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창비주간논평 – 잡아먹힌 사람들의 이름

노동자들은 도로를 파고 통신회사의 데이터센터로 가는 전용 전선을 묻고 있었다. 작업시간은 5시까지인데 이미 6시가 넘었다. 길은 어두워졌다. 직장인들의 퇴근 시간이 시작되면서 사거리는 붐볐다. 이들은 사거리의 한갈래, 왕복 5차선 도로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전선을 묻고 땅을 다지던 롤러가 잠시 멈췄다. 롤러 옆에는 주황색 안전고깔이 있었다. 고깔이 롤러의 바퀴에 끼었다. 운전자는 잠시 내려 고깔을 빼내려고 롤러의 기어를 중립에 놓았다. 운전자가 롤러에서 내리는 순간 옷깃에 기어가 걸렸다. 롤러는 순식간에 앞으로 돌진했다. 운전자는 롤러에서 떨어졌고, 롤러 바로 앞에 있던 노동자 세명이 그대로 치였다. 세명 모두 그 자리에서 숨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라지만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은 없다. 한번의 사고는 수차례의 메시지를 보내 경고한다. 읽지 못했거나, 읽지 않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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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2. 16. 발행

[출간]태안환경보건센터 12년의 기록

1년 넘게 작업한 책이 햇수로 3년 걸려 나왔는데 센터가 날아갔다.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르고 공식 발표도 아직 없는 거 같다.

처음 계약은 2018년에 했다.

유류유출로 인한 인체 건강영향에 대해 전국 유일의 전문기관이었던 태안환경보건센터는 2020년 재지정을 받아서 원래 2022년까지 유지될 예정이었는데, 환경보건센터가 광역으로 통합되면서 다른 기관이 위수탁을 받게 되어 태안군의료원이 운영했던 태안환경보건센터는 사라지게 되었다.

센터의 12년 백서.

내가 전체 구성과 집필을 맡고전문가 자문을 수 차례 거쳤던 이 책은 그대로 사장되겠구만….

재미있는 책은 절대 아니다. 나는 태생이 문과인데 다환방향성탄화수소 PAHs와 휘발성유기화합물 VOCs 이해하느라 어려웠지만. 그만큼 깨달은 게 많았다. 나에겐 워낙 어려운 내용이었다. 코호트 역학조사 결과도 있지만 태안군 전체 인구가 10만이 되지 않아서 인정받지 못한다. 남성전립선암 급증이나 여성 혈액암 급증. 사고 당시 태아들의 작은 두위, 호흡기 질환. 주민들의 알레르기 급증, 갑상선 질환이나 고혈압 같은 것들. 굴이 사라지고 해삼만 나는 바다. 통계수치가 되지 못하는 모집단.

센터에는 12년간 축적된 주민들의 생체시료가 있었고 그 자료가 있었는데 그건 다 갈 곳을 찾았는지. 한 분야에 대한 12년의 연구를 담아 지역주민을 지키는 건강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든 작업이었다.

책은 비매품. 책이 다 되었을 때 센터에서 말랑한 부제를 지어달라고 해서 내가 제안한 부제목은 “그날 이후 다른 바다를 함께 살다”였는데 이 책의 부제는 “그날 이후 다른 바다를 사는 사람들”이 되었다.

[새책]민주학교의 탄생

민주시민교육을 전면에 내세워 실천하는 새로운 학교.
민주학교에 대한 새책이 나왔습니다.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삶과 배움이 꽃피는 공간이 과연 우리들의 학교에서 가능할지, 책을 쓰며 많이 토론하며 그 방향을 제시해봤습니다.

