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 하러 와

멀리서 날아온 친한 동생을 만나기 위해 남산에 있는 모호텔에 갔다. 비행기 도착하고 여독이 풀리기도 전에 그런 거 없이 그냥 잠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방에 들어가 차 한 잔을 마시는데 그 비싸고 유명한 호텔방이 얼마나 클래식하던지.. 1980년쯤 되는 것 같았다. 멀리 보이는 남산타워로 수십년을 버티는 호텔임이 분명했다. 걸어서 남산을 돌아 명동까지 내려가 아주 오랜만에 이런 저런“커피 한 잔 하러 와” 계속 읽기

어떤 택시의 기억

늘 다니던 길이었다. 택시가 빙 돌아 먼 길로 우회하는 걸 모를 리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다니는 길이고 이미 한 달 반이 되어가던 길이다. 나는 흰색 면 블라우스를 입고 멜방이 달린 길다란 검정 치마를 입고 있었다. 화장은 하지 않았지만 머리는 적당히 길었고 콘택트렌즈도 끼고 있었다. 나에겐 500원도, 1000원도 매우 귀중한 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어떤 택시의 기억” 계속 읽기

일기쓰기

나의 담임선생님은 환갑쯤 된 남자 선생님이셨다. 이름은 곽동희. 서글서글한 눈매와 진한 눈썹, 그리고 대머리, 인상이 참 좋았다. 1학년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앞에 놓고 율동도 하고 손유희도 해야되는데 학부형들이 와서 구경하면 얼마나 쑥쓰러워 하셨는지 얼굴이 빨개지셨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우리 엄마는 늙은 영감이 1학년 선생을 할려니 죽을 맛이겠다며 혼자 깔깔대고 웃었다.   나는 한글읽기를 다 떼고 학교에“일기쓰기” 계속 읽기

외로운 곁

“글자를 어떻게 배웠나요?” 배운 게 아니고, 혼자 뗀 셈인데요. 4살 지나서 엄마가 디즈니 명작만화 전집을 사주셨어요. 처음 읽은 책이 신데렐라. 엄마가 그걸 읽어줬는데, 제 기억으로는 한 번이거든요. 아마 몇 번 더 읽어줬겠죠. 하루는 다시 읽어달라고 했더니, 엄마가 피곤해서 자야된다고. 아, 그 때 4살쯤 맞아요. 엄마가 임신중이었어요. 뱃속에 동생이 있었으니까. 저보고 읽어준 이야기를 기억해서 이야기를 맞춰보라고“외로운 곁” 계속 읽기

날씨는 왜 좋고 지랄

그런 날이 있었어. 아기 기저귀에 쓰는 노란고무줄이 있었어. 그걸로 가속페달을 묶어놓은 버스를 상상해봤어? 내가 학교 다닐 때 타고 다니던 마을버스는 그런 버스였어. 그 버스가 기울어질 정도로 아이들이 많이 탔어. 그 버스를 타고 학교를 가던 길에 시비가 붙으면 버스기사 아저씨가 창문을 열고 욕을 했어. “씨발 내가 너 따위 죽이고 깜빵 한 번 더 가면 돼” 똑같은“날씨는 왜 좋고 지랄” 계속 읽기

순대국을 먹는 시간

순대국은 언제나 혼자 먹는 음식이다. 한 고비를 넘어가야 할 때, 그 순간을 넘겨야 할 때, 나는 돼지의 잡고기로 만든 냄새나는 순대국을 먹으러 간다. 그 때는 언제나 남들은 모두 배부른 시간 늘어져 있던 앞치마들이 나 때매 다시 일어나는 시간. 오후 3시라든가, 밤 9시라든가. 아침 10시 반이라든가. 어쩔 수 없는 누린내가 나는 국에 들깨를 넣고 다대기를 풀고“순대국을 먹는 시간” 계속 읽기

특별한 계절

셀프주유소에서 카드를 긁고 있는데 (순서상 카드 먼저 긁고 주유) 주유소 아저씨가 다가오신다. 아저씨가 주유총을 잡으시고 물으신다. 할 줄 알아요?아저씨 라기엔 연세가 많으신 편. 아버지 뻘도 더 되신 듯 하다. 네! 잘 합니다! 라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아저씨는 총을 잡다가 놓고 한 번 해보랜다. 익숙하게 걸쇠를 딱 받쳐놓으니 어 정말 할 줄 아시네 하신다. 예전에 알바도 했었습니다.“특별한 계절” 계속 읽기

썩지 않는 사과

⒞Hana Lee_120424 @Gwanyangdong 봄빛은 찬란한데 당신 마음은 여전히 지옥이구나누군가에게 갖고 있는 욕심들이 그대를 지옥에 몰아넣는구나 내 그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인정받고 싶고, 숭앙받고 싶은 당신의 노력들을매일 매일 입으로 칭찬을 받고 싶었던 것이로구나 내 그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사랑한다고 말해주길 따듯한 눈빛으로 안아주길수고했다고 어깨를 쓰다듬어 주길따스한 밥상을 함께 하길당신이 원하는 것들은 그리 큰 것들이 아닐 것이다.“썩지 않는 사과” 계속 읽기

버리는 것 버려지는 것

전복을 먹어봐야 전복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것은 아니다. 소고기를 먹는다고 내가 도축을 하는 것은 아니므로. 내가 먹는 먹거리들에 대해 나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먹는 콩나물이 어떻게 길러지는지, 내가 먹는 시금치가 어디서 왔는지, 비가 잦아서 작년 시금치 농사가 나빴다는데, 수퍼와 마트엔 어떻게 줄줄이 시금치가 나와 있는지. 규격을 맞추기 위해 비닐봉투 안에서 자라는 애호박을“버리는 것 버려지는 것” 계속 읽기

무거운 시간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괴로운 마음을 안다.  그건 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하는 말이었다.  그래서 죽음을 체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 헤매는 것도 안다. 죽음을 통해 뭔가 다른 것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것도 안다.  죽고 싶다라는 말은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내 세상을 바꾸고 싶다. 라는 절절한 호소였다는 것도  아주 뒤늦게 알았다.  무거운 시간들이 흘러간다. “무거운 시간”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