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동자동사람들 / 빨간소금

책 속 저자의 마지막 말 :

• 우리는 타자의 삶을 모른다. 쪽방촌을 개선하기 위한 여러 시도들에도 결국 주민들이 사회적 버려짐을 경험하는 까닭은, 이러한 시도가 전미래 시점에 서서 ‘이렇게 하면 더 나아질 것이다’ 라는 구원적 미래를 너무나 섣불리 제시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여기의 모습’을 그려내는 작업은 중요하다. 공통의 구조 위에서 벽장 안팎의 부분적 연결은 드러난다. 타자의 고통에 대한 윤리적 응답은 이때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다. •

오늘도 나는 타인의 삶을 재구성하고 집에 돌아왔다. 타인의 삶을 쓸 때마다, ‘모르지 뭐.’ 라고 주문을 외워야 한다. 가끔 주문을 잊으면, 글이 무너진다.

나에게 동자동은 매우 각별한 곳이다.
여러 번 동자동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빈곤에 대한 책을 소개한 것도 어쩌면 그때문이다. 나의 성인기의 첫 시작은 동자동 18-37번지, 장학고시원이었는데, 우연찮게도 나는 지금은 사라졌으나 건물만 남아있는 동자동 성분도병원에서 태어났다. 내 동생도 거기서 태어났다.

동자동에 살던 시간을 떠올렸고, 이후 무연고장례의 초기설계 과정을 어깨너머로 들여다 본 기억도 되살아났고, <노랑의 미로>와 <가난의 문법>이 교차했다.

희한하게도, 이 책은 추리소설이 아닌데 그만큼 흡입력이 뛰어나다. 문화기술지가 이렇게 가독력이 좋다는 것은, 흔히 보던 일상뒤에 숨은 그림자의 실체를 하나씩 툭툭 꺼내 내 앞에 던져놓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이한 감정이입을 경험했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나의 심연을 까발리는 거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동자동은, 한국사회의 민낯을 제대로 보여주는 공동체였다. 이제 여기도 개발한다하니, 어쩌면 서울 하늘 아래 마지막으로 남은 인간존엄최후사수대도 사라질지 모르겠다.

강력하게 추천한다.
이 나라와 서울을 알고 싶다면.

<동자동 사람들> 왜 돌봄은 계속 실패하는가
/ 정택진 지음 / 빨간소금 펴냄

[책]빌러비드 – 토니 모리슨

1992년에 출간된 토니모리슨의 “재즈”는 읽은 기억만 있다. 내용도 잘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랫동안 사놓고 못 읽은 책 중의 하나다. 빌러비드. 영어원제인 Beloved를 발음 그대로 한글로 적었다. 사랑받는 이.
사전정보를 전혀 알아보지 않고 무작정 읽으니 소설의 시작이 어려웠다.
인종차별에 대한 현대소설일 것이라 생각했다. 인종차별에 대한 현대소설은 맞지만, 서술방식이 낯설었다. 현실과 몽환을 넘나드는 전설 같은 이야기였고 시대적 배경은 노예제도가 남아있던 1800년대 후반이다.

노예제도라는 것은 나에겐 추상적인 것이다. 조선을 묘사한 문화콘텐츠에서 보여주는 귀족 아닌 자들의 삶을 묘사한 정도의 연장선일 거라 어렴풋이 생각하지, 그걸 구체적으로 상상해보진 못했다. 빌러비드에서는 흑인들이 단지 피부색 때문에 노예로 살면서 겪어야 했던 생활이 묘사되어 있다.
이름은 A B C D로 짓기도 한다. 폴 에이, 폴 비, 폴 디, 폴 에프.
자식을 낳으면 팔려가고, 새끼를 낳으라고 ‘교미’를 당하기도 하는. 구체적으로 상상해본 적 없는 비참.

비참하고도 비통한 세상에서 어떤 선택을 했던 마가릿 가너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어온 이 소설은, 손에 잡으면 중단하기 어렵지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끔찍한 이야기때문에 미간을 찌푸려야 한다. 그렇다고 눈물이 터지진 않는다.
그 이유는 아마 토니 모리슨이 했다는 이야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역시 사람일 뿐입니다. … 글로 쓰기엔 분노는 너무 시시하고 연민은 너무 질척거리는 감정입니다.”

