150~200g 정도 되는 아트지 류다. 코팅된 두꺼운 종이라는 얘기.

기껏해야 책 표지 정도 되는 얄팍하고 작은 종이가 바람을 얹고 날아왔을 때 중력이 얼마나 더 해지는지 실감했다. 꽤 오랜시간 아팠고 자칫했으면 종이에 베었을 수도 있었을 거다.

종이를 던진 사람은 스쿠터를 타고 있었으니 온데간데 없고 나는 길거리에 서서 황망해져서 두리번 거리고 있었지만 어떤 방법도 없었다.

길거리에 찌라시를 뿌리는 행위는 적법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생계를 유지하는 일일테고 그는 그렇게 사는 게 방법이라고 배웠을 터이다. 한 번이라도 누군가가 그 행위로 인해 타인이 다칠 수 있다는 걸 알려줬거나, 스스로 생각해 본 적 있다면, 방법을 바꿔야겠다고 자각한 적 있다면 그날 내가 봉변을 당할 일은 없었겠다. 나 외에 다른 누군가도 그런 일을 당했을 수도 있다.

2.
올해 겪은 많은 일들이 이런 누군가의 습,으로 일어난 일들이었다. 스스로를 깨지 못하고 질문하지 못해서 일어난 일. 나의 습때문에, 혹은 타인의 습때문에. 때로 나는 피해자가 되고 중간에 끼인 자가 되고, 동조자가 되고 혹은 모르게 가해를 했을 것이다.

행동 하나 하나를 살피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건 인간이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일이라는 주장도,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일이라는 주장에도 모두 동의한다.

길가다 똥을 밟은 이유는 누군가 똥을 싸질렀거나, 누군가 알고도 미리 치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가 똥을 밟은 것에 분개하느라 똥을 치우지 못하고 가버린다.

3.
뒤통수를 친다는 표현은 그래서 적확하다. 뒤통수를 맞는 일은 대부분 과거에서 발생해 현재의 나에게 닥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과 동시에 일어나는 일은 없다.

사고와 갈등은 언제나 과거에서 온다.
당신의 과거로부터, 나의 과거로부터.
청산하지 못한 우리 모두의 과거로부터.

조금은 성글게

아지 산책을 하러 나갔다. 공원엔 웬 덩치 큰 남자가 서서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위협적인 느낌마저 들었지만 이 느낌이 전해지면 저 사람은 억울하겠지.

아지와 공원 한 바퀴를 돌고 공원과 단지사이의 문에 서 있는데 곱게 정장을 차려입은 할머니가 아지를 보고 묻는다.

이 개는 몇 살이죠?

음.. 얘가 열 세 살이예요. 나는 2004년생인 아지에게 한 살을 더 해 대답했다. 누군가 몇 살이냐 물으면 항상 그게 헛갈린다. 개니까 만나이로 따져야 하나.

이 개가 참 순한 개예요. 그렇죠? 할머니가 물으셨다.

아.. 얘는 잡종인데요, 그 다리 짧은 웰시코기하고 섞인 거 같긴 해요.
그렇구나.

할머니는 세로 선이 들어간 위 아래 한 벌짜리 바지 정장을 입고 녹색 로퍼를 신었다. 버버리 파우치백을 손에 쥐고 있었다. 가벼운 퍼머를 한 단발머리는 은발이었다. 동그란 금속테의 안경을 썼는데 눈썹은 가느다란 산모양이고 이목구비가 진하진 않았지만 선명하고 전체적으로 선이 고왔다.

나도 개를 많이 키우는데 다섯 마리까지 키워봤거든요.

내가 지금 칠십 넷인데, (할머니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지만 어쩌면 그 나이로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칠십 넷, 이라는 숫자의 의미는 점점 달라져간다.) 내가 쉰 다섯부터 개를 키웠어요. 우리 아들 친구가 어디 놀러간다고 일주일만 맡아달라는 거를 데리고 있었다가 정이 들어가지고.. 그때부터 키웠지. 중국에서도 한 마리 데려오고.

아, 얘가 중국에서 온 애예요.

아 그래요?

예. 제가 거기서 공부했는데, 저 살던 아파트단지 앞에 돌아다녀서..

한국사람인데 중국에서 공부한거예요?

네.

할머니는 내가 중국인인지 한국인인지 명확히 하고 싶은 것 같았다.

그래서 검역 다 마치고 데려왔죠. 오래 됐어요.

어디에 살았어요?

저는 상하이요.

아, 우리 아들은 연태에 있었는데, 그때 페키니즈를 장에서 바구니에 넣고 꼬물꼬물한 걸 판는거야. 털도 복슬복슬해가지고 눈은 이렇게 크고 코는 구멍만 보이고 입은 이렇게 째졌어. 할머니는 손을 얼굴에 대어가며 그때 기억이 생생하다는 듯 얘기했다.

