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고 있었다. 팔꿈치를 바닥에 대고, 두 손을 모아 깍지를 낀 채, 앞에 있는 사람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앞에 앉은 갈색머리의 남자도 호기롭게 웃었다. 지원의 큰 입은 웃을 때 진가를 발휘했다. 가지런한 치아, 붉은 입술, 넓게 퍼져 광대근육 바로 아래로 올라붙는 입꼬리가 시원했다. 앞머리를 길게 내리고 안경을 썼다. 사람들이 왜 안경을 쓰느냐고 물으면 그저 눈이 나쁠 뿐이라고 했다. 콘택트렌즈는 불편하고 무섭다고 대답했다. 이물감도 거추장스러웠고 눈 건강에도 해로울 듯 했고, 더군다나, 안경은 지원이 가리고 싶은 긴 얼굴을 감춰주었다. 지원이 바에서 나와 맥주잔을 들고 주방쪽으로 향해 가면 근처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지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엉덩이는 봉긋 솟아올랐고 허리는 잘록했다. 가슴은 크지도 작지도 않고 어깨를 쭉 펴고, 가슴을 내밀고, 맥주잔을 든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만큼 캣워크를 하는 모델처럼 걸었다. 장점은 살리고, 약점은 가리랬다고, 지원은 긴 바지나 긴 원피스를 즐겨 입었는데 하나같이 몸에 딱 달라붙는 디자인이었고 다소 짧은 종아리는 9cm가 넘는 힐로 감췄다. 하의가 신발 등위까지 내려왔기 때문에 키가 작은지, 다리가 짧은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적어도 지원이 그렇게 걸을 때는 모델을 하다 은퇴한 20대 후반의 여자로 보였다.
생맥주를 따라온 지원이 앞에 앉은 남자에게 컵받침을 새 것으로 바꿔주며 맥주잔을 내려놓았다. 남자가 고맙다고 인사하자 지원도 “땡큐”라고 입술을 오므리며 귀여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원은 오늘 노란바탕의 딱 달라붙는 니트원피스를 입었다. 남자는 연신 지원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고, 지원은 귀기울여 들었다. 금전출납기를 열어 돈을 넣고 닫을 때도, 웨이츄리스들의 주문을 받아 술을 만들 때도, 병맥주를 딸 때도 연신 웃음을 잃지 않았다.
가게는 지하에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지원이 보였다. 지원은 드나드는 모든 사람들에게 웃으며 인사를 해야하는 자리에 있었다. 그에 대해 불평을 한 적은 없다. 가끔 만사가 귀찮거나 몸이 안 좋거나 일이 너무 바쁠 때면 웃지 않을 뿐이었다. 문이 열릴 때마다 문 위에 달린 작은 종이 딸랑. 하고 소리를 내었다. 지원은 거의 모든 순간 웃으며 헬로, 라고 인사했다.
지원의 앞에 앉은 남자가 일어서서 계산을 하고 팁통에 만원짜리 하나를 넣었을 때 지원은 다시 한 번 활짝 웃었다. 자꾸 뒤돌아보며 문을 여는 남자에게 지원은 손을 흔들며 바이,라고 말했다. 주방에서 보조일을 맡고 있는 청년이 성큼성큼 걸어왔다. 지원 앞에선 청년은 봉투를 하나 들고 있었다.
“누나, 함춘임이 누구예요?”
“왜?”
“이거 아까 낮에 대타 뛰다가 받은 건데, 누구한테 물어봐야 되나 하고..”
지원은 청년의 손에 든 봉투를 나꿔챘다.
“누구예요?”
“나야.”
“아, 누나 이름이 함춘임이예요?”
“옛날 이름.” 봉투는 등기우편이었다.
지원의 표정이 다소 굳어졌다. 청년은 웃으면 안되겠다는 걸 알아챘는지 뒤로 물러나서 잠깐 멈칫했다. 지원이 환히 웃으며 얘기했다.
“그래도 나는 지원이야. 알았지?”
청년은 마음이 가벼워져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누나 오늘 정말 예뻐요.”
“땡큐” 지원은 다시 입술을 오므리며 발음한 뒤 입꼬리를 길게 올리고 미소지었다.
바에서 설거지를 하는 아르바이트생이 쓰레기를 버리러 간 사이 지원은 등기우편을 열어보았다.
지원의 주민등록지는 이 가게로 되어 있었다. 지원은 7년전 일로 다시 법원을 가고, 그 남자를 만나거나 마주보아야 한다고 서류에 적혀 있었다. 짐도 없이 거리로 나왔다. 눈이 부어 앞이 보이지 않았고 이도 몇 대 부러진 상태였다. 기억을 더듬어 옛 인연을 찾아 이 가게로 왔다. 춘임이었던 때, 찾아온 인연은 그녀를 내치지 않고 집에서 며칠을 같이 지내다 방을 구하기 위해 우사단 길을 걸었고 칵테일 만드는 법을 가르쳤으며 주민등록을 가게로 옮기게 했고 금전출납기와 장부를 맡겼다. 지원에게 장부를 맡긴 여자는 주방에서 스테이크를 굽고 있는 주방장에 옆에 서서 웃고 있었다. 작은 키의 그녀가 주방을 돌아나와 지원에게 왔다.
“나 와인 한 잔만 줘.”
지원은 냉장고에서 와인 한 병을 꺼내 마개를 따고 길쭉한 와인잔에 따라 건넸다.
“아 예쁘네 이거. 이거 뭐야?”
“로제와인, 어제 장사장님이 신제품이라고 가져왔어.”
와인을 든 여자가 지원을 빤히 봤다.
“그거, 내가 일부러 모르는 척 했다?”
“뭐?”
“아까 그 등기우편. 내가 성욱이한테 난 모르니까 너한테 가서 물어보라고 했다?”
“아 언니!”
여자는 깔깔대고 웃었다.
“그 새끼니?”
“어.”
“미친 새끼.”
키 작은 여자는 와인잔을 들고 총총히 걸어 주방으로 돌아갔다.
지원은 펴 놓은 매출장부로 쓰는 다이어리에 글자를 적었다.
‘쇼리언니 로제와인 1병 카를로로시– 장사장 증’
2014. 7.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