시공간을 넘나들지만 호흡을 잘 따라가면 몰입해서 읽을 수 있다.
“나는 이것이 출몰하는 우리의 과거, 그리고 그녀의 과거가 되길 바랐습니다. 과거, 유령처럼 불쑥불쑥 찾아오는 과거 말이죠. 기억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는 법입니다. 그것과 정면으로 부딪쳐 돌파해나가기 전에는.”

노예농장에서 탈출하는 폴 디에게, 체로키 인디언이 방향을 가르쳐주는 문단을 여러 번 다시 읽었다.
“꽃나무를 따라가시오. 꽃이 피는 나무만 따라가시오. 꽃이 지면 떠나시오. 꽃이 모두 지면, 원하는 곳에 이르게 될거요.”

꽃이 피는 나무를 따라가면 북쪽에 다다른다. 18년간 도망자로 살아야했던 폴디와, 자식을 노예졔에서 끊어내기 위한 결단을 했던 세서와 같은 수많은 비통한 인간들의 삶이.
언젠간 모두 과거가 되길.

빌러비드 / 토니모리슨 / 최인자 옮김 / 문학동네

[책]노랑의 미로 – 이문영

서울역 뒤에 동자동이라는 곳이 있다. 그 곳에서 2년 반을 살았다. 거기 살았을 때의 이야기는 이 자리에서 여러 번 했고, 작은책에 연재한 분량에도 있어서, 더 이야기하는 건 지루한 일이 될 것이다.

이문영이라는 한겨레 기자가 있다.
몇 년전에 가난의 경로라는 시리즈물을 토요판에 연재했다. 토요일 아침마다 신문을 기다렸다. 그리고 공유하고 싶어서 한겨레 페이스북 계정을 오전 내내 들락거렸다. 문영의 글은 유난히 늦게 인터넷에 업로드 되곤 했다.

그 이문영이,
<웅크린 말들>에 이어 가난의 경로에서 출발한, 동자동 쪽방촌 건물의 사람들의 5년간의 삶을 추적해 두툼한 책으로 묶어냈다.
신랄한 르뽀가 힘든 사람들은, 아마 다 읽지 못할 지도 모르겠다.

이문영이 어떻게 기자생활을 지속하는지 잘 모르겠을 만큼, 한 문장 한 문장, 진을 빼며 쓰는 것 같다. 본인은 그렇지 않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읽으면서 쓰는 사람의 땀방울이 느껴지는 글은 딱히 많지 않다.

이문영이 이 이야기를 기획한 건 아마 그때문일 것이다.
가난한 자들은 사실상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다는 것.
멀리 갈 수 없다는 것.
동자동 쪽방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기껏 가봤자 몇 백미터라는 것. 그리고 죽어야 그 가난에서 벗어난다는 것.

책을 읽으며 내내 피곤하고 괴로웠던 것은
내가 90년대 후반의 동자동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살던 고시원의 옆 집에는 앵벌이가족이 살았고, 내가 살던 고시원의 앞 집에는 포장마차를 하는 부부와 소매치기 아들이 살았다. 고시원을 오르는 길목에 알록달록한 이불을 구해오는 노숙자들이 자리 잡고 살았고, 벽산빌딩 앞에는 지린내가 진동했으며 아침 9시, 골목길엔 초록색 소주병이 굴러다녔다.
<노랑의 미로>의 배경이 되는 그 쪽방건물은 내가 살던 고시원과 약 300m 가량 떨어져 있다. 내가 살던 장학고시원은 지금은 근사한 놀이터가 되었다.

나는 그곳을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여 20대 초반을 보냈다. 그 이후에도, 샤워를 할 때마다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껴야 하는 반지하에서도, 다시는 지상으로 올라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지금도, 가끔, 나는 자칫하면, 다시 고시원으로 쪽방으로 지하로 떠밀려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있다. 어쩌면 가난에 대한 공포가 나의 근원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소중한 기록을 읽었다.
디자인과 편집도 정성스럽다. 가난의 경로를 추적하느라 쪽수를 넣은 본문을 여러 번 수정했을 것이다. 이 무거운 이야기를 기록해 준 이문영기자와, 오월의 봄에 진심으로 고맙다.