부산대 심성보교수, 서울대 정원규 교수 두 분이 이론적인 부분과 해외 사례를 제시하고, 김혜자, 허진만, 장경훈 현장교사가 실천적인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저는 전국 6개 사례지의 인터뷰를 진행해 정리하고 좌담회를 정리했습니다. 민주시민교육의 한 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도움될 이야기가 있을 겁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7906189
<민주학교의 탄생> / 심성보, 장경훈, 김혜자, 허진만, 정원규, 이하나 / 생각정원 펴냄

[창비주간논평] 팬데믹, 세 번째 개학

https://magazine.changbi.com/20210303/?cat=2466


팬데믹의 세 번째 개학을 맞아, 창비 주간논평에 칼럼을 싣게 되었습니다.
열 분이 넘는 교사들의 의견을 듣고, 학생당사자, 학부모들의 의견도 들었습니다. 미처 다 하지 못한 이야기가 많습니다만, 그 이야기는 사실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항상 현장에서 수고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도 그렇게 생각하고 썼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듣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2021년 3월 3일 발행

[기고]귀신이 하는 일

온라인 시대, 보이지 않는 비대면 노동에 관하여

2020년, 코로나19의 감염에서 내가 먹고 살기 위해 했던 일의 절반은 사업계획서를 수정하는 일이었다. 그 중의 절반은 담당자에게 비용산출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고 설명하는 일이었다. 

“온라인인데 왜 더 비싸요?”

“장소대관 안해도 되는데 이렇게 돈이 들어가요?”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실시간 하시면 되잖아요”

“유튜브에 일주일에 한 건씩 업로드하면 되지 않나요? 애들도 한다던데”

“왜 꼭 해외 사이트를 사용하려고 하시죠? 국산 화상채팅앱도 있다던데요” 

나에게 저런 질문을 한 사람들의 80%는 공무원이었고, 정부지원자금을 받아 1년짜리 사업을 진행하는 사람들이 나머지 20% 정도 된다. 1인미디어의 시대, 4차산업혁명의 시작이라는 주제어가 사람들의 인식을 어떻게 꼬아놨는지 확인했다. 그 실타래를 푸는 작업으로 상반기가 다 지나간 셈이다.

“모바일 기기로 유튜브 실시간 방송을 시작하려면 일단 방송할 채널의 구독자 수가 1천 명이 넘어야 합니다. 계정도 없으시다고요? 유튜브로 송출하려면 발언자 소리가 잘 들리도록 해야 합니다. 행사를 제대로 촬영하려면 적어도 3대의 마이크와 3대의 카메라와 이 기계를 잡을 사람이 필요합니다. 편집은 소프트웨어로 하지만 결국 사람 손이 갈 수밖에 없어요”라는 얘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온라인에서는 모든 사람이 정보와 콘텐츠의 소비자가 될 수 있고 생산자도 될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누구나 계정만 가지면 방송도 할 수 있고 책도 펴낼 수 있다. 거짓은 아니다. 그러나, 정보나 콘텐츠를 만들어내려면 사람들이 볼 만한 내용을 구성할 기획력이 있어야 하고, 그 기획에 따라 짜임새 있는 스토리를 전개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필요하며, 현장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살려낼 수 있는 기계와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온라인으로 회의를 진행한다는 것은 기계의 힘을 빌려야 한다. 누구나 접근은 가능하지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수준의 품질은 누구나 만들어낼 수 없다. 기계와 기술만 있다고 가능한 것도 아니다. 실시간 송출이라는 건 안정적인 통신환경이 필요하다. 일정한 데이터가 기복 없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야 비슷한 용량을 가진 화면이 보이지 않는 통신선을 타고 내 눈앞에 놓일 수 있다는 걸, 일일이 설명해야 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 만난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저 모든 장비와 기계와 통신선이 필요없이 한 장소에 모여 앉으면 되는 일이니까. 마이크를 굳이 갖다 놓지 않아도, 카메라 두 세대가 각도를 달리해서 따로 찍지 않아도, 통신선을 끌어와 장비에 연결하지 않아도 되는 거였다. 마이크가 없을 때는 듣는 사람은 귀를 기울이거나 상반신을 앞으로 내밀면 되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 성대와 배의 힘까지 이용해 소리를 키울 수 있는 만큼 더 큰 목소리를 내면 된다. 카메라가 없어도 고개를 돌리거나 잠시 허리를 곧추세우는 것으로 내가 원하는 각도를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인간의 신체는 이다지도 위대하다.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러웠던 것을 온라인 공간으로 옮겨와 복원한다는 것은 여러 사람이 투입되어 숙련된 기술과 비싼 장비를 써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온라인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대답하다 보면 지치기도 했다. 나름대로 어떤 사람들은 잔꾀를 부려 비용을 절감하거나 필요한 장비를 축소해서 진행하자고 했다. 처음에는 그에 응하기도 했으나 하반기로 갈수록 나도 배짱을 부렸다. “네네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해요. 그렇죠.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어요. 네네, 하지만 그렇게는 못합니다. 안됩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코로나19의 전염이 다음 해에도 지속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각종 행사의 온오프라인 병행은 2020년을 기점으로 자리 잡을 거라 판단했다. 초기에 시작되는 일들의 기준을 잡아둔다 해도, 일은 반복되면서 폄하되고 훼손되기 십상인데 조금 더 강력한 규칙을 적용해야 융통을 발휘할 범위도 생기지 않겠는가. 

