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두 배로 견디는 일

최악의 무더위라지만, 나는 올 여름을 정말 편케 보냈다.
땀이 분수처럼 솟구치는 교실의 특강은 7월 20일로 끝났는데 그 주의 월요일부터 폭염이 시작되었으니, 그나마 나는 여름 노동을 아주 짧게 하고 마친 셈. 이후로는 대부분 집에서 컴퓨터로 작업하는 일만 남아 에어컨 바람을 쐬며 보름 넘게 잘 지내고 있다. 밖에 나갈 일이 있어도 더위를 견디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차를 가지고 나갔다. 창문을 잠깐 열때마다 도로의 열기가 쏟아져 들어왔지만 사실 나같이 편케 지내는 사람이 덥다고 불평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개인의 고통은 누구에게나 비슷한 몫으로 돌아가지만 적어도 과거의 나를 생각하더라도, 지금 이 상황에 불평을 쏟아내는 것은 20년전의 나에게도 너무 미안한 일일 뿐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지 못하던 시절에 르몽드 디플라마티크에 실린 글 하나가 내 명치끝을 후벼봤는데, 더위와 추위는 빈부격차를 여실히 느끼게 해준다는 요지의 글이었다. 그때 나는 넓고 쾌적한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 아파트는 2010년도에 지어 최신 시설을 갖추고 있었는데, 집안의 붙박이 장과 집안 곳곳에 배관이 설치되어 있어 집안의 미세먼지를 외부로 내보내는 닥트가 설치되어 있었고 등록된 차량이 아파트 단지안으로 진입하면 “차량이 도착했습니다” 라는 안내음이 울렸고 입주할 때 준 작은 기기를 주머니나 가방에 가지고 있으면 공동현관 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엘리베이터가 호출되었다. 500여세대가 사는 작은 단지에 지하주차장은 2층까지 되어 있어서 주차난이 없었다. 그런 시설에서 내가 7년을 살면서 갖게 된 새로운 습관은 겨울에도 두꺼운 옷을 입지 않고, 여름에도 아주 얇은 옷을 입지 않고, 우산을 잘 챙기지 않게 된 것이었다. 지하주차장에서 지하주차장으로 이동하는 삶을 살게 되면, 추위도 더위도 모두 피한 채, 인간이 설정해 놓은 온도, 18도에서 25도 사이의 삶을 계속 영유할 수 있다. 학교에 가는 아이들이나 더위와 추위를 실감했다. 만일 내가 그 집에 살면서 골프연습장과 백화점만으로 외출을 한정지었다면 일부러 산책 할 때 외엔 외부 공기에 노출될 일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

엄청난 전력을 써대며 하이브리드 차를 사서, 양심을 달랜다. 3중 유리창은 추위와 더위를 막아서 액자 속 풍경으로 만들었다. 그 아파트는 지역 열병합발전소에서 직접 전기를 끌어오는데다가 태양열에너지가 수시로 저장되어 있어 전력난이 일어나지 않는다. 여섯 살부터 그 집을 떠난 적 없는 내 아이는 정전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며칠 전 우리집에 왔을 때 정전이 되었는데, 전자렌지에 햇반을 돌리면 되지 않느냐는 어이없는 소리를 했다. 그러니까 그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에겐 무엇이 전기고 무엇이 전기가 아닌지, 그 경계가 사라진 것이다.

그 집을 나와 나는 편하게 지내고 있다. 지하주차장 한 켠에 관리사무실을 만든 사람들이 골프동호회를 만들어 주말마다 보스턴백과 골프가방을 들고 나가는 꼴을 보지 않아도 되고, 쏟아져 나온 폐기물이 너무 고급스러워서 주워오고 싶어도 그 부피가 상당해 내가 가져올 수도 없는 그런 물자들을 보지 않아도 되니까.

내가 사는 지금의 이 아파트는 93년에 지어진 신도시1기의 아파트. 제일 넓은 평수가 전용면적 12평. 에어컨이 없는 주민들은 평상에 나와 밤바람을 기다리고 겨울엔 눈이 얼어붙어 주차장이 위험하고 늘 주차공간이 부족해 보도블록위에 차를 걸쳐야 해서 보도블록은 죄다 깨져 있다. 나무 아래 차를 대면 새똥이 매일 매일 새롭게 떨어져 있고 나무 수액도 떨어져 차문이 끈적한 이곳은, 사시사철 계절을 감각할 수밖에 없다.

94년의 더위는 열람실에서 보내느라 느끼지 못했지만 그 이후에도 나는 늘 더웠다.
고시원의 강력한 에어컨 바람은 방까지 들어오지 않아서 휴게실과 외부로 떠돌았고, 옥탑방의 열기는 동생을 탈진하게 해서 응급실까지 가게 했다. 반지하에 살 때는 더위보다 곰팡이, 바퀴벌레, 쥐가 수시로 들락거렸고, 버스를 기다리는 일, 안전문이 없던 시절 지하철에서는 들어오는 열차도 열기를 뿜었다. 어쨌거나 늘 더웠다. 그 노동이 끝나는 순간 나는 더위를 견디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인간이 되었다. 피할 수 없어서 견뎌야 하는 것들은 도처에 있으니까, 견디지 않아도 되는 것들은 어지간하면 피하겠다고 결심한 셈이다.

폭염은 갈수록 더할 것이고, 홑겹의 베란다 유리문만 있는 지금 내 집의 겨울은 혹독하게 추울 것이다. 올 겨울에도 세탁기가 얼까 고민할 것이다.

그리고 지구는 점점 더 더워지겠지. 전기를 많이 쓰는 사람들이 온난화의 책임이 더 크다면, 그 책임의 부채는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려가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독하게 겪게 된다. 에너지 빈곤은 계절을 두 배로 힘겹게 만나는 것을 말한다. 에너지 정책에 결정권이 없는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질 것이다.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은 절대 힘들게 살지 않는다.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이유다.

2018년 8월 4일
(며칠 만에 밤 온도가 29도로 내려간 날)
사진은 2004년. 60년만의 최악폭염을 기록한 상하이, 내가 살던 동네.

IMG_0976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