<노랑의 미로> 이문영 지음 / 오월의 봄 펴냄

[책]임계장이야기

임계장은
임시 계약직 노인장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신의 직장이라는 공기관에서 37년을 일하고 은퇴한 조정진 씨가 남아 있는 자녀들의 학자금과 생계때문에 다시 일자리를 찾는다.
그의 나이 60세.

책의 도입부는 저자가 다시 돈을 벌어야만 하는 상황을 제시하여 생계의 압박을 알려준다. 퇴직하기 전 벌어놓은 돈은 딸의 혼사로 들어갔고, 퇴직금은 중간 정산하며 집을 사는 데 보탰다. 임금피크제의 적용을 받아 나머지 퇴직금을 받아서 남은 퇴직금은 없다. 아들이 전문대학원에 가겠다고 했다.

퇴직하고 나니, 신용이 사라졌다.
은행에서는 원금과 대출이자를 일시상환하라고 독촉하기 시작하고 직장에서도 복지기금으로 출연한 자녀들의 대학 학자금 대출도 갚으라고 했다.

지금은 신의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일지라도, 빚내어 집 한칸 샀거나 독립하지 못한 자녀가 있다면, 모두가 겪게 될 일이다.

책에서는 저자가 네 군데의 직장을 거치는 과정을 꼼꼼하게 묘사한다. 대단한 운동가이거나 세상을 너그럽게 이해하는 성인군자가 아닌, 나와 같은, 내 이웃과 비슷한 평범한 시민인 조정진씨는 임계장으로 불리는 일을 시작한다. 이 기록은 2016년 버스회사 배차원으로 일했다가 해고당하고, 아파트의 경비로 일하다 해고당하고, 빌딩 경비원으로 일하다가 해고당하고, 버스터미널 보안요원으로 일하다 해고당하는 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가 2년간, 네 곳의 직장에서 해고된 뒤의 결과를 맨 마지막에 서술한다.

내가 가장 가슴터지게 복받치는 울음을 토해낸 부분은 맨 뒷면, 감사의 말이었다.
맨 마지막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가족에게 부탁이 있다. 이 글은 이 땅의 늙은 어머니·아버지들, 수많은 임계장들의 이야기를 나의 노동 일지로 대신 전해 보고자 쓴 것이니 책을 읽고 몰랐던 것을 알게 되더라도 마음 아파하지 말기 바란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다.

이 책은 이 시대를 그리는 시사점뿐 아니라 구성이 좋고 잘 쓰고 잘 만든 책이다. 모든 사람들이 읽으면 좋겠다.

임계장이야기 / 조정진 지음
우리시대의 논리27 / 후마니타스 펴냄

[책]떠도는 땅 – 김숨

소설은 내내 기차 안에 머무른다.
연극 대사와 같은 말은 한숨처럼 툭툭 바닥에 떨어진다.

1937년 러시아 극동지방에 머물던 조선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당한다. 카자흐스탄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조선인들은 땅을 떠돌다 보니 땅이 떠돌게 된 이야기를 나눈다.

압도적인 이야기의 힘이 있다.

<떠도는 땅>
역사적 상흔을 하나씩 길어올리는 작품을 속속 선보이는 김숨이 썼다.

[책]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시리즈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가 기획하고
네 명의 만화가가 그리고
창비에서 펴낸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시리즈

제주 4.3을 다룬 <빗창>
4.19혁명을 다룬 <사일구>
5.18 민중항쟁을 다룬 <아무리 얘기해도>
6월항쟁을 다룬 <1987 그날>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꼭 갖춰야 할 책이다.
청소년부터 어른까지 모두 읽을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

언젠가 우리의 이야기 <그해 겨울> 이 나오겠지. 2016년부터 2017년까지, 그 겨울에 대한 이야기도.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시리즈

2020. 5. 30.

[책]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삶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며 살아간다.’

과거로부터 온 자신의 어쩔 수 없는 이야기를 온전한 자기 삶으로 바라보는 홈리스의 이야기.