기준이 없이 온라인 행사와 교육이 중구난방으로 진행되다 보니 각 예산집행처의 담당자 권한도 강력해졌다. 담당자가 온라인 행사에 투입될 비용의 산출근거를 이해하면 결정권을 가진 상사의 결재를 받을 수 있고, 그래야만 예산집행이 결정되는 것이다. 어떤 담당자는 온라인 회의 툴을 왜 미국산을 쓰냐면서 국산도 있다고 “국산품애용정신”을 발휘하기도 했다. 공기관에서 해외결제를 용납해줄 리 없다고 체념한 어느 단체 담당자는 개인사비로 유료버전을 구매해 시비를 마무리했다. 

특강이나 교육프로그램 강의 섭외때에도 녹화했다가 쓰면 안되느냐는 질문이 빗발처럼 들이쳤다. 녹화영상을 어디에 배포할 것이며, 어느 플랫폼에 업로드할 것이며, 언제까지 사용할 것인지 계약서를 쓰고 얘기하면 모두들 없던 일로 하자고 말을 바꿨다. 녹화영상은 상호소통이 없어서 임기응변이 용납되지 않기 때문에 더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다.온라인으로 전환해서 성공적인 그림을 만들고 싶다는 곳도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성공적인 그림은 방송국에서나 가능한 모습이었다. 

온라인시스템이 기계화되었다고 해서, 어플에서 모든 걸 해준다고 해서, 그걸 작동하는 사람이 카메라 뒤에 서 있어서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다들 모든 걸 쉽게 생각하고 있었다. 앞서 얘기한 기계와 기술이 필요 없이 몸을 비트는 것만으로 대부분 해결되는 인체의 신비를 이해하지 않을뿐더러, 화면 뒤에 숨어있는 사람들은 고려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나의 방송을 만들기 위해 24시간 쉬지 않고 일하는 스텝들과 실감이 나는 영상을 찍기 위해 동상과 열사병, 근골격계 질환을 감수하는 제작자들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산악인들이 에베레스트에 올라 깃발을 꽂고 만세를 부를 때, 무거운 등짐을 지고 카메라 뒤에서 묵묵히 허술한 옷차림으로 걸어 올라가는 셰르파들을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증명 아니었을까. 

소프트웨어 하나를 만들려면 수많은 협업과 지난한 노동이 필요하다. 심심풀이로 했던 게임의 오류를 잡아내느라 밤을 새우다 죽어가는 개발자들의 이야기가 소리 없이 사라질 때, 콤마 하나 더 찍어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홈페이지 때문에 애먼 상담원에게 분풀이를 하는 일이 늘어나는 것이다. 기계나 시스템이 돌아가는 원리는 종사자가 아닌 이상 다 알 필요도 없고 다 알 수도 없다. 

그렇다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변치 않은 단 한 가지 원리까지 무시하면 곤란하다. 2020년에 내가 접한 저 많은 황당한 질문은 모든 일을 사람이 해야 한다는 걸 무시한 태도였다. 4차 산업혁명으로 모든 일을 기계가 대체하게 된다는 게 노동자가 필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다. 기계화는 기계를 다룰 수 있는 사람만이 숙련된 노동으로 기계를 조작하고, 기계가 고장날 경우 정확한 대응을 할 수 없는 관리자들만 우왕좌왕하는 상황을 만든다. 기계는 오류가 나기 마련이다. 기계는 기계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같이 있어야 원활하게 작동하며 그 가치를 빛낼 수 있다. 무대를 설치하고 의자를 깔고 내빈석이라는 글자를 출력해 종이에 붙이는 것만이 노동으로 보인 것일까. 촬영을 한 뒤 편집을 하고 업로드를 하는 것은 귀신이 하나? 

