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모르는 게 죄가 아니라고 했던 건, 무학자를 차별하지 말라는 뜻이었을게다. 지금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공부를 한다는 건 적어도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어야 하고, 공부를 하는 게 필요하다는 각성이 있는 양육자가 붙어있어야 어린 나이에 공부를 할 수 있으니, 이건 과거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불과 30-40년전만 하더라도 저학력이 사회생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양육자가 적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지금의 4-50대 중년여성들 중 고졸로 직장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대학을 간 여성들도 수두룩하게 많다.
무학이나 저학력의 약점은 고통스럽게 배우고 익혀본 경험이 적어서 배우는 힘이 약한거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고, 공부도 해 본 놈이 잘 한다고, 남들 놀 때 어떻게든 탐구하고 책상에 붙어있어본 자는 일종의 짬밥이 생겨 다음 단계도 거기까지 못 간 사람보다 쉽게 넘어간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학습 숙련도가 높아지니 더 어려운 단계의 공부에도 접근하기 좋아진다. 그러나 학력의 기초단계 – 즉 초등학교 정도 – 에서 문제를 풀기 위해 낑낑대고, 모르는 말의 뜻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물어볼 기회조차 없었던 사람이 더 어려운 공부를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런 경우에서나 모르는 게 죄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르는 게 죄가 되는 경우는 권력을 쥐었을 때다.
그 말 한마디로 예산이 바뀌거나 누군가의 일자리가 사라질 때, 그 말 한마디로 다른 사람이 매달 받던 쌀 한 푸대가 두 달에 한 번씩으로 줄어줄 때, 권력자가 모르는 것은 죄가 된다. 책상에 앉아서 보고 싶은 서류나 들여다보고, 제 가족이 분통터졌던 일에 대해서 기관장을 불러서 되려 내가 갑질했냐고 협박이나 일삼는 자나, 나도 학교 다닐 때 국어가 싫었으니 지금도 영 교과과정이 별로일 거라고 확신에 차서 입을 놀리는 자는, 자신의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고 때로는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닫는 계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권력을 이미 쥐었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거침없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면 되니까. 갈라치기와 혐오와 차별을 담아 떠들어도 당장 그 불손한 입을 가진 자가 어떻게 되진 않는다. 대중의 분노는 더디게 끓어오른다. 생계가 바쁜 경우도 있고, 그래도 권력자라면 나보다 많이 배웠을테니, 나보다 경험이 많을테니, 나보다 나은 판단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잘 하겠지. 그래도 한 번쯤 믿어주자는 선량한 마음과 귀찮은 마음이 뒤섞인다.
끌려내려오기 전에는 별로 불안감도 없을 것이다. 권력자들의 분노는 가볍고 하찮다.
모르는 게 죄가 되지 않은 경우는 알려고 할 때다.
자기가 모른다는 것을 정확히 인지하고 모르는 것을 묻고, 현장의 소리를 듣고, 혼자 궁리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누군가 크게 소리치면 뛰어나가 물어보면, 모르는 게 죄가 되지 않는다.
결국 태도의 문제다.
모든 정치인이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다. 어쨌거나 그도 사람이고 자기가 경험한 세계가 세상의 전부라는 착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권력을 쥐었을 때는 모르는 것을 자랑스럽게 떠벌리지 말아야 한다. 국가로부터 급여를 받고 국가가 4대보험처리를 해준다면, 적어도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을 다 해봐서 함부로 말하던 권력이 있었고, 아무 것도 안 해봐서 함부로 웃던 권력이 있었다.
권력을 쥔 정치인이 자기 세계에 빠져 제 멋대로 판단하고 재단하며 잔소리하고 윽박지르는 것은 죄다.
이 이야기는 대통령 이야기가 아니기도 하고, 어느 기초단체 의회의 이야기가 아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