제주도 출신으로 보육원에서 자라 조소작가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지만 IMF이후 일자리를 잃고 18년간 홈리스로 산 임상철 씨의 글 모음집이다.

6년간 빅이슈를 파는 빅판으로 활동했던 임상철 씨는 잡지를 사주는 사람들이 고맙고 자기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 매달 자기가 파는 빅이슈에 글과 그림을 그려 A4용지에 출력해 끼워 넣었다. 그렇게 보인 52통의 편지. 과장도 증오도 원망도 없는 덤덤한 홈리스의 이야기.

왜 살아야 하는가 묻는다면,
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삶을 생각하면 된다고 말해줄 수 있겠다.

참고할만한 유튜브 영상
https://youtu.be/wt9Ua7aht4g

지금은 조각가로 살고 계신 듯 하다.

<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삶>
임상철 글/그림, 생각의 힘 펴냄

2020. 5. 24.

임상철지음 / 생각의 힘 펴냄

문자가 주는 오만함을 경계하라

[서평]활자 잔혹극 – 루스 렌들

영국 미스테리 소설의 거장 루스 렌들의 <활자 잔혹극>은 1977년작이다. 한국에는 북스피어 출판사가 2011년에 소개했다. 끌로드 샤브롤의 영화 “의식(儀式)”의 원작소설이다.

▲ 루스 렌들 (지은이) | 이동윤 (옮긴이) | 북스피어 | 2011-11-25 | 원제 A Judgement In Stone (1977년)

오만의 유혹, 세계의 파멸

소설의 첫 문장은 도발적이다. 사건의 결과를 내던지고 시작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자 이런 일이 있었어. 그 속에 숨은 이야기를 내가 지금부터 잘 설명할텐데, 듣고 싶으면 듣고 아님 말어’ 라는 태도로 보인다. 소설은 살인사건의 범인을 밝히고 시작한다. 독자가 찾아내야 할 것은 그 원인이다. 문맹인 가정부가 지식인 가족을 살해한다. 그 곁에는 광신도인 미치광이가 하나 붙어 있다.
주인공은 사회와 격리된 채 살아왔다. 문맹이라는 건 제도권 교육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이며 누구도 이 주인공을 살뜰하게 보살피거나 주인공의 미래를 진지하게 염려한 적 없다는 말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나, 이 글을 읽는 당신이나, 문맹이 느낀 수치심은 과연 어떤 것인지 사실 잘 알 수 없다. 글을 알기 때문에 전혀 알 수 없는 세계가 존재한다. 마지막 해제에 장정일이 적은 발문이 이 세계를 이해하는 데 약간의 단초가 된다. 영어권 국가에 갔는데 말을 한 마디도 못해 죽고 싶은 심정이 들었던 적 있다면. 이라는 부분을 읽으니 개인의 경험이 생각났다.

10년도 훨씬 더 전에 공부를 하겠다고 중국대륙으로 갔다. 중국어는 학원을 몇 달 다녔지만 사실 한 열 마디 정도 하는 게 전부였고, 영어가 어느 정도 통하겠거니 얼토당토 않은 생각을 하며 대책없이 떠났다. 도착하자마자 공항에서부터 난감한 상황이 펼쳐졌다. 나는 영어로 된 호텔명만 알고 간 것이고, 내가 아는 주소도 영어로 된 것이라 발음이 명확치 않았다. 택시기사 한 명에게 호텔명을 댔더니 공항에 줄 지어 서 있는 택시기사 수십 명이 몰려들었다. 그 땅은 영어는 통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새로운 단어는 중국어로 바꾸어 말했고, 내가 도착한 상하이라는 도시는 사투리마저 심해서 어학연수 기간 내내 표준어를 배워봤자 벙어리나 다름없었다. 말도 글도 안 통하는 몇 개월을 보내며 어릴 때 본 중국무협드라마에서 본 이미지가 떠올랐다. 팔다리가 다 잘려서 항아리속에 목만 내밀고 살아있는 반역자의 모습이었다.
이후, 말을 떼고 글을 배우고 알량한 글밥으로 공부를 했을 때의 심정은 좌절감, 열패감, 소외감, 박탈감, 온갖 부정적인 감정표현명사는 다 갖다 붙여도 무방하다.
나의 개인적인 체험이 설마 주인공의 감정을 반푼어치라도 이해할 수 있게 만들까?
아닐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평생을 문자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살아온 것이다.
주인공에게 문맹이라는 건 치명적인 비밀이요 상처다. 불행하게도, 주인공은 숨기고 싶은 상처를 후벼파는 대상들에 둘러싸여 산다. 결국 주인공은 감당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우리는 모두 잠재적인 호모 사케르