우리의 시공간을 연결해주는 작업은 내가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버스나 전철을 타고 가서 행사장에 앉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보이지 않는 타인의 노력만이 앉은 자리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게 해준다. 덜 움직여도 되는 편리한 개인의 삶은 언제나 누군가의 노동을 깔고 앉아 있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다. “편리하고 빠르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노동이 켜켜이 쌓여가는 소리다. 보이지 않는 노동은 귀신같이 일한다. 아무도 모르게, 소리도 없이 이름도 없이, 사용자가 고개를 들어봐도 몸을 일으켜도 보이지 않고, 보이지 말아야 한다. 

인류가 처음 기계로 영상을 봤을 때, 귀신의 짓이라 했다. 우리는 여전히 그 노동들을 귀신으로 취급하며 2021년을 맞았다. 노동자는 이름이 있다. 그들의 노동은 귀신놀음이 아니다.

한국노동 기관지 노동과 희망에 게재된 글입니다. http://news.inochong.org/detail.php?number=2893&thread=22r07&fbclid=IwAR3LYyciM4Y2bev1LTRYcGohTPVsk6y6ywSKwcQBi12uh9bEOU5OT9BANPU

[새책]출간 소식

2020년 코로나가 장기화 되면서 이 시대의 학교와 교육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느냐는 주제로 청탁을 몇 건 받았습니다. 학교와 학교밖을 연결하는 일을 2014년부터 해왔고, 학교를 지원하는 교육지원청, 교육부와의 업무협력을 해온 시민단체 책임자이며 전문 집필이 가능한 위치라는 것 때문에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대부분의 교육관련 담론은 전문영역의 연구자들이 말하기 마련이죠.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학교와 지역교육청을 둘러싼 우리들과 마을의 이야기입니다. 가장 처음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학교공동체의 역할’에 대한 원고를 썼고, 이 원고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이야기를 민들레에서 만드는 계간 민들레에 ‘마을교육공동체’에 대한 글로 썼습니다.

민들레에서 펴낸 <함께 만드는 마을교육공동체> 민들레선집 3 에는 마을교육공동체의 현실과 방향을 고민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이 책에는 대안교육에서 공교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현장의 마을교육공동체에 대한 필진들의 글이 같이 있습니다. http://aladin.kr/p/nyot5

계간 창비에 실렸던 글은 개고하여 학교 공동체와 마을교육의 유기적 결합에 대해 더 추가했습니다. 창비에서 나온 <코로나 팬데믹과 한국의 길> 은 교육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친 이야기가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은 전문연구자들이 다수이고 사회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민한 내용입니다. http://aladin.kr/p/iyOKQ

교육공동체 벗이 펴낸 <재난은 평등하지 않다>는 코로나와 관련된 제 원고중 가장 마지막에 쓴 글입니다. 학교의 본질과 마을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고민을 담았습니다. http://aladin.kr/p/lyO1g

제가 쓴 글들은 어찌 보면 매우 원론적인 내용입니다. 학교는 지식의 전달체가 아니며 공동체를 살아갈 시민을 길러내는 곳이어야 합니다. 학교와 마을은, 정부와 시민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협력하여 자본에 대응해야 합니다. 국가는 이전처럼 막강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적은 모두 자본에 깃들어 있습니다. 위기의 시절에 현장에서 느낀 내용을 외부에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특수한 상황이라 유일한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그나마 같이 울고 웃으며 고민해왔던 동지들의 이야기가 조금 더 널리 퍼져나가길 바랍니다. 모두들 애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방향은 함께 더 치열하게 논의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교육부는 새해에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며 세심한 정책으로 상처받은 교육공동체를 감싸 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