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의 봄

모 고등학교 미디어언론관련 동아리 수업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10차시 강의라 계약이 필요하다고 해서 학교를 방문했다. 곱게 화장을 한 다른 강사 세 명이 담당교사와 얘기중이었다.
순간, 아 나는 대체 뭔 배짱으로 이렇게 이불에서 나온 모습 그대로 사회를 헤매고 다니는가, 너무 염치가 없는 것인가 뜨끔했다.

진로코칭과 코딩, 역사관련 전문강사샘들인 거 같았다. 학교 방과후 강의나 진로교육 강의를 많이 다니는 경력자들 같았다. 코딩샘은 학교 컴퓨터 사양이나 와이파이 상태를 걱정했고 역사샘은 진로코칭 강의도 다니는 모양이었다.
관점이 약간 다르다고 느낀게, 고1때 이 부분을 점검해줘야 2학년때 어렵다고 느끼지 않는다. 는 문장을 들어서였다. 이 분은 교과진도와 아이들의 입시에 나보다 해박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진로코칭 강사는 당연히 진로보다 진학에 더 밝은 경우가 많은데 애초 자기가 아이들에게 꿈과희망을 얘기하면서 시작하더라도 정작 학교나 학부모가 원하는 진로교육은 진학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럼 이름을 바꾸는 게 맞을텐데, 진학 역시 진로의 한 부분이라 그렇게 쉽게들 바꾸지 않는가보다.

담당선생님이 계약서와 개인정보이용동의서를 챙겨오고 참가하는 아이들의 출석부를 넘겨주느라 몇 분을 앉아 있었고 마침 부장교사가 합석을 해서 강사들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모 고등학교는 진학지도가 어느 정도로 되고 있다는 내용을 서로 공유하면서, 지금 내가 앉은 이 학교는, 자사고를 떨어진 아이들이 오게 되는 1순위 학교이기 때문에, 3월 한 달동안 1학년 애들의 절반이 울고 다닌다는 거였다. 위치가 좀 외져서 같은 안양권에서도 대중교통으로 다니려면 차를 두 번은 갈아타야 하니 다니기도 힘든데, 자기가 원하는 고등학교를 못 갔다는 서러움이 더해져, 3월 내내 침울한 분위기로 학교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엄마가 매일 데려다주면 괜찮은데.” 라고 말했고 그 문장이 머릿속에 남았다.

ㅅ 고등학교는 자사고니까 내신이 너무 높아서 에지간히 해서는 내신도 안 나오니 수시로 가기도 어렵고, 그렇다면 애들이 정시지원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정시는 N수생들과 도저히 경쟁을 할 수 없지 않느냐, 밥 먹고 앉아서 문제만 푸는 애들과 고3이 어떻게 경쟁을 하느냐, 그렇다면 ㅅ 고등학교의 전략이 잘못된 거 아니냐, 입학사정관제로 돌려서 아이들이 어떻게든 학교를 가게끔 전략을 짜야 하는데 그 학교는 교사들이 전혀 그런 생각이 없는 것 같더라.

나는,
낄 수 없는 자리에 좌불안석으로 앉아 있었고 계약서에 도장을 다 찍은 다음 다 끝났으면 먼저 일어나겠다며 인사를 하고 교무실을 나왔다. 학교 앞에는 아름다운 개천이 있고 교정도 널직하고 건물도 좋았다. 1층 현관에는 무대도 있고 급식을 먹을 식당도 따로 있었다.

낙오한 아이들이 모였다는 생각을 하면서 봄을 맞이한다니, 1학년 입학 때 수학 두 바퀴 반 돌고 가야 한다는 말이 이거였나. 대체 나는 왜 여기서 이런 짓거리를 하고 있지. 내가 말하는 민주시민교육이 대체 무슨 소용인가, 모두들 끊임없이 좌절하며 늙어가는데 저항할 수 없는 체제에 아이들을 몰아넣고 완전히 방치해버린 기성세대가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나. 너희들 그렇게 살면 안된다고, 저항해야 한다고, 권리를 주장하고 타인을 배려하라고?

무력하다.
학교는 복도 곳곳이 좌절이다.

강사료 얘기는. 하나마나다. 맨날 반복되는 얘기 해봤자 뭐하나.

 

2019년 5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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