작가는, 주인공의 이 문제가 그저 감정의 것으로 건드리고 넘어가지 않는다. 한 사람의 삶을 관통하는 문화전체와 문자라는 기표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문자로 둘러싸인 삶과 지식인연 하는 것과, 타인의 삶을 통제하려고 드는 기득권층의 계급성을 두고 문화의 차이로 인한 삶이 달라지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 질문을 던진다. 문화수혜자와 문화박탈자의 경계는 또 다른 계급갈등으로 이어진다. 한 사람이 어떤 삶을 꾸려가는가는 사실 의지의 문제와 동떨어질 수도 있다고 말한다.
언어의 기의도 누구에게나 동일하진 않다. 굳이 성문화하지 않은 약속이 있다고 치면, 언어의 기표는 특별한 교육을 거쳐야 습득할 수 있다. 근대교육은 분명 특별한 영역이다. 그저 너무 흔해서 보편화된 것처럼 보일 뿐,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문맹이 아닌 이들이 말하는 보편이나 평범이라고 하는 것은 어차피 본인이 기득권이 아니라고 우겨대는 기득권들의 놀음은 아닐까.

예를 들어, 쪽방촌에 사는 70대 이상의 노인들은 메모를 길게 하지 못한다. 문자습득이 순탄하지 않았고 문자는 그저 명사, 이름씨로 존재하지만 문자를 사용해 감정이나 생각을 전달할 정도의 문자 습득력은 없다. 이것은 문해력과 바로 직결되는데 타인의 기표를 정확하게 읽어내지 못하며 평생을 살아가게 되면 온전히 사람의 표정과 어투, 말씨를 통해 세상을 이해할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휘갈겨대는 수많은 문자를 보며 온통 어지러운 세상을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글씨는 쓸 줄 알지만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엉망이었다. 이 사람은 초등학교를 3년 정도 다닌 게 학력의 전부였다. 가정내 폭력으로 가출이 아닌 구출을 받아, 어릴 때부터 남의 집 살이를 하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의 남편이 문맹인 거 같다고 나에게 고백한 적 있다. 그 남편은 고아로 보육원에서 자랐고 역시 초등학교를 다 마치지 못했다. 결혼 후 모든 공기관과 은행 업무를 이 사람이 도맡아서 했는데 남편은 글자를 써야 하는 상황이 예상되기만 해도 짜증을 부리고 포악을 떤다는 것이다. 남편의 얘기를 전하던 그는 모르면 모른다고 할 것이지 포악을 떨 게 뭐냐고 투덜댔다.

다시 소설로 돌아가 문맹이라는 이유로 살인을 저지른다는 개연성을 생각해보면 아감벤을 떠올릴 수 있다. 조르주 아감벤은 <호모사케르>에서 “만일 오늘날에는 명백하게 규정된 하나의 호모 사케르의 형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 모두가 잠재적인 호모 사케르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라고 말했다. 루스 렌들이 말하는 문맹이라는 형상은 그저 여러 종류의 호모 사케르 중 하나일 것이다.

문해자들은 문맹을 보면 가르치려 든다. 문맹자의 의지박약을 말할 것이고 동정하고 연민하며 새로운 세계로 안내하겠다고 안달을 할 것이다. 타인을 가르치지 않으면 자신의 삶을 성실히 살지 않고 있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인간이 많다. 과연 그것이 인간이 인간에게 해도 되는 행동인가? 존엄의 문제와 과연 무관할까? 이는 통제의 한 방편이거나 폭력의 묘한 양상은 아닐까?

주인공의 이름은 유니스다. 유니스가 살인을 저지른 것은 한 존엄한 존재가 가진 온전한 세계의 침탈을 꿈꾼 한 가족에 대한 인간으로써의 저항일 수도 있다.

