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만 보고 땅만 보고 – 노인생애사

결혼은 아버지가 소개해 준 사람이랑 했다. 막상 결혼해서 시댁에 가보니 너무 가난했다. 집이란 게 기어들어가고 기어나갈 형편이었다. 서울에 정착하기로 했다. 서대문 앞에 살았다. 거기서 아이들 사남매를 키웠다. 홍제동 꼭대기에서 아침에 밥을 먹고 출발하면 서대문 독립문 앞에서 수돗물을 받을 수 있었다. 물지게를 지고 가서 물을 길어서 집까지 걸어오면 점심시간이 넘은 오후 2, 3시였다. 매일 매일 사는“하늘만 보고 땅만 보고 – 노인생애사” 계속 읽기

월요일엔 생애사쓰기

  바늘을 가지고 하는 짓이니 바늘질이라고 썼을 뿐이다. 않다, 에 왜 ㅎ이 붙는지도 이해할 수 없고, 돼와 되는 왜 꼭 그렇게 다른지. ㅋㅌㅍㅎ은 별로 발음하는 일도 없는 것 같은데, ㅋ이 붙으면 어렵다. 부억은 왜 부엌이라고 쓰는가, 갔다, 왔다, 했다에는 꼭 쌍 시옷인가. 나는 휴대폰을 열어 “한국인이 잘 헛갈리는 맞춤법”을 찾아 왠지, 웬지, 돼, 되, 않고,“월요일엔 생애사쓰기” 계속 읽기

[생애사쓰기] 목화솜 다래

– 나는, 아버지 어머니 잘 몰라요. 어려서부터 남의 집 살이를 해서, 그냥 사방 팔방으로 떠돌아 다니느라. 그래도 잠깐 우리 집에서 살 때가 있긴 했지. 나는 그나마 우리 큰 이모하고 좀 친했고. 식구들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어요. – 우리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엄마도 없고, 그래서 사촌집으로 갔는데 우리 사촌 오빠가 그렇게 나를 때렸어요. 뭐 달라고 해서“[생애사쓰기] 목화솜 다래” 계속 읽기

[생애사쓰기]성수종합사회복지관 수업을 시작하며

내일부터 성수종합사회복지관에서 초등문해교육을 마친 어르신들과 생애사쓰기 수업을 시작한다. 초등문해교육을 마친 분들과의 수업은 처음이라, PPT를 손 보다가 접었다. 대신 다음과 같은 프린트물을 만들었다. <나에게 보내는 편지>는 복지관에서 붙인 프로그램 이름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나에게 보내는 편지>> 수업에 함께 하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글쓰는 사람 이하나라고 합니다. 앞으로 열 번, 여러분과 만나게 됩니다. 저는 2013년부터 어르신들 뿐 아니라, 중년층,“[생애사쓰기]성수종합사회복지관 수업을 시작하며” 계속 읽기

[생애사쓰기]가난이 부끄러워서

“노조활동 한 적 없어요. 어용이었어요.” 수요일 생애사쓰기에 참여한 60대 여성의 말이다. 써온 목차에 “노조활동”이라 써 있어서 무슨 내용인지 물었을 때였다. “무슨 노조를 했겠어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일자리 구하기가 정말 어려웠어요. 나는 바닷가에서 자랐어요. 재첩 따고 다시마 걷으면서 살았어요. 그게 너무 고되요.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어요. 공장이 얼마나 좋았는데요. 앉아서 손가락만 까딱까딱하면 돈이 나오는데요. 왜 노조를“[생애사쓰기]가난이 부끄러워서” 계속 읽기

여름이 낮아질 때 – 성수종합복지관 첫 수업 기록

– 선생님, 이제 우리 가르치려면 큰 일 났어요. – 아주 속이 터지실거예요. 어르신들이 킥킥대고 웃었다. – 아이고 선생님이 엄청 젊으네. 팀장이 지원서류와 저작권동의서를 묶은 종이뭉치를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나는 빠르게 지원서류를 훑었다. 1931년생부터 1952년생까지, 무려 20년이나 차이나는 사람들이 “어르신”이라는 이름으로 묶였다. 노인 수업을 할 때마다 이런 것들이 꺼림칙하다. 베트남 참전용사가 자유총연맹을 가면 625참전용사들과 세대차이가 나서“여름이 낮아질 때 – 성수종합복지관 첫 수업 기록” 계속 읽기

지금도 개가 무섭다

순천에서 태어나 자랐다. 형제가 열 둘이었다. 열 두 형제 중에 유일한 딸이었다. 막내 남동생이 하나 있었고, 위로 오빠가 열이 있었다. 아버지는 소작농 관리를 했고 먹고 살만 했다. 1948년, 열 한 살이었다. 여순사건이 났다. 하늘에선 비행기가 날아다니고 땅에선 군인들이 총을 들고 눈에 띄는 대로 사람을 죽였다. 인민군인지 국군인지 가늠하지도 못했다. 집에 논이 다섯 마지기가 있었다. 밭도“지금도 개가 무섭다” 계속 읽기

박근혜양은!

“내 담주에 교회 댕겨오니라 늦을끄야. 그래도 좀 봐둬.” 라고 지난 주에 미리 얘기하고 글쓰기 수업에 늦게 오신 84세 갑순씨, 앉자 마자 분통을 터뜨리신다. “나라가 나라가, 나라가 이게 뭔 꼴이고. 내는 막 미쳐버리겠다.” 고 하신다. 갑순씨는 박근혜를 ‘박근혜양’이라고 칭하셨다. “이게 뭐꼬 이게. 이 이렇게 말도 안되는 일을 벌려놓고 말이다. 내사 마 내가 그 광화문에 나도 나가서“박근혜양은!” 계속 읽기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 나 우리 아버지 얘기 할 거 있어.   (1936년생, 여, 전남 구례 출생)   우리 아버지는 서른 여덟에 돌아가셨는데, 내가 열 세 살 때 돌아가셨는데, 그때 내가 태어나기는 전라남도 구례에서 태어났는데. 왜정때니까 아버지가 징용을 피해서 어릴 때니까 엄마한테 자세히 알아놓을 걸 안 들어놓은 게 한이 돼. 옛날엔 도라꾸(트럭)라 그랬어요. 인부들을 싣고 아버지가 객지로“우리 아버지?” 계속 읽기

독립문 할매들 – 과거와 과거사이

옥바라지 골목은 사라져버렸다. 높게 둘러친 펜스를 따라 독립문초등학교 앞에서 골목을 찾는다. 독립문 초등학교는 오늘 입학생 예비소집일인가보다. 지킴이 아저씨가 어린이와 엄마들을 맞이하고 있다. 한 아이가 두리번거리자, 혼자 왔느냐고 물었다. 아이는 할머니와 같이 왔다고 저어기, 오고 계시다고 대답했다. 골목을 내려간다. 천주교 무악동 선교본당이 있다. 낮은 기와지붕, 나무대문을 밀고 들어선다. 노인들을 만나러 간다. 분명히 대부분 여성일테지. 서까래가 있는“독립문 할매들 – 과거와 과거사이”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