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 애플망고

 

동네에 마트가 하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마트는, 슈퍼마켓인데 규모가 약간 큰, 중소유통업체에서 운영하거나 개인이 하는 그런 동네마트다.
1기 신도시 평촌의 구멍가게들은 모두 편의점으로 전환했고 나들가게가 소수 남아있다. 새로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중소업체의 마트가 하나 들어올까 기대해봤으나 없었다. 근처에 시장도 있고 이 아파트 하나 생각하고 들어오기에 요즘 장사가 예전 같지 않아서일까?
내가 물건을 살 수 있는 곳은 단지 안의 편의점, 400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이 마트, 그 마트 옆의 옆 건물의 마트만큼 커다란 편의점. 시장은 1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늦게 열고 일찍 닫는다. 
재개발과 철거가 순차적으로 이어지고 있어서 항상 동네가 한산하다. 1층은 상가 2층이상은 가정집으로 된 건물이 늘어서 있는 동네인데 문닫는 상가, 여전히 비어 있는 공실도 더러 눈에 띈다.

오늘은 학원가에서 해장국을 한그릇 먹고 올리브영에서 화장솜을 사가지고 오는 길에 마트에 들렀다. 내일 아침에 아이 먹일 브로콜리와 새송이를 샀다. 건빵이가 애플망고를 쳐다보고 있길래 먹어보자고 두 개를 샀다. 두 개 포장에 9,500원이나 했지만 저런 거 사주면 되게 신 나하기 때문에, “아이 신 나라!” 하는 표정을 보고 싶어서 샀다.

집에 오자마자 건빵이가 망고를 썰기 시작했는데 맛이 떫다고 했다. 애플망고는 절반이 썩어 있었다. 건빵이는 이런 일에 꽤 까다롭게 굴기 때문에 환불하러 가서 좋은 소리 안 하고 올 거 같아 내가 가겠다고 나섰다. 건빵이가 따라나섰다.

환불해주셔야겠어요. 나는 망고를 보여주며 간단히 말했다. 사장이 나와 아이고 죄송합니다. 라며 캐셔에게 환불처리를 요청했다. 나는 결제했던 카드와 영수증을 보여주고 카드승인취소와 재승인을 확인하고 환불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나왔다.

건빵이는 이런 물건을 팔면 어쩌냐고 화를 냈지만 나는 이제 이런 일에 화가 나지 않는다.
애플망고는 육안으로 안이 썩었는지 확인하기 어려운 과일이다. 그런 과일들이 있다. 동네 수퍼는 순환이 잘 안되는 몇 몇 품종이 있을 것이고 저 망고는 수퍼에서 꽤 오랜시간 짓물렀을 것이다. 두 개의 9,500원 하는 과일을 선뜻 사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었겠나.

야채를 파는 수퍼마켓에 손님이 줄어들기 시작하면 야채와 과일은 바로 타격을 입는다. 시들시들한 야채와 과일을 판다고 손님들이 인식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손님은 더 빨리 줄어든다.
악순환의 시작이다. 단기 손실을 감안하더라도 시들어버린 야채와 과일을 빨리 폐기처분해야 한다. 끝까지 붙들고 있을 때 이런 사태가 생긴다.

재개발과 철거로 주민이주가 몇 년째 이어지고 있는 동네다.
이제 슈퍼마켓의 경쟁자는 이마트나 홈플러스가 아니라 쿠팡과 마켓컬리다. 위메프는 쿠팡보다 싸게를 외치기 시작했다.

아이의 같은 반 학부모 중 한 명은 이런 마트를 운영하는 사장이다. 동네에서 오래 장사를 하다가 손실을 보고 서울로 업장을 옮겼고 지금도 수퍼를 하는데 지난 번에 만났을 때 문정권 들어 경기가 너무 안 좋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곱씹었다.
어디가 문제인지 모를 수 있다. 자기 경쟁자가 누군지 모를 수 있다. 정권의 탓만 하다가 자멸하겠구나. 사람들이 수퍼에 굳이 찾아가 물건을 사는 이유가 무엇인지 고려하지 못하는구나.

애플망고 때문에 신 났던 건빵이가 울적해졌다. 보상이 필요했다. 돌아오는 길에 단지 안 작은 편의점에서 개별 포장된 참외 세 개를 샀다. 편의점은 대량으로 수매하고 대량으로 만들어 전국에 똑같은 걸 뿌릴 수 있다. 유통기한이 지난 신선식품을 폐기할 수 있는 것도 자본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점점 바빠지고 한낮에 한가롭게 장을 보는 일이 드물다. 재래시장은 늦게 열고 일찍 닫으면서, 손님이 없어 힘들다는 얘기를 하는 게 이해가 잘 안간다. 근무시간을 늘리자는 얘기가 아니다. 특화가 필요하다. 어느 구역은 새벽을 맡고 어느 구역은 야간을 맡으면 안될까. 세상이 시장의 리듬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데, 시장은 고유의 리듬을 깨지 않는다.

오죽하면 새벽배송이 필요하겠나. 그저 사람들이 속도를 즐겨서 새벽배송이라는 게 생겼을까. 일터에서 돌아와 옷도 못 갈아입고 저녁 차려 아이들 밥 먹이고 씻기고 재우기 바쁜 사람들이 도시의 대다수를 이룬다.

학교 앞 문방구도 거의 사라졌다. 아이들도 필요한 게 있으면 온라인으로 산다. 당장 내일의 준비물을 준비할 곳이 없으면 엄마들은 대형마트로 뛰어간다. 그걸 해결해준 게 새벽배송일거다. 종합장과 연필도 새벽배송 물품에 끼어있다.

오죽하면 이렇게까지 되었겠나.
이 나라의 산업구조는 “오죽하면” 으로 진화하고 있다. 오죽하면 이런 게 다 생겼겠나. 오죽하면.

 

2019년 5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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