“유니스는 숨쉬는 돌이었다. 지금까지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라는 문장이 눈에 띈다. 유니스는 문자가 필요 없는 원형 그대로, 문화가 굳이 개입하지 않아도 되는 특정한 세계, 요컨대, 자연계의 상징으로 보였다.

영어 원제는 A Judgement In Stone이다. 위에 소개한 문장이 그 핵심문장이 되는 셈이다. 사전을 다시 뒤져 in stone을 확장해 찾아보면 carved in stone이라는 관용어구가 나온다. 변경불가능한, 이라는 뜻이다. 돌은 그런 것이다. 돌에 새긴 심판, 이라는 건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말할 것이다. 문맹 너머, 유니스라는 한 개체가 가진 특질과 그 개체가 40년간 흡수해 온 문자를 제외한 사회문화의 많은 것들이 상징하는 바일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지울 수 없는, 변경 불가능한,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어떠한 세계.

조선 후기 문인 김려(1766-1821)는 사유악부(思有樂府)에서 ‘세상이 어지러워 화 당하기 쉬우니 글짓기를 조심하라’고 전했다. 글짓기나 글쓰기가 과연 세상이 어지러울 때나 조심해야 할 일일까. 우리는 글 속에 파묻혀 얼마나 많은 것을 돌아보지 못하고 오만을 떨며 죽어가는가. 배운 것이 탈이고, 아는 것이 병이로다. 무수히 부딪히는 세계와 세계의 충돌, 그 사이에 벌어지는 크레바스 같은 파멸은 죽음으로 귀결된다는 작가의 의지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오래 읽히는 작품은, 늘 온당한 이유가 있다.

▲ La Ceremonie, 1995 | 감독 : 클로드 샤브롤 Claude Chabrol | 주연 : 상드린느 보네르(Sandrine Bonnaire), 이자벨 위페르 (Isabelle Huppert)

[추천]보리 국어 바로쓰기 사전

보리사전.jpg

 

민중서림에서 나온 국어사전을 가지고 있다.
단어만 나열한 사전은 수록된 낱말의 숫자로 승부를 보는 모양이다.

이번에 새로 나온 보리 국어사전은 수록어휘가 많은 사전은 아니다.
허나 책상 위에 쌓아두고 펼쳐보기도 힘든 초대형 국어사전과 다르다.

1. 외관
1) 펼쳐볼 만한 두께.
예전에 쓰던 시사엘리트영한사전이나 코빌드 영영사전 정도의 두께이고 무게는 그보다 약간 더 나간다. 종이가 영한사전 종이보다는 조금 더 두껍다.
2) 내지 디자인이 보기 좋다.
노안이 오기 시작한 40대도 볼 만한 글자크기로 일반 단행본보다는 작은 글자이지만 시원시원하게 잘 편집했다. 주제어는 더 크게, 그에 대한 설명은 조금 작게 구성되어있다.
3) 예쁘다.
하앍.
사전도 예쁠 수 있다.

2. 내용
1) 한 눈에 구분할 수 있는 편집
틀린 말 앞에는 연한 보라색으로 X가 표시가 되어 있다.
2) 필요한 정보만 넣는다.
모든 단어에 발음표시가 된 게 아니고 주의해야 할 낱말에만 있다.
관련된 복합어, 관용표현, 속담, 타동사형 등 낱말별 유의할 점이 낱말마다 다르게 수록되었다.
3) 뜻을 잘못 아는 말, 구별하는 게 좋은 말 표시
사람들이 흔히 틀리게 쓰는 말을 구별해놨고, 깊은 의미를 잘 몰라서 정확하게 쓰지 못하는 말도 설명했다. 예를 들어, 감추다와 숨기다의 차이점을 알 수 있다.
4) 활용 설명
접두사나 용어활용에 대한 설명을 박스 안에 다시 설명해 국어공부가 가능하다.
5) 부록이 압권
조사, 어미, 발언, 용언활용표가 실려 있다.
이거만 봐도 국어문법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을 듯

아 이 사전 좀 사라 사람들아.
이렇게 훌륭한 사전이 8만원 밖에 안 한다.