우리 아들은 연태대학에 2년 있다가 학교에서 칭화대를 보내준다고 했다는데, 제가 싫다고 해서 안 갔어요.

아 네…. 중국이 별로 맘에 안 드셨나봐요.

그런가봐.

할머니는 집 앞 내가 다니는 정형외과에 물리치료를 받으러 가시는 중이었다. 고관절 문제가 있는데 나우병원에서 수술을 하려다가 다른 사람이 집 앞 병원을 추천해줘서 다니게 되었다고 하여 내가 이 병원은 과잉진료를 하지 않아 좋다 말했더니 맞다고 호응하셨다.

수술과정의 얘기며, 의사가 얼마나 살뜰히 보살폈는지, 병원에 환자가 많아 늘 오래 기다려야 하지만 그래도 다녀야 한다고도 했고, 신장이식을 해서 수술이 조심스럽다고도 했고, 물리치료를 일주일에 세 번쯤 받으면 좋은데 많이 불편하면 다섯 번도 간다고 하셨다.

아이고, 바쁜 사람 붙잡고 내가 얘기하느라고. 들어가요.

5분이 안되는 시간동안, 나는 할머니가 어디가 아픈지, 뭘 좋아하는지, 나이가 몇이고, 자녀가 어떻게 되며, 집에 개가 몇 마리인지, 종교가 무엇이며, 교회에서 어떤 사람과 교류하는지, 주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다 알아버렸다. 삶은 어쩌면 매우 성글게 엮여있는지도 모르겠다.

기억나는 할머니가 있다.
강남 센트럴시티 맥도날드에서 혼자 점심을 먹던 긴 은발의 나이든 여자, 너무 멋져서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분은 꼭 영화배우 문희처럼 생겨서 도저히 카피불가한 사람이었다면,
오늘 이 할머니는 내 생활에 근접해보였다.
나이를 먹을 수록 깨끗하게 입고, 고운 얼굴을 하고 다닐 수 있다면 좋겠구나.

어느 봄

– 숨막히게 그리운 사람 하나 없는 인생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 숨막히게 그리운 그 사람은,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 했던 나의 한 시절,
어쩌면
그 때의 나에 대한 그리움인지도 모르겠다.

–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걸 분명히 알기 때문에.

– 밤에 삼각대를 놓고 벚꽃을 찍고 있으면
술에 취해 흔들흔들하면서도 가만히 서 있던 그 사람,
그 때의 그,
그 때의, 나.

2016년 4월 4일의 살구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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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범

1.
오전에 목동까지 가서 바이올린 앙상블을 연습했다. 근처에 사는 분과 동행했고 같이 점심을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포도밭과 산을 갈아엎어 만든 아파트에 사는 그 사람과 나는 각각 15,000원이 넘는 스테이크를 하나씩 먹었다.
그 분은 내 차를 얻어탔다며 밥값을 내겠다고 했다. 나는 밥을 잘 얻어먹고 집으로 돌아와 주차장에 차를 댔다. 한 달째 주차장 크랙을 메우는 공사를 한다. 주차장에 내려갈 때마다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사람들이 거기에서 일을 하고 있다.

차를 세우고 내렸는데 미화원 아저씨가 공사가 끝난 바닥을 마대자루로 닦고 있었다. 공동현관을 들어서자 우리 동 미화원 아주머니가 엘리베이터 앞을 닦고 있었다.
바이올린 가방을 쥔 손이 사라졌음 싶었다.

2.
저녁엔 약속이 있어 그 포도밭이 끝난 산 언저리에 있는 작은 식당에 가서 닭도리탕과 오리구이를 먹었다. 저녁도 얻어먹었다.
단체가 모인 자리였는데 인사를 하다가 목이 메었다. 자꾸 목울대가 울컥거렸다.

식사중인 분들을 두고 먼저 일어나 골목을 지났다. 차가 줄지어 서 있는 어두운 골목에서 모자를 쓴 한 남자가 박스를 들고 걷고 있었다. 남자는 뒷문이 열린 트럭으로 걸어갔다. 택배기사였던 것 같다.
내렸던 창문을 올려 닫았다.

자다가 깨어 울컥대는 목울대를 만져본다.
거대한 슬픔에 어떻게 화를 내야 할 지 모르겠다. 소소한 서러움엔 그저 고개를 숙이면 될 일이고 일기를 쓰면 넘어갈테지만.

이제 두 주먹을 꽉 쥔 소녀들은 어찌할 것인가.
이러나 저러나 나는 공범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