 

2017년 1월 10일

 

[서평] 해녀와 나 – 너 독새끼가 뭔주 아나?

우도 어멍들과의 1년, 육십 넘은 막둥이의 변주곡

제주는 근현대사의 비극을 간직한 섬이다. 최근 몇 년간 관광산업이 급성장해 제주는 이제 국내외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는 명소가 되었다. 최근 10년 사이 이 도시에서 제주에 한 번도 안 간 사람은 나뿐인 것 같다.

책을 읽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집중이 잘 안 될 때 나는 사진집을 찾는다. 요즘은 공공도서관에도 좋은 사진집이 많이 들어와 있다. 사진집은 여타 단행본보다 제작비가 많이 들어 그 값이 꽤 나간다. 도서관에서 빌려 보는 책이 늘어날수록 이미 읽은 것도 소장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데 사진집류가 주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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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초이 찍고 지음 / 남해의봄날 펴냄

 

이 사진집은 준초이라는 사진가가 제주 옆 우도에서 1년을 보내며 기록한 바다 어멍들의 이야기다. 준초이는 이제 나이로 따지면 노년에 가깝다. 책 소개에 보면 2005년 제주에서 광고 촬영을 하던 그가 멀리서 들려오는 숨비소리에 이끌려 우도에 들어가 해녀 사진을 찍은 것이 그의 운명을 바꿨다고 쓰여 있다. 이 책은 사진과 작가의 이야기가 같이 어우러져 있는데 사진의 기술력이나 예술성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만큼 완성도가 높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이미지 옆에는 도시에서 온 사진작가가 바다와 해녀들을 대하는 어설픈 모습이 소박하게 적혀 있다.

 

“이땅 마중 올 때 독새끼난 50개 삶아오라, 너 독새끼가 뭔주 아나?”
“예! 계란!”

날이 더우니 시원한 물을 가져다주려고 냉장고에서 차갑게 얼은 생수를 가져다 줬는데 차가운 바다에서 한참 물질을 하다 온 해녀들에겐 하나도 도움이 안 되었다거나 의미심장한 대답을 기대했는데 툭 던지는 일상의 언어에 놀란다거나, 그 사진기 들고 다녀서 처자식 먹여나 살리겠냐는 어멍들의 이야기에 쑥스러워하는 작가의 낮은 마음이 정겹다.

해녀들은 자존감이 높다고 한다. 자식들이 제발 물질만은 그만하라 말려도 바다에 들어가면 먹을 것을 캐오고 돈으로도 바꿀 수 있으니 노동이 주는 기쁨을 누리며 산다는 것이다. 준초이는 쉽게 말해 잘나가는 광고사진 작가였다. 그런 그가 바다 어멍 앞에선 까까머리 어린 아이처럼 보인다. 작가는 해녀들과 친분을 쌓기 위해 내리 바닷가에서 머뭇거리고 계란도 삶아놓고 기다린다.

우도에서 1년을 보낸 작가는 더 없이 행복했을 것이다.
김영갑의 제주사진은 철저히 고독했다면 준초이의 바다와 해녀는 뜨거운 정열과 뭉클함이 있다. 왠지 모르게 심심한 주말이라면 이 검고 푸른 바다를 누비는 신령같은 해녀들과 그 곁에 쭈삣거리는 대가의 이야기를 들어봄직 하다.

통영에서 작은 출판을 하고 있는 남해의 봄날에서 펴냈다.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앞만 보고 달려가는 숨가쁜 프리랜서로 살아온 내가 우도에서 보낸 1년은 내 인생에 다시 없을 시간이었다. 분명 존재했을 현재라는 시간대를 음미하지 못하고 앞으로만 뛰어가는 내 모습이 한때는 자랑스러웠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모습이 남에게 비춰질 것이 창피하다. 과거, 현재, 미래로 이루어진 삶의 몸통에서 현재는 토막난 채로 과거와 미래 어느 쪽인가로 흡수, 통합되어 버렸던 시절이었다. 해녀들은 언제나 현재를 산다. “물때를 어질지 마라” 하시던 옛 어른들의 지혜는 이들의 삶이 얼마나 자연의 섭리에 맞게 흘러가는지를 보여준다. – 책 216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